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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커쇼의 신화 창조, 투구폼에서 찾아보다


클레이튼 커쇼는 누구나 한 번 보면 알 수 있는 탁월한 신체 조건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빼면, 참으로 설명하기 힘든 투구폼을 가진 선수다. 미국프로야구(MLB) 역사에 사이영처럼 걸출한 투수들이 많았지만, 커쇼 같은 투구폼을 가진 선수는 찾아보기 힘들다. 필자가 MLB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로저 클레맨스와 그렉 매덕스, 랜디 존슨 등이 최고의 투수자리를 놓고 경합할 때였다. 




                                                             물 흐르는 듯한 매덕스의 투구폼



물론 야구 관련 책들을 통해 타이콥, 야구의 왕 베이브 루스와 철인 루 게릭, 위대한 미키 멘틀과 철학자 같은 요기 베라, 61홈런의 로저 매리스와 조 디마지오(4번타자로 56게임 연속안타라는 불멸의 기록을 세웠으나 마를린 먼로의 남편으로도 유명하다), 최고의 투수였던 사이영, 마지막 4할타자 테드 윌리엄스, 마법의 왼손투수였던 샌디 쿠펙스, 최고의 흑인선수 윌리 메이스와 조지 포스터와 행크 아론, 광속도의 전형을 보여준 롤란 라이언 등등.. 당시에도 전설이 된 선수들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그들의 중계방송을 본 적도 없고, 볼 방법도 없고, 인터넷도 없던 시기여서 기록영화나 머리 속에 암기하는 정도였다.  



    

                                                    강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클레맨스의 투구폼



아무튼 30년 가까이 MLB를 지켜봤지만 커쇼 같은 선수는 보지 못했다. 첫 번째는 그의 투구폼이다. 한 게임에 21개의 탈삼진을 기록할 만큼 불같은 광속구(평균구속이 95마일에 이르렀다)를 던졌던 '로켓맨' 클레맨스, 컨트롤의 마법사(평균구속이 90~92마일에 불과했다)로 높은 팀공헌도로 감독들이 가장 선호했던 매덕스, 박찬호가 미국 진출 초반에 따라했던 롤란 라이언, 왼손 파이어볼러 랜디 존슨 등도 커쇼의 투구폼과는 거리가 멀었다.



                                                              스트레칭의 느낌을 주는 출발    


 

커쇼의 투구폼은 양손을 머리 위로 올리는 전반부와 서있는 듯한 중간부와 정식 투구동작에 들어가는 후반부로 나뉜다. 전반부는 애리조나 다이몬드백스의 전성기 때 야구배트를 하늘 높이 치켜올렸던 카운셀의 타격폼과 회오리바람을 연상시키는 노모 히데오의 투구폼을 떠올릴 만큼 독특하다. 카운셀이 힘을 집중시키기 위해, 노모가 공을 최대한 숨겨서 타자들을 헷갈리게 만들었던 것과는 달리 커쇼는 본격적인 투구를 하기 전에 일종의 스트레칭을 하는 것처럼 양손을 머리 위로 들어올린다. 이것이 노모처럼 20대 초반부터 매년 200이닝 이상을 투구하는 커쇼의 부상을 막아주는 것 같다.  

                                             


                                                

                                                            공을 숨긴 채 힘을 모으는 단계 



투구의 중반부는 컨트롤에 집중하느라 연속적인 투구동작 중에 잠시 멈추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는 이중투구 논라이 있었던 오승환과 최근에 스피드보다는 컨트롤에 집중하는 일본프로야구의 투수들을 떠올린다. 이때의 커쇼는 거의 서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타자의 배팅타이밍과 엇박자를 만들 수 있다. 90년대 샌프란시스코의 뒷문을 단속했던 롭 넨은 왼발이 땅에 끌리기도 했는데 이것과는 조금 다르다. 베리 지토를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낙폭을 보이는 커브에 비해 평균구속이 94마일 정도에 머무르는 직구가 낮게 제구되는 것이 이 때문으로 보인다. 큰 키에서 나오는 타점 높은 직구가 낮게 제구되면 타자의 입장에선 공의 궤도에 맞춰 배팅포인트를 잡기가 쉽지 않다. 



                         

                                             중간에 멈춘 듯한 자세-자신의 투구점을 보는 듯하다                              



릴리즈 포인트까지 타자에게 공을 숨기는 커쇼가 탈삼진이 많은 이유는 그립을 통해 인위적인 낙폭을 만드는 커브의 영향이 크지만 직구의 낙폭도 크다는 것이 작용한다. 땅볼 유도가 많은 커터도 작년에 은퇴한 전설적인 마무리 리베라와 LA다저스의 에이스였던 브라운에 비하면 약간 떨어지지만, 그들에 뒤지지 않는 위력을 보이는 것도 배팅이 이루어지는 스트라이크 존에서의 낙폭이 그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장타를 맞지 않는 비결이 여기에 있으며, 이는 1점대 방어율이라는 꿈의 기록을 2년 연속으로 달성할 수 있게 만들어준다.   




                                                           끝까지 상대에게 공을 숨기는 자세



커쇼가 시즌 초반에 당한 부상의 공백기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각종 기록들을 양산하고 있는 것도 그의 투구폼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방어율이 1.92에 불과하고, 이닝 당 출루률 허용 수치가 0.84를 기록하고, 103과 1/3 이닝을 던지는 중에 134개의 탈삼진을 기록할 수 있는 것도 배팅포인트를 찾기 힘든 그의 투구폼에서 나오는 것 같다, 노모 히데오와 구대성이 그랬던 것처럼. 류현진은 공을 오래 숨기는 것과 빠른 투구동작을 이용한다. 




                                  긴 다리를 이용한 넓은 보폭은 공을 놓은 지점이 타자에게 가까워진다 



최근 3년 동안 커쇼의 활약은 전설적인 투수인 샌디 쿠펙스에 접근하고 있다. 야구 용구와 선수들의 기술 발전,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훈련과 철저히 분업화된 체계가 지금보다 한참 떨어졌던 시절의 기록들과 비교할 때, 샌디 쿠펙스의 각종 기록들에 근접하거나 넘어선 커쇼의 활약상은 한마디로 어메지잉 그 자체다. 다저스 선수들이 정규시즌 MVP의 0순위라고 주장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분업화가 이루어진 현대 야구에서 평균 7~8이닝을 소화해주는 선발투수는 값을 따지기 힘든 소중한 존재다. 게가가 퀄리티스타트 이상의 투구라면 두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높은 타점에서 공을 던진다 



다만 커쇼가 이런 기록들을 향후 7~8년 동안 이어갈 수 있다면, 전설의 사이영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최고의 투수반열에 오를 수 있다. 그의 성실함과 타고난 신체조건을 감안하고, 약물에 대한 감시가 한층 강화된 상황을 고려할 때 커쇼의 활약상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 같다. 커쇼의 투구폼을 제대로 간파한 LA다저스 스카우터(지금은 다른 팀을 맡고 있다)의 혜안에 경의를 표하며,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왼손 에이스 류현진의 선전을 기원한다. 야구에 관한 지능을 측정할 수 있다면 류현진이 커쇼보다 우위일 터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