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전에 나와 이명박 정부를 옹호하느라 곳곳에서 논리적 오류와 궤변을 쏟아내고 있는 박형준이 오늘의 썰전에서도 문재인 정부의 복지 확대와 큰 정부(공무원 증원이 대표적)를 비판하며 북유럽의 복지역사에 대해 신자유주의적 궤변을 쏟아냈습니다. 필자가 여러 편의 글에서 말했듯이 북유럽의 복지국가도 신자유주의의 공격에 노출됐지만, 유시민의 반박처럼, 1930~60년대에 걸쳐 구축된 체제가 거의 변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습니다.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압축적인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책은 북유럽의 복지사를 다룬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이며, 박형준이 말한 북유럽의 복지국가 1.0(메리 힐슨의 《노르딕 모델》를 참조하라)의 문제가 큰 정부가 아닌 공무원의 관료주의ㅡ신좌파의 68혁명이 무너뜨리고 싶어했던ㅡ와 그에 따른 복지사각지대의 출현, 거대노조의 보수화와 기득권화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북유럽이 말하는 복지국가 2.0은 이런 부분을 고치는데 집중돼 있지 공무원을 줄이고 노동유연화를 확대하는데 있지 않습니다. 



박형준의 헛소리는 대한민국 특유의 사이비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하는데,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등을 제외하면 무식하기로 유명한 미국의 경제학자들(시카고학파의 후예들, 조금 어렵고 재미없지만 《시카고학파》라는 책을 참조할 것, 현대의 경제학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알고 싶다면 《죽은 경제학자의 만찬》과 《경제학의 5가지 유령들》에 도전해 보는 것도 괜찮다)의 주장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인 결과입니다. 



복지국가를 공격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증명해보였듯이, 최대 99%(불로소득의 경우, 미국에서는 3대에 이른 상속에는 100%를 부과해 모두 환수한 적도 있었다. 시카고학파의 시조격인 프랭크도 상속세는 상속금액이 제로가 되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평균 80%대를 유지했던 고율의 누진세와 상속세를 20%대로 내렸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불평등과 차별, 경제대침체는 변방의 학문에 불과했던 신고전파 경제학을 추종한 대처와 레이건, 슈뢰더의 죄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는데, 박형준은 여전히 이들에게서 배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위 99%의 부를 상위 1%로 이전하는 역계급혁명의 성격을 지닌 신자유주의를 추종하는 자들의 공통점이 지난 40년 동안 극단적인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해온 낮은 세율에 대해서는 침묵한다는 것입니다. 독일을 제외한 서유럽의 복지선진국들과 미국의 불평등과 차별이 자유방임의 19세기에 근접할 정도로 커진 것도 낮은 세율 때문입니다. 마샬의 사회권과 베버리지 경의 <베버리지 보고서>를 탄생시킨 복지이론의 원조국인 영국의 복지가 폭망한 이유를 밝힌 다니엘 돌링의 《불의는 무엇인가》를 통해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피케티가 수집한 자료의 상당 부분을 제공한 리처드 윌킨스와 케이트 피킷의 《평등이 답이다》와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를 봐도 큰정부와 누진적 세율, 평생고용(일본) 등을 통해 소득 분배와 부의 재분배를 적극적으로 실시한 국가의 행복도가 높다는 증거들이 수없이 나옵니다. 유럽의 복지후진국이었던 독일이 북유럽에 버금가는 복지를 제공할 수 있었던 것을 다룬 《통일 독일의 사회정책과 복지국가》도 박형준의 주장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말해줍니다. 





특히 《평등이 답이다》를 보면 미국의 50개 주 중에서도 유럽의 복지정책을 도입한 주일수록 각종 지수에서 행복도와 삶의 질이 높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엔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을 추종한 블레어와 클린턴, 슈뢰더의 신노동당 정책(노동복지 또는 생산적 복지)이 신자유주의의 폭주에 길을 열어주었고, 복지체제를 개판으로 만들어버렸으며, 노조를 박살냈다는 증거들을 제시한 책들과 논문들도 수없이 많습니다. 박형준의 주장과는 달리 슈뢰더가 독일의 부흥을 이끈 것이 아니라는 것은 독일의 경제학자들이 책을 보면 얼마든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형준 같은 사이비 학자들과 보수우파 경제학자들이 최초의 국가복지를 제공한 것이 비스마르크라고 자랑하지만(니얼 퍼거슨의 《금융의 지배》가 출판된 이후 이런 주장이 판을 쳤다), 정부가 제공하는 최소한의 복지를 통해 국민을 노예화하는 것이 목표였다는 것을 폭로한 책들도 많습니다. 유시민의 말처럼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30~60년대에 구축된 '노르딕모델'이 거의 변하지 않았으며, 박형준의 주장을 박살낼 수 있는 증거들은 너무나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노무현 참여정부는, 대단히 아쉽지만 엔서니 기든스류의 《제3의 길》을 복지정책의 근간으로 삼았으며, 이때의 실패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은 북유럽과 독일에서 시행 중인 복지국가의 정책 중에서 노통이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없었던 것들을 집중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편성해놓은 예산으로 불가능한 복지들은 문통의 의지가 반영된 내년의 예산과 확대재정으로 실시하되, 추경과 예비비, 청와대와 정부의 예산절감으로 할 수 있는 복지부터 하고 있는 것이 현재까지의 상황입니다. 국민이 복지확대를 체감할 때만이 추가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가능한 것이고요.  



사이비 학자나 지식인들을 걸러낼 수 있는 지적검증부대(나심 탈레브의 《블랙스완》를 참조하라)가 없는 관계로 박형준 같은 자가 학자인양 떠들어댈 수 있는 것이지만, 사이버세상에서 최고의 정보와 지식들에 자유롭게 접근하고 해독할 수 있는 디지털세대에게는 그의 궤변이 통하지 않을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유시민이 오늘의 썰전에서 이전과는 달리 박형준의 궤변에 날카로운 일침을 가한 것도 이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박형준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지금까지 많이 봐주기도 했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8.18 08:29 신고

    박형준이 나와 영 질이 떨어졌습니다
    재방으로 봐도 잠 옵니다

  2. 참교육 2017.08.18 09:20 신고

    기레기뿐만 아닙니다. 사이비 지식인 사이비 종교인 사이비 교육자..등 사이비가 판치는 세상입니다.

  3. 동우 2017.08.19 10:38

    유 작가님과 전 변호사님의 호불호가 있긴 했지만 ..그래도 핵심을 관통하는 토론을 보면서 시원함을 느꼈었는데
    지금은 박형준씨로 바뀌면서 고구마같더라구요.



    • 늙은도령 2017.08.20 01:44 신고

      박형준은 문재인 정부의 모든 정책을 물타기하는 수준의 말만 합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시청률을 생각해야 하는 유시민의 입장에서 죽을 맛인 것이지요.
      헌데 더 이상은 안 되겠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받아줄 수 있는 궤변에도 한계가 있으니까요.

  4. Soonok park 2017.08.22 13:08

    아무리 꼴통보수이래도 제발 상식적인 얘길 하시오!

  5. 이응이응 2017.09.28 12:41

    한쪽은 유시민이 궤변 한쪽은 박형준이 궤변,, 한쪽말만 들으면 이쪽이 옳은것같고
    내말 아님 다른사람 말은 다 적폐 비정의 !! 이런쪽으로 점점 세상이 돌아가는것같네요

  6. 이응이응밥보 2017.09.28 12:58

    유시민 궤변? 박형준 궤변?
    이응아!너바보니?
    궤변을 구분도 못하면서 웬 궤변타령?


자본주의는 가정에서 이루어지는 무임노동의 가치를 반영하지 않은 것에서 출발하고 구축됐습니다. 주로 전업주부에게 떠넘겨진 이런 일방적 희생의 강요는 포드주의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첫 번째 전성기(산업혁명의 초기에서 1929년의 경제대공황까지)와 고율의 누진세로 대표되는 자본주의의 두 번째 전성기(1945~1973년)를 제외하면 노동자에게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자본이 노동을 필요로 할 때만 노동자는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발견한 마르크스마저 이런 구조에 대해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점에서 좌우 모두가 노동자를 지옥으로 내모는 결과를 도출하기도 했습니다. 자본가(기업가 포함, 이후 자본가)들은 그렇게 자본주의의 실질적 기반인 노동의 재생산을 가정(전업주부)에 떠넘김으로써 노동자를 착취해 무서운 속도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고, 세습까지 가능해지면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무력화시키는 기득권체제를 구축할 수 있었습니다. 



노동자의 실질임금은 지속적으로 하락했으며, 누진세의 무력화는 긴축재정(케인즈주의의 실패로 이어졌다)과 복지 축소(저임금·비정규직의 무한경쟁으로 귀결됐다)로 이어졌습니다. 남성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신분 상승이나 새로운 중산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것에서 부부가 맞벌이를 하고 자식들이 알바를 뛰고도 중산층에 진입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불평등과 초장기 경제대침체 야기하는 주범인 소득의 분배와 부의 재분배의 악화는 소수의 자본가에게 천문학적인 부를 안겨주었습니다.



이들의 넘쳐나는 돈들은 거대금융과 투기자본으로 흘러들어가 전 세계를 투기시장으로 만들었습니다(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것). 이들은 또한 1973년을 기점으로 미국의 브르킹스 연구소와 미국기업연구소, 영국의 아담 스미스 연구소 같은 보수우파의 두뇌집단을 지원함으로써 복지변방의 정치경제학이었던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는 기반을 다졌습니다. 이 때문에 부의 불평등은 지속가능한 공존이 불가능할 정도로 나빠졌고, 가난과 빈곤은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졌습니다.



상위 1%에 부가 집중됨에 따라 절대다수의 노동자와 근로자들은 낮은 임금의 나쁜 일자리를 두고 피터지는 무한경쟁을 벌여야 했습니다. 경제가 나빠지면 소수의 자본가들은 하위 30~50%%의 지갑을 털어 그들의 잘못으로 날려버린 돈을 만회하곤 했습니다. 빈곤층으로 추락한 하위 30%는 최저임금 이하의 일들을 찾거나 시장경제 밖으로 밀려났습니다. 세계경제의 규모는 폭발적으로 늘어났지만 그 과실은 상위 1%에 집중되고 그들의 종복인 체제의 간수들에게 일부의 돈이 흘러갔습니다. 낙수효과는 이들과 금융업게 일부에게만 적용되는 경제학의 최대사기였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 각국 정부는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느라 생활임금의 의미를 지녀야 할 최저임금을 생존선 근처에 맞춤으로써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의 삶을 최악으로 만들었습니다. 한 번 떨어진 세금을 다시 올리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대의민주주의의 최대 약점) 보수정당과 기득권 언론, 사이비 경제학자들의 악착같은 요구로 부자감세와 법인세 인하까지 단행했습니다. 이 때문에 형편없는 최저임금에 허덕이는 저임금노동자에게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복지도 늘릴 수 없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시너지효과를 발휘하면서 부의 불평등은 자유방임 자본주의가 횡행하던 19세기에 근접할 정도로 커졌습니다. 우주 규모의 재산을 축적한 자본가들은 넘쳐나는 돈으로 전 세계를 넘나들며 투기를 일삼았고, 특히 부동산가격을 높임으로써 건물주의 이익은 계속해서 늘려주었지만, 청년세대와 소상공인의 소득은 최저임금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나빠졌습니다. '조물주 위의 건물주'라는 최악의 유행어는 이렇게 탄생했습니다.



이때부터 서로 연대해 자본가들과 싸워야 할 노동자(비정규·정규직 공히)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소상공인과 싸우는 '공멸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부부는 물론 자식까지 아르바이트를 해야 겨우겨우 살아가는 가정이 늘어남에 따라 최저임금 이하에도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구르는 예비노동자들이 넘쳐나는 악순환의 고리가 구축됐습니다. 저임금노동자와 예비노동자, 소상공인들(필자는 이들은 '빈곤의 삼각편대'라 한다) 사이에서 빈곤으로의 무한경주가 일상화된 것입니다. 



토마 피케티가 《21세기 자본》에서 분명하게 입증했듯이 저성장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고령화사회로의 빠른 진입은 '빈곤의 삼각편대'의 규모를 빠르게 늘리고 있습니다. 빛의 속도로 늘어난 가계부채는 이런 배경 하에 이루어진 것으로, 이명박근혜 정부는 저금리를 유지함으로써 이들을 빚의 늪으로 더욱 깊이 끌어들였습니다. 가계의 실질소득이 마이너스로 돌아서면서 내수경제는 갈수록 나빠졌고, '빈곤의 삼격편대'는 더욱 피터지는 싸움을 벌이는 것으로 생존을 이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저임금을 2020년까지, 아니 가급적 그 이전이라도 1만원까지 인상하려는 것은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으려는 것입니다. '빈곤의 삼각편대'가 서로의 살을 갉아먹는 싸움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그런 다음에 내수경제를 살려내려면 최저임금의 정상화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피해를 입는 소상공인에게는 정부의 지원을 늘리고, 월세의 보장기간을 연장하고, 높은 카드수수료율을 인하하는 등 추가적인 조치도 강구하려는 것입니다. 세제개편안이 나오면 더욱 늘어난 지원책이 모습을 드러낼 것입니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세청의 업무를 정상화시켜 소상공인의 피를 빨아먹는 프랜차이즈 대기업과 재벌의 골목상권 파괴와 지배에 제동을 걸고, 고소득 자영업자와 전문직들의 탈세를 철저하게 단속함으로써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폭풍을 잠재우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작업의 끝에는 부자증세와 법인세 인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총선으로 여대야소가 될 때까지 대통령의 행정권을 중심으로 노동자의 천국이었던 자본주의 전성기 때의 복지국가를 향해 차근차근 전진하려는 것이고요. 



이런 방식으로 문재인 대통령이 꿈꾸는, 촛불혁명이 명령한 '완전히 새로운 대한민국'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이밖에도 최저임금을 최단기간 내에 1만원으로 올릴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이 부분은 박원순 시장이 최고수다! 그의 빛나는 아이디어들은 가히 예술의 경지에 올랐다. 문재인 대통령이 박원순 시장의 아이디어와 정책을 벤치마킹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내수경제를 우리의 경제규모에 맞는 정도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많습니다. 심민의 압도적인 지지만 있다면, 자유한국당과 조중동문, 자본가, 사이비 경제학자들의 격렬한 반발을 뚫고 이 모든 것을 이룩할 수 있으며, 그것이 바로 촛불혁명이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이기도 합니다. 



신자유주의는 하위 99%의 돈을 상위 1%로 이전시키는 역계급혁명을 하기 위해 '빈곤의 삼각편대'가 피 터지게 싸우도록 만들었는데, 탈조선으로써의 대한민국이 그 중에서도 으뜸이었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실패를 바라는 수많은 언론과 자유한국당에서 쏟아져나오는 거짓되고 왜곡되고 호도된 정보에 속지 마십시오. 여소야대의 상황이지만, 공약을 모두 다 지키려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80%대를 유지하고 민주당의 지지율이 50%대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것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7.19 08:18 신고

    최저 임금을 올리기 싫으면 생활 물가를 확 낮추던지 해야 하는데
    그러기는 쉽지 않을것입니다

    그리고 최저임금 적용을 법으로 확실히 규정시켜야 합니다
    최저 임금 못 받는 사람 아직도 수두룩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7.19 15:56 신고

      생활물가는 차차 잡아가면 됩니다.
      일단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물가상승을 걱정하지만 유통과정을 철저하게 관리하면 올라간 물가도 내려옵니다.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쪽은 강화된 단속으로 보완할 것입니다.
      이명박근혜 9년 동안은 하지 않은 일이지만 문재인 정부는 할 것입니다.

  2. 추노 2017.07.19 09:09

    불균형의 심화를 아직도 일반인들이 절실히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 교육의 현실을 새삼 되돌아보게 됩니다.
    아직도 어린이들을 줄세우기 교육의 장으로 내몰고 있는 젊은 세대들이 진정 무엇이 문제인지를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신자유주의에 일조한 부패한 언론과 거짓 지식인들이 극소수의 부자들을 대변하는 나팔수로서의 역활을 충실히 해오고 있다는 사실을 언제쯤 깨닫게 될지요.
    급속히 줄어들고 있는 빵조각을 놓고 벌이는 쟁탈전의 종착지는 어디가 될까요.
    미래세대를 위해서라도 치열한 경쟁(순위메기기 교육을 통한) 속에서의 생존이 아닌 불합리한 사회구조를 개혁하고 정의가 살아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라는 단순함을 알려주어야 할 교육의 부재는 언제쯤 해소될 수 있을지요.
    언뜻 자녀는 부모의 뒷모습을 보면서 자란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부모들을 보면서 자녀들은 어떤 생각을 (순위메기기에 빠진 교육하에서 그럴 틈이 있을지 의문스럽긴 하지만) 하고 있을까요.
    이제부터라도 자녀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여야겠습니다. 솔직히 우리 세대의 잘못을 인정해야만 할 것같아서 말입니다.
    늙은도령님 덕분에 조금씩이나마 반성하는 계기(그러다보니 주절주절 못난 글들을 올리고 싶어졌습니다.)를 갖게되어 감사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들을 부탁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7.07.19 15:58 신고

      문재인 정부 5년과 그 이후의 진보민주정권이 집권하면 얼마든지 해결이 가능합니다.
      우리는 조세정의만 바로잡아도 지금보다 잘살 수 있으며 청춘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교육도 그럴 경우에는 제자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셔도 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약을 반드시 지키겠다는 의지가 너무 강하니 하나씩 해결해나갈 것입니다.

  3. ㅁㅁㅁ 2017.07.19 14:57

    https://brunch.co.kr/@jonnaalive/59

    글쓴이님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는 여기 이 블로그도 한 번 보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실제 수치와 데이터들을 기반으로 다른 시각을 펼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7.19 16:00 신고

      데이타를 저도 얼마든지 마사지할 수 있습니다.
      통계학적 수단이 들어간 것들은 자신의 주장에 맞게 가져다 쓸 수 있습니다.
      그것이 계량경제학의 기본이니까요.
      저처럼 통계학을 별도로 공부한 사람의 눈에는 마사지한 부분이 보입니다.
      그런 식으로 노동자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넘어갈 정도로 경제 관련 지식이 형편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미안하지만 님도 속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북유럽 국가들은 노선을 바꿨다. 국가가 복지서비스를 확실히 제공하던 전통을 버리고 점점 더 혼합형 복지모델로 갈아타고 있다…이는 공공복지가 소수를 위한 것이 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소수를 위한 복지는 니쁜 복지가 될 위험성이 있다. 동시에 복지국가의 정통성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ㅡ 벤트 글레베, 비에란 발의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에서 재인용





촛불혁명의 목표 중 하나가 북유럽 모델에 근접한 선진복지국가라고 한다면 북유럽 4국(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핀란드)이 30년 가까이 이어져온 신자유주의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위의 인용문에 나온 '혼합형 복지모델'은 고부담(고세율)·고복지로 알려진 북유럽 모델에, 저부담(저세율)·저복지로 알려진 시장모델(미국과 한국, 엥글로-색슨 모델)과 중부담(중세율)·중복지로 알려진 직장에 바탕을 둔 모델(독일, 유럽대륙모델)이 침투하는 바람에 높은 수준의 공공정책과 복지서비스가 후퇴한 모델을 말합니다. 



'복지국가는 경제적·사회적 분야에서 시장의 힘들과 민주적 통제 사이의 권력투쟁 사이에서 벌어진 권력투쟁의 결과물'입니다. 상충하는 이해관계들의 권력투쟁이 계급타협(자본과 노동의 타협)을 이끌어내면서 구축된 복지국가는 '노동운동의 발흥과 정치적 민주주의의 약진'을 불러왔고,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의 입장에서 보면 경제적·사회적 안전과 인간의 존엄성과 시장의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를 획득하는 투쟁'이었습니다.



'복지국가가 구축되면서 국민의 전반적인 삶과 근로조건을 크게 개선시켰습니다. 국민의 건강과 기대수명, 사회적 안전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국민들로 하여금 머리를 꼿꼿치 들고 삶을 자신 있게 살도록 만들었고, 사고나 질병 또는 실업의 불운에 처해서도 굽실거리지 않도록 만들어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자본에 대한 노동의 힘,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항세력의 힘(연대에서 나온다)이 보편적 복지국가라는 계급타협을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런 면에서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보면, 그가 책의 모든 부분에서 대항세력의 복원을 강조했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북유럽 모델까지 포함해 복지국가의 파괴와 축소를 목표로 각국 정부(좌우와 진보보수를 가리지 않고)와 손잡은 신자유주의세력의 맹공을 효과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것도 대항세력이 대처-레이건-슈뢰더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정부에 의해 와해됐거나 상대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촛불혁명은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고사 직전에 이른 대항세력을 되살려낸 최초의 성공한 혁명입니다. 그 첫 번째가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박근혜의 구속이며, 그 두 번째가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입니다. 촛불혁명은 정권창출을 통해 권력균형의 추를 시민과 노동자 쪽으로 기울어지도록 만들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과 지난 한 달 동안 이루어진 각종 변화들은 대항세력에 힘을 실어준 촛불혁명의 성공에서 나올 수 있었습니다.  



헌데 이런 흐름에 처음으로 브레이크가 걸렸습니다. 안경환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자신사퇴한 것입니다. 42년 전의 위장결혼도 정치검찰이나 법원행정처(사법부의 핵심 엘리트가 모인 곳, 이들이 사법부의 권위적 보수화를 이끌고 있다)의 도움을 받은 주광덕과 TV조선의 협공에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인사실패가 결정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지지율도 10% 가량 떨어졌습니다. 정치검찰과 법원행정처, 기득권언론(조중동문과 종편, MBC와 KBS, 연합뉴스), 자유한국당, 재벌이라는 이땅의 특권층들이 '문재인 죽이기'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입니다.



정치검찰과 법원행정처는 새로운 법무부장관 후보자를, 기득권언론은 모든 후보자와 방통위원장을, 자유한국당은 추경 심의와 후보자들의 청문보고서 채택 거부를, 재벌은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문재인 죽이기'에 전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런 담합과 역할 분담의 방식으로 국민들을 현혹시키거나 실망시키며 두세 달을 끌어갈 수 있다면, 그들의 목표인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을 50% 밑으로 끌어내릴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문재인이 제2의 노무현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습니다. 깨어난 시민들도 문재인을 지키내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정부의 노골적이거나 직·간접적인 도움도 계속될 것입니다. 북한에 대한 미국과 일본의 압박이 강해지거나, 이에 맞서 북한이 군사적 도발이라는 미친 짓거리를 멈추지 않는다면 문재인 정부는 급격한 레임덕으로 빠져들 수 있습니다. 촛불혁명은 더 이상의 동력을 제공할 수 없습니다. 





필자는 다음주가 분수령이 되리라고 봅니다. 지지율이 또다시 떨어진 것으로 나오면 문제는 심각해집니다. 불리한 여론환경과 여소야대의 상황, 검찰과 법원행정처의 반발, 재벌의 후방지원 등을 고려할 때 문재인 탄핵론이 빈번하게 언급될 수 있습니다. 4명의 후보자들이 청문회에서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해명에서 국민을 설득시킬 만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내각과 정부조직개편은 끝없이 늘어질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깨어난 시민과 촛불시민에게 손을 내밀었습니다(이어지는 글에서 자세히 다룰 생각). 그의 방식은 너무나 탁월해 위기 돌파의 가능성을 높이고 있지만, 그것에 시민들이 손을 잡아주지 않으면 문재인의 몰락은 노무현보다 빠를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아무런 문제도 제기되지 않았던 책들에서 뒤늦게 시비거리를 만들어낸 탁현민(국민을 감동시킨 문재인 정부의 행사를 담당) 논란도 문재인 대통령에게는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믿어줘야 할 때이며, 문재인 대통령이 손을 내민 방식을 극대화시켜야 합니다. 다음주가 문재인 대통령의 첫 번째 위기가 될 것이며, 오직 시민만이 이를 막을 수 있습니다. 지금은 무조건 믿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강경화 외무부장관에게 '실력으로 보여달라'고 주문했듯이, 4명의 후보자들이 약간의 하자가 있다고 해도 문재인 대통령을 믿고 그들이 실력으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는 짧게는 내년 지방선거 전까지, 길게는 3년 후의 총선까지 이어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적폐청산과 국가개조를 통한 선진복지국가로의 진입이 가능하게 됩니다. 대항세력으로서의 촛불혁명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인류사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문재인을 믿듯이, 문재인이 선택한 사람들을 믿어주십시오. 믿어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리하여 어떤 결과를 만들어내는 지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둘리토비 2017.06.25 22:45 신고

    결코 좌시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 촛불을 켜는 것도 생각하고 있구요.

    특히 자한당의 저 쪽바리 짓은 더더욱 용납 할 수 없죠.
    5행시에 물론 참여했구요. 앞으로도 SNS에 적극 참여하려고 합니다

  2. 참교육 2017.06.26 08:18 신고

    결국 자본이 주인인 세상으로 가자는 얘기 아닐까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6.26 08:30 신고

    자위한국당을 해체시키는 촛불이 한번 더 타 올라야 합니다
    기득권 세력들의 반발,반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노르웨이의 노동운동가인 아스비에른 발의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보면 선진복지국가의 대명사인 북유럽 모델이 상당한 손상을 입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다수의 진보주의자들이 유토피아에 근접한 국가처럼 생각하는 스웨덴·노르웨이·덴마크·핀란드의 복지모델도 30년에 걸친 신자유주의의 전방위적 공격에 시달리면서, 성공한 모델로써의 지속가능성에 의문부호를 표할 만큼 상당한 균열을 일으켰다고 고백합니다. 





이 때문에 '고세율의 국가들이 저세율의 국가들에 비해 사회적 목표들을 더 잘 달성했으며, 경제적 손상을 입지 않으면서도 그런 성취를 이루었다'는 '캐나다 경제대안연구소'의 2006년 보고서가 무용지물로 떨어질 위기에 처했음도 고백했습니다. 법인세(20~25%)는 낮지만 소득세(40~50%)와 간접세가 높기 때문에 모델의 붕괴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노동조합의 약화와 자본규제의 철폐, 자유로운 자본 이동, 국영기업의 민영화, 노동유연화, 각종 업무의 아웃소싱 등으로 북유럽 모델이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는 사실도 밝혔습니다.



프랑스혁명 때 처음으로 요구된 8시간 노동이 1919년의 러시아혁명과 과격한 노동운동 때문에 권력균형이 노동자에게 넘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고용주들의 양보로 가능했듯이, 복지국가도 사회주의(공산주의 포함)에 대한 자본주의의 우위를 지키려는 고용주와 노동자(와 정부) 간의 2자 또는 3자의 계급타협으로 탄생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맹공이 계급타협을 이끌어낸 권력균형을 무너뜨려 고용주와 시장으로 넘어가도록 만드는데 집중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신자유주의에도 좌파적 버전과 우파적 버전이 있는 것처럼, 신자유주의적 조치를 단행한 정부들도 좌우를 가리지 않았습니다.대처-레이건-슈뢰더라는 영국과 미국, 독일의 보수우파정부가 결정적이었지만 '사회민주주의자들과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참여한 정부'에서도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 단행됐습니다. 노동조합의 관료들과 기득권노조도 힘을 보탰습니다. 유럽과는 상황과 내용이 다르지만 김대중과 노무현의 민주정부 10년에도 신자유주의적 조치들이 단행된 것도 국제적인 흐름으로 볼 때 이상한 것도 아닙니다.



공공복지제도에 대한 신자유주의의 공격이 미국과 영국, 뉴질랜드와 오스트레일리아는 물론 일본과 대한민국, 페루 등처럼 '사회적 안전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지출의 비용이 가장 낮은 국가들'에 집중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선진산업국이라고 해도 공공복지지출이 낮은 저세율 국가일수록 신자유주의의 공격 앞에 무력했다는 뜻입니다. 대표적인 고세율국가인 북유럽 4개국이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나름대로 선방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바로 이점에서 증세를 다룬 오늘의 썰전이 유의미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시민 작가의 주장처럼, 법인세 인상보다는 실효세율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 부의 재분배의 핵심인 자본이득과 임금소득에 대한 누진적 증세와 단계적인 간접세 인상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러고도 재원이 부족하다면 법인세를 인상해야 합니다. 공공분야에서 시작해 민간분야로 이어지면 최상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소득의 분배)과 함께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하는 유일한 길임에는 이견이 있을 수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어느 국가보다 신자유주의적이고 분단비용으로 들어가는 비용이 엄청나지만, 저세율 국가라는 점에서 희망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용주와 시장으로 넘어간 권력의 균형추를 민주정부와 시민(노동자 포함)에게 가져온 촛불혁명 덕분에 사회적 합의를 통한 어떤 모델로의 진입도 가능합니다. 유시민 작가가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에 희망적인 견해를 표한 것도 이 때문이며, 그것만이 국민의 삶은 안중에도 없는 자유한국당과 기득권 언론의 발목잡기를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지금이 아니면 다음의 기회란 없습니다. 촛불혁명으로 탄생한 문재인 정부가 아니면 다음이란 없습니다. 해서 다시 한 번 말합니다,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7.06.24 09:00 신고

    법인세 실효세율을 빨리 올려야 합니다
    기업에서는 벌써 준비를 하고 있을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7.06.25 18:37 신고

      실효세율 올리고 소득세에 대한 누진증세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고소득자에 대한 구간을 늘리고 올려야 합니다.

  2. 세나 2017.06.25 19:02

    진보가 집권하자마자 기본소득제 전격도입, 기득권 재벌해체, 기간산업 모두 국유화, 최저임금 수배인상하여 유토피아를 건설한 나라가 베네수엘라죠.. 한국도 늙은도령님의 복지정책을 받아들인다면 아시아의 베네수엘라가 될수 있을 터인데.. 아직 적폐들이 기득권을 놓치 않으려는 저항이 만만치 않습니다. 힘내십시오 도령님..


먼저 답부터 말하면, 'No'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잠시동안의 사회주의가 등장)만이 자유의 왕국(과학적 공산주의, 무계급사회, 개인의 발전이 모든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세상,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가는 사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복지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아편이라고 했던 종교(국가의 영속에 기여)처럼, 국가가 혁명의 주역인 노동자에게 복지를 많이 제공할수록 폭력혁명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질 자유의 왕국에 이를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국가가 부르주아의 이익만 대변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상부구조로 법률과 문화, 교육, 도덕 등이 포함된다)마저 폭력혁명을 위한 선동의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마르크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만이 인류 해방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모든 것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복지의 일종으로 자본가와의 타협(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비판한 부르주아 사회주의)을 뜻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은 역사 발전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만 한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에게는 계급들이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이익을 재분배하는 계급타협, 즉 모든 국민에게 인간으로써의 존엄한 삶을 제공하는 복지국가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악마(부르주아)와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패배를 의미했고, 부르주아 지배(노동착취에 따른 자본축적, 로자 룩셈부르크그의 《자본의 축적》을 참조)의 영속을 의미했으며, 역사의 법칙에 어긋난 잠시동안의 도피에 불과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전의 과실(잉여 가치)을 자본가가 독점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술 발전이 마지막에 이르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노동착취와 자본축적이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이때에 이르면 자본축적을 위한 소수 자본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부르주아를 제외한 모든 계급에서 충원될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추상의 핵심에는 기술 발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기술 발전이 없었으면 잉여가치를 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넘겨주는 자본주의가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마르크스의 추상도 기술 발전에 대한 탁월한 이해(지금에서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는 어림짐작, 마르크스가 푸리에, 푸르동, 오언을 비판한 것과 똑같은 논리로 마르크스를 비판하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추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작금의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이끌고 있는 4차 산업혁명입니다.         





마르크스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나노공학, 유전공학, 로봇공학이 핵심)이 인류에게 재앙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을 최고로 이끌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종류의 노동을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처럼, 노동의 종말이 도래합니다. 고용주가 아닌 임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임금소득이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특이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초인공지능(=강한 인공지능, 인간을 넘어 신에 근접한 지능)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의 뇌를 거의 대부분 재현해낼 '약한 인공지능'(알파고는 낮은 단계의 약한 인공지능에 속한다)과 인간의 손동작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 만나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릅니다. 늙고 아프고 불평하는 인간의 불완전 노동을 로봇의 완전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은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인공지능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거의 모든 부가 독점됩니다. 부의 불평등이 거의 무한대에 이르며, 우주로 진출하는 것을 빼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축적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마르크스의 추상이 맞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한 '액체자본주의'(액체근대)로 빠지지 않고, 숫적으로 최대치에 이른 가난하고 소외됐지만 공산당과 전위에 의해 교화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의 주장처럼 임금소득이 제로에 처하게 될 99.9999%의 국민들에게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기본소득이 제공되는 타협점(새로운 복지국가 또는 칼 폴라니와 미셀 푸코의 정치경제관에 가까운 사회의 복원)에 이르지 않고, 모든 노동착취와 자본독점을 끝장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마르크스라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가 마르크스 비판에 나선 것은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경제대침체 때문에 마르크스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예언을 무색케 만든 북유럽 모델도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겨우겨우 명백을 유지하는 처지로 내몰렸고, 부의 불평등을 극대화할 4차 산업혁명까지 목전에 도래했으니 마르크스로부터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 폴라니, 한나 아렌트,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토마 피케티로 이어져온 마르크스 비판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더하면 새로운 복지국가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경제가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온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각성과 성찰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기술 발전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의 도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적 세율 인상을 전제로 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계속될 글에서 이에 대해 다루겠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한다!)로 소득의 분배를 이룩할 문재인 정부에 이어 부의 재분배에 성공해야 할 다음 정부에서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내년의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견인할 민주당의 압승은 필수라고 할 수 있으며, 이재명의 경기지사(또는 서울시장) 출마는 안희정의 중앙정치 복귀와 함께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념을 말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의 실현(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다음, 그 다음의 정부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이명박근헤 9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깨어난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에도 꼴통이 있는 것처럼 진보좌파에도 꼴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의 좌절이 보수우파의 맹공보다는 진보좌파의 공격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노동조합에도 보수우파가 있으며,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기득권에 편입된 사례로 많습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신좌파의 68혁명이 양쪽을 모두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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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허니빳다 2017.06.25 02:42

    작금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북유럽의 형태를 따라갈것 처럼 보입니다. 차이점은 북유럽처럼 우리보단 오래 성숙된 시민의식에 의해서는 아닌것 같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좋던 싫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팩트를 어쩔 수 없이 접하면서 자연적으로 이전의 조작된 정보에 잘 안 속게 되다 보니 그런것 같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소위 "수구꼴통"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겠고요. 다만 말씀하신 수구좌파들이 문제인데 얘네들이 주류로 못갈지언정 일정 부분 점유율은 유지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게 항상 옳고 그름으로만 접근하는거 아니니까요.

    맑스야 비참하게 갔지만 그 이후 시대에 그 달콤함이 큰 반향을 일으켰듯이 지금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맑스같은 헛소리에 여전히 달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쩔 수가 없을것 같고요. 다만 저 "수구꼴통" 세력이 아직도 매우 견조한데 저 세력이 힘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수구좌파들이 그 일정 비율을 유지하는 것을 이용해 훼방을 놓아서 다시 "수구꼴통"들이 집권하는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막아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구좌파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수구좌파는 기독교와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같은 종자들로 보입니다.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는 무교나 불교나 타종교는 접근 안합니다. 오로지 기독교에 접근해서 신자들을 빼갑니다. 지들 입장에서는 무교나 불교신자를 빼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방법을 택한거겠지요. 방법론에서야 문제가 없지만 종교나 정치에서는 이런 편법은 대의명분에 정당성이 없어지므로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구좌파들이 저런짓을 합니다. 리버럴이 압도적으로 수구꼴통을 제압했을 때야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한 동안은 "수구꼴통" 보다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양한 루트로 견제할겁니다. 알아서 죽어가는 "수구꼴통"보다 내부에서 스멀스멀 살아나면서 좀먹으려 하는 수구좌파를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7.06.25 18:33 신고

      수구꼴통은 제거돼야 할 대상입니다.
      수구좌파도 이제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촛불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진보좌파들도 거듭나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좋은 점만 가져와야지 그의 주장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면 답이 없습니다.

  2. 세나 2017.06.25 19:07

    기존복지를 삭제 및 대체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핀란드 방식은 진정한 기본소득제가 아닙니다. 재벌해체하고 주요산업 국유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기본소득제 도입한 베네수엘라 방식이 진짜 기본소득제죠.. 한국도 베네수엘라 방식의 기반소득제를 도입해서 아시아의 베네수엘라가 되어야 합니다.


이번 글은 영국에서 '복지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 조카를 위한 글이다. 너무나 자상하고 능력있고 현명한 부모 밑에서 자란 것이 엄청난 행운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조카가, 그럼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을 떨치지 못하는 조카가 지독할 정도로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인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여성으로서 부딪쳐야 하는 차별들에 노출되며 페미니즘에 많은 관심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독일에서 공부 중인 조카까지, 여성으로서 겪어야 할 차별들이 그들의 삶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정치철학으로서의 정의론에 심취해 있는 총각 삼촌의 의무이기도 하다.





페미니즘의 종류는 너무나 많아 십여 권의 관련 서적을 읽은 필자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이지만, 평생을 소아마비로 살고 있는 필자의 경험은 수많은 여성들이 느끼는 각종 차별들과 그리 멀리 떨어져있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하게 취급받아야 한다는 이상을 추구하는 평등주의적 전제를 공유하는 현대 정치이론은 여성이 가족에 유폐되고, 가정 내에서 '법적으로 그리고 관습적으로 여성이 그들의 남편에게 종속'돼 있다는 '자연적 근거'를 수용해왔기 때문에, 이에 대한 비판과 대응으로서의 페미니즘은 다양하게 표출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대부분의 이론가들이 여성을 남성처럼 자기결정권과 정의감이 있는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로 보면서 취업과 승진에 있어 어떠한 차별도 받지 않도록 법률 및 제도를 도입하는데 동의하지만, 가장 기본적인 성차별ㅡ이득이나 지위를 얻기 위해 임의적이고 불합리며 부정의하게 성별을 적용하는 것ㅡ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수행해야 할 일과 성별 사이에는 아무런 합리적인 연관성이 없음에도 여성 고용을 거부'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피부색 불문(color-blind) 사회'를 추구하는 인종차별법의 모델이 '성별 불문(sex-blind) 사회'를 추구하는 성차별법인데, 그것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많은 페미니즘 이론가들과 시민운동가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제한적인 면에서만 성공을 거두는데 그쳤다. 그 이유는 기존의 사회가 성인남성을 기준으로 제도화됐기 때문에 완전히 피부색을 고려하지 않는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평등 구현은 그리 어렵지 않게 생각해낼 수 있지만, 성별을 완전히 고려하지 않는 성 중립적 사회를 구현하는 것은 제도를 성평등적으로 재구축하지 않는 한 실현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 예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소방관, 경찰과 군대 같은 직종에 취업하기 위한 최소한의 신장과 체중 제한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규칙은 공식적으로는 성 중립적이지만, 남성이 평균적으로 여성보다 더 신장이 크고 체중이 많이 나가기 때문에, 그 직종에서 여성의 지원을 걸러내는 작용을 하게 된다. 전형적으로 이러한 규칙의 적용은 그와 같은 직종에서 상용되는 기구들을 사용하기 위해선 일정한 신장과 힘이 요구된다는 근거에서 정당화된다. 그러므로 그것은 그 직종에서 타당한 필요조건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러한 도구들이 왜 키가 165cm가 아니라 175cm인 사람들에게 맞게 만들어졌는지를 질문해야 한다. 물론 그것은 그러한 도구를 만드는 사람들이 그 도구들을 남성들이 사용할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고, 따라서 그들은 그 도구들을 평균적 남성의 신장과 신체에 맞도록 만들었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것은 필연적이지 않다. 동일한 도구들을 보다 작고 체중이 덜 나가는 사람들이 사용하기 적합하도록 만드는 것은 명백히 가능하다.


여기서의 문제는 낡은 편견 혹은 쇼비니즘이 아니다. 이러한 신장과 체중 제한을 사용하는 고용주는 지원자들의 성별에 대해 전혀 관심을 갖지 않을 뿐이다. 그는 단지 그러한 직종의 자격제한을 만족하는 사람들을 원할 뿐이다. 오히려 문제는 그러한 직업들의 제한 조건이 애초에 남성에 의해 계획되었다는 데 있고, 그러한 결정에는 남성이 그 직업에 적합하다는 전제가 있었다는 점이다. 보다 심각한 예는 대부분의 직장이 '성 중립적'이지만 취학 이전 아동을 돌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일에 대한 적임자를 요구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사회가 여전히 여성의 육아를 기대하고 있다고 할 때, 그러한 직장에서 여성과 경쟁하는 남성은 더욱 유리할 것이다. 이것은 여성 지원자가 차별받기 때문이 아니다. 고용주는 지원자들의 성별에 대해 그다지 관심을 두고 있지 않거나 사실은 더 많은 여성을 고용하기를 원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제는 많은 여성이 육아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직업을 얻을 자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고용주가 지원자의 성별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성 중립성은 충족되지만, 그 직업이 가정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부인이 있는 남성들고 채워질 것이라는 가정 아래 정의되기 때문에 성적 평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차별 중심 접근방식은 누가 직업을 가질 것인지를 결정하는데 성별을 고려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것은 '성별을 고려하는 바로 그날이 그 직종의 종사자가 육아의 책임을 갖지 않기를 기대하는 구조를 갖는 날'이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윌 킴리카의 《현대 정치철학의 이해》에서 인용).





이처럼 두 가지 예만 들어도, 현대사회의 거의 모든 제도와 직종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남성 위주로 구축돼왔는지 알 수 있다. 남성노동자에 맞춘 자본주의도 그런 전제하에 출발했고, 그것이 극단화한 신자유주의 세상은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는 존재로 규정된 여성에게는 최악의 세상이라 할 수 있다. 평균수명이 길어짐에 따라 여성의 가임기간이 늘어나는 것도 여성으로서는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차별금지법이 통과된다 한들 유리천장과 결혼 기피, 만혼, 저출산의 악순환은 필연이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진화가 직립보행으로 귀결되면서 여성의 자궁과 궁도가 좁아졌고, 그에 따라 출산의 고통이 극대화됐기 때문에 여성의 불리함이 얼마나 근원적이며 오래됐는지 말해주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까지 더하면, 여성차별이 얼마나 근원적이고 뿌리 깊은지 알 수 있다. 이런 면에서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는 문재인의 약속은 아직은 구현되지 않았고, 영원히 구현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지만, 성차별의 근원을 정확히 꿰뚫은 발언이라 할 수 있다.



선진복지국가인 독일에서 체험했고, 복지국가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와 웹툰작가나 동화 일러스트가 되기 위해 독일에서 공부하고 있는 조카가 귀국했을 때 여성에 대한 근원적인 차별이 줄어든 세상이기를 바란다. 조카들이 귀국했을 때 더 많은 페미니스트가 활약하는 대한민국을 기대해본다. 일하는 여성들에게 기대되고 있는, 아니 제도적으로 강요되고 있는 '두 번째 교대' 또는 '이중 노동'의 차별이 전업주부의 무임금노동을 정당화하고, 여성을 비정규직과 파트파임으로 내모는 불평등의 근거로 이용되지 않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7.03.14 20:30 신고

    평등사회는 꿈입니다. 아니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잔본주의에는 성을 상품화해야 돈이 되기 때문이지요. 외모지상주의 ... 얼마나 자본이 눈독 들이는 상품입니가?

    • 늙은도령 2017.03.15 00:41 신고

      그것 뿐이겠습니까?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것은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도 나오지요.
      페미니즘을 공부하다 보면 여성이 당하는 차별의 근원성은 모든 정치이론에서 천대를 받아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여성과 사회적 약자들의 희생을 담보로 자라나는 최악의 흡혈귀입니다.
      규제의 필요성이 여기에서 나오고 보편적복지의 필요성도 여기에서 나옵니다.
      정말로 교육의 질과 방식이 달라져야 합니다.
      정치철학적으로 교육이 어떻게 규정됐는지는 며칠 내로 글로 올리겠습니다.

  2. merryjanet 2017.03.15 10:29

    페미니스트란 세상의 모든 불평등을 없애고자하는 사람들인데요.
    남녀평등을 중요시 여기지만 남자의 위치를 끌어내려서 만드는 하향평등은 명백히 반대한다는 점을 확실히 합니다.
    예를들면 남녀의 임금 차별 철폐가 중요한 안건의 하나인데, 쉽게 말해 여성의 임금을 남성의 그것과 동급으로 올리자는
    목표이지만...
    최근 세계화 흐름으로 남자들의 임금이 내려와서 임금차이가 줄어든것을 평등이라고 주장하면 안된다는거죠.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고 정규직의 수를 쉽게 자를수 있게 법을 고치겠다고 한 사람들이 누군지 아시지요?
    그런식으로 평등의 물타기를 하는 무리가 고의로 편가르기를 이용하는것 아닌가 생각도 합니다.
    당하지 않으려면 사람들이 먼저 올바른 평등의 의미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3.15 15:49 신고

      상향평준화는 당연한 얘기라서 불평등을 바로잡는 것과는 아무런 의미가 없고요.
      비정규직법은 그것을 법제화함으로서 공식화하고, 불평등을 바로잡기 위해 진행됐으나 국회에서 누더기로 변했습니다.
      노통이 비정규직을 위해 추진한 일이 국회를 거치면서 개판이 됐죠.
      그러나 이명박근혜9년의 경험이 대한민국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전화위복이 됐듯이, 비정규직을 법적인 영역으로 끌어올리지 않았다면 그들의 문제가 사회의제화되는 것도 매우 늦었을 것입니다.
      재벌개혁의 문제도 그렇고 많은 것들이 법제화를 통화 공론화를 거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경제학을 공부하다 보면 비정규직은 피할 수 없는 시대흐름이었습니다.
      국회가 노통의 초안을 그대로 통과시켰거나, 그 다음의 정권이 법의 취지를 살렸으면 상황은 달라졌습니다.
      불평등을 완화하는 법과 제도는 만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법과 제도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이 개판이면 아사리판이됩니다.
      이명박근혜 9년이 증명하지 않습니까?



오늘의 썰전은 이재명이 나오지 않았다면 가장 재미없는 회차가 됐을 터였다. 사드 배치를 다룬 지난 방송이 너무 강력해서 그런지 리쌍의 강제집행을 다룬 것을 빼면 밋밋하기 그지없었다. 유시민이 언급한 것처럼, 필자 역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기반으로 이 문제를 바라봤기 때문에 이전에 썼던 글로 충분할 것 같다. 법철학과 법현실 간의 괴리는 유시민과 전원책의 시각 차이에서 충분히 드러났다는 점만 언급하면 충분할 것 같다.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을 다룬 두 번째 이슈는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기 시작하면 박정희의 유신독재도 미화될 수 있기 때문에, 전원책의 단두대(필요하기는 하지만)에 열광하는 것처럼 두테르테의 즉결처형에 열광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는 사실만 언급하면 충분할 것으로 보인다. 첫 번째 주제는 기억도 나지 않으니, 오늘의 썰전은 이재명 시장이 나오지 않았다면 정말로 재미없던 썰전으로 끝났을 터였다. 



유정현이 보조 MC로 나온 지방재정개편 문제는 이재명 성남시장을 물먹이기 위한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의 치졸하기 그지없는 반민주적 행태라, 유럽과 미국처럼 지방자치가 제대로 이루어진 민주국가였다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재정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만 있어도 지방재정개편을 강행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는 탄핵을 면치못할 미친짓이라 것을 알 수 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지방정부의 재정자립도를 높여주기 위해 도입했던 종합부동산세(세금의 반이 지방정부로 이전된다)와 정반대로 가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무한퇴행하는 명백한 증거 중 하나다. 민주주의는 견제와 균형처럼, 권력과 재정의 분산이 핵심인 체제임에도 중앙정부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려는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개편은 광란의 역주행에 다름아니다. 



중앙정부가 국세와 지방세 모두를 독점해 지방자치단체를 개, 돼지에 준하는 노예로 만들겠다는 것이 핵심인 지방재정개편은, 사드의 성주 배치 결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박근혜의 인식이 유신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증명하는 또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이에 맞서 힘겨운 투쟁을 벌이면서도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고 있는 이재명 시장의 뚝심은 박근혜의 인식과 비교되며 정치적 상종가를 올리고 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노무현과 비교되는 이재명 시장은 박원순, 안희정, 정청래, 심상정과 함께 야권의 자산 중 하나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들이 노무현과 문재인을 능가할지 알 수 없지만(솔직히 노무현과 비교하는 것이 무리일지 모른다), 이재명이 지금보다 더 큰 그릇이 되려면 당대표 불출마를 거둬들이거나, 그것이 어렵다면 차선책으로 경기도지사에 도전해서 성남에서의 복지실험을 확장했으면 한다. 



모든 것이 최악인 상태에서 출발해야 할 다음 대통령은 국정경험이 있는 문재인을 대체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고렬할 때, 인구의 반이 몰려있는 서울과 경기를 야권이 석권하는 것은 거의 절대적 과제라 할 수 있다. 최상의 경우 인천과 부산까지 야당 후보가 당선되는 것인데, 이렇게만 된다면 대한민국을 전복적 수준까지 개조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야권에게는 넘기 힘든 벽으로 자리하고 있는 경기도에서 승리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대한민국이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북한과의 경협을 대폭 늘리거나, 고부담 고복지의 복지국가로 가는 방법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이 지지하는 중부담 중복지로는 현재의 경제대불황을 벗어날 수 없다. 재벌과 기득권의 엄청난 저항이 있겠지만, 인공지능과 로봇공학, 유전공학과 나노공학의 발달로 거의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인구절벽에 따른 초고령화사회로 접어들기 전에 무조건 사회적 권리가 보장되는 복지국가로 접어들어야 한다.



그 출발에 청년수당의 확대(최종적으로는 전국으로의 확대)가 자리하고 있으며, 이것에 관해서는 이재명을 능가할 인물이 없기에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는 것이 대권 도전으로 가는 최상이 길이라고 판단된다. 다른 견해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고, 이재명도 나름의 계획이 있겠지만,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노무현과 문재인의 리더십과 부의 재분배에 천착해온 필자의 판단은 그렇다. 



몇 번이나 쓰려했다 박근혜 정부의 연이은 닥질 때문에 계속해서 미루어지던 글을 오늘의 썰전 덕분에 쓸 수 있었다. 이재명의 발전과 성숙이 눈에 보였던 오늘의 썰전은 그래서 재미있고 의미있었다. 사이다 한 잔 마신 기분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7.22 07:55 신고

    전 오늘 재방송 필히 시청해야겠습니다^^

  2. BOW 2016.07.22 17:38

    https://namu.wiki/w/%EB%A0%88%EC%A7%84%EC%BD%94%EB%AF%B9%EC%8A%A4%20%EC%A7%91%EB%8B%A8%20%ED%99%98%EB%B6%88%20%EB%B0%8F%20%ED%83%88%ED%87%B4%20%EC%82%AC%ED%83%9C
    https://namu.wiki/w/%ED%81%B4%EB%A1%9C%EC%A0%80%EC%8A%A4%20%ED%8B%B0%EB%82%98%20%EC%84%B1%EC%9A%B0%20%EA%B5%90%EC%B2%B4%20%EB%85%BC%EB%9E%80
    https://namu.wiki/w/%EB%A9%94%EA%B0%88%EB%A6%AC%EC%95%84/%EC%82%AC%EA%B1%B4%EC%82%AC%EA%B3%A0

    지금 메갈리아사태(클로저스&레진사태)로 인해 난리입니다.
    언제 한번 글로 올려주셨으면합니다.
    게다가 정의당도 메갈리안과 관련된 일로 난리가 아닙니다.
    않그래도 새누리당,더민주,국민의당도 맘에 않드는데...

  3. 참교육 2016.07.22 18:51 신고

    말로는 지방자치 내용은 중앙정부에 예속입니다.
    대통령 한사람에 절절 매는 입법부와 사법부... 결국은 까불면 죽는다는 정보의 독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국정원이 있어야 유지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 늙은도령 2016.07.23 02:07 신고

      공존이 사라진 세상입니다.
      모든 것을 승자와 패자로 나누기 때문에 이런 문제들이 생기지요.
      참 답답합니다.

  4. 어설픈 지지자 2016.07.23 09:55

    왜 박근혜가 이렇게 어의없는 일들을 벌이는 지 알았습니다 기본적인 생각이 유신체제에 머물러 있다는~

    • 늙은도령 2016.07.23 14:02 신고

      네, 유신체제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일을 너무 모릅니다.

  5. 김재완 2016.07.24 15:40

    이재명시장님 동영상에 닥그ㄴ 와 중앙정부를 실랄하게 비판하시는걸 보며
    바른말하는 시장이있구나하고 시원했고
    또 한편으로는 저렇게 독설을 날리고도 무사할까 걱정이되더구요
    응원합니다 화이팅

    • 늙은도령 2016.07.25 02:07 신고

      썰전에서는 엄청나게 약하게 얘기한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지금까지의 행적을 기준으로 하면 대통령이 될 만큼은 아니지만, 발전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대통령에 오를 수도 있는 자질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재명도 노무현처럼 호불호가 너무 갈릴다는 것이고, 정치적 기반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처럼 특권층의 힘이 절대적인 나라에서 이 두가지는 치명적인 결격사유입니다.
      이 두가지를 이재명이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그것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합니다.

  6. 맹그로브 2016.07.25 12:54

    이재명 시장의 경기도지사 도전은 정말 좋은 생각인 것 같습니다. 핫바지 김문수, 남경필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6.07.25 13:15 신고

      대통령이 되려면 성남시장으로서의 경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를 아우러야 하기 때문입니다.

  7. 이온 2016.07.26 21:18

    항상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 늙은도령 2016.07.26 23:59 신고

      님의 사이트도 엄청나더군요.
      댓글 남겨주시면 방문하겠습니다.
      제가 워낙 게을러서 먼저 챙기지 못하기 때문에^^

  8. 구름바다 2016.07.28 05:37

    정말 좋은 제안입니다.

    이재명 성남시장의 더 큰 행보가 기대됩니다.

    • 늙은도령 2016.07.28 06:01 신고

      그러기를 바랍니다.
      정권을 탈환한 후에는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무엇보다도 대한민국을 정상적인 국가로 되돌리려면 최소 20년은 진보정당이 정권을 잡아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이재명 같은 정치인이 더욱 성숙되고 발전해야 합니다.

  9. 사나이 2016.08.18 06:10

    아니 이재명 시장 김부선 하고 관계도 그렇고 자기 형수한테 쌍욕을 해대는 사람을 어떻게 저렇게 뻔뻔하게 시장자릴 아직 까지 내려놓질 않고 있지? !
    그런것도 지어낸건가?

    • 늙은도령 2016.08.18 06:30 신고

      형수한테 쌍욕을 한 것은 이재명 시장이 직접 밝힌 가족사를 통해 설명이 가능할 것 같습니다.
      김부선은 난방열사가 되면서 떴지만 기본적으로 마리화나를 상습적으로 피웠을 만큼 믿을 수 없는 부분이 많아 그녀의 주장을 무시하는 편입니다.
      그녀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다면 모를까, 그렇지 못하기 때문에 신뢰할 수 없습니다.
      이 두 가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김종인과 손을 잡았다면 지지를 철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이재명의 의지로 이루어졌다면 그는 전형적인 표퓰리스트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재명이 김종인과의 관계를 분명하게 말한 적이 없어, 추이를 지켜볼 생각입니다.
      아직은 어떤 판단을 내리기에는 너무 빠릅니다.

  10. hoooony 2016.09.17 10:48

    서민들이 대선 선택의 영역을 1번까지 넓히는것을 이해못하는 1인입니다. 이재명 시장의 대안제시도 중요하며 복지국가로의 진화에 역행하는 새누리당의 행보에 더많은 서민들이 관심을 가져야 이나라가 헬조선에서 탈출할 수 잇다고 생각합니다.



부정적 세계화에 가장 강력한 태클이 걸렸습니다. 영국, 특히 런던은 대처 이후로 부정적 세계화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였습니다. 부정적 세계화(긍정적 세계화도 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논외로 한다)는 금융이 주도한 것이고, 세계금융에 관한 한 런던이 월가보다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영국민이 브랙시트 찬성을 선택한 것은 모든 불평등의 근원인 부정적 세계화에 대해 가장 강력한 반대를 표출한 것입니다.





브랙시트가 단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관해서는 부정적 세계화의 대변인 노릇에 충실했던 기존의 언론과 전문가, 학자들이 수없이 떠들어댈 것이기에 저까지 거기에 동참할 이유란 없는 것 같습니다. 브랙시트가 한국경제에 미칠 영향은 유럽연합(유로존보다 큰 단위)의 추가 이탈 및 해체, 중국경제의 경착륙, 미국의 금리인상, 아베노믹스의 붕괴, 외국자본 이탈 등에 달려있지만, 수출에 비해 내수가 취약한 구조 때문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은 명약관화합니다. 



영국민이 브랙시트를 선택한 것은 부정적 세계화(대처가 주도)가 초래한 부의 불평등, 임금 하락, 일자리 감소, 복지 축소, 가계부채 확대, 차별 확대, 이민 확대 등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저학력·저임금 노동자와 중하위층의 불만이 극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극소수의 상류층에만 집중되는 부정적 세계화를 더 이상 용납할 수도, 감내할 수도 없을 만큼 삶의 질이 악화일로를 거듭해왔습니다. 브랙시트는 그 결과입니다. 



영국민이 브랙시트를 선택(최종 결정은 2년 후에 내려진다)함으로써 국수주의와 보호주의가 강화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 때문에 주류세력의 집중포화에 시달리고 있는 트럼프가 힘을 받을 수 있습니다. 만약 트럼프가 브랙시트를 기점으로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다면 전 세계는 국수주의와 보호주의의 물결에 휘말려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럴 경우 부정적 세계화는 돌이킬 수 없는 충격을 입고, 세계경제는 극도의 혼란과 불확실성으로 접어듭니다.



문제는 극도의 혼란과 불확실성의 결과가 상위 1%에게 유리하다는 부정적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적 속성에 있습니다. 중하위층의 반란이라고 할 수 있는 브랙시트 찬성이 사회민주주의(해체된 복지국가의 복원)를 강화시키는 방향으로 간다면 최상의 시나리오이겠으나, 보수주의(극우)의 득세로 이어질 경우에는 (지구온난화 대처와 난민 문제 해결, 국가와 계층 간 불평등 해소처럼 반드시 강화해야 할) 긍정적 세계화도 무력화될 수 있습니다. 





특히 트럼프의 당선으로 미국이 국수주의와 보호주의로 접어들 경우 연준의 금리인상이 빨라질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에 외국인 자본이 미국으로 향할 것입니다.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각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기업과 가계의 부채가 대폭발을 일으킬 수밖에 없습니다. 금융 위주로 이루어진 빌어먹을 부정적 세계화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영국 중하위층의 반란이 각국의 중하위층을 죽음으로 내몰 수 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보다 더할 것이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이미 숱하게 얘기해온 것이라 별로 새롭지도 않습니다. 이명박근혜 8년 6개월 동안 지속적으로 이어져온 법인세와 소득세 인하를 인상으로 되돌려놓고 70년대의 세율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너무나 많이 가진 자들과 기업으로부터 독점적 이익을 토해내게 만들 수 있다면(복지국가라는 사회민주주의로의 전향) 브랙시트는 세계적 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초인공지능(약한 인공지능, 화이트칼라의 몰락)의 등장과 로봇의 부상(자동화의 완성, 블루칼라의 몰락) 등이 20년 내에 현실이 될 것까지 고려하면, 영국 중하위층이 브랙시트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당분간 모든 언론과 기업, 관련 전문가들은 금융과 경제위기를 조장할 것이며, 언제나 그래왔듯이 위기 탈출을 위해 중하위층의 희생을 요구하고, 친기업적 정책을 남발할 것입니다.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었고, 노조 파괴·무차별적 규제완화·복지 축소·국가업무의 민영화·금융 위주의 부정적 세계화를 밀어붙인 대처 내각 이후로 영국은 유럽에서 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한 나라가 됐습니다. 중하위층의 권리는 갈수록 약화되고 축소됐고, 삶의 질은 중진국 수준으로 추락했습니다. 거대재벌의 유럽법인장인 동생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브랙시트가 거대한 전환의 전조가 될 수 있다면, 긍정적으로 지켜보려고 합니다.  



만일 장하준 교수의 주장처럼 적정한 규모의 보호주의가 신흥국에게 도움이 된다면, 영국민의 브랙시트 선택은 장기적으로 부정적 세계화와 신자유주의의 폭주를 제어하는데 결정적 모멘텀이 될 수 있습니다. 단기적 영향에 휘둘리지 않고ㅡ환율 레버리지를 극대로 이용할 투기 자본이 극성을 부릴 것이기에ㅡ중장기적으로 브랙시트를 바라보고 다음 대선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다면 복지국가적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하는 것도 가능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말했듯이 정말로 깨어있는 것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향후 20년 안에 인류의 삶은 대대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고, 그것이 부정적인 쪽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습니다. 특이점을 돌파할 기술 발전의 관점에서 보면 부정적 전망은 인류의 멸종까지도 치닫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인류가 미래를 결정할 수 있는 지금에라도 마르크스의 노동자혁명까지 꿈꿀 수 없다면 샌더스가 추진하려던 정치혁명은 필수이지 선택이 아닙니다. 



부디 깨어있기를 바랍니다. 당신만이 아니라 당신의 가족, 친지, 지인들의 삶이 모조리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이 마지막인 '특이점 혁명'은 상위 0.0001%에게 신에 근접한 능력을 부여해줄 것이기에 히틀러의 전체주의는 비교할 수도 없는 '기술 전체주의'를 가능하게 해줍니다. 압도적인 절대다수가 개인의 프라이버시마저 완전히 소멸된 시공간에서 철저한 억압과 착취 하에 사는 것이 '기술 전체주의'의 핵심입니다. 



브랙시트가 영국 노동자와 중하위층의 생존투쟁이자 정치 혁명이라면, 반칙과 특권을 남발하는 이땅의 주류지배층에 대한 우리 나름의 정치 혁명으로 승화시키지 못할 일도 없습니다. 부정적 세계화의 혜택이 상위 1%에 집중됐다는 점에서 영국민의 브랙시트 선택을 부정적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부정적 세계화의 40년 동안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직시할 수 있다면 거대한 전환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6.25 11:42 신고

    브렉시트로 인해 현재 제일 우려되는건 미국의 변화입니다
    만일 트럼프가 대선에 승리한다면 세계 경제가 어떻게 변할지..
    한바탕 경제 전쟁이 일어날것입니다

    조금 더 지켜 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25 16:50 신고

      유럽, 특히 프랑스와 독일의 대응이 중요합니다.
      영국 파운드화에 투자를 많이 한 네덜란드는 공황상태고, 덴마크와 체코처럼 자국통화를 포기하지 않은 국가의 대응도 지켜봐야 합니다.

      트럼프에게는 대단한 호재이지만, 중기적으로 볼 때 힐러리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 거대한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샌더스가 승리했으면 최상이었는데 그것이 아쉽네요.

      일반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것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이번의 브랙시트는 부의 불평등과 복지 축소, 긴축재정에 대한 반발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입니다.
      영국의 선택이 이기적이고 극우적 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지만 일반 언론들의 주장처럼 극우세력의 득세가 만연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업종과 사업 방식에 따라 수출기업들도 희비가 엇갈리고 수입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주류기득권들이 브랙시트 반대를 예상했지만 모조리 틀린 것에서도 상위층과 중하위층의 정서가 얼마나 차이가 심한지 말해줍니다.

      브랙시트를 잘 활용하면 복지국가로의 회귀도 가능합니다.
      결국 우리의 선택 여부에 따라 득이 될 수도 있고, 실이 될 수도 있습니다.
      어차피 기술 혁명으로 극단의 불평등이 몰아칠 터, 10년 앞서 일어났다고 생각하면 브랙시트의 후폭풍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2. 참교육 2016.06.26 20:58 신고

    진실을 알려주는 언론이 없습니다. 권력의 눈치 자본의 눈치를 보면서 푸들이 되기를 자원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6.27 23:47 신고

      브렉시트는 가진 자들의 문제에요.
      우리는 당장의 삶이 중요한데 브렉시트까지 관심을 둘 일이 없지요.
      박근혜 정부가 기업의 애로를 풀어준다고 닭질을 할 수 있고요.

  3. 고진감래 2016.06.26 23:17

    브랙시트 응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6.06.27 23:48 신고

      장기적으로 볼 때 브렉시트 같은 일들이 여러 번 벌어질 것입니다.
      언제나 세상은 가진 자들의 뜻대로 돌아가는데, 이제 그것도 한계에 이르고 있습니다.

  4. 쇠북울음 2016.06.27 18:06

    갑갑했던 속이 뻥 뚫리는 탁견에 감사드립니다! (제 페북에 공유하겠습니다)

  5. 현주씨 2016.06.29 08:25 신고

    잘읽었습니다.



반면에 마르크스는 인식의 출발점에서 몇 가지 전제(대표적인 것이 프롤레타리아라는 계급의 추상성, 모든 노동이 균질하다는 전제하에 사후적 평등의 근거가 되는 노동가치설, 계급투쟁의 기원이 된 다윈적 역사인식, 유토피아적 세계의 도래가 가능하다는 뉴턴식 우주관 등. 당시에는 뉴턴 이후의 과학은 없다고 할 정도로 뉴턴의 역학은 절대적 영향력을 지녔었다)를 잘못 설정하는 바람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찰을 이루고도, 그가 예언했던 절대 다수가 누려야 할 ‘자유의 왕국’이 극소수의 ‘신자유주의 왕국’으로 변질되는데 일조했다.





아니 일조가 아니라 절대적 영향을 미쳤을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초기에 어떤 규제도 없었기 때문에 산업혁명의 여파는 근대유럽을 착취와 억압이 넘치는 무법지대로 만들었는데, 마르크스가 그 이유를 자본주의의 본질에서 찾아냄에 따라 그의 성찰은 종교적 영역까지 치고 올라갈 수 있었다.



아담 스미스가 작은 시장만 보고 자기조정 시장을 추상했기 때문에 온갖 문제들을 양산했듯이, 마르크스도 최악의 상황에 처해있던 영국의 자본주의에 경도돼 역사의 발전과정이 노동자의 유토피아로 이른다는 결정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인간에 대한 이해가 터무니없이 부족했고, 자본주의의 경험이 일천했으며, 그 당시까지의 과학적 한계에 갇혀 있었지만 이는 문제가 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이었다.



마르크스는 다윈적 역사인식과 뉴턴식 우주관에 경도되는 바람에 역사의 발전과정이 거듭되는 계급투쟁에 의한, 최종적으로는 무계급사회에 이른다고 봤다(변증법적 유물론에 의한 역사결정론은 자본주의가 극에 이르면 자유의 왕국에 이른다는 결론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의 과학적 성과들은 미래는 무엇으로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것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맞물려 자본주의적 착취가 종말에 이른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이런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거꾸로 뒤집어버린 지배엘리트(특히 전통의 금융‧산업권력)에 의한 반동의 역사이자 권위주의적 통치로의 회귀가 만들어낸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명박의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박근혜의 ‘줄푸세’처럼, 신자유주의는 어떤 명분을 내세워도 극소수의 가진 자들이 더 가지도록 만들기 위해 덜 가진 자들의 것들을 탈취하는 과정이다.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식 복지국가나 국가개입이 자연법칙에 어긋난다는 주장을 내세워 적자생존의 ‘자유’만이 진정한 자유라고 주장하는 것도,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뒤집어 ‘자유의 왕국’과 정반대의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주기적인 공황을 불러오는 자본주의의 속성을 이용해 위기를 조장하고 ‘쇼크요법(IMF 구제금융)’을 강제하는 것도 마르크스적 계급투쟁을 뒤집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시 말하면 1, 2차세계대전 이후 평등과 공존, 상생에 대한 인류의 열망이 복지국가를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와 발전국가 모델의 핵심이었던 평생고용 체제 때문에 상위 1%의 부와 권력이 급격히 줄어들었는데, 이를 뒤집기 위해 마르크스의 계급투쟁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지배계급이 피지배계급을 대상으로 반동의 계급혁명을 감행해 부와 권력을 회수한 것이 신자유주의 40년이고,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마르크스가 하늘에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노릇이다.





신자유주의를 주도한 신보수주의 세력(뉴라이트)들이 19세기에 유행했던 자유방임 시장경제(어떤 규제도 없었고, 노조도 없었으며, 국가의 개입은 원천차단됐던)를 전면에 내세운 채, 복지국가를 해체하고 평생고용 체제를 파괴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이를 위해 경찰력과 감시권력을 극대화한 권위주의적 정부를 선호했고, 정경유착과 회전문 인사로 집권을 이어가야 했다(한국과 일본, 중국에서 신자유주의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각종 불평등을 양산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극복하는 과정인 사회주의에 비해, 신자유주의가 개인적이며 환경적이고 구조적인 불평등을 극복하는 과정인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도 상위 1%가 부와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어떤 형태를 띠던 불평등은 자유를 제한하고 침식하는데,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는 나라일수록 불평등이 늘어나고 정의와 도덕, 윤리와 상식이 무너지는 것도 필연의 과정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견고한 것이 녹아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고 했지만, (바우만의 주장이 옳다면) 견고한 자본주의는 녹았지만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았다. 내부로부터 무너진 자본주의는 더욱 유연하면서도 무엇이라도 쓸어버릴 수 있는 상위 1%의 ‘액체의 형태’로 변형돼 세상의 모든 부분을 신자유주의화 하는데 성공할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석학들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이지만,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통치의 방법을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막강해졌고,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줄이고 다른 세상을 만들려는 다양한 저항운동의 일치를 이룰 수 없었다. 이것 때문에 신자유주의는 하위 90%에게 ‘유동하는 공포’를 양산하는 체제로 거듭날 수 있었다(비어있는 9%는 체제의 간수로 별도의 군을 이루고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09.09 09:19 신고

    변수는 얼마든지 남아 있다고 봅니다.
    마치 마르크스나 애덤스미스가 잘못내린 결론처럼.... 저는 자본주의의 모순이 결국 자멸의 길을 걸으리라고 믿고 싶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39 신고

      앞으로 10년 안에 거대한 전환이 일어날 기반이 생겨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면 파국을 면치 못합니다.
      지구온난화와 환경 오염, 물부족 등의 공격이 20년도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성장 자체를 하면 안 됩니다.
      소비를 줄이고 지금보다 매우 많이 불편해져야 합니다.

  2. 耽讀 2015.09.09 12:38 신고

    자본주의이든 공산주의이든 인간이 만든 산물이기에 언젠가는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영원한 것은 없지요. 문제는 우리가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추었느냐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09.09 17:46 신고

      그래서 공부하고 토론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노력하지 않고 얻는 것은 가치가 없고 쉽게 사라집니다.
      우리는 실천하고 반성하고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09.10 07:59 신고

    관심을 가지고 조금씩 알아 가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1 01:04 신고

      네, 저도 제가 공부한 것들을 하나의 주제로 풀어나가 보겠습니다.

  4. 천상명월 2015.09.10 16:36 신고

    언제나 현실과 타협하는 저는...정말 어려운 용어에 .. 작게만 느껴집니다.. 잘 보고 갑니다.

  5. 청공(靑空) 2015.09.11 07:39 신고

    간결하게 핵심을 짚어주시는 글 잘 보았습니다. 항상 쓰신 글에 감탄하게 됩니다.

    신자유주의가 그 형태와 목적이 유동적일 수 있는 이유는... 특정한 이론체계라기보다는 그 실상이 자본권력을 위해 봉사하고 있으며, 경제발전의 이유를 기술발달과 환경적 요인와 같은 구체적 근거에 의해 설명하기보다 자유 경쟁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설명하려 하고 있기 때문에 가변적인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선 글에서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다수의 시민의 해방을 드셨는데요. 푸코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 이유는.. 인간은 문제에 직면해서 그걸 보아야만 바뀌고, 봄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다면 결국 인류문명은 그 끝을 보게 되겠죠. 아니면 엄청난 댓가를 치르게 되거나요..

    이러한 신자유주의와 인류의 문제를 위한 해독제(Antidote)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신자유주의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는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독일식의 질서자유주의(신자유주의의 범주에 속하지만..)가 답이 될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해보지만... 그 답은 독일만을 위한 답이지, 현재 봉착한 문제를 위해 고안된 체계가 아니기 때문에 답이 안된다는 생각도 듭니다.

    깊게 생각하기에는 제가 아는 바가 적고, 또 그에 대해서 밝지 못하네요. 얼른 공부하고 또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하루되세요.

    • 늙은도령 2015.09.11 16:29 신고

      신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정확하십니다.
      신자유주의는 권위적인 정부가 권위적인 재벌과 함께 시장근본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내새워 부를 독점하는 것입니다.
      최근에는 공공의 자산을 민영화시키는 것으로 돈을 벌고 있습니다.
      국가 전체를 민영화하는 것이 그들의 목표이지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사회주의를 다시 공부하고 있습니다.
      저도 몰랐는데 사회주의를 제대로 발전시키고 현대에 맞게 수정한 것이 나와있더라고요.
      그것을 민주주의와 엮으면 충분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장은 너무 상황이 심각해 혁명적 변화를 이끌어내는데 집중해야 하고요.
      국민들이 깨달아야 합니다.
      제발 자신의 이익을 위해 투표하기를 바랍니다.

  6. 백순주 2015.09.12 10:53 신고

    약속 지켜드리려고 열어는 보았으나 도령님과 대화를 나눌 능력은 멀었나 봅니다. 열심히 읽은 것이 아까워 댓글에 손은 댔습니다.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저는 벌써 주말은 글을 쉬려고 합니다. 매일 발행이 힘겨워졌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32 신고

      네, 그렇게 조절해야 합니다.
      이게 매일 글을 올리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처음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풀어놓으면 그 다음부터가 문제가 됩니다.
      길게 보셔야 합니다.



필자는 두 가지 의미에서 푸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하위 90%의 부를 상위 1%에게 이전(거꾸로 된 재분배)하는 정치경제적 과정인 신자유주의 통치술은 스스로 무너지기 전에는 다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푸코는 이것을 절감했던 것 같다.





많은 학자들은 모든 권위를 해체하던 푸코가, 해체작업이 뛰어날수록 자신이 지적 권위자로 자리 매김되는 모순을 극복할 수 없어 오랫동안 침묵했다고 하지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푸코는 모든 권위를 해체하려 하지도 않았지만, 권력의 구조와 사건의 본질을 직시하는 과정에서 신자유주의라는 최후의 권력을 대면할 수 있었고, 통치술로의 신자유주의를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침묵했던 것이다.



필자가 보는 푸코의 침묵은 방향의 급전환이 아니라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삶에 대해ㅡ그것이 뭐라고 불리건 간에ㅡ인류의 해방에 대해, 진정한 구원에 대해 얘기하고자 (프랑스 특유의 지적이고 언어적인 유희를 벗어내기 위해) 이루어진 공백이란 생각한다. 필자는 여기에 갇혀 있고, 이것을 정리할 수 있어야 지적공동체의 첫 발을 뗄 수 있다.



나머지는, 오랜 침묵을 깨고 내놓은 《성의 역사》시리즈에서 푸코가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신자유주의 통치술에 맞서려면 각각의 개인이 저항의 지평선을 넓히는데 참여한다는 의미에서의 자기 배려와 자아 성찰 및 해방이다. 모든 개인이 삶의 주인이 될 수 있을 때, 그래서 자신에게 최대한의 배려를 할 수 있을 때, 인간은 해방에 이르며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푸코의 삶정치).





푸코의 성찰처럼, 각각의 개인이 칸트(그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치를 탐구한 뒤, 역으로 인간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고, 공존의 세상을 위한 방법까지 사유와 실천의 영역을 넓혔다)와 니체(대략적으로 말하면 칸트 류의 성찰에 이르러 인간으로서 최고에 이른 자가 초인이며, 그는 그 자체로 자신과 세상의 주인이며 정의로운 세상의 창조자다)가 혼합된 (어떤 권력에도 굴하지 않는) 진정한 자유인이 된다면 극소수가 독점하는 권력과 승자의 역사는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다. 스스로 자발적 노예가 되지 않은 한 진정한 자유인을 속박할 수 있는 권력이란 존재할 수 없다(하위 90%가 소비를 줄이면 상위 1%도 무너지듯이. 마르크스가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결정한다는 것도 생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모든 자유인과 투쟁할 수 있는 권력과 승자란 존재할 수 없으니, 푸코는 체제를 뒤집는 혁명(맹자가 오래 전에 천명했던)보다 어떤 체제도 무력하게 만드는 개인의 해방에 초점을 맞췄다. 그는 그렇게 폭력이 없는 혁명을 이루려했다. 그가 루소나 마르크스보다 칸트와 니체에서 희망을 본 것도 이 때문이다(공자와 맹자를 공부한 다음에 칸트와 니체를 보면 많은 부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칸트에서는 인사상을, 니체에서 예사상을 볼 수 있다. 묵자는 홉스를 닮았다. 그는 강력한 주권을 가진 국가를 상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럴 수 없다는데 문제가 있다. 근대적 인류, 즉 시민(추상화된 개념적 존재인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와 대비되는 존재로써)은 침해불가능하고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지닌 평등한 존재며, 국가란 이것을 충족시키는 존재라는 것이 자유주의의 본질인데, 이것이 말의 성찬을 넘어 근대 이후의 현실에서 이루어진 적은 거의 없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사유재산이 보장될 때 자유주의의 실현이 가능한데(그렇다고 무한대의 재산축적을 가능하게 만든 로크까지는 가지 마시라), 마르크스가 온갖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본주의의 출현 이후로는 무한대의 자본축적이 가능한 사적독점 때문에, 폴라니가 여러 저작들에서 밝힌 것처럼 자기조정 시장이란 허구의 아이디어가 초래하고 있는 종말 때문에, 자유주의가 꿈꾸었던 민주주의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



그나마 근대적 시민의 탄생과 함께 했던 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폐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도입된 사회주의와 짝을 이루었던 시절에만 자유주의의 이상을 상당한 수준까지 실현할 수 있었다. 단군조선의 홍익인간과 동학의 인내천의 교집합과 너무나 닮은 사회민주주의(복지국가적 성향을 지닌)에서만 시민적 덕목인 자유는 일정 수준 이상으로 평등하게 주어질 수 있었다



특히 좌우 양쪽의 버전이 있으며, 시대의 조건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는 신자유주의가 하위 90%의 부와 공공의 영역으로 나두었던 국가의 부를 상위 1%라는 지배엘리트(이들은 이익의 독점이라는 공통의 이해를 공유하기 때문에 계급적 특성을 띤다)에 이전하는 반동의 과정(상위 1%가 주도한 역계급투쟁)이라는 점에서, 부의 재분배를 중시하는 사회민주주의적 제도들을 되살려내는 일이 시급하다.    



인간은 합리적이지도, 이성적이지도 않기 때문에 신자유주의 통치술과 맞서기 위한 푸코의 성찰은 대단히 중요하며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처럼 추상적 관념에 머물렀던 시민의 재구성은 시급한 과제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논의만 무성했지 제대로 구현되지도 못했던 시장사회주의와 민주주의의 교합, 생태학적 고려에서 나온 다양한 문화의 병존을 되살려낼 필요성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최상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2015.09.08 07:40

    비밀댓글입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9.08 08:13 신고

    저에게는 난해하긴하지만
    정독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29 신고

      너무 쉽게 풀면 글이 너무 길어져서....
      조금씩 반복하다 보면 자신의 것이 될 것으로 봅니다.

  3. 참교육 2015.09.08 11:18 신고

    각개인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될 때...?
    참 쉽지 않은 얘기입니다. 사실으 현대인들은 자신의 소중한 것을 잊고 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어 있습니다.
    그걸 깨어난다는 것은 사실 혁명보다 어렵지 않을까요? 너무 비관적인가요? 제가?

    • 늙은도령 2015.09.08 19:31 신고

      아닙니다.
      이데올로기는 매우 중요합니다.
      삶의 주인이 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도 자신이 주체적으로 소화해서 적절히 활용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가 먼저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을 배려하려면 성찰하고 진실돼야 하고, 자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것에 저항해야 하거든요.
      스스로 강해지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과정입니다.

  4. 백순주 2015.09.08 12:55 신고

    하고자 하시는 일을 시작하신다니 감축드립니다. 건강조심하시면서 이루시길 바랍니다. 100번까지는 못 읽어도 다녀가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5.09.08 19:38 신고

      최대한 쉽게 써야 하는데 그러면 길이 마냥 길어집니다.
      그래서 일단 압축적인 글로 시작했습니다.

  5. 앨리스 2015.09.08 19:26

    '지적공동체' 라는 것을 아직 저는 잘 모르지만 도령님의 활동을 지지하는 열열한 애독자가 될 것입니다ㅎㅎ^^
    제 짧은 소견과 경험으로는 무엇이든 완성된 후에 하려면 시간이 기다려 주지 않는것 같습니다.
    나아가면서 세상과 소통하면서 더 성숙되고 성찰되어지는 것이 있을 것 같습니다
    책읽는 공부로 평등과 상생의 진리에 도달하고 그 실천으로 매일 글을 쓰시는 도령님은
    정말 대단한 현자임에 틀림없는것 같습니다.
    저는 작은 봉사를 하면서 또 도령님의 글을 읽으며사회를 알아가고 있는데요^^;;
    사랑이든 봉사든 그냥 되어지는 것은 없고 자꾸 연습을 해야만 잘 할 수 있다고 배우고 있습니다.
    소개하시는 많은 책속의 이론가들의 사회인식과 이론은 결국 그 사람의 의식수준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과연 그 누가 높은 의식으로 이 세상을 구할것인가......

    • 늙은도령 2015.09.08 19:40 신고

      우리 모두가 세상의 주인입니다.
      그런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자기 배려는 타인의 배려도 퍼져가고 자기 사랑은 타인의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우리 모두가 스스로 강해지고 충실해지면 세상 어떤 권력도 우리를 건들지 못합니다.
      각자가 진정한 시민이 될 때 세상은 변합니다.
      돈과 권력의 노예가 되지 않고요.

  6. 고나 2015.09.08 20:00

    수고가 많으십니다 어렵지만 열심히 정독해 보겠습니다 ~

  7. base 2015.09.08 21:18

    수고하십니다. 노무현대통령께서 말씀하신 깨어있는 시민의식이 생각나네요. 요즘 주변을 보니 더욱 더 위축되고 암울해 보이는데 희망과 용기를 주는 글로 애국하시고 준비하시는 일이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람니다. 건강에 주의하시고..

    • 늙은도령 2015.09.09 01:56 신고

      네, 건강 때문에 글과 병행할 생각을 햇습니다.
      혹시라도 오프라인 모임이 원할하지 못하면 이렇게라도 풀어가야 하니까요.

  8. 덕산 2015.09.10 19:03

    요즘 글만 읽고 갔는데.. 오늘은 찬찬히 정독해서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자주 인사드리지 못하지만 공감은 항상하고 갑니다.
    건강하세요.~ 늙은도령님

  9. 청공(靑空) 2015.09.11 07:16 신고

    오늘의 유머에서 늙은도령님의 글을 알게 되어 이렇게까지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서 근 십년의 세월동안 공부가 업이었고, 지금은 공부하기 위해서 해외로 나와있건만..
    아직도 공부를 하고 있지 않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늙은도령님의 글을 보면서 세상을 보는 내 눈도 이렇게 깊어지고 밝아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특히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으로서 전공분야만큼이나 식견이 탁월해야 하고, 그보다 먼저 바른 뜻과 정신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모로 좋은 가르침이 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그 변화를 포착하지는 못하겠지만... 늦지 않은 시간 내에 이해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기술의 발달을 통한 발전과 위기 극복에는 한계가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인간의 행태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는 이상, 지속가능한 발전 또한 없고...
    생활을 가능케하는 사회환경과 자연환경을 파괴시킬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말씀하신대로 개인의 해방, 인류의 해방이 필요하고... 이를 위한 여러가지 접근과 실천이 요구되겠지만,
    무엇보다 교육의 혁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근대 이후 가장 정체되어 있는 부분이 어쩌면...
    교육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사회체제를 위해 구조화된 교육이 아닌 진정한 지성과 자유의 전달이 가능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성과의 가시성, 그에 따른 예산 확보 및 필요성 설득의 어려움,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이러한 교육에 적합한 교육자와 교육체계의 구성 자체가 불가능에 가깝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제 문제의식은 제가 발전시켜야 할 문제이지만, 한 번 말씀하시는 시대의 문제에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어떨까하고 적어보았습니다.

    올려주시는 글 열심히 잘 읽도록 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글로서 함께해주시길 기원합니다.

    • 늙은도령 2015.09.12 15:48 신고

      교육의 중요성은 몇 권의 책으로도 부족합니다.
      님의 말씀하신 것처럼 지금의 교육은 자본주의가 본격화되며 구축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이제는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합니다.
      성장과 개발에 초점이 맞춰진 교육은 인류의 파멸을 불러올 뿐이지요.
      성장보다는 인간 중심의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철학 등을 되살려야 할 때입니다.
      교육이 체제를 유지하는 하부구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열린 교육으로 바뀌면 어떨까 합니다.
      지구온난화, 발전과 개발의 폐해, 인간성의 상실, 소비지상주의의 문제 등을 가르치고, 자연과 함께 하는 공존과 상생의 교육이 필요합니다.
      창의성을 살려주고 다양함의 가치를 알려줘야 합니다.
      다양한 형태의 선택과 공동체 구성이 가능할 수 있도록 미래의 주역에게 열린 가능성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도 보다 환경친화적이고 생명친화적이어야 합니다.
      윤리적 과학과 기술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교육은 많은 분들이 노력하고 있어서 저는 가급적 손을 대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부는 꾸준히 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본격적으로 다룰 날이 있으리라 봅니다.
      그때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10. 하늘이 2015.09.11 18:03

    항상 깨어 있는 의식으로 주인된 자리에 있을려고 노력합니다 ᆞ도령님이 하시고자하는 지적공동체 응원합니다 ᆞ

    • 늙은도령 2015.09.12 15:49 신고

      네, 감사합니다.
      아주 작은 출발이라도 꾸준히 키워갈 생각입니다.
      건강만 허락하면 잘 풀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국가의 권력기관들이 선거에 개입한 증거들이 넘쳐나는 데도 이에 대해 단 한 마디 사과도 없는 대통령이 거의 모든 공약을 파기하고 뒤집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정치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대통령은 정체불명의 민생경제만 외치면 콘크리트 지지율을 구성하는 자들이 격정적으로 화답한다.



온갖 불평등을 고착화시킨 성장 위주의 민생만 외치면서도 내놓은 정책마저 어그러지기 일쑤인 현 대통령과,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에게 지을 수 없는 수치심을 안겨준 전임 대통령이 여전히 활개 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금까지 나온 전 정부의 선거 개입이나 각종 비리, 4대강사업과 불법으로 얼룩진 자원외교 등 당장이라도 그를 법정에 세워야 하는데 대체 현 대통령은 어떤 말 못할 사정이라고 있는지 검찰총장과 담당 검사들을 찍어내 발라내는 반민주적 행태들만 보여주며 세월아 네월아를 흥얼거리고 있다.





이들에게는 국가 안보와 좌파 및 종복몰이라는 만병통치약과 전가의 보도가 있다. 미국이 핵무기 보유(또는 가능성)를 공공연히 인정하기 시작한 북한의 움직임에 무슨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미국으로부터 어떤 언질을 받았는지, 뜬금없이 ‘통일은 대박이다’라는 신종 무기를 들고 나온 현 정부의 갑작스런 태도 변화는 ‘탐욕의 삼위일체’에게 또 다른 시장을 만들어주기 위해 사전작업을 벌이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통일마저 경제적으로 풀어가는 것이 국내 경제와 세계 경제의 어려움을 대변해주고 있지만,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대한민국도 이에 속한다)들이 이미 폐기한 성장지상주의의 새로운 버전을 보는 것 같아 불편하기 그지없다. 통일이 대박이 되려면 사전 준비가 선행돼야 하고, 낮은 단계의 통일이라고 해도 국내의 일자리 상당수가 북한으로 넘어갈 수밖에 없어 1030세대의 취업률은 급격히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부로부터 확고한 보증을 받은 기업들이 저임금 노동이 가능한 북한에 공장을 세울 것이며, 무분별한 자원 개발은 한반도의 대기와 토지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까지의 경제성장이 부와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졌듯이,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는 ‘통일은 대박이다’도 같은 과정을 되풀이할 것은 지난 70년의 경험이 말해주고 있다.





많은 경제학자들과 관련 전문가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필자가 보기에 지금 같은 상황에서의 통일은 대박이 아니라 쪽박일 것이며, 통일비용(수백~수천조)을 감당하지 못해 국가의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북한과의 신뢰 구축 없이 통일을 경제적 이해득실만으로 접근한다면, 그 부작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클 수밖에 없다. 이는 독일의 통일을 연구한 수많은 저작들과 연구논문들이 통계수치와 치밀한 분석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낙수효과가 새빨간 거짓말이었듯이, 부의 재분배가 강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경제성장은 반드시 부와 위험의 불평등으로 이어지며, 이를 바로 잡으려면 전 세계적 노력이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진보 개념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결과로 이어졌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영원한 진보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던 헤겔은 인류에 씻을 수 없는 피해를 끼쳤을 뿐만 아니라,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쳐 변증법적 유물론과 ‘자유의 왕국’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유럽의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라는 타협책을 들고 나옴으로써 ‘프롤레타리아 혁명’이란 전복적이며, 이루어질 수 없는 가상의 유토피아와 시민 중심의 사회라는 지속되기 어려운 동거에 들어갔다. 폴라니의 마르크스 비판에서 볼 수 있듯이 계급 간의 투쟁이 역사의 실체라면 계급이 사라진 역사란 존재할 수 없음에도, 유럽은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의 혼합을 선택함으로써 ‘사탄의 맷돌’로서의 자유시장 자본주의의 문제점을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임시처방전을 바탕으로 타협해버리는 우를 범했다.





이렇게 전복적 혁명을 막아낸 그들은 내부로부터 무한 경쟁을 지속하는 자유주의 자본주의와 타협함으로써, 강력한 외부의 압력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내부에서 자라고 있던 자유방임적 시장경제에 의해 견고했던 유럽의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 체제가 무너져 내리고 있다. 영원할 것 같았던 견고한 것들이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녹아내리며 존재의 근거를 상실하고 있다.



이에 반해 20세기 내내 마르크스를 수없이 부관참시해 그의 사상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용납하지 않은 미국의 지배엘리트들은 국가와 정치 자체를 기업과 비즈니스로 만들어 돈이 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기는데 성공함으로써 온갖 불평등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자유와 평등을 외치면서도 사회경제적 평등에 대해서는 대놓고 경멸을 표하는 이들은 성공과 대박에 대한 환상을 강화하며 건국의 순간부터 체제의 바탕에 숨겨놓은 전체주의적 성향을 아낌없이 드러냈다.



예를 들면 마르크스의 사상을 가장 잘 이해했던 감독이자 배우였던 찰리 채플린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돈이 되는 그의 영화는 최대한 우려먹는 이중적 행태를 보여주었다. 이들은 개인의 신앙과 공기에도 신용 등급을 매기는 데까지 거침없이 나갔고, 대중매체를 동원한 문화산업을 통해 시민의 의식마저 동질화하고, 개인의 기호마저 자본주의화 하는데 성공했다.



세상을 양분했던 서구의 두 가지 산업주의 모델 중 내부로부터 무너져 내린 사회민주주의와 복지국가는 ‘하이에크-대처’라는 정치경제적 조합과 ‘제3의 길’이라는 토니 블레어 내각의 일탈을 거쳐 2008년의 신용붕괴를 거치면서 장기 불황에 빠져들었고, 유럽의 부를 블랙홀처럼 빨아들인 독일 중심의 유럽으로 재편되고 있다. 곳곳에서 칼 슈미트와 히틀러의 조합이 부활하고 있으며, 예외상태에서 더욱더 힘을 발휘하는 ‘탐욕의 삼위일체’가 신자유주의라는 타락의 이데올로기를 통해 복지국가의 마지막 뿌리마저 뽑아내고 있다.



세계의 모든 국가에 대해 유일한 예외국가임을 스스로 천명한 미국에서는 프리드먼-레이건 조합, 진보의 중심에 보수의 씨앗을 파종한 클린턴, 미국 백인 상류층이 지지하는 기독교 근본주의와 국가업무의 민영화를 울부짖으며 세계를 상시적 전쟁상태로 몰고 간 부시, 월가와 실리콘벨리가 인정한 ‘검은 피부의 하얀 가면’의 오바마에 이르기까지, 외국의 돈으로 흥청망청 살아온 유일 제국의 맨얼굴과 치부를 아낌없이 드러냈다.





단 40년 만에 조상이 쌓아온 어마어마한 부를 모두 탕진한 유일 제국은, 새롭게 부상하는 제국인 중국과 정치경제적 식민지인 일본과 한국 등의 도움을 받아가면서, 무제한적인 양적완화와 무차별적인 무기 수출, 점점 줄어드는 유학생 유치, 근육질 판타지와 지구방위대로서의 십자군전쟁으로 일관하는 헐리우드의 영상산업, 갈수록 하한선이 내려가는 투자이민, 저임금 노동자로 부려먹던 불법체류자의 추방, 가뜩이나 부족한 사회안전망과 복지체계의 축소, 천문학적인 재정적자의 대규모 삭감 등으로 겨우겨우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동원 가능한 모든 것을 끌어다 부도난 통장을 메우고 있지만, 현재의 허상과 과거의 영광 사이에 갇혀 있는 유일 제국은 제살을 깎아먹고 있는 장기불황의 늪에서 탈출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지구온난화에 치명적이며, 물의 대규모 오염을 피할 수 없는 세일가스에 대한 본격적인 채굴과 사용은 경제위기를 돌파하는 처방이 될 수도 있겠지만, 그 이익보다 큰 또 다른 형태의 재앙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누구나 알고 있는 처방, 즉 고율의 법인세와 상속세, 슈퍼리치와 각종 분야의 스타들에 대한 누진과세, 토지세와 환경세 신설, 금융권의 불로소득에 대한 중과세 같은 일련의 조치에 성공하면 제국의 부활은 가능하다.



꿈같은 이런 스토리는 모든 불평등의 근원에 자리하고 있는 존 로크의 사상ㅡ자연법을 이용해 소유권 개념을 정립했지만, 신을 끌어들여 침해불가능한 권리로 만들어버림으로써 타인을 착취해 무제한적인 부의 축적을 가능하도록 만든 사상ㅡ을 칼뱅의 예정조화설과 칸트의 정언명령처럼 떠받드는 연방국가 미국에서 실현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위대한 미국 혁명의 결실이었던 '미국의 민주주의'는 '독립선언서'와 ‘연방주의자의 연설’에서나 가능했던 가상의 것이었을 뿐, 현실에서는 건국 초기에만 제한적인 사람(유럽에서 건너온 백인들)들만 누릴 수 있었던 인류 최고의 호사였다.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밝힌 것처럼, 경제적 이득보다 손실이 커졌기 때문에 노예해방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끝끝내 부정하려는 건국 이래의 새빨간 거짓말들을 되풀이하면서.



스미스와 리카도가 미국에서 태어났으면 죽을 때까지 침묵을 지켰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상식에 불과한 것들을 무슨 대단한 경제이론을 제시한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일은 아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만큼 미국은 ‘불경한 삼위일체’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해준 숙주이자, 2008년 신용 대붕괴 이전까지는 가장 큰 시장이었고, 그 역할에 지나칠 정도로 충실해 전 세계를 부정적 세계화의 올가미 속에 가둬버린 주인공이었다. 

  1. 태봉 2014.09.05 14:47

    재미있습니다^^잘 배우고 갑니다~~~

  2. 산바위 2015.01.16 19:57

    많은걸 생각하게 하는 글 감사합니다

    • 늙은도령 2015.01.16 22:08 신고

      건강 때문에 연재를 중단했는데, 체력이 회복되는 대로 연재를 이어갈 생각입니다.
      상당 부분 써놓은 것이 있기 때문에 체력만 돌아오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죽음이 확정된 유병언과, 야당이 스스로 자멸한 7월 재보선 때문에 햇살에 눈녹듯 사라져버렸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의 미래가 어디로 갈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매체를 통해 여러 가지 형태로 많은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알려졌지만, 평균투표율이 33%도 넘지 못하는 참여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에 우리 시대의 모든 사람들, 특히 노약자와 미래세대의 삶에 최악의 영향을 줄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잰걸음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19개 경제 관련 법안의 통과를 요구하는 청와대



더 할 수 없는 수세에 몰렸던 박근혜 대통령은 재보선의 압승에 편승해 민영화와 규제완화가 핵심인 19개의 경제 관련 법안에 대한 국회의 조속한 처리를 압박하고 나왔습니다. 19개 법안의 선두에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자리하고 있는데, '투자활성화 관련 법안'으로 분류된 이 법안은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앞당기는 것이어서 지옥 같은 재앙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SBS의 <최후의 권력>에서 인용



박근혜 정부가 가이드라인이라는 행정조치를 동원해 밀어붙인 반쪽자리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대형병원들의 숙원사업이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의료를 빙자한 관광호텔들을 짓고자 하는 건설업계의 요구가 강력하게 반영돼 있습니다. 19개의 경제 관련 법안에는 학교 인근에 관광호텔을 짓는 대한항공을 위한 법안도 들어 있습니다. 서울에 땅을 갖고 있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돈벌이를 하고 있지 못하다가 '줄푸세(신자유주의)'를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박근혜 대통령의 재임기간 동안 숙원사업인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SBS의 <최후의 권력>에서 인용



필자는 의료민영화와 영리화가 진행된 국가의 자료들과 책들을 구입해서 그 실태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독학이라서 필요할 때마다 이것저것을 다루다 보니 하나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늘은 21세기 최고 지성이었던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에 나오는 내용을 이곳에 옮기는 것으로 대신할까 합니다. 오늘의 글에 이어 다른 책들에서 나오는 내용도 추가로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식의 완전 보호 복지는 매우 부담스러운 것으로, 때로는 분개해야 마땅한 것으로 여겨져 왔다. 아직 검증되지 않았고, 훨씬 유혹적인 갖가지 시장 상품에 비교해보면, 그것은 맥 빠질 만큼 단순하며, 따분하며, '자극적 요소'가 전무하게 보일 수 있다…이제 공격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러한 고전적 '복지국가'의 보호 제도는 비경제적이라는 이유로 몰매를 맞았으며, 도처에서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일어나면서 지위가 크게 흔들리게 되었다.


그런 여론에 편승해, 마가렛 대처는 "유모국가"에 대해 전면전을 선언했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자!"는 구호를 내걸고 말이다. 하나의 정책 프로그램으로서는 호응을 얻은 프로그램이었다. 선택권을 준다는 것은 틀에 박힌 과정에서 해방된다는 것으로 다가왔다. 선택이 가져오는 의외성과 모험성은 그것이 아무리 불편한,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불확실성을 동반한다 해도 자극적이었다. 


물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의사에게서 진료를 받도록 선택해 가는 길은 전보다 덜 지루했다. 하지만 그 대신 예기치 않았던 돌에 걸려 넘어지거나 구덩이에 빠질 수 있는 길이었다. 그 종류 또한 다양했다. 병원의 대기실과 의사들의 수술실을 찾아다니며 자기 차례가 오기를 조바심 내며 기다리던 수많은 환자들과 이야기해본 잰 호프만은 이런 사실을 알아냈다. 




                                                                                                           SBS의 <최후의 권력>에서 인용



지난 10년 동안에, 의사와 환자의 대화가 이런 식으로 바뀌었다. '여기가 문제로군요. 이렇게 하셔야 합니다'에서 '여기 중에서 고르세요. 어떤 쪽을 택하시겠습니까?" 베이비붐 세대로 보자면 바라던 대로 된 셈이다. 하지만 다른 세대라면...? 호프만은 계속해서 성난 환자들의 의견을 인용한다. 


마치 외국에 온 기분이어요. 생전 처음 듣는 말들을 하고 있으나,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고... 의사 선생님이 "여기 중에서 고르세요" 하시며 전문가로서의 조언도 판단도 안 해주시는데, 이건 진료를 포기하자는 것 같단까요... 누가 우리 건강을 돌보고 있는 걸까요? 우리 자신이든지, 아무도 아니든지죠. 


"외국에 와서" "질료 포기를 당한" 자신의 모습,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모르고 "아무도" 자신을 돌봐주지 않고 책임을 져주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는 것, 그것은 실로 소름끼치는 경험이 아닐까. 어느 누구라도 말이다. 안전하지 않은 자유는 자유 없는 안전보다 켤코 덜 무섭지 않고, 덜 당혹스럽지 않다. 두 경우 모두 억압적이며, 공포를 잉태하고 있다. 악마냐? 검푸른 바다냐?   



                                                                                                         SBS의 <최후의 권력>에서 인용



영국은 정신 나간 총리, 마가렛 대처 때문에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단행했다 대실패를 경험한 뒤에야 제자리로 돌아왔습니다. 수없이 많은 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온갖 병에 고통받게 만들고, 빚에 허덕이게 하거나, 개인파산자와 자살자들을 양산한 뒤에야 말입니다. 최근에는 대처와 같은 보수당 출신인 캐머런 총리도 의료민영화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고 야당과 국민들은 끊임없이 이에 저항하고 있습니다. 



                                                                                                        SBS의 <최후의 권력>에서 인용 


 

영국과 미국보다 더욱 신자유주의적 나라로 우뚝 솟아오른 대한민국에서는 이명박에 이어 박근혜로 이어지는 새누리당 출신 대통령에 의해서 의료민영화와 영리화가 닻을 올렸습니다. 그 폐해가 당장은 눈에 띠지 않겠지만, 의료민영화와 영리화가 확산될수록 폐해는 눈덩이처럼 늘어납니다. 한국사람들이 어떻게 되던 말던 오로지 이익만 추구하는 외국의 자본이 들어오면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희박합니다. 



                                                                                                        경향신문에서 인용



게다가 집권여당으로서 정부와 손을 맞춰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추진한 새누리당이 7.30 재보궐선거에서 압승을 거뒀으니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에 제동을 거는 것은 다음 정권으로 넘어갔습니다. 그때도 새누리당의 후보가 대통령에 오르면 속수무책이겠지요. 스티글리츠와 크루그먼, 장하준 같은 세계적인 경제학자들이 3~4년 내로 또다른 금융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하는데 그때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자본주의체제는 언제나 금융위기가 발생하면 하위층의 지갑을 털어서 위기에서 탈출하곤 했는데, 이제는 얼마 남지 않은 재산마저 뺏기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요? 





우리는 미국의 의료민영화가 불러온 참상에 대해 수없이 많은 얘기를 하지만, 그래도 미국의 복지제도와 사회안전망은 1980년 이전(허리우드의 최대 업적, 레이건의 집권 이전)에 구축된 것들로 해서 대한민국보다 훨씬 앞서 있습니다. 최근에는 누더기로 통과됐지만 전국민 의료보험인 '오바마케어(미국 제약업계를 위한 의료보험이라는 것이 드러났다)'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영국의 건강보험제도도 권력욕의 화신이자 지독한 인종 차별주의자였던 마가렛 대처의 재임 기간 동안 최대의 위험에 처했지만, 지금까지 살아남아 세익스피어와 비틀즈 등과 함께 영국인의 자랑거리로 남아 있습니다.






벤야민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테오도르 아도르노는 《미니마 모말리아》에서 히틀러의 나치가 집권해 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세상은 기만되기를 원한다"고 말했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꼼수로 밀어붙인 지금의 대한민국이 그러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과거의 기억에 대한 집단적인 망각이 너무나도 심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대한민국을 어떻게 망쳐놓았느니 몇 주만 지나면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세월호 참사란 새누리당 출신인 이명박 정부의 규제완화와 박근혜 정부의 무능으로 최소 304명의 목숨을 앗아긴 참극인데도 그들에게 국가 개조를 맡기겠다고 몰표를 주었습니다. 



이 두 개의 참사는 집권 세력의 권력을 강화시켜주었습니다.



대의민주주의를 불가능하게 만들 정도의 낮은 투표율로 새누리당의 압승이 결정됐다고 해도, 이런 어리석은 선택은 범죄를 저지른 자에게 범죄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현대의 국가들이 안보와 치안, 질서를 목청 높여 외치는 것은 무한경쟁이 초래하는 각종 부작용들을 이용해 권력 기반을 확고히 하려는 의도이지만 '위험을 등에 지고 사는' 위험사회의 등장으로 인해 자신의 프라이버시마저 포기하고 있습니다. 이는 범죄자에게 법전을 들려주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병주고 약주는 악순환이 신자유주의의 통치출의 본질이자 수익구조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바탤스의 《불평등 민주주의》를 보면 어느 나라나 보수 성향의 정당이 정권을 잡으면 빈부격차가 더욱 벌어진다는 통계들이 나오는데, 그의 분석대로 학력이 낮고 가난할수록 부자 정당에 표를 준다는 것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의 먹이가 된 민주주의의 단점이자 아이러니라 할 수 있습니다(마르크스주의 좌파로 신자유주의 연구의 석학인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를 참조하라. 더 과거로 가면 위대한 천재 경제학자 소스타인 베블런이 《유한계급론》의〈8장. 생산노동을 면제받는 유한계급과 보수주의〉를 참조하라). 자유민주주의란 가난한 자들이 부자와 동등한 정치적 권력을 지니기 때문에 평등하며, 자치의 주체로써 모든 공적 결정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관철시킬 수 있어 자유로운 것인데 현대에 이르러서는 정반대로 가고 있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가 자신의 롤모델이라고 했던 마가렛 대처가 철도도 민영화했으니, 박근혜 대통령 임기 내에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것은 아닌지, 끔찍한 평행이론이 떠오르네요. 외국의 자본이 투자되면 각종 FTA의 독소조항 때문에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에 맞서 제3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설사 엄청난 위약금을 세금으로 물어준 다음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없던 것으로 해도 이미 불치병에 걸렸거나,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원상회복시켜줄 방법도 없습니다. 





또한 질병 치료를 위해 들어간 돈도 회수할 수 없습니다. 이미 돈을 챙길대로 챙긴 자들만 다음 번 먹이를 찾아 빠르게 움직일 것입니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타락시키고 부패시키는 신자유주의 통치술(자유방임 시장경제가 잘 돌아가도록 모든 것을 시장화하고 경쟁을 최대한으로 늘리도록 개인의 정신마저 조정하고 모든 선택에 도덕적·윤리적 가치를 배제한 경제적 합리성을 개입시키는 통치술)은 그 자체가 악마의 재림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들에 의해 어디로 끌려들어가고 있는 것일까요? 정말 당신은 안녕하십니까?   

   

  1. Croaton 2014.08.01 04:31 신고

    느낌은 지옥문이 열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과 이야기하다보면 사람들이 거의 좀비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런 식이죠. 자신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뭔지.. 자신이 어떤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자신의 인생의 가치관이 뭔지.. 전혀 모르고 생각도 해 보지 않으며 그렇게 사는 것에 대한 심각성도 모르며 전혀 진지하지가 않다는 겁니다. 뭐랄까..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거세당했다고 하는게 맞을라나.. 뭐 아무튼 보면 영락 없는 좀비입니다.

    그러니 그 좀비들이 신문에서 읽고 TV에서 보고 들은 것을 마치 자신의 생각인 양 떠들고요. 그러니 뉴스의 이면에서 벌어지는 일은 짐작도 못하지요. 세상이 원래 그런건지 아니면 독재정권에 세뇌당해서 그런건지..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 온 길을 자세하게 보면 인간들은 원래 좀비였던 것 같습니다.

    어려서 경기도 성남시에서 박정희 정권에서 민주화투쟁으로 오랬동안 옥고를 치루고 나온 사람이 국회의원에 떨어지는 걸 보면서..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노무현대통령이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을 때 덩달아서 같이 욕을 하고 흉을 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리고 무조건 잘 살게 해 준다는 전과 14범을 대통령으로 뽑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말도 논리적으로 하지를 못해서 버벅대면서 "그래서 제가 대통령을 할려고 하는 것 아닙니까.." 라고 말하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을 보면서 ..

    대체 무슨 생각이 들겠습니까? 역시 좀비들이로구나.. 역시 좀비야.. 이런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여기저기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도저히 그대로 있다가는 모두 죽을 것만 같을 때.. 폭동? 혹은 혁명? 그 딴걸 할테지요.

  2. 쿠쿠쿠(윤약사) 2014.08.01 23:52

    아마 이 문제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고 보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2007-2008년 경으로 생각합니다.
    나름 이것저것 자료도 보고 공부도 했는데, 당시에도 놀랐던 것은
    SERI나 LGERI와 같은 곳에서 나오는 보고서들이
    앵무새처럼 의료민영화가 건강보험의 문제점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광명인 듯 이야기하는 것이였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일들이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데,
    소름이 죽죽 돋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정말이지 우리 세대는 차치하고서라도 다음 세대가 더 문제입니다.

  3. 어떻게해야 2014.08.06 23:27

    좋은 글 정말~ ! 감사합니다.
    저는 23살 대학생입니다 (여)
    도대체 정치는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 세계는 어떻게 되는 것인지
    과거는 어떠했고, 그 패턴이 무엇인지 많이 궁금했습니다.
    젊은 애들 사이에선 일명 유머 사이트들 간 싸움 때문에,
    제대로 된 정보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한쪽은 정부가 무조건 옳다며 선동만 해대고... 어느 한쪽은 나쁘다고
    정확한 근거 없이 싸움질만해대고
    그래서 더 감사합니다 글 올려주셔서
    사건이 터질때마다, 보고 갑니다.
    처음에는 어느 한쪽에 치우쳐진건 아닌가.. 라는 생각때문에 편견을 갖고 봤던 점,
    모르셨겠지만 사과드립니다.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뭐가 옳은 건지도 모르겠고.
    신문 기사 읽어봐도 정확하게 올리는 사람 하나 없이
    사실도 아닌 자극적인 것만 서로 올려대고...

    그러나 덕분에, 많은 것을 알고 다양한 시각을 갖고 갈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자주 들릴테니 좋은 글 많이 많이 부탁드리겠습니다 ㅠㅠ

    • 늙은도령 2014.08.06 23:44 신고

      제가 좀 편향되기는 했습니다.
      저는 민주주의에 대해 지독하게 파고들었는데, 역사상 민주주의가 잘 돌아간 적은 사회구성원들이 일정 수준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보장됏을 때 가장 잘 돌아갔습니다.
      그럴 때만이 자유도 가장 잘 보장됐고, 공존과 공생도 가능했습니다.

      헌데 독일식 신자유주의의 원형하고는 차원이 다른 미국식 신자유주의가 40년 동안 진행되면서 세계는 정말로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민주주의는 다양한 정치적 스펙트럼이 인정돼야 하고 보수도 진보도 중용을 지향하는 사람도 같이 살 수 있는 체제를 말합니다.
      신자유주의는 민주주의를 최악으로 만드는 통치술입니다.
      그리고 대한민국이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신자유주의적 국가입니다.
      청년세대가 힘겨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무한경쟁과 약육강식이 자연의 법칙인양 호도했기 때문에 언제나 시작하는 사람에게 불리합니다.

      조부모의 능력, 아버지의 무관심, 어머니의 정보가 미래세대의 성공을 보장한다는 우스갯 소리는 정말로 무서운 얘기입니다.
      저의 집안은 북한에서 탈출한 집안이라 대부분 자수성가를 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1980년대까지는 가능했습니다.
      그러나 IMF 이후는 이것이 불가능해졌습니다.
      미래세대가 앞세대의 잘못으로 인해 피해를 보게 된 원인입니다.

      현재의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이들의 행태는 어떻게든 막아야 합니다.
      진보좌파들의 과격성이 빌미를 주기도 하고요.
      방송과 신문들은 지독할 정도로 정치편향적이고요.

      저는 책을 주로 봅니다.
      한 권의 책은 일관된 주제를 담고 있지 않으면 평가받지 못하기 때문에 수미일관하는 성찰을 보여줍니다.
      그렇게 세상을 봅니다.
      또한 성공한 형제와 친구, 선후배들을 통해 현장의 소리도 듣습니다.
      그렇게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려고 노력합니다.

      아무튼 제가 글을 쓰는 목적은 미래세대가 세상을 보다 정확히 봤으면 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 자신의 권리와 자유, 행복을 지금보다 더 얻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인류란 미래세대의 성공에 따라 평가받습니다.
      미래세대의 행복이 현재의 권리보다 우선하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제 글을 그 동안 꾸준히 봐주셨다니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부디 좋은 세상이 와서 진정한 의미의 민주주의가 실현되기를 바랍니다.
      국민이 없는 국가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사람이 먼저고, 국민이 먼저입니다.
      미래가 없다면 지금의 삶이 의미가 없듯이.

  4. 어떻게해야 2014.08.09 00:00

    감사합니다. 댓글달아주셔서..

    저도 정치나, 사회적인 면은 잘 보지 못하지만..
    잘 모르는 제게도 이런 행태들은 정말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런 사실들이 분개하게 만들지만,
    아무것도 못한다는 현실 때문에 절망에 빠질 때도.. 있었습니다.
    인터넷에서 하는 서명운동, 의견 나누는 것들이
    막상 시간이 지나고 보면 아무 소용이 없더라구요..
    아무래도 저희 세대가 컴퓨터 세대이다보니,
    직접 현장에 나가는 것보다는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의존하는 경향이 높습니다.
    사이트에서 검색어를 띄어주지 않으면
    정말.. 장님, 좀비같은 시대를 사는 것 같아요

    혹시, 의료영리화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고 계십니까??

    벌써 사람들의 관심에서 잊혀지는 것 같아서
    눈물이 나요

  5. 어떻게해야 2014.08.09 00:17

    아.. 그리고 죄송합니다. 댓글 왜이렇게됐지..
    비밀번호가.. 안맞는지 안 되요
    ㅠㅠㅠㅠㅠ

    • 늙은도령 2014.08.09 03:15 신고

      저도 그냥 댓글을 달 수 있었으면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몰라요.
      최대한 빨리 이런 불편을 없앨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보겠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행정조치가 시행됐기 때문에 되돌리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100% 의료민영화와 영리화가 확정된 것이 아니어서 야당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행정조치에 따라 본격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겉으로 들어나지 않기 때문에 파악하기 힘듭니다.
      저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움직임들이 정중동인 것 같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 때문에 대놓고 움직이지 못하는 것도 있고, 이번에 청와대에서 투자활성화 법안들을 처리하라고 국회에 압력을 넣은 법안이 통과되는 것을 지켜보는 것 같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그 피해가 몇 년이 지나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음 총선에서 국회를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에 반대하는 정당이 장악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라는게 생각보다 기득권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에 국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결국 어떤 정당이 보다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느냐가 중요한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민주주의는 국민의 뜻에 따라 기존의 법률도 갈아엎을 수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악착같이 투표해서 국민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정당을 키워야 합니다.


      저도 여러 가지 병을 달고 사는 사람이라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계속해서 지켜보며 주시하고, 저항하고 있습니다.
      희망을 잃지 말았으면 합니다.
      세상은 모두가 변해야 바뀌는 것이 아니라 전체 성원 중 10~15%만 변해도 바뀔 수 있답니다.


      님처럼 점점 깨어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으니,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았으면 합니다.
      저처럼 비판이론을 업으로 삼고 있는 지식인들은 자신의 예언이 틀리기를 바라며 미래를 경고합니다.


      저도 제가 비판하는 현실이 미래에도 계속되리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니, 조금만 더 참여하고 조금만 더 저항하면 이땅의 민주주의도 좋아질 것입니다.


      비록 언론과 방송들이 매일같이 새로운 이슈를 띠워 중요한 것들을 파묻어 버리지만, 미래란 누구도 모르기 때문에 묻힌 것들이 거대한 폭풍우가 몰아친 다음에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 날을 위해 저는 글을 쓰고 님은 제 글에 호응을 해주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주변의 친구들부터 한 명, 한 명 그렇게 서로 연대해나가면 그것이 가장 강한 힘으로 작용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계속해서 살펴보고 있으니, 정보가 쌓이면 반드시 글로 옮기겠습니다.
      에볼라 바이러스에 관해 글을 쓸 때 의료민영화와 영리화에 대해 다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힘내시고요.


      이밖에도 궁금한 것이 있으면 댓글로 남겨주십시오.
      제가 아는 대로 설명드리겠습니다.


      참, 비밀번호는 저도 잘 모르니 한 자만 넣어도 됩니다.





  6. 어떻게해야 2014.08.11 15:41

    앗 ㅋㅋ 센스넘치십니다

    아얘 법안 자체가 통과되지 않길 바랬는데,
    행정조치가 시작되었다니
    충격입니다.

    그래도 좋은 글 많이 많이
    감사합니다 ㅎㅎㅎ

    자주 들릴께요~!

    • 늙은도령 2014.08.11 15:56 신고

      행정조치도 국회에서 막을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하루 이틀 사이에 글로 올릴 것입니다.
      의료노조와 통화를 좀 한 다음에 자세한 정보도 없어야 하고요.
      감사합니다.

  7. 허아린 2014.08.16 03:07

    걱정 ㅠㅜ

    • 늙은도령 2014.08.16 04:28 신고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는 일단 진행이 되면 되돌리기 힘듭니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합니다.
      야당이 행정조치를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요즘 하도 이것저것을 쓰다보니 그 부분을 빼먹었는데, 아직 국회에서 저지할 수 있는 기회는 있습니다.

  8. specialist 2014.09.30 00:22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나이 많지는 않지만 젊은 친구들에게 자주하는 말과 거의 같네요..
    북마크 해두겠습니다.ㅎㅎ
    저는 전임 대통령인 LMB을 아주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에게 소중한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신 분이지요..
    그 때문에
    1. 조중동과 뉴라이트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2.대기업이라고 유명제품이라고 구매하던 나의 어리석음을 알게되었고,
    3.현명한 소비는 어떻게 해야되는지도 알게되어...남들이 뭐라하든 지금까지 실천하고 있고..
    4.투표의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되었고..
    5.다양성의 소중함을 알게되었고(하지만 다문화 정책은 지지하지 않음..)
    6.잘 잊어먹는 성격도 고치고...
    7.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성격이 무엇이며, 내가 어떻게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8.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정책의 의미와 이면을 살필수 있는 통찰력을 가르쳐 주셨네요...
    9. 개인적으로 엔지니어로서 기술만 생각하는 삶에서 앞으로의 진로를(퇴직후)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해체나갈지도 고민하게 해주신 분이네요..ㅎㅎㅎ


    • 늙은도령 2014.09.30 01:20 신고

      대단히 중요한 것을 깨우치셨습니다.
      님 같은 분들이 많아지면 정말 좋은 세상이 열릴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보이는 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경험에서 얻은 기본적인 사실을 가지고 사유를 늘려가다 보면 인간사의 이치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자신의 삶에 자신이 주인이 되는 것은 타인의 삶이 그들에게도 똑같음을 이해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해가 선행되면 감정이입이 되고 공감이 생깁니다.
      연대의 기본 조건이 생기는 것이고, 그렇게 조금은 불리한 입장에서 있는 사람들이 강자와 승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들과 정치적 권리와 자유로운 표현과 삶에서는 동등하다는 것을 인식할 때 세상은 한 걸음 앞으로 나갑니다.
      사회경제적 평등이 일정 수준까지 보장될 때 민주주의는 가능하고 제도적으로 주어진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태생적으로 가지고 태어나는 자유와 사회적 합의와 공평한 법과 평등한 법적용에서 나오는 자유를 구별할 수 있을 때 한국도 진정한 의미의 선진국에 들어설 것입니다.
      그러 할 때 다양성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지금의 깨달음을 더욱 성숙시킬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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