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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과 <군도>, 스크린 독과점의 수혜자



최근 두 편의 영화가 여름을 더욱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모든 기록이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한국의 블랙버스터 < 명량 >을 필두로, 손익분기점을 일찌감치 넘은 < 군도: 민란의 시대 >가 그 주인공들입니다. 이 두 편의 영화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일일 상영 스크린 수가 1,000개를 넘어선다는 점에서도 압도적인 흥행을 거두고 있습니다. 지난 6월 개봉했던 <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의 흥행과 비교해도 이 두 편의 한국 영화의 선전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최고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는 < 명량 >은 개봉일 당시의 스크린 수가 1,159개였지만 지난 일요일부터는 무려 1,586개의 스크린에서 상영되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보도에 따르면 최대 상영 횟수가 무려 7,960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는 올해에 개봉된 한국영화로는 최대의 스크린 점유인데, 멀티플랙스들이 <명량>의 스크린 수와 상영 횟수를 올리기 위해 혈안이 된 상태입니다. 





< 군도: 민란의 시대 > (이하 '군도')도 비슷합니다. 개봉 첫날의 스크린 수가 1,250개였지만, 26일에는 1,394개까지 늘어났고, 상영 회수는 <명량>에 버금가는 7,119회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대한 영웅인, 그래서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대첩을 상업적인 영상과 뛰어난 시나리오로 멋지게 풀어낸 < 명량 >에 밀리기 전까지는, <군도>의 1주일간 독점했던 스크린 수는 1,000개 이상을 꾸준히 유지했습니다.



헌데 영화진흥위원회 집계에 따르면, 8월 현재 국내 스크린 수는 모두 2584개입니다. 결국 <명량>과 <군도>가 전체 스크린의 60% 이상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명량>과 <군도>가 잘 만들어진 영화여서 이런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두 영화의 스크린 독과점이 최고의 흥행신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것인지 헷갈릴 판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가 '어떤 인사가 유명한 이유는 그가 유명한 인사였기 때문에 유명한 것'이라고 말한 것이 떠오릅니다.





다음이미지에서 인용



이 두 영화의 스크린과 상영 횟수의 독과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얼마나 기형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 말해줍니다. 실제로 한국 영화의 점유율을 계속해서 올려주고 있는 두 영화와 전체 유료관객수가 10~20만을 넘은 두 편의 영화를 빼면 나머지 영화들의 스크린 확보수와 상영 횟수는 7%에 대에 불과합니다. 3일을 기준으로 할 때, 전체 상영 영화가 62편이니까 58개의 영화는 철저한 찬밥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습니다. 



이러니 다른 영화들이 작품성과 흥행성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고 해도 30~50만 명에 이르는 관객수도 기록하지 못한 채 사장되고 있습니다. 같은 블록버스터인 <해무>와 <해적>마저도 희생양이 될 듯합니다. 물론 이런 영화들은 곧바로 케이블채널과 영화전문채널로 넘어가거나 동시 상영을 하는 것으로 겨우겨우 투자금을 환수하는 실정이지만, 이런 스크린 수과 상영 횟수의 독과점은 한국영화계를 구조적으로 질식시키는 요인을 작용하고, 아무리 뛰어난 작품성을 지녔다 해도 상업적인 요소가 부족한 영화들은 설 자리가 없게 됩니다.      



                                    



이런 기형적인 독과점 현상은 CJ, 롯데, CGV, 메가박스 등처럼 대기업들이 영화의 제작과 배급, 유통까지 장악하면서 벌어진 현상입니다. 이런 독과점 현상 때문에 제작비 10억 미만의 영화들(총 183편 중 133편으로 73%에 이른다)의 매출액은 2.1%, 전체 관개 수는 2.2%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삼성전자나 LG전자 등의 독과점 문제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막상 그 시대를 대변하는 문화 영역 독과점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합니다. 미국조차 수천억이 투자된 블록버스터라 해도 전체 스크린의 20% 정도를 차지할 뿐입니다. 




오로지 수익성만 따지는 이런 약육강식의 왜곡된 구조는 한국 영화산업의 미래를 어둡게 만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의 다양한 기호와 욕구마저 획일화시킵니다. 현대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영화산업이 탐욕스런 수익의 논리만 추종하면, 문화의 다양성은 고사하고, 영화산업의 기반이 되는 문학의 세계마저 천민자본주의에 종속되게 됩니다. 대기업이 제작과 배급, 유통까지 수직계열화를 하면 우리나라의 문화산업은 수익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전체주의적 경향을 띠게 됩니다.






신자유주의적 논리의 무서움은 이렇게 정신과 문화의 영역마저 돈의 논리에 지배받도록 만듭니다. 연일 한국영화계의 신기록을 작성하고 있는 <명량>의 주인공, 이순신 장군의 위대함은 12척의 배로 수백척에 이르는 일본의 함대를 무찌른데 있음에도, <명량>이란 영화로 되살아난 2014년의 이순신 장군은 대기업의 독과점 덕분에 일본의 해군이 아닌 한국의 다양한 영화들을 지키려는 12척의 배를 수장시키고 있습니다. 



경제의 생산방식과 사회적 교환방식에 집중하느라 마르크스가 등한시했던 것 중에 하나인, 문화의 다양성이 건강한 사회를 이룰 수 있다는, 그래서 영상산업의 독과점을 염려했던 벤야민, 아도르노, 부르디외 등의 《미학이론》들도 12척의 배에 실린 소규모 한국영화들과 함께 깊은 바다 속으로 침몰하고 있습니다, 영화의 투자자이자 배급자이며, 유통자인 거대 기업에 찍히면 제작자와 감독은 물론, 평론가와 소비자의 다양한 선택까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것을 세삼 부각시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