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에 대한 각종 동향을 전하는 <카톨릭뉴스 지금여기>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이 8월 14일 한국 천주교주교회의에서 주교단에게 한 연설 중에서 한 문단이 통채로 빠진 채 언론에 배포됐다고 밝혔습니다. 교황이 주교회의에서 한 연설은 '교황방한위원회'에서 한국어로 번역해 배포한 것인데, 교황청 홈페이지에 실린 영어판과 비교할 때 17줄 분량이 사라진 것입니다.
<카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인용
<카톨릭뉴스 지금여기>는 주교회의에 교황의 연설 중 한 문단이 빠진 것에 대해 질의를 했는데, 이에 대해 주교회의 의 한 관계자는 '일부러 빠뜨린 것이 아니'라며 '(처음 교황청에서 보내준 교황 연설문과) 교황의 연설이 약간 달라' 발생한 문제라고 했습니다. 이 관계자는 교황의 연설을 정확하게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실제로 교황이 연설한 내용으로 번역문을 교체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번에 통채로 빠진 문단은 "교황이 성경에 나오는 초대교회의 상황을 예로 들며 한국 교회가 악마의 꼬드김으로 부유한 이를 위한 부유한 교회가 될 가능성을 경계하고 대신에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입니다. 교황은 한국 천주교가 갈수록 기득권 위주의 보수적 성향이 강화되는 것에 일침을 가한 것인데, '교황방한위원회'에서 이 부분을 통째로 들어낸 것이 아닌지 의문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실 유럽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천주교의 신자수는 줄고 있지만, 한국의 신자수는 늘어나고 있으며 교황청에 내는 교부금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는 한국 천주교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진 것을 뜻하지만, 반대로 한국 천주교가 '번영의 유혹'에 빠져 외적 성장만 중시하는 경향에 빠져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권력과 자본의 탐욕에 맞서 싸웠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이 크게 위축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얘기가 있을 정도입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에서 인용
<가톨릭뉴스 지금여기>는 교황이 주교회의에서 한 실제 연설 내용이 번역돼 배포되지 않았기 때문에, 교황청 홈페이지에 올라 있는 영어판을 기준으로 연설 원문을 보면, 교황이 방한 중에 사회경제적 약자들과 소외받고 천대받는 사람들을 찾아 낮은 곳으로 달려간 이유가 명백히 드러납니다. 교황은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을 부추기는 경제 모델을 죽음의 문화에 비유하며, 교회가 앞장 서 이를 거부하고 저항하라고 했는데, '교황방한위원회'은 이것이 껄끄러웠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태신앙인인 저는 젊은 날에 신부가 될 것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었고, 성경과 관련 서적들을 많이 공부한 편인데 초기 천주교 공동체는 철저하게 가난한 이들을 위한 안식처였고, 예수가 지상에 세운 진정한 의미의 교회였습니다. 예수도 공적생활에 들어간 3년 동안 가난하고 소외받고 핍박받는 이들과 함께 했습니다. '부자가 하늘나라에 드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한 것도 하느님의 복음이 가난한 이들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교황의 연설문을 보면, 신앙을 내세워 사적 이익집단에서나 볼 수 있는 온갖 부패와 부조리를 양산하고, 자식에게 거대한 부를 세습하는 한국 기독교 대형교회의 행태가 얼마나 예수의 뜻에서 멀어져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음은 <카톨릭뉴스 지금여기>가 교황청 홈페이지에 실려 있는 교황의 영어 연설문을 번역한 것입니다.
저는 가난한 이들이 복음의 핵심에 있다고 말해왔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에 이르기까지 그 자리에 있습니다. 나자렛의 회당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직무를 처음 시작하는 자리에서 이 점을 명확히 밝히셨습니다. 그리고 마태오 복음 25장에서 예수님이 장차 올 하늘나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심판을 받을지 드러내 밝히실 때, 여기에서도 우리는 가난한 이들을 봅니다.
번영의 시대에 떠오르는 한 가지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그저 또 다른 “사회의 일부”가 되는 위험입니다.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신비적 차원을 잃고, 성체성사를 기념하는 능력을 잃으며, 그 대신에 하나의 영적 단체가 되는 위험입니다. 이 단체는 그리스도교 단체이며 그리스도교적 가치관을 가진 단체이지만 예언의 누룩이 빠진 단체입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가난한 이들은 더 이상 교회 안에서 자신들의 적절한 역할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이 유혹에 특정 교회들과 그리스도교 공동체들이 과거 오랜 세월 동안 크게 고통을 겪어왔습니다. 어떤 사례들에서 이런 교회와 공동체들은 그 자체가 중산층이 되어서 그런 공동체의 일부가 되는 가난한 이들이 심지어 수치감을 느낄 정도가 됩니다. 이것은 영적 “번영”, 사목적 번영의 유혹입니다.
그런 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오히려 부유한 이들을 위한 교회, 또는 돈 많고 잘나가는 이들을 위한 중산층 교회입니다. 그리고 이는 낯선 일도 아닙니다. 이 유혹은 초대교회 때부터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코린토 신자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1코린 11,17) 그리고 야고보 사도는 이 문제를 더욱 강하고 명확하게 제기했습니다.(야고 2,1-7) 그는 이들 부요한 공동체들, 부요한 사람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들을 질책해야만 했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배제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들이 누리는 생활양식 때문에 가난한 이들이 그들 공동체에 들어가기를 꺼리게끔 하였고 가난한 이들은 그런 공동체에서 편안하게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번영의 유혹입니다. 저는 여러분 주교들께서 좋은 일들을 잘 하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저는 지금 여러분을 훈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신앙 안에서 자신의 형제를 확인해야 할 의무를 지닌 한 형제로서, 저는 여러분께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주의하십시오. 여러분의 교회는 번영하는 교회이고 매우 선교적인 교회이며 위대한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악마가 교회의 예언자적 구조 자체로부터 가난한 이들을 제거하려는 이런 유혹의 씨앗들을 뿌리도록 허용되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악마로 하여금 여러분이 부요한 이들을 위한 부요한 교회, 잘 나가는 이들의 교회가 되게 만들도록 허용해서는 절대 안 됩니다. (여러분의 교회가 그렇게 된다면) 그 교회는 아마도 “번영의 신학”을 펼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 (가난한 이를 위한 가난한 교회가 제대로 되지 못하는) 그저 그런 별 쓸모없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월호를 산으로 끌고간 조중동과 새누리당 (10) | 2014.08.20 |
---|---|
교황에 화답한 문재인과 거부한 한국의 특권층 (12) | 2014.08.20 |
교황이 뭐라하던 내 갈길만 가겠다는 대통령 (4) | 2014.08.16 |
교황이 돌아간 다음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4) | 2014.08.14 |
박영선, 정치적 대차대조표의 조급함에 빠져들다 (2) | 2014.08.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