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기사 중에서 미국의 진보경제학자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이 샌더스보다 힐러리를 지지하는 이유를 다룬 것이 있다. 핵심 내용은 이렇다. 폴 크루그먼이 보기에 샌더스의 공약은 너무 과격해서 미국의 현실정치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공약들이 너무 이상적이고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갈 정도로 과격해서 실현가능성은 너무 희박하며, 그 바람에 보수층의 결집만 불러올 것이라는 것이다. 





이에 비해 힐러리는 샌더스 만큼은 아니지만, 오바마가 반만 이룬 채 끝나버린 진보적 개혁을 이어나갈 정치적 기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며, 샌더스가 말하지 않는 성소수자나 여성차별 같은 미국사회의 또 다른 문제들에 대해서도 정확히 꿰뚫고 있기 때문에 샌더스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1순위 영입자인 자신은 힐러리를 지지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은 공약의 실현가능성이 높은 힐러리를 오바마의 적자로 본다는 것이다. 



폴 크루그먼의 이런 평가에 샌더스는 "과격이란, 부자 감세를 해준 정치인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것을 말합니다. 상위 1%가 소득 대부분을 가져가는 상황이야말로 과격합니다. 한 집안(월마트 소유주 월튼 가)의 재산이 하위 1억3000만 명의 재산을 합친 것보다 많은 현실이야말로 과격합니다."라며 일축했다. 폴 크루그먼의 힐러리 지지는 미국 지배엘리트의 평균적 견해와 비슷해서 샌더스로는 받아들일 수 없음은 너무나 당연하다. 



허면 스티글리츠와 함께 최고의 진보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의 '샌더스 비판, 힐러리 지지'는 어떻게 봐야 할까? 먼저 필자의 입장부터 말하면 '동의할 수 없다' 이다. 필자는 조지프 스티글리츠와 폴 크루그먼의 책 중에서 번역된 것은 모두 다 읽었는데, 보다 비주류에 속하는 스티글리츠는 미국의 입장만 대변하지 않는 것에 비해, 크루그먼은 미국의 황금시대를 재현하는 것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하다. 



현재의 초장기대불황을 분석하는데 있어서도 스티글리츠는 다양한 국가의 경제학자, 정치학자, 사회학자, 생태학자들의 견해를 반영하는데 비해 크루그먼은 전통적인 영미식 경제학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바라보는 시선에서도 스티글리츠가 크루그먼보다 다양한 변수를 고려하고, 전통적인 경제학의 분석틀을 넘어 현장의 소리를 반영했다는 점에서 사실에 가깝다 할 수 있다. 



초장기대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무제한 양적완화를 무제한적으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폴 크루그먼의 인식은 오류투성이의 주류경제학에서 몇 걸음도 벗어나지 못한 것에 비해(특히 《불황의 경제학》과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를 참조) 스티글리츠의 초장기대불황 극복방안은 '극도의 불평등을 초래한 정치체제던, 경제체제던 둘 중의 하나가 무너져야 가능하다'로 기울어져 있다(특히 《스티클리츠 보고서》와 《불평등의 대가》참조)





이번 민주당 예비선거의 목적이 통치의 일관성에 방점이 찍힌 '오바마의 적자'를 찾는 것이라면 크루그먼의 평가는 정확하지만, 이 빌어먹을 세상을 바꾸기 위해 미국부터 바꾸자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의 평가는 궤도를 이탈했다. 아주 압축해서 말하면 크루그먼은 혁명적 변화는 불가능하니 점진적 개혁에 집중하자는 것이며, 스티글리츠는 이 지랄같은 세상을 바꾸려면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유권자들이 어떤 결정을 내릴지 알 수 없지만, 피케티가 정확하게 지적한 것처럼, 미국이란 나라가 지나칠 정도로 과대포장된 주류경제학자의 입김에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은 샌더스의 돌풍에도 어김없이 작용하고 있다. 이 때문에 '만악의 근원'으로서의 미국을 개혁하는데 상당한 공헌을 해야 할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생태학자 등의 입지가 좁아진다는 것은 미국적 특수성이 갖는 제국의 역행과 인류의 비극이라 할 수 있다. 



물론 미국의 대선은 한국 종편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거대방송사들에 의해 결정되는 경우가 허다하지만, 샌더스의 지지층이 SNS처럼 디지털 소통에 능숙하고, 오바마를 대통령에 올린 풀뿌리민주주의의 주역들인 고학력자(우리의 강남좌파)와 다양한 인종의 청춘들이라는 점에서 방송의 영향을 덜 받는다는 것을 크루그먼은 외면한 것 같다. 샌더스가 당적이 없는 상태로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민주당에 입당한 것(안철수와 다른 수많은 것들 중 하나)도 크루그먼의 평가가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것을 말해준다. 



점전직 변화는 언제나 주류의 뜻이 대다수 반영된다. 이는 인류의 역사가 말해주는 공통의 진실이며, 현재의 초장기대불황에서 벗어나려면 혁명에 준하는 에너지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폴 크루그먼의 평가는 스티글리츠나 로버트 라이시보다 비겁하고 이기적이라 할 수 있다. 인류를 지옥으로 내몰고 있는 초장기대불황에서 벗어나려면 미국이 유일제국과 기축통화국의 이름으로 전세계에 가한 폭력과 착취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폴 크루그먼의 해법을 대부분 채택한 일본의 아베노믹스와 한국의 초이노믹스가 참담한 실패에 직면한 것에서 보듯, 힐러리가 아닌 샌더스가 또 다른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적임자임에는 틀림없다. '대표 없이 과세 없다'가 아닌 '과세 없이 대표 없다'가 이 시대의 절대명제이며, 슈퍼클래스의 거대한 지배체제를 돌파하려면 다시 외칠 수밖에 없다. 죽음이 아니면 자유를 달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반골 2016.02.12 22:59

    폴 크루그먼도 기득권 세력이군요!

    • 늙은도령 2016.02.13 01:02 신고

      최근에 들어 그런 경향이 있습니다.
      진보경제학자는 맞는데 현실정치의 벽을 너무 높게 보는 것 같습니다.

  2. 다니엘 2016.02.13 01:51

    샌더스를 지지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2.13 08:41 신고

    미국으로부터의 변화의 물결이 4월 대한민국에서도 넘실대기를
    학수고대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13 15:49 신고

      일단 샌더스의 돌풍으로 선명성 경쟁이 강화될 것입니다.
      이는 한국 총선에도 상당한 여향을 미칠 것입니다.
      문제는 유권자에게 그것이 전달될 수 있느냐이지요.

  4. 세븐클럽짱 2016.02.13 14:38

    미대선에 견주어 보면 문재인은 힐러리쯤 되려나요? 샌더스는 심상정이나 이정희, 노회찬? 부럽기만 하네요.
    대한민국에서도 샌더스 같은 인물이 선전하길 바라지만 현실은 힐러리만으로도 감지덕지네요.

    • 늙은도령 2016.02.13 15:50 신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놈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때문에 나라 자체가 개판이 됐으니...




승자독식의 경쟁적인 세계에서 다수의 패자들이 떨어진 이삭을 줍는 동안, 성공한 자들은 식탁 위에 차려진 이익들을 쓸어 담는다. 바로 유연성이 그러한 시장을 형성하게 하는 핵심 요소다.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가 없는 곳에서는 이익이 권력을 지닌 최고위층에게로 돌아가고, 규제가 없는 체제에서는 모든 것을 장악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이익을 차지하게 된다. 유연성은 이렇게 승자만을 위한 시장을 만들어 불평등 현상을 심화시킨다.






위의 인용문은 리처드 세넷의 《신자유주의와 인간성의 파괴》에 나오는 내용으로, 박근혜가 노동5법의 국회 통과를 닥달하는 이유가 무엇을 위함인지 분명하게 말해줍니다. 박근혜의 노동시장 개혁(노동유연화)이 모든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로 귀결될 것이라는 사실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지난 40년 동안 신자유주의가 한 일이란 사측(오너와 최고경영진, 대주주와 정치브로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동착취를 유연하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필자가 빨긴 색으로 강조를 준 ‘위계적인 명령 체계를 통해 이익금을 분배해주는 관료주의적 체계’란 근무연속에 따라 자동적으로 호봉과 복지후생비가 올라가는 정규직 임금체계(연공서열제)를 말합니다. 비정규‧임시직 체계에서는 존재하지 않은 정규직 임금체계는 자본과 사측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골치 아픈 고정비용의 상승을 의미합니다. 최소 3년은 이어질 경제위기를 핑계로 인건비 절감에 나선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신자유주의 40년 동안 사측은 핵심 업무를 제외한 나머지를 아웃소싱하고, 자동화를 통해 비정규‧임시직을 늘렸으며, 노동유연화를 내세워 상시적 정리해고가 가능하도록 만들었지만, 정년이 보장되는 정규직 임금체계는 워낙 저항이 심해 무너뜨리지 못했습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차이가 크지 않은 선진복지국가의 대부분을 무너뜨렸지만, 정규직의 비정규직화는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완화 같은 법적 뒷받침이 선행돼야 합니다. 



작년 중반에 연말정산대란의 결과에서 보듯이 유리지갑들이 한 마음으로 뭉치면 어떤 정부도 권력을 유지하기 힘듭니다. 비정규‧임시직은 하루하루의 삶에 치여 정치적 연대를 구축할 수 없도록 길들이는데 성공했지만, 최소 몇 달에서 몇 년을 버틸 수 있는 정규직들은 그들의 마음대로 하기에는 기존의 장벽이 만만치 않습니다. 강남좌파라는 형용모순이 성립할 수 있는 상황까지 고려하면 정규직들을 비정규직화하는 것은 정부와 여당의 도움이 절대적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노동시장 개혁, 즉 정규직의 비정규직화가 자본의 마지막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정규직의 임금체계를 파괴해서 하향평준화시킬 수 있다면, 정규직과의 차별을 근거로 한 비정규‧임시직의 처우개선 요구도 최소화시킬 수 있습니다. 자본의 입장에선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인데, 정규직의 상당수가 체제의 간부 역할을 해왔기 때문에 일시에 그들을 지옥으로 내몰기 위해서는 입법 과정이 선행돼야 합니다.





본격적으로 신자유주의 정부임을 천명였던 이명박 정부는 정규직 노조를 파괴하는데 집중했다면, 박근혜 정부는 날개가 꺾인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어용노조의 역할에 충실했던 한국노총을 끌어들인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휴지조각에 불과한 사회적 합의의 흉내를 냈으니, 이제는 그 합의를 법제화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사실상 레임덕에 빠진 박근혜가 사측의 민원을 해결해주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상시적 구조조정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정규직도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합니다. 이들은 경제위기가 상시화된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상시적인 해고와 비정규직으로의 추락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복지확대를 위한 증세에 찬성하게 됐습니다. 이들은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는 신자유주의 정부와 맞서려면 피고용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자식들이 비정규직으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에 불만이 누적되고 있습니다.





고학력자와 전통의 중산층들이 진보적 가치에 호응하는 것도 이런 생존의 필요성이 강하게 작용한 결과입니다. 돈이 곧 힘인 신자유주의 천국에서 모든 근로자들이 극소수에 불과한 사측과 정부의 밀약에 맞서려면 노동의 힘을 키워야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일치단결을 이끌어낼 수 있는 상급노조의 힘은 아득한 시절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할 뿐입니다. 이명박근혜 8년 동안 멀쩡한 노조는 단 하나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로 신자유주의의 확대가 공멸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은 각국의 정부들이 비정규‧임시직의 처우를 개선하는데 집중하는데 비해,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박근헤 정부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것보다 노동5법을 막아내지 못하면 모든 근로자의 비정규직화는 피할 수 없습니다. 박근혜와 그녀의 환관들이 뭐라고 말하던 노동5법의 진실은 정규직의 비정규직화입니다. 



진박마케팅에 올인한 최경환이 경제부총리에 있을 때 정규직 과보호론을 제기한 것을 기점으로 해서 노동5법의 국회 통과에 목을 맨 박근혜 정부의 근로자 죽이기는 총선 결과에 따라 현실이 될 수도 있고, 자동적으로 폐기될 수도 있습니다. 유권자의 선택에 따라 자본의 식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두고 정규직에서 추락한 비정규직들과 기존의 비정규‧임시직, 평생을 비정규직으로 보내야 청춘들이 피 터지는 싸움을 벌일 수 있습니다. 



이번 총선이 가지는 시대적 의미 중 하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과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끌어내리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부정하지만 어떤 체제 하에서건 정치만이 국민을 밥먹여 줄 수 있습니다. 칼 폴라니가 말했듯이 오직 인간만이 지배적인 체제를 결정할 수 있으며, 사회적 합의의 법적·제도적 버전인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통해 이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6.02.04 14:47

    이번 총선에서 심판하지 못하면 ...
    생각도 하기 싫습니다. 끔찍합니다.

  2. 술맛을 알아? 2016.02.04 21:24

    야권의 세작들이 차려준 밥상 덕분에 히죽거리며 지들 공천권 싸움에만 몰두하는 기름진 얼굴들에 한바탕 썩소를 날려줄수 있는 날이 오기를 오매불망 소원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02.05 08:19 신고

    제가 직장을 다닐때만 해도 비정규직이란 말이 없었습니다
    갈수록 근로자들을 옥죄는것이 독재치하 저리가라할 정도입니다
    정말 이번 선거 심판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6.02.05 17:42 신고

      네, 79, 80년에 대처와 레이건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 비정규직의 확대가 본격화됐습니다.
      이번 총선은 그래서 대단히 중요합니다.

  4. 관악 2016.02.05 11:02

    개발시대에 혜택(?)을 받은 노인들의 인식,철학과 행동이 미래지향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자기 자년 손자가 겪어야 하는 불행을 오히려 조장하고 있어요

    • 늙은도령 2016.02.05 17:43 신고

      그러게 말입니다.
      이분들이 바뀌어야 나라가 바뀌고 미래가 좋아지는데....



무엇보다도 안타까운 것은 경제 상황이 점점 더 악화되면 될수록 주민들은 점점 더 냉소적이 되고 훨씬 더 보수적으로 바뀌어간다는 것이다‧‧‧보수 반동은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한다면 20세기에 이룬 진보적 성과를 전부 사라지게 만들지도 모른다.


                           ㅡ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인용




이 모든 것은 계급을 바라보는 사고방식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다. 캔자스 사람들은‧‧‧계급적 적개심은 불타오르지만 그 불만의 원인을 제공하는 경제적 기반은 부인한다. 보수주의자들은 계급이란 돈이나 타고난 출신성분, 심지어 직업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가장 귀중한 문화상품인 진실성의 문제다. 계급은 무슨 차를 몰고 어디서 물건을 사며 어떻게 기도하느냐의 문제이지 무슨 일을 하는지, 얼마를 버는지는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다‧‧‧미국 전역의 생산자들은 실업이나 막다른 삶, 그들이 버는 것보다 500배나 많은 봉급을 받는 사장과 같은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런 문제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19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캔자스 주는 사회주의(좌파)와 자유주의(진보)가 주정부와 의회를 지배했다. 이런 캔자스 주가 레이건과 아버지 부시를 거치면서 중도우파를 거쳐 아들 부시와 지금에 이르러서는 극우에 가까운 기독교 근본주의자 우파(미국 건국의 아버지를 떠올리는 티파티가 핵심, 미국 독립운동의 발화점이었던 보스턴 차사건에서 따옴)의 본산이 됐다.





그 출발은 《불경한 삼위일체》를 보면 뉴딜체제와 케인즈 경제학을 뒤집기 위해 신고전파 경제학자를 양성해 미 재무부의 하위공직에 진출시키고, 주요 대학의 경제학과를 점령해가며, 대공황의 기억을 가진 월가의 세대교체를 진행한 60년대의 물밑작업(미국의 우파는 ‘기나긴 10년’이라고 한다)입니다.



푸코에서 시작돼 딜뢰즈와 데리다를 거쳐, 네그리와 지젝으로 이어진 유럽의 신좌파(필자는 이들보다 벤야민과 푸코에서 벡과 바우만으로 이어진 신좌파를 선호한다)는 이것에서 시작해 전 지구적 지배엘리트를 구축한 신자유주의적 제국에 초점을 맞춰 보수우파의 세계 지배(부정적 세계화)를 비판한다. 이런 시각은 서구의 패권이 유럽의 제국주의에서 미국의 제국으로 넘어간 역사적 변천에 주목하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의 보수 반동(이명박근혜 정부를 탄생시켰고,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승하고 있다)을 이해하려면 유럽적 시각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그 이유는 한국의 보수 반동을 이끈 주축이 미국의 신탁통치를 받아들인 친일파(정치적 정통성이 없었던 이승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이유)의 후예와 미국 유학파가 포진한 조중동과 뉴라이트, 기독교 근본주의자 우파 등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들은 미국처럼 신자유주의체제가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고착화된 상태에서 논란의 여지가 많은 경제적 이슈(이것은 보수정당과 재계 및 경제연구소의 몫이었다)보다 저소득‧저임금노동자와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없는 이중개념자(중도층), 보수 성향의 여성들을 상대로 정치‧사회‧문화‧교육‧역사적 계급운동을 진행했다.





이것은 ‘엄격한 아버지 모델(미국 우파의 모델로, 한국의 가부장적 가족 모델과 비슷하다)’에 따른 도덕 운동으로 만들기 위해 ‘미국적 가치(건국의 아버지인 청교도의 나라)’라는 새로운 프레임을 들고 나와 미국의 우경화에 성공한 미국의 보수 반동을 한국적 특수성에 녹여낸 것이다.



좌파의 전유물이었던 계급운동을 보수 반동에 녹여낼 수 있었던 것은 경제를 들어낸 자리에 미국적 가치를 집어넣는데 성공한 미국의 신보수주의자(특히 존 그레이의 《추악한 동맹》을 보라)가 좌파에서 전향한 자들로 이루어졌기 때문인데, 한국의 뉴라이트에도 좌파(이명박 정부에 많았다. 박근혜 정부에는 변절한 동교동계가 있다)에서 전향한 자들이 많았다.



정치적 기회주의자인 이들은 저학력‧저임금 노동자와 이중개념자 중 진보 성향이 약한 남성과 보수 성향이 강한 여성들을 공략하는 언어 선정과 프레임 설정에 정통한 자들이어서, 진보좌파가 기업과 고학력 엘리트(이른바 강남좌파)에게 접근하는 동안 전통의 진보좌파 지지자들을 잃어버렸다. 



집권경험이 있는 제1야당을 제외한 전통의 진보정당들이 이들의 공격을 막아낼 여력도 없었고, 이석기의 내란음모에서 통진당의 해산까지 이어지는 과정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서처럼 한국의 보수 운동은 민주정부 10년을 '잃어버린 10년'으로 규정하는데 성공했고, 오세훈 덕분에 진보적 가치인 의무급식이 쟁점이 된 지방선거를 제외하면 모든 선거에서 승리하는 역전을 이루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5.22 08:10 신고

    2016년과 17년은 대한민국 100년은 아니지만 한 세대 운명을 결정할 것입니다.
    진보개혁세력이 의회권력와 행정권력을 잡지 못하면 30년 이상은 집권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니 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유시민 말처럼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진보개혁세력은 불리한 선거환경에서 출발합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습니다. 보수는 하나만 같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고, 진보는 하나만 달라도 적으로 싸운다고 합니다.
    깊이 새겨야 합니다. 싸워야 할 대상은 수구기득권인데, 진보개혁세력 안에 또아리를 틀고 있는 수구기득권이 견고합니다. 이를 깨지 않고는 희망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22 14:36 신고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와 프레임 전쟁, 도덕의 정치 등의 레이코프의 책을 보면 진보가 무엇을 실패했고 보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그것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나와있습니다.
      물론 그의 책이 절대는 아니지만 비슷한 연구들이 최근에 들어 봇물터지듯나오는 것을 보면 진보도 정신 차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북한 변수 때문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 진보세력이 무능력한 것도 있지만,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는 박지원, 김한길, 안철수, 조경태, 박영선 같은 자들이 당을 보수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들을 정리하지 않으면 답이 없습니다.

  2. 뉴론♥ 2015.05.22 08:14 신고

    언젠가는 많이 변화되는 세상이 올거 같지는 않네여 일본의 뒤를 겉게 되겠지여
    나이든 사람만 많고

    • 늙은도령 2015.05.22 14:38 신고

      일본만큼 잘 갖춰진 상태에서의 잃어버린 20년이면 대환형입니다.
      일본은 내적 튼실함이 어마어마한 나라입니다.
      전 세계에서 정치가 가장 형편없음에도 선진국에서 내려오지 않는 것도 그들이 기본에 투자했기 때문입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5.22 08:42 신고

    첫구절이 기억에 남습니다
    경제상황이 악화될수록 주민들은 보수적으로 바뀐다는 말..

    일견 지금 우리 상황과도 틀리지 않네요
    겉으로는 민생경제를 외치고
    공안총리를 앉혀 다음 총선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22 14:39 신고

      최근에 와서 확정된 사실입니다.
      히틀러의 경험이 보다 정교해진 것입니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신자유주의 50년이 세상을 완전히 보수화시켰습니다.
      그 핵심에 보수 반동의 역사가 있는데 이를 이해할 때만 반격이 가능합니다.

  4. 박군.. 2015.05.22 10:13 신고

    제가 보기에는 일본 따라잡을 것 같네요 안좋은 것만요

    • 늙은도령 2015.05.22 14:40 신고

      일본 근처에도 못갑니다.
      일본은 잃어버린 20년이 30년으로 이어져도 선진국에서 탈락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공적 투자가 완벽히 이루어진 나라라 한국과는 천양지차입니다.
      아베가 미친 짓을 할 수 있는 것도 일본이라는 나라의 저력 때문입니다.

  5. 머무는바람 2015.05.22 12:59 신고

    아 진짜 한국 모습 참나
    한숨만 나오네요

    • 늙은도령 2015.05.22 14:42 신고

      어차피 한 번은 거쳐할 과정입니다.
      이제부터가 진짜 전쟁입니다.
      여기서 이겨야 합니다.

  6. 하늘이 2015.05.22 16:01

    진보안에 보수화된 기득권과의 전쟁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데 그들의 저항이 너무 강하다는게 지금 다 드러나고 있습니다ᆞ그래도 지금 이 문제가 드러나서 다행이기도 하지만 과연 깰수 있을까 염려됩니다 ᆞ

    노무현과 같은 강한 투지가 필요한데~♡

    • 늙은도령 2015.05.22 18:00 신고

      돌파해야지요.
      반드시 돌파해야 합니다.
      기득권세력을 몰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야당이 살아납니다.



아메리카 사회의 전경은 민주주의의 표피를 덮고 있으나 그 표피 아래에서 귀족주의의 옛 색깔들이 간간이 얼굴을 내민다......이 나라 사람들처럼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도 없으며, 재산이 항구적으로 평등해야 한다는 이론을 이 나라 사람들처럼 경멸해 마지않는 사람들도 없다.


                                                                           - A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중에서 인용




강준만의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지 못했기에 내 평가는 프레시안과 한겨레 등에 나온 기사들에 한정된다. 강준만은 진보세력이 연이은 선거에서 패배한 것이 “싸가지 없는 진보의 ‘무례함, 도덕적 우월감, 언행불일치’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진보가 논리와 이성에 집착하는 한 욕망의 시대인 21세기에서 승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읽을 가치가 없어 보이는 책



그는 논리와 이성에 집착하는 진보가 유권자들에게 싸가지 없는 놈처럼 보이고, 그것 때문에 표를 주지 않는다고 했다. ‘좋은 정책과 이념이라도 싸가지 없게 행한다면 유권자들을 거부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강 교수는 진보세력의 ‘이성 중독증’이 ‘옳은 말이지만, 싸가지 없게 보여 부동층(20%)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개인적 욕망에 감정으로 접근해 싸가지 있게 구는 부동층의 지지를 받아 선거에서 이겼다고 설명했다. 강 교수는 따라서 ‘싸가지 없는 진보가 집권하고 성공하려면 상대편을 존중하는 마음과 자세의 터전 위에 서야만 민심을 제대로 읽는 눈이 트이고, 그럴 때만이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교수는 또한 “상대에게 모멸감을 주는 행위, 담론에만 집중한 나머지 예의를 벗어난 표현, 위에서 내려다보듯 가르치려는 태도, 왜 진보를 좋아하지 않고 보수에 표를 찍느냐고 호통 치는 듯한 자세, 의견이 맞지 않으면 동료에게도 상처를 주는 행위, 번드르르하게 말해놓고 언제 그랬냐는 듯 태도를 바꾸는 태도 등”을 비판하는 진보의 행태를 비판했다.



                                   보수의 시각에서 진보를 비판한 것에 불과한 강준만



필자는 진보의 고리타분함과 경직성에 대해 여러 번 비판하는 글을 올린 적이 있다. 그런 면에서 필자의 주장은 강 교수의 진보 비판과 일맥상통하는 것이 있다. 하지만 프레시안 보도가 강 교수의 책을 제대로 압축한 것이라면, 필자의 답은 ‘아니올시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먼저 강 교수가 진보의 기원을 거론하며 ‘이성 중독증’을 말한 것은 분명한 오류다. 강 교수가 말한 이성이 근대이성에서 나온 계몽을 뜻하는 것이라면, 그의 오류는 너무나 치명적ㅡ근대이성에서 나온 계몽은 보수와 진보 모두의 기원이다ㅡ이어서 책을 읽을 필요조차 없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란 없듯이, 진보도 열심히 변하는 중이지만, 그렇다고 '이성 중독증'이라 하면 그것은 지나친 단자화다.    



반면에 그가 말한 진보가 추구하는 이성이 정의나 공정과 같은 ‘옳은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이 또한 오류다. 정의나 공정의 기원은 플라톤과 공자처럼 질서나 체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보수적인 관점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인권의 기원에서 보듯 ‘옳은 것을 말하는 것’도 보수에서 기원하는 것이지, 진보에서 기원하지 않는다.



또는 그가 말한 이성이 ‘자연의 법칙’이나 ‘우주의 법칙’ 같은 ‘역사의 법칙’이라면 이 또한 오류다. 마르크스와 그의 추종자들이 말한 ‘역사의 법칙’이란 고전물리학과 사회진화론에 근거한 오류이기 때문에, 그것을 가지고 진보의 ‘이성 중독성’을 말했다면 오류에서 오류를 찾아내 비판했으니, 그것은 진리가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 교수는 21세기를 ‘욕망의 시대’라고 하면서, ‘진보의 싸가지 없음’이 부동층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어 선거에서 진다고 했으니, 이는 부동층 전체를 ‘욕망의 노예’로 디스한 것이다. 그가 대중매체의 전문가여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진보와 보수를 넘어 인간을 형편없는 존재로 만들었다. 동아일보 김순덕 논설의원의 글까지 더하면, 칼 폴라니와 니콜라스 카가 말했듯이, 그들에겐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하다.



읽다가 어이없어 덮어버린 책



강 교수의 이런 조짐은 ‘강남좌파’를 형용모순이라 비판한 시절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진보의 덕목을 가난으로 본 것인데, 이성도 그렇게 본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든다. 논리적 오류가 두 개에서 너무나 큰 간격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강 교수가 미국적인 것들에 물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최근에 내놓는 그의 주장을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출몰한다.



대중매체의 본질처럼, 미국적 자유주의자로 변신한 것이 분명한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부분적 표상과 수치들로 전체를 재단하려 한 것에서 나온 속도의 폐해이다. ‘모든 창작은 인식의 조급함’이라는 말이 있는데 강 교수가 그러한 듯하다. 그는 현대 대중매체의 화면ㅡ관점 또는 시각ㅡ을 통해 진보와 보수를 보고, 화면에 비쳐진 것에 좌지우지 되는 존재로서 부동층을 재단한 것은 아닌지 의심이 든다. 



그의 최종 진단도 지극히 미국적 대중매체의 시각을 반영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이토록 망가진 것은 진보의 ‘이성 중독증’ 때문이 아니라, 정치판을 욕망의 장으로 만든 보수의 극단적인 타락 때문이다. 이성은 도덕과 다르며, 보수의 타락은 미국 유학파들(정치, 경제, 사회, 언론)에 의해 주도됐으며, 그 핵심에 겉과 속이 다른 대중매체적 테크놀로지가 있다.



강준만 교수는 이제 마키아벨리적 보수 인사가 다 된 것 같다. 진보 세력한테 논리와 이성을 버리고, 욕망을 추종하는 정치쇼를 벌이라고 충고하니. 부동층의 표를 얻기 위해 진보에게 욕망이란 가면을 쓰라고 하니, 도대체 뭐하자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강 교수에 대한 진중권의 반론 중 “강 교수가 싸가지 소지 의무를 강조하는 걸 보니, 이 사회가 그 사이에 많이 보수화되긴 한 듯”이라고 한 것은 그나마 정확하다.

  1. 중용투자자 2014.09.04 02:11

    틀리다가 아닌 내 생각과 다르다고 표현하는 것이 더 좋을 듯합니다. ^^

    • 늙은도령 2014.09.04 05:24 신고

      그럴 수도 있습니다.
      책을 보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프레시안과 한겨레의 기사를 기준으로 했다고 밝혔습니다.

      책을 사서 읽다가 <강남좌파>와 똑같은 경험을 할 것 같아서 책을 구입할지 망설여집니다.
      강준만 교수의 주장은 좌파에서 전향한 신보수주의자의 주장과 너무 흡사합니다.

      일단 읽다가 처박아 놓은 <강남좌파>부터 마저 읽어야 할 것 같습니다.
      중반까지 읽다가 논리적 모순과 오류 때문에 접었던 책이라 마음이 내키지 않지만....

  2. 리야 2014.09.04 02:33

    다르다고 표현할려면 소위 신문칼럼이나 게재 해야겠죠..

    명백한 오류를 발견하고 틀린걸 다르다는 식으로 표현하면

    개인 블로그의 의미와 추구하는 이상이 글쎄요...퇴색되진 않을까요?^^

    • 늙은도령 2014.09.04 05:30 신고

      책의 내용을 보지 못했기에 <강남좌파>에서 보였던 것들이 프레시안과 한겨레의 기사에 똑같이 되풀이 됐기 때문에 틀렸다고 했습니다.

      만일 이번 책의 내용이 오류를 극복했다면 다르다고 할 수 있겠지요.
      헌데 기사 내용과 인터뷰들을 살펴본 것으로는 틀렸다에 방점이 찍혀 있습니다.
      그의 책은 대중매체를 다룬 것들은 훌륭한데, 너무 다작이라 조급함이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제가 근현대사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일종의 짜집기죠.
      제가 쓰는 근현대사는 처음부터 짜집기를 방법으로 정한 것이라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강남좌파>처럼 강준만 교수의 책은 다르지요.

      저도 진보좌파와 보수우파를 재정의하는 것을 구상은 해두었습니다.
      문재인 의원을 만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확인할 것이 남아 있어 아직 집필로 들어가지 않았지만, 그것이 확인되는대로 글로 옮길 것입니다.

      진보좌파는 분명 재구성돼야 합니다.

  3. 도래 2014.09.04 10:31


    사실 이 칼럼 좀 실망입니다.

    이성과 욕망에 국한해서 정치판을 얘기하자면 볼 것도 없이 욕망이 이깁니다.
    정치에서 이성이란 이념과 편향의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니까요.
    욕망이란 그것이 무엇이든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왕 정치판을 논하는 거라면 좀 고리타분한 학자풍의 서술은 피하셨으면...
    특히 인용이랍씨고 외국 유명 학자들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은 한국에서는 너무나 상투적입니다.
    사실 그런 것이 없으면 한국에서는 잰척을 할 수도 없는 현실이 있기는 하지만요.
    그거 일종의 노예 근성입니다.
    그래서 저는 끝까지 자기 생각 자기 말을 하라 이렇게 주장하겠습니다.
    님은 그 능력이 있을 수 있고 그 능력을 키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여기 무협소설의 잠재력을 본다면.

    만일 이 칼럼이 도령님 재주의 한계라면 한번쯤은 죽었다 깨나는 성장적 위기를 거쳐야만 무언가 진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제 솔직함의 무례를 용서하시길...

    • 늙은도령 2014.09.04 15:24 신고

      내가 아닌 누가 한 말을 내말처럼 사용할 수 없는 것이지요.
      또한 강준만이 말한 이성이나 논리 등을 애기하려면 당연히 그 기원에서 찾아야겠지요.
      그렇게 한 다음에 그것을 어떻게 적용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전 그런 글 쓰는 것의 양심을 지켜야 했습니다.
      외국의 것이라도 그것이 옳다면, 우리나라에는 그 정도의 대가가 없다면 그들의 글을 인용할 밖에요.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정치철학자가 있는지요?
      제가 다른 나라의 정치철학자들을 인용하지 않을 만큼 그 정도의 석학이 있는지요?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인용을 빌리는 것이고, 요즘 지식인들 너무 책을 안 읽어요.
      시대가 빠르게 변한다면서.
      하지만 달라진 것이 정말 있느냐?
      과학기술적인 것 말고는 없습니다.
      오히려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지요.
      강준만은 그것을 말했을 텐데, 그것이 싸가지로 표현되는 것은 지극히 단순환 논리입니다.
      또한 요즘은 남의 것을 자신의 것처럼 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남을 것을 내것이라 할 수 없고, 그들의 것 이상을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하면 그것을 인용하는 것이 글쓰는 사람의 자세라 생각합니다.
      소설과 정치철학은 다릅니다.
      아직도 저는 배우는 중이고, 대가가 되려면 아직 공부해야 할 것이 많이 남았습니다.
      강준만의 글쓰기가 언제나 이런 식이어서 저도 같은 방식으로 대한 것이고요.

      두 번째는 이 칼럼은 프레시안와 한겨레 기사, 동아일보, 라디오 인터뷰 등을 기준으로 썼기 때문에 그 한계 내에서 글을 써야 논리적 비약이 없지요.
      또한 기사나 인터뷰 이상의 것이 첵에 들어있다면 그때는 제대로 된 비평을 하겠지요.

      주어진 것에서 지나친 상상은 비약이 됩니다.
      저는 그 한계 내에서 글을 쓴 것이고, 책의 내용에 따라 제가 틀리 수 있음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 진보와 보수의 정의부터 새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또한 현장에 대한 이해가 병행돼야 한다고도 생각합니다.

      강준만이나 진중권을 보면 학자적 냄새는 나나 거대 조직에 대해서는 너무 몰라요.
      또한 과학기술에 대해서도 지식이 부족해요.
      그래 가지고는 절대 진보와 보수에 대한 이해와 변화, 우리나라의 상태에 대해 이해하기 힘듭니다.
      지금의 보수와 진보는 기득권과 비기득권의 논리가 변형된 것에 불과하게 가고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에 대한 출발부터 변화까지 그 역사에 대해 철저한 이해없이 글을 써요.
      그래서 뒤죽박죽이 됩니다.
      강준만도 진중권도 그런 면에서 다 틀렸다는 것이고, 그 이유는 다음 글들에서 밝힐 것입니다.

    • 도래 2014.09.04 21:21

      국내건 외국이건 석학이라는 부류들이 가르치는 것들, 도령님이나 나와 같은 고수라면 스스로 깨칠 수 없는 것 하나도 없습니다. 그들의 책을 읽을 필요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많이 읽되 나의 사고로 그들의 통찰력을 체내에서 소화시켜 내 말로 내 표현으로 출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내공이 쌓이고 공력이 되는 것입니다.

      정계이건 학계이건 어디든 기득권이 있지요. 기득권이란 허물자고 있는 것입니다. 도령님이나 나나 변방에서 출도하는 사람들은 중앙을 쓸어버리겠다는 반골 기질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개가 없다면 흔한 말로 시체지요. 변혁이고 혁명이고 다 포기해야지요.

      딴 말 필요없습니다. 땅과 하늘을 뒤엎겠다 하겠다, 이겁니다. 이 자신감을 볼 수 있다면 제 말의 의도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도령님의 '내 이야기'를 전부 읽어보았습니다. 큰 한을 키울 수 있는 사람, 그 해원을 위해 초극할 수 있는 사람, 그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미친 사람이 바람같이 왔다 스쳐사라진 셈 치십시오. 무협에 대한 미련으로 단순 독자로서는 계속 방문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분발하십시오.

      아 그리고 이 말 한마디는 추가하고 싶네요.
      노무현 대통령을 향해 느껴지는 뜨거운 마음, 여기에서 강한 동지의식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4.09.05 17:31 신고

      석학의 것들을 내것으로 만들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으면 벌써 했을 것입니다.
      저는 아직 내것이라고 내놓을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제가 접한 사람들 중에 몇몇은 제가 넘을 수 없는 수준에 있어서 그들을 넘을 수준에 이르면 그때는 본격적으로 재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헌데 그런 수준에 이르지 못할 것 같습니다.
      어차피 제 목표는 푸코와 벤야민인데 21세기의 제가 20세기의 그들만큼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저를 높이 사준 점은 고맙습니다.
      지금의 제 수준으로도 누구와도 토론하건 내목소리를 내건, 어느 정도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제 목표는 그 이상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더 공부하고 더 쉽게 글을 쓰는 법을 몸에 익혀야 합니다.

      지금까지 공부해온 것들을 한 번은 털고 가야 할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과정을 통해 제 소리가 나오겠지요.
      저는 건강상의 문제 때문에 느긋하게 갈 생각입니다.
      어차피 지금은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지구적 차원의 변화를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TV를 끄고 책을 읽는다면 모를까 그것 또한 불가능하기 때문에 조금은 천천히 갈 것입니다.

      때가 있으리라 봅니다.
      때를 만들어내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은 제 능력 밖입니다.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지적으로도 철학적으로도 건강상으로도 모두 그렀습니다.

      요 며칠 급성장염 때문에 너무 아프다 보니 다른 생각이 들지 않네요.
      일단 급성장염부터 잡아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이런 분이 다시 나오지 않을 것으로 보입니다.

      헌데, 최근에는 문재인 리더십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정한 강함이 무엇인지 보여줄 수 있는 리더십이 아닌지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4. 여강여호 2014.09.04 20:03 신고

    미디어 전문가로서 철저하게 대중문화적 관점에서 정치를 분석한 듯 하네요.
    과거에 쓴 책을 상기해 보면
    강준만 교수의 정치 성향의 변화가 엿보입니다.
    근데 우로 너무 많이 갔네요.

    • 늙은도령 2014.09.05 17:35 신고

      엄청 나갔습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수준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조급함이 느껴집니다.
      꼴통 좌파만이 좌파의 모든 것이 아니고, 민주주의를 놓고 좌우를 봐야 하는데 그것을 깨닫을 수 없을 만큼 경직된 것 같습니다.
      다작의 폐해가 스스로 바닥을 드러내는 것인데, 강준만의 경우 바닥이 보입니다.
      그가 숲은 나두고 나무를 갖고 이렇다 저렇다 하니 숲을 논할 차원에 이르지 못함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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