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가 턱없이 부족해서인지, 나는 아직도 정치에서 중도가 무엇인지 모른다. 어려서부터 동양철학을 공부했기에 중용은 알고 있지만, 중도는 도무지 모르겠다. 도(道)라는 것에 중간이 있다는 것은, 최소한 필자가 공부한 책들에는 나오지 않는다. 삼라만상을 만들어낸 음과 양의 조화는 알겠는데, 그 중간에 무엇이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지난 8년간 집중적으로 공부한 서양철학에도 중용은 나오지만 중도는 나오지 않는다. 모든 학문의 기초라고 하는 물리학(정치철학에 가장 많은 영향을 미쳤음)에도 중간이란 것은 없다. 중성자라고 하는 것도 질량이 없기 때문에 기능적 역할만 하는 기본입자다. 질량과 에너지, 위치와 운동, 입자와 장, 물질과 반물질에 이르기까지 중간의 무엇이란 없다.
과학자와 기술자들이 주장하는 가치중립이라는 것도 모순에 해당한다. 가치중립이라는 판단을 내리는 것 자체가 가치에 대한 판단이 들어간 것이기에 가치중립이라는 주장은 모순이다. 음과 양이 삼라만상을 만들어내듯, 0과 1이라는 두 개의 비트로 상상하는 모든 것을 구현해내는 컴퓨터도 0과 1만을 사용한다. 사람과 사물 등 모든 것의 가치와 위치, 사용을 다루는 정치에 중도라는 것이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공부하고 사유한 것들이 형편없어서인지, 사안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달라지는 이중이념은 알겠는데 중도는 여전히 모르겠다. 내게는 중도라 말하는 사람들이 중용이나 중간이 아닌 평균을 말하고 있는 것으로 들린다. 자본주의의 폐해인 불평등을 숨기기 위해 가장 많이 동원되는 평균이란 수학적이고 계량학적 개념 말이다. 정치라는 행위를 통해 최소화해야 하는 사회경제적 평균 말이다.
평균적인 개인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증대되는 불평등은 평균값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점점 더 넓혀놓고 있다. 평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불평등에 대해 이야기를 회피하는 방법의 하나다(스티글리츠·센·피투시 공저, 《GDP는 틀렸다》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처럼, 평균은 중간을 말하지 않기 때문에 불평등을 감추는데 안성맞춤이다. 평균(1인당 GDP)은 상위 1%가 얼마의 부를 가지고 있는지, 나머지 99%가 얼마를 가지고 있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국가 전체의 부를 모든 국민에게 나눠줄 때만 현실이 되는 평균은 불평등의 정도가 얼마나 심한지 알려주지 않는다.
평균으로는, 평균적 개인으로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교정하는 정치과정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알 수 없다. 경제적 자립을 이룬 지배계급의 남성만 참여할 수 있었던 고대 폴리스의 정치를 전체 국민에게 허용한 것이 현대적 의미의 민주주의라면, 평균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불평등과 정치의 부재를 숨기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공익을 구현하는 정치가 시장경제 자본주의가 초래할 수밖에 없는 불평등을 끊임없이 줄여나가는데 있다. 정치인과 정당이 주장하는 중도가 우파와 좌파, 진보와 보수의 중간에 위치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평균에 대해서만 말할 뿐, 불평등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우리가 불평등에 대해서 침묵해야 한다면, 민주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만 있어도 충분하다. 중도를 주장하는 정치인과 정당의 논리가 평균을 의미하는 중간으로밖에 들리지 않는 나는, 아직도 중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자유주의적 보수가 주장하는 낙수효과가 불평등을 줄이는 것이 아닌 늘리는 방편으로 사용된 것이 입증된 지금, 평균을 얘기하자는 중도를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특히 성장을 통해 평균(GDP)을 올리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보수의 주장에 끝없이 경도되는 진보의 중도화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강준만의 주장처럼, 폭력적 혁명을 포기하는 대가로 집회와 결사 및 표현의 자유를 얻은 진보가 인간에게 말을 걸고, 욕망에 호소하는 그럴싸한 싸가지를 갖추면 불평등이 줄어들기라도 하는 것일까?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실체적 진실에 가깝게 이루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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