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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그날, 단원고 학생들이 느꼈을 공포와 절망 때문에

 

 

 

필자는 11년 전, 이맘 때쯤 고속도로를 주행 중에 공황증상이 일어났다. 만성디스크의 통증이 다리로 내려가더니 페달을 밟는 발에 부분적 마비가 올 것 같았고, 그런 두려움이 어는 순간 통제의 범위를 넘어섰다. 공황증상이 일어나자 당장이라도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공포가 맹렬하게 밀려들었다. 저녁 9시, 수많은 차량이 다니고 갓길도 없는 고속도로라 운전을 멈출 수도 없었다. 



단 1초도 더 운전할 수 없을 정도의 공황증세는 '정말로 죽는구나'하는 압도적인 공포로 나를 몰아쳤다. 몸을 가눌 수 없는 무력감에 운전대를 놓고 몇 초라도 쉬고 싶었다. 극단의 공포가 몰고온 무력감에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손을 놓고 그대로 쓰러지면 교통사고를 피할 수 없지만, 코앞에 닥친 죽음의 공포에서 잠시라도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일 먼저 필자가 모시고 있는 노모의 얼굴이 떠올랐고, 입에서는 신음처럼 '어머님, 어머님, 나 죽을 것 같아'라는 말이 신음처럼 흘러나왔다. 운전대를 놓으면, 그래서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나를 죽음의 심연으로 몰아치는 극도의 두려움과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숨조차 쉬기 힘들 만큼 몸과 의지는 무너져내렸지만, 차를 세울 갓길도 없었고 뒤에서 수많은 차량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10여 분을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다. 삶에 대한 실낱 같은 끈을 놓치지 않으려 나는 계속해서 '어머님'을 외쳤고, 갓길을 찾고 또 찾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흘렀고, 손을 놓으면 죽는다는 것만 생각했다.  살고 싶어서, 어머님을 두고 먼저 죽을 수 없어서, 운전대를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에, 나는 10여 분을 죽음에 대한 극단의 두려움과 공포와 싸워야 했다. 

 

 

비로소 갓길이 나왔고, 나는 힘겹게 차선을 옮겨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나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던 공황증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지만, 탈진할대로 탈진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2시간을 쉬면서 안정을 취했지만 끝내 운전을 할 수 없어 대리기사를 불렀고, 그날 이후로 공황증세가 심해져 병원에 입원해 치료까지 받았다. 그 이후 지금까지 공황증세와 싸워야 했고, 숱한 노력 끝에 겨우 공황증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느꼈던 바로 그 십여 분의 두려움과 공포를 단원고 학생들은 몇십 배나 많은 시간 동안 느꼈을 것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해경의 구조를 간절하게 빌었을 것이며,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이, 형과 동생, 누나와 언니의 얼굴이 떠올랐을 것이다. 나는 갓길이라는 탈출구라도 있었지만, 세월호의 침몰 속도가 빨라지고 해경이 멀리 물러섰을 때 아이들은 절대 계산할 수 없는 엄청난 공포와 두려움, 절망과 무력감에 떨어야 했을 것이다.       

 

 

 

이제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 어린 나이에 생의 끈을 놓아야 했을 때,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돌아갈 수 없다고 절망했을 때, 아이들은 밀려드는 바닷물을 피해 무리를 이루며 서로를 의지하려 마지막까지 사투를 벌여야 했을 것이다. 필자처럼 어머니와 아버지를 불렀을 것이고, 먹통이 된 스마트폰으로 죽음의 순간들을 기록했을 것이다. 아이들의 마지막 기억들이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단원고 아이들은 그렇게 극단의 공포와 두려움, 좌절과 체념의 기억들에 짓눌린 채 하늘로 떠나갔다. 세월호에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가지 못한 마지막 말들이 떠돌고 있었을 것이며…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을 것이며... 이승에서 저승으로 떠나며 그 기억들에 시달렸을 것이며... 애타게 부르고 찾았던 가족과 친구들이 냉혹한 대통령과 정부, 여당의 조직적인 방해와 증거 인멸 때문에 거리로 나섰을 수밖에 없는 것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필자는 유족의 슬픔과 분노를 가늠조차 하지 못한다. 그것을 가늠할 수 있다면 당장이라도 청와대로 달려갔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의 마지막에 느꼈을 공포와 두려움이 어떠했을지는 조금이라도 추측할 수 있다. 내가, 병투성이인 내가, 간암의 재발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형편없고 무기력한 내가 죽을 때까지 세월호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를 위해 싸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나는 짐승이 아닌 사람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그렇게 보내놓고도 나만 살겠다고 거짓말과 모르쇠로 일관하며 벌레처럼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자식이 아니라고,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고 304명의 죽음이 지겹다며 진상규명을 위한 유족들의 절규를 외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마지막에 흘렸을 눈물이 지금은 유족의 눈에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죽어서 하늘에 갔을 때 짐승과 벌레의 나라에서 살았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난지 천일, 세월호는 인양되지 않았고, 해수부의 지휘 아래 증거가 인멸되고 인양이 불가능할 정도로 분해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상황에서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촛불집회에서 한 말이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다." 거지갑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세월호특별법이 하루라도 빨리 국회를 통과해야 할 이유가 이것 말고 더 무엇이 필요하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