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은 경제학 박사라고 하지만 대선후보 TV토론에서 나온 말들과 평상시에 했던 말들 사이에는 논리적 모순이 자리하고 있음에도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에서 사이비가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유승민은 '중부담 중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증세ㅡ이것은 대단히 전향적이어서 칭찬받아 마땅하다ㅡ를 하겠다지만, 그렇게 좋아질 복지에도 양질의 일자리 제공이라는 '노동복지'가 있음을 부정하는 발언을 계속하는 것도 사이비라는 느낌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유승민은 또한 성장지상주의의 절대교리였던 낙수효과가 작동한 적이 없어 지금과 같은 양극화가 초래됐고, 경제학이 절대 다루지 못해 인구와 함께 외부효과로 돌려버린 과학기술의 발전(슘페터가 말한 창조적 파괴의 원천)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지속적으로 줄어들었고, 자본주의 황금시대를 만들었던 1945~1975년까지의 고도성장이 고율의 누진세(소득에 과세한다는 원칙과 함께)로 복지를 확대하고, 정부가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창출하는 분수효과의 선순환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부정하는 발언을 지속적으로 뱉어내고 있어 정말 경제학 박사인지 의문이 들 정도입니다.
물론 현실과의 괴리로 치면 가히 천하무적인 미국의 경제학(민스키, 스티글리치, 라이시 같은 학자는 극히 드문 예외)을 공부하고 왔으니 그럴수도 있겠지만, 정부가 복지를 늘리는 것과 함께 재정을 집중투자해서라도 양질의 일자리를 국내에 만드는 것이 민간 주도의 시장실패(보이지 않는 손이 보이지 않아서 언제나 실패했다)를 만회하는 유일한 방법이란 것이 상식의 영역에 들어선 경제이론임에도 이를 부정합니다. 케인즈주의(수정케인즈주의 포함)가 실패한 핵심이유가 좌우의 경제학자들이 악착같이 외면하는 신조합주의(정부-재계-노조)의 담합으로 세금을 낮췄고 재분배를 줄였기 때문입니다.
선진복지국가를 창출해낸 케인즈주의(마샬이 주장한 사회적 권리의 구현)는 완벽한 경제학은 아니지만, 오류와 희망에서 출발한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도로 대표되는 고전파경제학(마르크스도 고전파경제학에서 출발했다)의 후계자들이 세상을 불평등과 차별의 신고전파경제학의 지옥으로 만드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경제학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증세가 뒤따라야 하지만, 정부가 개입하는 영역과 방식, 정도 등만 적절하게 조정하면 분수효과를 통한 공존의 성숙경제(일본은 이것을 거부했기 때문에 '잃어버린 20년'이 지속되고 있다)를 이룰 수 있습니다.
작금의 경제위기는 신고전파경제학자(금융 중심의 자유방임 시장경제, 하이에크와 프리드먼)와 신보수주의자(작고 강한 정부를 독점한 극단적 엘리트주의, 대처와 레이건)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신자유주의 정부가 모든 종류의 세금을 낮추고, 재정안정을 핑계로 복지를 줄이고, 재벌과 대기업과 슈퍼리치를 위해 각종 면세혜택을 남발하고, 대량해고와 저임금 비정규직을 양산하기 위해 노조를 파괴하고, 환경과 생태 파괴의 면죄부를 받기 위해 규제를 풀고, 민주주의의 근간인 인권과 시민권을 축소하고, 마르지 않는 샘물인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조세도피처로의 탈세와 자본이동을 묵과하는 등의 미친 짓거리를 40년 동안 지속해왔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바보가 통치해도 망할 수 없는 미국이 만성적인 경제침체와 극단의 불평등으로 허덕이는 2류국가로 전락한 것도 이 때문이며,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이 헬조선으로 추락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집권 이후 증세를 위한 사회적 합의(재벌과 수구언론이 가장 큰 걸림돌이다!)를 이끌어내야 할 문재인 후보가 정부 주도의 일자리 창출을 통해 가계소득을 높이고, 이를 통해 내수경제를 살리는 선순환의 분수효과를 이루겠다는 것은 당연하다 못해 너무 늦은 것입니다.
우리는 인공지능, 사물인터넷, 3D프린터, 증강현실, 로봇 같은 4차 산업혁명을 입에 올리면서도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민간에서 창출할 수 있는 일자리의 종말을 뜻합니다. 지금까지의 3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잘하지 못하는 일들을 대신해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었다면(일자리 감소가 전면적이지 않았다),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이 잘하는 일마저 빼앗는 것이라 생산성은 무한대로 높아질지 모르겠지만, 일자리는 전멸에 이르는 것을 뜻합니다.
4차 산업혁명의 결과물들이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는 수준(필자의 예상으로는 2050~60년 정도)에 이르기 전까지는 없어지는 일자리에 비해 훨씬 적게 생기는 일자리로 이럭저럭 버티겠지만, 그 기간 동안 정부가 공공부문에서 일자리를 창출하지 않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습니다. 현재도 재벌이나 대기업에서 고연봉의 임원들을 자르면(무서운 속도로, 그것도 대규모로 잘려나가고 있다) 그 돈으로 비정규직을 뽑지, 정규직을 뽑지 않고 있습니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등이 사상 초유의 대박을 터뜨려도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재벌이나 대기업도 마찬가지이며, 견실한 중견기업이라고 해도 다를 것이 없습니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개입하지 않으면, 그것도 대규모로 개입하지 않으면 노동의 형태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통일될 수밖에 없습니다. 인공지능이 더욱 발전하면 의사결정을 넘어 전사적관리의 자동화까지 가능하기에 노련한 고위임직원과 숙련된 노동자가 필요없어지니, 저임금 비정규직으로도 자본축적을 위한 생산성(마르크스는 이것이 언제 끝나는지 특정하지 못했다)을 올릴 수 있습니다.
일본의 특정 항구에 가면 화물을 전자동으로 처리하고 시스템이 구축돼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을 전체로 확대하면 선적과 하역 관련 일자리가 너무나 많이 사라지기 때문에 단 한 곳만 설치·운영하고 있지만, 다른 국가에서 이것이 보편화되면 일본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인간의 일자리를 종말의 단계에 몰아넣고 있는 것은 상당 부분 개발이 끝난 상태이거나 진행 중입니다. 오직 민주주의의 국가에서만 가능한 정치·사회적 힘만으로 이의 적용을 억제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통계학의 발전으로 경제학이 설 자리란 갈수록 줄어들 것입니다. 금융거래의 80% 이상도 인공지능이 하고 있기 때문에, 경제학이 19세기의 정치경제학으로 돌아가지 않는 이상 경제학자가 할 일이란 없습니다. 경제 관련 공부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한 필자가 경제와 관련된 글을 거의 쓰지 않은 이유도 경제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이기 때문(마르크스의 성찰과 정반대)입니다. 정부가 규제만 적정히 활용해도 경제는 얼마든지 조정할 수 있고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경제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가장 큰 이유는 죽일 놈들의 경제학자들과 언론을 동원해 국민과 시민을 속여왔으며, 민주주의를 이용해 반칙과 특권의 상층부를 독점하는데 성공한 두 개의 특권집단, 재벌(대기업 집단)과 고위관료의 정경유착 때문입니다. 스티글리치가 《불평등의 대가》, 피케티가 《21세기 자본》, 라이시가 《자본주의를 구하라》 등을 쓴 것도 이 때문이며, 정치와 역사와 멀어진 숫자 위주의 경제학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경제 관한 한 문재인의 공약과 정책이 제일 뛰어나고 현실적이며 지속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문재인 정부가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만 이끌어낼 수 있다면 만족스럽지 못한 부분도 얼마든지 보완할 수 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세부적인 내용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것을 인간 중심으로 두되, 정치와 법률, 규제만 제대로 활용하면 경제위기는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부자가 될 수 없지만, 중산층 주변에 거의 모든 국민들이 모여있을 수 있습니다.
모든 경제위기는 정부에 의해 극복되었듯이, 민주적인 정치가, 사람중심 경제에 대한 지도자의 의지가, 공약과 정책의 수립부터 이행까지 시민의 참여와 감시, 견제가 우리의 운명과 삶을 결정합니다. 유승민은 틀렸고 문재인이 맞습니다(안철수는 어설프고 홍준표는 무지해서 말할 것도 없다!). 진리는 복잡하지 않으며 단순합니다. 투명한 행정이 민주주의의 전제조건이라는 것만 기억하면 됩니다. 모든 반칙과 특권은 불투명한 행정에서 발생합니다. 민간 또한 마찬가지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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