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잡을 수 없는 기술의 발전은 우리 인간성의 가장 근본적인 부분까지 파괴시킬지도 모른다. 기술은 도덕적 기반을 상실한 문화를 만들어낸다. 기술은 우리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정신적 과정들과 사회적 관계들을 뿌리 채 흔들어놓는다.

 

                                                                                          ㅡ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에서 인용

 

 

https://youtu.be/Ur4kZuXOooo

 

 

https://youtu.be/RV9T-2lyi2k

 

 

자신에게 유리한 통계치만 가지고 주장하면 어떤 것들도 정당화가 된다. 파업에 찬성한 의사들의 주장 모두가 이런 식의 통계적 장난에 불과하다. 그들이 내세운 통계들이 다른 통계들로 모조리 반박당하고, 그들이 제시한 통계도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의 주장이 곧바로 무너지기 일쑤다. 의료수가를 올려달라, 기피과에 지원하는 의사에게는 인센티브를 지원해달라), 의료민영화는 허용하되 원격진료는 허용하지 말라 등등 이들의 주장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원칙과 법률, 헌법, 민주주의마저 무력화시키라고 아우성을 친다.

 

 

조민 양에 대한 조선일보의 악질적인 허위보도의 무차별적 전파진원지가 의사들의 단톡방이었던 것이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외우기 능력과 조각가보다 못한 손재주, 텅빈 가슴, 엘리트주의 등으로 중무장한 자들의 짐승다움이야 더 말하면 무엇하랴. 인간다운 인간보다 의사다운 의사를 만나기가 이렇게도 힘든 세상이라면 건강은 알아서 지키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의료계 수익의 원천이 종합검진이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니 의사파업이 차라리 고마울 판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대체재가 없는 직업상 무기를 극단까지 이용하는 파업의사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하나하나 반박하기로 하고, 이번 글에서는 예전에 다루었던, 한국의 의료계가 그렇게도 갈망해마지 않는 의료민영화에 대해 예전에 섰던 글을 일부 수정해 다시 올린다. 현대의학과 의사들이 얼마나 형편없는 존재인지, 잠재적 환자인 국민과 실제 환자의 신뢰를 이용해 온갖 사기를 저지르는 현실을 유명 의사와 의학박사, 전문가들의 책과 논문, 통계 등을 통해 폭로한다.   

 

 

양자역학과 나노과학, 유전공학 같은 첨단과학과 기술들이 인공지능 및 인간의 탐욕과 이제는 일상처럼 마주하게 된 초미세먼지와 조우하며 새로운 형태의 전염병과 신종질환을 양산할 위험성을 동반시키고 있다. 지그문트 바우만의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에서 인용된, 마샤 에인절의 《뉴욕 북 리류》의 2009년 1월 15일자 기사는 갑자기 ‘위험해진 세상’에 대한 한 가지 단서를 제공해준다.

 

 

"최근 몇 년 동안 제약회사들은 시장을 더 확장할 수 있는 보다 새롭고 극히 효율적인 방법을 완성시켰다.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약들을 홍보하는 대신에, 오히려 자신들의 약들에 적절하게 들어맞는 질병들을 홍보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전략은) 미국인들에게는 오로지 단 두 가지 종류의 사람들만이 있다는 사실을 납득시키는 일이다. 약물 치료를 필요로 하는 의학적인 상태를 지닌 사람들과 반면에 바로 자신도 약물을 필요로 하는 상태라는 사실을 아직 알지 못하는 사람들 말이다."

 

 

이쯤을 전후로 해서 의료계와 제약 산업은 새로운 수요 창출을 극대화해 이윤을 추구하는 마케팅 전략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의사의 묵인 하에 제약회사들은 자신들의 우월한 권력을 활용해, 평균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건강에 대한 관심사가 커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보다 건강하게 살려면 자신들의 약들을 먹고, 균형 잡힌 몸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피트니스에 매달리며, 조금만 몸이 이상해도 병원을 찾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는 인식을 심는데 성공했다.

                       

                                                    개인부담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미국이다

 

약의 효능이 질병의 호전에 대해 약속할 필요는 없으며, 의료행위를 받는 사람들이 정말로 심각한 상태인지, 아니면 그저 여러 가지 통증 중 하나에 불과한지에 대해서는 전혀 따지지 않는다. 하나의 약이 효과를 보이지 못하면 다른 약을 먹으면 되고, 깨알 같은 전문용어로 써 있는 부작용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줄이는 다른 약을 먹거나 가격 대비 효과가 형편없는 의료행위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가 일상적으로 참는 데 익숙한 고통도 최근에는 질병으로 재정립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의료시장의 규모는 급속도로 커진다. 여기에 자본주의의 악마이자 모든 경제학 이론을 파괴하는 의약품 광고(거의 모든 광고가 그러하다)가 끼어든다. 이들은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나아질 것들을 질병으로 규정한 후 자사의 약을 복용하면 지금 당장 통증과 아픔이 끝날 것이라 유혹한다. 각종 피임약 광고는 섹스의 범람을 불러 관련산업의 매출을 올림과 동시에 의도치 않은 임신의 규모를 계속해서 늘렸고 늘리고 있다, 경제 악화로 복지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사후 피임약은 제대로 작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고, 호르몬 등이 교란되는 부작용까지 생각하면 여성의 육체를 조금씩 망가뜨린다. 의도치 않은 임신의 상당 부분이 10대에 몰려 있어 낙태시술이 지속적으로 올라간다. 마찬가지로 미혼모도 늘어나 사회적 비용의 지출이 꾸준히 확대된다. 이런 과정에서 새로운 병들이 추가된다. 기존에 있던 병들이 이름을 바꿔 방송을 타면, 환자는 새로운 병명을 받아들이고 병원을 찾으며 똑같은 효능을 가진 신약이 불티나게 팔린다."    

 

 

최근 유행처럼 번져가고 있는 ‘위식도 역류(역류성 식도염)’는 예전에는 속쓰림이었으며, 온갖 형태로 나타나는 생리통과 그 징후가 너무나도 특이해 이해하기도 어려운 자신감 상실 같은 것들마저 불길하게 들리는 병명으로 재정립돼, 긴급하게 의학적 치료가 필요한 질병처럼’ 변경됐다. 임파선 과잉수술에 대한 논란도 이것과 동일한 것으로 의료민영화의 새로운 젖줄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새로운 작명을 기다라고 있는 오래된 병들이 줄을 서있다.   

 

 

최근에 들어서는 ‘사회불안장애’나 필자가 겪었으나 이제는 99% 극복한 ‘공황장애’가 만연되고, 삶의 질 악화에 따른 만성적인 스트레스에 따른 ‘만성적인 수면장애’와 ‘누구나 걸리는 우울증’ 등이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면, 제약업계는 준비를 끝낸 ‘불안-홍보 캠패인’을 지속적이고 대규모로 진행한다. 특히 끝이 보이지 않는 장기적인 경제침체를 탈출하기 위해서 전 세계적으로 ‘의료민영화’를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어, 이런 추세를 막는 것이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의사와 약사의 이익 배분이 등장하고 초국적 제약회사와 첨단의료기기 제작업체와 전 세계적 판매상, 의료관광과 거기에서 발생한 관광수입 분배를 매개로 관광업계와 항공업계, 보험업계와 거대 금융자본들이 이들(의사와 약사, 또는 대형병원 등)과 손잡고 각국 정부에 어마어마한 로비를 벌인다. 법을 제정하거나 규제를 풀 수 있는 정치인에게 후원금이 몰려들고, 각종 향응과 비공식적인 특혜가 주어진다.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는 이들의 로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특히 초고령사회와 초위험사회의 도래는 의료민영화만큼 돈이 되는 사업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이익집단과 국민 간의 전쟁은 갈수록 이익집단 쪽으로 기울고 있다. 거의 모든 의료대란이 상당 부분 짜고 치는 고스톱 형태로 진행되는 것처럼. 과잉진료가 넘쳐나는 미국의 경우 의사가 파업을 하면 치료 중에 죽은 환자의 수가 급감했다는 역설적인 통계로 밝혀졌다. 그 이유에 대해 로렌스 호로비츠 박사의 《의학적 운명의 자율 관리》에서 도움을 받아보자.

 

 

"제왕절개수술 본연의 목적은 위험에 처한 아기의 목숨을 구해 내는 것이며, 이 목적은 성취되었다. 그러나 제왕절개수술은 외과수술 과정의 하나로, 임의적 선택의 하나로 일상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심각하고 불필요한 위험을 수반하게 된다. 제왕절개수술을 받는 여성들의 사망률은 자연분만의 경우보다 두 배에서 네 배에 이른다."

 

 

이번에는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에서 도움을 받아보자. 엑스레이, CT를 마구 찍어대는 한국의 경우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내용이라서 더욱 중요하다. 갑상선암을 두고 벌어지는 과잉진료와 수슬에 대한 의학계의 논쟁도 동일한 내용이다. 의사가 말하지 않는 것들이 여기에서 주로 나온다. 현대의 의사들에게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란 예수님·공자님 가라사대 만큼 고리타분한 것에 불과하다. 보다 많은 환자에게 보다 많은 영리행위만이 최고의 목적이다.  

 

 

"매년 약 7만8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내과용이나 치과용으로 찍은 엑스레이 때문에 암에 걸린다. 한 세대에만 234만 명 이상이 암에 걸렸다는 추산이 나온다."

 

 

병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에 왔다가 죽음의 질병을 얻게 된다. 의료시장의 규모는 그만큼 늘어난다. 이런 현상은 영리만 추구하는 병원과 제약업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불량의학》과 《의사들이 말해주지 않는 것》, 《의학과 문화》, 《의학과 기술의 지배》,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등의 책들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의사와 환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문진의 시간은 엄청나게 줄었고, 그 사이에 각종 의료기기를 동원한 수치와 보다 많은 투약, 보다 자주 이루어지는 수술 등이 자리하게 됨으로써 환자의 건강은 의료기술이 발전할수록 의료비 지출이 폭증하고, 그와 정반대로 각종 신규 질병에 위협받는다.      

            

                                선진국 중 최악의 의료후진국인 미국ㅡwww.equalitytrust.org.uk 에서 인용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의료비를 지출하면서도, 그 반도 지불하지 않으면서도 건강에 관한 모든 면에서 높은 안정성을 보여주고 있는 일본(2012년 이전)에 비해 미국의 건강 관련 각종 수치는 선진국이라고 전혀 얘기할 수 없을 정도로 최악의 상황이 된 것도 이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의 경우 개인파산자의 대부분이 의료비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라는 사실도 의료민영화가 초래할 미래의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다.

 

 

전 국민을 상대로 한 건강보험이 실시되지 않으면, 부와 위험의 불평등이 중첩되는 새로운 사회적 계급들의 삶은 19세기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의료에 관련된 여러 가지 연구와 통계를 이용한 닐 포스트만의 《테크노폴리》의 도움을 또다시 받아보면, 의료행위와 의학기술에 내포된 경제논리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으며, 이것이 곧 건강보험에 관한 한 세계 최상위에 속하는 대한민국을 포함해 다른 나라들의 미래가 될 가능성이 높은 천박한 미국의 실상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미국의 의사들은 영국의 의사들보다 1인당 평균 6배나 많은 심장질환과 이식수술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의사들이 진찰을 위해서 행하는 검사의 횟수는 프랑스, 독일, 혹은 영국보다 많다. 미국의 여성들은 유럽의 여성보다 2배에서 3배나 많은 자궁적출수술을 받고 있으며, 미국에서 이 수술을 받는 사람의 60퍼센트가 44세 이하이다. 미국의 의사들은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 많은 전립선수술을 한다. 미국은 제왕절개수술에서도 업계의 선두에 서 있어, 다른 나라들보다 50에서 200퍼센트 이상 많은 시술이 이루어진다. 미국 의사들은 수술을 피하고 약물치료를 선택하는 경우에도 다른 나라의 의사보다 훨씬 많은 양의 약을 사용한다. 그들은 영국 의사들보다 항생제를 2배 이상 많이 처방한다. 유럽의 의사들은 세균에 의한 감염이 분명하고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만 항생제를 사용하는 데 반해, 미국 의사들은 세균감염으로 보이면 별 고민 없이 항생제를 투여한다. 미국 의사들은 환자들에게 훨씬 많은 양의 엑스레이 사진을 찍도록 한다. 어떤 방사선 학자는 엑스레이의 사용 정도를 조사하는 중, 5장이면 충분했을 환장에게 50장에서 100장까지 엑스레이를 찍은 사례들을 발견하였다. 다른 조사에 따르면, 임상자료를 분석해 본 결과 엑스레이를 전혀 찍을 필요가 없거나 연기해도 좋은 환자가 2/3에 달했다고 한다."

 

 

기술발전과 의료행위를 철저히 경제적 논리에 의거하는 미국의 현상을 보면서 우리는 현대성의 폭력적 행태(신자유주의 합리성에 따른 맥도날드화로 표현할 수도 있다)가 사회의 모든 곳에 침투해 있음을 알 수 있다. 최근 한국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의료민영화의 논리도 결국 이윤추구 행위의 정당화와 극대화에 있다. 의료민영화가 진행된 태국의 경우에는 국민의 건강보험체제가 무너져, 극빈자를 국가가 돌봐주는 미국과는 달리 극빈층의 사망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필요한 치료를 받을 수 있는 병원의 높은 문턱을 넘지 못해 길거리에서 죽어가기 일쑤다. 

 

 

의료민영화는 미래의 마지막 먹거리가 수명은 늘어나지만 갈수록 약해지는 육체와 불안전한 정신과 스트레스에 쩌들어 있는 신경 등이라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더욱 맹렬하게 국민국가의 건강보험체제를 위협하고 있다. 어쩌면 인류는 병에 걸리지 않는 것이 장수하는 유일한 방법이 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합리성이 지나간 자리에는 수없이 많은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었으니,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해서 예외가 될 수 없다.

 

의대생과 전공의, 전임의, 의대교수, 의협 회장 등이 자기밥그릇을 지키기 위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대통령을 협박하고 국회를 능멸하는 집단파업과 극단적 이기주의을 보고 있으면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타무스 왕이 한 다음과 같은 말이 생각난다. 한국의 최고 엘리트를 자처하지만 그저 외우는 것만 잘할 뿐인 이들의 반민주적 반국가적 나리시스적 교만함을 마지막 문장만큼 잘 드러내는 것도 없다.

 

 

"모든 발명가의 모범이 되는 테우스여, 기술의 발명자는 그 기술이 장차 이익이 될지 해가 될지를 판정할 수 있는 최선의 재판관이 될 수 없습니다. 문자의 아버지인 당신은 자손들을 사랑하여 발명해 낸 그 문자에 본래의 기능에 정반대되는 성질을 부여한 셈입니다. 문자를 습득한 사람들은 기억력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오히려 더 많이 잊게 될 것입니다. 기억을 위해 내적 차원에 의존하기보다 외적 기호에 의존하게 되는 탓이지요. 당신이 발견한 것은 회상의 보증수표이지, 기억의 보증수표는 아닙니다. 그리고 지혜에 대해서라면, 당신과 제자들은 사실과는 상관없이 지혜에 대한 명성을 계속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적절한 가르침 없이도 많은 정보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될 것이고, 따라서 실제로는 거의 무지하다 할지라도 지식이 있는 것으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진정한 지혜 대신 지혜에 대한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장차 사회에 짐만 될 것입니다."

 

 

의사들이 파업하면 사망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은 상식의 수준이어서 말하기도 귀찮다. 현대의학을 비판하는 책이나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비판하는 책, 현대의학을 내부로부터 고발하는 양심고백들을 두루 살펴보면 의사가 파업을 하면 사망률은 물론 의료사고도 수백 퍼센트 이상 떨어지는 통계들이 넘쳐난다. 이것은 모든 나라에서 모든 시대에서 동일하게 나타나는 현상으로 의료계가 악착같이 숨기려고 했던 그들의 치부이자 맨얼굴이다. 

 

 

미국의 저명한 의사였던 로버트 S. 멘델존은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에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품고 있는 현대의학에 대한 환상을 일종의 종교라고 하면서 그들의 신도인 환자들이 사제인 의사에 대한 신앙심을 거둬드리면 현대의학이라는 종교는 단 하루도 버티지 못하고 붕괴할 것이라며, 다음의 세 가지 의문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 다른 곳에서라면 당연히 의심받을 만한 행위가 의료 행위라는 이유만으로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다.

2. 환자들은 대부분 수술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면서 선뜻 수술에 동의하고 있다.

3. 사람들은 약 성분인 화학물질이 어떤 작용을 하는지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연간 몇 천 톤에 달하는 약을 소비하고 있다. 

 

 

인간의 탈을 쓴 짐승들이 자신의 먹이감을 찾아 어슬렁거리는 하루하루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의사파업의 모든 것이다. 

  1. 참교육 2020.09.04 07:55 신고

    나는 현대의학을 믿지 않는다... 저도요. 이 사람들 정말 갈수록 만정이 떨어지는 인간들입니다.

    • 늙은도령 2020.09.09 05:03 신고

      책인데요, 읽어보면 현대의학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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