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정치

기무사 계엄령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1981년 12월 13일, 공산주의의 가면을 쓴 채 전체주의를 자행하던 폴란드 군사정부는 '독재의 극단주의'를 신날하게 풍자하던 라디오 프로그램 <1시간에 60분>의 송출을 차단했다. 이 프로그램을 즐겨들었던 폴란드 사람들은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표현의 자유를 더 이상 누릴 수 없게 되었다. 폴란드 군사정부는 계엄령을 선포해 <1시간에 60분>으로 대표되는 언론과 노조, 시민단체 등을 체제 전복을 노리는 불손한 세력이라며 불법으로 몰았다. <1시간에 60분>의 열혈 시청자였던 안나 셈브로스카도 더 이상 방송을 들을 수 없었다. 그녀는 2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다음과 같이 회상했다.   

 

 

"밖에는 탱크들이 소리를 내며 지나가고 있었다. 폴란드의 군사정부는 이미 계엄령을 선포했다. 솔리다리티(폴란드자유노조, 바웬사가 이곳 출신이다)는 불법단체가 됐다. 언론의 자유와 말하는 자유는 다시 과거의 억압 상태로 돌아갔다. 폴란드의 자유화 실험은 그렇게 끝났다.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아, 안나와 그녀의 친구들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무언가 다르다는 느낌이었다.

 

 

체코 국경 가까이에 스비드니크라는 작은 마을이 있었다. 이 마을로부터 개를 데리고 산보하는 사람들 이야기가 들려왔다. 매일 저녁 7시 30분에는 국영TV가 뉴스를 방송했다. 그런데 이 마을 주민들은 거의 모두 이 시간이 되면 밖으로 나와, 동네 한가운데 있는 공원에서 개를 데리고 운동을 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매일 벌어지는 침묵의 행동이 됐다. 자유를 위한 연대의 표현이기도 했다. 우리는 텔레비전 뉴스의 시청을 거부한다. 사람들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말했다. 우리는 당신들 시각의 진실을 거부한다.

 

 

그다니스크에는 검은TV 스크린 이야기가 있었다. 그 도시 사람들은 자신들의 텔레비전을 창가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들은 스크린이 밖을 향하게 놨다. 그들은 서로에게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부를 향해서도 신호를 보냈다. 우리도 시청을 거부한다. 우리 역시 당신들 시각의 진실을 거부한다."(빌 코바치와 톰 로젠스틸의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에서 인용).

 

 

군 인권센터의 추가 폭로로 '기무사가 만들었고, 황교안 대통령직무대행이 보고 받거나 패스 당한 것으로 보이며, 민주적이며 평화적으로 진행된 촛불혁명으로 정권이 바뀐 후, 윤석렬이 중심에 있었던 검찰이 덮어버린 것으로 보이는 계엄령문건'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면, 안나의 회상이 우리에게도 되풀이될 수 있었다, 40대 이상의 세대들은 박정희 유신독재와 전두환 군사독재 때 치가 떨리도록 경험했던 바로 그 계엄령 치하의 대한민국처럼.

 

 

촛불혁명을 체제 전복을 노리는 종북세력으로 몰아 '박정희 군사독재 시즌2'를 출범시키려고 기획됐던 기무사의 '계엄령 문건'은 필자로 하여금 <KBS 9시뉴스>에 다이얼을 맞추면 "띠띠띠 땡! 박정희 대통령 각하···, 띠띠띠 땡! 전두환 대통령 각하··"로 시작됐던 당시의 기억들을 떠올리게 만든다. 유시민 이사장은 <알릴레오>를 통해 자신의 경험에 따른 '계엄령 치하'를 회상했는데, 그가 말한 것들은 약간의 편차는 있을지언정 40대 이상의 국민들이면 모두 다 경험했던 것들이다.

 

 

어제 저녁 7시부터 오늘 새벽 5시까지 죽음과 사투를 벌였던, 오랫동안 이어지지 않겠지만 앞으로도 사투를 벌여야 하는 어머님을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기까지 내가 경험했던 '9시간의 지옥'이 이와 비슷하다고 말하면 2019년의 청춘들은 어느 정도 실감이 갈까? 세계적인 우경화 추세와 보호무역으로의 회귀, 국가주의의 강화 등에 의해 경제대공황이 우려되는 시점에서 보수적 정책을 연달아 내놓을 수밖에 없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또 하나의 숙제가 던져진 것은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민주주의의 후퇴를 견인하고 있는 윤석렬의 검찰과 기레기 저널리즘의 연합공격을 받고 있는 문통이, 구좌파와 급진좌파로부터 '좌측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판까지 받음으로써 힘들게 국정을 운영해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비슷한 상황에 처하는 것이 아닌지 우려스럽기만 하다. 군 인권센터가 추가로 확보한 '계엄령 문건'이 윤석렬 검찰의 폭주에 납짝 엎드려 조국만 물고늘어지는 거의 모든 언론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것도 불길하게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