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권력은 불가피하게 진실을 왜곡한다. 권력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 바꾸는 데 관심이 있다……거대 권력은 블랙홀처럼 주변 공간 자체를 왜곡한다. 그 곁에 가까이 갈수록 모든 것이 더 심하게 뒤틀린다.

 

                                                                                                  ㅡ 유발 하라리의 《2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인용

 

 

자, 위의 인용문을 기억한 채 하나만 분명히 하자.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정당은 당대표(민주주의 선진국은 원내대표는 있어도 당대표라는 직위는 없다)가 결정했다고 당원들이 무조건 따르도록 강제하지 않는다. 집권여당의 당대표라면 거대 권력을 손에 쥐었다고 해도 모자람이 없을 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당대표의 거대 권력은 진실도 왜곡할 만한 힘으로 의원들과 당직자, 당원에게까지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아니,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북한의 공산당처럼 전체주의적 정당이면 모를까, 민주정당이라면 당대표의 결정을 신의 결정과 동급으로 놓지 않는다. 정당의 헌법과 법률인 당헌과 당규에도 그런 반민주적이고 초법적인 조항을 넣을 수 없다. 이재명을 안고 간다는 이해찬의 결정을 당원에게까지 적용할 수 있다고 믿는 표창원처럼, 자신이 상당한 권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총선의 공천권에 목메는 국회의원이라면 모르겠지만, 당원에게까지 잘못된 결정을 따르라고 강요하는 것은 표창원이 툭하면 내세우는 (진정한 의미의) 해당행위다.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변증법적으로 풀어낸 '주인-노예 관계'처럼, 설사 당대표가 당의 주인이고 당원이 그의 노예라고 해도 당원의 지지와 참여, 후원이 없으면 당대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종국에는 주인과 노예 관계가 뒤바뀌는 역전현상이 일어남을 표창원은 깨달아야 한다. 헤겔이 자본과 노동의 변증법을 설명하기 위해 개념화한 '주인-노예 관계'는 민주주의 정당에 적용해도 특별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보편적인 진리라고 할 수 있다. 국가의 주인이 국민이듯이, 당의 주인은 당원이라는 뜻이다.

 

 

부, 건강, 지역, 국가, 문화, 전통 등 수없이 많은 실질적 이유로 불평등하게 태어난 인간이,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평등하다고 주장하는 인류의 믿음과 신념, 철학은 모든 개인이 참여한 정치사회적 합의에서 나온다. 사회계약에서 출발한 헌법과 법률은 그런 합의를 기본권과 인권이라는 법적 권리로 보장하며, 바로 그 지점에서 자유로운 개인과 정치사회적 공동체로써 공공이익이 탄생한다. '타인이 자신에게 해주기 바라는 것을 타인에게 하라'는 황금율을 실천해야 하는 개인은 자유의지에 따라 정당에 가입하고 평등한 주체로 행위한다.

 

 

그리스의 아테네라는 작은 도시국가에서 처음 실시된 민주주의는 '경제력이 충분해 노동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결혼한 백인남성'에서 평등한 자유를 가진 모든 개인에게로 참여의 폭을 넓히는 과정이었다. 정당은 그런 과정에서 생겼으며 (전통적인 이론에 따르면)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정기적으로 실시되는 민주적인 방식의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는 것을 목표로 한다. 최근에는 현실적인 이유로 권력을 잡지 못해도 공통의 목표를 지닌 개인들이 정부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정당까지 출현했다.

 

 

'우중에 의한 독재'와 '다수의 독재'라는 플라톤과 토크빌 등의 경고가 있었지만, 그 유명한 처칠의 말처럼, '민주주의가 최악의 체제(정부 형태)여도, 지금까지 시험한 체제들을 제외하면' 최선인 이유도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이 아테네에서 출발해 피렌체를 거쳐 미국에서 뿌리를 내린 후, 20세기 후반부터 지배적인 체제로 자리잡은 민주주의 정당이라면 당대표가 결정(당론)했으니 모든 당원이 따라야 한다는 표창원 같은 주장은 허용될 수 없다. 

 

 

그것이 특정 정당에 가입하건 가입하지 않건, 정치 행위에 참여하는 평등한 개인은 공통의 가치관과 목표를 추구하되 정치적 선택과 결정은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른다. 그런 정치행위에 대한 합당하고 정당한 책임을 지는 것도 개인의 자유의지에 따랐기 때문이다. 당대표의 결정에 따르지 않아도 당원으로 남는 것은 개인의 자유이고 권리이다. 당헌과 당규가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묻는 판단의 기준이 될지언정 절대적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다. 

 

 

표창원의 무지하고 폭력적인 인식은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당대표의 결정에 따르는 것도 최종적으로는 당원의 자유의지에 따라 이루어진다. 당대표가 항상 옳을 것도 아니며, 옳다고 해도 반드시 따라야 할 의무가 당원에는 없다. 이재명을 안고 간다는 최고회의의 결정에 모든 당원이 참여한 것도 아니고 당대표의 정무적 판단에 따른 것이며, 수많은 당원들이 반대의사를 분명히 한 상태였기 때문에 표창원의 주장은 플라톤과 토크빌이 경고한 다수의 독재에 불과하다. 

 

 

과거의 경력과 삶이 어떠했던 간에 민주주의 정당의 정치인이 된 이상, 퇴행의 모습만 보여주는 표창원은 민주주의와 정당에 관해 기초부터 다시 공부하고 체현해야 한다. 이재명을 감싸고 도는 것은 표창원의 자유이고 정치적 권리이지만 그 방식이 민주주의에 반한다면 어떤 정당성도 갖지 못한다. 상황에 따라 당원의 의무를 강조할 수 있어도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대전제를 넘어설 수 없다, '모든 국법이 정지되는 예외상황'이나 전체주의 정당이 아니라면.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당론을 정해 당원의 권리를 제한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헌에 가까운 행위이지만, 당원 가입이라는 정치행위도 당대표의 결정에 복종하는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아니다. 당원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가능하지만 지배하려고도 강제하고 지시하려고도 하지 말라! 군인조차도 상관의 명령이 명백히 잘못됐다면 거부할 권리가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P.S. 정당론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로버트 달, 아담 쉐보르스키, 최장집 등처럼 구세대 학자들이 주장하는 계급과 이념에 기반한 '조직으로써의 정당론'과, 정당의 모든 과정에 시민이 참여(시민행동주의)하는 것을 주장하는 '네트워크로써의 정당론'으로 나뉜다. 냉전시대의 잔재가 남아있는 전자는 대중을 동원과 제한된 참여의 대상으로 보고, 후자는 행위와 결정의 주체로 본다. 전자는 대의민주주의에 방점이 찍혀있고, 후자는 참여·직접민주주의에 방점이 찍혀있다.

 

 

혁명처럼 예외적 상황일 때도 전자는 대중의 요구를 정당이 흡수해 제도화하거나, 원내에서 정책화하는 정치행위를 주도하고 대중은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루소가 '유권자는 선거일에만 주인이고 다음부터는 노예로 돌아간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정당론에 기반한다. 후자는 혁명에서 나온 대중의 요구를 시민의 직접참여로 정당과 함께 공동으로 풀어가는 것을 말한다. 문프가 민주당 대표였을 때 만들고자 했던 정당은 후자이지 전자가 아니다. 추미애와 이해찬의 민주당은 전자로 돌아가고 있다. 필자가 퇴행이라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추미혜와 이해찬의 민주당이 갈수록 자유한국당를 닮아가고 있다. 세월호참사와 촛불혁명을 철저하게 이용해먹은 이재명과 그를 정치적으로 키워주고 보호하는 김어준 카르텔이 퇴행의 중심에 있으니 이런 대참사가 가능한 것 같다. 이들은 왜 이재명에게 이렇게도 목을 메는 것일까? 이재명의 지지율 7%를 잡으면 50%대 지지율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일까? 자신이 하는 말의 70% 정도만 이해하는 듯한 나경원이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되는 것이 보수 진영의 현실이다보니, 니들이 민주당 말고 다른 당을 찍을 수 있겠느냐는 배짱으로 이러는 것일까?

  1. 카사바 2018.12.13 11:47

    구구절절이 공감이 됩니다
    표창원은 지방선거 끝난 후 이재명을 찍으라고 한 이유를 얘기하겠다고 해 놓고 아직도 입꾹하고 있는데 그것부터 해야지 않음?
    표창원이 젤 실망스런 인간👎👎

    • 늙은도령 2018.12.13 18:11 신고

      약속도 지키지 않는 자입니다.
      이 정도로 개차반인 줄 몰았어요.
      문프도 속았던 것 같습니다.



학자들이 행복의 역사를 연구하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는 아직 초기 가설을 만들어내고 적절한 연구방법을 찾는 단계에 머물고 있다. 확과한 결론을 채택하고 논의를 마무리 짓기에는 너무 이르다. 논의는 아직 시작조차 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서로 다른 수많은 접근법을 되도록 많이 알고 올바른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서는 위대한 사상가의 생각, 전사의 용맹, 성장의 자선, 예술가의 창의성에 초점을 맞춘다. 이런 책들은 사회적 구조가 어떻게 짜이고 풀어지느냐에 대해서, 제국의 흥망에 대해서, 기술의 발전과 확산에 대해서 할 말이 많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개인들의 행복과 고통에 어떤 영향을 미쳤느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 이해에 남이 있는 가장 큰 공백이다. 우리는 이 공백을 채워나가기 시작해야 할 것이다.





위의 인용문은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에 나오는 내용이다. 《사피엔스》가 인류의 역사를 다룬 이전의 책들과 구별되는 것은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로봇공학(나노봇 포함)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이 세 가지 지적 창조물은 인류에게 지난 40억 년 동안 이루어진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바로 이 시점에서 유발 하라리는 모두가 알고 있어서 누구도 알지 못하는 '행복'을 들고나왔다.



왜 하필 이 시점에서 '행복'이냐 하면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로봇공학이 창조해낼 미래ㅡ그때까지 인류에게 충분한 시간이 주어진다면, 다시 말해 그때까지 인류가 멸종하지 않는다면ㅡ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적용되지 않는 세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로봇공학은 신의 창조를 대체할 것이며, 사물의 법칙도 바꿀 것이며, 인간을 우주적 차원에서 영생(죽지 않는 것과 다른)이나 무적의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다.



헌데 인간이 그런 존재에 이르면 정말로 행복해질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들이 불의의 사고로 죽는다면 영원히 사는 나는 행복할까? 인류가 동시에 그런 존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순서가 앞일수록 행복할까? 돈이 있어야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다면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 적은 돈으로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는 사람부터 순서가 결정되면 인정할 수 있을까? 이렇게 질문은 끝도없이 이어질 수 있다. 



이전에는 갈망만 했던 것들이 현실이 됐고, 되고 있고, 될 것으로 보인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유인원이었던 인류가 신에 근접하는 존재(유전적 조작이나 사이보그 포함)가 되는 것이 짧게는 10년, 길게는 100년 정도를 보는데, 우리는 어떤 준비도 되어있지 않다. 세월호유족 중의 일부나, 단원고 생존학생들이 1000년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그들은 세월호참사의 비통한 기억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을까?



우리가 1000년을 살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국가와 민족, 인종, 성, 젠더 등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결혼과 출산, 가족은 무슨 의미를 지닐까? 부와 성공, 철학과 종교, 인문학과 사회학은 어떤 역할을 할까? 창조와 사물, 우주의 법칙에 통달한 인공지능이 모든 발전을 주도할 텐데, 인간은 1000년 동안 무엇을 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야 할까? 한나 아렌트가 《인간의 조건》에서 주장한 것처럼 인류는 과거만 회상하며 사는 존재가 될까? 





인류는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극단적 불평등과 차별을 감수해야 했지만, 1000년을 사는 존재가 되면 똑같은 '자유'를 위해 똑같은 희생을 감수할 수 있을까? 무엇에 의미를 두고 무엇을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일까?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다면, 결국 자유보다 개개인의 행복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신이 준 최고의 선물이라는 자유의지는 죽는 존재에게만 절대적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부처는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에 집착하지 말라고 했지만, 인공지능과 유전공학, 로봇공학의 도움을 받은 인간은 (100년을 사는 존재였을 때보다는 줄어들겠지만) 기쁨과 고통을 느끼는 존재로서 1000년을 살아야 한다. 그 오랜 시간을 불행하게 산다면 그것만큼 지옥 같은 세상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부터 행복에 천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가능한 세상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의외로 자기자신에 대해 잘 모른다.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타인에 의해 이루어지기 일쑤다. 일할 권리가 무엇보다 중요해진 지금에는 자신을 돌아볼 시간조차 없다. 이런 상태에서 일을 거의 하지 않고 1000년을 사는 존재가 된다면…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먹고 사는 것도 중요하고, 남들보다 잘살고 성공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고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인류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전력을 다해왔다. 평등을 중시했던 사회주의적 인본주의도 최종 목적지는 자유였다. 인류는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노력을 행복을 찾기 위해 투자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행복이란 무엇인가? 나는 지금 행복한가? 내가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세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렇게 하지지 않는다면 《사피엔스》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다. 



미국 사람들이 해마다 다이어트를 위해 소비하는 돈은 나머지 세상의 배고픈 사람 모두를 먹여 살리고도 남는 액수다. 비만은 소비지상주의의 이중 승리다.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적게 먹으면 경제가 위축될 테니) 다이어트 제품을 산다. 경제성장에 이중으로 기여하는 것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8.24 08:22 신고

    저의 행복 기준은 "마음의 갈등이 없는것 "입니다^^

  2. 이슈큐레이터 2016.08.24 08:50 신고

    사피엔스에 관한 글을 쓰셨군요 ~

    참 어려운 책인데.. 견문을 넓히려면 이런 종류의 책도 읽어야겠죠

    • 늙은도령 2016.08.24 15:28 신고

      재미있더군요.
      최근에 읽은 책 중에서 부담없이 읽기에는 최고였습니다.



이제 인공지능(과 특이점)에 대한 공부가 끝나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읽어야 할 책들은 계속해서 생기겠지만 지금까지 공부한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결론에 이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금은 기존의 지식과 연동시켜 통합된 성찰을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킨 각 분야의 기술들도 충분히 숙지했습니다. 노빅과 이니시모프 등의 전문서적까지 읽었기에 획기적인 이론이 나오지 않은 이상 지금까지의 공부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거의 공상과학소설에 가까운 레이 커즈와일의 《특이점이 온다》를 맨 처음 읽는 바람에 극도의 혼란에 빠져들었지만, 그래서 그의 탁월한 짜집기에서 벗어나는데 한참 걸렸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지식과 성찰들로 인해 이전과는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습니다. 제 자신만 놓고 보면 (질과 양 모두에서) 분명한 발전인데, 그것을 미래세대에 적용하면 더없는 절망이어서 글로 풀어내는 것이 잔인한 짓이 아닌지 두렵기만 합니다. 



특히 이명박근혜 8년 7개월 동안의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하면, 1020세대에게 탈조선만이 그나마 나은 답이라는 말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나이가 한살이라도 어릴 때 이땅을 떠나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인공지능과 특이점 이후의 세상이 어떻게 될지 예측가능하기 때문에, 욕망의 투표에 익숙해져 천하의 사기꾼과 독재자의 딸을 대통령으로 뽑은 4050세대 이상은 신경쓰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이땅을 벗어나라고 말하는 것이 최선일지도 모릅니다. 



기술 발전을 기업이 주도하고 정부는 그들에 휘둘린 채 국민의 삶을 외면하는 것이 점점 강화될 가능성이 높은 앞으로의 세상은 지금의 불평등과 차별은 아주 소소한 것에 불과합니다. 낮은 수준의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이라도 모든 노동과 서비스의 자동화(인공지능과 로봇·나노공학의 발전에 따라 결정될 것)로 집결되기 때문에 극소수에게 인류 전체의 부가 집중됩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한 인류 차원의 합의(기본소득을 넘어서는 부의 강제적 재분배)가 없다면 나이가 어릴수록 노예보다 못한 삶을 피할 수 없습니다. 



물론 비정규직과 알바 외에는 선택할 것이 없는 지금의 삶도 사실상의 노예 상태이지만, 모든 분야에서 자동화가 일상화되는 30~40년 후에는 지금의 기계보다 못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처럼 분배에 대해서는 일체의 언급도 없이 돈만 된다면 대통령이 맨앞에 서고 특권층이 호응하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국민을 사지로 내모는 나라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뚜렷할 것이기에 미래세대(나이가 어릴수록 더욱 불리하다)에게는 최악 중의 최악의 세상이 도래할 것입니다.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은 모든 경우에 인류의 멸종으로 귀결된다는 닉 보스트롬의 《슈퍼 인텔리전스》까지는 아닐지라도 취업 자체가 불가능해진 10대에게는 지금의 20대도 부럽게 다가올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수많은 책에서 언급된 자동화의 속도는 무서울 정도여서 기계와 인간의 공존을 논하는 것이 사치일 따름입니다. 국가와 기업(자본), 개개인이 최고의 효율(이익)과 편리를 추구하기 때문에 기하급수적으로 이루어지는 기술 발전과 자동화를 늦출 방법도 없습니다.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한에서는 미래세대에게 어떤 선택지도 없습니다. 지금의 40대 이상은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즉 그 이전에 죽을 것이기에 최악의 세상을 막기 위한 사회적 합의에 나설 가능성도 거의 없습니다. 그들로서는 상상도 못할 세상의 출현이기에 합의를 위한 이해(기득권의 포기가 핵심)를 바란다는 것도 불가능합니다. 수많은 사람들은 사후의 삶을 강조하거나 영적 각성을 촉구하겠지만 그러기에는 기술 발전과 자동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피부로 와닿기에는 인식의 속도가 너무 느립니다.



필자의 이런 주장이 틀린 것이 아님을 입증하기 위해 무인자동차가 불러올 파장만 놓고 봐도 분명해집니다. 인공지능을 다룬 거의 모든 책에서 언급되는 무인자동차는 그것이 가져올 미래의 가치보다 당장의 피해가 파국적인데도 이에 대해서는 제대로 된 토론조차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인공지능의 수준에 따라 보급 속도가 느려질수도 빨라질수도 있지만, 무인자동차가 유인자동차를 퇴출(레이싱처럼 특정 지역에서만 유인자동차가 허용될 것)시키는 시기는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석유업체와 자동차업체에 의해 수십 년 미뤄질 수 있지만, 영원히 미룰 수는 없습니다. 



이럴 경우 2~3개의 인공지능 플랫폼업체와 1~2개의 완성차업체, 소수의 부품업체를 제외하면 모든 자동차업체가 사라집니다. 즉 자동차업계에서 수천만 명이 실직하고, 가족과 연관 산업(택시·버스·대리기사 포함)까지 더하면 수억 명의 삶이 위협받게 됩니다. 이에 비해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는 미미한 수준에 머물 것입니다. 기술 발전에 따라 이런 현상이 모든 업종에서 예외없이 일어납니다. 수십억 명이 일자리를 잃고 극단적인 빈곤층으로 내몰리게 됩니다. 





인공지능은 모든 분야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발전들을 하나로 합칠 수 있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것들이 아닙니다. 뇌에 대한 분석과 이해와 재현, 즉 모델링 작업이 특이점을 넘고 나노기술이 인간에 근접한 로봇(사이보그 포함)을 양산할 수 있는 시점에 이르면, 여기에 정치권이 침묵하고 언론이 아무런 문제 제기도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이란 없습니다. 인간은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거나 그들의 반려동물 정도로 전락합니다. 



아직 본격화되지 않은 지구온난화, 초고령사회, 대형 원전 사고, 초미세먼지, 각종 전염병 등은 고려하지도 않았습니다. 더욱 지랄 맞은 것은 평균수명이 계속해서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40대 이상은 만물의 영장으로서 자존감이라도 누릴 수 있지만, 나이가 어릴수록 이것마저 누릴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듭니다. 인류 모두가 공멸하면 최악의 공평이라도 적용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아니라면, 아니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면 무엇이라도 시작해야 합니다. 당장의 정의를 실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오래도록 의미있게 만드는 일이 더욱 중요합니다.



일부에서는 인공지능과 로봇에게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행위를 강제하는 방법을 논의하고 있지만, 이는 낙관론에 기반한 뜬구름 잡는 얘기(웬델 월러치와 콜린 알렌의 《왜 로봇의 도덕인가》를 참조)에 가까워서 상당히 바람직하지만 목적한 바를 이룰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입니다. 인공지능이 의식과 자유의지 등을 가질 정도까지 발전할지 확신할 수 없지만, 약한 인공지능 수준의 자동화만으로도 최악의 디스토피아가 도래할 것은 분명합니다. 최고의 효율과 이익, 편리만을 추구하는 이상 인류의 미래는 정해져 있습니다. 



빌 게이츠의 말처럼, 인류가 인공지능을 제어할 어떤 답을 찾아내지 못하면 인류의 멸종은 필연이며, 최소한 지금의 헬조선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곳곳에서 붕괴 가능성이 고개를 쳐들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사드 배치 결정을 기습적으로 내린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도박 때문에 미중의 전쟁터로 빠져들 수 있다는 가능성까지 더하면 어느 정도 비슷할 것입니다. 박근혜 탄핵까지 포함해 헬조선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전방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7.08 08:23 신고

    점점 영화속의 일,상상의 일들이 현실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간 100년에 걸쳐 발전해 왔던 일들이 10년 아니 1년만에 이루어집니다

    이 변화의 시대에서 철학적 성찰만이 파멸과 정신의 타락에서
    구할수 있을것 같은 생각이 드는군요

    • 늙은도령 2016.07.08 15:22 신고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인공지능의 끝은 암담한데, 특이점을 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막연한 희망을 빼면 걱정이 앞섭니다.
      인간은 스스로 무덤을 파고 있는데, 보다 많은 이익과 편리를 추구하는 것 때문에 멸종에 이르렀습니다.

  2. 맹그로브 2016.07.08 09:34

    오늘 아침에 출근하면서 서비스와 노동의 차이점을 곰곰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서비스에 댓가나 경제적인 가치를 부여한다면 그순간 서비스는 노동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serve의 단어에는 봉사하다라는 해석이 존재하는 데, 봉사라는 것이 말그대로 공익적인 측면이 강하지 않나 생각이 드는 군요. 여기에 돈을 붙여 놓으면 사람이 죽더라도 돈 없으면 봉사도 안하겠다는 무시무시한 뜻으로 탈바꿈 됩니다.
    인간은 누구나 공짜를 좋아 합니다. 좀더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결국 serve에 돈을 붙여서는 안되지 않나 싶군요. 저의 짧은 단상입니다.. ^^

    • 늙은도령 2016.07.08 15:26 신고

      네, 모든 것을 돈으로 환산하고 승자독식이 허용되는 현 체제가 문제입니다.
      이것을 무너뜨려야 인간이 기계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최대한 늦추거나 대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기술주의자들의 공통점은 인간중심적 사고에서 벗어나면 지능이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도킨스가 대표적인 학자였는데 이제는 특이점주의자들이 이런 주장을 펼치고 있습니다.
      철학적으로 들어가면 너무 길어지지만 조금씩 글로 남겨 책으로 출판할 생각입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인공지능과 특이점 혁명 논쟁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생각이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논리를 펴볼 생각입니다.

  3. 하하하 2016.07.08 19:00

    걱정마세요.
    우리에겐 사라 코너가 있습니다.
    그녀의 아들 존 코너가 로봇에게 대항하는 방법을 알려줄겁니다. 껄껄껄!

    • 늙은도령 2016.07.08 20:45 신고

      ㅋㅋㅋ
      그렇게 단순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인공지능과 인간의 대결은 없지만 인간이 노예의 신분으로 떨어집니다.
      소리 소문도 없이, 인공지능을 독점할 극소수의 특권층에 의해.....

      솔직히 전복적 혁명이 없으면 이런 시기를 늦출 방법도 없습니다.
      박근혜 같은 지도자가 또 나오면 더 빨리 망할 것이고요.



세월호 특별법 3차합의를 통과시킨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이상 진보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 당신들이 말하는 진보의 가치란 무엇이며, 정치의 목적이란 무엇인가? 당신들은 진보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모였는가, 아니면 정권을 잡아 권력의 부스러기라도 취하기 위해 모였는가? 아니면 지역구나 비례대표 국회의원이 돼 이런저런 특혜를 누리기 위해서 모였는가?





당신들은 정치적 기득권이 되기 위해 새정연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보수 경제학자가 갈수록 심화되는 불평등을 '세습자본주의'라고 비판하는 데도 현재의 수준에서 관리하려는 것인가? 도대체 몇 명의 국민이 죽어야, 정부의 무능과 기업의 탐욕, 종교의 일탈, 관료의 타락, 부와 권력의 세습, 차별의 공고화, 기회와 조건의 불평등, 법 앞의 불평등을 방관할 것인가?



이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고 상호 결합돼 민주주의의 작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새로운 빈곤층을 양산하고, 결과의 불평등이 중세 봉건사회의 수준으로 퇴행하는 것에 침묵할 것인가? 당신들이 그렇게 열렬히 구애를 하고 있는 중도와 합리적 보수란 대체 무엇인가? 이념적 정체성을 버리면 집권이 가능하고, 불평등이 줄어드는가?



민주주의가 인류가 선택한 지배적 체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폭력적 혁명을 포기한 좌파가 민주적 절차(파업과 집회가 최대치며, 불복종은 모든 권리와 목숨을 걸어야 한다)를 통해 모든 자유의 기초인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하고, 기회와 조건의 평등을 최대화하기 위해 진보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이념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에 이르는 방법을 민주화한 것이다.






다시 말해 진보란 주권재민과 1인1표로 대표되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통해, 공평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적용이 전제되는 법의 지배를 통해,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국민이 어떤 박탈과 배제보다 비참한 빈곤에 빠지지 않을 때, 권리가 없어 물질로 취급되는 노예의 상태에 빠지지 않을 때 작동할 수 있다.



철저한 자유의지에 의해, 인간의 기본권과 시민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을 정도의 사회경제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작동할 수 없다. 좌파의 이념을 민주적으로 계승한 진보가 제 역할을 못하면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퇴행한다.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커져 ‘세습자본주의’가 일반화되면 어떤 민주주의도 불가능하다.



누가 어떤 식으로 떠들어대던 진보는 기득권의 힘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직접민주주의의 확대에 매진하는 것이 진보의 가치고 존재의 이유다. 304명의 국민이 얽히고설킨 기득권의 탐욕에 목숨을 잃은 것이 세월호 참사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특별법 제정이란 기득권의 정치놀음으로 변질된 대의민주주의를 믿을 수 없어 직접민주주의를 요구한 역사적 사건이었다.





수많은 정치경제학자들이 현대의 민주주의가 1인1표가 아닌 1원1표로 퇴행했다고 지적하고 경고한다. 극소수의 기득권이 ‘세습자본주의’를 통해 봉건시대의 귀족계급처럼 특권화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갈수록 많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들이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너무 커져 현대의 민주주의를 특권화된 기득권의 과두정치에 비유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란 한국에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명확한 증거다. 세월호 유족과 수많은 국민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이 주어진 특별법에 찬성을 표한 것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직접민주주의를 통해서라도 국가의 주인이 국민임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보수화된 거대 양당의 기득권 정치를 믿을 수 없어 아우성을 친 것이었다.





헌데 새정치민주연합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세월호 특별법에 합의했다. 박영선 의원은 원내대표를 사퇴하면서도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변명만 늘어났다. 중도보수화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인지 진보적 가치가 사라진 보수화된 거대 정당의 계파정치에 대해서만 언급했다. 민주주의에서 진보적 가치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턱없이 부족한 인식만 보여준 채.



세월호 특별법 제정은 내년에 해도 이미 늦을 만큼 늦어 있어서, 몇 달 뒤로 미룬다고 304명의 국민들이 살아나는 것도 아니다. 세월호 유족과 수많은 국민이 원했던 것은 시간이 아무리 오래 걸려도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재발방지였지 정치에 대한 독점권을 내세운 보수화된 거대 양당의 야합이 아니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더 이상 진보라는 이름을 언급하지도 말라. 진보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얘기하지도 말라. 계층과 신분 상승의 사다리가 무너져 사회이동성이 갈수록 줄어드는 현실에서 사회경제적 약자들 대변한다고 말하지도 말라. 온갖 불평등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진보가 죽으면 민주주의도 죽는다.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젊은학생 2014.10.03 05:04

    안녕하세요. 국제관계학을 전공하고 있는 4학년 학생입니다. 지금은 유럽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있어요.

    History of Political Ideas 라는 과목을 공부하면서 (정확하게는 몽테스키외를 검색했습니다), 우연히 들리게 되었어요.
    개인적으로는 제가 집이 안산이어서 지인 중에 세월호 희생자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그때도 외국에 있었고 한국에는 내년 1월에나 돌아갈 예정이어서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언론에서 말해주지 않는 사실들은 알기도 힘들구요. 그래서 공부하던 것을 멈추고 여러 글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몽테스키외를 비롯하여 다양한 정치 철학자들을 공부하면서 드는 생각은 두 가지 입니다.
    아무나 할 수는 없지만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을 먼저 이론화 시켜버린 것이 억울하다는 것과
    현재 우리나라의 정부형태에 정치 사상들을 비추어 보았을 때, 많이 이상하다는 것입니다.
    공화정(Republic)이라기 보다는 귀족정(Aristocracy)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굳이 정치 사상을 공부하지 않더라도 이상한 점이 많은데, 정작 이것을 문제로 들고 나서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보고도 안 본척, 실제로 잊어버리고, 깊이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있고, 저에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곳곳에서는 작은 움직임들이 있겠지요. 각자의 모양으로.. 응원의 메세지를 드리고자 댓글을 남깁니다.
    저는 마땅한 블로그를 가지고 있지 않아서 즐겨찾기로 해 놓고 자주 들리겠습니다,
    (네이버 블로그에는 교환학생의 생활 및 읽은 책의 소감 정도를 종종 올리고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4.10.03 05:54 신고

      우리나라의 정부형태는 정치 사상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몽테스키외의 발견은 획기적이었지만, 플라톤의 정치철학에 대한 근대적 주석이라고 하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플라톤의 영향력은 헤겔과 마르크스에게까지 파고들었는데, 프랑스혁명의 영향력에 버금갈 정도입니다.

      님의 질문에 답하려면 너무나 많은 것을 언급해야 하는데, 제가 최근에 올리는 글들이 님의 질문에 답하는 것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현대의 언어적 빈곤 때문에 최대한 쉽게 풀어내야 하기 때문에 매우 어려운 작업이 될 것이지만, 아무튼 느리더라도 진행해갈 생각입니다.
      정치철학이 사라지면 수단과 방법만 남습니다.
      헌데 수단과 방법은 언제나 기득권의 것이었기에 민주주의는 허울 뿐인 것이 됩니다.
      현재의 세계가 그러합니다.

      정치에 관해 이해하려면 이론물리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다윈의 진화론과 스펜서의 사회진화론도 공부해야 합니다.
      또한 미디어에 대한 공부도 반드시 해야 합니다.

      프랑스의 신좌파는 공부하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푸코는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칸트로 대표되는 독일의 관념론과 헤겔과 마르크스, 아도르노의 변증법은 필수고요.
      이것이 어려우면 바우만과 울리히 벡을 보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토크빌과 한나 아렌트도 공부하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제가 글을 쓸 때 책을 소개하고 있는데 제 나름의 검증을 거친 책들이라 도움이 될 것입니다.

      엉망진창인 우리나라의 정치와 정부의 행태를 이해하려면 결국 이승만과 박정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압축성장의 신화가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정확히 이해할 때 한국의 상황을 이해할 수 있으며, 국제관계도 이해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됩니다.

      현대의 정치는 마케팅으로 변했습니다.
      대중매체의 영향이 절대적이기도 했지만, 미국적 정치체계가 미국에만 적용 가능한데 전 세계의 기준이 되면서 엉망진창이 됐습니다.
      정치는 말인데, 이미지를 동원한 마케팅적 요소가 강해지면 정치철학이나 사상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솔직히 저는 너무나 많은 분야의 책을 닥치는 대로 읽어서, 거기서 배운 것들을 글로 풀어내려면 너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귀국하시면 연락 주십시오.
      만나서 얘기하는 것이 빠를 수도 있습니다.






  2. Blue whale 2014.10.03 10:55

    토마스 제퍼슨이 '20년 한 번씩 봉기가 반복되어야 국민의 자유가 유지된다'고 했다던가요....
    요즘 이 말이 자주 생각이 납니다.
    진보와 민주주의가 죽는다는 것은 사람이 죽는다는 얘기인데 말입니다.
    세상이 달라졌으니 봉기의 방법도 달라져야 하는데 뾰족한게 뭐가 있을까요?

    • 늙은도령 2014.10.03 17:57 신고

      로마제국에서는 교육에서 혁명의 정신을 가르쳤습니다.
      유럽에서는 보수와 진보에 대해 가르칩니다.
      자본가 입장에서, 반대로 노동자 입장에서, 이렇게 좌와 우도 가르칩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치가 우리처럼 개판이 되지 않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념적 정체성을 바탕으로 가기 때문에 우리와 다릅니다.
      그러다 보니 다양한 형태의 직접민주주의가 가능합니다.
      정치인들도 자기 지지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행동으로 옮깁니다.
      국민들에게 주인의식을 가르치는 것 말고는 없습니다.
      헌대의 민주주의는 폭력적 혁명을 포기한 대가로 구축된 것이기에 주인의식, 즉 민주주의에 대한 제대로 된 공부가 있어야 합니다.
      사이버 검열 얘기가 유럽에서 나왔다면 나오는 순간 검찰총장부터 대통령까지 살아남기 힘듭니다.
      주인의 사생활과 표현의 자유를 건드리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중용투자자 2014.10.03 14:05

    힘을 가진 사람들이 진보적 가치를 실현해야하는데 현실은 반대로 가니 답답할 뿐입니다.

    • 늙은도령 2014.10.03 17:58 신고

      네, 기득권에 오르면, 자신처럼 기득권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정치가 허용하지 못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기득권이 자신의 힘을 유지하는 방법입니다.

  4. 협궤 2014.10.03 19:11

    정치적으로 고엽제 피해자들 이용하고 다문화, 탈북자, 가난한 노인들 이용하는 그들은 뭔지...

    • 늙은도령 2014.10.03 20:37 신고

      정말 치사하고 파렴치합니다.
      모두를 돈으로 움직이게 만듭니다.
      빈곤이란 인간으로 하여금 어떤 것도 하도록 만듭니다.

  5. 2014.10.04 16:44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4.10.04 21:44 신고

      폭력혁명을 일으킨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프랑스혁명부터 지금까지 모든 혁명이 다 실패한 이유가 그 이후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민주주의를 대체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현대의 혁명은 사회적 합의에서 나옵니다.
      대중매체를 보지 않고 공동체를 이루어, 그것을 넓혀가는 것과 압도적인 선거에서의 승리를 거두는 것이 동시에 이루어지지 않는 한 다른 어떤 것도 불가능합니다.
      세계화라는 것이, 국가라는 조직이 폭력혁명으로 무너지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국민의 90% 이상이 들고 일어난다고 해도, 그 다음의 정치체제를 어떻게 해서 국가를 운영할지, 소규모로 분리해서 운영할지, 사회의 기능을 최대화할지, 재산 분배는 어떻게 할지, 세금은 어떻게 할지, 외교와 경제는 어떻게 할지 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것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폭력 혁명만 성공한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습니다.
      결국은 정치의 문제입니다.

  6. solphy 2014.10.04 22:42

    원론적인 말씀을 이해는 하지만 전 생각이 다릅니다.

    그 이후를 없다고 생각하시는건 지나친 염려와 기우라고 봅니다.

    꼭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아집을 버리면

    세상에는 젊고 똑똑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 널렸다고 생각해요.

    적재적소에 필요한 사람이 들어가면 자기역활 충분히 합니다.

    선생처럼 소극적이라면 현상태를 루지하고 1번만 찍는게 답 이지요. 그걸 오합지졸이라고 하면 실례는 되겠지요. 그러나

    생각만 한다고 되는게...글쎄올시다. 뭐가 있을까요? 계획이 완벽하다고 계획대로 되나요??

    세상은 모든게 변수인데 지금까지 인생을 살면서 안 가본 길을 가보신 적이 한번도 없나봅니다?

    • solphy 2014.10.04 22:45

      오타요...

      선생처럼 소극적이라면 현상태를 루지하고
      유지하고

    • 늙은도령 2014.10.05 03:43 신고

      국가를 운영하는 청사진이 그렇게 간단하다면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이 줄어들어야 했습니다.
      젊고 똑똑하고 정직하고 양심적인 사람들이 널려있다면 어떻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고 새누리당이 연속해서 승리합니까?
      세상이 그렇게 단순한 논리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한 개인의 인생과 국가라는 거대 조직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삼성과 현대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모두 다 정직하고 바르지 양심적이지 않아 부를 독점하는 줄 아십니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악마는 아닙니다.
      그런데 그 안에 들어가면 조직의 논리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습니다.
      대체 5000만 명 중에서 누구에게 일을 맡기면 나라가 잘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그들을 어떻게 검증합니까?
      그래서 이념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념이 확실해야 정치적 사안이 나왔을 때 어떤 인간이 맡던 이념이 지향하는 쪽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이념이 인간의 정신과 이성에 달라붙어 있을 정도가 돼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그저 추상적인 생각만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인류는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안 가본 길을 간다는 것이 무엇인지요?
      인생을 살면서 가볼 수 있는 길을 다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미래란 것이 모르기 때문에 미래인데 미리 정해놓고 길을 가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변수들이 널려 있는데요.
      자신이 원하던 원하지 않던, 예상하지 못한 길이건 예상했던 길이건 선택의 여지가 없으면 어떤 길이든 가는 게 인생입니다.
      님의 질문은 성립 자체가 안됩니다.
      모든 인간이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길을 갑니다.
      미래를 알아도 똑같은 지점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 인간과 사회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안 가본 길로 가는 것은 모든 인간이 다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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