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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1020세대의 탈물질주의


필자는 틈이 나는 대로 산본의 1020세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그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치철학적으로 말하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체득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가 너무나 적어 보편성이 전혀 없지만, 이대생의 투쟁에서 볼 수 있었던 개인주의(자유주의적 성향)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토론과 합의(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일단을 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들은 저와의 대화에서 예의를 지켰지만 대등한 입장에서 얘기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장장 50년에 걸친 독재에 익숙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경험이 부족하며, 불평등성장보다는 빈곤에서의 탈출이 시급했던 6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시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8혁명의 1020세대가 그랬듯이 이들도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생태·환경·먹거리 같은 삶의 질에 관심이 많은 탈물질주의적 성향(N포세대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하는 반칙과 특권의 신자유주의를 뒤엎는 체제혁명의 기본조건)을 드러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반대해 10대의 소녀들이 촛불집회를 기획한 것도 이런 성향이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조기숙과 정태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참조)도 있듯이,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이들은 탈물질주의의 원천인 진보적 자유주의와 상당 부분이 겹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한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의 불평등과 취업대란, 환경오염, 권위주의로의 회귀, 위계서열 강조 같은 헬조선에 직면하면서 진보적 성향이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헬조선을 탈출하는 모토 중 하나가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인 것도 이들의 절망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적 성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핵심인 소극적 자유(천부인권이 대표적, 국가와 정부의 개입 최소화)보다는 인권, 평등한 자유, 헌법적 권리, 환경과 생태 보존, 보편적 복지의 실현, 소수자 권리 인정, 노동시간 단축, 축제처럼 즐기는 집회, 수평적 네트워크, 시민주권 같은 적극적 자유(사회적 합의와 헌법이 보장)에 친화적인 성향을 공통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등에서 독재적 행정을 남발하는 대학측에 맞선 투쟁과 1020세대가 많이 참여하는 촛불집회 등에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즐거운 이데올로기와 탈물질주의적 성향에서 나온 1020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40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이런 특징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20대의 눈으로 1020대를 얘기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68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구조'는, 거품경제가 붕괴한 1991년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은 일본 사회다. 거품경제의 붕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인생 모델'(일본형 업적주의)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제 대기업은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이라는 '일본형 경영'을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중산층의 꿈'이 붕괴되어 가던 시대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태어났다(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인용).





노무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거품과 벤처거품, 카드대란을 물려받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임계점에 다다른 시점에 임기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했기 때문에 (지지층이 소수였고 국민의 의식에 성장에 대한 환상이 여전했음에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중동과 사이비 지식인의 왜곡과 조작으로 당시에는 부정됐지만, 현재의 20대는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에 대통령 선호도에서 노무현이 박정희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고, 이명박근혜 9년을 경험한 지금에는 50대까지 이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복지를 쟁점화함으로써 오히려 지지기반을 축소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경제적 개혁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중산층의 지지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좌우균열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이 지지자를 잃으면서까지 비전 2030을 내놓고 복지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는 발전주의와 복지주의라는 경제적 균열이 단기적으로는 진보진영을 소수로 만들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결과) 노무현 정부 5년간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복지주의의 등장으로 발전주의와 대립하면서 약한 균열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전근대적인 지역균열을 근대적 의미의 좌우균열로의 이동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두 번째 변화는 탈근대적 현상의 출현이다. 근대적 시장과 국가를 둘러싼 경제균열 외에 탈물질주의 대 물질주의의 균열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조기숙과 정태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을 고도성장이 박정희의 신화적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과 상당수의 기성세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신분이동성이 협소해진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1020세대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1020세대 중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탈물질주의적 성향은 N포세대의 등장(경제 후퇴와 저성장시대의 진화심리학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과 그에 따른 삶의 모습에서 1020세대의 지배적 특징임이 입증됩니다. 



노무현의 추구했고, 문재인과 유시민 등이 발전적으로 계승했으며, 1020세대는 체험적으로 습득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한 87민주항쟁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시민주권의 단계가 참정권에서 복지권을 거쳐 자치권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정부와 자본, 시장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자치권이다. 잘살고 성공하는 것보다는 자유와 행복이 중시된다).  





특히 선거연령이 16세까지 내려간다면 87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더욱 빨라질 것이며, 헬조선의 탈출도 빨라질 것이 확실합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기성세대인 필자가 복지권이 실현된 '사회적 권리'에 집착하는 것에 비해서, 1020세대가 탈물질주의적 자치권에 보다 집중하는 것도 경험(공기처럼 주어진 민주주의)과 환경(불평등과 환경오염이 심각하며,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입니다. 



필자가 촛불혁명의 목표로 조세정의(복지권 실현의 거의 모든 것)와 세대교체를 울부짖는 것도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많은 1020세대들에게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해 불평등과 차별을 극대화시킬 4차 산업혁명의 폐해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지배적 체제를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전환시키려면 1020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야 합니다. 촛불혁명은 이를 앞당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미국과 일본을 빼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비판하는 반기문이 대선에 나서려고 하는 것처럼, 기성세대와 늙은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개 같은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려면 촛불혁명의 기저에 깔려있는 노무현과 1020세대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탈물질주의에 천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시장 참여와 상관없이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누리면서도, 네트워크적 연대(느슨하지만 상호 인정이 핵심)를 통해 자치권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에 이르려면 1020세대에게 보다 많은 발언권을 주어야 합니다.



각 당마다 25% 정도의 젊은이들을 무조건 할당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비례일 경우 순번도 당선안정권에 두어야 합니다. 이럴 때만이 1030세대가 정치권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기성정치인 위주의 대의민주주의와 균형과 견제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춰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