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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있는 공간

윤석렬은 어떻게 문통과 국민까지 속일 수 있었을까?

 

 

검찰총장에 임명된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윤석렬을 보고 있으면, '모든 사람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고, 일부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 없다'는 링컨의 말이 뼛속까지 파고든다. 조국 대전과 그의 장모 및 부인을 둘러싼 범죄와 각종 의혹, 조국 가족에게 가한 압도적인 폭력에 비해 자신의 가족과 관련된 것들은 공소시효가 다 되도록 뭉게버린 것에서 윤석렬의 실체가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

 

 

철저하게 편파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윤석렬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그가 검사 시절에 어떤 사건들을 다루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처리했는지 하나 둘씩 폭로될 때마다, 링컨의 말은 뼛속을 넘어 천조 개에 이르는 모든 세포들에 날카로운 상처를 남기며 고통스러운 비명으로 되살아난다. 검찰총장에 이르고, 그 이후에 일어난 일들에도 불구하고 총장자리를 아착같이 유지하고 있는 윤석렬을 볼 때마다 사상 최고의 연기파 배우를 떠올리게 된다. 

 

 

존 롤스가 '공정으로서의 정의'를 치밀하고 깊이 있게 다룬 《정의론》을 세상에 내놓기 전까지 세계 최고의 철학자로 인정받은 칸트도 비슷한 뉘앙스의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의 논문을 가로챈 친구의 배신에 충격을 받은 칸트는 '아무리 강하더라도 외부의 적은 대할 수 있지만, 아무리 약하더라도 내부의 적은 대비할 수 없다'고 절규했었다. 추호의 빈틈도 없이 살았던 천하의 칸트가!! 그 친구가 헤겔이라는 믿거나 말거나 통신의 보도도 있었다.

 

 

무엇이 진실이던 미발표 논문을 보여줄 정도로 신뢰했던 친구에게 완전히 속은 칸트의 배신감은 윤석렬을 중용한 문재인 대통령의 비통함과 동일하다 할 수 있으리라. 문통과 조국 전 민정수석을 포함한 청와대 참모진은 물론 유시민과 절대 다수의 국민들이 윤석렬에게 속은 것은 더럽고 추잡한 과거의 경력을 한방에 세탁할 수 있었던 '국정원 댓글사건 외압 폭로'가 너무나 강렬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얘기했듯이 윤석렬이 배우였다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과 칸의 황금종료상을 동시에 석권했을 것이다. 모두를 상당 기간 속일 수 있었던 그의 탁월한 연기력은 스펜서 트레이시, 로버트 드 니로, 히스 레저 등이 울고갈 정도다. 모두가 이렇게 속았던 데는 '국정원 댓글사건'을 무력화시키려던 외부 세력에 대한 윤석렬의 외압 폭로이었다. 그때의 모습이 너무나 강력해서 '모든 사람을 잠시 동안 속일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속일 수 있었다.

 

 

돌쇠처럼 생긴 것도 한몫했다. 과거의 모든 돌쇠분들, 밤일이 그렇게도 부실했던, 아니면 첩에게 정력을 쏟아부었던 서방 때문에 모든 밤이 지옥같았던 마님들에게 그렇게도 인기가 좋았던 수많은 돌쇠들에게는 죄송. 수많은 토끼들의 공공의 적이었던 이대근 배우에게도 죄송!     

 

 

 

 

중차대한 사안일 경우, 아주 작은 말이라도 놓치지 않은 필자는 윤석렬의 실체를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었던 바로 그 외압 폭로에서 엿볼 수 있었다. 자랑이냐고? 삶이 피곤할 따름이다. 당시의 윤석렬으로부터 토끼류에 속하는 필자가 감지한 두 개의 장면이 그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하나는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으로부터의 외압을 막아주지 못했던 당시의 상관에게 '이 양반을 모시고는 수사를 할 수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지극히 나르시시트 같은 발언이었다. 돌쇠의 전형 같은 윤석렬에게는 '양반'처럼 살아가는 상관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하긴 부인이 드럽게 예쁘더군.   

 

 

쉽게 말하면, 자신의 상관을 저격한 윤석렬의 발언은 어떤 사건을 맡았던 자신의 판단이 언제나 옳다는 자기중심적 사고ㅡ특수부 출신 검사의 공통점ㅡ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공식적인 라인을 이용하지 않고 야밤에 찾아가 이 양반, 저 양반 했던 것을 볼 때 현대판 돌쇠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기도 하고. 신과 동급의 수준으로 자리매김시킨 자신의 판단에 따라 유무죄는 물론 정치적 판결까지 내릴 수 있다는 오만방자함의 극치가 당시의 발언이었다. 유시민이 윤석렬에게 출구전략으로 제시한 검사 시절로 돌아가 사안의 본질을 보라고 했던 말이 완전히 틀렸던 것도 윤석렬의 나르시시즘적 특성을 놓쳤기 때문이다. 유시민도 돌쇠여서 그랬던 것일까? 남자에 참 좋다는 무엇도 있던데....

 

 

문통이 윤석렬과의 청와대 만찬에서 '(국정원 댓글사건 외압 폭로 때처럼) 살아있는 권력에게 더욱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라'고 부탁했던 것도 비슷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윤석렬을 정의롭고 강직한 검사로 탈바꿈시켜준 외압 폭로의 인상이 문통(과 조국 전 민정수석 등의 청와대 참모진)에게도 강렬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에게 비수를 꼽은 그의 폭로는 정의와 진실을 찾기 위한 강직한 검사였기 때문이 아니라, 검찰총장으로 가는 지름길을 제공할 것으로 보였던 자신의 수사를 방해하는 자들을 무력화시키 위한 저격이었을 뿐인데, 아뿔싸 문통도 이를 깜빡했던 모양이다. 부처의 눈에 부처만 보인다는 것도 이런 때는 나쁘게 작용한다. 내 눈에는 윤석렬이 천하의 사기꾼처럼 보였는데, 허면 나도....흠, 흠, 구렁이 담넘듯 넘어가자.

 

 

이명박 정부 때 승승장구했더 개인적 경험에 기반해 이명박 정부 전체를 평가하며, '이명박 정부 때가 쿨했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에서 그의 판단기준이 얼마나 개인적인 경험에 의해 내려지는지 알 수 있다. 교정불능의 그의 나르시시즘이 얼마나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는지 말해주는 명백한 증거다. 조국과 정경심 재판에서는 눈을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그 증거 말이다! 광화문에 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을 모이게 만들었던 바로 그 증거 말이다, 제기랄!!

 

 

지독할 정도의 검찰지상주의자이거나 외눈박이 원리주의자에 해당하는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는 기준마저 자신의 경험으로 한정하기 때문에 대한민국 검찰사에서 최악 중의 최악이었던 이명박 때가 쿨하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가재는 게 편이고, 마님은 돌쇠 편이고, 주호영은 차명진 편이고, 고아라는 내 편..... 아, 아, 그게 아니고 한 번만이라도 꿈속에서 나타났으면 하는 바람이고 벼룩에도 낮짝이 있기 마련이라면 고아라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하지만..... 아무튼 이것이야말로 사상 최악의 유유상종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이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단테의 말을 연상시키는 그의 친이명박 헛소리는, 아니 진심어린 발언은 대한민국 검찰의 최대 문제인 조직이기주의의 전형을 보여준 두 번째 발언으로 이어진다. 몇 분의 시차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쳤던 문제의 발언은 '조직을 너무너무 사랑하지만,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는다'로 압축된다. '조직을 사랑하느냐'는 어느 모지리 의원의 질문에 '너무나 사랑한다'는 답변과 또 다른 더 모지리 의원이 '사람에게 충성하느냐'는 누드김밥 뒤집어지는 질문에 '사람에 충성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다'라는 거의 누드 상태의 마님을 보고야 만 돌쇠, 아니 윤석렬의 뻔뻔한 답변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 때문에 문통과 청와대 참모진, 절대다수의 국민들이 그에게 속아넘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날밤 마님은 몸살을 앓을 지경으로 자지러졌다고 하지만...

 

 

 

 

문통과는 달리 의심이 많은 필자는 이 두 개의 발언을 하나로 받아들여 판단을 했기 때문에 윤석렬이라는 검사에게 속지 않을 수 있었다. 그를 중용한 문통의 인사에 반대를 표할 수 없었지만, 주변의 사람들에게 '윤석렬이 문통과 국민의 등에 비수를 꽂을 수 있다'고 말하곤 했었다. 토끼는 돌쇠를 알아보는 법이다. '한겨레 윤석렬 보도, 문통의 입장에서 보면'이라는 글도 이런 맥락에서 썼다. (언제 썼지? 기억에 없는 것으로 볼 때 싼 것은 아니겠지?)

 

 

조국 대전의 일방적인 마녀사냥을 일거에 뒤집은 유시민의 빛나는 노력과 김경록 삐삐의, 아, 아니 PB의 용기, 지금까지도 사과하지 않고 조국과 정경심 재판에서 나온 자신들과 윤석렬에게 유리한 보도만 주구장창 내보내고 있는 KBS의 쓰레기짓거리 덕분에 윤석렬 검찰의 폭주를 조금이라도 제어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그 글을 쓸 수 있었다....있었단다.

  

 

필자의 분석이 맞다면, 윤석렬이 외압 폭로 후 지방과 한직으로 떠돌면서도 검사직을 유지했던 것도, 변호사 개업을 하는 날의 검찰 호출에 총알처럼 달려간 것도 검찰총장으로 가는 길이 어떻게든 살아남아 검사직을 유지하는 것에 달려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상상은 자유다! 언론의 자유는 개나 줘버리고 나에게는 상상의 자유를 달라! 문통은 이런 윤석렬의 행보를 완신상담과 고진감래의 예로 보았던 것 같고, 마초적 인간을 대단히 경계하는 필자는 그의 외압 폭로에서 정치검사의 전형을 보았던 것 같다. 거듭 말하지만 부처 눈에는 부처만, 부처처럼 보이는 놈만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이는 법이다. 부연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혹시가 사람잡는 법이라 부처는 달님이고 돼지는 늙어버린 도령 도끼인 나를 말한다. 

 

 

'강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자'라는 《열린사회와 그 적들》의 칼 포퍼식 진화론 해석을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윤석렬을 모든 사람을 오랫동안 속일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이명박근혜와 국정원, 정치검찰에 대한 뿌리깊은 반감과 분노가 문통과 유시민, 조국은 물론 절대다수 국민의 시야를 흐리게 만들었고ㅡ완벽한 사람은 없다ㅡ권력의 속성과 정치적 계산에 탁월한 윤석렬이 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에 오를 수 있었으리라.

 

 

필자처럼 의심은 대단히 많지만, 그것 때문에 모든 사안을 음모론적 시각으로 접근하고, 지식과 성찰의 일천함으로 인해 윤석렬을 두둔했던, 그러나 지금까지 쌩까고 있는 있는 김어준은 말할 것도 없다. 만에 하나라도 정권이 바뀌면 자신의 목숨을 보장할 수 없다는 두려움이 컸을 수도 있다, 잃을 것이 많아진 털보에게는. 정치검찰 특유의 별건수사에 의해 김어준(과 주진우)가 윤석렬을 비판할 수 없는, 그래서 우리가 알 수 없는 아킬레스건이 있을 수도 있다. 또는 드러낼 수 없는 털이나 점 같은. 이런 이유들로 해서 수구세력의 대선후보가 될 수도 있는 윤석렬은 공격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고. 지금은 하고 있나?  

 

 

군인권센터에 의해 '계엄령 문건'이 폭로되면서 윤석렬의 더럽고 추잡한 과거가 하나 더 알려진 날, <시사기획 창>을 무력화시키려고 했던 그 무엇이, 흔히들 외압이라고 하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것까지 더하면, 역사상 최고의 사기꾼으로도 부족할 지경에 이른 윤석렬의 연기력에 또 한 번의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윤석렬 때문에 몇 번이나 턱이 빠졌는지... 조국을 잃고 윤석렬에 속은 문통의 입장을 생각해보면, 필자의 경악은 두 손으로 X를 그은 채 문통의 국회 시정연설을 비토했던, 그래서 이번 총선에서 떨어진 국민밉상 나경원의 구역질나는 행태를 떠올리게 만든다. 참고로 이것 때문에 나경원이 떨어졌다는 어떤 과학적이고 경험적인 증거도 없다, 조국과 정경심에 대한 제대로 된 증거도 없는 윤석렬의 검찰처럼. 

 

 

모든 쓰레기들은 정경심과 조국 재판을 편파적으로 보도하고 있다. 변하지 않는 이들의 고집불통은 돌쇠들의 공통점이기도 한데, 닮을 것을 닮아야지... 해서 기레기는 살처리가 답이다, 라는 어느 유튜브 방송의 마무리 멘트가 이 시대의 비극을 말해준다. 윤석렬, 싫어!!! 노가리나 찍어먹으면 최고일 이 놈의 검찰 초장아!!!

 

 

 

P.S. 정치철학을 전공하는 박사 과정의 대학원생에게도 어려운 책들이지만, 문통이 천명한 합법적 반칙과 특권, 불공정을 넘는 새로운 기준을 다룬 책들은 이미 나와있다. 존 롤스의 《정의론》과 《정치적 자유주의》, 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과 《정의론》, 존 롤스의 《정의론》을 비판한 마이클 센델의 《정의의 한계》와 《정의란 무엇인가》, 인정과 분배를 하나로 묶는데 치열한 노력을 경주하는 낸시 프레이저의 《지구화시대의 정의》, 인도가 나은 위대한 석학 아마미타 센의 《불평등 재검토》가 그것들이다. 여기에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과 윌 킴리카의 《현대정치철학의 이해》, 아이리스 영의 《정의를 위한 정치적 책임》, 대니얼 롤링의 《불의란 무엇인가》 등까지 독파한다면 여러분들도 박사 수준에 이를 수 있다. 

 

 

위에 언급한 페미니즘과 구좌파(급진진보)의 갈등과 통합 노력을 다룬 것으로부터 공정과 정의에 접근하려면 낸시 프레이저와 악셀 호네트의 《분배냐, 인정이냐?》, 낸시 프레이저와 주디스 버틀러, 리처드 로티, 아이리스 영 등이 참여한 《불평등과 모욕을 넘어》, 악셀 호네트의 《인정투쟁》 등을 보라. 위에 언급한 책들 중에서 마지막 두 권을 빼면 대단히 어렵다는 점에서 쉽게 도전할 수 있는 책들이 아님을 밝혀둔다. 

 

 

워마드와 불꽃페미에 의해 철저하게 왜곡된 페미니즘(읽지는 않았지만 《근본없는 페미니즘, 메갈리아부터 워마드까지》라는 책이 있으며, 그들에게 무분별한 기회를 제공해 페미니즘을 모두의 적으로 만든 KBS 9시뉴스의 책임은 아무리 비판해도 모자란다. '여성의 적이 여성'이라는 통념에 일말의 진실이 있다면 불꽃페미를 공영방송에 출연시키는데 관여한 KBS의 여기자들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을 이해하기 위한 기본서로는 리사 터틀의 《페미니즘 사전》과 벨 훅스의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 (사)여성문화이론연구소의 《페미니즘의 개념들》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