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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 ㅡ4

 

 

1%도 안 되는 희망의 새로운 이정표는, 칼 폴라니에서 더 나가지 못하고 있던 저에게 다가온 세 사람의 위대한 석학들이었습니다. 그중에서 미셀 푸코와의 시공간을 초월한 일방적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의 한계에 갇혀 있던 저에게 세계를 보여줬습니다. 그는 근대현사의 변곡점으로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등장을 지적했고, 일련의 저작들은 저에게 새로운 시각을 열어주었습니다.

 

 

게다가 그 책은 프리드리히 폰 하이에크와 밀턴 프리드먼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해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제가 칼 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을 필두로 조지프 스티글리츠나 폴 크루그먼 같은 경제학자들에게서 찾을 수 없었던 것들을 푸코는 제공해주었습니다. 구조나 사건의 상호작용에서 일어나는 단절들이 세상을 결정한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인간의 진화가 돌연변이에서 일어나는 것처럼.  

 

 미셀 푸코 

 

그와의 만남을 통해 1%도 안 되는 희망이 마침내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를 사로잡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저에게 찾아온 뜻밖의 행운을 어떻게 세상에 돌려줘야 하는지에 관해서 하나의 모범사례를 알려주기도 했습니다. 처음으로 사회와 후세대에 대한 책임의식 같은 것이 생겨났습니다, 제 능력에 비해 너무나 건방질 정도로. 

 

 

저는 속도를 올리기로 마음먹었고, 좀 더 공격적인 독서를 통해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저항할 수 있는 지적 구축에 전력했습니다. 제가 가야할 길은 끝이 없는 여정이 될 수 있겠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시 수많은 지적 안내자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고, 푸코의 저작들에서 깨달은 것들을 하나씩 구체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공부하고 확인해야 할 것이 너무나 많았지만 건강이 갑자기 나빠지지 않는 한 하나하나씩 해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것은 분명 자신감의 일종이었지만, 환상을 쫓아 제가 딛고 있는 기반을 잊지 않는 안정된 형태의 자신감이었습니다. 그러던 중에 저의 실질적 후원자인 동생이 유럽 법인장으로 발령이 났습니다. 동생에게서 평생 도움만 받았던 저는, 제 지적 여정의 방향을 조금 수정했습니다. 저는 동생과 조카들의 성공적인 독일 안착을 위해 독일에 대한 지적 탐구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이 제가 두 번째로 맞이한 '작은 전환의 순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일단 인터넷 서점을 통해 하이데거와 하버마스를 중심으로 독일의 석학들에 관련된 책들을 주문해서 한 권씩 독파하기 시작했습니다. 헌데 말입니다, 희한한 것은 둘의 명저들을 읽는 와중에 20대 초반에 읽었던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의 글들이 떠올랐고, 그것이 저에게 또 한 번의 지적 성찰을 위한 도약의 발판이 됐습니다.

 

발터 벤야민

 

어떻게 된 것이 저라는 놈은 지적 탐구와 성찰에서조차 계획적인 것이 허용되지 않는지, 도발적으로 독일의 위대한 현자들에서 프랑스로 건너뛰는 과정에서 미셀 푸코를 알게 되었고, 라캉과 데리다, 딜뢰즈, 가타리, 네그리, 지젝으로 이어지는 대단히 어렵지만 놀라운 통찰의 세계와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는 위대한 석학, 발터 벤야민이 있었고 새로운 도전의 분야도 눈에 아른거렸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즉흥적인 발상이며 유아기에나 할 수 있는 정서적 반발(특히 권위주의적인 것에 대한)에 불과했는데도 저는 제 지적 탐구와 성찰을 향한 마지막 스승으로 삼아야 할 만남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치 제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인 ‘운명’처럼 말입니다. 일체의 폭력에 반대하는 그들의 저항정신은 세상을 바꾸는 것이 쉽지 않음을 인정하는 대신, 권력의 목적인 통치에 대한 정확한 분석과 해체를 통해 개인의 자유를 최대화시키는데 집중한 위대한 철학자였습니다.  

 

 

미셀 푸코와 발터 벤야민, 그리고 지그문트 바우만은 정말로 어마어마한 사람들이었습니다. 1980년대 우리나라 운동권과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서 필독서로 통하던 미셀 푸코의 저작들과 1990년대 전 세계를 열광케 한 발터 벤야민의 저작들, 21세기의 석학으로 떠오른 지그문트 바우만의 저작들은 저의 지적 여정을 완전히 탈바꿈시켰습니다.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은 인간을 너무 사랑하는 비판정신을 잃지 않은 불멸의 지식인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중에서 벤야민은 카프카와 함께 죽은 이후에나 전세계적 명성을 얻은 '행복한 불행한 비평가이자 작가였습니다. 카프카의 <행복한 불행한 이에게>와 <발터 벤야민 평전>, 한나 아렌트의 <발터 베야민>은 그들의 삶의 궤적이 얼마나 불행했는지 조금이나마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그들을 2012~2014년에 걸쳐 접하게 된 것이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저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당시의 어설픈 지적 수준에서 이들 3인의 저작들을 만났다면, 저는 그들의 필력에만 감탄했을 뿐, 좌우를 넘나드는 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통치술, 그리고 근대이성과 현대성의 본질과 변화에 대해 알 수 있게 됐습니다. 

 

지그문트 바우만

 

이들 3인의 책들 중에 한국어로 번역된 것은 거의 전부 다 구입해서 읽었고, 지금도 읽고 있지만 그들의 저작들은 단 한 권도 저를 감탄시키고 흥분시키지 않은 것이 없었습니다. 마침내 저의 지적 성찰과 신자유주의에 대한 저항의 지적 여정에서 진실된 의미의 전장이 마련된 것이었고, 제가 다시 살게 된 이유의 그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들 3인을 제외한 다른 석학들의 저작들을 탐구하는 것은 일종의 보너스가 될 듯합니다. 최소한 1,000여 권의 책을 돌파한 지금까지 이들 3인은 저에게 절대적 영향을 미쳤습니다. 동시에 저는 지적 탐구와 성찰의 여정에는 끝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독서는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지금은 정치학과 정치철학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언젠가는 제 힘으로 책을 사야 하겠지만 지금은 그런 도움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광고를 유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광고를 유치하니 블로그가 어지러운 것 같아 걱정이 많기는 합니다. 그래서 후원자들을 모집할까 하는 생각도 조금은 해봤지만, 그것은 책을 출판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저는 정부의 도움을 받고 싶지 않습니다. 저 이외의 누군가 도움을 받아야 할 사람이 많기 때문이며, 보편적 복지가 시행될 때까지 저는 정부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은 제 삶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가 아니라, 이 세상에 대한 분명한 투쟁의 원동력을 잃지 않기 위함입니다. 누군가의 돈의 노예가 되면 제대로 된 비평을 할 수 없으니까요.

 

 

아무튼 이제야 세상의 속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됐으니, 그것을 통해 얻은 성찰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돌려드리기 위해서라도 정부의 도움은 최후의 순간이 아니면 받지 않으려 합니다. 이 모든 것이 매일 자살만 떠올리다 ‘알고나 죽자’로 방향을 튼 이후, 썩은 동아줄 잡듯 움켜진 1%도 안 되는 희망이 구체화되는 여정의 거친 스케치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아무런 물질적 힘도 갖고 있지 않지만 충만한 지적 무기로 세상의 모든 영역을 부패하게 만드는 신자유주의와의 한 판 대결을 꿈꾸고 있습니다. 한국의 수구세력들과 악질적인 친일 부역의 후손들과도 한 판의 대결을 벌일 생각입니다. 이를 위해서 한국 근현대사 서적들을 구입해서 읽고 있으며, 여러 사이트를 방문해서 지식을 넓히고 있습니다.

 

 

물론 저의 이런 노력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날 공산이 유력하지만, 뭐 손해날 것도 없습니다. 사실 저는 ‘알고나 죽자’에서 한 발짝도 세상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직도 저는 제 작은 몇 평의 방에서 책을 주문해 읽고,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을 뿐, 거리나 세상에 나서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글을 이용한 말들을 투척하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도 충분하고 넘칩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지적 여정을 통해 얻은 성찰을 보다 많은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에. Little, Low, Lean, 작고 낮은 사람들이 서로 기대어 세상과 맞서는 연대만큼 소중한 것은 없기 때문에. 세상의 주인은 그들이며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사회경제적 약자들의 역사가 쓰여진 적이 없지만, 그들이 없었다면 인류의 역사도 계속될 수 없었을 것이기에 저는 그분들을 위해서만 글을 씁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의 얘기를 전하고자 합니다. 건강이 허락하면 작은 지적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입니다. 지적인 대가는 될 수 없겠지만, 사이비 지식인은 가릴 수 있기 때문에, 세상에 태어나 속고 사는 사람들의 수를 한 명이라도 줄이는 것을 목표로 정했습니다. 지금도 그런 노력을 하고 있으며,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할 생각입니다.

 

 

감사합니다. 이것으로 ‘내가 다시 살게 된 이유’를 마칠까 합니다. 이후의 것들은 블로그를 통해 알려드릴 것을 약속드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