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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프레시안, '문재인은 아직도 호남을 모른다'는 기고에 대해



"문재인은 아직도 호남을 모른다



위에 링크한 기사는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 이관후가 <프레시안>에 기고한 글입니다. 필자는 여러 편의 글에서 스쳐가는 방식으로 진보매체들의 한계와 고리타분함을 비판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비판은 가급적 자제했습니다. 문재인이 '질서있는 퇴진'을 전제로 더민주를 수권능력이 있는 정당으로 바꾸는데 성공한 상황에서 괜한 분란만 자초하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입니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없다'는 것을 증명해주던 더민주의 추락을 막고 반등에 성공한 문재인 전 대표가 김종인을 총선의 선장으로 영입한 이후에는 더더욱 조심스러웠습니다. 문재인이 어떤 경로와 이유로 김종인을 영입했는지 알 수 없었던 필자로서는, 김종인이 보여준 퇴행적 행태(필리버스터 조기중단, 오만방자한 야당통합, 셀프공천, 청년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비례대표 학살공천, 당무거부, 모욕적인 방식의 정의당과의 선거연대 파기 등)를 비판하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었습니다. 



필자의 눈에는 확실했던 총선 승리가 연기처럼 날아가는 것이 보였습니다. 이 때문에 건강까지 악화됐지만, 필자는 총선 한 달 전에 새누리당의 과반수 붕괴를 예상할 수 있었습니다(사실상의 박근혜 탄핵으로 드러난 총선 민심 참조). 총선이 끝난 후에는 선거 결과에 대한 다각도의 분석글을 올렸고, 광주·호남의 반문정서를 이해하기 위해 다양한 루트를 가동해 일정 수준의 정보를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표본집단이 너무 적기 때문에 필자의 판단에 신뢰성이 떨어진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호남홀대론과 반문정서를 다룬 것들이라면 모조리 검색해 꼼꼼히 살펴봄으로써 모집단의 신뢰성을 높이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 중에 <프레시안>에서 이번 기고를 접하게 됐습니다. 정희준, 김욱, 장은주, 윤중대 등이 펼친 패권주의 논쟁을 접한 후 <프레시안>은 꼴도 보기 싫었는데, 호남홀대론과 반문정서를 다룬 이관후의 기고를 보게 됐고, 미루고 피했던 비판을 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이관후는 더민주가 정당투표에서 3위로 밀렸기 때문에 국민의당에게 졌다고 말합니다. 이것을 근거로 '국민들(유권자도 아닌)이 더민주에게 제1야당으로서 파산 선고를 내린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비약도 이런 비약이 없습니다. 이관후에게는 정당표에서 3위로 밀린 것이 지역구에서 1등한 것을 무력화시키고도 남는 모양입니다. 그에게는 유권자들의 교차투표와 세대별 투표에 영향을 미친 온갖 요인들과 승자독식의 소선구제는 언급할 가치도 없나 봅니다. 





그는 또한 '더민주가 '전라도당'이라는 색채가 엷어졌기 때문에 전국전당이 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이관후에게는 경북과 광주·호남은 전국에 들어가지 않는 모양입니다. 초딩보다 못한 자의적 해석은 '더민주의 비전은 호남을 버릴 때 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됐다'는 것까지 마구 달려갑니다. 이 정도면 정신병자의 수준에 이르렀다 할 수 있습니다. 한국현대사와 제1야당의 역사를 모조리 부정하는 이런 단세포적 분석은 어떻게 가능한 것인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제멋대로의 비약만 가득한 이관후의 주장은 '기실 호남은 호남 출신의 대표를 당선시키고자 한 적이 없고, 대의명분에도 크게 집착하지 않으며, 집권능력만 본다'는 낡아빠진 논리로 호남 비하(비열한 말장난)까지 나아갑니다. 그는 김종인을 영입한 사람이 문재인이라는 것은 빼놓은 채, 김종인의 오만방자한 닥질 때문에 3월초까지 호남에서 앞서 있었던 지지율을 모두 다 까먹었다고 주장(이 부분은 필자도 동의)합니다. 



이때 이탈한 광주·호남 유권자의 정당표가 국민의당으로 옮겨가면서 기사회생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합니다. 그는 '국민의당 비례대표 의석수가 6~7석에 그쳤다면 지금과 같은 세력을 과시할 수 없다'고 단언합니다. 이관후의 김종인 비판에는 100% 동의하지만, 그것이 국민의당 비례대표 당선자 절반으로 줄었다면 '지금과 같은 세력을 과시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지 논리적 정합성을 도저히 찾을 수 없습니다.



양자역학적 정치경제학이 세를 넓히는 2016년에 인과관계와 상관관계도 제시하지 않는 논리적 허술함이란 기가 찰 노릇입니다. 이관후의 막가파식 논리 전개가 여기에서 그쳤다면 그래도 넘어갈 수 있습니다. '김종인이 국민의당을 도왔다'는 제대로 된 비판에서 '광주가 원한 것이 부산에서 새누리당과 처절하게 싸우는 것이었기에, 문재인은 광주를 무시했어야 한다'는 터무니없는 논리로 이어지는 것에서는 실소를 금치 못했습니다.  





문재인이 김홍걸과 광주를 방문했을 때, 한 할머니가 '호남을 믿고 부산에서 더 힘써주세요'라는 피켓을 들고나왔는데, 이것을 광주 전체로 확장하면 이런 결론은 가능합니다. 이관후의 주장에 무게를 실어주는 것이 있는지 '오마이TV'가 동행취재한 영상을 아무리 돌려봐도 이런 결론의 근거가 될 만한 추가적인 내용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관후는 이런 결론을 토대로 문재인의 광주방문이 호남의 민심 이반으로 이어져 국민의당의 광주·호남 독식을 초래했다고 주장합니다. 대단히 조중동스러울 따름입니다. 



이관후는 부산의 결과는 어떻게 설명하려고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는지 놀랍기만 합니다. 수많은 여론조사업체들이 새누리당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터무니없는 선관위의 규제가 더 이상 적용되지 않는 시점에서 발표한 여론조사결과를 보면 이관후의 주장과 정반대로 나옵니다. 객관적인 데이터와 통계마저 무시하는 그의 결론은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명제가 떠오릅니다. 그가 이런 결론을 내릴 수 있었던 근거는 다음과 같은 21일자 <전남일보>의 주장입니다.

     


"문 전 대표의 (호남순례를) '김홍걸 마케팅'으로 평가절하하고 진정성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 문 전 대표가 냉랭한 호남 민심을 만회하기 위해 김 위원장을 '정치적'으로 앞세운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또 문 전 대표가 호남참패에도 불구하고 자중하거나 반성하는 모습 대신 자신의 대권에만 의식한 행보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관후는 한글 공부부터 다시해야 할 것 같습니다. '비판이 있다'와 '지적도 있다'는 전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부분을 말하는 표현이라는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그가 기고의 모든 부분에서 논리적 비약을 일삼았던 것이 어느 정도 이해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안철수와 국민의당을 비판하기 위함이라도 '이 정당의 지지율은 총선 직전 불과 한 달 사이에도 큰 폭으로 움직였고, 우연히 선거 직전에 상승했을 뿐'이른 것에서 허탈하기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여론조사기관의 수준이 형편없다고 해도 '우연히 선거 직전에 상승했을 뿐'이라는 주장은 손발이 오그라들어 읽는 제가 창피할 정도였습니다. 필자는 여론조사결과가 왜 이렇게 엉망진창이었는지 알고 싶어서 전문가에게 자문까지 구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한두 가지가 아니었고, 총선이 끝난 후 많은 여론조사기관들이 내놓은 제대로 된 결과들은 절대로 '우연히'라는 단어로 폄하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더욱 황당한 것은 기고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이관후는 '여소야대를 만드는데 야당에서 잘 한 사람은 거의 없고, 이 지경의 여야 정당들을 두고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 국민이 위대했다'는 사탕발림 뒤에, '국민들은 야당이 국회를 장악해서 한국사회의 문제를 좀 주도적으로 해결해보라고 기회를 주었으며, '헬조선'이라는 한국사회의 불평등, 고령화, 일자리와 복지 문제에 대해 청와대와 여당이 잘 대처를 못했다고 평가했고, 미덥지는 않지만 야당이 한 번 해보라'는 것이 이번 총선에서 나타난 민심의 결과라고 주장합니다.



이번 글을 정독한 분들이라면 눈치챘을 것입니다. 이관후는 기고의 초입에서 '국민들이 더민주에게 제1야당으로서 파산 선고를 내린 것'이 총선 결과라는 주장했으면서도, 정반대의 결론으로 글을 마치는 용감무쌍한 전복적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의 논리적 모순은 이것 말고도 몇 가지 더 있습니다. 호남은 오로지 집권능력만 본다는 통념에 근거해 문재인과 안철수가 손잡고 정권 교체를 이루라고 합니다. 



결국 '도로 새정연'으로 돌아가라는 것이 이관후의 최종결론입니다. 살다살다 이처럼 논리적 일관성이 결여된 기고는 처음 봅니다. 필자가 경향신문 구독을 끊은 것이 정희준의 형편없고 광기어린 친노비판 때문이었는데, '패권주의 논란'에 이어 이관후의 기고까지 접하며 <프레시안>도 완전히 끊어야 할 판입니다. 김종인은 즉각 사퇴하고 사과를 해야 하며, 박경미 당선자도 사퇴해야 한다는 것도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나 극단적입니다.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연구원이라는 이관후가 이번 기고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 알지만, 글쓰기에 대한 최소한의 기본도 지키지 못한 이따위 글로 누구를 설득하고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떤 매체에 기고를 하고 어떤 내용을 담던 개인의 자유고 존중해야 하지만, 사실관계 확인도 부족하고 기본적인 수준의 퇴고도 거치지 않은 흔적이 곳곳에서 드러나는 글은 자신의 얼굴에 침뱉기를 넘어 <프레시안>의 수준까지 땅바닥에 처박는 일입니다.   



필자가 노무현의 정신을 공유하는 친노이고, 문재인의 열성지지자라 해도 이처럼 허접한 글은 분노를 넘어 허탈하기까지 합니다. 여기에서 통하는 분석이 저기에서는 통하지 않는 상호모순적 이중성이 이번 총선이 결과라고 해도 전문가의 분석글마저 논리적 모순과 비약을 보인다면 너무한 것 아닙니까? 이관후의 정치적 성향을 알 수 없지만, 혹시라도 진보적 성향을 지녔다면 사유의 깊이를 늘리고, 쓰레기 같은 책이나 사설에 근거하지 말고, 보다 충실한 글로 거듭나기를 바랍니다.



최소한 학자를 자처한다면, 객관적인 데이터와 호남의 결과에 미친 다양한 변수들을 다 살펴본 다음에 글을 써야지, 강준만류의 저질 정치평론을 논리적 근거를 삼거나 자신의 희망사항만 나열하는 그런 글들은 피했으면 합니다.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것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진보가 분열을 일으킬 만한 요인은 모조리 나왔기 때문이며 최신 과학기술에서 보여주는 성취들은 진보가 일치단합하지 않는 한 인류의 종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명확해지고 있습니다. 제발, 세상을 다양하고 통섭적인 차원에서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