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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이재명에게, 선동가보다는 정치인이 되기를


이재명 시장님, 저는 시장님을 정치인보다는 법적 지식을 이용한 정치적 선동가에 가깝다고 봅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것을 이번 글에서 자세히 밝히겠습니다. 시장님도 아시겠지만 사이다 발언은 정치인보다는 선동가의 무기라는 것은 아실 것이라 믿습니다. 크라우스와 히틀러, 스탈린, 매카시, 피노체트, 차베스, 트럼프 등이 그러했음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이들의 말에는 말초적 흥분과 정의를 빙자한 폭력은 있었어도 상식의 보편성과 양심의 순정성은 없었습니다. 





시장님의 사이다 발언 중 상당수는 상식의 보편성과 양심의 순정성이 있었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그런 발언의 공통점은 박근혜와 새누리당, 악질적인 친일파, 족벌언론, 기회주의적 정치인 등처럼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고사시키고 반칙과 특권, 불평등과 차별의 헬조선으로 만든 자들과 집단을 향한 것이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시기적절했기에 시장님의 그런 발언에 많은 국민과 시민들이 환호하고 따랐고 그것이 지지율의 폭등으로 이어졌다고 알고 있습니다. 



헌데 시장님의 지지율이 반기문을 꺾고 2등에 오른 전후로 시장님을 지지하는 일부와 더민주 내부로 향한 발언들에는 정치적 올바름보다는 선동가적 레토릭이나 특유의 낙인찍기로 가득했습니다. 시장님은 문재인 지지층과의 충돌에 대해 "충돌이 아니라 내가 당했다. 이건 정확히 얘기하자. 문 전 대표 지지층 일부(전체라 하면 감당할 수 없어서 일부로 한정한 것인가? 이재명은 문재인 지지층 전체를 꿰뚫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가 나를 '차차기 후보' 또는 '페이스메이커'로 생각하다 진짜 한판 붙을 거 같으니까 제자리로 돌아간 거다. 그들은 나를 키워서 잡아먹으려 했지만 애완견인줄 알았는데 호랑이였던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장님의 말대로 문재인 지지층의 일부가 시장님을 '페이스메이커'로 생각했다고 했는데, 이것이 어떻게 가능한 얘기인지 모르겠습니다. 시장님의 말이 당내 경선에 한정된 것이라면, 문 지지층의 일부가 시장님을 '페이스메이커'로 키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문재인 전 대표에게 불리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생각이었다면 경선에 패배해도 문재인을 지지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안희정을 키우지, 그럴 가능성이 떨어지는 시장님을 키울 이유가 없습니다.  





정권교체를 고려한 것이라도 '페이스메이커'로 시장님만 키울 이유가 없습니다. 안희정, 박원순, 김부겸 등 대선후보로 거론되는 모든 분들을 '페이스메이커'로 키우지 시장님을 집중적으로 키울 이유가 없습니다. 그 당시 문재인 지지자였던 저와 제 친구들이 두 사람의 지지율이 선두권을 달릴 때 '꽃놀이 패'라고 말했던 것은 누가 대통령이 되던 상관없었기 때문입니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분들에게는, 후보들에 대한 선호도에는 차이가 있겠지만, 더민주 후보군 모두가 '페이스메이커'였다는 뜻입니다. 



문 전 대표가 반드시 다음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이라면 시장님을 '페이스메이커'로 키울 일이 없습니다. 문 전 대표가 독주하도록 노력하지 시장님을 키워서 구태여 호랑이에게 물려갈 어리석은 일을 할 이유가 없다는 뜻입니다. 문 전 대표의 지지율이 20대% 초반에서 머물러 있을 동안 시장님의 지지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에서 이는 명백히 입증됩니다. 시장님의 지지율이 폭락할 때 문재인 지지율이 올라가지 않고 반기문이 올라간 것까지 더하면 객관적으로도 입증됩니다(이재명의 지지층과 문재인의 지지층이 다르다는 뜻). 문재인 지지층이라면 그의 지지율을 올리기 위해 전력을 다하지 시장님을 지지해 호랑이로 키울 이유가 없습니다.  





'차차기후보'도 마찬가지입니다. 정권교체와 장기집권의 차원에서는 가능한 발상이지만, 더민주 경선이라면 불가능한 발상입니다. 시장님은 문 전 대표를 추월할 것으로 보이자 특유의 낙인찍기를 발동한 것입니다. 시장님은 비판에 대단히 편협해서 이분법적 관점에서 상대를 여러 개로 범주화한 후 낙인찍습니다. 시장님을 진보로 알았던 사람들에게 '수구기득권'이라는 낙인을 찍었습니다. 시장님을 반대한다는 이유 하나로 '수구기득권'이라는 낙인을 찍어 청산이나 타도의 대상으로 만듭니다. 필자도 그래서 '수구기득권'이 됐고요. 



'그들은 나를 키워서 잡아먹으려 했지만 애완견인줄 알았는데 호랑이였던 것이다'라는 저열한 발언이 가능했던 것도 시장님 특유의 낙인찍기에서 나온 결과물입니다. '차차기후보가 애완견이라? 대통령이란 자리가 그렇게 형편없는 자리인가? 문재인 지지층 일부가 무슨 수로 그렇게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상식적인 물음은 할 것도 없습니다. 소설 <주홍글씨>를 인용하지 않는다 해도 낙인찍기는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하게 만드는 선동과 배제의 전형적인 예입니다. 



장님의 이런 특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사실관계를 왜곡한 것은 철저하게 응징해야 한다'고 말하는데 사실관계라는 것이 각자의 관점에서 보면 하나로 확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관계가 여러 개로 해석될 수 있다는 뜻이지요. 문재인 지지층 일부(거듭 묻지만,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확인했는가?)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는 것의 사실관계는 어떻게 확인해야 하고 어떻게 확정해야 하는 것인지 그것부터 분명히 해야 했는데 그것에 대한 언급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법원에서의 판결도 법관의 관점과 검사와 변호사의 법리다툼이 반영된 해석의 결과물이지 모두가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관계의 확정은 아닙니다. 법정에서의 판결이 강제적이고 물리적인 효력을 갖기 때문에 받아들일 뿐이며, 대법원의 판결에도 모든 이들이 받아들여야 하는 사실관계가 확정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것도 아니며, '권력이 다르면 지식도 다르다'는 명제처럼 권력의 크기가 다르면 판결의 결과가 다를 때도 수없이 많았습니다.



최근에 시장님은 JTBC의 '말하는 대로'에 나와, 불평등과 차별의 극복, 청년의 취업활성화를 말하면서 브랙시트를 예로 들었는데, 막상 영국에서는 브랙시트가 통과된 이후 기성세대의 이익독점에 실망한 청년들의 자살율이 급증한 것과 완전히 배치됩니다. 브랙시트에 찬성하는 트럼프의 당선까지 이어지자 영국의 청춘, 특히 젊은 여성들의 비탄과 절망은 극에 이르러 사회적 문제로 비화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지젝과 스티글리츠, 피케티, 크루그먼, 장하준은 물론 수없이 많은 경제학자와 정치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국에서 교수를 하고 있는 지인들의 증언처럼, 시장님이 '말하는 대로'에서 예로 든 것처럼 브랙시트는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고, 청년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추진된 것이 아닙니다. 브랙시트는 불평등과 차별을 늘리는 것에 반대하는 유로존의 각종 규제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영국의 특권층과 신자유주의자들이 국민을 속이고, 기성새대를 선동해 통과시킨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시장님은 기초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관점에서만 바라본 것을 사실인 것처럼 말했습니다. 영국에서 실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은 제대로 확인해보지 않고 TV에 나와 자신의 관점에서 해석(시장님의 진실)한 대로 말한 것입니다. 기본소득제를 다룬 책의 끝부분에 부록으로 실린 <꼬리를 잡아 몸통을 흔든다>도 성남시보다 더 큰 조직을 경험한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허점들이 곳곳에 보인다고 말하며, 그것을 읽은 저도 그들의 견해에 동의합니다.  





제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민운동의 한계를 느껴 정치인이 된 것이라면서도, 시장님의 언행은 정치인보다는 선동가(히틀러가 가장 대표적)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그것 때문에 낙인찍기에 주저함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정봉주의 전국구'에 나와 가천대 논란을 해명할 때 '경원대와 가천대 간의 명칭 다툼이 있었다'며 자신의 발언에 깊은 역사가 있는 듯이 자신의 잘못을 축소하는 것이 시장님의 변명 방식입니다. 시장님은 자신의 잘못에 대해 깨끗하게 인정한 적이 없습니다. 주절주절 자신을 변호하는 것들이 반드시 따라옵니다. 필자가 시장님의 자기방어기제가 대단히 강하다고 말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자신의 잘못에 관대하거나 변명이 많은 것과 남의 잘못에 가혹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봅니다. 저처럼 이동권이 목숨과도 같은 장애인들을 쫓아내면서, 그 정당성을 설명하는 가운데 '나도 장애인'이라고 말하는 것도 마찬가지이고요. 노무현과 문재인, 유시민과 안희정, 박원순과 정청래와는 달리 시장님에 대해 공부하면 할수록 지지할 이유가 줄어듭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지도자로써 대단히 위험한 존재일 수도 있다는 생각까지 하게 됩니다. 



제가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에 담겨있는 청춘들의 '시민주권 행동주의'에 대해 다루었던 글들을 기준으로 한다면, 유시민의 평가와는 달리 '노무현 반, 트럼프 반'도 과하다는 생각입니다. 시장님, 선동가보다는 정치인이 되십시오. 그리고 시장님을 '페이스메이커'나 '차차기후보'로 이용하려고 했다는 분들에게 감사해야 합니다. 시장님의 주장대로 그런 분들이 있었다면 그들 덕분에 지지율의 일부라도 올랐던 것이고, 시장님은 그것을 취한 것이 되니까요.



직설적으로 말하면, 문재인 지지층의 일부가 시장님을 '페이스메이커'나 '차차기후보'로 키워서 잡아먹기 위해 시장님의 지지율을 끌어올렸다고 해도, 잡어먹으려면 한참 멀었고 잡아먹지도 못한 상황에서 최대의 수혜자는 시장님인데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인지요? 그것을 알면서도 이익은 다 받아먹고 이제는 그들이 필요없을 만큼 지지율이 올랐으니 호랑이 이빨을 드러내 역으로 잡아먹겠다는 것입니까? 놀부의 심보가 따로 없네요. 대단히 천박하고 비열합니다. 



다름을 다름으로 보고 틀림으로 보지 않은 것, 그래서 낙인찍지 않는 것이 민주주의입니다. 최소한 선악의 구별을 절대다수가 인정할 정도로 객관적이고 명확한 것ㅡ예를 들면 박근혜 게이트와 세월호참사ㅡ이 아니라면 함부로 낙인찍거나 자신에 유리하게 해석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시민들을 선동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시장님이 들고나온 '서번트리더십'이 정말이라면, 시장님을 '페이스메이커'나 '차차기후보'로 생각하는 시민들이 많을 경우 그것에 따라야 하는 것 아닙니까? 



최근에 당내 경선에 숙의배심원제를 도입해보자는 말씀에서는 기절초풍하는 줄 알았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의 체육관 선거와는 다르지만 큰 틀에서는 같은 발상입니다. 현대의 민주주의는 시민의 참여가 정당의 정강과 당령, 조직과 인선, 후보 선출, 정책 입안과 집행까지 모든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는데 시장님은 반대로 가자는 것이네요. 대단히 반민주적 발상이며, 보수적 선동가의 진면목을 보는 듯합니다. 재판에서나 가능한 얘기를 정치에 도입하자는 발상에 기가 찰 노릇이네요. 정치를 선동과 선전의 도구로 여기는 구좌파적 접근, 역사가 틀렸다고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참, 시장님께서 제 글에 반론을 해주시면 그에 따라 재반론을 하겠습니다. 한국 보수주의자의 주장은 모든 분야에서 반박할 수 있으니 어떤 것도 괜찮습니다. 가능하다면 시장님이 법적으로 처리한 철거민들과 용산참사의 철거민들이 어떻게 다른지도 설명해주셨으면 하고요. 그 이유는 두 지역의 철거민들이 시장님처럼 법적인 잣대로만 본다면 똑같기 때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