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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노무현의 대연정부터 제대로 이해하자


이번 글도 제 견해는 최소화했습니다. 안희정의 대연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그가 근거로 제시하는 노무현의 대연정을 노통의 입으로 알려드리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노통이 연정에 대한 생각을 처음 밝힌 것은 2005년 6월 24일 당정청 11인회로, "정부와 여당이 비상한 사태를 맞고 있다. 야당과 연정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여소야대 상황에서 법안 통과가 안 된다. 우리 정부는 내각책임제적 요소가 있으니까 국회의 다수파에게 총리 지명권과 조각권을 주면 국정이 안정되지 않겠느냐"는 취지의 발언을 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대다수의 인사들이 반대한 것은 널리 알려진 일이고요. 





노통은 2005년 7월 5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우리 정치, 진지한 토론이 필요하다'는 기고문을 통해 "대통령에게 국회해산권이 없고, 미국처럼 개별 의원을 설득하거나 협상할 여지가 없"고 "대통령에게 법도 고치고 경제도 살리고 부동산도 잡고 교육과 노사문제도 해결하라고 하는데 정상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대연정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이것마저도 한나라당과 언론에 의해 개헌 시도로 의심받고, 열린우리당 내에서도 정략적으로 받아들여지자 노통은 '당원동지에게 드리는 편지'를 통해 정권교체 수준의 대연정을 제안하며, 전제조건과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열린우리당이 주도하고 한나라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이라면 한나라당이 응할 리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대연정이라면 당연히 한나라당이 주도하고 열린우리당이 참여하는 대연정을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다른 야당도 함께 참여하는 대연정이 된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정은 대통령 권력하의 내각이 아니라 내각제 수준의 권력을 가지는 연정이라야 성립이 가능할 것입니다. 대통령의 권력을 열린우리당에 이양하고, 동시에 열린우리당은 다시 이 권력을 한나라당에 이양하는 것입니다. 


권력을 이양하는 대신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은 지역 구도를 제도적으로 해소하기 위하여 선거제도를 고치자는 것입니다. 굳이 중대선구제가 아니라도 좋습니다. 어떤 선거제도이든 지역 구도를 해소할 수만 있다면 합의가 가능할 것입니다. 당장 총선을 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정치적 합의만 이루어지면 한나라당이 주도하는 대연정을 구성하고, 그 연정에 대통령의 권력을 이양하고 그리고 선거법은 여야가 힘을 합하여 만들면 됩니다. 



우리 정치의 많은 문제가 지역주의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지역구도 하에서 정치인이 선거에서 이기는 길은 끊임없이 상대방 지역과 상대 당에 대한 불신과 적대감을 자극하고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는 것입니다. 의정활동도 오로지 지역감정과 지역이기주의를 중심에 놓고 대결하게 됩니다. 지역으로 편을 가르고 대결이 심화될수록 지역민심은 더욱 단결하는 구조이니 정책정당도 대화정치도 설 땅이 없어집니다. 


이 일을 하자면 모두가 기득권을 포기하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은 정권을 내놓고 한나라당은 지역주의라는 기득권을 포기해야 합니다. 어느 하나도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만한 가치가 있고, 하기만 하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는 일입니다.





노통은 민노당과의 소연정으로는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없기 때문에, 권력을 한나라당에 넘겨주는 한이 있더라도 대연정을 통해 지역주의를 극복할 수 있다면 '상생과 포용의 정치가 가능하고, 욕설과 야유, 싸움질로 얼룩진 소모적 정쟁과 대립의 문화도 극복할 수도 있다'고 봤습니다. 이렇게 '분열 구도가 해소되면 서로 신뢰하고 존중하는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만들 수 있고, 이를 통해 양극화 해소와 노사정 대타협 등 민생경제 문제도 제대로 풀어갈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노통은 대연정의 노림수를 다음과 같이 봤습니다. 



노 대통령은 연정이 성립될 가능성은 없지만 만일 성립된다면 한국 정치를 급격히 발전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이유는 사회경제적 문제를 풀기 위해 여야가 하나가 되어 토론을 하다 보면 의원 개인의 이념, 정체성과 가치관이 드러날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민주당의 보수적 의원과 한나라당의 보수적 의원이 하나가 되고, 한나라당의 진보적 의원과 열린우리당의 진보적 의원이 하나가 되는 등, 지역주의를 뛰어넘어 의원의 이념적 재정렬이 일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조기숙 외 《노무현의 민주주의》에서 인용).  



현행 헌법이 프랑스 헌법을 모델로 했기 때문에 독일 모델보다는 프랑스의 동거 정부를 추구한 노통의 대연정은 지역주의의 상당 부분이 세대투표로 대체됐고, 그 덕분에 지난 총선에서 더민주가 전국정당의 면모를 갖추었기 때문에 더 이상 유효하지 않습니다.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안희정의 대연정에 반대했던 것도 같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대연정을 할 경우 이명박근혜 9년의 책임을 물을 수 없고 적폐청산도 불가능하다는 것도 작용했습니다. 





안희정의 대연정이 노무현의 대연정과 다른 것도 이 때문이며, 촛불혁명과 시대정신에도 맞지 않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안희정의 대연정이 더민주의 대선후보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 위한 것이라면, 노무현의 대연정은 대통령으로서 자기희생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도 다릅니다. 노무현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가 더 이상 작동하지 못하도록 제왕적 통치수단인 4대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않았을 만큼 자신의 성공보다는 국민의 성공과 미래세대의 행복에 헌신했습니다. 



나에게 자꾸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조언하지 마십시오. 그건 나의 목표가 아닙니다. 내가 만일 조 수석의 조언대로 해서 성공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따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차피 우리는 다음에 정권 재창출할 수 없을 겁니다. 국민은 민주정부 10년에 대한 피로가 있고 내가 본 선진 민주국가 어디에도 한 정당이 8~10년 이상 집권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쪽은 후보군이 많고 그들이 경선을 통해 체구를 불리면 우리는 매우 힘든 선거를 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정권이 넘어갔다가 다시 올 수 있도록 기본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고, 정권이 다시 왔을 때 필요한 일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보다 국민이 깨어있어야 하고 국민들이 어떤 게 올바른 정치인지 학습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일 내가 대통령으로서 실패한다면 국민은 그 교훈을 토대로 새로운 학습을 할 것입니다. 나는 실패하더라도 국민이 성공하도록 하는 게 나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조기숙 외 《노무현의 민주주의》에서 인용).



필자가  '나는 노무현을 통해 미래의 지도자를 봤다'라는 글을 썼던 것도 노통의 대연정 제안에 담긴 자기희생과 국민 성공에의 강력한 열망입니다. 노무현은 분명한 신념과 일관된 목표를 가진 정치인이자 대통령이었고, 치열하게 고민하고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국민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승부수를 던질 줄 알았던 위대한 지도자였습니다. 대연정 제안도 그런 것들 중에 하나였고 그가 정치를 하던 시절의 시대정신이었고, 그가 떠난 이후의 정치문화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선호도가 50%에 이르고,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오랫동안 1위를 유지하고, 꾸준히 상승하는 것에서 보듯 국민들은 이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화답하고 있습니다. 이명박근혜 10년 동안 소수 지배층의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은 끝없이 퇴행했고, 반칙과 특권을 남발했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은 꾸준히 늘었고, 노무현의 동지인 문재인은 더민주를 혁신하는데 성공했고, 촛불은 대한민국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대연정이라니요? 아래로부터 뜻과 의지를 모아 위로 치솟아 오르는 노무현의 신념과 정신, 가치가 민주주의와 헌법정신을 만개시키려 힘을 모으는 중에 그것을 무력화시키는 대연정이라니요? 이제 변화는 시작됐고,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변화가 다 끝난 양 대연정이라니요? 변화하는 중에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아닙니다. 변화는 끝나야 변한 것입니다. 대권을 차지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대연정이나 이익의 카르텔은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