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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야기

생각보다 회복이 더디네요.



인생을 비극으로 본 《오이디푸스》의 작가 소포클래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말할 수 있는 어떤 의미보다도 낫다. 인생에서 두 번째로 좋은 것은 일단 태어났으면 왔던 곳으로 가능한 한 빨리 되돌아가는 것이다.”



인생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아무리 많은 것들을 가지고 와도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태어났으면 빨리 죽는 것이 태어나지 않는 것 다음으로 좋다고 말할 정도니 소포클래스가 보는 인생이란 비극 그 자체입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삶에 충실하고, 뜻하는 바를 이룬다 해도 인생이 비극인 것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라 말합니다.







인간의 이성을 한계까지 탐구한 위대한 철학자 칸트도 인생이란 “최상의 인간조차도 속 태우면서 평생을 보내야 하는 집행유예와 같은 기간”이라고 했습니다. 반드시 죽는 인간의 삶과 정신(순수이성, 실천이성, 판단력, 도구적 이성 등)을 사유하는 철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위대한 성찰에 이른다한들 인생이 행복일 수는 없겠지요.



철학은 반드시 죽는 존재인 ‘나-자아’라는 ‘인간-주체’를 보편적 개념인 ‘인류-역사’라는 종으로 확대함으로써 불멸성을 획득하는 사유의 과정이자 결과이지만, 철학자는 보편적 진리나 인류의 유토피아를 찾아내는 과정에서 산고의 고통에 비견되는 치열한 사유를 이어가야 합니다.



사유의 결과는 말이나 언어로 표현되는데, 치열하고 엄밀한 사유 때문에 “표현은 사유와의 씨름에 지치고 사유는 표현 때문에 녹초가 되지만, 표현은 사유를 통해 자체의 우연성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철학적 결과물은 하나도 허투루 나올 수 없으며 정말로 고독한 인고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철학자의 삶은 고독하고 힘겨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치밀하고 복합적으로 짜진 각고의 사유를 통해 나온 이론이나 진리와 사상이 반대가 불가능한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철학적 대가일수록 그 후대에 의해 가혹할 정도로 집중포화를 받습니다. 종교와는 다른 철학은 절대적 사유란 독과 같은 것이어서 폐쇄적이면 안 되기 때문에 쇄도하는 반대담론과 일전을 치러야 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앞의 철학적 결과물은 퇴출될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철학자에게 인생이란 태어나지 않는 것이 최상이며, 평생이 집행유예의 기간처럼 괴로울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그들이 보기에 인류라는 추상적 개념을 통해 영원히 이어질 종으로서의 인간과 역사의 주체로서의 인류를 고양시키지만 자신의 삶은 정반대의 고독 속으로 빠져들어야 합니다.







건강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고 있는 저로서는 지금의 삶이 보너스로 주어진 삶이라 생각했기에 죽음에 대해서는 그렇게 두렵지 않습니다. 물론 죽음을 생각하면 온갖 생각과 상념이 머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특히 지적공동체를 이루어보겠다는 희망을 가졌던 것이 가장 마음에 걸립니다.



암세포를 다 잡았지만 내일 찍을 MRI를 통해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온다 해도 이런 정도의 건강이라면 지적공동체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제가 지적공동체를 이루는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할 판입니다. 암을 한 번 이겨냈지만, 생각보다 몸이 많이 약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혀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을 뽑은 것이 정윤회 문건을 통해 적나라하게 드러났지만, 아픈 동안 정치에서 잠시 멀어진 채 철학책들을 집중으로 읽었고, 그 동안 뇌 속에 방치해두었던 것들에 대해 계속해서 생각했습니다. 검진결과가 좋게 나오고 체력이 회복되면 그동안 생각했던 것을 글로 올길까 합니다.



대가는 아니더라도 대가로 향하는 모험을 피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지금까지의 글과 생각과는 다른 새로운 주제의 글들을 쓰고자 합니다. 경제는 더 이상의 탈출구가 없어 세계가 공멸을 벗어나는데 합의할 때(향후 6~8년)까지 최악으로 향할 테니, 어떤 글도 도움이 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생존이 중요합니다. 살아남아야 합니다. 소비를 줄이고, 최소한의 돈이라도 저축해야 합니다. 하루하루의 만족을 몇 년 뒤로 미루고 생존에 유리한 것을 확보하는 일에만 집중해야 합니다. 파국의 시기에 죽어도 좋다는 사람은 지금처럼 소비해도 됩니다.



전세계 상위 10%에게 60~90%의 종합소득세를 누진적으로 물리고, 대기업의 법인세를 올려 전세계적 경쟁을 완화시키지 않는 한 6~8년 후의 파국은 종말의 지경에 이를 수도 있습니다. 회복불능의 상태 말입니다. 경제에 대해 다른 어떤 정책도 현재의 사태를 극복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 사망을 인정하지 않는 한 인류는 종멸의 길로 접어들 가능성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습니다.



기존의 정치권은 포기했습니다. 특히 새누리당이 재집권하면 정치는 돌아보지도 않을 생각입니다. 인간적으로 문재인을 믿지만 그를 비토하는 세력이 너무나 거대해 그가 노무현 같은 기적을 이루어낼 에너지를 분출해낼지 자신이 없습니다.



박근혜 정부 다음의 정부는 제2의 IMF를 겪을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현재의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아무런 희망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보수성이 새누리당으로 하여금 다양한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박근혜 조차 그 사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으니, 자업자득이지만 할 말 다했죠. 서민에게만 부담을 지우는 정부와 양당의 합의는 신생정당의 출현이 간절함을 말해줍니다.







이런 현실에서 덤으로 주어진 삶을 살고 있는 저는 하늘이 허락해 건강을 회복시켜준다면, 지금까지의 글과는 달리 당파성에서 벗어나 철학적 성찰을 기반으로 한 각종 기득권과의 싸움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부디 형편없는 인생이고 삶이지만 주의 은총이 있어 건강을 회복하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는 분명 세 번째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생각보다 건강 회복이 더디고 장과 허리상태가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허리상태는 침을 계속 맞으면 좋아질 것 같은데 체력이 버텨주지 못해 오히려 역효과를 받습니다. 침치료는 접었고 일단 암이 재발되거나 전이가 없다는 것부터 확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힘들더라도 운동량을 늘려 체력을 회복하고 동시에 허리치료에 집중하면 내년 2월초부터는 다시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봅니다. 실패와 좌절, 고통과 병으로 보낸 시간이 장장 40여년이라 정말 내가 건강한 적이 있었는지 기억이 아득합니다.



저의 후원자인 동생도 이번 정기인사에서 삼성을 나올 수도 있습니다.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잔인한 기업의 말도 안 되는 경영권 승계 때문에 수많은 삼성맨들이 맨붕상태입니다. 참 지독한 기업입니다. 물론 애플에 비하면 덜하지만, 지금의 삼성은 애플과 별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동생이 삼성을 떠나면 저의 융단폭격이 강행될 것입니다.



1월 말쯤에 서울 광화문이나 강남역에서 후원자 모임을 가졌으면 합니다. 이런저런 살아가는 얘기도 하고, 지적공동체의 대체적 줄기와 여러분들의 뜻도 듣고 싶습니다. 제가 아프더라도 반드시 참석할 테니 어떤 분이라도 광화문이나 강남역에 좋은 자리를 잡을 수 있으면 대신해주셨으면 합니다.



계약금이 필요하면 보내드릴게요. 그때 만나서 이러저런 서로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었으면 합니다. 모두 연말 잘 보내시고 2014년의 마지막 달도 보람차게 보내십시오. 안산합동분양소에 한 번 가봐야 하는데...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2014년은 분명 비극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그들의 죽음이 대한민국을 바꾸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하며 그들의 사회적응에 따뜻하게 맞아줘야 합니다. EBS에서 ‘가족의 쇼크’로 세월호 부모님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반영했는데 많이 울었습니다.



인간은 망각이 동물이지만 선택적 기억은 더욱 선명히 커갈 수 있습니다. 세월호 희생자와 유족들을 잊지 말고 그들의 삶에 기도를 하면서 작은 도움이나 됐으면 하네요. 세월호 참사는 분명 대한민국을 바꾸어가고 있습니다. 그 다음은 우리의 몫이고, 이를 위해서는 보다 철학적인 사고를 통해 시대를 관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지는 다음 번 글로 올리겠습니다. MRI 등이 힘들어 며칠 후나 가능할 것 같습니다. 산다는 것, 즉 인생이란 비극인 것입니다. 우리가 죽음에서 출발하는 삶을 살지 못하면, 더더욱 비극입니다. 현대사회가 만들어놓은 신제품을 통한 순간순간의 만족을 통해 그런 만족이 영원히 될 것 같다는, 죽음을 회피하는 방식의 삶에서 벗어나려면 우리는 헤겔이 비판했던(추종하기도 했던) 칸트를 푸코와 하버마스적으로 얘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래서 일체의 계몽적 이성에 적대적 이성을 대립시켰던 니체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그것을 현대에 맞게, 비로소 이 시대에 맞게 풀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쉽지 않겠지만 1월말이면 제 공부가 어느 정도 끝에 이르러 있을 것입니다.







저는 이제 지적공동체를 형성하기 위한ㅡ그것이 성공을 거두던, 실패하던ㅡ글쓰기에 전념할 생각입니다. 저 스스로도 하나의 이론과 체계를 갖추고 보편적이고 독창적인 철학적 체계를 구축하려고 합니다. 그런 과정에서 독주분들이 세상을 볼 수 있는 관점을 제시해드리고, 설명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모여서 토론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헤겔을 헤겔좌파와 헤겔우파적 관점에서 보는 것을 넘어 마르크스적 관점과, 칼 폴라니, 아도르노, 호르크하이머, 하버마스와 무엇보다도 벤야민과 푸코의 관점에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데리다와 라캉 등은 아직 제가 공부가 부족한 상황이라 좀더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저는 지적공동체를 이루면 그 다음의 일은 잘 진행될 것을 자신합니다. 솔직히 모임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게 제 주특기이니까요. 하지만 우리가 단단해지면 그 이상도 가능하니 한 발 한 발 목표를 향해 나갔으면 합니다.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발전시킬 수도 있고 대안언론이나 공부방 등을 모색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물론 지적공동체를 구성하면 제가 제일 게으르고 문제가 가장 많겠지만, 그래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겠지만...... 아무튼 저를 믿고 기다려주시는 분들게 깊은 고마운 마음을 보냅니다. 이 상태로 2주 정도 지나면 건강도 나아질 것 같아, 어느 분이든 용인에 오시면 제가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크리스마스 잘 보내시고, 서민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의 주인이 되는 새해가 되기를 희망해 봅니다. 모두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