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은 미디어의 천국이다. 3개의 지상파와 수십 개에 이르는 부속 채널, 4개의 종편, 2개의 보도전문채널, 거의 백 개에 근접하는 케이블방송. 이들의 콘텐츠를 확대재생산하는 다양한 형태의 사이버 채널까지 대한민국은 하루 24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미디어들의 무한 메시지와 영상들로 넘쳐난다. 인간은 메시지와 영상의 홍수 속에서 영혼없는 유령처럼 메시지와 영상의 형태로 이곳 저곳을 배회한다. 





눈이 가는 모든 곳에 영상이 돌아가고 있고, 귀는 미디어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홍수 속에 단 한 순간도 쉴 수 없다. 개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오감과 신경은 미디어가 쏟아내는 콘텐츠에 언제나 열려있어야 한다. 이를 인식해서 분류하고 합당한 반응을 제시해야 할 뇌는 압도적인 콘텐츠의 양에 질식하기 직전이다.



1분 이상의 생각을 요하는 일은 금물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콘텐츠와 정보에 감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힘겨운 상황에서, 어느 하나를 붙들고 생각한다는 것은 자살행위에 다름없다. 보고 듣는 모든 것들을 끝없이 흘려보내지 않으면, 연속해서 밀려드는 메시지를 감당할 방법이란 없다.



‘모든 철학이 죽었다’는 비트켄슈타인의 한탄을 넘어, 자기반성적 성찰도 사라진 미디어 세상에서 보고 듣는 것이 곧 진실이고 진리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처럼 다양한 미디어가 쏟아내는 메시지의 홍수 속에서 살아가려면 생각하지 않는 것이 필수적인 사항이다. 사람들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최악의 범죄이다.





짧고 표피적인 단상들과 즉각적인 반응들이 넘쳐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우리는 주어지고 접하는 콘텐츠와 정보가 많으면 생각의 양과 질이 높아진다고 판단하기 쉽지만, 뇌라는 것이 그렇게 진화해오지 않아서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난다.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주어진 콘텐츠와 정보의 특성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디지털 세대일수록 생각의 양과 질이 많아야 가능한 철학이나 사상, 사회적 문제 등에 대한 거부감이 커지는 이유도 우리의 뇌가 미디어의 특성에 길들여졌기 때문이다. 심지어 탐사보도나 기사마저 일정 수준 이상으로 길어지거나 복잡해지면 안 된다. 인문학 열풍이 불어도 독서량이 늘지 않고 강연을 듣는 것과 동영상을 보는 것만 늘어나는 것도 우리가 미디어에 얼마나 길들여져 있는지 반증해준다.



이런 현실에서 미디어가 내보내는 콘텐츠와 정보가 자체적으로 이루어지는 검열을 거치거나, 특정 세력에 유리한 편향성을 지니고, 속보와 특종 경쟁 때문에 오보가 빈발하고, 특정 사실(진실이 아니다)만 부각해서 내보내거나, 아예 사실을 왜곡해서 내보내는 것이 일상화됐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민주주의를 확대하리라 예상했던 사이버 공간이 검열까지 받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미디어에 노출되는 시간이 많을수록, 미디어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소통하는 것이 일상화될수록, 우리의 뇌는 미디어화 된다. 우리는 미디어가 보여주는 것에 관심이 집중되고, 미디어가 이끌어가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생각의 양이 늘어나는 것 같지만 분업화된 노동처럼, 수없이 많은 네트워크에 접속하는 분열된 자아처럼 통합되지 못하는 단편들로만 이곳저곳을 빛의 속도로 떠다닌다. 



생각의 깊이가 요구되는 것, 가치 판단의 기준이 명확해야 하는 것, 자기반성적 성찰이 필요한 것, 일관되게 생각을 밀고 가는 것, 그래서 생각의 끝까지 가보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심지어 무수히 많은 경험을 통해 상황을 판단하는 직관마저 미디어적인 방식으로 작동하게 된다. 자본과 권력에 의해 왜곡되고 편향된 보도와 정보가 사실 확인이라는 필터작용도 없이 수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방적인 내용만 전달하는 광고가 대표적인 예다. 첨단과학이 총동원된 마케팅의 정수인 광고는 인간의 의식을 파고들어 광고가 의도하는 대로 반응하고 소비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다. 광고로 돌아가는 미디어가 본질적으로 자본적이고 시장 편향적인 매체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류가 영원히 함께 해야 할 미디어는 가장 자본주의적이고 가장 권력지향적인 매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히 가족과 공동체와 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는 현실에서 미디어(특히 대중매체)가 공적 영역을 독점하고 있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미디어가 전한 콘텐츠의 내용을 알지 못하면 일상의 대화에도 끼지 못한다. 미디어의 종류가 늘어날수록 공적 영역뿐만 아니라 사적 영역에서도 미디어의 콘텐츠와 거기서 파생된 것들이 대화의 주를 이룬다. 



헌데 대한민국의 미디어는 편향성이 도를 넘었다. 자본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인 편향성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미디어가 배출하는 콘텐츠와 정보가 공기처럼 만연된 현실에서 대한민국 미디어의 편향성은 생각의 깊이가 필요한 모든 것을 질식사시키며, 사고와 가치와 이념의 다양성마저 검열 대상으로 전락시킨다.



지상파와 보도전문채널이 장악되고, 종편이 무더기로 승인되고, 정부의 비호 아래 세를 확장해온, 그래서 권력과 언론이 불편하지 않고 한통속으로 움직이는 지난 7년이란 다음의 한 줄로 압축할 수 있다. 죽은 미디어의 사회, 대한민국.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달빛천사7 2014.10.06 08:57 신고

    한주를 시작하는 월요일 아침입니다 좋은하루되세요

  2. 중용투자자 2014.10.06 14:23 신고

    정보는 넘쳐나는데 생각의 깊이는 더 짧아지게 만드는 미디어의 맹목적인 독선이 갈수록 심화되는군요.

    • 늙은도령 2014.10.06 20:43 신고

      네, 단편적인 생각만 늘어납니다.
      미디어와 책읽기를 같이 해야 합니다.
      또한 명상의 시간을 늘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4.10.07 14:05 신고

    읽을만한 매체는 그래도 있는데 볼만한 매체는
    거의 없는것 같습니다..에혀
    눈과 귀를 통제 당한거 같은 세상.

    • 늙은도령 2014.10.07 19:46 신고

      우리는 너무 길들여졌어요.
      생각을 안 하려고 하고 너무 편리함만 찾아답니다.
      대중매체의 발달이 인간의 삶을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4. 젊은학생 2014.10.09 06:11 신고

    심지어 생각의 흐름까지도 유도하는 것 같아요.
    살짝 벗어난 예시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자막이 참 많이 나오죠,
    자막은 이해를 돕고 더 큰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시청자들의 창의적인 생각을 막고 그 프로그램이 보여주고 싶은 것을 보게끔 합니다.
    두 세개의 예능프로그램을 즐겨보는데 문득 그런생각이 들었네요.

    생각을 못하게 하는 것은 바쁜 현대사회도 한 몫 합니다.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저조차도 생각할 시간이 없음을 깨닫고
    생각을 할 시간을 따로 정해야되나 싶을 정도예요.

    다행히도 제가 듣는 수업들은 교수님들께서 질문을 많이 하십니다.
    어제 들었던 welfare economics 에서는 '복지국가'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하여
    복지란? 국가란? 에 대한 질문 등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정답이 있는 건 아니지만, 복지국가가 무엇인지 아무 생각도 안 한 상태에서 국가의 정책에 대해 왈가왈부 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이번 학기가 끝나면 복지국가가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내릴 수 있을까요?
    심심할 때 보는 예능을 줄이고, 한가지 한가지 생각을 해봐야 겠어요.

    어제 HIstory of Political Ideas 중간고사로 고대그리스부터 계몽주의시대까지의 정치사상의 변화 및 발전에 대한 에세이를 써야했는데 정말..부끄러운 에세이를 쓰고 왔어요. (진짜 망했어요)
    감히 생각만 해보자면, 기존의 유명한 정치사상들이 업데이트가 필요한 것 같아요.
    도령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 우리나라의 정부형태가 어떠한 정치사상으로도 설명될 수 없다면 말이죠.

    • 늙은도령 2014.10.10 00:01 신고

      네, 방송은 시청자가 생각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렇게 길들여 시청률을 높이는데 사용합니다.
      자막은 그런 기능을 합니다.
      님의 지적한 것이 정확합니다.
      마약 같은 것입니다.
      시청자로 하여금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고 프로그램의 기획대로 몰고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시청자의 뇌는 길들여져 가고 자막이 없으면 불편해 합니다.
      자막이 시청률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작용합니다.
      그렇게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죽도록 즐기기>를 꼭 보십시오.

      고대 그리스부터 계몽주의시대까지가 근대성의 탄생이자 근대이성이며, 현대성의 원천입니다.
      칸트에 의해 완성됐는데 제가 '늙은도령의 눈으로 본 인류 근현대사 비판'이 바로 그 내용을 다룬 것입니다.
      원래는 책으로 출판하기 위해 집필을 시작한 것인데 이곳에 올리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너무 어렵다는 댓글이 많아서 더욱 쉽게 풀어야 하기 때문에 기존에 써놓은 것을 틈틈이 퇴고하고 있습니다.
      체력이 떨어져 이것이 회복되면 그때부터 다시 올릴 것입니다.

      푸코의 저서말고 강의를 옮긴 책인 <영토, 안전,인구>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이 많은 도움을 줄 것입니다.
      그리고 '성의 역사'시리즈인 <앎의 의지> <쾌락의 활용> <자기 배려>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한나 아렌트의 <인간의 조건>, <정치의 약속>, <혁명론>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철학적으로는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계몽의 변증법>, 그리과 최근에는 바우만의 <홀로코스타와 현대성> <액체근대> <유동하는 공포> <고독을 잃어버린 시간> 등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면 최고의 석학인 벤야민을 보십시오.
      단 <독일 비애극의 원천>은 안 보셔도 됩니다.
      정말로 어렵기 때문에 성찰이 매우 깊어지면 읽어보십시오.
      제가 읽은 책 중에 가장 어려웠습니다.

      칼 폴라니의 책들도 도움이 될 것이고, 칼 포퍼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블랙스완>도 좋구요.
      우리나라는 미국의 헌법을 받아들였지만, 홍익인간부터 동학까지 사회주의적 요소가 많아 충돌이 납니다.
      조선시대는 입헌군주제와 절대주의가 혼합된 민주주의적 체제였습니다.
      여기에 일본의 군국주의 파시즘, 즉 우파 전체주의와 깡패집단의 논리가 혼합돼 엉망진창이 된 것이 한국입니다.

      참, 박정희 시대를 이해하고 싶다면 마루야마 마사오의 <현대정치사상과 행동>을 보십시오.
      거기에 박정희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유신시대의 원형이 왜 일본에 있으며, 우리나라가 친일파의 천국인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과 박명림 교수의 '한국전쟁' 시리즈를 비교해서 보면 더욱 이해가 커질 것입니다.
      최근 프레시안에 연재되고 있는 한국의 근현대사에 관한 내요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복지국가는 대단히 복잡해졌습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무력화됐으니까요.
      복지국가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 들어 힘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불평등이 너무 커져서 복지국가의 원형으로만 해결할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분야에서는 자크 아탈리의 저작들과 <거대한 전환>을 번역한 홍기빈 씨의 저작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를 얘기할 때 과학기술의 발전이 미치는 영향을 너무 무시합니다.
      사실 인류의 정치체는 과학기술의 발전의 부산물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과학 관련 책을 많이 읽는 이유입니다.
      종합적 시각을 갖춰야 합니다.
      그래야만 현대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특히 국민국가 탄생과 얽혀 있는 정치경제학과 뉴턴역학, 다윈의 진화론을 왜곡한 허버트 스펜서의 사회진화론에 대한 이해가 절실히 요구됩니다.
      중상주의와 중농주의가 교차하는 중에 탄생한 고전경제학과 독일에서 시작한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원형)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합니다.

      울리힉 벡의 <위험사회>도 꼭 보십시오.
      저도 아직 못 본 책이 있어 벡의 최근 책들을 봐야 합니다.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후편인 <유리감옥>도 봐야하구요.

  5. 2015.12.24 05:39

    비밀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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