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정치사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위대한 두 명의 거인,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처럼 유시민도 진보적 자유주의자다. 자유주의는 종류가 너무나 많아 그에 대한 정의도 그만큼 많다. 그중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는 '공정으로서의 정의'와 '보편 시민권'과 진보적 가치(불평등과 양극화를 줄이고, 평등과 자유를 신장하면서도 권리행사에 따른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것)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이대생의 투쟁에서 볼 수 있었던 참여민주주의와 촛불혁명에서 볼 수 있었던 시민행동주의에 가장 많은 영감을 주었고 함께 했던 깨어있는 시민이라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 사회주의와도 연동되며 다양한 전통과 종교, 시민적 가치와도 연동된다. 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이라는 전제하에 자기 통치, 자아실현, 자기보호, 행복 추구를 가장 중요한 덕목이자 정언명령이라고 한다. 자유에 따른 어떤 행동이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바람직하고 이성에 부합한 의지 증진과 실천에 반드시 필요하다면, 이때의 명령은 정언명령이다. '정언'은 조건이 없다는 뜻으로, 특정 목적을 추구하는 '가언'과는 다르다(마이클 센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인용). 

 

 

따라서 자유주의의 핵심인 자유에 대해 정확히 이해할 때 다양한 종류의 자유주의를 이해할 수 있다. 유시민이 '친구 따라 강남 갔다'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오직 하나의 가치와 지향, 신념만 강요하는 이명박근혜의 통치방식에 격렬하게 저항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열린우리당의 구석에 머물렀다가 탈당했으며, 우여곡절 끝에 참여당을 만들었고, 진보정당의 통합에 합류했다가 정의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것은 정치경제적 지향이 진보적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글에서는 홉스와 로크와 함께 자유주의의 원조격인 J.S.밀의 《자유론》을 통해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이 '어용지식인'으로써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하겠다는 것이 진보적 자유주의자로써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어떤 희생을 전제하는지, 어떤 목표를 실현하려는 것인지 자세히 살펴보려고 한다. 그럴 때만이 정치평론을 떠나 자유주의자로서의 삶을 만끽하던 유시민 작가가 노무현재단이사장 자리를 수락한 이유와 문프의 성공을 위해 어용지식인으로 돌아온 이유를 알 수 있다. 

 

 

밀은 《자유론》에서  "자유라고 불릴 수 있는 자유는, 우리가 타인에게 행복을 뺏으려 하지 않는 한, 또는 타인이 행복을 얻고자 노력하는 것을 방해하지 않는 한, 우리 자신의 방법으로 우리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유다"라고 말했다. 벤담처럼 <공리주의>의 창시자이기도 한 밀은 '자유를 타인의 행복 추구를 방해하지 않는 한, 자신의 방법으로 최고의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면서 '권리 행사에 따른 행복 추구'를 자유롭고 이성적이며 문명화된 개인의 목표로 제시했다. 

 

 

밀은 또한 "개인의 행동 중에 사회의 제재를 받아야 할 유일한 것은, 그것이 타인과 관련되는 경우이다. 반대로 오로지 자신만 관련된 경우 그의 인격의 독립은 당연한 것이고 절대적인 것이다. 자신에 대해, 즉 자신의 신체와 정신에 관해 각자는 주권자"라고 말했다. 자유주의자에게 독립적인 정신과 합리적인 이성, 자유로운 삶은 절대적인 것이어서, 타인과 관련되지 않는 한 독립적인 인격과 자유로운 삶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아야 하며, 그럴 때만이 비로소 실현된다고 주장했다.       

 

 

유시민이 '정치를 했을 때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한 느낌이었고, 언제나 타인에게 잘 보이고 자신의 생각을 죽인 채, 그들의 자유와 행복을 위해 일해야 했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평등과 함께 자유가 가장 중요한 가치인 민주주의를 이루어야 자유로운 삶을 만끽할 수 있기 때문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자유주의 앞에 붙은 '진보적'이라는 정치 지향 때문에 바보 노무현을 도와주었고, 그 연장선상에서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자유주의자인 그에게 정치란 불편한 어떤 것이었다. 

 

 

유시민이 노통의 정치적 비서실장과 경호처장을 자임했던 것도 자유주의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 정도로 노통이라는 정치인이 위대한 인물이었고 탁월한 지도자였기 때문에 유시민이 자원봉사자를 자처할 수 있었다. 유시민은 노통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하고 믿었고 따랐다. 대한민국의 정치판에서 유시민을 능가할 정치인이 없을 정도로 지적이었고, 한나 아렌트가 《정치의 약속》에서 말한 그 의미로써 '정치가 말(시민의 정치 수준을 높이고 실현가능한 정책을 제시하고 채택되도록 경쟁자를 설득하고, 집행의 결과에 책임지는 자유롭고 치열한 토론으로써의 말)'이라면, 누구도 그의 상대가 될 수 없을 만큼 탁월했던 그였지만, 오직 노무현이었기에 자신의 젊음을 바칠 수 있었다. 

 

 

노통이 비극적으로 이승의 삶을 마친 이후 폐족으로 물러나지 않고, '가장 우아한 방식의 복수'를 위해 정치를 계속했던 것도, 문재인 후보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노력했던 것도 노통이 곧 문프였고, 문프가 곧 노통이었기 때문이다. 자유주의자인 유시민이 현실정치에서 떠나 '썰전'을 할 때도 '어용지식인'이라는 파격을 자처했던 이유도 이런 연장선상에서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문프의 지지율이 높게 나오고 순탄하게 국정을 운영하는 중에 정치평론마저 그만둔 것은 자유주의자 유시민으로써는 최적의 시기였고 미루고 미루었던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정치라는 몸에 맞지 않은 옷을 벗어버린 유시민은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유시민이 국회의원으로서의 첫 무대에 백바지 차림으로 나선 것은 자신의 독립된 인격과 자유로운 이성, 확고한 신념과 행복 추구에 따른 행위였지만, 타인(다른 국회의원과 다수의 국민들)의 인격과 행복을 침해했기에 비판받아 마땅했지만, 작가로 돌아간 유시민은 진정으로 자유로워보였고 행복해보였다.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정치행위는 멈췄지만, 자유인으로써의 유시민은 그 동안 미루어두었던 일들로 인해 행복을 만끽할 수 있었다. 

 

 

그런데 정의가 남아있었다. 문프의 성공에 담겨있는 촛불정신의 실현이 남아있었다. 수구우파의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통한 일방적이고 배타적이며 폭력적인 거짓과 음모의 선동정치의 득세가 추가되었다. 밀은 "자유란 원칙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한 토론에 의해 개량될 수 능력을 갖는 시대"에나 적용될 수 있다고 했음에도, 수구우파의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은 자유가 적용될 수 없는 '이명박근혜 9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자, 박정희 시대의 권위주의 독재로 돌아가자는 것이어서 수구방관만 할 수 없었으리라.

 

 

다른 무엇보다도 미국보다 더 미국적인 나라로 돌아가는 퇴행과 역주행을 지켜보고만 있을 수 없었으리라. 토크빌이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나는 사람의 마음속에 돈에 대한 사랑이 이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나라, 또는 소유의 영원한 평등이론에 대해 이보다 더 깊은 경멸을 표시하는 나라는 알지 못한다"고 비판했던 미국적인 것의 부활을 떠들어대는 수구보수의 선동정치를 두고볼 수만 없었다. 가짜뉴스, 음모론, 루머 등의 '바이러스성 콘텐츠'를 양산하는 그들의 반지성주의에 쐐기를 박을 필요가 있었다. '빨갱이는 죽여도 된다'는 반이성과 반인륜에 맞서지 않는다는 것은 범죄에 다름 아니다.

 

 

밀은 "설령 단 한 사람만을 제외한 모든 인류가 동일한 의견이고, 그 단 사람만이 반대 의견을 갖는다고 해도, 인류에게는 그 한 사람에게 침묵을 강요할 권리가 없다. 이는 그 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했을 때, 전 인류를 침묵하게 할 권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주장했다.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가 침해불가능한 권리인 것도 이 때문인데, 여기에는 절대적인 전제가 자리한다. 자신의 사상을 표현함에 있어 다른 사람의 권리와 행복을 침해하거나 상대에게 변화와 수정을 강요할 수 없으며, 침해했을 경우 그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책임의 원리'다.  

 

 

그런 의미에서 수구보수들도 자신의 의견을 제기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침해의 정도가 심할 경우 표현의 자유를 박탈당할 수도 있으며, 탈법의 경우에는 법적 처벌도 받아야 한다. 모든 권리에는 그에 합당한 책임이 따르며, 자신에게 주어진 사상과 표현의 자유가 타인의 사상과 표현을 억압하고 강제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누구도 무오류의 경지에 이를 수 없으며, 자신의 오류가 발견되고 지적받았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고 사과하고 고치는 용기 또한 자유주의의 핵심 가치 중 하나이다. 

 

 

모든 개인은 그렇게 발전하며, 죽음에 이르러야 비로소 멈출 수 있다. 종으로써의 인류는 그렇게 진보하고 사회는 너그러워지고 국가는 풍요로워진다. 오류의 가능성은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는다. 중간에 있다고 오류에서 자유로운 것도 아니며, 양비론에 묻어갈수록 비겁하고 무책임한 것이다. 아웃사이더였던 노통과 문프는 그런 과정을 통해 위대한 지도자에 올랐으며, 그런 지도자를 경험했고 경험하고 있는 국민은 민주시민으로 성장하고 깨어있는 시민으로 성숙된다.   

 

 

 

 

밀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으로 타인에게 해를 끼칠 수 있을 뿐만 아니라(수구보수의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 행동하지 않음으로써 해를 끼칠 수도 있다(작가로만 살아가는 자신)"고 했으니, 노무현재단이사장에 취함한 그로써는 문프의 성공을 도와야 할 의무와 책임이 생겼다 할 수 있다. 부정적 평가가 긍정적 평가를 능가하는 '데드 크로스'가 일어났다고 난리를 치는 자한당과 조중동의 광기를 더 이상 지켜볼 수만 없었으리라. 이재명스러운 '김어준과 아이들'로써는 도저히 그들을 상대할 수 없으니 자신이 나설 수밖에.

 

 

유시민 이사장은 노빠이자 문프의 지지자라는 점에서 범문파에 속한다. 다만, 이재명 제명과 김혜경 구속, 민주당의 환골탈태를 중단기 목표로 정한 소수로써의 문파처럼 말하고 행동할 수는 없으리라. 그는 문파 전체를 대표해야 하기 때문에 민주진보 진영 전체를 아우를 수밖에 없으며, 그렇다고 해서 3,245명의 고발인단과 궁찾사 및 군찾사로 대표되는 문파와 연결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문파 중 누구라도 유시민이 진행할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에 출연할 수 있다면, 이에 대해 말하고 발전적 연대를 이룰 수 있으리라. 

 

 

필자는 노무현재단 회원이다. 운이 좋아서 2만 번째 기부자가 되기도 했다. 노통을 누구보다도 존경하고 사랑하며, 문프 또한 존경하고 사랑한다. 문재인과 노무현의 리더십은 다르다는 3편의 글도 노통이 곧 문프이고 문프가 곧 노통이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 두 분에 대한 수많은 글들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마찬가지다. 문프의 지지율이 대선 득표율(41%) 밑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상, 지지율 하락은 당연하지만 '데드 크로스 운운'하며 광란의 잔치를 벌이는 저들에게 통쾌한 반격과 찬물을 끼얹을 수 있는 유시민의 어용지식인 복귀는 반갑고 고맙기만 하다.  

 

 

4월 이전에 집필을 마치려고 하는 필자에게 조금이라도 여유가 생겼으니 더욱 고맙고 반갑다. 찢바들이 난리를 치는 것을 보면 유시민의 복귀가 이재명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아는 듯하다. 유시민 이사장의 말처럼, 팟캐스트와 유튜브 방송을 정복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문프의 성공을 위해 문파 최대의 스피커가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김어준과 아이들'은 꿈도 꾸지 못할 그런 수준의 정치평론을 보여주기를 바란다. 정말 '바닥으로의 경주'는 지겹고 암울하고 참담했다. 클라스가 다른 정치평론을 보여줌으로써 문프가 짊어진 무거운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를 바란다.        

   

 

문프는 지금까지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할 것이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어용지식인' 유시민이 있을 것이다, 다양한 성향의 문파와 함께. 가짜는 드러날 것이고 껍데기는 벗겨질 것이다. 위선과 선동, 폭력의 언어들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며, 문프의 정책과 업적들은 제대로 된 평가를 받으리라. 원칙과 상식, 양심과 정의, 공정과 평화, 자유와 평등이 넘처나는 '사람사는 세상'에서는 '사람이 먼저'이 먼저이기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Kheju 2018.12.25 21:07

    유시민의 어용 지식인 역할이 참 반갑습니다
    도령님께도 성탄의 축복이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새해에도 건승하세요

    • 늙은도령 2018.12.25 22:52 신고

      님도 성탄 잘 마무리하시고 새해에도 건강하고 행복하기를 바랄게요.
      유시민의 복귀가 참으로 반갑네요.

  2. merryjanet 2018.12.25 23:56

    팟캐스트 복귀와 유튭 정복을 코앞에 두신 유시민 이사장님을 반갑게 응원합니다.
    정치가 불편하신 유 이사장님인 줄은 그 분을 아끼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눈치채었고 잘 알고 있습니다만,
    정치지도자란 자신이 바래서 되는 것도 아니고 원하지 않더라도 국민이 요청하고 소원하면 어쩔 수 없는 것입니다.
    노통님은 선구자적 입장에서 마땅히 불 속에 뛰어드셨지만, 문프는 어디 그랬던가요?
    그 분도 정치 의상을 얼마나 불편해 하셨나요...하지만 국민의 뜻에 따르셨고,
    힘들고 험하지만 원칙대로 잘 수행해가시고 있잖아요.
    유시민 이사장님, 김경수 도지사님 그리고 조국 수석님이 2022년도가 시작되면서 아름다운 경선을 치르는
    희망을 꿈꿔본다고 어느 국민이 저를 나무라겠습니까.

    • 늙은도령 2018.12.26 01:19 신고

      !00% 동감합니다.
      그들이 경선을 치르는 날을 기원하고 또 기원합니다.

  3. 별까기 2018.12.26 06:28

    유시민 이사장님 복귀가 정말반갑고 속이 뻥뚤리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복귀소식이 나자마자 20대 남자들한테 많은욕을 먹고 있더라구요 요즘 문재인 대통령 20대 남자 지지율이 많이 빠진다는데 걱정입니다.

    • 늙은도령 2018.12.26 07:19 신고

      20대 남성은 원래부터 지지율이 높지 않았어요.
      20대 남성의 지지율이 많이 빠진 것도 아닙니다.
      그들의 분노는 이해하지만 이미 극우화된 자들이라 신경쓸 것 없습니다.
      세상의 반은 여자입니다.
      워마드와 불꽃 페미만 빼면 여성들의 지지는 견고합니다.

  4. 라만 2018.12.26 12:37

    단숨에 읽어 내렸습니다 무지 고맙고 반가운 도령님의 글 고맙습니다 첨맘님을 노짱 문프만큼 사랑한다며 순간을 참지 못하고 잠깐 눈 돌리려 했던 저를 반선하게 됐습니다 역시 저도 보는 눈이 있었는데 진짜 순간을 못 이겨 첨맘님을 의심의 눈으로 봤다는게 무지 챙피하게 느껴집니다
    도령님의 이번 글을 통해 다시란번 저의 무지를 반성해 봅니다 고맙습니다 늙은도령님

    • 늙은도령 2018.12.26 20:42 신고

      반성할줄 아는 사람만이 발전합니다.
      실수는 언제나 합니다.
      문제는 그 실수를 숨기기 위해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는 것이지요.
      님은 그런 면에서 김어준보다 낫습니다.

  5. 소슬 2018.12.27 01:42

    멋진 글 항상 감사드립니다.제목에 오타가..어용지식인

  6. 소나무 2018.12.28 16:43

    글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가짜가 판치는 요즘에 도령님도 유튜브 방송 해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싶습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아무리 다른 가치관을 지녔더라도 앞으로 말할 아주 기본적인 두 가지 원칙은 공유한다고 생각한다……첫 번째 원칙인 '본질적 가치의 원칙'은 모든 인간의 삶은 특별한 객관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잠재성으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일단 인간의 삶이 시작되면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중요하다……이것은 단순히 주관적 가치가 아니라 객관적 가치의 문제다. 곧 인간의 삶의 성공과 실패는 당사자에게만 중요한 것이거나 오로지 그 사람이 성공을 원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도 아니다. 모든 인간의 삶의 성공과 실패는 그 자체로 중요하며, 누구나 바라거나 아쉬워할 이유가 있는 어떠한 것이다.

 

 

두 번째 원칙인 '개인적 책임의 원칙'은 누구나 자기 삶을 성공적으로 실현할 특별한 책임, 어떤 종류의 삶이 자신에게 성공적인 삶인지에 대한 판단을 포함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이런 개인적 가치를 지시하거나 동의 없이 강요할 권리를 인정해서는 안 된다. (어떤 가르침을 따르던 간에) 판단을 맡기는 것 자체는 자발적인 결정이어야 한다. 자기 삶의 독립적 책임을 어떻게 수행할 것인가에 대해 본인 스스로가 결정한 깊이 있는 판단을 따라야 한다는 말이다.(도널드 드워킨의 《민주주의는 가능한가》에서 인용)

 

 

 

자유주의 정치사상가이자 법철학자로 존 롤스와 쌍벽을 이루는 도널드 드워킨이 《정의론》과 《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정립한 이 두 개의 원칙은 '존엄의 원칙 혹은 조건'이라고 한다. 이 두 개의 원칙들은 '개개의 인간에게 가치를 부여하고 책임을 부과한다는 면에서 개인주의적'이지만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전통의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모든 사람이 공감하는 공통 기반으로 적절'해 보인다. 일종의 신뢰가 개인들 사이에 구축되는 것이다.

 

 

'평등의 이상'을 추상화한 첫 번째 원칙과 '자유의 이상'을 추상화한 두 번째 원칙의 조화는 '평등과 자유는 서로 경쟁하는 가치라서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을 희생해야 한다'는 기존의 통념을 거부한다. 대다수 정치철학자는 '보수는 정치에 평등을, 경제에 자유를 적용한 데에 비해, 진보는 정치에 자유를, 경제에 평등을 적용'하는 바람에 극단적 양극화로 치달을 수밖에 없었다는 마이클 센델의 주장(한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인용)에 동의한다(어느 진영이 올바른 적용을 했는지는 별도의 문제. 극단적 불평등과 양극화를 기준으로 하면 당근 진보가 옳지만^^).

 

 

이처럼 민주주의의 두 축인 자유와 평등이 서로 충돌하는 가치라면 민주주의를 작동불능의 지경까지 떨어뜨린 현재의 상황이 필연적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두 진영의 이런 차이가 정치·경제·사회를 넘어 낙태·동성애·성평등·인종차별 등으로 대표되는 문화전쟁으로까지 확전 양상을 띠게 된 것도 이해할 수 있다. 두 진영이 민주주의와 헌법의 틀 안에서 벌어야 하는 정치적 논쟁과 권력 투쟁이 상대를 죽여야 끝나는 전쟁의 차원까지 치달은 것도 이해(수용이 아니다!)할 수 있다.   

 

 

드워킨은 이런 통념에서 벗어나 양 진영이 수용할 수 있는 공통의 합의점(신뢰의 구축)에 동의하면 작동불능의 민주주의를 원래의 자리로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너른 합의만 있다면 심각한 정치적 논쟁이 없더라도 민주주의는 건강할 수 있고, 합의가 없더라도 논쟁 문화가 있다면 건강할 수 있는데, 극단적인 분열만 있고 진정한 논쟁이 없다'면 정치적 다수가 되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무법천지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바로 이것, '권력을 잡아 다수의 횡포를 부리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하는 것'이 전 세계에서 표퓰리스트 정치인과 정당의 득세로 이어졌다. (신자유주의 통치술의 결과이기도 한) 정치의 극단적 양극화가 양산한 온갖 병리현상들에 치명적 피해를 입은 사람들의 좌절과 절망, 분노, 피해의식 등에 영합하는 차별과 혐오, 증오와 분열, 갈등과 폭력, 심지어는 물리적 복수를 부추기는 발언들을 쏟아낸 트럼프가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근대민주주의의 원조국이자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다. 

 

 

게다가 그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자기애가 극단에 이른 사람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이 주인공이어야 하는 트럼프와 장기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는 것은 하늘에서 별따기 보다 어렵다. 그 프로젝트가 인류사의 거대한 전환에 해당할 정도로 중대하고, 아직까지 누구도 성공하지 못해서 돌다리를 두드려 보고도 또다시 두드려 보아도 모자랄 만큼 민감하고, 아주 작은 오해로도 중단될 수 있는 신뢰 구축과 상호합의의 과정이라면 성공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할 수 있다. 그와 신뢰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정치의 신이라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푸틴과 두테르테처럼 트럼프와 특별한 이익을 공유하는 지도자들도 언제든지 관계가 깨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떨치기 힘들다. 미국우선주의를 내세워 상대적 약자들에게 억지 희생을 강요하고 떠넘기는 트럼프를 상대로 세계의 거의 모든 지도자들이 미국 대통령 직위에 대한 예의를 표하면서도 트럼프라는 개인에게는 적대감을 표출하는 것도 당연해 보인다. 국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외교 영역에서 그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다는 것은 정신 나간 짓이라고 할 수 있다.

 

 

 

 

헌데, 전 세계에서 오직 한 사람, 대한민국의 문재인 대통령만이 그와의 신뢰관계를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그것도 주변의 강국들의 이익이 첨예하게 충돌하는 북한의 비핵화와 평화협정 체결, 남북 공동 번영의 프로세스를 트럼프와 함께 차근차근 풀어내고 있다. 한국의 기레기들과 수구 진영의 집요하고 악랄한 흔들기와 가짜뉴스의 범람에다, 트럼프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의 유수 언론들의 부정적 접근과 오보에도 불구하고 트럼프와의 신뢰관계가 흔들리지 않고 있다.

 

 

상대와의 협상에서 국익을 극대화해야 하는 마키아벨리적 국제정치와 외교무대라는 특성과 본질까지 고려할 때 두 지도자의 신뢰관계는 유례를 찾기 힘든 '신화의 창조'라고 해도 모자람이 없다. 진정성과 투명성, 공정성, 원칙에 기반한 유연성 등을 바탕으로 하는 문프의 리더십이 의심과 질투, 돌변과 뒤통수치기의 아이콘인 트럼프와의 신뢰를 구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트럼프에 못지않은 의심과 질투, 변덕의 아이콘이자 누구도 믿지 않는 김정은과의 신뢰관계도 유지하면서. 

 

 

두 사람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문프의 진정성에 마음을 연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는 다른 나라의 지도자들처럼 문재인 대통령이라고 해서 특별히 믿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했으리라. 그런 선입견을 갖은 채 문프를 만났을 것이고, 통화하고 조정하고 협상하며 다시 만났을 것이다. 그런 과정의 모든 순간과 단계마다 일관된 진정성과 투명성,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는 유연함에 감복하지 않았다면 두 사람의 마음을 열지 못했으리라.

 

 

더욱 더 놀라운 것은 트럼프와 김정은을 싫어하고 믿지 못하는 각국의 지도자와 유력 정치인은 물론, 교황과 UN사무총장, FIFA 회장, IOC 위원장 같은 종교와 국제기구의 지도자들로부터도 존경과 지지를 받는 것은 경의롭기까지 하다. 문재인 대통령을 맹렬하게 비난하고 흔드는 사람과 집단은 그가 실패해야 정권을 잡을 수 있는 대한민국의 보수 진영과 태극기부대, 구좌파, 양대노총, 일베, 손가혁, 급진적 페미니스트밖에 없다. 예수가 "선지자는 고향에서 존경받지 못한다" 했는데 문프가 바로 그러하다.

 

 

누구에게도 완전함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라면, 문프 같은 지도자는 민주주의 역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다. 전 세계 학자와 지식인들이 촛불혁명(이대생의 위대한 투쟁 포함, 그러나 이들은 환의의 노래를 부르기는커녕 악질적인 기레기들과 기득권의 연합공격에 두둘겨 맞고 조리돌림을 당해 지옥과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촛불혁명의 발판을 마련해준 이들에게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이 절실하다)을 칭송하는 것처럼 신뢰의 리더십을 구축한 문프에 대한 존경과 지지 표명이 줄을 잇고 있다.

 

 

문프는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보유하게 된 국제적으로 존경받는 리더다. 다시 말해 외교무대에서 국익을 극대화하면서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인류사적 전환을 이끌어내고 있는 대한민국의 가장 큰 자산이라는 뜻이다. 삼성전자나 현대차 같은 초국적기업, 김연아와 손흥민 같은 스포츠 스타, 비틀즈와 롤링스톤즈, 퀸의 역사를 재현하고 있는 BTS와 전 세계를 즐겁게 만든 싸이 같은 한류 스타를 제외하면 문프처럼 널리 알려진 정치지도자는 없었다.

 

 

필자가 문파를 고집하는 이유가 이것 말고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할까? 구축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구축되면 좀처럼 깨지지 않는 리더십이 신뢰의 리더십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문재인과 노무현의 리더십은 다르다1

  1. 카사바 2018.12.06 19:09

    문프의 진면목을 깨우쳐 주신 선생님의 글에 감사드립니다. 제가 문파가 되기로한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제 인생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란 생각이 더욱 굳어지네요!
    "두 사람(트럼프와 김정은)은 한결같은 모습으로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문프의 진정성에 마음을 연 것으로 보인다"
    이런 문프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이 너무 뿌듯합니다. 대통령님, 자랑스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8.12.07 12:22 신고

      다시 나오기 힘든 대통령입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정치와 외교를 해내는 지도자는 없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이제는 편안하십니까? 이곳에서는 당신을 죽음으로 내몬 쓰레기 같은 언론들과 정치인들의 광기가 그날처럼 몰아치고 있습니다. 당신이 특권과 반칙이 넘쳐나는 세상을 사람사는 곳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던 정치는 사라졌고, 당신이 평생을 거쳐 저항했던 독재권력의 망령만 가득합니다. 침묵하는 다수는 각자의 삶에 지쳐 미래가 현재와 다르지 않을 것이란 절망감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제는 당신의 격정적인 삶을 담은 《성공과 좌절》을, 오늘은 선택도 할 수 없는 처지로 내몰리고 있는 《문재인의 운명》을 다시 펼쳐보았습니다. 그곳에는 분명 희망과 정의가 있는데, 당신이 이루고자 했던 보통사람들의 세상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과 연대는 무력해진 상태입니다. 특권화된 기득권들은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헬조선과 흙수저라는 신조어가 세상을 떠돌고 있습니다. 

 

 

평등에 기반하지 않은 자유란 허상에 불과함에도 강자의 이념이자 체제인 자유민주주의가 인류가 선택하고 발전시켜온 민주주의인양 호도되고 있습니다. 독재권력의 앞잡이 노릇을 했던 국정원은 중앙정보부 시절로 돌아갔고, 독재자의 딸은 대놓고 시간을 과거로 되돌리고 있습니다. 국민은 불법과 반칙, 불의와 특권에 익숙해져 평등의 가치를 언급하는 것조차 꺼리고 있습니다. 

 

 

한국천주교의 상징인 명동성당에 이어 한국불교의 상징인 조계종마저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 하지 않습니다. 아직도 세월호에는 9명의 유실자가 수장돼 있고, 민주주의의 버팀목이자 헌법의 권리인 집회의 자유마저 경찰의 허가가 없으면 불법이라고 낙인이 찍힙니다. 야만공권력은 70의 노인을 사경으로 내몰고도 더 야만적인 탄압을 공언하고, 행정부의 수장인 대통령은 폭력적인 공권력 사용이 불러온 비극에 사과는커녕 공안정국 조성에 여념이 없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사람들 중 반 이상이 독재자의 딸 밑으로 기어들어갔고, 남아있는 자들은 문재인 대표와 친노를 죽이기 위해 혈안이 됐습니다. 심지어 이들은 노무현 정신을 들어서 문 대표와 친노를 공격합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습니다. 언론의 자유는 허울 뿐이고, 표현의 자유마저 상시적 검열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독재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지만, 사회적 약자는 집회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습니다.

 

 

이제 문재인 대표가 무너지면 노무현에서 문재인으로 이어진 성공과 좌절, 운명도 현실정치에서 사라질 것입니다. 그날의 당신처럼 너무나 힘들어하는 문재인 대표를 보고 있자면, 차라리 현실정치에서 나오라고 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어쩌면 앞으로의 며칠이 '노무현 정신과 가치'로 대변되는 것들이 영원히 퇴장하는 시기가 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이승을 떠난지 단 6년만에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는 70년대로 돌아갔습니다. 

 

 

노무현 대통령님, 편안하십니까? 김대중 대통령과 함께 무한퇴행하는 대한민국을 지켜보시며 얼마나 참담해할지 모르지 않지만, 그래도 이 을씨년스러운 저녁에 당신의 안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신을 지키지 못한 것처럼, 문재인 대표도 지키지 못할 것 같아서.

 

 

 

 

P.S. 어떤 지도자도 모두를 안고 갈 수는 없다. 분열이 언제나 패배로 이어진다는 증거도 없다. 내년 총선에서 완패한다고 야권이 회생불능이 되는 것도 아니다. 책임을 피할 수 없다면 그 책임에 올인하는 것이 유일한 길이다. 때로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가는 것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전장에 나가 아군을 흔드는 자들보다 무서운 존재란 없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비가오면 2015.12.10 19:52

    님의 글에 공감합니다 ㅠㅠ

  2. 耽讀 2015.12.11 08:36 신고

    전 현 정국이 이승만-박정희-전두환때만큼 암울하지 않다고 봅니다.
    물론 방송3사+종편 심지어 진보언론마저 민주개혁세력을 난도질하지만, 세 독재자 정권도 무너졌습니다. 이승만은 부정선거로 시민혁명으로, 박정희는 측근과 측근들 내부투쟁과 시민들 분노, 전두환은 시민혁명으로 무너졌습니다. 전두환은 권력은 내려놓지 않았지만.
    지난 번 댓글에도 썼지만, 전 박근혜정권이 시민혁명보다는 내부에서 곪을 때로 곪아 스스로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작은 헛발질을 통해 발화할 수도 있습니다. 조금 엉뚱한 예지만, 상업을 가르쳤던 국정집필진이 동료교사들에게 문자를 보낸 것처럼 말입니다. 어둠이 짙으면 짙을 수록 한줄기 빛이 그 어둠을 끝장냅니다.

    • 늙은도령 2015.12.11 13:55 신고

      문재인이 이 상황을 돌파해내면 분위기가 반전할 것입니다.
      하루빨리 당을 정리해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12.11 09:01 신고

    어제 나를 분노케 한것들
    1. 소요죄를 검토?-미친것들이다
    2. 야근과 회식을 줄여? - 육아도 안해본 사람이
    3. 상업 교사가 역사교과서를 집필해- 개가 웃을 일

    • 늙은도령 2015.12.11 13:56 신고

      지랄을 하는 것이지요.
      정말 개판입니다.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4. 바람 언덕 2015.12.11 11:33 신고

    그저 먹먹할 뿐....

  5. base 2015.12.11 18:58

    문재인대표의 현실 정치 삶이 그리 길지가 않죠? 올해 그의 정치 행보를 지켜보며 실망과 희망이 맞물려가는 한해를 지켜보며 문대표가 지금의 고난과 역경을 극복하고 본인의 정체성의 한계를 벗어나서 김대중과 노무현 이 두분의 모습을 국민에게 보여주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12.11 19:52 신고

      지금의 문재인은 잘하고 있습니다.
      제발 더 이상 흔들리지 말기만 바랍니다.
      이제는 뚝심으로 가야 합니다.
      지지자들을 믿고 강하게 나가야 합니다.
      유연해져야 할 때는 아직 많이 남았습니다.

  6. Eunmorae 2018.05.07 15:16 신고

    5월이네요.
    잊을까봐 제 폰 번호도 서거일로 바꿨었는데 가끔 가는 봉하마을도 이상하게 5월에는 안가집니다.
    올해는 어떻게 할까 좀 고민 중이네요.
    늙은 도령님 글 보고 많이 배웁니다.

  7. 늙은도령 2018.05.07 15:18 신고

    저도 가보고 싶은데 그곳까지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 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제시대와 한국전쟁, 유신독재를 경험한 내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됐을 때 박정희가 떠올라 두려워하셨다. 대통령이나 정부에 대해 일체의 비판도 못하는 시대가 다시 돌아온 것 같았기 때문이다. 어디에나 중앙정보부와 권력기관의 감시가 되살아났다고 느끼시는 듯, 아들이 대통령과 정부를 비판하는 것에 두려움을 표출하셨다. 

 

 

 

 

어머님에게는 박근혜를 보는 것 자체가 독재와 연결된다. 동아일보가 유신독재의 군화에 짓밟혔을 때 고모부가 해고된 것과 민주화운동으로 2년6개월을 감옥에서 보낸 조카가 멕시코로 이민갈 수밖에 없었던 것을 지켜보았기 때문에 어머님이 느끼는 두려움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분들의 공포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권력의 그물망은 보이지 않았지만, 물샐틈없이 촘촘하다고 세뇌당했기 때문에 어머님은 침묵하는 다수의 심연으로 물러나면서, 병든 아들의 분노와 격정적인 표출을 걱정했다. 아들이 기자 생활을 하며 민주정부의 지도자와 정부의 실정을 비판할 때 두려움이 없었던 어머님이었지만,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에 오르자 무의식에 자리했던 그때의 공포가 되살아났다. 

 

 

일제시대에도 일본 학생들과 싸웠던 어머님이셨고, 큰 오빠는 한국전쟁 휴전협정의 통역사로 들어갔다 한국의 입장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협상에 분노해 통역사를 때려치울 만큼 명문가문의 후손이었고, 남편은 한국전쟁의 공훈으로 무공훈장을 받았고 22년 간 군생활을 했음에도, 어머님은 박근혜가 대통령에 오르자 두려움을 표출했다. 

 

 

이 땅의 수많은 노인들은, 자유와 평등에 관한 한 박정희 시대를 일제시대에 비견될 만큼 암흑기로 인식한다. 일제시대에 만연했던 가혹한 수탈은 줄어들었고, 동족상잔의 전쟁과 완장 찬 좌우의 폭도들, 미군의 무차별폭격 등으로 수없이 많은 피난민과 주민이 살육되는 일은 되풀이 되지 않았지만 어느 시대나 주어졌던 정도의 자유만 누릴 수 있었던 것이 18년6개월의 유신독재였다.

 

 

수많은 청춘들이 매일같이 확인하고 있는 박근혜 치하의 3년이란 아주 조금씩, 경제 파탄(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를 것이다)이 분명해진 지금에는 노골적일 만큼 폭력적으로 유신독재로 회귀하는 것이어서 수많은 노인들이 침묵의 벽 속에 갇혀버렸다.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어머님이 박근혜가 나오면 채널을 돌리기 시작했다. 정치가 다시 공포와 연결되어 버렸다.

 

 

아버님이 남긴 쥐꼬리만한 군인연금과 집의 크기를 줄여가면서 세 아들을 교육시키고 각자의 분야에서 나름의 성공을 이루도록 만들었던 어머님이 박근혜의 방문에 항의하며, 민주주의를 수호하려는 이화여대 학생들의 투쟁을 지켜보았다. 수많은 교수들이 국정화 반대성명을 발표하고 집필 거부를 선언하는 뉴스마저 회피하던 어머님이 채널을 돌리지 않았다.

 

 

 

 

이화여대생들이, 어머님에게는 가장 좋은 여자대학이고 명문가로 시집가는 것으로 각인돼 있는 이대생들이 서슬 퍼런 박근혜의 방문에 저항하는 것을 보며, 의식의 표면 위로 떠오른 근원적인 공포를 이겨내셨다. 아들은 그들의 모습에서 촛불소녀와 6.10항쟁의 학생들이 떠올랐지만, 어머님은 4.19혁명의 학생들이 떠올랐다. 

 

 

유럽의 선진국가 국민들은 자본주의가 아닌,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일제시대와 한국전쟁을 겪은 한국의 노인들은 이런 사실을 체험할 수 없었다. 2~3세대만 지나면 온갖 부작용이 속출할 수밖에 없는 압축성장의 수혜자(동시에 피해자)들이어서 독재가 산업화와 일치되는 것에 의문을 품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대생들의 저항을 TV로 지켜본 어머님처럼,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 전쟁은 독재의 망령에 시달렸던 노인 세대와 민주주의가 밥먹여 준다는 것을 체험한 세대 간에 하나의 연결고리가 형성될 것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박근혜가 밀어붙이고 있는 역사 전쟁은 이념 전쟁을 넘어 세대 간의 연결고리를 만드는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박근혜는 이전의 대통령에게서는 찾기 힘든 무능과 무책임, 아집과 독선을 모두 다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여성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는 잘못된 인식을 고착시키고 있다. 필자의 어머님처럼 가부장적 사고가 강한 분들일수록 이런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박근혜는 정치와 경제, 역사와 교육을 퇴행시키는 것만이 아니라 수없는 투쟁과 저항, 토론과 합의를 거쳐 이룩한 인류의 소중한 자산인 남녀평등의 위업마저 퇴행시키고 있다. 

 

 

이대생들이 보여준 분노의 표출과 정의의 실천이 또래의 청춘들과 나와 같은 장년층에 던져준 희망의 메시지처럼,  필자의 어머님 세대에게도 묵직한 시대적 정신을 전해주었다고 나는 믿는다. 그들의 저항이 하나의 불씨를 넘어 무엇으로도 꺼뜨릴 수 없는 횃불로 타오르리라 믿는다. 이대생 덕분에 87세의 노모가 다시 정치뉴스를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병약하기 그지없는 늙은도령의 건강도 다시 돌아왔다. 거리로 나갈 만큼은 안 되지만 이대생들을 사랑하고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할 만큼은 된다. 임금, 이자, 지대(생산의 3요소인 노동, 자본, 토지와 한쌍이다)에 관한 고전파경제학의 오류를 미국적 방식으로 풀어낸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해묵은 잘못에 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 무렵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에는 대단치 않아 보이더라도,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라고 말했다.

 

 

이화여자 대학생들의 저항이 바로 그러할 것이다. 뒤늦게나마 이대생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굴하지 않는 청춘들과 함께.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1.01 19:04 신고

    저도 대견하다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마취를 시키면 얼마든지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그들의 판단은 착각임이 증명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11.01 19:51 신고

      그럼요, 대한민국을 어떻게 여기까지 끌고왔는데요.
      역사의 주인은 정부도 지도자도 아닙니다.
      우리가 역사이 주인이고, 역사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합니다.
      급해진 박근혜가 이성을 상실했습니다.
      반격의 시점이 더 빨리 올 것 같습니다.

  2. 2015.11.02 02:4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1.02 05:42 신고

      BBC에서도 프라임 타임에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한국이 국정화를 강행하면 10년 안에 망할 것이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세계적인 창피함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3. 耽讀 2015.11.02 08:03 신고

    박그네는 확신범입니다. 국정화도 내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위해 밀어붙이는 것이 아닙니다. 국정화는 종교진리에 가깝습니다. 타협과 협상 토론과 논쟁 자체가 없는 이유입니다. 역사교과서를 종교진리로 생각하니 민주공화국 대통령 자격이 없습니다. 끝은 이승만과 박정희입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11.02 08:37 신고

    무엇보다 건강을 다시 회복하셨다니 다행이십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이라는 무리한 자충수가 결국
    남은 정권을 힘들게 할것입니다

  5. 바람 언덕 2015.11.02 14:08 신고

    저 젊은이들의 외침이 공허한 메아리가 되지 않아야 할텐데...
    이번이 사실상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저는...

  6. 글을 읽고 2015.11.02 19:58

    글이 포스팅되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여전히 깊은 글을 보니 너무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

  7. 불루이글 2015.11.03 04:24 신고

    해묵은 잘못에대한 비판이 처음 시작될때 정의의 여신은 비굴할 정도로 겸손하다..그러나 관념은 처음 시작할땐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보이지만 때가 무르익으면 자라기 마련이다.
    정말 희망적인 문구를 접하게 됩니다.
    도무지 꿈틀 거릴것 같지 않든 지성들이 눈을 뜨고 있다는 희망이 느껴 집니다.
    민주주의의 달콤함에만 취해 허약한 지성들이 조금씩 경석을 차리는 것 같네요
    정말 다행히 라고 여겨 집니다.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해 한국 사회 부의 분포도를 추정한 논문에 따르면, 하위 50%의 부가 국가 전체 부의 2%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왔다. 논문에 따르면 부의 불평등 정도가 매년 심화되고 있고, 상위 10%가 독식하고 있는 지하경제, 조세도피처 등으로 빠져나간 자금, 빈민층과 패자를 돌봐주는 사회의 붕괴 등이 빠져 있기 때문에 2015년의 불평등 정도는 더욱 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통계는 박근혜와 김무성 등이 역사 전쟁의 명분으로 내세운 '성공한 대한민국'이 극히 일부에게만 적용된다는 것을 말해준다. 지구온난화의 피해, 미세먼지의 습격, 각종 질병의 증가, 무한경쟁과 취업대란, 비정규·임시직의 폭증, 고령사회 진입, 집값과 전월세가 상승, 거꾸로 가는 노동개악, 끊어진 계층이동성, 1인가구의 증가 등을 더하면 정치·경제·사회적 약자인 청춘에게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국가가 아니라 숨막히는 헬조선일 수밖에 없다.

 

 

미래에 대한 희망이 공기처럼 떠다니던 시절에는 노동 착취의 고통마저 안으로 삼킬 수 있었다.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날 것을 믿었으며, 그 최소한의 희망 때문에 오늘의 피땀이 내일의 결실로 이어지리라 위로할 수 있었다. 99%의 절망 속에서도 1%의 희망이 청춘으로 하여금 노력하게 했으며, 그로 인해 오늘보다 나은 내일을 계획할 수 있게 해주었다. 청춘이 스스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을지언정, 청춘이 견딜 수 없는 절망은 아니었다. 

 

 

평생을 통치자와 특권층으로 살아온 박근혜에게는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성공한 역사일지 모르겠지만 아무런 책임도 없는 것들로 인해 평생을 비정규·저임금·임시직을 전전해야 할 청춘에게는 지옥과 다를 것이 없다. 독재자의 딸,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 전쟁의 최종 목표가 노동시장에 진입할 청춘에게 앞세대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주의와 자유가 제한되고 저임금을 받더라도 불평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것이어서 더욱 저항할 수밖에 없다.

 

 

 

 

 

 

인류가 진보한다는 것이 맞다면, 문명이 발전한다는 것이 맞다면, 모든 사람이 존엄한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면 이 모든 것을 거스르는 퇴행적 정치행위를 받아들일 수 없음은 나 또한 그것을 믿기 때문이다. 추악한 역사 전쟁을 벌이며 청춘을 들먹이는 짓거리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이나 할 수 있는 일이다. 청춘이 절망하는 나라에 미래는 없고, 그 길을 터주지 않은 기성세대는 어른으로서의 자격도 없다.

 

 

야만의 시절, 독재의 망령이 극우의 이름으로 날뛰고 있다. 비판과 심판의 대상인 자들이 과거를 재단해서 미래마저 지배하려 한다. 하위 50%의 국민이 겨우 2% 이하의 부를 놓고 피터지게 싸우는 나라를 만들어놓고 성공한 역사며 자랑스런 국가라고 떠벌리고 있다, 독재자의 딸과 차떼기당의 후예들이. 청춘을 끝이없는 질곡으로 빠뜨린 당사자들이.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일제의 만행에 면죄부를 발행하고도, 최상의 결과를 얻어냈으니 국민들이 대승적으로 받아들여 한다고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을 통해 자기 변명만 늘어놓을 때, 위안부 할머니들의 70년 통한과 슬픔이 담겨있는 소녀상을 지키고 있는 것도 이 땅의 청춘들이니, 친일수구세력의 추악한 역사전쟁에 그들을 들먹이지 마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5.10.31 07:14 신고

    아이고 다시 나타나셨군요. 걱정했었습니다.
    앞으로 좋은 글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그것이 이기는 길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 회복하셔서....

  2. 공수래공수거 2015.10.31 08:13 신고

    역사를 부정하는자들은 미래를 논할 자격도 없습니다

    몸 건강 유의하시면서 글 쓰시기 바랍니다

  3. 불루이글 2015.10.31 08:38 신고

    다시 만날수 있어 너무 기쁩니다.
    하위 50% 계층이 차지 하는 자산이 2% 이라니
    가진자들은 대체 규모가 얼마나 되는 것인지 가늠 조차 하기 어렵네요
    제발 이런 지경까지 만든 친일기득매국노들을 심판 해서 나라를 바로 세워야 합니다.
    도령님 건강 잘 지키 시길 빕니다.

  4. 바람 언덕 2015.10.31 08:58 신고

    도령님의 건강 걱정하시는 분이 참 많지요?
    ^^*

    첫째도 건강, 둘째도 건강, 셋째도 건강입니다.
    늘 강건하세요...

  5. 자유 2015.10.31 17:33

    돌아와 반갑습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요
    비판이 더욱 날카로워지셨네요 응원할께요
    건강하세요^^

  6. 희망 2015.10.31 18:17

    정말 공감됩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바랄께요~~

  7. 耽讀 2015.11.01 15:13 신고

    건강은 어떤지. 늙은도령님이 건강하셔야. 우리 미래가 조금은 낫습니다.
    50%가 2%를 먹기 위해 싸울 때, 1%는 엄청난 부로 배를 채웁니다. 그렇게 채우고도 배고프다고 합니다.



좀처럼 회복되지 않는 건강상의 문제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편했다. 자신의 아버지를 신처럼 떠받드는 박근혜가 자신의 정체성과 시대인식이 70년대식 독재와 발전국가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지탄을 받고 있는 역사 전쟁, KF-X사업에서 보여준 총체적 무능과 거짓말, 내년 중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경제파탄 등은 헬조선의 근원인 박정희의 망령까지 더해 박근혜를 되돌릴 수 없는 길로 몰고 갈 것이다.





박근혜가 주장하는 ‘올바른 역사’란 산업화의 열매를 독차지한 극소수의 승자와 강자에게만 적용되는 특권층의 역사를 말한다. 자본과 권력, 언론을 독차지했고, 세습자본주의까지 공고히 한 그들의 입장에서 보면 대한민국은 천국에 다름없다. 권리만 있고 책임이 없는 그들에게 대한민국의 역사는 지독할 정도로 올바르다.



일본 군국주의에 대한 미국의 오판과 북한의 등장 및 한국전쟁 덕분에 무소불위의 특권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이들은 IMF 외환위기와 민주정부 10년의 업적만 드러낼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극우와 세습자본주의의 헬조선을 만드는데 성공했는데 민주정부 10년 동안 이 모든 것에 흠집이 생기고 말았다.



한국의 현대사는 정확히 70년에 이른다. 그중 60년을 현재의 특권층이 지배해왔고, 역사는 그들을 미화하고 민주주의와 진실을 왜곡하는 일방적 서술이었다. 차별 없는 자유는 만인이 평등하다는 개념에서 나옴에도 강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자유(방임)만을 강조하는 것도 특권층을 형성한 이들의 힘이 절대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다.



박근혜가 말하는 ‘올바른 역사’란 이런 것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을 넘어 5.16군사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이라고 확신하는 박근혜에게 민주주의란 얼마든지 제한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경제위기가 심화될수록 이런 확신은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경제위기의 책임이 자신의 실정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무오류의, 그래서 책임에서 자유로운 그녀는 조세 개혁을 통해 재분배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극복할 수 없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야당의 발목잡기와 좌파집단, 나약한 보수집단, 배부른 청년들의 투정, 반기업정서에 있다고 주장한다.





박근혜의 눈에 아버지의 통치가 아른거릴 수밖에 없다. 잔혹한 독재를 해서라도, 즉 정부가 만든 실습용 역사교과서의 표현을 빌리자면 ‘민주주의와 자유를 제한’해서라도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박정희식 사고가 강화될 수밖에 없다. 필요하다면 역사 다음에는 교육 내용 전체를 유신시대로 되돌리는 일도 강행될 수 있다.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전쟁은 민주정부 10년을 겨냥할 것이고, 경제위기를 부각할 것이며, 종북·좌파몰이를 동원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성장 만능의 산업화를 부각시킬 것이다. 독재의 필요성, 즉 민주주의에 제한을 가하려면 한국의 현대사가 독재 정부가 주도한 산업화 덕분에 성공한 역사가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승만을 국부로 되살리는 것은 부차적인 요소며, 국민을 속이기 위한 일종의 떡밥이다. 박정희의 부활과 재조명은 경제위기 탈출을 위한 산업화의 명목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박근혜가 주도하는 역사 전쟁의 핵심은 정권재창출에 있으며, 대한민국에서만큼은 신자유주의적 독재(우파 전체주의)가 지속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다. 



거의 모든 정당성은 역사에서 나온다. 권력이 역사를 조작하고 자신의 입맛대로 왜곡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조지 오웰은 《1984》에서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하며,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한다”고 말했는데, 박근혜가 주도하고 있는 역사 전쟁을 이보다 더 압축적으로 표현할 방법이란 없다. 



독재의 DNA를 물려받은 박근혜가 의도하는 것은 대한민국 현대사가 정말로 성공한 역사인지 따지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자신의 입맛대로 역사를 바꾸려는 것이고, 그것만이 미래를 지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역사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무엇이라도 끌어들일 것이며, 여론이 불리할수록 종북과 좌파몰이의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는 지금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바로 잡아야 할 것은 역사가 아니라 자신만 옳다는 독재군주의 영역에 들어선 대통령이다. 역사교과서와 위안부협상 다음에는 노동개악과 의료영리화와 철도민영화 등을 밀어붙일 독재자의 딸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송승훈 2015.10.28 21:43

    내용이 군더더기없고 선명하네요...
    쾌유하세요~

  2. 불루이글 2015.10.29 00:09 신고

    도령님 오랜만에 뵈니 너무 반갑네요
    아직도 완쾌 되진 않으신가 봅니다.
    도령님같은 분들의 역활이 절실히 요구되는 비상시국입니다.
    오랜만에 또 이렇게 훌륭한 글을 접하게 되니 고마울 따름 입니다.
    무엇보다 건강이 우선 이니만큼
    건강이 허락하는 선에서 또 좋은글 기대 하고 있겠습니다.
    감사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5.10.29 08:14 신고

    글보다 완전 쾌유가 먼저이십니다
    그래도 조금씩 나아지시는것 같아 다행입니다

    역사는 집권 5년을 가혹하게 평가할것입니다
    그걸 깨닫기를...

  4. 힘냅시다. 2015.10.29 08:37 신고

    맞습니다. 근데 임기내에 바꾸는것 어렵지요
    건강이 아직 좋지 않으신 것 같습니다.
    저도 매일 병원다니는 처지라, 동변상련을 느낍니다.
    몸조리 잘하시고, 쾌유하시기를 진심으로 기원하겠습니다.

  5. 주휘진 2015.10.29 17:25

    애독자입니다
    정말궁금해서 말인데요
    내년 중후반기부터 경재파탄이 본격적으로 들아난다...라고 하셨는데요
    구체적으로 어떻게 들어난다는 말씀이신지
    궁금합니다
    글 항상 잘읽고 있습니다
    몸조리잘하십시요

  6. 돼지+ 2015.10.29 19:04 신고

    오랜만에 글올리셧네요
    정말 좋은글들올리셔서 기다렸는대요.
    몸 관리 잘하시길 바랍니다.
    항상 옳은 글 만 써주셔서 감사해요

  7. 하늘이 2015.10.30 12:09

    오랫만에 귀한글 올려 주셨네요!

    건강 잘 챙기시기를 바랍니다.,

    박근혜는 아버지를 위해 대통령이 되었기 때문에 아버지의
    역사만 자기가 원하는대로 돌려 놓으면 된다는 사고만 있을뿐
    둘로 갈라지는 대한 민국은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국민이 겪는 댓가 치곤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입니다.

    중심을 잡고 휘둘리지 않아야하는데 어리석은 국민들이 자꾸 끌려 간다는게 문제입니다.

    두눈 부릅뜨고 깨어있도록 하겠습니다.

  8. 2015.10.31 00:11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5.11.01 20:49 신고

      네, 감사합니다.
      간암을 잡은 이후로는 이처럼 오랫동안 아픈 적이 없었는데 운동 부족이었음을 절감했습니다.
      요즘은 운동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9. 참교육 2015.10.31 07:18 신고

    맞습니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습니다. 역사는 변화발전한다는 진리를 믿습니다.

  10. PS4 2015.11.02 19:48

    선생님글은 명료하고 가슴에 와 닿는 내용이 많아 애독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글이 안올라오기에 무슨일인가 했는데 건강 조심하세요..



선발대가 시청 앞 분수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후발대의 마지막 학생에게까지 전해졌다. 후발대는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는데 박종철과 이한열의 이름으로 하나 된 염원이 백만 번의 전달을 가능하게 했다.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시청 앞 분수대까지 단 하나의 단어만이 살아서 떠돌았다.



민주주의!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었고, 살아있는 자의 부채였고, 싸워야 하는 이유이자 의무였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부터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까지 더 이상의 죽음은 받아들일 수 없었고, 그래서 오직 하나만을 원했다.



민주주의!



그날에는 가난이나 부를 얘기하지 않았다. 그날에는 이념이나 지역을 얘기하지 않았다. 누구도 가난해서 부끄럽지 않았고, 부유해서 자랑하지 않았다. 두 사람의 죽음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피와 땀, 희생과 죽음이 강물처럼 흘렀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해일처럼 일었다.



민주주의!



우리는 자유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랐고, 평등의 이름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랐고, 관용의 이름으로 모든 차별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랐다. 국민이 정말 모든 권력의 원천이고 나라의 주인이라면 두 사람의 죽음에 담겨있는 이름 모를 약자들의 역사를 되살리고 싶었다.





그리고 28년이 흘렀다. 우리는 공기처럼 주어진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고 있지만, 평등은 좁힐 수 없는 불평등으로 대체됐고, 관용은 무한경쟁에 자리를 내주었다. 그날에는 시청 앞 분수대에 이른 선발대의 소식이 백만 명을 거쳐 출발도 못한 후발대의 마지막 한 명에게 전해졌지만, 오늘에는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그날에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복사판인 전두환 군부독재의 ‘4.13 호헌조치’를 민주주의로 대체했지만, 오늘에는 독재자의 딸에 의해 유린된 민주주의가 줄푸세의 제물로 바쳐지고 있다. 그날에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보증하는 자유를 받아냈지만, 오늘에는 자유의 원천인 기본적인 평등마저 권력과 자본의 수중에 바치고 있다.



너무나 참담한 것은 민주정부 10년을 빼면 박정희 유신독재와 같은 18년이란 기간만 붉게 빛나고 있다. 우리를 이끌었던 두 명의 지도자는 박종철과 이한열처럼 유명을 달리했고, 허울뿐인 민주주의와 넘쳐나는 자유는 자발적 복종의 대가로 하나씩 대체되고 있다.





권위주의 독재의 잔재들이 우파 전체주의로 되살아나는 오늘, 불안과 공포을 양산하고 있는 메르스 바이러스가 삼켜버린 것은 28년 전의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일지도 모르겠다. 민주화라는 단어가 반민주와 종북의 동의어로 사용되는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그날의 염원만은 아니리라.



28년이란 시공간을 거슬러 올라갈 수 없기 때문에 한 발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그날의 우리는 오늘의 그들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1%의 희망을 희망하기 위해 99%의 절망을 절망해야 하는가? 그날의 염원은 촛불로 이어졌지만 우리의 아이들도 지키지 못한 그날의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3월1일처럼, 4월19일처럼, 5월18일처럼, 6월10일도 승자와 강자의 역사에 기록된 삭제되지 못한 하루로 전락한 것은 아닐까, 2014년의 4월16일처럼. 그날의 우리는 28년을 더 살 수 있는 것을 쟁취할 수 있었지만, 오늘의 그들은 28년을 더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을 수나 있을까? 우리 모두는 다시 밝힐 수 있는 하나의 촛불을 간직하고 있을까?





신촌에서(2)



취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거리의 죽음까지 마시고 싶다.

취해서 그날로 달아날 수 있다면

내 고집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최루탄, 그날의 흔적들을 지워야만 한다.

이것이었을까 기꺼이 떠나갔던 사람들의

죽음, 순결과 살아서 초라한 내 젊음이

질주하는 탐욕과 나를 붙드는

국적불명의 아이들 속에서

꿈틀대는 성욕이나 억눌러야 하는가.

시대란 백만년은 됨직한 열망

변종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 홀로 씻김굿을 한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지금 신촌은 빙하기라고.




P.S. 위의 시는 제가 대학원을 다닐 때 썼던 6.10항쟁과 관련된 시라서 같이 올렸습니다. 당시의 신촌에는 1987년의 그날을 발견할 방법이 없었는데, 향락의 거리처럼 변해버린 거리에서 패잔병처럼 서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청솔 2015.06.10 05:52

    과연 회복될수 있을까요 ?
    좋은글 잘 보고 갑니다........ ^.^

    • 늙은도령 2015.06.10 15:12 신고

      그날 행진을 별로 해보지도 못했어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해서...

      다시 촛불을 들면 탄핵도 가능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10 08:36 신고

    저도 그 무렵의 일을 일부분 생생히 기억합니다
    뜨거운 여름이었죠.

    28년이 지났는데 속은 여전히 똑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10 15:13 신고

      더 악화됐습니다.
      그냥 값싼 가격의 제품들만 늘어났을 뿐이다.
      그리고 거기에 노예가 된 사람들이 무척이나 늘었을 뿐이다.

  3. 耽讀 2015.06.10 08:39 신고

    그 날 현장에 없었습니다.
    자대 배치 받은 날이었습니다.
    군대서 본 6월항쟁,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곧 계엄령이 내려질 것이라는 소문이 부대 안에 돌았습니다.

    • 늙은도령 2015.06.10 15:15 신고

      그때는 정말 모든 종류의 국민이 참여했습니다.
      전 그때 유생들을 태어나서 가장 많아 봤습니다.
      모든 국민들이 응원했고 참여했었습니다.
      극소수의 친일파 잔존세력만 빼고.

  4. 참교육 2015.06.10 09:36 신고

    민주주의는 오리무중입니다.
    가해자가 권력을 장악하고 있으니 6. 10은 아직 소요사태일뿐입니다.

  5. 뉴론♥ 2015.06.10 09:47 신고

    시간이 지나도 많은 사람들이 기억을 해야 되는데 사람들 기억속에서 점점더 사라져서 아쉽기는 하네요

  6. 『방쌤』 2015.06.10 09:52 신고

    허울뿐인 민주주의
    자발적 복종..
    깊이 공감하고 갑니다

    • 늙은도령 2015.06.10 15:19 신고

      그렇지요, 우리는 자유라는 허울을 얻는 대신 복종하는 노예가 됏습니다.

  7. 바람 언덕 2015.06.10 11:09 신고

    조용하네요...
    이 적막함이 불안한 이유는 뭘까요...

    • 늙은도령 2015.06.10 15:22 신고

      국민들이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보수적 성향의 중도층마저 돌아선 상태입니다.
      노무현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이제야 노무현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조금만 더 노력하면 전환이 계기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8. base 2015.06.10 14:16

    군복무중에 군종 신부님에게 듣게 되었는데.. 그 당시 제 자신은 너무나 철없던 모습을 하고 있었지요. 이제와 진정 국민과 국가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서 자신을 받쳤던 그 분들에 한없이 죄송하고 감사할 따름이죠.

    • 늙은도령 2015.06.10 15:23 신고

      다시 살려내면 됩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치로 승화시켜 더 발전된 형태로 살려내면 됩니다.



나오미 울프는 《미국의 종말》에서 9.11테러 이후 부시 행정부에서 진행된 10가지 조치가 미국의 건국이념이자 가치인 민주공화국과 자유 및 헌법을 무력화시키며 독재로 향하는 내용을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했습니다. 그중에 하나가 애국법의 이름으로 전 세계를 무차별적으로 도감청하는 것이었습니다.





GPS가 내장된 스마트폰과 사이버 상에서 행해진 모든 전자기록을 축적하고, 데이터 마이닝를 통해 분류화‧개별화‧파일화하는 인공지능형 빅데이터의 사업화는 더 이상의 프라이버시는 존재할 수 없음을 말해줍니다. 여기에 통신사가 감청장비를 의무적 갖추도록 하면 최후의 사적 공간마저 사라집니다. 하고자 하면 국정원과 권력기관들이 간첩조작사건도, 빨갱이와 종북타령도 얼마든지 양산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보수 반동을 이끈 ‘티파티’의 지도자, 글렌 벡(최초의 종편인 미국 폭스TV 정치토크쇼 진행자)의 《상식》을 보면ㅡ논리적 모순과 오류, 사실 왜곡과 조작, 정체불명의 상식과 정의의 이름으로 말하는 선동정치의 교본ㅡ다른 무엇보다도 방임에 가까운 자유를 울부짖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빨간 자유는 디지털 전체주의를 진보주의와 연결(아무런 논리적 근거도 없다)하며 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를 겨냥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을 교묘하게 인용하면서 글을 풀어가는 글렌 벡은 개인(미국의 주류 백인을 뜻함)의 자유와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정부를 맹폭하는데, 그 대상에는 조지 W. 부시도 포함됩니다. 진보적 가치가 들어가는 모든 것을 비판하는 그는 부시의 ‘애국법’이 개인의 자유와 건국의 아버지들의 (수정)헌법을 침해했다고 맹폭을 가했습니다.





새로운 보수의 지배를 꿈꾸며 글렌 벡 같은 자를 추종하는 미국인들(몰론 더 높은 수준에서 미국 보수주의 힘을 다룬 책은 존 마클레스웨이트와 아드리안 울드리지의 《더 라이트 네이션》이다)에게도 무차별적인 도감청을 자행하는 애국법은 소수 지배엘리트가 권력과 부를 독점하기 위해 미국을 전체주의로 만드는 최악의 법률이었습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손잡고 미국의 보수화에 성공한 이들도 이러할진데, 정통 진보좌파인 나오미 울프의 ‘애국법’ 비판이 얼마나 강력하고 신날하며 두려움으로 가득했겠습니까? 모든 국민이 유무선 전화로 통화하는 현실에서 통신사에 감청장비 설치를 의무화한다면 개인의 자유는 완벽하게 무력화되고 비민주적 권력과 맞설 최후의 수단마저 무력화됩니다.



새누리당 박민석 의원이 대표발의한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법안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를 마련해두었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것밖에 되지 않음은 지금까지의 경험이 100% 말해주고 있습니다. 사적 공간이 사라진 디지털시대의 절대감시자인 바놉티콘(죄수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교도소의 중앙에서 전체 죄인을 감시하는 벤담의 파놉티콘이 디지털 버전으로 변한 것, 감시자가 한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곳곳에 자리하며, 개인 스스로 자신의 비밀을 보여주고 자발적으로 감시체제에 순종하는 것이 특징)은 이렇게 완성됩니다.





인공지능형 빅데이터(필자가 통신사업을 할 때 꿈꿨던 것이라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나보다 나를 잘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나의 무의식까지 들여다 볼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개인의 욕망을 찍어낼 수 있으며, 정치적 기호는 완벽하게 분류해내고 등급까지 매길 수 있습니다.



만일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미드 <24>의 무대인 국토안전국과 전 세계에 퍼져있는 미국대사관, 미군기지, CIA와 FBI 등이 구글과 애플, AT&T, 머독코퍼레이션, 아마존, 월마트, 거대금융‧보험사, 거대방송사, 케이블방송, 라디오 등등의 도움을 받아 각국 정상의 핸드폰에서 깊은 산골의 개인까지 도감청했던 것이 한국에서 재현될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예산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쓰였는지, 그들의 보유한 도감청 장비와 기술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에게 무소불위의 힘을 주는 ‘통신사 감청장비 의무화’ 법안의 통과는 대한민국에서 더 이상의 민주주의와 개인의 자유, 헌법과 프라이버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디지털 유신독재로의 회귀가 이것으로 완전하게 이루어집니다. 이들이 요주의 인물로 분류‧파일화해 도감청을 자행하면, 권력과 자본에 해가되는 사람들이면 누구나 상시적 도감청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법안에 담겨있다고 주장하는 안전장치를 믿을 수 없음은 권력이 작동하는 속성에서 이미 증명된 바입니다.



박민석 새누리당 의원이 재발의한 이 법안은 경제정책의 실패,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 과다한 채무로 인한 금융위기의 재발가능성, 세월호 참사와 탄저균 국내반입, 메르스 확산의 초등대체 실패,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정치검찰의 엉망진창인 수사와 초딩보다 못한 자원외교 조사까지, 국정실패의 증거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 나오자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함으로 보입니다. 



더 멀리 보면 현 집권세력이 내년의 총선과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최후의 조각을 퍼즐의 빈 공간에 채우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하나의 퍼즐 안에는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마스터 키가 내장돼 있으며, 국민은 그것을 들여다 볼 수도 없고, 정보공개 청구를 할 수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민석 의원이 야당의 반대로 사실상 사장된 '통신사 도감청장비 의무화 법안'을 재발의한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북한이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민주주의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하고 형편없는 수준까지 후퇴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증거이자 오만방자한 권력의 역겨운 추문입니다.



국민을 잠재적 빨갱이로 보는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을 차기 총리로 지명한 것과 '통신사 도감청장비 의무화 법안' 사이에 '국정원을 위한, 국정원에 의한, 국정원의 대한민국'이 숨어있지는 않겠지요? 제가 전화하는 내용과 포털을 이용하는 것까지 정부가 마음대로 들여다 본다면 저는 전화 통화와 포털 사용을 최소화할 것입니다, 디지털 망명도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6.02 08:01 신고

    이미 우리사회는 정부권력과 자본권력 통제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 댓글을 달고 있는 노트북도 제조사와 인터넷 회사 통제 하에 있습니다.

    내가 쓰는 노트북 사양과 통신회사를 권력은 다 알고 있습니다. 내가 어느 사이트에 들어갔는지, 무슨 물건을 샀는지도 압니다.

    • 늙은도령 2015.06.02 14:34 신고

      디지털 바놉티콘은 현실화됐습니다.
      우리에게 프라이버시란 없습니다.
      TV가 시청자의 움직임까지 감지하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에 전자기기가 있는 곳은 어디서나 감시가 가능합니다.
      완벽히 벌거벗은 삶이 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5.06.02 08:57 신고

    마음만 먹으면 무슨 일이든 못하겠습니까?
    영화나 드라마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가상의 세계만은
    아닌듯 합니다
    일레로 지난번 광화문 광장에서의 CCTV는 빙산의 일각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02 14:44 신고

      네, 우리는 이미 모든 부분에서 감시되고 있습니다.
      전 이런 세상을 비즈니스 모델화한 적이 있어 더 두렵습니다.

  3. 참교육 2015.06.02 09:25 신고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자유란 소수 강자와 강대국의 것입니다.
    진정한 자유른 약소국 국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입니다.

    • 늙은도령 2015.06.02 14:27 신고

      최소한 국내에서 만큼은 그것이 가능하길 바랍니다.
      디지털 기술은 모든 것을 감시할 수 있기 때문에 이것에 관해 제한이 가해져야 합니다.

  4. 뉴론♥ 2015.06.02 09:52 신고

    아직도 영화속 장면들이 많긴하죠
    그나저나 메르스 때문에 큰일이군요 .

    • 늙은도령 2015.06.02 14:35 신고

      3차감염이 나왔다는 것은 대유행이 될 수 있음의 첫 번째 단계입니다.
      여기서 막지 못하면 정말 큰일납니다.

  5. 루비™ 2015.06.02 12:01 신고

    잘 보고 갑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용~~

  6. 오월 2015.06.02 12:12

    과거에 야당 반대로 좌절됐다면 이번에도 막을 수는 없는 건가요?
    그 새끼가 그런 어마어마한 법을 발의하는 표면적 명분이 도대체 뭔가요? 위헌소지도 있을텐데
    그 명분을 밟아 폐기시켜야죠

    • 늙은도령 2015.06.02 14:33 신고

      통과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야당이 절대로 양보하지 않을 테니..

      하지만 이렇게 끝까지 재발의하면서 야당에게 무엇인가를 양보받겠지요.

  7. 심우량 2015.06.04 08:40

    좋은 소식 대단히 감사합니다 휴대폰 안쓰기운동합시다 편지쓰기와 메모지로 연락 주고받기 장날을 이용해서 만나기 드등

    • 늙은도령 2015.06.15 23:50 신고

      그런 문화도 되살릴 필요가 있습니다.
      통신사가 너무 많은 돈을 챙깁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이들과 청소년들에게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라고 합니다. 세속적 의미의 성공이나 출세를 좇기보다는 평생을 거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일을 찾으라고 합니다. 청춘들이라고 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얘기를 듣습니다.





하지만 사회라는 것이 모든 개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지 않습니다. 수천 년에 걸쳐 구축된 현재의 체제가 모든 개인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 수 있도록 나두지 않습니다.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로 넘쳐나는 것이 인간의 삶입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찾아서 그것으로 먹고 살 수 있다면 그것보다 행복한 삶이 없겠지만, 개개인이 좋아하는 일이라고 해도 시대의 유행과 부모의 생각, 환경의 차이, 지역적 위치, 경험의 한계, 교육제도, 사회적 가치와 전통, 관습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 때문에 자발적으로 구축되는 기호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적습니다. 인간이 사회적이고 경제적인 동물이라는 것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나온 것이 아닙니다. 자아와 타인 및 사회에 대한 수없이 많은 철학적 성찰도 인간이란 존재의 불확실성과 가변성에 기초하기 때문입니다.





자아의 일치란 공자나 소크라테스 정도면 모를까, 어느 누구도 다양한 자아를 지니기 마련입니다. 똑같은 상황이 주어져도 선택이 다를 때가 많은 것도, 절대적으로 똑같은 시공간이 되풀이될 수 없는 것처럼, 불변하는 자아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좋아하는 일도, 하고 싶은 것도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로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의 모든 일들을 경험하고 난 뒤에나 알 수 있는 것인데, 어린 나이에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운이 극도로 좋아 좋아하는 일을 찾았다 해도 그것을 평생의 직업으로 결정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한다고 해서 좋은 결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항상 만족하거나 즐길 수 있어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일이란 늘 노력과 고통이 따른 것이지 맛있는 음식처럼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인간이란 존재가 그렇게 단순하지 않으며, 생존을 위한 진화가 그렇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회도 그렇게 구축되지 않았습니다. 체제나 사회의 밖에서 로빈스 크루소처럼 살면 모를까, 체제나 사회 안에서 사는 한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사는 것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은 의지의 산물에 가깝지 기호의 산물에 가깝지 않습니다.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말도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나 의미가 있는 것이지, 끝까지 피하기 위해, 다시 말하면 주어진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끝까지 노력하는 것을 배제시키는데 있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만 하며 살겠다는 생각은 불의하고 부정한 세상과 타협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이란 좋아하지 않는 일을 할 때가 더욱 많음을 인정하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일찌감치 독립해 내 마음대로 사는 것도 좋지만,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yes or no’처럼, 좋아하거나 좋아하지 않는 두 가지 선택만 가능한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0과 1로 이루어진 디지털 선택이 우리의 삶을 관통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단조로운 삶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평생 좋아하는 일만 좇는 것이 즐겁기만 하지도 않을뿐더러(칭찬도 세 번 들으면 실증난다는 옛말을 떠올려 보라), 행복을 보장하지도 않습니다.



좋아하는 일과 잘할 수 있는 일이란 찾는 것이기도 하지만 만들기도 하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일로 만드는 것도 기호의 행위가 아닌 의지의 행위입니다. 인간을 존엄하고 행복하게 만드는 정치와 제도, 헌법과 법률이 보장하는 자유 또한 그와 다르지 않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인스밸리 김충한 2015.05.12 18:30 신고

    음... 산다는 건 정말이지 너무도 어려운 문제인 것 같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12 20:02 신고

      그렇지요, 너무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좋아하는 일만 하는 것은 불가능한 명제입니다.

  2. 조아하자 2015.05.12 20:18 신고

    전 자기계발서에 좋아하는 일을 찾아라 좋아하는 일을 해라 이런 문구 보면 분노하면서 그 자기계발서를 혹평합니다.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는걸 잘 알기 때문이죠 제가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었다가 최소한의 밥벌이도 못하고 다른일을 다시 하게 되었는데 좋아하는일 하기 전보다 월급은 50프로도 안됩니다. 그러니까 좋아하는 일을 했다가 실패하게 되더라도 그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게 엄연한 현실이죠... 솔직히 좋아하는 일 하는 사람이 정말 많아지면 이 사회는 더 살기좋아질까요? 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이 대체적으로 좋아하는 일은 정해져 있어서 몇몇 분야에만 사람이 몰릴것이고 그런 분야는 결국 돈벌어먹고 살기 어렵게 되겠죠. 사실은 지금도 그런 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더 문화예술쪽이나 사회공헌 분야는 사람이 몰리다보니 제대로 밥벌어먹기 힘든 분야로 전락했죠.

    • 늙은도령 2015.05.12 21:08 신고

      그럼요, 님의 말씀이 가장 정확합니다.
      좋아하는 일이란 시대적 유행이 가장 많이 작용합니다.
      자신이 정말로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려면 거의 모든 일을 경험해봐야 아는 것이지, 어린 나이에 접했던 몇몇 경험들에 근거해 이것이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 단정짓는 것은 모순 중에 모순입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도 오랜 경험이 쌓인 뒤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재능이 없는 사람들은 더더욱 그러합니다.
      자기계발서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저 지름길이 있지 않나, 고된 경험없이 쉽게 얻을 방법이 없나를 추구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가치란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미디어세대들은 세상을 스크린에 나온 것으로만 봅니다.
      하지만 스크린에 나온 모든 것은 실재의 일부만 보여주는 것이고, 각색된 것이라 현실을 반영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어머니들이 깨달아야 할 것은 자식 사랑이 아니라 자식 망치기입니다.
      고된 일을 하면 불행해집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3. Cong Cherry 2015.05.12 22:39 신고

    초등학교때 선생님말씀 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 하면서 살았다면.....
    먼 이상만 쫒다가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 수 있을런지....

    • 늙은도령 2015.05.12 22:51 신고

      인간이란 절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살 수 없습니다.
      인간과 사회, 일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절대 할 수 없는 말입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5.05.13 08:15 신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기란 이 현실에서는 여러가지
    제약이 따르는건 사실입니다
    그런일을 찾기도 쉽지 않고요..
    그 언저리에서 머물다 가는수도 많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면 그것이 만족이라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5.05.13 22:37 신고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요즘의 얘기들은 삶이라는 것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습니다.
      이럴 경우 모든 일에 불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5. 백순주 2015.09.12 19:26 신고

    우아~ 멋진 풀이입니다.
    가슴뛰는 일을 찾기위해 늘 고민하고 끊임없이 되물었는데도 답이 없어 답답했는데...
    그렇군요.
    '왜'라는 본질을 외면하고' 어떻게'라는 방법만 찾아 헤맸나 봅니다.

    결혼해서 경제적인 문제를 남편이 해결하니 이 일, 저 일 마구마구 해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 즐거워졌습니다.
    그랬군요. 그거였군요.
    저는 제가 곧 좋아하는 일을 찾게 되리란 희망을 가졌더랬습니다.



거의 모든 면에서 진보좌파라고 믿었던 나는 합리적(이 단어는 대단히 모호하고 형이상학적이지만 이를 대체할 단어를 아직 찾지 못했다)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와는 몇 가지 면(특히 과학철학을 바탕으로 해석해낸 경제와 역사의 재구성)에서 일치하지 않지만, 정치권력의 역사에 대한 그의 인식과 그 역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나 자신이라는 것에 동의한다. 그래서 역사는 단순한 사실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나 자신과 모든 사람의 것이어야 한다.





자유는 불멸의 가치다. 이것이 없으면 인류의 존엄성은 사라진다. 하지만 그것이 평등과 함께 하지 않는다면 인류의 역사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에 다름 아닐 것이다. 그리고 육체적이던 정신적이던 사회적이던 간에 평등이라는 것이 탄생과 함께 불평등하게 주어지지만 우리는 그 불평등을 구조화한 정치사회적 부조리와 부정의에 저항하고 투쟁해야 한다.

 

 

세상에 홀로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살아가지 않는 한, 나라는 존재는 타인에게 비쳐진 다양하거나 엇비슷한 나일 수밖에 없다. 어떤 이유로든 경쟁이 존재하는 한, 타인이 지옥으로 다가올 수는 있어도 내 안에 존재하는 다양한 나와, 그런 다양한 나와 관계를 갖는 타인과의 접촉을 거절할 수 없다. 자살마저도 세상에 대한 자신의 가치를 입증하는 하나의 선택이라고 주장한, 그래서 말 잘 듣는 노동자가 필요했던 초기 자본주의체제가 철저하게 배격했던 위대한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말을 잠시 빌려보자.

 

 

“타방이 있어야만 일방이 있으며, 타방이 없으면 다른 일방도 소멸되어 버린다. 양자는 서로 직접 접경하여 객관이 시작되는 데서 주관은 끝난다. 양자의 경계가 공통된 것은 모든 객관의 일반 형식, 즉 시간·공간·인과율이 객관의 인식이 없이도 주관에 의해 안전히 인식”될 수 있다.

 

 

결국 사실이라는 객관적 팩트(시간과 공간, 인과율에 의해서 시계의 흐름에 따라 진열되는 역사의 단편들로 특정 가치체제를 거치지 않는 날것에 가까운 사실)는 의미라는 주관적 판단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지만, 내가 소중한 것만큼 다른 사람보다 더 중요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과 믿음이 역사에 적시될 팩트(사건, 사실, 사람)를 결정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역사는 모든 사람의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는 인류의 위대한 현인이며 공화국의 부활을 꿈꾸었던 정치학자의 입을 빌려보자. 그녀는 《인간의 조건》, 《예루살렘의 아히이만 - 악의 평범성에 대한 보고서》, 《전체주의의 기원》, 《혁명론》 등을 쓴 한나 아렌트다. 좌파와 우파를 떠나 오직 인간에만 집중했던 그녀의 사상(전체주의에 지나칠 정도로 속박된 정치철학 혹은 비판정신)은, 그것에 대한 네그리의 비판이 아무리 신랄해도(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의 자산임에 틀림없다. 하물며 다음과 같은 통찰은 어찌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겠는가.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인간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확신은 역사를 상투적인 틀로 해석하는 길로 이어질 수 있다. 이해란 잔악무도함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선례에서 전례 없는 일을 추론하거나 현실의 영향과 경험의 충격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도록 만드는 유추와 일반화를 통해 현상들을 설명하는 것도 아니다. 이해는 오히려 우리의 세기가 우리 어깨에 지운 짐을 검토하고 의식적으로 떠맡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짐의 존재를 부인하거나 그 무게에 패기 없이 굴복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간단히 말해 이해란 현실에, 그것이 무엇이든, 미리 계획하지는 않았지만 주의 깊게 맞서는 것이며 현실을 견뎌내는 것이다...현실을 아무런 편견 없이 감연히 맞서 이겨내는 것이다.

 

 

내가 나의 능력에도 너무나 부치는 일인 인류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에 대한 이해가 유치하고 깊이가 턱없이 부족하다 할지라도 나는 가능한 한 지구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최대한 알려고 노력할 것이다. 동시에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관점과 지식을 통해 바라보고 분석하고 비판할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이지만, 그보다 크거나 다를 것이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전체가 부분보다 커야 할 이유는 명백하지만, 그렇다고 부분이 전체에 예속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만이 강자와 승자 위주의 현실에 대해 아무런 편견 없이 맞설 수 있을 것이며, 나와 생각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하나씩 늘어나 연대를 이룰 때 그들에 맞서 싸워 이길 수도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아무리 과거로부터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이 미래를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에 있는 것인데, 그것 때문에 오히려 나는 희망을 가지고 있다. 신자유의적 권력의 결정체인 새로운 제국과의 싸움이 어찌 간단할 수 있겠는가? 제국의 체제 논리 때문에 전 세계가 상시적 전쟁 상태와 유동적인 감시체제에 빠져든 상황까지 고려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어찌 그에 대적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노력하고 연대한다 해도 무적의 제국과 신자유주의적 통치술을 무너뜨리는 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나는 제국과 신자유주의 통치술과의 일전에 임해, 그 투쟁의 지평선을 넓히고자 한다. 더하여 이런 투쟁이 더 많은 곳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진다면, 그리고 그 투쟁들이 인터넷을 통해 네트워크 방식으로 연결되고, 그것이 삶의 현장에서 행동과 실천으로 구현될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상상하며, 나는 그 거대한 전환의 현장에서 가능한 많은 변화들을 직접 체험하고 기록하고 전하고 싶다. 그것만이 디지털 파놉티콘이라는 감시사회(각자도생사회 또는 삶정치로 포장되기 일쑤인 민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아마도 거대한 전환의 실체를 예상할 수 없을 것이다. 예상할 수 없기 때문에 가능성은 무한히 열려 있다. 바로 그것들, 그 무한한 가능성을 내가 다시 쓰고자 하는 역사이며, 세계사의 진정한 모습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복종할 권리란 없다. 부디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강자와 승자의 역사에서 사라진 그 수많은 평범한 사람들의 안식처이자 재발견이며, 지상에서 보고 싶은 수없이 많은 이름 모를 사람들의 성지이기를 바란다.





P.S. 필자는 이 글을 쓴 이후 푸코와 벤야민, 벡과 바우만 등의 책들을 추가로 읽었다. 포퍼의 책도 더 읽었고, 그의 숙적이었던 토마스 쿤의 책들도 더 접했다. 최근에는 장하석의 책들을 읽었다. 그래서 생각이 조금은 변했고, 나름대로 의미 있는 발전을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른 글들을 통해 조금씩 풀어가고 있고, 지적공동체를 이루는데 성공하면 그곳에서 집중적으로 풀어낼 생각이다.



지식은 이성을 지혜의 영역으로 이끄는 거름이다. 철학은 지혜를 모아 실천적 삶을 형성한다. 출발점은 지식의 축적이다. 현대사회는 지식과 정보가 섞여있어 제대로 된 지혜로 이어지지 못하고, 이는 철학의 부재를 불러온다. 필자는 운이 좋게 지식 축적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었고, 고삐 풀린 이성을 통해 무수한 사유를 할 수 있어서 나름의 지혜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최소한의 철학이 가능해진 것이다.



다음은 동굴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고 플라톤의 방식을 따라갈 생각은 없다. 나는 그와 다른 방식으로 나눌 생각이다. 최대한 쉽게 풀어내 나눌 생각이다.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처럼 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의 방식은 푸코를 지향하되 촘스키에 가까울 것이며, 최근에 내가 주시하고 있는 장하석의 방식에 근접할 것이다. 내가 모든 것을 다할 수 없기에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부디 건강이 허락돼 작은 지적공동체라도 형성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 정도의 능력을 갖출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삶의 스승들이 필요하고, 공동체의 성원들이 그 역할을 해줄 것이라 믿는다. 나는 줄 것이 많지만, 동시에 받아야 할 것도 많다. 내 안의 공간은 일종의 혼돈이다. 충만하면서도 배고프고, 만족하면서도 욕망한다.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있다면 가진 것을 다 줄 수도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5.09 20:47 신고

    1966년, 경남에서 태어나 국민교육헌장을 외웠습니다. 박정희를 거의 신처럼 숭배했습니다. 그가 김재규에서 피살 당하자 통곡했습니다. 5.18광주를 '빨갱이' 천국으로 생각했습니다. 전라도와 김대중에게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의심하고, 생각하고, 비판하는 힘을 배우지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결과입니다. 이상하게도 군대가서 전라도 목포 선배를 만나 생각하는 힘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람이 생각할 수 있더는 것을 22년만에 알게 되었습니다. 아이가 셋인데. 딱 하나 물려줄 것입니다. 생각하는 힘을 길러라고. 그래야 너 자신이 주인이고, 주체의식을 가져야 다른 이들도 존중할 줄 안다고.

    • 일루와봐 2015.05.09 21:29 신고

      도령님 포스팅을 둘러보다, 아이 셋에게 물려줄 유산이 생각하는 힘이라는데 격렬히 동의하며, 님의 답글에 감동 받아 글 남깁니다.
      (한자를 잘 몰라 님이라 칭한 점 이해바랍니다 ;))

    • 늙은도령 2015.05.09 22:39 신고

      그렇게 사실을 넘어 진실을 접했을 때 변할 수 있다는 것은 위대한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철학자들도 진실, 혹인 진리를 접하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위대한 사람만이 진실과 접했을 때 변합니다.
      다만 그 변화가 오래가도록 끝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자식에게 생각하는 힘을 전해주는 것이 곧 지혜의 방식입니다.
      좋은 조건을 물려주면 편하게 살 수는 있겠지만, 최악의 상황에서도 굴하지 않는 의지와 지혜를 발휘하는 인간 본연의 가치는 절대 경험하지 못한 채 삶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저는 결혼하지 않아 아이가 없지만, 좋은 환경보다는 좋은 정신을 물려줄 것입니다, 님처럼요.

  2. base 2015.05.09 23:35

    고집도 대단하십니다. 건강생각해서 몇일 쉬시면 좋겠다고 말씀드렸는데...

    • 늙은도령 2015.05.10 00:37 신고

      오늘 올린 글은 예전에 써둔 것을 조금 수정한 것이니 별로 시간이 들지 않았습니다.
      사실 이런 식의 글은 별 어려움없이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머리에서 자판을 두들기기까지 단순 작업의 에너지면 충분하니까요.
      오늘 하루 푹 쉬고 있습니다.
      다만 저번에 넘어져 다친 어깨와 며칠 전에 미끄러져 다친 무릎 주변의 근육을 원상회복시키는데 집중했습니다.
      그것이 너무 힘들지만 어쨌든 극복해야 하는 것이니까...

  3. 이후 2015.05.10 00:22

    전 물리학과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인터넷에서 주워들은 잡지식과 사회경험을 비교분석하길 좋아했었습니다. 비록 전공자에겐 명함도 못내밀겠지만 나름 교양수준에서는 어느정도 자리잡았다라고 생각하는데 물리학과 사회 돌아가는걸 비교하면서 잼있는게 둘이 분명히 다른것이라고 일반인들이 생각하는것과는 달리 전 둘이 매우 유사함을 발견합니다.
    양자역학의 신비로운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이 인간의 이중성과 닮아 있음을 느끼고, 사회현상 또한 엔트로피와 닮았다고 느끼기까요. 이런얘기를 타 사이트에서 하니. 그 사이트에서 꽤 유명하고 학식있는 분이 이러더군요. " 자연과학과 인문학은 서로 다르다. 그걸 연결시켜서 안좋은 결과가 나온것을 역사적으로 경험하지 않았냐. 나치가 우생학을 받아들여 유대인학살을 저질렀다. 위험한 생각이다 " 이런식이었는데.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더 확고히 굳어지고 있죠.

    일종의 믿음이라고 보여질수도 있는데. 자연은 물리법칙에 의해 움직이고, 인간도 그것에서 자유로울수 없다. 고로 인간의 활동역시 마찬가지 둘이 똑같지는 않지만 유사한 행태를 보일수 밖에 없다는 것이죠. 예를 들면 중력과 권력같은이죠.
    인간. 아니 생명은 자체로 권력을 지향합니다. 권력을 더 많이 가진다는 것은 생존확률의 증가와 자손의 번영을 의미하죠. 그러기위해서 덩치를 키우죠. 그렇게 씨족사회.부족사회. 더나아가 국가가 만들어지고, 그안에서 다시 권력층이 생겨나고, 이게 우주에서 별들이 태어나고, 은하가 생기고, 태양계가 생기고 이런거랑 유사하다고 보거든요.

    물리학과 사회학의 연관성. 혹은 물리학적 미래의 예측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점쳐볼수는 없을까. 생각하는데 이건 좀 위험하기도 해요. 왜냐면 미래가 정해지면 그것이 좋던 나쁘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테니까요. 그래서 사회물리학에서 사회학으로 명칭이 변경된건가. 생각이 들기도 해요. 진실의 무게를 감당하기엔 아직 준비가 안된걸까요?

    • 늙은도령 2015.05.10 01:08 신고

      물리학은 크게 고전물리학, 아인슈타인을 기점으로 상대성이론의 시대,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처음 밝혔지만 그가 부인한 양자역학의 시대로 나뉩니다.
      이 세계의 물리학은 근원에 관한 학문입니다.
      그러다보니 이론물리학은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고, 특히 철학과 비슷합니다.
      이론물리학은 형이상학적 추론이 필요하기 때문이죠.
      고대의 물리학은 그리스신화에 접목됐고, 소크라테스학파에게 전수돼 근대까지 세상을 지배했습니다.
      특히 뉴턴으로 대표되는 고전물리학은 근대철학을 낳았고, 그것이 근대이성이 됐으며, 현대성으로 발전했습니다.
      물론 근대이성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으로 깨졌는데, 그렇다고 모든 것이 부정된 것은 아닙니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식 3차원(절대적 시공간)을 넘어 4차원(시간이라는 개념의 등장, 시간도 광속 이하에서 변할 수 있다)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이때부터 미래란 예측할 수 있는 개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아인슈타인의 양자론이 양자역학의 문을 열면서 미래는 더더욱 예측할 수 없는 것이 됐습니다.

      물론 아인슈타인이 하고자 했던 것처럼, 그리고 와인버그를 거쳐 최근의 초끈이론까지 질서정연한 통일이론을 꿈꾸는 것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래를 예측하기보다는 우주의 생성원리를 하나의 법칙으로 설명하려는 것입니다.
      심지어 미래는 무한대의 모습을 지닌다는 역사총합이론도 양자역학의 발전 덕분에 나올 수 있었습니다.
      파인만의 <물리학강의>를 보면 미래는 예측할 수 없음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했는데, 이것이 역사총합이론으로 가는 길을 열었지요.

      최근에는 양자역학은 원자단위의 공간에 적용되고, 이것에 상대성이론이 적용돼 우주 차원의 공간에 적용되고, 태양계 차원에서는 뉴턴 역학이 적용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GPS인데 이 기술에는 세 가지 물리학법칙이 모두 적용됩니다.

      아무튼 물리학이 사회학의 기원이 된 것은 뉴턴 역학의 영향을 받은, 그러나 분자생물학은 꿈도 꾸지 못했던 다윈의 진화론이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그것을 잘못 이해한 스펜서가 사회진화론을 들고 나온 것이지요.
      이때부터 물리학과 철학, 사회학이 혼재하게 됐고, 역사라는 것이 등장했지만 상대성이론이 나오기 전까지 정치경제학에 상당한 영향력을 주었습니다.

      또한 패러다임의 개념을 과학혁명에 적용한 토마스 쿤의 과학철학이 사회학에 절대적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것 말고도 많은 것들을 고려하고 논해야 하지만, 물리학이 사회학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것은 사실입니다.
      인문학자나 진보좌파가 현대의 과학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지요.
      저도 그것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자역학의 핵심은 아주 짧은 미래는 예측할 수 있지만 그 이상은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유토피아도 없고.. 뭐 그런 식으로 가는 것이지요.

      하지만 아직 완벽한 이론은 없습니다.
      저는 인간이 절대 거기에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뉴턴역학부터 상대성이론, 양자역학까지 모든 것이 공존할 것입니다.
      초끈이론이 이 모든 것을 연결하고 싶어하지만, 그것이 이론물리학(과학철학)의 세계에서는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아무튼 미래를 예측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이래서 정치가 필요한 것입니다.
      정치는 미래를 선택하는 일이고, 그것이 최대한 실현되도록 노력하는 것이니까요.
      학문은 분열하고 전문화됐지만 최근에 들어 융합이나 통섭이 유행하는 것도 일종의 패러다임인데, 다원주의적 접근을 하는 장하석까지 아직은 열린 상태라고 봅니다.

      이에 대해 성찰하는 것은 대단히 어렵고 복잡하고 전문적인 문제라 짧게 설명하기는 힘이 듭니다.
      다른 무엇보다도 포퍼와 쿤의 책을 보십시오.
      노이랏과 장하석까지 넓히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최근에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는 베르그송도 읽어보면 좋고, 특히 푸코도 보십시오.
      인문학의 한계를 깨달을 때, 칸트에서 헤겔을 거쳐 마르크스를 논할 수 있을 때, 보다 넓고 깊은 대화가 가능할 것입니다.

      공부할 것은 널려 있습니다.
      저도 통합적 접근의 초기 단계입니다.
      많이 헷갈리고 어려운 작업이라 많은 전문가와 소통할 필요를 느낍니다.
      현재진행형인 것이지요.
      두서없이 막 썼습니다.

  4. 이후 2015.05.10 00:39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과 친족의 끈끈한 유대감이 가장 강하듯. 원자속의 핵력이 가장 강하고 범위는 작죠. 가족에서 회사가 되면 구성원에 충성을 요구하죠. 반대급부를 주고 충성을 받는데 이건 원자들이 상호 공유결합을 통해 하나의분자나 보다 큰 분자집단을 형성하는것과 유사하고요. 유대감은 가족보단 작지만 힘의 범위는 넓어지죠. 일정한 에너지로 이 결합을 끊는게 가능하고요. 마치 더 높은 연봉으로 회사에서 회사로 이직하는것과 같이. 이런식으로 하나하나 자연의 기본단위부터 들어가면 끼워맞추기로 보여질지 몰라도 매우 유사하더라고요. 한 개인을 사회적 원자로 보기도 하잖아요. 그냥 비유일수도 있지만 사실 관계를 따지다 보면 역할이 비슷하더군요.ㅎㅎ

    • 늙은도령 2015.05.10 01:16 신고

      비유와 은유는 이론물리학에서 필수입니다.
      님처럼 생각하는 방식은 입자물리학에 근거할 때 가능한 얘기입니다.
      하지만 불확정성의 원리와 베타원리를 적용하면 조금 달라집니다.
      장이론과 제3의 과학도 있고요.
      파동이론을 적용하면 조금 더 달라집니다.
      강한 핵력, 전자기력, 약한 핵력, 중력까지 힘의 종류도 4가지나 되고요.

      절대 물리학만 보면 안 됩니다.
      그건 기초이지 전체가 아닙니다.

      철학에도 크게 두 종류가 있습니다.
      근원을 성찰하는 철학과 문제를 성찰하는 철학이 있습니다.
      전자가 사회철학적인 것이고, 후자가 과학절학적인 것입니다.

  5. 트라이어 2015.05.11 08:36 신고

    뭔가 엄청 심오하네요. 세상을 단순하게 살아가는 저에게 생각을 하게 만듭니다..ㅠㅠ

  6. 공수래공수거 2015.05.11 08:55 신고

    무엇보다도 이양어머니의 마지막 말이
    기억에 오래 남는군요 ㅠㅠ

    • 늙은도령 2015.05.11 17:24 신고

      정말 답답한 세상입니다.
      그런데 그런 답답함을 참고 사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7. 참교육 2015.05.11 11:40

    관념이 아니라 깨어 있는 지성인의 실천이 필요한 시대입니다.
    남보다 먹물 좀 더 들어가면 권력에 빌붙어 이익이나 쫓는 사이비 지식인들로 인해 수탈의 역사를 계속되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5.05.11 17:27 신고

      저는 국민들을 비판할 생각입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사는지 이렇게까지 개판이 되는 세상을 받아들인단 말입니까?
      전 요즘 대한민국을 떠나고 싶은 마음밖에 없습니다.
      정말 어디까지 타락할지 모르겠네요.

  8. 최홍대 2015.05.11 21:51 신고

    지식인을 비롯한 지성인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때인것 같습니다. 모든사람이 평생직장..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다보면 더욱더 왜곡되겠지요.

    • 늙은도령 2015.05.12 00:43 신고

      개인주의가 이기주의와 구별되기 힘든 지점까지 이르른 것 같습니다.
      그것이 구별되지 않으면 최악의 결과를 각오해야 합니다.

  9. 나비오 2015.05.11 22:05 신고

    지지와 응원을 보냅니다. !!!



“가장 하등한 모네라로부터 가장 재주 있는 곤충류, 가장 지성적인 척추동물에 이르기까지 실현된 진보는...각 단계마다 진보가 필요로 하는 여러 부분의 모든 창조 및 복잡화와 함께 이루어진다...생명의 역할은 물질에 불확정성을 삽입하는 일이다. 생명이 진화함에 따라 창조해 가는 형태는 불확정적인, 즉 예견불능의 형태이다. 그들 형태가 담당하는 활동 역시 점점 불확정적으로, 다시 말해 자유로워진다.”





현실정치로 뛰어든 문재인의 출사표라 할 수 있는 《문재인의 운명》을 보면, 인권변호사에서 국회의원, 수차례의 낙선과 해수부장관을 거쳐 대통령에 이르기까지의 노무현의 진화와 변이가 자세히 나옵니다. 영화 <변호인>이 ‘돈 잘 버는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한 노무현의 터닝 포인트를 그렸다면, 《문재인의 운명》에는 바보 노무현이 대한민국의 16대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진화와 변이가 담겨있습니다.



그런 진화와 변이는 ‘각 단계마다 진보가 필요로 하는 여러 부분의 모든 창조 및 복잡화와 함께 이루어진다’는 위의 인용문에 부합합니다. 노무현이 현실정치에 뛰어드는 것을 반대했던 문재인이 그 변화가 ‘불확정적이서 예견이 불가능했던’ 노무현의 진화와 변이에서 정치적으로 성숙해지고 몇 단계를 뛰어넘은 완성형 지도자로써의 노무현을 봤습니다. 정치를 그렇게 싫어했던 문재인이 청와대에 합류한 것도 이때의 충격이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그 이후의 문재인은 노무현의 정치 여정(실무와 조정의 책임자로서)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의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릅니다. 발전된 노무현의 모습에서 진정으로 ‘자유로워진’ 정치인 노무현을 볼 수 없었다면 정치인 문재인도 없었을 것입니다. 현재의 문재인은 ‘노무현 정신’이라는 ‘생명의 통일성(=조화)’을 유지하며, 출발점의 추진력에 의해 적응과 변이가 이루어지는 매 단계마다 ‘불확정적’인 변화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 대선이 대통령에 오를 만큼의 준비가 부족했던 것이었을 수도 있고, ‘노무현의 운명’에서 ‘문재인의 운명’을 거쳐 또 다른 리더십을 이루는 진화와 변이의 과정일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던 간에 문재인은 새로운 도전에 나섰고, 한층 성숙해진 정치인으로써의 능력을 보여줄 것입니다. 분명한 형태를 보여주기 시작한 그만의 리더십으로 지난 대선의 패배를 극복하고 말 것입니다.   



“생명의 형태는 정의 그 자체로 보면 살 수 있는 형태를 가리킨다. 유기체의 그 생존조건에 대한 적응을 어떻게 설명하건, 그 종이 살아가는 한 그 적응은 응당 충분한 것이다...종은, 어쨌든 생명이 이룩한 성공이었다. 그러나 각각의 종을, 종이 끼어든 환경에 비교하지 않고, 지나가는 도주에 남기고 간 운동(중간물)과 비교한다면, 사태는 전혀 다른 모습을 나타낸다. 이 운동은 어떤 때는 다른 길로 이탈되어 나갔고, 때로는 뚜렷하게 정지해 버렸다. 통과점에 지나지 않던 것이 종점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러한 새로운 관점에서 보면 실패가 일반적인 것처럼 보이고, 성공은 예외적이면서 항상 불완전한 것처럼 보인다.”



문재인이 지난 대선에서 패했을지라도, 그는 현실정치인으로서 살아있기에 ‘유기체의 생존조건에 대한 적응’으로서 그의 당대표 도전은 실패가 아닌 ‘생명이 이룩한 성공’입니다. 지난 대선의 패인이 상대 진영의 불법이던, 문재인의 능력부족이던 간에, 문재인이 직면하게 된 ‘환경에 비교하지 않고, 지나가는 도중에 남기고 간 운동(중간물, 대선 패배를 수용한 것)과 비교’하는 것은, 베르그송의 주장이 옳다면, 치명적 오류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진화의 운동이 ‘어떤 때는 다른 길로 이탈되어 나갔고, 때로는 뚜렷하게 정지’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기 때문에, ‘사태를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독하면, 진화의 ‘통과점에 지나지 않던 것’을 ‘종점’인양 호도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습니다. 대선 패배와 친노의 수장으로만 문재인을 바라보는 것은 ‘통과점’에 불과한 것을 ‘종점’인양 판단해서 그로부터 ‘정치적 자유와 창조적 진화’를 박탈(조중동과 수구들이 가장 원하는 것)하는 것입니다.





인간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고등생명체는 평생 동안ㅡ본능과 의식에서 발전된 지성과 이성, 의지에 의해 이루어지는ㅡ행동에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며, 성공에 이르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혹자는 살아있는 것이, 그래서 ‘끝까지 버티는 자가 승자’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돌연변이가 동력하는 진화와 마찬가지로 인간의 삶도 실패가 일반적이고 성공은 예외적일 뿐만 아니라 불완전한 성공에 머무는 경우가 대부분임은 진화와 변이를 멈출 수 없는 인간의 숙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간은 오늘로써 삶의 여정이 끝나지 않는다면, 일반적인이 된 실패로부터 예외적이 된 성공을 위해 해답의 근사치를 찾는 일을 그치려 하지 않습니다. 설사 오늘까지의 노력으로 목표한 것에 근접한 성공을 이루었다 해도, 또 다른 성공, 즉 보다 완전한 성공을 위해 어느 누구도 걸아가지 않은 나만의 길로 들어섭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해도 오늘은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말한 스피노자의 성찰도 영원으로 이어지는 인간의 도전이 그 자체로 숭고한 것임을 말해줍니다. 



현재의 나는 유일무이해서 모든 순간이 언제나 최초의 것들이지만, ‘출발점의 추진력’이 배후에서 작동해 ‘생명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때문에 인간의 삶은 진화의 운동처럼 불확정적이면서도, 조화를 이루는 지속적인 생명의 형태를 취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볼 수 없지만, 상전벽해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지속적인 조화를 이루는 '생명의 통일성' 때문에 미래를 향해 나아갈 수 있습니다.





문재인의 진화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그 시공간의 변화만큼 진화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대선 패배 이후의 문재인과 김영오씨를 대신해, 죽기 위함이 아니라 살기 위해서 시작한 단식 때의 문재인과 당대표에 출마한 문재인이 그 시공간의 경험과 성찰의 깊이만큼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변화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종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에서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지 못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문재인의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듯이, ‘노무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짊어지고 가되, 거기에서 나와 자유로운 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숙할 수 있음도 그를 노무현과 영원히 이어주는 조화의 끈이자, 여전히 미완성인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람사는 세상이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문재인이 자신만의 리더십을 구축되는 3부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5.01.26 14:52 신고

    왜 사람들은 친노를 비판하면서 문재인이 노무현과 정치성격이 다르다고 비판할까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26 15:37 신고

      보수언론의 프레임에 갇혀 있는 것이지요.
      저는 이번 연재를 통해 그것을 깨뜨릴 생각입니다.
      물론 제 글을 읽은 분들에 한에서요.

  2. 천추 2015.01.26 16:00 신고

    이이제이를 들으면서 글을 읽었습니다.
    잘 보고 갑니다.
    좋은 하루되시기 바랍니다.

    • 늙은도령 2015.01.26 16:16 신고

      문재인이 당대표에 나오면 대선 도전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분명히 그 나름의 답을 찾은 것 같습니다.

  3. 참교육 2015.01.27 07:17 신고

    우리 유권자들도 문제인의 철학 정도를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은 언제쯤일런지요?
    그리스가 부럽습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16 신고

      문재인 의원은 조금만 더 절제된 언어만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아직은 그것이 부족해 보입니다.
      현실정치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모자란 것이 문제입니다.
      그밖에는 이런 정치인 없습니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 이 땅의 보수화는 상당 부분 회수될 것입니다.

  4. 다노시무 2015.01.27 07:44 신고

    잘보고 갑니다..
    좋은결과 있을겁니다..
    하늘에서 응원 하시겠져..

    • 늙은도령 2015.01.27 17:16 신고

      네, 그러기를 바라며 문재인이 스스로의 힘으로도 이길 수 있기를 바랍니다.

  5. 공수래공수거 2015.01.27 08:26 신고

    때로는 강한 카리스마도 필요합니다
    너무 부드러우면 얕보입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18 신고

      문재인은 자신의 행동하고 말해야 할 때는 절대 부드럽지 않다고 봅니다.
      단식을 할 때의 문재인은 목숨을 걸었고, 대화록 문제로 실무자가 불려가자 자신을 부르라고 검찰을 몰아붙였습니다.
      그는 그만의 리더십을 구축하는 중인데, 특히 듣기 위한 노력에서 표현하기 위한 노력으로 바뀌고 있다고 봅니다.

  6. 꼬장닷컴 2015.01.27 08:27 신고

    지난 대선 패배는 분명 상처일 수 있으나..
    문재인 의원은 상처를 무늬로 바꿀 수 있는 생산적인 분이죠.
    그렇게 다음을 준비하는 문재인 의원에 응원을 보냅니다.

    • 늙은도령 2015.01.27 17:20 신고

      네, 불법적인 대선을 받아들인 것은 극도의 혼란을 막기 위함입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컸다면 많은 사람이 다쳤을 것입니다.
      그와 야권은 총체적 전투에서 진 것입니다.
      선악의 구별은 선거에서는 무의미합니다.

  7. 바람 언덕 2015.01.27 11:04 신고

    과정이 모든 것을 말해줄 겁니다.
    그래서 이번 당대표 경선과 그 이후의 행보가 중요합니다.
    문재인 이전과 문재인 이후의 민주당이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지를
    보여주는 것이 관건이 될 것입니다.
    한가지 우려되는 것은 현 민주당은 정치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다는 것입니다.
    이를 어떻게 수렴하고 나아갈지, 그리고 친노 프레임을 어떻게 극복해 낼지도
    지켜봐야 할 문제이구요.

    • 늙은도령 2015.01.27 17:22 신고

      정치적 스펙트럼이 너무 넓기 때문에 문재인의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조경태와 김영환 같은 자들은 품어내는 것이 힘들겠지만, 기회주의자들인 그들이 탈당하지 않을 가능성도 높아 문재인이 풀어야 할 것은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문재인의 그릇이 얼마나 큰지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8. 파리비행장~권순복 2015.12.13 16:48

    문재인의 진화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그 시공간의 변화만큼 진화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대선 패배 이후의 문재인과 단식 때의 문재인과 당대표에 출마한 문재인이 그 시공간의 경험과 성찰의 깊이만큼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변화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종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에서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지 못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문재인의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듯이, ‘노무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짊어지고 가되, 거기에서 나와 자유로운 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숙할 수 있음도 그를 노무현과 영원히 이어주는 조화의 끈이자, 여전히 미완성인 ‘진보적 자유주의’가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5.12.13 17:04 신고

      네, 문재인은 진화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진화의 추진력에 커다란 저항이 있지만, 끝내 그것을 이기고 나가는 것이 출발의 동일함에 있습니다.
      변화를 거쳐 그는 더 성숙한 정치인이 될 것입니다.

  9. 파리비행장~권순복 2015.12.13 16:49

    문재인의 진화 또한 이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그 시공간의 변화만큼 진화한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대선 패배 이후의 문재인과 단식 때의 문재인과 당대표에 출마한 문재인이 그 시공간의 경험과 성찰의 깊이만큼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변화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최소한 ‘통과점에 지나지 않는 것을 종점’이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대통령에서 시민으로 돌아온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지 못한,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문재인의 모든 것을 지배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듯이, ‘노무현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으로 짊어지고 가되, 거기에서 나와 자유로운 변화를 통해 정치적으로 성숙할 수 있음도 그를 노무현과 영원히 이어주는 조화의 끈이자, 여전히 미완성인 ‘진보적 자유주의’가 있어 가능한 것입니다~~ 훌륭한 글 입니다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뻔하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날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두 되돌려보고, 하나하나 분석해 볼 필요도 없다. 행정부라는 거대 조직의 특성만 파악하면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지 않는 이유를 추론하는 것은 너무나 쉽다.



                                 이미 정치적 계산은 끝났다는 뜻ㅡ오마이뉴스에서 인용



이미 오래 전에 박 대통령은 관련 부처와 기관으로부터 세월호 침몰에 얽힌 모든 문제를 보고받았을 것이다. 그와 함께 세월호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세부적인 보고도 받았을 것이다. 대통령이 취할 행동에 대해서도 세부적인 보고의 내용에 따라 정해져 있을 것이다.



헌데 아무리 강철 같은 심장을 지닌 사람이라고 해도 극도의 분노와 비탄에 빠져있는 유족을 만나 얘기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할 수도 있다. 행동보다 말의 일관성을 유지한 것이 몇 십 배 어려운 것은 이미 인지심리학과 행동심리학 및 수천 년에 걸친 철학적 사유를 통해 확실하게 밝혀진 상태다.



                                    7시간의 미스테리도 정리됐다는 징후가 넘쳐난다  



세월호 유족과 새누리당에서 어떤 합의안이 나오지 않는 한 박 대통령이 세월호 유족을 만나는 일은 없다. 만에 하나 대통령이 유족을 만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어떤 특별법이 제정된다 해도 7시간의 미스터리처럼 대통령의 업무 수행에 지장이 없도록 세월호 참사에 관한 것이 깔끔하게 정리됐음을 뜻한다.



헌데 그런 경우란 확률적으로 제로에 가깝다. 대통령을 보호할 모든 준비가 끝났다 해도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패한다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다시 말하면 새누리당에게도 피해가 없어야 한다는 뜻이다. 차기 대선주자가 누가 되던지 간에 당선확률이 압도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박 대통령이 유족을 만날 일은 없다.



민주주의에 이런 것이란 없다ㅡ오마이뉴스에서 인용



현재 박근혜 대통령과 세월호 유족 사이에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수준의 접점이란 없다.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를 권력과 정치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니, 생명과 인권 및 부모의 관점에서 호소하는 유족의 바람은 실현될 수 없다. 대한민국은 기본적인 인권은 고사하고, 250명의 학생들을 포함해 304명의 국민이 죽은 참사마저 해상교통사고로 치부되는 나라 아닌가.



해군은 해경이 거절했다고 구조작업에 나서지 않고, 해경은 선장과 승무원들만 구조하고, 대통령은 사법체계를 무시한 채 그들을 살인자로 규정하고, 집권여당은 유족에게 호통치고, 막말을 양산하고, 폄훼를 일삼는 나라가 현재의 대한민국이다. 국민의 동조단식이 백만 명을 넘거나 유족이 국가경제를 말아먹는 집단이 되지 않는 한 대통령이 유족을 만날 일은 없다.



                                      인권 유린도 마다하지 않는 채널Aㅡ구글이미지



단식 중에 서너 사람이 죽는다 해도 원래 지병이 있었느니, 자실을 기도한 전력이 있다거나, 노조 가입이 헌법이 보장한 노동자의 권리임에도 금속노조 출신이며, 인터넷에 올린 글과 SNS 등을 살펴보니 종북적 사고의 소유자라고 거대 언론들이 난도질을 해댈 테니, 별로 신경 쓰지 않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은 정치적으로 죽은 유병언에게 모두 뒤집어씌워질 터, 다음 총선에서 야당이 압승하지 않는 한 영구 미제로 남아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원하는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동조단식 이외에는 남은 것이 없다. 



       

                                  그러나 깨어서 행동하는 시민들이 있다ㅡ오마이뉴스



2014년의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이 겨우 그 정도다. 민주정부 10년이란 대한민국 현대사의 돌연변이였을 뿐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아무런 정치적 결과를 이루어내지 못하는 넘치도록 풍부한 자유란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왜곡하고 퇴행시킨다. 표현의 자유가 분노의 배설이라는 아우성으로 그칠 때, 정치적 행동과 참여의 실천은 사라진다.  



유권자(국민이 아닌)가 선거하는 순간만 나라의 주인이 되는 현재의 대한민국은 헌법 제1조에 규정된 민주공화국이 아니다. 모든 권력이 국민에게서 나오지만, 그것을 향유하고 사용하는 자들이 부와 권력을 지닌 극소수에 불과하다면, 그 나라의 정치체제는 과두정치와 금권정치가 혼합된 유사 전체주의나 권위주의 독재라 할 수 있다. 독재도 국민의 동의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정치학의 명제는 언제나 진실이기 때문에. 



                                       


  1. 뉴론7 2014.09.01 05:17 신고

    9월의 시작이네염 좋은한주되세염.

  2. 참교육 2014.09.01 13:37 신고

    루소는 간접민주주의가 투표하는 순간만 주인이고 투표가 끝나면 다시 노예상태로 돌아간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유권자들은 투표순간까지도 노예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부끄러운 민주의식, 주인의식입니다.

    • 태봉 2014.09.01 15:59

      이제 투표마저도 저들의 손아귀에 놀아나고있는 현실입니다-.-

    • 늙은도령 2014.09.01 20:48 신고

      루소가 현재의 한국을 보면 기절초풍할 것입니다.
      답답한 노릇입니다.

  3. 여강여호 2014.09.01 19:37 신고

    세월호보다 더 시급한 민생이 없을진대
    민생, 민생 하면서 또 국민들을 현혹하는 걸 보면
    박근혜가 분명 독재자의 딸이 맞긴 맞습니다.

  4. 산타 2016.10.28 09:15

    우리가 이런 사람을 뽑았다니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부끄럽다 그리고 세월호 가족들 힘내세요

  5. 진콩 2016.10.28 09:24

    세월호 가족들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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