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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법무부의 인식이 이 정도니 이재명이 설쳐대지

 

여성을 섹스에 굶주린 동물로 폄하한 법무부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낙태죄 폐지 반론으로 헌재에 제출한 법무부의 변론서는 모든 여성을 폄하하고 인격을 살인하는 범죄이며,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선언하고 실천하고 있는 문프를 욕보이는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의 법무부마저 여성을 짐승의 수준에서 바라보니 이재명 같은 막장 패륜아가 민주당의 경기지사후보로 확정될 수 있으며 당선가능성이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평생을 장애인으로 살아온 저는 장애인들이 겪는 일상의 차별과 혐오를 잘 알듯이, 남성의 눈에는 보이지 않고 좀처럼 드러나지도 않는 여성 차별과 혐오의 실상이 얼마나 심각하고 뿌리깊은지 몇 달이라도 말할 수 있습니다. 여성은 직립보행을 선택한 인류 진화의 첫 번째 순간부터 온갖 불이익과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덜 떨어지고 저열하기까지 한 남성들은 군대 운운하며 여성을 비난하지만 수십 년 동안 지속되는 월경의 고통과 생리대 착용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여성은 사랑을 나누는 중에도 임신을 걱정해야 하며, 날짜를 조정하고도 모자라 상시적으로 피임을 해야 합니다. 남성은 사정하면 그만이지만 여성은 그 이후에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에 대비해야 합니다. 남성의 쾌락을 극대화하기 위해 피임의 책임을 모조리 짊어져야 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9개월에 걸친 임신 기간과 출산의 고통은 말할 것도 없고요.



인간을 짐승과 구별하는 언어에서도 여성 차별이 얼마나 뿌리 깊은지는 몇 가지 예만 들어도 알 수 있습니다. ‘잘 나가는 남자를 위한 별도의 호칭은 없으나 잘나가는 여자를 위해서는 알파걸, 골드미스 등의 이름이 있고, 찌질하게 사는 여성에게는 이름이 없으나 그런 남자를 위해서는 찌질남, 잉여 등의 이름이없습니다. 이런 유표성 자체가 이미 차별을 드러내고 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대외비로 분류됩니다(.『페미니즘의 개념들』에서 인용).

 

 

침치녀, 된장녀 등으로 세분되는 여성 비하의 호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비성을 억제하고 주체성을 성찰하려는 순간, 곧바로 간장녀, 개념녀로 포획되면서 그 바깥의 세상으로도 나갈 수 없습니다. 여성은 욕망할 수도 성찰할 수도 없습니다. 이밖에도 경력단절녀, 미혼모, 창녀 등처럼 부정적 의미의 언어와 호명 체계 중에 남성에게는 적용되지 않으면서도 여성에게는 적용되는 것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일부 여성의 미러링에는 뿌리 깊은 차별과 혐오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도 당했다라는 뜻의 미투 운동의 주체도 거의 대부분 여성인 것이 차별의 현실을 정확하게 말해줍니다. 여성의 희생을 철저하게 이용하는 신자유주의 40년이 이런 차별을 더욱 강고하게 만들었지만, 이 과정에서 피해를 입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책임을 돌리는 일은 본말이 전도된 멍청한 짓이며, 여성을 공격함으로써 자신의 찌질함을 숨기기 위한 사악한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개인으로써의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존재가 되기 위한 인권운동이며, 모든 차별을 거부하는 공생의 요구입니다. 모든 남성을 여성의 적으로 돌리기 위함이 아니라 모든 권리와 자유를 동등하게 향유할 수 있는 방안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말과 언어를 이용하건, 물리적 힘의 우위를 이용하건, 위계서열과 권력적 지위를 이용하건, 이재명이 그의 형수에게 했던 것처럼, 여성에 대한 폭력을 없애자는 것입니다.



여성인권이 상당히 개선됐고, 페미니즘이 요구하는 것들의 대부분이 제도화됐지만 낙태죄 폐지에 대한 법무부의 변론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고, 좀처럼 드러나지 않는 부분에서 여성 차별과 혐오는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여성이 성폭력을 당하면 그것을 바로잡는 맨 처음 단계인 경찰의 수사에서부터 여성은 좌절하기 일쑤인 현실을 남성들이 직시해야 합니다. 문프가 차별적 사회를 개혁하기 위해 이런 것들을 바로잡으라 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저는 아이린을 지지하며, 수지와 설현을 응원합니다. 법무부 장관의 사과와 교체를 요구합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을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배제하는 것에 대한 저항이지 남성을 적으로 만들기 위한 적대적 투쟁이 아닙니다. 최근의 페미니즘이 인권운동과 동일한 형태를 띠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수많은 여성분들이 이재명 거부운동에 매진하는 이유도 동일하다고 봅니다. 인간은 언어로 생각하고 사고한다는 점에서, 형수에 쌍욕을 퍼부는 이재명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정도로 여성을 배려하지 않는 자가 어찌 시민을 배려하며, 인권변호사 길을 걸었다고 하겠습니까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