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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제창과 합창 논란’에 숨겨진 여권의 프레임



조지 레이코프는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와 《프레임 전쟁》을 통해 보수가 승승장구하는 비결을 프레임 설정의 우위에 있음을 밝혔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보수가 승승장구하는 이유가 프레임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쟁에서 프레임 설정의 위력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작된 ‘임을 위한 행진곡’ 논란이 이번에는 ‘제창과 합창’ 논란으로 대체되면서 5.18광주민주화항쟁의 본질이 철저히 묻혀버렸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의 문제는 5.18항쟁의 본질이 아닌 지엽적인 문제에 불과합니다.



한국 현대사의 최대 비극이자 위대한 민주화혁명이었던 5.18항쟁의 본질은 정치적 정당성이 전혀 없는 군사쿠데타 세력이 독재정부를 구축하기 위해 국민을 상대로 군사작전을 펼친 대량학살극입니다. 아돌프 히틀러와 도조 히데키에 비견되는 전두환과 노태우가 계엄군을 동원해 광주시민을 무차별적으로 학살한 최악의 범죄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수백 수천 명의 국민을 죽여서라도 권력을 잡겠다는 독재자의 잔혹한 광기이며, 우리가 계승해야 할 것은 박정희의 제자이자 하나회(기시 노부스케가 만들었다는 주장도 있다) 후배인 전두환과 노태우가 일으킨 군사쿠데타에 저항했던 광주시민의 고귀한 저항정신이자 민주주의에 대한 지극한 열망입니다.





전두환과 노태우가 김영삼 정부에서 내란죄로 기소됨에 따라 1980년 5월의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대략적 전모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민주정부 10년을 거치면서 광주의 영령들과 남겨진 사람들은 고귀한 저항에 대한 일정 수준의 명예회복은 이룰 수 있었습니다.



헌데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해 레임덕을 최대한 늦추려는 이명박 정부의 비열하고 교활한 프레임 설정에 의해 5.18항쟁의 본질이 ‘임을 위한 행진곡’의 퇴출 논란으로 변질됐습니다. 이때부터 5월18일은 그날의 광주를 조명하는 것이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둘러싼 논쟁으로 격하됐습니다.



이것이 박근혜 정부에 이르러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의 제창과 합창 논란으로 프레임이 재설정되면서 5.18항쟁의 본질이 안드로메다로 넘어가버렸습니다. 5.18은 이제 독재권력에 저항한 민주화 항쟁이 아니라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매개로 한 종북몰이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모든 언론이 보도한 5.18항쟁 35주기의 모습은 두 쪽으로 갈라진 행사의 거친 스케치와 정부를 대표해 나온 최경환과 여당대표인 김무성, 야당대표인 문재인의 제창과 합창 여부에 집중됐습니다. 박근혜 정부의 프레임 재설정은 이렇게 5.18항쟁의 본질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하느냐, 합창하느냐의 문제로 대체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250명의 아이들을 포함해 304명의 국민이 언론의 생중계 속에서 숱한 오보와 함께 바다 속으로 수장되는 것을 지켜보고도 세월호 참사를 산으로 몰고 갈 수 있었던 것처럼) 박근혜 정부와 여권이 5.18항쟁에 적용한 제창과 합창의 프레임 설정에 숨겨진 것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