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인지심리학자들(『프레임전쟁』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 『폴리티컬 마인드』의 저자 레이코프가 대표적)까지 뛰어든 기존의 이념 분류에 감탄하면서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마르크스적 구좌파를 보수가 아닌 진보로 분류하기 때문입니다. 진보를 좌파와 보수를 우파로 묶는 통념과 관례가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이런 분류가 당연하게 다가오지만 저는 이런 관성적 분류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마르크스적 구좌파는 경제적인 면에서는 진보에 속하지만 정치적인 면에서는 보수로 분류해야 한다는 것이 저의 주장입니다. 자유주의(나는 내가 대표한다가 핵심)가 진보와 보수, 중도 모두와 공통분모를 형성할 수 있는 것처럼 마르크스적 구좌파도 두 종류로 구분해야 합니다. 기존의 분류체계는 산업·금융자본주의에서는 통할 수 있지만 마르크스의 예언(특히 『자본론』『정치경제학 비판』『비판 요강』 등을 참조할 것. 청년 시절의 마르크스는 헤겔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에 계몽의 변증법으로 대표되는 보수적 성향에 익숙했다)이 영원히 실현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시대(시장이 우주로 늘어나기 때문에 극단적 불평등만 커진다)에는 유효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적 구좌파는 경제적인 면에서 결과의 평등에 더 많은 방점을 찍은 진보로 분류할 수 있지만, 정치적인 면에서 위계서열을 중시하고 권위적이고 엘리트주의적이어서 보수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경제(사회적 생산관계)가 정치를 결정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의 목표는 좌파의 최고 이상인 결과의 평등에 이르는 것인데, 이를 위한 수단으로써 보수적인 성향으로 흐를 수밖에 없는 공산당 독재와 전위 조직, 노동자의 폭력혁명 등을 필수 요소로 제시했습니다.

 


레닌이나 카스트로처럼 상당히 수정했다고는 하지만 마르크스의 교리를 적용한 모든 사회주의 실험이 전체주의적 독재로 귀착된 것도 이런 보수적 성향 때문입니다. 노동자를 교육하고 폭력혁명을 조직하고 주도해야 하는 공산당 독재와 전위 조직은 (모든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강화되지 않으면) 전체주의적 독재로 귀결됩니다. 결과의 평등은 개인의 기호와 성향, 변화를 모두 담아낼 수 없기 때문에 몇 가지 기준으로 강제될 수밖에 없다(단 하나의 평등만 인정하는 구좌파의 평등 개념과는 달리 다양한 평등을 인정하는 신좌파의 평등 개념을 집대성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을 참조)는 점에서도 전체주의화(단 하나의 가치만 인정하는 것)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수적 성향의 구좌파와 진보적 성향의 신좌파가 구분되는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유주의자들이 발전시킨 시민권(개인의 권리를 중시, 탈물질주의, 삶의 질을 높이는 생태환경 중시, 동물권 강화 등)과 인권(인종차별 반대, 양성평등, 소수자 차별금지 등), 반전·평화와 수평적 토론을 중시하는 참여직접민주주의 등을 대폭 수용한 신좌파가 대학생과 시민 위주의 진보적 성향을 띠는 것과 비교해 구좌파가 위계서열을 중시하고 권위적인 전임노동자(주로 정규직과 금융산업노조 출신) 위주로 돌아가는 것도 정치적 성향이 정반대이기 때문입니다(많지 않지만 68혁명을 다룬 책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너무 전문적인 글이 되는 까닭에 압축적으로 말하면 구좌파는 결과의 평등(이것을 위해 다른 가치는 상당한 제약을 받는다. 구좌파의 언행에서 다양한 가치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민주주의의 이해가 부족해 보이는 이유도 여기서 나온다)을 지향하는 보수 성향의 정치세력으로 보면 됩니다. 거대노조나 노총, 급진적 지식인, 강단 위주의 구좌파가 그들만의 기득권과 전위적 위치를 선점하면서도 마르크스주의적 결과의 평등을 더 이상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보수 성향의 정치세력으로 분류해야 합니다.

 

 

이상의 거친 설명을 기준으로 하면 이재명과 은수미의 행태가 왜 보수적으로 보이는지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이 옳다는 신념 때문에 다양한 기호와 성향, 환경을 인정하지 않는 수단의 폭력성과 권위적 일방통행은 점령군 행세를 하는 이재명 인수위와 아동수당을 지역화폐(엄밀히 말하면 지역에서만 사용이 가능한 상품권)로 주겠다는 은수미의 독선으로 표출될 수 있는 것이고요. 권위적인 구좌파가 더 많은 민주주의(느리지만 수평적 토론을 통해 합의점을 도출한 이대생의 투쟁이 가장 신좌파다웠다)를 불편해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이재명이 신좌파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자로 발전한 노통의 방식이 너무 느리고 단호하지 못하다고 비판하며 보다 폭력적으로 나가겠다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난해의 민주당 대선후보경선에서 지지율이 문재인 후보를 추월하기 직전에 이르자 자신을 보수로 분류하며 문재인 지지자들을 욕보인 것(자신을 잡아먹으려 애완견으로 키웠지만 호랑이였다고 비아냥거리며 한 말)도 거짓말이 아니었고요.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청년배당이 진보주의자들이 아닌 보수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기본소득과 청년배당에 해당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문프가 입양한 유기견과 이재명이 입양한 유기견의 상황이 천지차이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고요. 정치철학과 정치사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고, 기술과 현장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해도 대한민국에서 조기숙 교수를 제외하면 이런 정도의 이념 구분을 할 수 있는 지식인이 없는 까닭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재명과 진보매체, 거대팟캐의 밀어주기와 선전선동에 놀아난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이재명에 열광하는 것도 그들 역시 보수적 성향을 띠고 있기 때문이고요.





일체의 에너지를 일상적인 생존투쟁에 쏟아부어야 하는 절대빈곤자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조차 없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 동일한 맥락에서, 부유한 사람들은 현재의 상황에 불만을 거의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밖에 없다(진화론과 변증법을 최대한 수용한 소스타인 베블런의 『유한계급론』에서 인용. 최근의 연구로는 진보의 성지였던 캔자스 주가 보수로 돌아선 과정을 추적한 토마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를 참조할 것). 

 

 

진보매체라고 하는 한경오와 프레시안(가장 구좌파적)도 실제로 보면 구좌파의 카르텔에 해당함에도 진보 전체를 대표하는 것처럼 호도된 것도 똑 같은 이유에서 나옵니다(최근의 오마이뉴스는 급진적 페미니즘의 산실로 변했다). 조기숙 교수가 이들에게 가난한 조중동이라는 혹평을 가한 것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계급적 구분에 기반한 조직으로써의 정당정치와 이원적 민주주의를 고집하는 최장집 류도 마찬가지이고요.

 

 

이명박근혜도 진보정당들이 무색할 정도로 결과의 평등을 지향하는 공약과 정책을 내놓았다(지키지 않았지만)는 점에서 이재명은 민주당이 아닌 자한당 후보로 더욱 적절합니다. 그럴 경우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숨길 필요도 없고, 복지 관련 정책들도 진보로 포장하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을 필요도 없습니다. 민주당은 진보적이지만 더 많은 민주주의를 지향한다는 점에서도 이재명과 맞지 않습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번갈아 가면서 이명박근혜와 자한당(한나라당과 새누리당 시절)을 지지했던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반공주의와 안보팔이, 시장기득교 근본주의, 친일숭미로 대표되는 수구세력이 몰락한 상황에서 제대로 된 보수정당이 나와야 하지만, 내후년 총선까지 구태정치인이 TK를 놓고 진흙탕 싸움을 벌일 것이기에 이재명과 은수미가 자한당으로 넘어가거나 새로운 보수정당으로 옮겨서 자신의 능력(그런 것이 있다면)을 펼치면 문파와의 갈등도 사라집니다.

 

 

이재명과 은수미 같은 구좌파들이 민주적이고 진보적인 가치를 망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커밍아웃하고 탈당해서 보수 성향의 정치색을 마음껏 펼침으로써 과거의 낡은 이념구도에서 벗어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그럴 때만이 노통과 문프, 유시민 등으로 이어져온 진보적 자유주의가 김경수 도지사와 전해철 의원 등으로 이어져 이 땅에서도 튼튼하게 착근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김어준은 보수적 자유주의자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마초 자유주의자라고 하고 싶지만 그런 분류가 없어서 할 수 없네요. 김어준이 이재명을 키웠던 것도 이념적 성향이 비슷하고 (민주노총과 엠병신 등하고의) 조폭적 친목질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삼성전자그룹 공격이 말로만 번성할 뿐 아무런 효과도 거둘 수 없는 이유도 마찬가지고요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물망초 2018.08.05 17:21

    통진당과 경기동부 그리고 조폭들이 그를 가만 뒀을까요?????? 이권이로 얽메이고 함께 산게 수십년일건데 " 박근혜 배신자는 절대 용서 못한다"

  2. 좋은글 2018.11.24 00:06

    이재명에게 이데올로기가 있을거란 추정도 기대도 안가네요 이재명은 자한당에서도 받지 못할 조폭끄나풀일 뿐이죠


신좌파는 평등한 배려를 거부하지 않는다. 만일 그들이 이상으로서의 평등을 거부한다면 이는 평등한 배려가 무엇인지에 대한 하나의 특별한 해석만 거부하는 것이다. 신좌파가 생각하는 구좌파의 평등에 대한 견해는 각각의 시민들이 요람에서 무덤까지 일을 하든지 말든지 또한 어떤 일을 하든지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들이 동일한 재산을 갖는 것이며, 정부는 항상 개미에게서 떼어내서 배짱이에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내가 생각하기에 이런 평등을 정치적 이상으로 진지하게 제안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처럼 단조롭고 무분별한 평등은 단순히 약한 정치적 가치 또는 다른 가치들에 의해서 쉽게 무시될 수 있는 가치가 아니라 아무런 가치도 아니다. 일을 할 수는 있지만 일을 하지 않기로 선택한 사람들이 근면한 사람들의 생산물을 보답으로 받는 세계를 옹호하기 위해서는 할 수 있는 말은 없다(로널드 드워킨의 『자유주의적 평등』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은 마르크스적 구좌파들의 꿈인 결과의 평등이 인간의 본성과 맞지 않기 때문에 얼마나 허구적이고(칼 폴라니, 미셀 푸코, 한나 아렌트, 존 롤스,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등의 수많은 석학들에 의해 비판받았다), 공정과 공평을 추구하는 정의의 관점에서는 수용되지 못함을 웅변해줍니다. 사회주의 실험이 모든 국가에서 실패로 끝난 후 인간의 본성을 수용한 정치철학은 정의를 실현하는 정치(국가와 함께 마르크스가 부르주아의 산물이라며 없애야 할 것으로 규정했다. 마르크스는 노자와 비슷하게 최소한의 행정만 인정했다)에 집중하게 됩니다.



인간과 정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부족했던 마르크스의 교리에 따르면 스페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헤드트릭을 기록한 호날도와 지금 아이슬란드와 경기를 치르고 있는 메시의 연봉이 대표팀에도 뽑히지 못한 수많은 선수들과 똑같아야 합니다. 한 회사에서 30년을 근무한 노동자와 15세 견습노동자의 연봉도 똑같아야 합니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3권에서 '한 사람의 발전이 모든 이의 발전으로 이어지는' 세상인 '자유의 왕국'에 이르려면 결과의 평등(노동자의 폭력혁명으로 달성된다)은 절대조건입니다. (인간의 뇌가 초인공지능으로 연결된 세상이라면 이런 세상도 가능하지만 인간의 육체는 제거됩니다.)  



극소수 학자들은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에 그런 내용이 한 번씩 나온다고 하면서) 마르크스가 노동의 질적 차이를 완전히 부정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지만ㅡ그렇다면 마르크스의 교리는 무너진다ㅡ그를 신봉하는 마르크스적 구좌파들은 노동의 질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노동자의 폭력혁명을 통해 완벽한 평등을 이루어야 '자유의 왕국'에 이를 수 있다는 그의 주장에 도덕과 정의가 부재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목적의 숭고함 때문에 과정의 폭력성과 부정의를 외면하는 구좌파와 기득권을 부정하는 신좌파가 구별되는 핵심적 차이가 이 두 가지에서 나옵니다.     



러시아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마르크스주의자 레닌이 그의 사상을 현실의 혁명과 정치에 적용하려니 쓸모있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말하며 그만의 수정을 가한 것처럼, 그리고 이제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듯이 사회주의 실험의 실패는 마르크스의 추상화가 정치철학적 가치 이상을 갖지 못함을 말합니다. 마르크스적 이상향에 제일 가까운 나라들이 영국과 프랑스, 독일 등이 아니라 노르딕 모델을 꾸준하게 발전시켜온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공습에 모델의 상당 부분이 흔들리고 있는) 북유럽국가인 것도 노동의 질적 차이를 인정한 경제와 복지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마르크스는 폭력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다며 복지 확대에 반대했다).





모든 노동자가 마르크스의 교리를 완벽하게 소화하지 않는 한, 루소가 '시민 모두가 신이라면 완벽한 민주주의가 가능하다'고 했던 것처럼, 사회주의 실험은 '정부-기업-노조(구좌파가 핵심)'라는 기득권 체제로 귀결됐습니다. (유럽의 경우 마르쿠제와 기 드보르, 카치아피카스 같은 학자가 논리를 제공, 미국에서는 C. 라이트 밀즈 같은 학자가 논리를 제공한) 신좌파가 68혁명(유럽은 대학생과 고등학생이 주축, 미국은 대학생이 주축)을 일으켰던 것도 노동자와 시민을 위한다는 '정부-기업-노조'라는 삼각동맹이 부와 권력, 기회를 독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좌파의 68혁명은 일체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는 폭력성(원래는 폭력적이지 않았으나 정부가 폭력성을 유도했다) 때문에 차원 높은 민주주의를 꿈꿨던 상상력에도 불구하고 처참한 실패로 끝났습니다. (권위주의적이고 대단히 보수적이서 수구세력과 적대적 공생을 유지해온) 구좌파까지 포함된 기득권의 반동에 의해 철저하게 진압돼 흔적조차 남기지 못했습니다.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런 역사적 배경 하에 탄생한 새로운 정치철학으로 롤스와 하버마스, 드워킨과 샌델이라는 두 개의 부류로 발전했습니다(경제철학으로 넘어가면 전자는 국가의 개입을 반대하는 보수적 시장경제를, 후자는 국가의 개입을 찬성하는 진보적 시장경제을 지향한다). 



'아메리칸 드림'보다는 '유러피안 드림'에 가까운 진보적 자유주의는 미국의 신좌파가 구체화하는데 실패한 참여민주주의를 한국정치에 도입한 노무현과 문재인 대통령이 대표적입니다(유시민은 경제적으로는 신좌파적이며,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적이다). 노통과 문프의 인사와 정책이 자유지상주의와 구좌파적 평등주의로 기울지 않은 채 좌우를 넘나든 것도 이 때문이며, 거대 노조보다는 개별 노동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  



프랑스에 거주하며 급진적 사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목수정 작가가 사이비 기본소득·청년배당·무상복지 등을 떠들어대며 대중을 선동하는 이재명을 자신의 사상적 기반에서, 섹스에 대해 지독할 정도로 관대한(또는 지저분한) 프랑스적 가치관을 기준으로, 현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해 재벌에 대한 증오와 광기로 가득한 관념주의자의 입장에서 (재벌과 재벌체제가 다르다는 헛소리를 남발하며 재벌과 싸운다고 설레발을 치는) 이재명을 일방적으로 옹호한 목수정의 궤변이 노통과 문프에 비판적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사실관계가 모조리 빠져있는 프랑스 페미니스트의 헛소리



노통과 문프는 기본적으로 진보적 가치에 무게를 두지만,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개개인의 권리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이상도 공유합니다. 조세정의에 의한 재분배도 중시하지만 지속가능한 성장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이 때문에 최저임금 인상폭을 대폭 늘렸고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유지할 것이지만, 인상의 결과가 최하위 노동자보다는 그 위의 노동자에게만 이익이 집중되고, 기업의 부담만 늘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최저임금법의 일부라도 개정해 바로잡아야 했던 것입니다. 



모든 노동자를 만족시킬 경제정책이 없기 때문에 원래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가 나오면 바로잡아야 하는 것이 공정한 정의를 중시하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철학입니다. 일체의 폭력을 거부한 촛불혁명의 저변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의 철학이 깔려있었고요. 기득권 노조를 대변하는 구좌파의 리더로 자리매김한 이재명이 문재인 정부에 반기를 든 것도, 경기도민 중 3040세대 남성이 그에게 몰표를 준 것도, 같은 구좌파인 목수정이 그를 옹호하는 것도 똑같은 이유에서 나왔습니다(이재명이 중상위층이 몰려있는 성남을 정치의 기반으로 선택한 것도 이 때문이며, 그의 청년배당이 중상위층을 포함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는 단 한 번도 최하위층을 대변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에 반대한다).



제가 문프의 등에 칼을 꽂을 확률이 너무 높고 폭력적인 구좌파를 대표하는 이재명을 거부했던 이유도 구좌파의 역사와 주장, 오류, 한계, 위선을 꿰뚫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시민 작가가 김부선의 인권 유린과 그밖의 의혹들에 대한 이재명의 대응이 도덕과 정의라는 관점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다수의 경기도민이 기권을 선택했다고 말했던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최저임금법 일부 개정안에 대해 구좌파적 이해만 대변한 이재명의 반대와 민주노총의 폭력적 유세방해를 비판했던 것처럼. 



다만 정치철학이라는 어려운 주제를 최대한 쉽게 압축적으로 풀어내려고 하다 보니 글이 어려워졌습니다. 이 모든 것은 저의 능력 부족을 의미하기에 독자분들과 트친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하며, 다음 기회에 다른 글로 부족한 부분을 풀어보겠습니다. 강의의 형태면 모든 분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 자신이 있는데 저의 힘만으로는 그런 자리를 만들기 어려운 것을 이해해주십시오(양자역학이 물리학의 중심이 되면서 과학계에서도 역사결정론을 주장한 마르크스는 논외로 밀려났거늘, 아직도 마르크스라니. 인공지능과 4차산업혁명을 철학자나 사회학자의 관점이 아닌 기술공학적으로 접근하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유의 왕국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erryjanet 2018.06.17 12:23

    먼저, 너무도 부족한 제 식견으로 선생님의 글은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시간있을 땐, 잘 읽으면서 이해해보려고 애씁니다.
    목수정....그 여자가 파리를 나와 서울, 아니 부천주민이던가... 거기서 한 일 년만 아니 한 달만 살면서 제대로 파악만 한다면
    이재명을 결코 지지하지 못하리란 생각입니다.
    선생님께서도 언급하신 것처럼 프랑스에 거주하는 진보적인 사람들은 언뜻 약자의 편에 서서 거대 세력에 맞서는 것처럼
    보여지기만 하면 일단 우호적이잖아요. 이재명처럼 민주당내에서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마치 홀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니까.
    재작년 꼭 이맘때, 파리에 한 달 이상을 머물렀었는데 (교포들은 못만났고 그곳 시민운동하는 분들 ㅡ 하긴 프랑스는 거의 모든
    시민이 시민운동가로 보여지더군요) 우리보다 더 세월호참사에 대해 분개하더군요. 막대한 보수정권이 힘없는 서민이 사는 동네의
    학생들이 아주 낡은 배로 수학여행 가는 길에 참사를 당했는데 진상도 밝혀내지도 않고 당시만 해도 2년 이상을 그렇게 바다 속에
    수장된 채 있는 것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고, 저 개인적으로도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마침 당시에 파리를 방문한 박근혜에 대해 반대시위가 제법 눈에 띌 정도였는데 목수정씨도 선봉에 섰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마도 그런 식으로 목수정의 눈에는 이재명이 거대 민주당 내에서 홀로 버티는 약자로만 보여지는 모양입니다.
    사실은 민주당 배경을 이용해먹는 아주 비열한 인줄도 모르면서...
    자신의 친형 뿐 아니라 시민운동가 김사랑씨에 직권남용으로 강제정신병원 감금시킨 만행이나
    성남FC 를 통해 160억 금품 수수 혐의 등을 상세히 찾아서 알아봤다면 결코 페이스북에 저런 글을 싣지는 않았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목수정씨는 파리에서 흔한 그저 '생활좌파'로 보여지고, 이재명 지지자인 건 분명하지만 그에 대해 자세히 알게 되면
    지지를 철회한다고 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아닐까요?

    • 늙은도령 2018.07.01 14:00 신고

      저는 조금 다르게 생각합니다.
      목수정이 그것도 모르면서 이재명의 후원회장을 했을 리 없습니다.
      프랑스 정치인들의 부패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세월호참사도 이재명이 일으킨 것이 아니니 정치적으로 이용했다고 욕하지 않은 것이 프랑스, 아니 유럽의 좌파들입니다.
      목수정은 글재주는 좋지만 딱 거기까지만 입니다.


먼저 답부터 말하면, 'No'입니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잠시동안의 사회주의가 등장)만이 자유의 왕국(과학적 공산주의, 무계급사회, 개인의 발전이 모든 인류의 발전을 이끄는 세상, 능력만큼 일하고 필요만큼 가져가는 사회)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 복지에 적대적이었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아편이라고 했던 종교(국가의 영속에 기여)처럼, 국가가 혁명의 주역인 노동자에게 복지를 많이 제공할수록 폭력혁명에 대한 의지가 줄어들기 때문에 완전한 평등이 이루어질 자유의 왕국에 이를 수 없다고 봤습니다. 





국가가 부르주아의 이익만 대변하기 때문에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한 마르크스는, 사회적 생산관계(하부구조)에 의해 규정되는 정치(상부구조로 법률과 문화, 교육, 도덕 등이 포함된다)마저 폭력혁명을 위한 선동의 도구로만 여겼습니다. 마르크스에게는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만이 인류 해방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에 그것에 반하는 모든 것들에 적대적이었습니다. 그의 입장에서 보면 기본소득은 복지의 일종으로 자본가와의 타협(마르크스가 '공산당 선언'에서 비판한 부르주아 사회주의)을 뜻하기 때문에 찬성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런 마르크스의 주장은 역사 발전을 계급투쟁의 관점으로만 한정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에게는 계급들이 권력관계의 변화에 따라 소득을 분배하고 이익을 재분배하는 계급타협, 즉 모든 국민에게 인간으로써의 존엄한 삶을 제공하는 복지국가라는 또 다른 선택지가 '악마(부르주아)와의 거래'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노동자의 패배를 의미했고, 부르주아 지배(노동착취에 따른 자본축적, 로자 룩셈부르크그의 《자본의 축적》을 참조)의 영속을 의미했으며, 역사의 법칙에 어긋난 잠시동안의 도피에 불과했습니다.



마르크스가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은 기술 발전의 과실(잉여 가치)을 자본가가 독점한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술 발전이 마지막에 이르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의 노동착취와 자본축적이 불가능하다고 봤습니다. 이때에 이르면 자본축적을 위한 소수 자본가들 사이의 무한경쟁이 펼쳐지고, 부르주아를 제외한 모든 계급에서 충원될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에 의해 자본주의는 내부로부터 붕괴해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고 예언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에 대한 마르크스적 추상의 핵심에는 기술 발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발견을 공학적으로 구현하는 기술 발전이 없었으면 잉여가치를 소수 자본가의 수중에 넘겨주는 자본주의가 나올 수 없었던 것처럼, 마르크스의 추상도 기술 발전에 대한 탁월한 이해(지금에서 보면 곳곳에서 오류가 발견되는 어림짐작, 마르크스가 푸리에, 푸르동, 오언을 비판한 것과 똑같은 논리로 마르크스를 비판하면 이런 결론에 이른다)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추상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기술 발전의 마지막 단계가 작금의 세계경제를 회복세로 이끌고 있는 4차 산업혁명입니다.         





마르크스는 상상하지도 못했던 4차 산업혁명(인공지능, 나노공학, 유전공학, 로봇공학이 핵심)이 인류에게 재앙이 될지, 아니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지 의견이 분분한 것은 차치하더라도, 노동생산성을 최고로 이끌 4차 산업혁명은 모든 종류의 노동을 인공지능을 장착한 로봇으로 대체하는 것입니다. 무수히 많은 사람이 걱정하는 것처럼, 노동의 종말이 도래합니다. 고용주가 아닌 임금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임금소득이 제로가 되는 것입니다. 



특이점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초인공지능(=강한 인공지능, 인간을 넘어 신에 근접한 지능)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기능주의적 입장에서 인간의 뇌를 거의 대부분 재현해낼 '약한 인공지능'(알파고는 낮은 단계의 약한 인공지능에 속한다)과 인간의 손동작을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이 만나면 노동생산성이 최고에 이릅니다. 늙고 아프고 불평하는 인간의 불완전 노동을 로봇의 완전 노동으로 대체했기 때문에 노동생산성은 최고의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지요. 



이럴 경우 인공지능 로봇을 소유한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거의 모든 부가 독점됩니다. 부의 불평등이 거의 무한대에 이르며, 우주로 진출하는 것을 빼면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본축적이 더 이상 일어날 수 없는 단계에 이릅니다. 마르크스의 추상이 맞다면, 지그문트 바우만이 주장한 '액체자본주의'(액체근대)로 빠지지 않고, 숫적으로 최대치에 이른 가난하고 소외됐지만 공산당과 전위에 의해 교화된 프롤레타리아의 폭력혁명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조건이 완성되는 것이지요.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전문가와 미래학자들의 주장처럼 임금소득이 제로에 처하게 될 99.9999%의 국민들에게 인간으로써 존엄한 삶을 누릴 수 있는 정도의 기본소득이 제공되는 타협점(새로운 복지국가 또는 칼 폴라니와 미셀 푸코의 정치경제관에 가까운 사회의 복원)에 이르지 않고, 모든 노동착취와 자본독점을 끝장낼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런 이유로 해서 마르크스라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입니다.





필자가 마르크스 비판에 나선 것은 전 세계적으로 부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심화되고,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가 초래한 경제대침체 때문에 마르크스에게서 답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크스의 예언을 무색케 만든 북유럽 모델도 신자유주의의 맹공 앞에 겨우겨우 명백을 유지하는 처지로 내몰렸고, 부의 불평등을 극대화할 4차 산업혁명까지 목전에 도래했으니 마르크스로부터 답을 찾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칼 폴라니, 한나 아렌트, 울리히 벡, 지그문트 바우만, 토마 피케티로 이어져온 마르크스 비판에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와 로버트 라이시의 《자본주의를 구하라》를 더하면 새로운 복지국가나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경제가 다시 사회 안으로 들어온 세상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인류에게 새로운 각성과 성찰을 불러올 수도 있으며, 기술 발전에 종속되지 않는 또 다른 세상의 도래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본과 소득에 대한 누진적 세율 인상을 전제로 한 기본소득의 도입은,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일자리 창출과 맞물려 돌아갈 수 있다면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보입니다. 계속될 글에서 이에 대해 다루겠지만, 양질의 일자리 창출(프롤레타리아 혁명에 반한다!)로 소득의 분배를 이룩할 문재인 정부에 이어 부의 재분배에 성공해야 할 다음 정부에서는 기본소득의 도입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내년의 지방선거에서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견인할 민주당의 압승은 필수라고 할 수 있으며, 이재명의 경기지사(또는 서울시장) 출마는 안희정의 중앙정치 복귀와 함께 환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념을 말하지 않고 상식과 원칙, 정의의 실현(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말하는 문재인 정부의 성공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그것이 다음, 그 다음의 정부까지 이어지지 않으면 이명박근헤 9년의 악몽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깨어난 시민들이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조중동과 자유한국당으로 대표되는 보수우파에도 꼴통이 있는 것처럼 진보좌파에도 꼴통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노무현의 좌절이 보수우파의 맹공보다는 진보좌파의 공격에서 비롯됐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노동조합에도 보수우파가 있으며, 산업자본주의와 금융자본주의의 기득권에 편입된 사례로 많습니다. 처참한 실패로 끝났지만 신좌파의 68혁명이 양쪽을 모두 비판한 것도 이 때문이었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허니빳다 2017.06.25 02:42

    작금의 상황을 보면 우리나라도 북유럽의 형태를 따라갈것 처럼 보입니다. 차이점은 북유럽처럼 우리보단 오래 성숙된 시민의식에 의해서는 아닌것 같고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 좋던 싫던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팩트를 어쩔 수 없이 접하면서 자연적으로 이전의 조작된 정보에 잘 안 속게 되다 보니 그런것 같습니다.

    과정이 어떻든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소위 "수구꼴통"들이 설 자리는 점점 더 없어지겠고요. 다만 말씀하신 수구좌파들이 문제인데 얘네들이 주류로 못갈지언정 일정 부분 점유율은 유지할 것 같습니다. 사람이란게 항상 옳고 그름으로만 접근하는거 아니니까요.

    맑스야 비참하게 갔지만 그 이후 시대에 그 달콤함이 큰 반향을 일으켰듯이 지금 시대에 완전히 역행하는 맑스같은 헛소리에 여전히 달콤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음은 어쩔 수가 없을것 같고요. 다만 저 "수구꼴통" 세력이 아직도 매우 견조한데 저 세력이 힘을 잃어가는 과정에서 수구좌파들이 그 일정 비율을 유지하는 것을 이용해 훼방을 놓아서 다시 "수구꼴통"들이 집권하는건 정말 많은 사람들이 막아야 할것 같습니다. 저는 그래서 수구좌파를 견제하고 있습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수구좌파는 기독교와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 같은 종자들로 보입니다. 좋다 나쁘다의 의미는 아닙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나 신천지는 무교나 불교나 타종교는 접근 안합니다. 오로지 기독교에 접근해서 신자들을 빼갑니다. 지들 입장에서는 무교나 불교신자를 빼가는 것보다 훨씬 수월한 방법을 택한거겠지요. 방법론에서야 문제가 없지만 종교나 정치에서는 이런 편법은 대의명분에 정당성이 없어지므로 절대 해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그런데 수구좌파들이 저런짓을 합니다. 리버럴이 압도적으로 수구꼴통을 제압했을 때야 애교로 봐 줄 수 있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봅니다. 어떻게 보면 한 동안은 "수구꼴통" 보다 더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다양한 루트로 견제할겁니다. 알아서 죽어가는 "수구꼴통"보다 내부에서 스멀스멀 살아나면서 좀먹으려 하는 수구좌파를 말입니다.

    • 늙은도령 2017.06.25 18:33 신고

      수구꼴통은 제거돼야 할 대상입니다.
      수구좌파도 이제는 정신차려야 합니다.
      그들은 변화한 세상에 적응해야 합니다.
      촛불혁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진보좌파들도 거듭나야 합니다.
      마르크스의 좋은 점만 가져와야지 그의 주장을 교조적으로 추종하면 답이 없습니다.

  2. 세나 2017.06.25 19:07

    기존복지를 삭제 및 대체하는 방식으로 기본소득제를 도입한 핀란드 방식은 진정한 기본소득제가 아닙니다. 재벌해체하고 주요산업 국유화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기본소득제 도입한 베네수엘라 방식이 진짜 기본소득제죠.. 한국도 베네수엘라 방식의 기반소득제를 도입해서 아시아의 베네수엘라가 되어야 합니다.


개인적인 선호와 관점에 따라 다르겠지만, 오늘의 내용만 놓고 볼 때 jtbc의 썰전보다 MBN의 판도라가 재미있었던 것은 오늘이 처음인 것 같습니다. tvn의 '알쓸신잡'을 보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듯이, 최근에 들어 연예인병(또는 왕자병) 증세를 아주 조금 보여주었던 유시민 작가가 지난주 방송에서 강경화 후보자를 비판한 방식과 단어 선정에 대해 사과한 것으로 시작한 오늘의 썰전보다 수구꼴통에 가까웠던 차명진이 '액체민주주의'를 언급한 오늘의 판도라가 객인적으로는 재미있었습니다. 





칸트식으로 말하면 선험적 인식과 경험적 인식의 종합적인 판단력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주는 유시민의 썰전과 최근에 들어 놀라운 발전을 보여주고 있는 정청래의 판도라가 비슷한 수준을 보여준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반발할 것입니다. 저 또한 그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썰전의 시청소감은 글로 옮기면서도 판도라에 대해서는 단 한 편의 글로 쓰지 않았습니다. 유시민의 지혜와 경험이 돋보이는 썰전은 시청할 가치가 충분한 프로그램이어서 글의 재료로 활용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에 비해 차명진이 '액체민주주의'를 언급한 오늘을 제외하면 판도라의 내용들은 글의 재료로 활용할 만한 가치가 거의 없었습니다. 차명진이 말한 '액체민주주의'는 지난 1월 1일에 타계한 지그문트 바우만의 '액체근대'ㅡ마르크스의 예언처럼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무너져 공기 중으로 사라지지 않고, 어떤 형태로든 변형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곳으로도 스며들 수 있는 액체의 특성을 띠게 되면서 자본주의의 생명력이 더욱 강해졌다는 의미ㅡ란 개념에서 파생된 것으로, 엘리트주의적 성격이 강한 대의민주주의에서 시민의 참여가 늘어난 직접민주주의(기술 발전과 함께, 문재인 대통령이 추진하려는 지방분권 개헌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로 가는 중간단계의 참여민주주의로 해석해도 무방합니다. 



참여민주주의라는 개념은 미국의 68혁명(유럽과 미국의 68혁명은 기성체제에 대한 반발을 빼면 많은 면에서 다르다)을 주도했던 신좌파 대학생들이 꿈꾸었던 이상향으로 당시에는 이론적 성취가 미약했기 때문에 참담한 실패로 끝났지만, 그 이후의 후속연구와 경험들로 인해 상당한 진전을 보여주었고,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와 박근혜 탄핵찬성 촛불집회를 관통했던 '시민주권 행동주의'로 발전했습니다. 보수 정치인인 차명진으로써는 진보적 표현인 '시민주권 행동주의'를 사용하기 싫어서 보수적 표현인 '액체민주주의'를 선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조기숙 교수가 노사모가 최초의 신좌파이며,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는 몰랐지만 정치학적으로 보면 신좌파에 해당한다는 주장도 여기에서 나온 것입니다. 미국적 시각이 많이 반영된 조기숙 교수의 주장에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가 신좌파의 참여민주주의에 뿌리를 두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신좌파는 보수적인 구좌파와 시장친화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보수우파를 모두 다 비판했기 때문에 관련 연구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으며, 이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생전에는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대한민국은 68혁명의 에로스효과ㅡ'해방을 향한 본능적 욕구(에로스)에 대한 자각, 혹은 이 자각이 특정한 사회적 조건이나 시공간을 뛰어넘어 동시다발적으로 공명을 일으키는 현상'으로, 조지 카치아피카스의 《신좌파의 상상력》과, 《파워엘리트》의 저자인 C.라이트밀즈와 함께 신좌파에게 가장 많은 영감을 준 마르쿠제의 《반혁명과 반역》을 참조할 것ㅡ에서 벗어나 있었기에 신좌파라는 개념이 생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참여민주주의를 현실정치에 접목한 최초의 대통령이 노무현이었다는 사실입니다.



대단히 짧았지만 이때의 경험이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씨앗이 될 수 있었으며,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수없이 많은 시민들이 참여민주주의에 대해 다시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해주었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대통령을 뽑았다 해도 지속적인 지지로 뒷받침해주지 않으면 뜻하는 바를 제대로 실현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며, 지켜주지 못한 이때의 죄책감과 뒤늦은 성찰이 미국산 쇠고기수입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를 거쳐 박근혜 탄핵 찬성 촛불집회로 폭발할 수 있었습니다. 



차명진이 오늘의 판도라에서 '액체민주주의'를 말한 것에 비해, 유시민은 오늘의 썰전에서 미국인들이 트럼프를 탄핵하려면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상원의원들을 반트럼프와 친트럼프로 나눠야 한다고 말했지만, 저였다면 최소한 6개월 정도의 촛불집회를 열어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새누리당을 친박과 반박으로 나눈 것도 촛불집회의 영향력이었다면, 원인과 결과가 뒤바뀐 유시민의 주장보다는 저의 주장이 조금은 더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이 최고로 앞선 민주주의의 대표국가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것도 4개월에 걸친 비폭력 촛불집회로 박근혜의 구속을 이끌어냈고 어떤 혁명도 이루지 못한 정권교체라는 신기원까지 이루었기 때문이기에, 유시민 작가가 촛불집회를 제시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최소한 저에 한해서는, '액체민주주의'와 기술 발전의 결과인 정당 해체(또는 네트워크 정당으로의 전환)를 다룬 오늘의 판도라가 오늘의 썰전보다 흥미롭게 다가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로써 판도라를 하차하게 된 차명진이 시청자들, 즉 미래의 유권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액체민주주의'를 들고나왔을 수도 있지만, 보수 성향의 정치인과 학자들도 촛불집회에서 폭발적으로 발현된 '시민주권 행동주의'에 얼마나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내용만 놓고 볼 때, 신좌파의 68혁명과 '시민주권 행동주의'의 촛불집회에 대한 공부에 집중하고 있는 저에게는 썰전보다 판도라가 좋았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토마토 2017.06.16 05:56

    문재인만세! 대한민국만세!
    적폐의 큰뿌리들이 불살라지고, 유능한인재들이 그자리를 매꿨으면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6.16 14:00 신고

      능력있는 인물들이 필요합니다.
      청산과 개혁을 위해서는 능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6.16 08:50 신고

    판도라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군요
    한번 봐야겠습니다 ㅋ

    • 늙은도령 2017.06.16 14:02 신고

      썰전보다는 많이 떨어지지만 최근에 들어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3. merryjanet 2017.06.16 13:05

    안그래도 가끔씩..안 볼 수는 없고, "썰전"이 지겨울 때가 많았었는데,
    그때마다 동시간에 하는 "판도라"로 채널이 돌아가고 했었지요.
    어제도 마찬가지로, 중간 쯤에 돌렸더니만,
    정청래 의원은 없고, 박주민 의원이 대신하고 있어서 그만 끝까지 "판도라"를 봤습니다.
    도령님 염려처럼, 어쩌자고 유시민 작가가 방송에 저렇게 올인하다시피 자주 나오는지 모르겠습니다.
    "알뜰신잡"이던가.. 하는 예능 나영석 PD의 프로는 잠깐 스치듯 봤는데 완전 실망이었구요.

    잠깐의 외도로 믿겠습니다.
    유시민 작가님,
    당신의 능력과 지식을 그렇게 가벼이 낭비하지 마십시요.
    어용지식인을 자처하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간절히 요망했던 그 모습을 마음에 심고
    어용시민으로 문재인 정권을 목숨처럼 지지하겠다는 결심을 한 국민들을 상기하시고
    어서 제자리로 돌아오시길 빌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7.06.16 14:03 신고

      유시민이 자신의 자유를 만끽하는 것 같습니다.
      그의 효용가치는 정치에 있는데 그게 쉽지만은 아는가 봅니다.
      지금의 생활에 만족하는 것 같은데... 문재인 정부의 성공을 이룬 다음에 방송에 전념해도 될 것 같습니다.
      그의 능력과 자질, 경험이 너무 아쉽기만 하네요.

  4. 참교육 2017.06.16 18:20 신고

    도령님은 부지런도 하십니다
    언제 글쓰시고 또 이런 판도라같은...관심이 많으시네요

    • 늙은도령 2017.06.16 22:35 신고

      저는 멀티플레이를 오랫동안 연습했습니다.
      책을 읽으며 TV도 보고, 글을 쓰며 팟캐스트를 듣기도 합니다.
      깨어있는 시간이 남들보다 적기 때문에 최대한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 한다는 점에서 15년 넘게 연습한 결과입니다^^

  5. 한비자 2017.06.17 02:38

    먹고사느라 정치나 책읽기에 멀리어진 저 같은 소시민조차 다시 정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개개인의 희망과 노력이 발하기 위해서 찾아낸 답이 맑은 정치에 있다는 결론이지 않나 합니다.

    제 주변은 나름의 기득권이라 볼수 있으나, 대다수 사람이 살만한 세상이 제 아이에게도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포기가 쉽습니다.
    저도 이럴때 누군가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욕심도 있으나, 권력도 진공을 허용하지 않다듯이 들어찬 공기는
    깨끗하던 오염되었건 어떤 힘에 의해 빠져야 다른 공기가 들어찰 수 있습니다.
    일정 부류가 모이게되면, 너무 더 잘난놈은 시기하기 마련입니다. 그에게 정치가 어려운 이유이며, 원한다한들 되는것도 아니라봅니다.
    태공망처럼 원없이 낚시하게 놔둡시다.

    나은 구관들이 있을 수 있으나, 나름의 경험과 깊은 고뇌를 통해 현재 인사가 진행되고 있지 않나 합니다.
    삐끗하는것도 인간사의 당연한 일상이니 흐르는 한강물에 잡것들이 돌멩이 좀 던진다고 일희일비 할 이유도 없다고 봅니다.

    사악한 개누리당 핏줄들이 설치는 꼬라지를 보면, 분노가 치밀지만, 누가 있었으면 하나 때와 인연이 되면 운명처럼
    다시 제자리를 찾아 오실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놔둡시다. 그분이나 그분이나나 충분히 잘하고 있습니다.

    결론만 보면 친일잔당들이 대한민국의 안녕과 평화는 생각한 적 단한번 없으니, 풀이과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할 수 밖엔 없는듯 합니다.

    더 성공한 정부를 원하는 바램이야 모두 동일합니다. 과정상 문제가 안생긴다면, 인간세상이 아닙니다.
    후보검증을 더 명확히 하여, debugging 을 해야 더 흠결없는 정부가 될것입니다. 집중할 수 있도록 국민이 지켜주고 지원해주면 됩니다.
    저는 큰 흐름에서 이미 수구꼴통들은 사망했다고 봅니다. 우리도 계속해서 성장해야 겠지만 말입니다.
    다소간 실망한 일이 생기더라도, 수정보완 중이니 그저 믿고 지켜줍시다. 실수가 생긴다면 Cool 하게 인정하고 바로잡으면 됩니다.


6.10항쟁이 정점을 찍었던 1987년 7월 9일, 이한열의 영정사진을 들고 출발한 선발대가 시청 앞 분수대에 도착했다는 소식이 후발대의 마지막 학생에게까지 전해졌습니다. 국민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전두환의 광기를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던 분노의 후발대는 아직 출발도 하지 못했는데 박종철과 이한열의 이름으로 하나 된 염원이 백만 번의 전달을 통해 시청 앞까지 어어졌습니다. 연세대 학생회관에서 시청 앞 분수대까지 단 하나의 단어만이 살아서 떠돌았습니다.


민주주의!





박종철과 이한열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었고, 살아있는 자의 부채였고, 싸워야 하는 이유이자 의무였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할아버지와 할머니부터, 중고등학생들과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아이까지, 계층과 세대와 지역을 뛰어넘은 그들은 군부독재의 살인행위를 더 이상의 받아들일 수 없었고, 대학생들의 머리를 향해 발사되는 독재살인마의 최루탄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었으며, 그래서 오직 하나만을 외쳤습니다.


민주주의!


그날에는 가난이나 부를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느 누구도 이념이나 지역을 얘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가난해서 부끄럽지 않았고, 부유해서 자랑하지 않았습니다. 두 대학생의 죽음에는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동료와 선후배, 시민들의 피와 땀, 희생과 죽음이 강물처럼 흘렀고,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이 해일처럼 일어났습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지 않아도 행진은 멈추지 않았고, 어디서도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민주주의!



당시의 우리는 자유의 이름으로 말할 수 있기를 바랐고, 평등의 이름으로 선택할 수 있기를 바랐고, 정의와 박애의 이름으로 모든 차별을 극복할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헌법에 나온대로 국민이 모든 권력의 원천이고 나라의 주인이라면, 두 대학생의 죽음에 담겨있는 시민주권과 역사의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은 이름 모를 약자들의 역사를 되살리고 싶었습니다. 난무하는 최루탄과 무력진압을 뚫고서 단 하나의 단어를 외쳤습니다.


민주주의! 





그리고 30년이 흘렀습니다. 6.10항쟁은 촛불혁명으로 되살아났고, 우리 모두는 공기처럼 주어진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공정한 출발과 존엄한 삶을 보장하는 평등은 좁힐 수 없는 불평등으로 대체됐고, 공존과 관용은 무한경쟁에 자리를 내주었지만, 우리는 그것마저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날에는 시청 앞 분수대에 이른 선발대의 외침이 백만 명을 거쳐 출발도 못한 후발대의 마지막 한 명에게 전해졌지만, 오늘에는 문재인 대통령의 기념사로 전국에 퍼져나갔습니다.



그날에는 박정희 유신독재의 복사판인 전두환 군부독재의 ‘4.13 호헌조치’를 민주주의로 대체했지만, 오늘에는 촛불시민의 힘으로 독재자의 딸을 몰아냈으며 민주정부 3기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날에는 국민이 나라의 주인임을 보증하고 민주주의를 작동하게 하는 대통령직선제와 87헌법을 받아냈다면, 오늘에는 '민주주의를 형식으로 만들어버린 극단의 불평등을 해결하겠다'는 시민주권의 목적을 문재인 대통령의 입을 빌어 분명하게 천명했습니다.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주역이었으며, 《신좌파의 상상력》의 저자인 조지 카치아피카스는 한국의 촛불집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대중들이 역사를 만든다'라는 말은 한동안 각국 정치인들이 즐겨 쓰는 공허한 수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촛불시위를 불러온 십대 중고등학생들은 1960년대 당시의 신좌파들이 그랬듯이 평범한 대중들의 집합적 지성이 지배엘리트들의 지성보다 낫다는 것을 몸소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이 역사를 만든다'라는 단순한 진리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었다."



그리고 마침내 87혁명의 후예들인 촛불시민들은 지난 4개월 간의 시민혁명을 통해 전 세계 민주주의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이한열과 박종철이 목숨으로 찾고자 했던 자유와 동일합니다. 역사는 때로 퇴행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바로잡는 것은 언제나 깨어있고 행동하는 시민이었습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주인인 사회체제이자 행동규범입니다. 촛불혁명으로 되살아난 6.10항쟁의 주인공도 2017년의 여러분들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wookey 2017.06.10 18:35

    죄송합니다만 문장 첫 부분 사실과 다릅니다. 이한열 열사는 6월 9일 직격 최루탄에 맞아 한 달 후 돌아가셨습니다. 이한열 열사 장례식은 7월쯤이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6.10 18:48 신고

      제 기억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한열이가 최루탄에 직격됐을 때 저는 연대 대학원생이었습니다.
      한열이를 부축했던 학생이 제 후배였고요.
      동생도 당시에 연대를 다녔었고요.
      6.10일은 일종의 상징입니다.
      정확한 날짜는 검색을 하면 알 수 있겠지만 큰 문제가 될 것 같지는 않지만 확인해보고 바꿀게요.
      한열이가 쓰러지고 나서 너무 정신없이 보냈던 날들이라 날짜에 대한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겠지요.


  2. 참교육 2017.06.10 19:48 신고

    미완의 혁명 6. 10은 촛불로 이어져 주궈자가 주인되는 세상 만들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6.10 20:09 신고

      그렇게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촛불혁명은 전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시민혁명인데,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시민의 역량이 그만큼 커졌기 때문입니다.
      저는 희망적으로 봅니다.

  3. *저녁노을* 2017.06.12 04:58 신고

    이제 세상이 좀 바뀌려나?
    순고한 생명...헛되지 않았음 합니다

    잘 보고가요

  4. 공수래공수거 2017.06.12 08:24 신고

    역사에 길이 기억될것입니다
    2016,2017년의 촛불과 더불어..

  5. 토마토 2017.06.16 06:11

    멋진 대한민국시민입니다. 자랑스럽고 자랑스럽습니다.

 

지독할 정도로 자유주의적 개인주의 국가인 미국에서조차 동성결혼합법화가 연방대법원을 통과하기까지 60년이 걸렸습니다. 그 이유는 미국의 또 다른 축이 기독교(자본주의와 국가권력에 친화적인 청교도정신으로 대표된다)이기 때문입니다. 트럼프가 여성 비하와 혐오를 남발하고 동성애자를 폄훼해도 대통령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보수적인 기독교의 영향력이 막강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우파를 다룬 책들을 보면 동성애와 낙태 반대는 핵심 주제에서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68혁명을 주도한 유럽의 신좌파처럼, 평등과 차이를 억압하는 일체의 차별에 반대하기 때문에 동성애에 열려있었던 미국의 신좌파(제임스 밀러의 《민주주의는 거리에 있다》를 보라)가 진보정치의 핵심으로 자리했다면 동성결혼합법화가 보다 빠르게 통과될 것입니다. 50~60년대 미국을 관통했던 인권운동 활동가와 수많은 페미니스트들의 치열한 차별반대와 양성평등운동이 없었다면 오바마 정부에서도 보수적인 연방대법원의 벽을 넘지 못했을 것입니다.  

 

 

유교의 영향력이 남아있고, 가부장적인 수구세력(자유한국당과 조중동이 핵심)과 대형교회의 카르텔이 막강하고, 노무현을 빼면 신좌파(진보적 자유주의)에 속하는 대통령이 한 명도 없었던 한국적 상황을 고려하면 동성결혼합법화는 상당히 힘겨운 일입니다. 500만 명이 넘는 장애인(결혼은커녕 연애도 못하는 분들이 수두룩하다!)들이 수십 년 동안 요구하고 투쟁했던 차별금지법조차 국회의 벽을 넘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단히 진보적인 의제인 동성결혼합법화에 찬성하라며 문재인을 공격한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단체의 행태에는 도저히 동의할 수 없습니다. 

 

 

비정규직 문제를 민주정부 10년에 뒤집어씌운 심상정의 주장도 터무니없을 정도로 과장된 것임에도, 이번에는 홍준표의 교활함은 나둔 채 문재인을 공격하는 것까지 더하면 한심하고 권위적인 구좌파와의 완전한 단절에 전력을 다하고 싶을 뿐입니다. 현실을 뒤바꿀 의제설정 능력과 정치적인 힘도 없으면서, 게다가 홍준표의 유세에는 난입하지도 못하면서 문재인만 공격하는 모습에서 동성결혼합법화에 동의할 국민의 수는 더욱 줄어들 것입니다.

 

 

노무현의 개혁입법이 좌절로 끝난 것도 내부에 총질하는 이런 구좌파의 폭력적인 행태에서 나온 것인데, 차별금지법의 국회 통과마저 어렵게 만드는 이들의 꼴통 짓거리는 억압받는 국민들이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와 일부 시민단체가 대표하는 동성애자(성소수자)만이 아니라는 사실에서 더욱 분노를 일으키게 만듭니다. 필립스의 말처럼, 억압받는 자들이 좋은 행동을 독점하는 것도 아니며, 희생자가 되는 것이 권리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민주주의에서 차이를 인정하고 평등한 권리를 제공하기 위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은 '폭력을 배제하면, 차이에서 나오는 갈등이 시민의 권리 증진과 인류의 해방에 도움이 되는 성과물이 나온다'는 경험과 믿음의 산물에서 나온 것입니다. 필자는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에 찬성하지만, 피아도 구분하지 못하는 이런 폭력적이고 일방적인 방식에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노무현으로도 모자라 문재인도 죽이려는 진보매체들의 선정적이고 악의적인 보도에 놀아나는 것도 한심할 따름입니다.  

 

 

노무현의 성공을 좌절로 만든 것들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에 민주노총과 일부 시민단체들의 기회주의적이고 폭력적인 행태에 강력한 반대의 뜻을 표합니다. 동성결혼합법화는 여론은 물론, 국회와 헌재의 벽을 넘어야 합니다. 그것은 철저하게 정치적인 행위이며, 나와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의 숫자를 늘릴 때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모든 성소수자들이 심상정에게 투표해 정권을 잡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보다 현명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홍준표의 교활한 질문에 군대에서의 동성애는 반대하지만(또는 찬성하지 않지만) 그들이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문재인을 찾아가서 깽판이나 놓는 어리석고 폭력적인 작태에 동의할 국민이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민주노총과 동성애 시민단체가 모든 성소수자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것과는 상관없이 목적이 옳고 숭고하다 해도 수단이 폭력적인데 그것에 찬성할 사람들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 사이에는 생각보다 넓은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노무현의 참여정부가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법안을 준비했다가 수구세력과 종교계의 연합공격에 좌절하면서 확인한 것입니다. 그 후에 수구세력과 기독교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은 이명박근혜의 9년이 이어졌습니다. 그 기간 동안 공간이 더욱 넓어졌는지, 아니면 많이 줄어들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는 현실의 공간을 폭력적인 방식으로 뛰어넘을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이름없음 2017.04.27 17:09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6490
    문 후보측 공보팀에서도 이미 "멱살 잡혔다는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고, 여러 언론에서도 오보라고 밝혔음에도불구하고 '문재인의 멱살을 잡았다'라고 표현을 하며, 성소수자 및 단체들의 시위를 '깽판', '폭력', '꼴통짓거리' 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니, 늙은도령님께선 다음/네이버 댓글 등에서 볼 수 있는 '문재인을 맹목적으로 지지하는 광신도'들과 다를바가 없어보입니다. 일명 '문빠'라 하지요. 이들의 진실여부를 확인하지 않고, 자신의 지지 후보의 잘잘못을 객관적으로 비판하지 않는 모습은 '박사모'와 다를 바가 없어보입니다.
    일반적으로 폭력은 잘못된 수단이라는 것에 동의하지만, '극도로 억압된 사람들'이 일으키는 폭력을 무조건 '틀렸다'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것은 역사를 통해 이미 증명되지 않았습니까? 한 국가의 대통령 후보가 국민 모두가 보는 방송에 나와서 일부 집단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 드는데, 그것에 대해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홍준표는 비판할 가치조차 없기때문에 한마디로 무시하는 것이고, 문재인씨는 대통령 후보로서 인정하기때문에 정당한 사과를 요구하는 겁니다.
    그리고 사실을 왜곡한 전제 위에서, 상당히 주관적인 감정(이 감정은 '늙은 도령님이 찬양하는 문재인씨'가 비판받는 상황을 참을 수가 없어서 튀어나온 감정으로 보입니다)으로 현실을 풀이하는 것은 상당히 '폭력'적이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참고로 늙은 도령님이 쓴 글은 오보에 기초한 글이기에 지워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편협한 시각에 치우쳐 쓴 주관적인 글로 보이기에 그냥 두셔도 됩니다. 하지만 적어도 진실 여부는 표기하는게 양심있는 지식인으로서 할일이라 봅니다.

    • 늙은도령 2017.04.27 18:21 신고

      멱살을 잡았다는 것이 오보라면 그것은 바로잡으면 됩니다.
      그것을 확인하지 못한 것은 저의 잘못이지만 언론도 정정보도를 하듯이 저도 그러면 됩니다.

      그리고저는 문빠 맞습니다.
      그것을 숨길 생각도 없고 부정할 생각도 없습니다.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것이 그런 것을 숨겼기 때문이라는 자각을 오래전부터 해왔고, 친노라는 사실을 단 한 번도 숨긴 적이 없기 때문에 문빠 맞습니다.
      그의 집권이 대한민국을 바로잡는데 최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일부 동성애자의 폭력을 옹호할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오랫동안 억압받은 사람들이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 역사적으로 인정됐다는 훼궤한 논리는 폭력 때문에 끝내는 실패했던 68혁명의 시대로 돌아가셔서 하십시오.
      민주주의란 폭력을 담론으로 대체한 것이지, 폭력이나 총구에서 권력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깽판이란 단어는 사진으로 충분히 설명되고요.
      오랫동안 억압받았다고 폭력이 인정된다면 계속해서 그렇게 하시던지요.

      성소수자들이 당신과 똑같을 것이라는 생각에는 절대로 동의하지 못하고요.
      제 주변에도 성소수자들이 있지만 그들은 폭력적이지 않습니다.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려 하지도 않고요.
      자신의 정체성에 자신이 있다면 폭력적일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는 성소수자말고도 억압과 착취의 대상은 수두룩합니다.
      문재인이 군대에서의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자신의 견해를 밝힐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지, 그렇지 않다면 독재나 권위주의로 회귀해야지요.
      성소수자로서 문재인을 지지할 수 없다면 다른 후보에게 투표하면 되는 것이지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 것은 아닙니다.

      논리적 비약으로 넘쳐나는 당신의 댓글로는 누구도 설득하지 못합니다.
      동성애는 인류가 사피엔스로 진입한 초창기부터 항상 존재한 것입니다.
      그리스에서는 동성애가 성공한 시민의 상징이었고요.
      그러던 것이 농경사회를 거쳐 중세와 봉건시대, 기독교의 암흑시대,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를 거치면서 동성애가 억압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발전, 성인남성 위주의 정의론과 정치철학에 대해 치열하게 도전한 페미니즘의 활약 덕분에 인권과 시민권이 강화되면서 동성애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고요.

      미국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됐지만, 독일 등에서는 아직도 합법화까지는 나가지 못했습니다.
      동성결혼합법화는 아직도 여러 나라에서 정치적 이슈이지만, 그것을 폭력적으로 실현하지는 않습니다.
      현실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십시오.
      그리고 현명해지십시오.
      신좌파가,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이 동성결혼합법화에 제일 많이 열려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2. 에쏘 2017.04.27 17:59

    일명 "보수"라고 하는 쪽에는 가만 있으면서 경청할 수 있는 사람에겐 저러는 거.. 솔직히 비겁합니다. 소수라고 해서 다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죠. 실제로는 여러 성소수자 분들이 저 공격을 보며 더 상처를 받았다고 얘기하고 있죠. 그들은 직접 겪는 일이기에 차별금지와 동성혼 합법화 사이에 큰 갭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어요. 그래서 아쉽기는 해도 차별 금지법만이라도 제대로 정착시킨다면 한걸음 더 나아간 것이라고 생각하죠. 그 중 소수지만 여전히 문재인을 지지한다고 의견을 밝히고도 있고요. 일명 진보라고 하며 소수자 뒤에 숨어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 구좌파라고들 하던데 노무현 때 생각해서라도 이번에는 절대 보고만 있지 않을 겁니다. 저도 차별금지법과 동성혼 합법화에 찬성하지만 저들의 방식은 매우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 늙은도령 2017.04.27 18:34 신고

      마르크스 같은 목적론자들의 공통점은 수단에서의 정의에는 무감각하다는 것입니다.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필연이라고 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마르크스를 신처럼 떠받드는 구좌파는 그의 교리에 담겨있는 권이적이고 보수적인 성향은 철저하게 부정합니다.
      공산당과 전위조직들이 권위적이고 보수적으로 흘러간 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68혁명의 신좌파들이 구좌파와 보수우익을 모두 다 비판한 것도 그들의 권위주의적 행태 때문이고요.
      심지어 엥겔스는 혁명이 권위적인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소위 우리나라의 입진보라 하는 자들의 이중적 행태는 여기서 나옵니다.
      노조와 공장 등에 가보면 위계서열이 얼마나 강한지 알 수 있는데, 자체의 민주주의는 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는 행태란 답답하기만 합니다.

  3. 이름없음 2017.04.27 18:33

    덧붙여서 말씀드리자면, 지금 이 상황의 본질은 성소수자들의 과격한(?) 시위가 아닙니다. 그 본질은 대선 유력후보인 문재인씨의 발언에 있죠. 인권변호사 출신이며, 민주당 후보인 문재인씨가 동성애문제에 대해 기존 한국사회의 '보수적 생각'만을 가지고 있을 거라 보진 않습니다. 아마 그는 성소수자 이슈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문제로써 생각하고 있을 거라 봅니다.
    그런데 왜 홍준표의 동성애 질문에 '반대한다',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말을 단번에 했을까 생각해보니, 그건 아마 자신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표 이탈을 우려해서 일 거라 짐작합니다. 아직까지 한국사회는 성소수자에게 관대하지 않습니다. 성소수자 지지는 말그대로 '소수의견'이기에, 문재인은 '다수의 눈치'를 본 것입니다. 만약 '동성애를 존중한다'고 말했다간 홍준표의 수에 말려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문재인은 줏대없는 쉬운 길을 택한 겁니다 . 마치 이전토론에서 국가보안법을 폐지가 아니라 '개정'하겠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인 것이죠. 보수표를 의식해서 소신있게 말을 하지 못하는게 바로 문재인이며, 이것이 바로 이 상황의 본질입니다.
    본질을 흐리기 위해 '폭력'을 휘두르지 마십시오.

    • 늙은도령 2017.04.27 18:39 신고

      하여간에 왜곡에는 도를 트셨네요.
      홍준표는 군대에서의 동성애를 예를 들며 문재인에게 질문했고, 문재인은 그에 대해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답을 기다렸던 홍준표가 논리적 비약으로 동성애 전체로 넘어갔는데 문재인은 그것에는 분명한 반대를 표했습니다.
      성적 지향 때문에 차별을 받는 것에는 반대한다고.
      당신은 그런 과정을 뛰어넘은 채 당신이 이용하고 싶은 것만 가지고서 논리를 펼칩니다.
      왜곡에 도를 튼 사람들이 보여주는 일반적 현상이지요.
      자신에게 유리하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그런 부류의....

  4. 한비자 2017.04.28 03:04

    이름없음님은 이름부터 찾으시는게 현명할듯

    • 늙은도령 2017.04.28 14:14 신고

      성소수자를 대표하지 않는 자들이 대표하는 것처럼 하기 때문에 이름이 없는 것이지요.

  5. 耽讀 2017.04.28 06:51 신고

    정말 황당한 것은 왜 문재인에게 달려간 것입니다.
    에이즈 운운한 홍준표에게 달려가야지.
    진보언론들도 웃깁니다.
    문재인에게 덮어씌웁니다.
    아마 이번 논란 때문에 동성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더 짙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4.28 14:16 신고

      큰 영향이 없을 것입니다.
      성소수자들의 대부분은 다른 생각을 할 것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얼마나 힘겨웠는데 저런 폭력적인 또라이들 때문에 모든 것이 무산될 수 있으니까요.
      하나하나 해결해나가면 답이 나오는데 저런 조폭 같은 자들 때문에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됩니다.

  6. 공수래공수거 2017.04.28 08:34 신고

    어떠한 이유에서건 소수자가 차별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인정해주고 이해와 배려를 해야 합니다
    그런면에서 홍준표는 정말 양아치입니다

    • 늙은도령 2017.04.28 14:17 신고

      홍준표는 죽일 놈입니다.
      하지만 거기에 놀아난 자들과 언론들도 비판받아야 합니다.
      차별금지법까지 오는 데도 정말 힘겨웠는데 이런 돌발적인 행위 때문에 몇 십 년을 후퇴하게 됩니다.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7. 허걱 2017.04.28 11:35

    참 누가 댓통이된덜 혼자 합법화시킨다고 되나요? 무슨 말도 안되는소리를 다 하고있는지. 한심스럽다..뭘 말을 잘못했다고..아직은 사회에서 받아들이지를 않는데 대통령인 한사람이 이렇게해라 한다고해서 그게 되나요? 한심한착태다..

    • 늙은도령 2017.04.28 14:20 신고

      차별금지법은 무조건 통과돼야 합니다.
      그 다음에 합법화를 논할 수 잇습니다.

  8. 삶취 2017.04.28 13:18

    홍준표 에이즈 이야기할때
    저러고도 멀쩡할까 싶었는데
    홍준표 흙탕물 옴팡 뒤집어쓴건 어이없게도 문후보님

  9. 2018.05.28 03:54

    저 때 당시를 회자하는 내용을 볼때마다 하는 소리지만 저건 성소수자들이 충분히 저런 반응 보이고도 남을 사안이었습니다. 문대통령이 처음부터 저런 스탠스를 보인 것도 아니고 12년 대선 때부터 한기총 만나기 전까지 보여준 스탠스는 명확한 동성혼 찬성까지는 아니지만 분명히 친lgbt적이었죠. 그런 이유로 lgbt인권운동 하는 사람들은 공개적으로 문대통령을 지지선언을 하고 다녔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조광수 감독이 있고요. 그리고 다른 lgbt들도 명백히 문재인 후보에 우호적인 지지세력이었죠.

    홍준표 하고는 다릅니다. 홍준표는 애초부터 반 lgbt이고 그렇기 때문에 제정신 박힌 lgbt라면 혹은 lgb지지자들인 자유주의자들 중 그 누구도 지지하지 않습니다. 애초부터요. 근데 문재인 후보는 홍준표랑은 다르게 많은 친lgbt들이 지지해줬습니다. 근데 저렇게 말하면 지금껏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열심히 믿고 지지선언 해준 사람들은 뭐가 되나요?

    문재인 후보가 태도를 바꾼건 한기총 인사들 만나고나서 입니다. 그리고 티비 토론회에서 저런 말을 하는데요.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별 문제 없는 발언이지만 보수개독들이랑 오래 싸워 온 사람들은 저 발언의 의미를 명확하게 압니다.

    "찬성하진 않지만 차별하면 안 된다." 이게 무슨 의미냐면 "동성애는 죄지만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면 안 돼" 딱 이 수준입니다.

    동성혼은 사회 합의를 거쳐야 하는 사항일 수도 있죠. 자유주의자로서 저는 이것도 인정하지 않습니다만 어쨋든 현실적으로는 그게 사실이니 거기에 큰 불만은 없습니다.

    그런데 동성애는 어떤가요? 이게 찬반할 수 있는 영역이 되나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관한 문제인데 누가 하라마라할 영역이 애초부터 아닙니다.

    욕 안 들어먹으려면 최소한 "동성혼은 아직 사회적 합의를 거치지 못 했으니 불가능하지만 동성애자들을 차별하거나 탄압해서는 안 된다." 정도는 나와줘야 성소수자들 입장에서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정도로 반응 할 수 있는겁니다.

    저 말은 기독교 신자들도 점잖게 하는 말입니다. 저 말의 의도는 뭐냐면 "어쨋든 너네들 행위는 죄니까 전환치료를 받아서 정죄해야 한다." 이겁니다. 이건 뭐냐면 성소수자들 교회 데리고 가서 가둬놓고 전환치료 하는걸 정당화 시키는 겁니다.

    권위 있는 의료기구나 국제보건기구 중에 전환치료 인정하는 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청소년 상대로는 아예 불법이고 성인 상대로는 아무도 안 가니까 결국 문 닫습니다.

    이 전환치료가 무어냐면 6~70년대에 주로 성소수자들 데리고가서 치료하겠다고 깝치던건데 여기 갔다가 정신병자 되거나 자살한 사람 엄청나게 많습니다. 일단 들어간 사람 중에 제정신으로 나온 사람 거의 없어요.

    "찬성하지 않지만 차별하지 않겠다."의 내의는 "죄는 미워하되 죄인인 너는 미워하지 않겠지만 어쨋든 너는 정죄를 받아야 해"이고 그 저의는 아무런 과학적, 실증적 결과도 못 만들어내는, 정상적인 국가들의 보건기구 혹은 국제기구 어디에서도 인정 못 받는 신병치료하러 무당 찾아가는 수준의 저질 전환치료를 정당화하기 위해 착한척 하면서 내뱉는 말입니다.

    무슨 개신교 목사들한테 대본 받아서 읊는것 같네요.

    상황이 이런데 저 사람들이 저런 항의하면 안 되나요?

    문재인 후보 지지자들은 홍준표한테는 아무말도 안 하고 문재인한테만 뭐라한다고 지금도 불만 많던데. 홍준표랑은 다릅니다. 홍준표는 애초부터 손 잡은 적이 없기 때문에 뒷통수 맞은게 아니거든요.

    이런 상황을 잘 모르시기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믿겠습니다. 만약 알고도 하는 말이라면... 인생 그렇게 살면 안 됩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lgbt의 대부분은 여전히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만 일단 당시에 저 사람들의 저런 반응은 충분히 나오고 남을 일이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8.05.28 04:12 신고

      페미니즘을 의학적으로 접근한 책도 많으니 그런 것부터 보십시오.
      님의 주장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네요.
      트렌스섹슈얼, 우리나라에서는 트랜스젠더로 불리는 사람들도 세분화되니 그런 기본적인 것부터 공부하고요.
      저에게 되지도 않은 논리를 펼치시면 본전도 못찾으니 그런 줄 아시고요.
      의학의 발전이 페미니즘을 엄청나게 다양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만 아십시오.
      님처럼 찌라시 수준의 얘기는 대형교회에나 가서 하세요.

    • 2018.05.28 12:52

      전환치료라는건 외과적 조치가 아니라 동성애자를 이성애자로 만드는걸 얘기합니다. 그러니 트랜스젠더 하고는 별 관련 없는 문제입니다. 아 물론 개신교 근본주의 계열의 사람들은 트랜스젠더에게도 전환치료를 시도 합니다.아무래도 트랜스젠더 치료랑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그거 하고는 다릅니다. 다른 성별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으니 수술과 호르몬 요법을 통해 이성으로 전환하는건 의학적으로 근거 있고 비윤리적인 것도 아니지요. 제가 말하는 전환치료는 그게 아닙니다. 네이버에 검색만 해도 탈동성애 운운하는 개신교 계열들 목소리가 바로 나오는데 찌라시라구요? 전혀 찌라시 아닙니다. 해외 사례도 있고요. 그냥 구글링만 해도 나옵니다. 물론 한국에선 전환치료소라는걸 운영하기 힘들거에요. 성소수자에 대한 과학적 연구와 인권 개념이 서양에서 정립된 이후에야 한국에선 겨우 논의가 시작됐으니까요. 또한 전환치료라는게 이미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나 다 개박살 난 상황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찬성은 안 하지만 차별하지 않겠다."라는건 지극히 보수개신교계의 입장을 대변하는 말입니다.

      물론 저도 문재인 대통령이 저 말을 했다고 전환치료를 긍정했다고는 생각 안 합니다. 다만 저 답변은 정확히 개신교 입맛에 딱 맞는 답변이란 소리죠.

      그리고 저도 본문에 나온 자들이 너무 폭력적이었다는건 동의합니다. 그러니 저런 반응을 보일만한 일이었다고 말한건 취소하겠습니다. 새벽에 졸린 상태로 웹서핑하면서 쓰다보니 말을 이상하게 했네요. 하지만 성소수자들 입장에서 반발할만한 일인건 맞다고 생각합니다.


공약과 정책 관련 토론이 진행될 수 있도록 만든 JTBC 대선후보 초청토론은 왜 문재인이 준비된 후보인지를 말해준 토론이었습니다. 대통령 후보로 나온다는 것이 국가적 수치인 홍준표는 제외한다고 하더라도, 민간이 일자리 창출을 주도해야 하며 정부는 뒷받침해야 한다는 안철수와 유승민의 주장에 이명박근혜의 신자유주의 기조와 무엇이 다르냐며 민간을 압박하는 동시에 정부가 주도해야 한다는 문재인의 주장은 정확할 뿐더러, 노동의 소멸을 가져올 4차 산업혁명의 충격을 최소화할 수 있는 유일한 대비책이었습니다. 





1945년 이후 독일에서 원형(질서자유주의)이 등장했다가 영국(대처-하이에크)과 미국(레이건-프리드먼), 독일(슈뢰더-프라이부르크학파)에서 본격화돼 지금까지 이어져온 신자유주의 역사란 대내외적으로 국민의 안전과 행복을 책임져야 할 국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민간의 역할을 최대화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그리스의 민주주의와 근대적 자유주의의 조합(절차적 민주주의의 구현)에서 출발했고, 공화주의와 공동체주의 등에 의해 보완된 국민국가가 본연의 역할(실질적 민주주의의 구현)을 하지 못한 채 극소수 지배엘리트의 이익만 대변하는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경제학과 경제사, 정치철학과 정치사에 가장 많은 시간을 투자해온 필자가 수없이 많은 글에서 대한민국이 신자유주의적 헬조선에서 벗어나려면 정치적으로는 자유주의 정의론에 기반해야 하며, 경제적으로는 진보적 가치에 기반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만으로는 다양해진 이해와 개별적 선호를 만족시키면서도 세계화되고 네트워크화된 시장경제를 뒤엎을 수 없는 노릇이기에, 개별적 선호와 욕구, 공정하고 평등한 이익을 실현하려면 경쟁력의 근간인 자유주의와 재분배 및 복지확대로 양극화 및 차별을 최소화하는 진보적 가치를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박정희의 개발독재 시절에 뿌리를 내린 압축성장(정경유착, 재벌독식), 과대성장(시장만능주의, 환경생태 파괴, 미세먼지 공습), 불평등성장(양극화와 차별, 비정규직 양산)을 '비즈니스 프렌들리'와 '줄푸세'로 극대화시킨 이명박근혜의 망령을 완전히 거둬내면서도 민간과 국가의 경쟁력과 정의를 실현할 수 있습니다. 노무현, 문재인, 유시민, 안희정 등이 참여정부의 국정기조로 정착시켰던 진보적 자유주의는 이념의 양극단에서 양산된 적폐를 청산하고 사회적 대타협의 주체인 시민주권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촛불집회로 집약된 시대정신이 모든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부와 민간의 결정에는 시민들이 참여해서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고 국가의 역할을 극대화하겠다는 것(시민주권 행동주의의 핵심)이라면 진보적 자유주의에 근간한 문재인에게서 탈조선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TV토론이 진행될수록 준비된 면모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충돌 직전까지 치달은 북미와 남북 간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불식시키면서도, 안전이 보장된 가운데 다양한 가치와 선호가 살아있는 대한민국을 만드는 초석을 놓을 수 있습니다.





차기 정부가 모든 부문에서 60년의 적폐를 모조리 거둬낼 수는 없습니다. 3년 후의 총선에서 모든 개혁입법을 통과시킬 의석수를 확보하기 전까지는 협치와 소연정을 추진하면서도 행정권력을 활용해 한국적 신자유주의의 적폐들을 최대한 거둬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민주정부 10년을 빼면 광복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수구보수의 정경언관 유착을 뿌리부터 뽑아버릴 수 있도록 만들어놓으면 차차기정부는 법인세와 소득세에 대한 고율의 누진증세와 기본소득(시민소득의 일종)의 도입까지 추진할 수 있습니다. 



필자는 민주진보진영의 장기집권이 가능할 때만이 선진복지국가(마샬의 사회적 권리와 프랭클린의 뉴딜정책, 케인즈의 국가개입주의에서 연원)와 촛불집회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가능성을 보여준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하나로 합쳐질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장담하지만 정부와 시민사회가 4차 산업혁명을 제어하고 대비책을 준비해두지 않는다면, 진보의 낙관론을 앞세운 과학기술의 무분별한 발전이 인류의 해방이 아닌 인류의 종말과 민주주의 축소(기술 전체주의)로 이어질 것입니다. 



4차 산업혁명을 프로그래머적인 관점과 산업적 이익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안철수의 이해가 형편없는 것을 넘어 위험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재용의 구속과는 상관없이 삼성전자를 사상 초유의 대박으로 이끄는 것을 넘어 한국경제의 성장률까지 끌어올리고 있는 반도체의 고공행진이 말해주는 것은 저장능력을 회기적으로 높여줄 차세대 반도체가 나오면 4차 산업혁명의 물길이 노동의 종말로만 그치지 않을 것임을 확실하게 말해줍니다.      



차기정부의 지도자로 좌우를 아우룰 수 있는 진보적 자유주의자인 문재인이 적격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구좌파와 시장 우파의 신자유주의는 과학기술 발전(경제학이 다루지 않고, 다룰 수 없는 자본주의 세계화의 핵심)이 노동성을 극대화시킬 것이라는 진보의 낙관론을 공유합니다. 68혁명을 주도했던 신좌파의 참여민주주의에서 폭력적인 면을 시민불복종과 평화적인 시위로 승화시킨 진보적 자유주의의 시민주권 행동주의만이 탈조선의 꿈을 실현할 수 있습니다. 




                                                                                                              

P.S. 심상정이 문재인에게 법인세 인상과 증세 의지가 약하다며 집요하게 비판하는 것은 정의당 후보로서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이 잘못된 것도 아닙니다. 다만 현재의 상황에서 법인세 인상 부분은 미국의 금리인상과 트럼프의 보호무역, 이에 대한 유로존과 중국의 대응, 중국경제과 신흥국의 경제 상황 등을 비롯해 세계경제의 회복세를 지켜봐야 합니다. 문재인이 법인세 인상을 마지막에 둔 것도 이 때문이며, 어차피 차기정부 임기 중에 법인세 인상이 필요한 시점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다시 한 번 촛불을 밝히면 됩니다. 



또한 군대에서의 동성애는 반대하고,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문재인의 발언에 대해 진보진영 일각에서 격하게 반발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성장·저출산·고령화가 파국적 인구절벽으로 들어서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동성애를 찬성하지 않지만, 차별에는 반대한다는 발언이 문제될 것은 없습니다. 차별금지법과 동성결혼합법화를 동일시하는 것에는 논리적 정합성이 있지만, 동성커플에게 불이익이 가해지는 차별에 반대하는 것이 보다 현실적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耽讀 2017.04.26 07:23 신고

    동성애 차별금지와 동성혼합법화는 다른 개념임을 문재인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홍준표가 문재인을 조금 살려준 것은 첫 질문으로 끝내버려야 하는 데 다시 질문을 함으로써
    논란거리를 제거했습니다.
    진보세력이야 격렬하게 반대하겠지만. 당연한 논리입니다.
    마지막 단일화 질문은 어쩌면 이번 대선 결과에 쐐기를 박은 장면이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4.26 10:25 신고

      그럼요, 차별금지법으로 문화적 의식을 바꾼 후에야 동성결혼합법화가 가능해집니다.
      차별금지법으로 불이익을 줄이면 동성결혼합법화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개선된 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2. TripleSeven 2017.04.26 07:39

    어제 토론을 보면서 정책토론의 비중이 높아 이전보다 나아졌다고 생각했지만, 아침 뉴스를 보니 역시나 정책의 내용보다는
    토론의 태도에 대해서 논란을 키우는 것을 보았습니다.
    말도 되지 않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시청자에게 그것이 사실인듯 각인시키고, 그에 대한 반론으로 문후보의 시간을 사용하게 하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 일축하는 태도는 지지자에게는 시원한 모습이었지만,
    아직도 반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태도를 문제삼지 않을까 우려가 될 따름입니다.
    아울러 3당 단일화와 관련하여 어제 유승민 후보가 완주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후보의 생각이고, 요즘 상황을 보면 불안한 모습을 보이는데,
    일각에서는 모두가 리스크가 있는 단일화 대신
    일부 후보의 사퇴카를 활용한 단일화 전략을 제기하기도 하던데,
    늙은 도령님께서 이부분에 대해서도 좋은 생각 부탁드립니다.

    • 늙은도령 2017.04.26 10:28 신고

      어차피 기성언론에 영향을 받는 층들은 문재인에게 표를 주지 않습니다.
      요즘은 팟캐스트와 SNS 등이 있어 그들의 문재인 죽이기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문재인 후보의 지지율이 50%를 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지만, 중요한 것은 당선가능성입니다.
      문재인의 당선가능성은 60%를 넘나들기 때문에 투표만 확실히 하면 됩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3. 공수래공수거 2017.04.26 08:23 신고

    정책본부장,이보세요 이런부분만 부각시키는 언론의 보도 태도를
    보고 놀랐습니다
    양아치 같은 홍준표나 초딩같은 안철수, 토론 패널 전문가로 나온듯한
    유승민 후보에 비해 충분한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 늙은도령 2017.04.26 10:29 신고

      원래 언론에게는 바라지 않습니다.
      팟캐스트와 SNS가 이를 대신하고 있으니 투표일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4. 추노 2017.04.26 15:27

    어제의 토론을 보면서 홍양아치가 박사모의 표를 끌어모으는데 사력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자는 이번 대선에서 자신이 당선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오로지 박정희찬가만을 부를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당연히 안초딩의 표는 떨어질 수 밖에 없고 내부적인 압력이 단일화로 향할 것이지만 이 또한 호남의 표를 의식한다면 어려울 것입니다.
    어차피 유나부랑이는 끼지 못할 것이고 내부분열이 가속화 될 것 같습니다.
    해서 이번은 정권교체가 무난하리라고 보여지지만, 개표기문제는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는 듯 합니다.
    언론은 당연히 이에 대해서는 함구할 것이기에 전방위적인 개표기 반대 여론이 형성되지 않는한 안심할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여기에 단일화에 대한 여론몰이를 통해서 오차내 박빙이라는 언론플레이가 조성된다면 말입니다.
    압도적인 정권교체를 위한 유권자들의 지지가 절실한 듯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4.27 04:34 신고

      문재인이 압승합니다.
      그것에는 변화가 없습니다.
      문제는 당선된 다음에도 지지를 보내줘서 적폐들을 청산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언론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다음이 검찰이고요.

 

억압받는 자들은 좋은 행동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며, 희생자가 되는 것이 권리를 담보하는 것도 아니다.

 

                                                                               ㅡ 필립스, 키이스 포크의 《시티즌십》에서 재인용

 

 

필자는 많은 글에서 밝혔듯이 진보적 자유주의자입니다. 정치·사회·문화적으로는 성인남성 위주의 권리와 법에 따른 의무를 중시했던 고전적 자유주의와, 민족과 국가를 중시했던 근대적 자유주의가 아닌, 페미니스트들의 위대한 노력으로 소수자 배려와 상호인정의 공감 능력, 그에 따른 연대성과 자발적인 책무 개념이 풍성해진 현대적 자유주의를 추구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물질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절대평등의 구좌파보다는 개인의 욕구와 선호에 따른 정의로운 분배와 생태·환경·삶의 질 등을 중시하는 신좌파의 급진적이면서도 공정한 진보를 추구합니다.

 

 

 

 

다시 말해 2008년의 미 소고기 수입 전면개방 반대 촛불집회와 2016~2017년의 박근혜 퇴진 촛불집회와 상당 부분 겹치는 '노무현의 진보적 자유주의'를 삶과 정치의 모토로 삼고 있습니다(안철수는 진보적 자유주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면서 자신의 새정치를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지몽매함을 드러냈었다). 제가 문재인을 지지하는 것도, 유시민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신좌파를 제대로 계승하지 못해 갈수록 몰락하는 진보정치가, 노무현의 참여정부 동안 그랬던 것처럼 문재인 정부 동안 화려하게 부활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정의당을 지지했던 것입니다(구좌파적 엘리트주의에서 벗어나야 하지만). 

 

 

문재인 후보가 노무현처럼 화려한 토론능력을 갖추지 못했지만, 민주주의 지도자의 최고덕목인 듣는 귀를 가졌으며, 그것을 통해 당면한 과제를 임기응변이 아닌 원칙적이고 투명한 차원에서 해결하는 능력을 가졌기에 그를 지지합니다. 조중동의 악질적인 프레임 때문에 반문정서의 핵심(말을 잘 바꿔 신뢰할 수 없는 정치인이라는 것)으로 뒤집혀졌지만, 임기응변적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진실을 말하고 욕을 먹겠다는 문재인 특유의 '신뢰의 리더십'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진보정당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는 유시민의 자유주의적 성향도 노무현보다 더 좌측(경제)에 자리한 진보적 성향과 훌륭한 조화를 이루고 있기에 좋아합니다. 신자유주의가 득세한 현대국가를 이해하려면 무조건 참조해야 하는 미셀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정치의 탄생》을 인용하지 않은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에는 많이 실망했지만, '썰전'과 강연 등을 통해 진보적 자유주의를 멋드러지게 풀어내는 모습에서 노무현의 정신을 떠올리곤 합니다. 

 

 

유시민이 문재인을 지지하면서도 정의당에 당적을 두고 있는 것(최근에 당적을 정리했다)도 진보적 자유주의를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필자는 정의당 당원이 아니지만 진보정당의 부활을 간절하게 희망하기 때문에 정의당을 지지합니다. 아니, 지지했습니다. 마르크스에서 연원하는 구좌파적 노동운동에 지나치게 경도됐으며, 미국과 유럽의 차이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기본소득이 만능인줄 아는 심상정(이재명의 한계이기도 하다)이 시청료 기생충 KBS 주최의 토론에서 문재인의 인격까지 저격하는 막말을 쏟아내기 전까지는 그러했습니다.

 

 

 

 

메갈당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심상정이, 여성을 비하한 홍준표를 공격하지 않은 것도 문제지만, 문재인의 복지청책 후퇴(서울대의 팩트체크선터에 따르면 심상정의 주장이 대체로 거짓이라고 나왔고, 문재인의 답변은 진실이라고 나왔다. 유승민이 문재인을 공겨하며 주장했던 국민연금과 주적 발언도 거짓으로 나왔고, 문재인의 답변은 진실로 나왔다)를 정제된 언어로 공격하며 증세 논의로 이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문재인에게 '믿지 못할 정치인'이라며 조중동 프레임을 들이댄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정의당에 당비를 꼬박꼬박 내고있는 당원인 제 친구들도 탈당하겠다고 분노를 참지 못하고 있습니다. 

 

 

1차 토론으로 상당히 고무된 심상정은, 문재인을 공격하는 것으로 자신의 선명성을 부각하면 지지율이 오르고, 그것이 정의당의 부활로 이어질 것이라 판단한 것 같지만, 과거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그런 성찰로는 정의당과 진보정치를 죽일 뿐입니다. 촛불집회의 시대정신에서 '노동의 신성함'을 추출했다면 그것은 마르크스적 구좌파다운 해석이겠지만, 시민주권 행동주의가 대세를 이루고 있고 '노동의 종말'이 언급되는 작금의 현실에서는 '노동'이 대표하는 상징성과 구체적인 표가 너무나 모호하고 한정적입니다.

 

 

미래학자들이 초인공지능과 나노기술로 대표되는 4차 산업혁명이 본궤도에 오르면, 마르크스가 추상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구체적인 내용과 시기는 일체 언급할 수 없었던 '노동생산성'과 '자본 축적'이 최고조에 이르기 때문에 (자본주의가 내부로부터 무너지는 않는 대신) 기본소득이 도입될 것이라는 희망사항에 빠지면 진보정치는 고사하고 맙니다. 경제학은 물론 과학기술, 특히 인공지능의 핵심인 반도체(저장능력)와 나노·로봇·생명공학 등에 대한 현장의 이해가 부족한 미래학자(특히 레이 커즈와일 같은 특이점주의자들)들의 주장을 믿는다는 것은 진보정치인으로써는 자살행위에 다름아닙니다. 

 

 

현재의 4차 산업혁명 붐은 일종의 마케팅으로 그 분야에 종사하는 자들이 대규모 연구자금을 끌어모으기 위해 암묵적인 담합에 이른 지적사기에 가깝습니다. 이들의 말을 믿고 초고율의 누진세가 선행되지 않으면 절대 성공할 수 없는 기본소득에 함몰되면 진보정치가 설 수 있는 땅은 완전히 사라집니다. 심상정이 명심해야 할 것은 마르크스에서 자유롭지 못한 보수적이며 엘리트주의적인 구좌파의 한계에서 벗어나는 것이지, 도를 넘은 언어로 문재인의 인격을 비난하는 것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해 문재인이 개혁시킨 현재의 민주당이 정의당보다 진보적 가치의 실현에 적합하지, 자신의 정체성을 구좌파적 '노동'에 집중시키는 현재의 정의당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인남성 위주로 이루어진 모든 정치철학에 도전한 페미니스트의 활약상이 전무하다시피했고, 박정희식 개발독재가 한국적 신자유주의로 고착화된 특수성 때문에 마르크스적 구좌파에 경도된 진보정치의 역사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민주정부 10년 동안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면 답은 없습니다.

 

 

심상정과 정의당은 신좌파의 짧은 성공(선진산업국가들의 기득권과 권위적인 기성세대를 저격했던 68혁명)과 기나긴 좌절(참여민주주의를 구체화하지 못한 것과 그에 대한 반대급부로 급진적 폭력성에 빠져 고사된 것)에서 기초를 다졌으며, 인권·사회·페미니즘·반전·환경운동 등으로 발전한 진보적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가 높아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젊은피의 수혈이 쉽지 않을 것이며, 대권이나 연정을 주도할 정당으로 발전하지도 못할 것입니다.

 

 

문재인 후보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며 파격적인 양성평등 공약(문재인의 공약 중 최고!)을 발표한 것에서 보듯, 현재의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그토록 꿈꾸었던 진보적 자유주의가 상당히 구현된 21세기적 정당으로 변신하는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진보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정의당을 지지할 이유가 그만큼 사라진 것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구좌파적 성향이 강한 이재명이 민주당 대선후보로써 선전할 수 있었던 것도 이래서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번 글을 늙은도령이란 한 명의 주장에 불과하다고 무시하면 그만이지만, 세계화가 가장 많이 진행된 미국과 유럽은 물론 많은 나라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와 촛불집회)에 대해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는 점에서 심상정과 정의당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합니다. 정의당의 목표가 심상정의 대선 완주인지, 아니면 그것을 발판으로 정의당의 부활에 성공하고 민주당과의 연정을 꿈꾸는 것인지 정확한 현실판단이 선행돼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사람소리 2017.04.22 06:36

    베를린 아카마 호텔 호스텔 저렴하게 예약하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ㅠㅠ 그래서 따라 들어왔다가 웬 헛소리만 읽고. 바빠요 ㅠㅠ

  2. 수원 2017.04.22 10:55

    윗 댓글이 너무해서 남겨요. 흥미로운 글 잘 읽었습니다~

  3. 김준호 2017.04.22 11:44

    진심으로 동의합니다.

    • 늙은도령 2017.04.22 18:18 신고

      문재인과 심상정이 동시에 잘돼야 하는데... 그래야 진보적 가치가 더욱 많이 실현될 수 있는데... 심상정이 욕심이 생겼던 모양입니다.

  4. 애효 2017.04.22 22:16

    이제 마지막입니다 마지막을 화려하게 불태우고 우린 역사속으로 퇴장 하는것이 운명입니다.

  5. 송인철 2017.04.23 00:51

    동감합니다
    정의당 다원입니다
    지난해 쉬지도 못하고 토요일이면 광화문으로 작은 촛불하나들고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그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목청것 외치면서
    한철 겨울을 보냈습니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꽃피는 봄이되었습니다
    바귀어야합니다
    마음속으로는 정의당과 민주당이 협치하기를 바랬습니다
    하지만 정의당으로서는 세상을 바꾸기엔 누군가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전 그부분이 민주당이라고 생각하고
    민주당 또한 정의당의 민족적 당위성을 지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으로는 내가 선택한 주권의 한표는
    아니 내가 아는 내가 만나는 모든이에게 사표를 만들지말고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의
    선택을 위해 내가 던지 것이 사표되지 않아야된다고 말하고있습니다
    정의당은 대의를 위해
    자기의주장만 앞세워 정권교체의 반하는 결과를 만들지말자고
    말하고싶습니다
    다시한번 선생님의말씀에 동의하면서
    저의 이런 의겨니 나쁜것인지 조언있길바람니다
    늙은 아이입니다

    • 늙은도령 2017.04.23 01:52 신고

      님 같은 분들이 많아져야 정의당이 민주당과 당대 당 연정이 가능할 만큼 성장할 수 있습니다.
      유럽에서조차 마르크스적 구좌파는 한계에 처했습니다.
      마르크스적 구좌파는 너무 물질적인 면, 즉 경제의 평등에 집착하느라 정의와 시민권 같은 비물질적이고 자유주의적인 가치에 적대적이었습니다.
      정보통신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발달은 공동체의 규모를 1인 가구까지 줄여갔지만, 대신 공감이란 연대성을 구축할 수 있는 다양성의 평등과 협치, 공감의 네트워크를 넓혀감으로써 새로운 민주주의를 창조하고 있습니다.
      헌데 구좌파는 목표하는 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집단주의적이고 권위주의적인 대동단결을 중시하기 때문에 숨막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내부에서의 민주주의가 죽어가는 것이지요.
      개인과 집단 간의 적절한 균형과 긴장이 있을 때 권리와 책임이 함께할 수 있는데, 구좌파는 전위나 지도자를 무조건 따라야 하는 권위주의에 의해 돌아갑니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자유주의적이고 개인주의적이며 탈물질주의적인 청춘으로부터 외면을 받게 됩니다.
      여기에 구좌파가 대표하는 산업노동자의 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습니다.
      시민이 대신 그 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노동을 외치면 시민주권이 빠져나갑니다.
      정의당이 대표할 수 있는 구성원이 갈수록 줄어드는 결과는 이렇게해서 발생합니다.
      정의당이 구좌파를 넘어 신좌파를 연구하고 문호를 개방하지 않는 한 갈수록 축소될 것입니다.
      결과의 평등이 절대적 정의가 아닙니다.
      마르크스가 예언한 자유의 왕국은 그 실체가 너무 모호하고 존재할 수도 없습니다.
      그런 종교적 교의는 현재의 세상에선 통하지 않습니다.
      심상정과 노회찬처럼 구좌파의 노동운동에 경도된 사람들이 2선으로 후퇴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의당은 살아남습니다.
      민주당 정부 때 세를 넓혀야 하고, 그래야 유럽의 노동당처럼 주요정당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그의 오류를, 추상의 총체적 문제를 인정해야 합니다.
      현실에 발을 딛지 않은 채 유토피아를 아무리 떠들어도 그것에 귀를 기울일 청춘은 더 이상 없습니다.


'4당 체제, 민심 잘 받들까'를 주제로 한 JTBC 밤샘토론에서는 너무나 많은 주제들이 다루어졌기 때문에, 그중에서 선거연령 하향의 문제만 다뤄볼까 합니다. 4당의 대변인 모두가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데 찬성하면서도 표의 유불리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적용되기는 힘들어 보입니다. 60만 명 정도로 알려진 18세의 정치적 성향이 진보적이어서 새누리당과 바른정당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그들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반응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의 사정에 따라 찬반이 갈리는 선거연령의 하향은 시대정신에 해당하는 것이어서 내려갈 수밖에 없음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미국과 영국, 독일, 프랑스 같은 선진민주국가들은 1970년대에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했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 12개국을 빼면 모든 국가가 18세 이하로 선거연령을 낮췄습니다. 17세인 국가는 북한과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5개국이고, 16세는 6개국(오스트리아, 브라질, 아르헨티나, 에콰도르, 쿠바, 니카라과)입니다. 국가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통계상으로 보면 선거연령을 18세로 낮추는 것은 너무 늦었다고 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정치적으로 볼 때, 선거연령 하향의 정당성은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강화해온 수많은 혁명과 투쟁의 중심에 10대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에서 시작돼 전 세계의 대학으로 퍼졌던 68혁명의 영향도 상당한 역할을 했습니다. 2차세계대전처럼 10대 후반을 전장에 내보내야 했던 반대급부로 선거연령을 하향시켜야 할 유인도 있었습니다. 공교육의 확대, TV와 인터넷의 등장과 보급, 보편화도 선거연령을 하향시키는데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교육 수준이 높아질수록, 정치와 경제를 비롯해 다양한 정보에의 접근권이 늘어날수록 선거연령은 하향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다 많은 소비자가 필요했던 기업의 요구도 한몫했습니다. 투표권이 있는 청소년(성인에 준함)에게는 무엇이든 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의 연구들을 종합하면 산업민주주의가 발전하거나 선진화할수록 선거연령은 하향하는 추세를 보였습니다. 세상이 변하는 만큼 선거연령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런 현상입니다. 세계 9위 경제대국이자 정보통신강국인 대한민국의 선거연령이 19세라는 것은 청소년의 권리를 무시하는 것이자, 시대에 뒤떨어진 정치후진국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선거연령을 18세로 하향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김제동은 "교육감선거는 15세, 지방선거는 16세, 대선은 17세로 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필자는 김제동보다 한술 더 떠 대선의 경우도 16세로 하향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뇌과학과 진화심리학, 인지과학 등의 발달로 인간의 뇌는 13세 전후로 평생을 이어갈 가치관(스키마)이 형성된다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입니다. 뇌의 가소성 때문에 가치관은 변할 수 있지만, 그 확률은 그리 높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정치적 판단의 핵심이 가치관에서 나온다는 것은 '가치이론변화'를 정립한 잉글하트에 의해 입증된 사실이고, 이에 근거한 '사회적 가설(개인의 가치 우선순위는 성년기에 접어들기 이전 시기의 사회문화적 조건들을 반영한다는 가설)'을 통해서도 통계학적으로 입증됐습니다. 촛불집회에 나온 청소년들의 정치적 가치관과 판단이 성인들에 결코 뒤지지 않거나 능가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도 이런 과학적이고 정치적인 근거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이들은 또한 인터넷과 SNS, 팟캐스트, TV토론 등을 통해 각종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는 능력과 기술(통합해 '인지적 동원과정'이라고 한다)이 뛰어납니다. 기성세대는 따라갈 수 없는 이들의 민첩성과 해석능력은 이합집산이 자유로운 사이버상의 '인터넷행동주의'를 넘어 현실에서의 정치행동주의로 표출됩니다. 이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13세 전후로 구축된 가치관을 확장시키고 세련되게 만들며, 정치참여에 적극적인 시민주권 행동주의자로 성장합니다. 



고도성장기를 지나 저성장이 고착화된 21세기에 태어난 이들의 상당수는 탈물질주의적이고 반권위주의적이며 진보적인 성향을 띠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의 선거연령 하향의 결과가 자민당의 승리로 연결됐듯이 경제상황에 민감하면서도 탈물질주의적이고, 진보적이면서도 시대적 가치 변화에 민감하고 이념지향보다는 이슈지향적 행태를 보이기 때문에 현재의 야권에게만 유리하다는 통설은 확실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현재의 16세는 과학·정치·경제·사회적으로 볼 때 기성세대의 판단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보수적 성향이 강한 80대 이상의 노인들 중 치매증상을 보이는 확률이 50%에 이른다는 의학적 보고가 늘어나는 현실까지 감안하면 16~18세의 청소년들에게 자신을 대표할 수 있는 선거권을 부여하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생애주기별 이념분포'를 보면 나이가 들수록 보수적 성향이 강해지는데, 치매증상을 보이는 노인들로부터 선거권을 박탈할 수 없다면 16~18세의 청소년에게 자신의 권리를 표출할 수 있는 정치적 권리를 제공해주는 것이 잘못된 선택을 줄이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평균수명이 길어지는 것까지 더하면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추는 것은 이념적 균형을 맞춰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선의 선택이자 거의 유일한 방법입니다. 더구나 박사모 계열 단체들의 행태를 보면 자신이 지지하는 대통령이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이용해 나라를 말아먹건, 역사를 팔아먹건, 비선실세와 함께 조폭적 삥뜯기를 하건, 국격을 추락시키건, 헌법과 민주주의를 유린하건 무조건적 지지를 하는 자들까지 고려하면 이들에 대항할 수 있는 연령대에게 선거권을 주는 것은 민주주의와 헌법, 국가, 역사, 정의를 지키기 위한 가장 민주적 조치라 할 수 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시간이 부족하고 국민적 토론과 사회적 합의가 부족한 관계로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추는 것은 정치사회적 저항이 클 수밖에 없기에, 최소한 18세까지 낮추는 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발전시키는 시대정신이라고 할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개개인이 자신의 운명에 대한 가장 좋은 판단자라는 전제에 있다'는 것까지 상기하면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추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참교육 2017.01.14 08:27 신고

    좋은 글 많이 퍼 날라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퍼갑니다.

  2. 공수래공수거 2017.01.14 10:50 신고

    다음 선거는 무조건 선거연령을 낮추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7.01.14 15:57 신고

      무조건 낮춰야 합니다.
      그래야 이 세상이 균형을 잡을 수 있습니다.


더민주 소속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의 <개헌 논의 배경과 전략적 스탠스 및 더불어민주당의 선택>이란 비문 성향의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가 문재인을 대선후보로 확정한 상황을 전제로 작성됐다며 '친문패권주의 운운'하는 의원들에게 문자폭탄이 쏟아지고 있는 모양입니다. 문자폭탄을 받고 있는 대상도 이재명과 박원순, 김부겸을 포함해 국민의당과 비박당 및 친박당 의원들로 다양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동아일보의 왜곡된 보도에서 시작된 '문재인 죽이기'와 '지지자 갈라치기'가 사실관계 확인도 없이 무한대로 증폭되는 모양새입니다. 필자가 세 시간 동안의 구글링을 통해 살펴본 문제의 보고서는 개헌을 선제적이며 적극적으로 공론화하자는 것이지, 개헌을 반대하는 보고서가 아닙니다. 제3지대의 빅텐트론을 경계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동아일보의 보도와 경향신문이 그대로 옮긴 보도는 해당 보고서의 1%도 안 되는 몇 개의 단어를 가지고 99%가 넘는 내용을 완전히 왜곡하는 악의적인 보도였습니다. 



동아일보의 보도와는 달리 친문들끼리 돌려본 것도 아니고, 문재인만 친전으로 받고 나머지 주자들은 이메일로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문재인도 이메일로 받았고, 심지어 김부겸과 이재명, 박원순이 동아일보의 보도를 인용해 문재인 비판에 나섰을 때까지 이메일도 읽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필자가 확인한 해당 보고서는 문재인을 위한 개헌저지 보고서가 아니라 정권교체를 위한 다양한 개헌안을 풀어낸 균형잡힌 보고서임에도 김부겸, 이재명, 박원순은 동아일보(와 경향신민)의 보도에 부화뇌동한 것입니다. 문재인 지지자들 중에 시민주권 행동주의자들은 이것에 격분한 것이고요.    





20%대 지지율의 박스권에서 벗어나 대세론이라 할 수 있는 40%대(더민주는 이에 도달했다!)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문재인 후보가 '우리는 원팀이니 문자폭탄은 자제해 달라'고 지지자들의 격분을 서둘러 진화하고 나섰지만,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동아일보 보도에 맞춰 비판부터 내놓은 김부겸과 이재명, 박원순 때문에 문자폭탄은 단기간 내에 멈출 것 같지 않습니다. 유시민이 썰전에서 말했던 것처럼 살벌한 대선레이스에서 1위 주자는 무엇을 해도 욕먹을 수밖에 없다고 하지만, 문재인 지지자ㅡ국정원 댓글부대, 일베, 십알단 같은 프락치도 있을 수 있겠지만ㅡ로 보이는 분들의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은 '문재인 죽이기'의 호재로 작용할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촛불의 여세가 꺾이지 않는 가운데, 이재명의 지지율 폭락과 반기문의 23만달러 수수설 등으로 문재인을 꺽을 도전자가 없는 상황에서 개헌의 공론화는 문재인의 독주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인 것은 분명합니다. 촛불집회에서 개헌이 언급된 적이 없었고, 개헌의 내용과 시기에 대한 수많은 견해들이 존재함에도 노욕에 물든 70대 전후의 노인들(박지원-손학규-김종인-김무성)이 불을 지피면, 조선과 동아, 종편(JTBC 제외), 보도채널(연합뉴스TV, YTN), 공영방송(MBC와 KBS) 등이 기름을 쏟아붙는 방식은 너무나 불공정함에도 이에 대한 지적은 전무하기까지 합니다. 





구시대의 정치공학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런 반칙에 관대하겠지만,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시민행동주의자들에게는 이런 반칙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대생의 투쟁이 총장의 독재와 반칙에서 비롯돼 정유라의 특권에서 폭발했듯이 공정과 평등, 정의와 자유를 중시하는 시민행동주의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민주권 행사에 적극적입니다. 인터넷과 팟캐스트,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와 사실관계를 상호 체크하고 공유하는 이들은 정치적 의사표현에 거침이 없고, 결과물을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운동권 세대보다 한 단계 발전했습니다.



이들은 정당의 강령과 정책, 개별 의원들의 의정활동과 지난 날의 발언과 공약 등까지 체크해 행동의 근거가 되는 '팩트'를 찾아내,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행동주의자이기 때문에 문자폭탄을 보내고 18원의 후원금을 보냈다가 환급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그런 방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며, 그것이 민주공화국의 다양성에 근거한 시민주권의 행사라고 확신합니다. 이런 행태가 문재인에게 도움이 될지, 정권교체에 도움이 될지는 그들 나름의 판단에 근거합니다. 이들은 더 이상 정당과 의원에 동원되는 수동적 지지자(당원)가 아니라 정당과 의원을 움직이게 하는 능동적 지지자(당원)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문자폭탄과 18원 후원금이 문재인 지지율의 확장으로 이어지지 않고 폭락으로 이어진다고 해도 그리 개념치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에 문재인에게 빠져나간 지지율이 어디로 가던 그 대상에 대해서도 똑같은 일을 할 것입니다. 이들은 그렇게 정치적 이해득실을 따져 전체적인 균형을 찾아가며, 자신의 행위가 잘못됐다고 여기면 스스로 자정작업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들은 그렇게 여론을 만들고 정치적 결과를 도출해냅니다. 



이들에게는 옳고 그름이 아니라 자신의 방식과 타인의 방식이란 다름과 차이가 존재할 뿐입니다. 보편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면에서는 한 배를 타고 수평적 토론에는 한없이 열려있지만, 권위주의적이고 위계적인 꼰대질에는 전력으로 부딪칩니다. 정권 교체를 위한 한 팀이라는 문재인의 자제 당부는 정치지도자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며, 많은 분들이 그것에 따르더라도 최종적으로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각각의 개인이 결정할 문제이고 책임질 일입니다. 상황과 이슈가 변하면 행동의 동기와 결과도 변합니다.



이들은 그런 과정에서 높은 수준의 합의에 이르는 집단지성이 도출되리라 믿습니다. 집단지성이 모두 다 옳은 것은 아니고 잘못된 예도 수없이 제시할 수 있지만, 그것이 대의(1원론적 민주주의)와 참여(2원론적 민주주의), 직접민주주의(촛불혁명)의 한계라면 이들의 경험과 지혜가 쌓일수록 그 한계마저 돌파해내리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어쩌면 이들은 민주연구원의 보고서를 저보다 많이 알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더민주의 의원과 당직자와 직접 소통하는 이들이니 저 같은 느림보 기성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속도로 움직였을 것입니다.



민주화 세대인 필자의 경우 특정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려면 자신들의 관점으로 촬영하고 편집한 TV뉴스나, 라디오를 통해 흘러나오는 단편적인 정보, 조중동 같은 한정된 신문의 보도, 검게 칠해지거나 빈칸으로 나온 외국의 시사잡지를 접하고 나서야 가능했습니다. 저 같은 사람들이 접할 수 있는 것들도 적었고, 연대순이나 실시간으로 확인한다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문자를 보내고 18원을 후원하는 현재의 청춘들과는 달리 즉각적인 대응은 말할 것도 없고, 해당 정치인의 언행이 어떻게 변화해왔는지, 그래서 무엇이 잘못됐는지 확인하기도 힘들었습니다.  





빛의 속도로 이 모든 것들을 확인하는 시민주권 행동주의자들은 원리나 규범으로서의 민주주의에 머물지 않으며, 이명박근혜 9년 동안 철저하게 망가진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머물지 않습니다. 이들에게는 민주주의가 원리와 규범을 담은 절차의 단계를 넘어 자신의 삶으로 구현하는 실질적인 단계로 존재합니다. 노무현이 절차적 민주주의의 막네이자 실질적 민주주의의 맏형이기를 바랐다면, 이들은 맏형의 '좌절과 성공'을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를 융합해내고 있습니다.  



오늘까의 촛불집회가 이것을 입증하고 있으니, 시민주권의 행동주의자인 이들의 문자폭탄과 18원의 후원금을 자신에 대한 유불리로 재단하는 것이 이들이 가장 싫어하는 꼰대질이 아닐까 합니다. 68혁명의 구호는 '우리를 금지하는 모든 것을 금지한다'였다면, 그것의 21세기 업그레이드 버전인 '나는 내가 대표한다'는 시민주권 행동주의자의 촛불혁명과 정치 참여와, 그것에서 한 단계 발전한 개입과 주도는 가진 자와 기득권, 엘리트, 보수언론 위주로 돌아갔던 한국정치를 뿌리부터 민주공화적으로 바꿀 것입니다. 



문재인은 책임지는 정치지도자로서, 지지자는 깨어있는 시민주권의 행동주의자로서!!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새누리가개혁보수당



P.S. 이번 글에 대한 심층적 이해를 담은 '문자폭탄과 18원 후원, 촛불집회로 보는 정치행동주의'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angrove 2017.01.10 09:45

    김부겸은 그렇다 치고, 박원순과 이재명 시장의 반응은 의외 입니다. 특히 박원순 시장은.....

    계속 친문패권주의를 이야기 하고 친문패권이 적폐의 대상이라는 이야기까지 쏟아 내고 있어서, 기존에 보아왔던 박원순 시장의 모습이 아니라 내심 안타깝습니다.

    비온 뒤 땅이 굳기를 바랄뿐 입니다.

    • 늙은도령 2017.01.10 16:50 신고

      그러게 말입니다.
      문재인은 대표였을 때 대표직을 내려놓는 것을 전제로 해야 개혁할 수 있었습니다.
      왜 문재인이 힘을 가지면 패권주의가 되는 것일까요?


필자는 틈이 나는 대로 산본의 1020세대를 만나 얘기를 나누면 (그들은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정치철학적으로 말하면 진보적 자유주의가 체득돼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가 너무나 적어 보편성이 전혀 없지만, 이대생의 투쟁에서 볼 수 있었던 개인주의(자유주의적 성향)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토론과 합의(평등을 중시하는 민주주의)의 일단을 이들에게서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만난 1020세대들은 저와의 대화에서 예의를 지켰지만 대등한 입장에서 얘기했으며 자신의 주장을 말하는데 주저함이 없었습니다. 이들은 장장 50년에 걸친 독재에 익숙하고,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경험이 부족하며, 불평등성장보다는 빈곤에서의 탈출이 시급했던 60대 이상의 기성세대와는 완전히 다른 나라의 시민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68혁명의 1020세대가 그랬듯이 이들도 인권과 자유, 민주주의, 탈권위주의, 생태·환경·먹거리 같은 삶의 질에 관심이 많은 탈물질주의적 성향(N포세대의 성향이기도 하지만, 불평등과 차별을 양산하는 반칙과 특권의 신자유주의를 뒤엎는 체제혁명의 기본조건)을 드러냈습니다. 



이명박 정부 때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에 반대해 10대의 소녀들이 촛불집회를 기획한 것도 이런 성향이 작용한 결과라는 주장(조기숙과 정태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를 참조)도 있듯이, 민주정부 10년을 경험한 이들은 탈물질주의의 원천인 진보적 자유주의와 상당 부분이 겹쳤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민주주의를 경험한 이들은 IMF 외환위기 이후의 불평등과 취업대란, 환경오염, 권위주의로의 회귀, 위계서열 강조 같은 헬조선에 직면하면서 진보적 성향이 강해진 것 같았습니다. 





헬조선을 탈출하는 모토 중 하나가 '죽창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하다'인 것도 이들의 절망을 나타내는 것을 넘어, 평등을 중시하는 진보적 성향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전통적 보수주의의 핵심인 소극적 자유(천부인권이 대표적, 국가와 정부의 개입 최소화)보다는 인권, 평등한 자유, 헌법적 권리, 환경과 생태 보존, 보편적 복지의 실현, 소수자 권리 인정, 노동시간 단축, 축제처럼 즐기는 집회, 수평적 네트워크, 시민주권 같은 적극적 자유(사회적 합의와 헌법이 보장)에 친화적인 성향을 공통적으로 보여줍니다. 



이화여대와 성신여대 등에서 독재적 행정을 남발하는 대학측에 맞선 투쟁과 1020세대가 많이 참여하는 촛불집회 등에서 축제와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도 즐거운 이데올로기와 탈물질주의적 성향에서 나온 1020세대의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40년의 결과라 할 수 있는 이런 특징은 전 세계 젊은이들이 공통적으로 공유하는 것으로, 20대의 눈으로 1020대를 얘기한 후루이치 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과 68혁명과 관련된 책들을 보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구조'는, 거품경제가 붕괴한 1991년을 기점으로 상당한 변화를 겪은 일본 사회다. 거품경제의 붕괴로 인해 1970년대 이후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좋은 학교, 좋은 회사, 좋은 인생 모델'(일본형 업적주의)도 함께 무너져 내렸다. 이제 대기업은 '연공서열'과 '종신고용'이라는 '일본형 경영'을 더 이상 젊은이들에게 제공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처럼 '중산층의 꿈'이 붕괴되어 가던 시대에,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태어났다(노리토시의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에서 인용).





노무현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김대중 정부의 부동산거품과 벤처거품, 카드대란을 물려받았고, 신자유주의의 폐해가 임계점에 다다른 시점에 임기의 대부분을 보냈지만, 진보적 자유주의를 일관되게 추구했기 때문에 (지지층이 소수였고 국민의 의식에 성장에 대한 환상이 여전했음에도)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당한 업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조중동과 사이비 지식인의 왜곡과 조작으로 당시에는 부정됐지만, 현재의 20대는 피부로 와닿았기 때문에 대통령 선호도에서 노무현이 박정희를 압도할 수 있는 것이고, 이명박근혜 9년을 경험한 지금에는 50대까지 이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노 대통령이 양극화를 적극적으로 의제화하고 복지를 쟁점화함으로써 오히려 지지기반을 축소시킨 결과를 초래했다. 사회경제적 개혁에 실패해서가 아니라, 사회경제적 개혁을 적극적으로 시도함으로써 중산층의 지지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 그 결과 2007년 대선에서 복지에 대한 국가의 역할을 중심으로 좌우균열이 역사상 최초로 등장하게 되었다. 노 대통령이 지지자를 잃으면서까지 비전 2030을 내놓고 복지정책을 추진했던 이유는 발전주의와 복지주의라는 경제적 균열이 단기적으로는 진보진영을 소수로 만들겠지만 장기적으로 그것이 이기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그 결과) 노무현 정부 5년간 두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하나는 복지주의의 등장으로 발전주의와 대립하면서 약한 균열구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이는 한국 정치사에 전근대적인 지역균열을 근대적 의미의 좌우균열로의 이동이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두 번째 변화는 탈근대적 현상의 출현이다. 근대적 시장과 국가를 둘러싼 경제균열 외에 탈물질주의 대 물질주의의 균열이 뚜렷이 나타난 것이다(조기숙과 정태외 외 《한국 민주주의 어디까지 왔나》에서 인용).



위의 인용문을 고도성장이 박정희의 신화적 능력 덕분이라고 믿는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과 상당수의 기성세대는 동의하지 않겠지만, 저성장이 고착화되고 신분이동성이 협소해진 시대에 태어나고 자란 1020세대들은 무엇이 진실인지 정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1020세대 중에는 진보적 자유주의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있겠지만, 탈물질주의적 성향은 N포세대의 등장(경제 후퇴와 저성장시대의 진화심리학으로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결과)과 그에 따른 삶의 모습에서 1020세대의 지배적 특징임이 입증됩니다. 



노무현의 추구했고, 문재인과 유시민 등이 발전적으로 계승했으며, 1020세대는 체험적으로 습득한 진보적 자유주의는, 절차적 민주주의에 만족한 87민주항쟁의 한계를 극복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할 것입니다(절차적 민주주의와 실질적 민주주의는 분리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개념이다. 시민주권의 단계가 참정권에서 복지권을 거쳐 자치권으로 향하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자신의 삶을 정부와 자본, 시장의 간섭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이 자치권이다. 잘살고 성공하는 것보다는 자유와 행복이 중시된다).  





특히 선거연령이 16세까지 내려간다면 87체제를 극복하는 것이 더욱 빨라질 것이며, 헬조선의 탈출도 빨라질 것이 확실합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이지만, 동시에 기성세대인 필자가 복지권이 실현된 '사회적 권리'에 집착하는 것에 비해서, 1020세대가 탈물질주의적 자치권에 보다 집중하는 것도 경험(공기처럼 주어진 민주주의)과 환경(불평등과 환경오염이 심각하며, 고도성장이 불가능한 시대)의 차이에서 오는 자연스러운 차이입니다. 



필자가 촛불혁명의 목표로 조세정의(복지권 실현의 거의 모든 것)와 세대교체를 울부짖는 것도 진보적 자유주의자가 많은 1020세대들에게 희망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저임금 일자리만 양산해 불평등과 차별을 극대화시킬 4차 산업혁명의 폐해가 되돌릴 수 없는 지점에 이르기 전에 지배적 체제를 '사람이 먼저인 세상'으로 전환시키려면 1020세대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커져야 합니다. 촛불혁명은 이를 앞당길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회입니다. 



미국과 일본을 빼면 거의 모든 국가들이 비판하는 반기문이 대선에 나서려고 하는 것처럼, 기성세대와 늙은이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추호도 양보하지 않으려는 '개 같은 세상'을 하루라도 빨리 종식시키려면 촛불혁명의 기저에 깔려있는 노무현과 1020세대의 진보적 자유주의와 탈물질주의에 천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두가 시장 참여와 상관없이 사회가 인정할 수 있는 삶의 질을 누리면서도, 네트워크적 연대(느슨하지만 상호 인정이 핵심)를 통해 자치권을 실현할 수 있는 세상에 이르려면 1020세대에게 보다 많은 발언권을 주어야 합니다.



각 당마다 25% 정도의 젊은이들을 무조건 할당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비례일 경우 순번도 당선안정권에 두어야 합니다. 이럴 때만이 1030세대가 정치권 영향력을 형성할 수 있으며, 그럴 때만이 기성정치인 위주의 대의민주주의와 균형과 견제를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거연령을 16세까지 낮춰야 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어지는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토마토 2016.12.28 05:18

    대한민국의 젊은 세대는 어느나라보다 현명하며, 현실에 눈이 떠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른나라 같았으면 진작에 망했을 조건에서도 꿋꿋이 버텨온 이유가 현명한 국민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 낭중지추 2016.12.28 08:43

    투표, 선거는 현재로부터 4년까지의 미래입니다 그것이 16세가 투표해야하는 근거입니다 16세에서 20세까지와 80세에서 84세까지를 비교해야 합니다 노인들에게 그 기간은 의미가 크지않지만 청소년들에게는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습니다 미래란 미래의 주역들에게 더욱 중요한 것이기에 투표는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냉정하게 말하자면 90세 이상의, 과거가 더 중요한, 어르신들의 미래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 늙은도령 2016.12.28 20:39 신고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아직도 현역에서 노욕을 풀어내는 어르신들이 미래세대에게 자리를 내줘야 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12.28 10:32 신고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동감입니다

  4. merryjanet 2016.12.28 10:58

    선거연령을 16세~17세로 낮추는 것에 전적 동의합니다.
    우리나라 10대의 사고가 진보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게 된 요인으로는 인터넷과 댓글 문화일 거라
    생각되는데 아직 토론문화는 정착되었다 말하기 힘든 정도입니다.
    토론이야 말로 근거와 논리를 가지고 첨예하게 전쟁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힘이잖아요
    우리의 중 노년층은 더 말할 필요가 없고, 10대 20대들에게도 그 기회가 많이 주어지지 않아 아직은 토론이
    자유롭거나 낯익지 않은 편이지만, 학교나 방송 혹은 다른 매체에서 젊은이들의 토론에 더 많은 참여를 보장하게 되면
    우리 청소년들의 사고는 더욱더 바람직하게 민주적이고 진보적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광화문처럼 큰 광장이 아니어도 유럽 도시 어느 곳에서도 흔히 보이는 광장에서 큰 정치적 사안이 아니어도,
    어떤 이슈에 관해 자신의 소견을 표출하고 토론도 하며 대립하다가도 끝나고 나면 손잡고 웃으며 함께 일하는
    문화, 바로 민주주의의 힘을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이 되는 세상에서는 일상이 되기를 바래봅니다.

  5. 둘리토비 2016.12.28 22:06 신고

    전 특히 1020세대의 탈물질주의,
    그리고 특히 현장에서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들었던 입장으로서 이들에게 희망을 보고 있습니다.

    조화로움, 그리고 자연스러운 연결, 연대, 기초를 다지는 작업과 가치를 세움으로
    지금 촛불의 향연 너머에 있는 희망의 실제적 끈, 그리고 성취를 너무나 갈급하고 있습니다.
    할 수 있다면 저들을 격려하고 경청하는 자로 있고 싶네요~^^

  6. 생명마루 신림점 2016.12.28 22:11 신고

    포스팅 구경 잘하고 갑니다~

  7. STEP 1 2016.12.28 23:21

    선거연령을 낮춰야 하는데 동감입니다.

    전현직 대통령 호감도 같은 표를 인용하시는 경우 출처와
    통계자료는 여론조사 날짜 등 기타 통계관련 필요한 정보를 같이 계시하시면 좋을 듯합니다.
    딴지를 걸려는 것이 아닙니다. 항상 건강에 유의하세요.

  8. 따뜻한 연말되세요

  9. 참교육 2016.12.29 05:14 신고

    수구세력과 자본이 깨어나지 못하게 온갖수단을 동원해 마취시키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그런 역할을 학하고있습니다.

  10. mangrove 2017.01.02 10:48

    글을 읽는 데 오래 걸리네요.. 생소한 단어, 탈물질주의 등등도 그렇고 내공이 깊으셔서 쿨럭...

    좀더 많은 1020 아이들과 소통을 해보시길 추천 드립니다. 전 어두운 단면을 먼저 보는 성격이라...

    가끔 일본이나, 중국이나, 특히 이스라엘 같은 나라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들의 문화도 많이 변화되고 훼손되고 가치를 잃어가지만 우리 만큼은 아니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사회를 이루는 핵심은 어디까지나 그 사회의 철학과 사상이라고 봅니다. 그것이 무너지게 되면 사회는 휘둘리게 되고 인간의 가치는 무너지게 되겠죠. 우리는 일제 36년을 겪으면서 개화를 했고, 우리의 것들이 철저하게 밟히고 왜곡 되어 왔습니다. 거기에 한국전쟁에 이 땅은 초토화되고 모두들 살기 위해 살았습니다. 말씀대로 경제적 논리에 모든 것이 갖히고 훼손되어 왔으며, 지난 날 우리의 삶의 근간이었던 유교적 사상과 관습도 낡고 불편한 것으로 부정되었고 버려졌습니다. 민주주의는 사회의 운영 논리지,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철학과 사상은 아니라고 봅니다.

    일본은 폐전국이었지만 그들의 전통과 문화를 지켜 냈으며, 중국도 경제 논리에 부상하고 있지만, 그 기반의 철학적 가치는 아직까지 존재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이야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돈에, 아니 생계의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어쩌면 정말 소중 했을 지도 모르는 모든 것을 "그냥" 버렸습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 안타깝게 생각이 됩니다. 어떤 사상이나 철학이든 지 근본적인 사상에 충실하면 문제가 없으나,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그 가치는 훼손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이 땅에서는 기독교가 대표적인 예이기도 합니다.

    뭐 햄버거 좋아 하는 아이들에게 서당을 가르칠 생각은 없기에... ^^

    • 늙은도령 2017.01.06 06:45 신고

      세상은 변했습니다.
      우리도 변해야 하겠지요.
      미래는 미래세대의 것이니까요.

      현재의 체제는 인간의 평균수명이 65~70세 정도를 기반으로 구축됐습니다.
      헌데 현재는 평균수명이 80~90세 정도로 올라갔습니다.
      그 차이는 어마어마합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청춘을 제대로 알 수 없는 것이 첫 번째가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TV세대를 넘어 인터넷과 SNS세대들이 등장했습니다.
      그들은 TV세대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릅니다.
      이것도 고려해야 합니다.

      문화인류학과 진화심리학적 개념이라 압축적으로 표현하기 힘들지만 아예 다른 세상을 살아온 세대들이 용광로 안에 모여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입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답을 찾기란 정말 힙듭니다.
      제가 다방면의 공부를 한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래야 변화를 알 수 있을 것 같고, 세대들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저는 유교적 가치의 일부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봅니다.
      하지만 유교적 가치는 신자유주의와 너무 잘 어울리기 때문에 상당 부분을 폐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세대간 갈등은 무한대로 늘어날 것입니다.

      아무튼 어려운 얘기인데, 눈높이를 맞추는 것은 윗사람이 낮추는 것입니다.
      청춘은 경험이 없는 상황이기에 올릴 방법이 없습니다.
      그것만 기억하면 해결책이 나옵니다.


이대 총장에서 학장, 입학처장이 정유라의 부정입학을 대가로 각종 정부보조금을 따내고, 교수들의 학점 공양이 밝혀짐에 따라 줄줄이 구속되는 상황에서 촛불혁명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던 이화여대의 총학회장 김은혜씨가 법정에 서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이대 교수들이 선처를 바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보냈다고 하지만, 박근혜의 최고 부역자집단 중 하나인 정치검찰은 당장이라도 기소를 취하하고, 이대생과 최은혜씨에게 공식적으로 사과를 표명해야 합니다. 



정치검찰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극에 이른 현재, 노무현 참여정부를 제외하면 권력자의 충견노릇을 자처해온 정치검찰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이런 식의 반성이 선행될 때만 가능합니다.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으로 만든 채 '불멸의 신성가족'인양 행세해온 정치검찰의 대오각성을 촉구하며, 아울러 위대한 촛불혁명의 서막을 연 이대학생회장 최은혜씨의 기소 취하를 위해 이전에 썼던 글을 다시 올립니다.    


**********


모든 국민의 관심이 박근혜 탄핵에 집중돼 있었던 11월 24일, 서울 서대문경찰서는 촛불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던 이화여자대학교의 총학생회장 최은혜씨(23)를 특수감금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최은혜씨가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것은 권력서열 1위(최순실)와 3위(박근혜)의 총애와 자본권력 1위(이재용)의 전폭적 지원을 받은 정유라에게 온갖 특혜를 제공하는 대가로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을 비롯해 온갖 반대급부를 받았던 독재총장 최경희의 하수인들이 자신의 죄를 반성하기는커녕, 비열하고 파렴치한 보복(고소·고발)을 가한 반동적 결과다. 





이대에 어마어마한 경찰병력을 투입한 서대문경찰서가 밝힌 최씨의 혐의는 '지난 7월 28일 오후 1시 45분부터 약 47시간 동안 평생교육단과대학 신설에 반대해 학생 수십명과 본관을 점거한 상태에서 교수 4명과 교직원 1명을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서대문경찰서는 당시 본관 안에 있던 4명의 교수와 1명의 교직원(이하 피해자들)이 112에 23차례나 "감금돼 있으니 구조해달라"고 신고했고, 피해자들이 본관 밖으로 나올 때 학생들과 물리적 마찰을 빚었기 때문에 최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밝혔다.



서대문경찰서는 (반칙과 특혜, 부정과 비리의 공동정범들로써 청산대상에 올라도 모자랄) 피해자들로부터 자신들의 감금을 주도한 학생들이 있다는 진술을 받았다고 밝힘으로써, 주동자가 없다는 이대생들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다. 서대문경찰서는 또한 피해자들이 고소·고발한 학생들 전체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지 않는 것은, (정유라 게이트의 공동정범인) 피해자들이 최씨를 제외한 학생들의 처벌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다시 말해 피해자들의 진술과 서대문경찰서의 검찰 송치는 최씨를 포함한 주동자들의 피해자들 감금행위와 그들과의 몸싸움이 불법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서대문경찰서가 최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한 것은, 최경희 총장의 일방통행과 학문의 상업화, 대학의 사유화에 반발한 이대생들의 본관 점거와 평화적 저항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소수의 주동자의 선동에 따른 불법행위며, 학내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력이라는 뜻이다.



최경희 총장의 특혜 제공과 탈법적 붙통행정이 만천하에 까발려졌고, 책임을 통감한 최 총장이 자진사퇴했으며, 평생교육단과대학 설립이 취소됐으며, 이대생의 위대하고 아름다운 저항에서 '박근혜-최순실-김기춘 게이트'의 견고한 철벽이 무너지는 계기가 마련됐음에도 서대문경찰서와 피해자들은 이 모든 것을 부정해버렸다. 이들은 부패한 기득권의 전형적인 전략인 갈라치기(주동자와 선동된 자)와 본떼 보여주기(최씨의 기소의견 검찰 송치, 나머지 주동자 면책)를 통해 이대생의 위대한 승리와 촛불시민의 분노마저 엿먹인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본관을 점거한 수백 명 학생들의 의견을 모아서 전달하고 다시 토론하고 재합의된 결과를 모든 학생들에게 전하고, 학교 측에 전달해야 할 누군가는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학교 측의 답을 들은 다음, 그것을 학생들에게 다시 전하고, 학생들 사이의 민주적이고 수평적인 토론을 거쳐 합의를 이룬 뒤, 그것을 다시 학교 측에 전달해야 하는 일을 총학생회장과 학생 몇몇이 하지 않는다는 누가 한단 말인가? 



이대생의 저항이 졸업생과 동문회를 거쳐 다수의 국민에게 커다란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도 이들의 이런 투쟁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본관을 점거한 수백 명 학생들의 투쟁에 이대생 전체가 동참한 것도 이 때문이며, 이런 압도적인 참여율은 이한열군의 장례식(필자는 이때 연대 대학원을 다니고 있었다)에 참석한 연대생의 참여율보다 높았다. 386세대 누구를 잡고 물어봐도 이런 참여율을 경험한 적이 있는지 물어본다면 이구동성으로 말한 것이다, 없다!    





상식선에서도 너무나 당연한 일임에도, 반칙과 특권에 기생해온 파렴치한 피해자들은 '정의로운 학생들의 민주적 투쟁은 무력으로 진압하기 일쑤인' 야만공권력을 이용해 '불의한 군인들의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하지 못하는' 정치검찰의 수중으로 제자를 떠넘김으로써 '박근혜 게이트' 전체를 부정하고 싶은 타락한 상아탑의 현실을 자백하고 있다. 그것이 정의와 자유, 평등의 실현이어도 자신의 이익에 조금이라도 피해를 준다면 반드시 보복해야 속이 풀리는 부패한 기득권의 권위주의적 위선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부정과 비리, 특혜와 굴종으로 가득했던 '정유라 게이트'에는 침묵했던 피해자들은 이대생의 위대한 승리를 뿌리부터 부정하면서도, 주동자 모두를 처벌하면 여론의 질타에서 벗어날 방법이 없다는 두려움에 총학생회장만 콕 찍어 보복하는 '박근혜-김기춘-조선일보의 채동욱 찍어내기'를 재현하는 비열함을 보여줬다. 최은혜씨를 비롯한 이대생들의 저항은 인류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위대한 촛불혁명의 단초가 됐다는 점에서 이들의 비열함은 촛불의 힘으로 응징해야 한다. 



분노한 시민들이 주도하고 있는 체제혁명은 이대생의 힘겹고 두려웠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민주적이고 평화적이며 수평적인 저항에 빚을 지고 있다. 피해자들로부터 주동자로 찍히고 범죄자로 내몰린 최은혜씨와 이대생들에게 촛불이 화답해야 하는 이유는 너무나 많아 일일이 나열할 수도 없다. 68혁명은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교 총학생회에서 제작·배포한 《비참한 대학 생활》이 결정적이었다면, 2016년의 촛불혁명은 이대생의 저항이 결정적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대학생은 상품 시스템을 작동하게 해주는 긍정적이고 보수적인 요소를 떠맡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한 임시적인 역할을 부여받는다. 대학생은 단지 사회 입문자에 속할 뿐이다"라고 절규한 스트라스부르대학교의 총학생회가 "전위가 된다는 것은 현실의 발걸음으로 행군하는 것"이라며 68혁명의 불씨를 던졌다면, 그것에 자극받아 자발적으로 시작된 68혁명의 슬로건은 '상상력에게 권력을'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 '지루함은 반혁명이다' 등으로 승화됐다. 





우리는 많은 보도와 영상 등을 통해 이대생의 창의적이고 아름다운 저항이 바로 그러했음을 알고 있다. 촛불집회가 축제처럼 진행되는 것도 이대생의 저항과 분노한 시민들의 저항이 뿌리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촛불이 이화여자대학교로 향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촛불혁명에 참여한 모두가 법적 처벌에서 자유롭기를 바란다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된 최은혜씨에게도 그러해야 함은 두말 할 나위도 없다. 



이런 야비하고 파렴치한 형태의 보복과 고소·고발들이 법의 이름으로 진행될 것이다. 촛불혁명은 이제야 1단계의 반을 지났는데, 우리가 큰 것에만 관심을 갖는 동안 미시적 단위에서 진행되는 이런 보복과 고소·고발을 놓치게 되면 촛불혁명의 의미는 퇴색될 수밖에 없다. 시민이 주도하는 혁명에서 단 한 명의 피해자도 나오지 않게 할 수 없을지라도, 이런 식의 저열한 보복을 막아내는 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으리라. 이제 우리가 이대생을 지켜야 할 차례다.   



#새누리가박근혜다
#박근혜하야하라

#바른정당도박근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mangrove 2016.12.12 09:48

    최경희를 몰아 낼때는 한 팀인 것 처럼 행동했던 교수들이 또 학생들을 기만했다는 이야기로 밖에 안들리네요. 총장 사퇴 요구도 순수한 마음이 아닌 기득권 유지를 위한 헐리우드 액션이었다는 것이 통탄스러울 따름 입니다.
    그러면서 교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가르칠 것이 있다는 것이 놀라울 뿐 입니다. 기본적인 자질도 갖추어지지 않은 자들이 아직도 대학에 깊숙이 포진하고 이 나라 교육을 농단하고 있다는 것이 정말 역겹습니다.

    학생들의 순수함에 대한 응답이 보복이라는 것이 과연 사제의 관계에서 나올 수 있는 일인지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제자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살아 남아서 그들이 할 일이 무엇인지 묻고 싶습니다.

    이대 교수들은 전원 퇴진해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6.12.12 10:49 신고

      감금당한 교수들과 교직원이 고발한 것 같습니다.
      이들의 행태가 역겹습니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교단을 물러나도 모자랄 놈들이 역으로 주동자를 만들어 고발했으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촛불이 이를 막아야 합니다.
      이대생은 촛불혁명의 최대 공헌자입니다.
      그중 최은혜씨가 선두에 있었고요.
      그가 법적 처벌을 받는 것을 넘어 고발당했다는 자체가 촛불시민들을 경멸하고 욕보이는 짓입니다.

  2. 참교육 2016.12.12 19:57 신고

    정신 못차리는 경찰... 참 한심합니다.
    정의를 탄압하고 불의를 옹호하는 경찰이 있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를 찾기는 요원합니다.

  3. 공수래공수거 2016.12.13 08:54 신고

    견찰입니다
    일방의 주장만 듣고 기소를 해 버린 또 무리수,자충수를 두는군요
    법원이 잘 판단하길 바라겠습니다

    • 늙은도령 2016.12.13 15:59 신고

      법원의 판결에 앞서 이대생을 주동자와 어쩔 수 없이 끌려나온 부류로 나눈 정치공작부터 바로잡아야 합니다.
      그 정도의 인원이 모이면 어쩔 수 없이 일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나오기 마련인데, 이들이 의견을 전달하고 취합할 뿐이었지, 주도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4. 리미트 2016.12.13 10:59

    뻔뻔스런 인간들이 학교에 아직도 있으니.ㅉㅉㅉ
    빨리 몰아내고 정상화되기를.
    부역자 견찰도 처벌되기를 바랍니다.

  5. jeremy 2016.12.13 11:50

    어제 kbs 보도를 잠시 보고 있으니, 이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온 듯 차량사고 등의 일상적인 기사들을 많이 배치한게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기득권층과 부정한 정치권력들이 바라는 일상이란게 시민들이 그저 생존을 위해서 살아가는데 온 힘을 쏟아내길 바라는 것과 동일한 내용이겠죠. 시민들 자신이 자신의 생활 아니면 철저하게 무관심해지는 지점을 교묘히 찾아내고 일종의 최면을 걸려는 시도가 앞으로도 쉽사리 멈추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국 이런 생각들은 "무력한 시민의식"으로 회귀하도록 자기암시를 주는 것이겠죠. 또한편으로는 슬쩍 잊혀진 듯이 보이는 "이대생"들의 강력한 처벌을 통해서, 불안감과 포기감을 주는 것도 일종의 전략이겠죠. 그렇죠. 악의 굴레는 그리 만만하거나 쉽게 물러설 것이란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어리석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하지만 어제 잠깐 본 영화에서 대사를 떠올려보면 그리 절망적은 아닌 것 같습니다. 대충이렇습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을 악으로 물들여도, 그보다 많은 "희망"이 자라나서 이를 억누를 수 없다는 것.

    • 늙은도령 2016.12.13 16:00 신고

      그럼요, 혁명은 일상에서의 혁명이 가장 완벽하고 철저한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해지면 기득권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

  6. 국민은 곧 메시야 2016.12.13 13:48

    박그네와 같은 부류의 교수들인데,
    학교가 부정을 저질러놓고 학생들에 옳은 판단을 법적 대응했다면, 학교에 돈을 주고 배우는 학생으로써 당연한 권리를 주장해야 할듯 싶은데, 아니면 학비를 돌려주던가

    • 늙은도령 2016.12.13 16:01 신고

      반드시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대생의 승리를 폄훼하려는 비열한 공작입니다.

  7. 지켜보는자 2016.12.14 02:02

    아! 사욕과 아부에 물들어 중독된사람들이
    분별력이 있으랴~~~ 오로지 자신의 이익에
    반하고 자신을 건들이면 자신의잘못과는
    관계없이 법이란무기를 권력과 돈의힘으로
    휘둘러서 자신들의 세계를 유지시켜나가려는부패한 기득권의무리들~~
    지켜줘야 합니다. 시악한 무리들의 휘두르는 법이라는 칼에 희생되지 않도록~~
    변호사협회에서도 나서줘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6.12.14 13:38 신고

      이 나라는 가진 자들의 세상입니다.
      이것을 막기 위해 노력해야죠.

  8. 죽낭 2016.12.14 06:34

    위대하고 아름다운 상아탑의 모습입니다.절대적으로 지켜주어야 하고 박은혜양을 구출해 주어야죠.그게 우리의 임무가 아닐까요.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도움을 줍시다.

    • 늙은도령 2016.12.14 13:45 신고

      네, 계속해서 압력을 넣고 관심을 표하고 알려야지요.
      이렇게 해서 공론화가 되면 절대 처벌하지 못합니다.

  9. 신성경 2016.12.14 08:46

    어른으로서 부끄럽고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을 마다않고 악인들과 싸워 정의를 세우려는 이대생들에게 힘이되어주고 싶습니다.
    공유합니다
    페북에 공유하려고 2번이나 게시가 안되네요
    널리 알리고 싶었는데요

  10. 2016.12.15 02:48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16.12.15 22:05 신고

      그것에 대해서는 많이 고민했는데 이미 언론에 보도된 사진들이 많이 떠돌아 그대로 올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야 최은혜씨를 지키고 응원하는데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의 썰전에서 유시민이 휴민트를 가동해 문재인과 통화한 내용을 듣고 있자니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전원책처럼 아직도 '박근혜 게이트'의 본질(대통령 박근혜와 삼성오너 이재용처럼,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집단이 서로의 이익과 권력을 주고받으며 모든 피해를 서민에게 전가한 것)을 잘 모르는 자들이 넘쳐나는 것도 힘들었지만, 노무현 탄핵과 비극적인 죽음에 너무 많이 갇혀있는 문재인을 보는 것도 힘들었었다.





유시민이 말했던 것처럼, 필자 같은 소위 친노라는 사람들은 노무현을 지키지 못한 회한을 삶의 멍에처럼 짊어지고 산다. 조중동을 필두로 좌우를 가리지 않는 이땅의 모든 언론들과 부패한 기득권들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어 노무현의 마지막 살점 하나까지 갈기갈기 물어뜯으며 광란의 잔치를 벌일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었던 일초일초를 영혼 깊은 곳의 죄의식처럼 지니고 있다. 친노들은 그런 감정으로 문재인을 응원하고 유시민을 바라본다. 


 

친노들 중에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외치며 박근혜와 최순실은 물론 그들의 공동정범들 모두에게 가혹한 보복(정의의 실현)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은 편이다. 그 비율을 정확히 알 방법은 없지만, 분노한 시민들의 대부분도 게임이론을 통해 가혹한 보복(정의의 실현)을 가하는 것이 이익(정치경제적 정의를 실현하는 것으로, 이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를 원한다면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인 유전자》를 참조할 것)이라는 이완배 기자의 주장에 동의할 것으로 본다.



KBS와 MBC는 물론, 모든 방송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부각시켜 분노한 시민들에게 '착한 사람 콤플렉스'를 덧씌워 '박근혜 게이트'의 공동정범들에게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주는 것까지 고려하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최선의 방법일 가능성이 높다. 분노한 시민의 촛불에 이어 민주적 정치가 작동해야 할 부분도 있다는 것만 분명히 한다면, 필자도 이런 주장에 동의하기 때문에 문재인에게 원로들이 아니라 이대생과 성신여대(이들의 투쟁에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같은 청춘들이나 N포세대를 만나야 분노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려 했다.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에, 악화된 건강과 입원한 어머님의 병간호에 힘들었지만, 박근혜에게 질서있는 퇴진이라는 최소한의 탈출구(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지 못한 회한이 투영된 결과)라도 마련해주려는 문재인의 배려가 더욱 힘들었었다. 노무현과 친노들이 평생에 걸쳐 싸웠고 지금은 분노한 시민들이 싸우고 있는 반칙과 특권의 불평등체제를 종식시키려면 '박정희 신화'의 최대 수혜자인 박근혜를 철저하게 단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데, 선두에 서있어야 할 문재인이 노무현의 비극적인 죽음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아서 죽을 만큼 힘들었었다.



헌데 유시민의 탁월한 제안으로 전원책이 질문하고 문재인이 답하는 과정이 있었는데, 보수 세력 전체를 겨냥한 청산의지가 문재인의 답변에서 드러나, 모든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끝에는 김구라(전원책보다 현명했던)도 참여한 통화를 들으며, 가장 민주적 방식으로 반칙과 특권의 기득권세력(문재인이 말한 대로, 부패한 언론과 자본과 손잡고 권력을 주고받으며 국민을 길거리로 내몬 사이비·가짜 보수들 모두)과 맞짱떴던 평생의 친구이자 동반자의 비극적인 죽음을 막지 못했기에 보내는 것이라도 제대로 하기 위해 철천지 원수인 이명박에게도 고개를 숙였던 그날의 문재인이 되살아났음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이완배 기자의 주장에 80% 정도만 동의(인플레이션처럼 조절이 불가능한 상황까지 치달을 수 있어서 20% 정도는 민주적 정치가 작동할 공간으로 남겨둬야 한다)하는 필자지만, 박근혜(와 그 일당)에 대해서는 추호의 관용도 배풀지 말아야 그 다음이 가능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당연히 그 다음은 박정희의 군사쿠데타를 구국의 결단으로 왜곡·조작하고, 30대 이하에게는 최악의 결과로 강제된 반칙과 특권의 불평등성장과 노동착취, 강제적 실업을 '한강의 기적'이나 '위대한 산업화'로 과대포장한 자들과 세력을 이땅에서 쓸어내는 것이다. 



N포세대의 선택(진화론적으로 보면 최선의 저항이다)과 '자발적 복종'은 몇 가지 면에서 다르지만, 죽어 마땅한 자들을 권력의 심부에서 끌어내리는 데도 평화적 시위를 강요받아야 하는 것에는 '박정희 신화'로 포장된 반칙과 특권의 망령, '박근혜가 불쌍하다'면서도 평생을 알바와 비정규직, 일용직으로 전전해야 할 수도 있는 분들에게는 가혹한 사람들, '신은 강자의 편'이라며 반칙과 특권의 강자에게는 약하고 사회적 약자에게는 강한 자들의 저급한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박근혜 하야'와 함께 현재의 유럽을 만든 68혁명(고등학생이 주도했다!)의 위대한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치자, 우리는 모든 금지되는 것을 금지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홍영훈 2016.11.25 05:21

    대체 문재인 뭐라고 했길래...
    썰전을 보고나서 이 글을 읽으라는 건가?
    참으로 불친절한 글일세.

    살짝 짜증날라고 하네.

    • 송곳 2016.11.25 06:17

      이런 댓글이 더 짜증나네.

    • 늙은도령 2016.11.25 06:55 신고

      꼭 보기를 바라기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썰전의 시청률로 올려주고 싶고요.
      다음에는 친절하게 쓰겠습니다.

  2. 평민 2016.11.25 08:55

    예, 공감합니다. 박근혜는 무기징역을 받아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를 망가뜨렸습니다.
    이명박이도 4대강 책임을 반드시 짊어져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 정의가 싹이라도 틔울 수 있지않나 생각이 듭니다.

    • 늙은도령 2016.11.25 09:13 신고

      네, 박근혜라는 뿌리에 달려있는 것이 이명박이기 때문에 두 악당은 처절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들에 협조한 자들과 세력까지 쓸어낼 수 있다면 대한민국은 선진복지국가로 접어들 수 있습니다.

  3. 맹그로브 2016.11.25 09:47

    오랜만에 글을 올리렸군요. 건강을 염려하시는 분들 계시기에 저도 역시 걱정했었습니다.
    세상의 어떤 것도 몸과 마음만큼 가치 있는 것이 없습니다. 부디 건강 하시기를 바랍니다.

    일단 썰전 본방사수에 실패했기에 ~ 썰전이야기는 넘어가고.....

    저는 이명박근혜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과 널리 퍼져 있는 암적인 친일파들을 발본색원 하여 잔뿌리도 남기지 말고 캐내지 않으면 이 더러운 역사는 반복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에는 추호도 동정이나 관용따위가 들어가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이것이 제대로 되지 않는 이상 이 나라는 절대로 올바로 설 수 없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지나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과거의 반성에 의해서 영원할 줄 알았지만, 결국 독재의 잔재와 새누리 같은 매국정당 그리고, 친일파들이 득세하는 빌미만 제공 했을 뿐 입니다. 그 당시 우리는 그들 역시 원칙에 입각한 보수주의자로 생각했으나, 그들은 원칙도 철학도 아무것도 없는, 오로지 탐욕과 권력에 눈이 어두운 쓰레기들이었을 뿐 입니다.

    이것이 그들을 절대로 용서 할 수 없는 이유 입니다.

    어설픈 관용의 결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국민을 사랑했던 전직 대통령을 사지로 몰았으며, 국민은 탐욕에 뒤덮혀 사리 분간을 못하고 서로를 잡아 먹는 형국으로 변질 되었고, 나라의 국고는 바닥나고 국가부채 및 국민부채는 IMF보다 더 심각하게 증가하고, 나라의 모든 시스템이 정지되고 여기저기서 세금 파 먹는 소리가 온 나라를 뒤덮게 되었습니다. 그 뿐아니라 4대강 및 대기업이 국가를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가족단위 사기단이 국정을 점거하고 청와대는 삼류 룸싸롱이 되고 말았습니다. 국정교과서는 친일과 독재를 칭송하고 또다시 과거에 대한 청산이 없이 일본과 군사협정을 체결하는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들을 용서할 수 있습니까? 예수가 재림하고 부처가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절대 용서 할 수 없습니다. 아직 바닷속에서 떨고 있는 세월호의 아이들을 생각하고 구천을 떠도는 304명의 원혼들을 생각한다면

    절대 용서 할 수 없습니다. 화해니 화합이니 그런 개소리를 지껄이는 자가 있다면 혀를 뽑아 버려야 할 것 입니다.

    • 늙은도령 2016.11.25 19:35 신고

      건강이 악화되기 전에 노론부터 식민지사관을 거쳐 한국사학계를 지배하고 있는 친일적 시각에 대해 공부하는 중이었습니다.
      많은 책을 사서 읽을 생각인데, 그것을 통해 더욱 확실한 구별점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친일부역자 중에 어떤 자들이 청산대상이고 어떤 자들은 퇴출대상인지 살펴볼 생각입니다.
      친일이던, 친미던 나라를 말아먹은 자들은 걸러내야지요, 이 기회에.
      저는 박근혜 이후의 체제 개혁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것에 관해 글로 올릴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4. 공수래공수거 2016.11.25 10:14 신고

    전 오늘,내일이 중요한 고비가 될것이라 생각합니다
    상상하기도 싫지만 또 무슨 획책을 할까 조바심이 납니다
    '물론 이제는 시민의식이 성숙해 그럴일이 없을꺼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워낙 프락치같은 일을 잘 꾸미는 사람들인지라..

    비오고 춥다는게 좀 걱정이 되긴 합니다만 잘해 나갈걸로 생각을 합니다

    이번에 세월호의 의혹들이 좀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처단을 해야 합니다
    국정원 철근,통영호 출동 저지,다이빙벨.. 7시간과 함께..

    어머님이 편찮으신가 보군요
    도령님의 건강과 함께 쾌유를 빕니다

    • 늙은도령 2016.11.25 19:40 신고

      다음 주에 종합검사와 MRI를 찍으니 결과를 알 수 있겠지요.
      좋아질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5. Hjaz 2016.11.25 11:24

    우연히 타고들어온 블로그인데 참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저도 어제 썰전에서 뭔가 더욱 단단해진 문대표를 보니 마음이 좋더라고요.

    • 늙은도령 2016.11.26 03:24 신고

      네, 문재인 전 대표가 민심의 바다로 뛰어들었습니다.
      그 동안은 너무나 원로들의 말을 들었습니다.
      정치적 젊음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것이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제는 돌아왔으니 다행이고요.

  6. 댓글 2016.11.25 13:24

    전원책님의 경우 박근혜 게이트를 제대로 인지하고 있는 국내 몇 안되는 옳곧고, 바른 보수 중 일인입니다.

    • 늙은도령 2016.11.25 19:42 신고

      그런데 재벌을 감싸요?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이 삼성입니다.
      삼성을, 특히 이재용과 최지성을 치지 못하면 박근혜 게이트는 아무런 역사적 교훈도 주지 못합니다.
      전원책이 깨달아야 할 것이지요, 진정한 보수라면.

    • 댓글 2016.11.29 15:47

      박근혜 게이트의 핵심은 박근혜입니다. 흔히 말해 깡패가 돈 달라고 하는데 안주고 버틸 수가 있나요. 이부분에 대해서는 유시민 전 장관님도 동의하신 부분이기도 합니다. 현재 집중 해야할 것은 삼성이라는 부분적인 가지가 아니라 박근혜라는 뿌리입니다.

    • 댓글 2016.11.29 15:51

      그리고 박근혜가 먼저 내려와야 대기업에 대한 처분이 가능할 것입니다. 박근혜는 박정희의 정책을 보고 자랐고, 그것을 현재에도 적용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박정희의 정책은 분명 당시 급속도로 성장하기 좋았던 대기업 위주 경제 규모 불리기 였다면 현재는 대기업의 무차별 확장을 막고 스타트업을 집중 양성해야 할 때입니다. 하지만 스타트업이 좀 크려고 하면 대기업에서 압력을 가하거나 흡수해버리죠. 이 부분에 대해서 경제 사회 전반적인 개혁이 일어나기 위해서 박근혜 하야와 더불어 추후 야권이 정권을 잡게 된다면 대대적 개편이 필수적입니다.

    • 댓글 2016.11.29 15:53

      물론 지금 야권에서 그정도 일을 할 수 있는 인물이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 여권을 절대 다음 정권을 잡아서는 안됩니다. 하지만 야권에 정권을 잡을만한 인물이 없내요.. 대북관도 뚜렷하면서 서민 정치, 진정한 경제 개혁을 이뤄낼 수 있는 그런 사람 없을까요. 개인적으로 문재인 씨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북 지원이 부활할 것 같아서 반대입니다. 이재명씨가 괜찮아 보이긴 하내요. 늙은 도령님 생각은 어떠신가요?

  7. 닭잡는 개 2016.11.25 14:01

    노무현 대통령 조중동 기득권과 싸울때 더 강력하게 힘을 못쓰게 만들었어야 하는데 본인이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서 그렇게 한 것 으로 알고 당신은 참 가까이 보면 눈에 선한 빛이 보이는 분 그런분은 지도자를 하시면 안되요 상대의 약점이 보이면 숨통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 최선을 다 하여합니다

    판 갈아야할 때 갈아야 하지 시간이 지나면 모두 사용할 수 없어요 기다리고만 있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 아닙니다. 제가 가까이서 두 번정도 뵈었지만 뭔가 하나 양념이 모자라는 것 같은 분 뭔가 확신을 보여주지 못하는 카리스마

    열심히 하세요. 고깃집에서 도 고기가 타면 불판을 바꾸어요 나라가 지도자 잘못으로 썩고 있는데 어떻할 거요. 정치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하고. 지도자라도 국익에 손해를 끼치고 법을 어겼으면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하는 것
    순순히 내려오면 봐 준다는 그런 엉뚱한 소리 하지 마시요
    좋아하는 최순실 옆으로 당연히 가야하는 죄를 지은 사람 아버지 시절 경제인 청와대 불러다 놓고 돈을 갈취하는 것 보고 자라서 우리 일반인하고는 개념이 틀린 사람 지금도 그렇게 하여도 되는 것 처럼 생각하고 본인 잘못도 모르는 사람 에게 무슨 맘으로 선처를 한다고 하는지요 빨리 내려와서 곱게 징역으로 가시라고 한 번 외처보세요

    국민은 이미 단신을 그 자리에서 해임하였기에 더이상 버티고 개망신 당하고 추하게 남은 인생 보내지 말라고 아주 큰 소리로 결의에 찬 말투로.

    국민은 내일 닭모가지 비트는 마음으로 집결합니다
    너무 많이 참여를 하여서 사고가 걱정이고 화장실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도록 조치를 바랍니다.
    참고로 광화문 네거리 주변에 빌딩 소유자 단 한 사람도 현장에 안 나와요
    건물주 조중동 건물 내지는 재벌과 대기업 그리고 보수 기득권 일제시대부터 빨대를 꼿아 넣은 사람들 소유

    • 늙은도령 2016.11.25 19:43 신고

      님의 댓글에 대한 답글은 며칠 내로 글로 올릴게요.
      이 문제는 단순한 것이 아니고, 저도 생각이 정리된 상태가 아니지만, 99% 정도는 끝났기에 며칠 내로 글로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가혹한 청산은 필요한데, 어떤 청산이냐에 대한 고민이 너무 약합니다.
      최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는 것을 고민합니다.

  8. 호랑이 2016.11.25 17:50

    아 좋은 리뷰입니다

  9. 낭중지추 2016.11.25 23:10

    글을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며칠 기다리면서 걱정했는데 .... 중요한 시기이니만큼 건강관리에 더 집중하셔야 합니다

    • 늙은도령 2016.11.25 23:31 신고

      네, 조심하면서 해야죠.
      어머님이 퇴원하시면 회복도 빠르겠지요.
      다음주에 종합검사를 받으니 그 다음주면 결과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필자는 세상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를 위해, 능력과 건강이 허락하는 한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읽고, 관련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한다. 소아마비에다 간암은 잡았지만 간경화는 여전하고, 수면장애와 만성적인 디스크 등 수십 가지 병들로 아슬아슬하고 간당간당하게 살지만, 빌어먹을 인복은 있어서 감히 도전하지 못할 분야도 어떻게든 돌파해낼 수 있는 행운은 가지고 태어났다. 





이런 기본적인 베이스에서 필자는 미국과 유럽에서 발간된 책들을 7: 3 정도의 비율로 구입해 미련할 정도로 정독한다. 미국에서 발간된 책들은,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 대한민국이 미국과 일본, 필리핀 등에 이어 지옥으로 들어선 이유와 과정을 파악하는데 결정적 도움을 준다. 유럽(일본과 중국 포함)에서 발간된 책들은 대한민국이 헬조선에서 탈출하기 위한 더 나은 해법을 찾는데 현실적 도움을 준다.



필자가 관심을 두는 분야 중에는 교육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필자보다 뛰어난 블로거와 논객들이 너무 많아서 글로 옮기는 것은 자제하고 있다. 최소한 글로 옮기지 않으면 중간은 갈 것이라는 얄팍한 계산도 작용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이번 글만은 예외로 해야 할 것 같다. 미국 유학파들을 비판하는 글을 쓰기 위해 예전에 읽었던 책들을 다시 살피는 중에 글로 옮겨야 할 내용을 찾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족이나 설명도 달지 않은 채 찰스 모리스의 《미국은 왜 신용불량 국가가 됐을까?》에 담긴 내용을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독자들의 이해에 방해가 되지 않는 한도에서 일부분은 생략했다. 필자가 인용한 부분들은 교육보다는 금융에 가까운 내용이기 때문에, 필자가 사용하는 흙수저 하나는 교육이란 밥상에 올려도 그리 욕먹을 짓은 아닐 것 같다. 한국이 왜 가장 미국적인 나라인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리라 믿으면서. 



모든 산업화된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은 하류층에게 가장 가혹한 나라인 것 같다. 달갑지 않은 일이지만, 겉으로는 저소득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제도들도 결국 상류층의 돈을 벌어주는데 기여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부모가 가난한 것이 재능 있는 자녀들을 교육시키는 데에 별로 장애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직 미국이라는 나라만이 샐리매(sallie Mae. 미국 최대의 학자금대출업체)와 같은 기구를 만들어서 그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설리매, 즉 지금의 SLM주식회사는 원래 페니매와 유사한 조직으로서 학자금대출의 유통시장을 형성하려는 목적으로 설립되었다...SLM은 직접대출시장에 진출했고 일정 기간의 전환기를 거쳐 2004년에 민영화되었는데, 바로 그해에 회사는 '37%'의 기록적인 세후 이익을 실현했다.....학자금대출기관은 고리대금업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어떤 학생이 융자금의 원리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그에 대한 수수료와 가산이자와 추심 수수료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학자금대출금융기관의 대출서비스는 빈약하기 그지없는 것으로 평판이 나 있고, 상환 만기도 도래할 때 채무자에게 고지 시도조차 하지 않기 때문에 부도 사례들이 수없이 많으며 널리 알려져 있다. 자금대출과 신용카드대출과 대출 회수업무는 독립된 한 부서가 담당하고 있는데...2005년에만 해도 채무관리 수수료만으로 8억 달러를 수취했다. SLM은 공식적인 캠퍼스 마케팅으로도 유명하고, 대학의 융자담당관과도 긴밀한 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미국에서 학자금대출기관들이 그 엄청난 수입을 나누어 갖는 현장의 저편에서는 대부분의 학생들이 과중한 채무부담을 안은 채 졸업하는데 이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드문 일이다.....정부도 SLM과 거의 동일한 대상에 동일한 성격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연방정부 직접대출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그러나 과거에 그랬듯이, 직접지원프로그램은 전체 연방정부 예산에서 23%로 그 규모가 제한되어 있고, 나머지 77%의 예산은 민간대출기관을 대상으로 한다. 모든 학자금대출이 직접대출프로그램을 통해 운영될 수만 있다면 수백만 명에 달하는 학생들에게 학자금 전액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 같다. 아무리 원래의 학생지원 입법의 의도가 좋다 해도 실제로 운영하다 보면 학생을 돕는 일은 부차적인 목표가 되고, 금융 부분에 돈을 쓸어담거나 돈이 있는 엘리트를 우선시할 것에 틀림없다.           






우리의 학자금대출과 관련된 시스템은 미국의 것을 수입해서 조금 변형시킨 것에 불과하다. 미국과 더불어 대학등록금이 가장 높은 대한민국은 부에 따른 차별을 공고히하기 위해, 미국에서 차별을 공고히하는데 성공한 시스템이면 무조건 들여온다. 그 중심에 지배엘리트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미국 유학파가 자리하고 있음은 불변의 사실이고, 탐욕의 금융업체들이 자리하고 있음도 불변의 사실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격을 매겨 중하층의 지갑을 털어가는 시장경제에 편입시키는 미국은, 대학의 서열에 따라 신입사원의 연봉이 차이나는 것을 당연시여기는 나라인데, 천벌을 받아도 모자랄 미국 유학파는 이것마저 직수입해 불평등의 출발점을 한두 살까지 낮추는데 성공했다. 학벌없는 사회는 돈지랄의 사회로 바뀌었고, 광복 이후 최초로 부모세대보다 못사는 자식세대의 헬조선이 현실화됐다.  



학자금대출을 받은 많은 학생들이 취업을 제대로 못해 신용불량자로 내몰리고, 비정규직과 알바를 전전하며 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시기를 부채와 이자를 갚는데 허덕이고 있다. 이를 바로잡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이놈의 지랄맞은 정부와 여당이 학생들의 고통을 해결해줄 의지가 추호도 없기 때문에 더욱더 많은 청춘들을 지옥으로 내몰고 있다. 





해결책은 늘 뻔하고 고리타분하다.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이 주도해 유럽을 뒤흔들고 미국까지 상륙했던 68혁명을 재현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이 원하는 체제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자신이 상위 1%에 속하지 않는다는 계급의식만 공유할 수 있다면 모든 불평등의 근원으로 등장한 교육불평등을 해결할 수 있다.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국가들이 대학등록금을 폐지할 수 있었던 것도 68혁명 때문이었다.



공공연히 말하고 떠들어야 한다. 정부와 여당이 대학등록금을 반값으로 만드는 법안을 올해 안에 통과시키지 않으면 이번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나 정의당에 표를 던지겠다고. 그럴수만 있다면, 그런 다짐이 구체적 형태로 표출될 수 있다면 현 정부 내에 모든 청춘과 부모들을 지옥으로 내모는 금수저용 대학등록금을 흙수저용으로 바꿀 수 있다. 이미 유럽에서 성공사례가 있고 미국도 상당한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라고 못할 것도 없다. 



정치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 유권자는 그런 정치를 바꿀 수 있다. 그게 대한민국 헌법에 나온 민주주의고 거의 모든 국가의 헌법에 포함돼 있다. 우리는 요구해야 한다, 교육에 대한 국가의 의무를 다하라고, 국민이 누려야할 당연한 권리를 실현하라고. 목소리를 하나로 모아야 하고 증폭시켜야 한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아우성이 가장 클 때, 그래서 다른 소리들이 그것을 압도할 수 없을 때 비로서 화답하는 유일한 체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1. 공수래공수거 2016.01.13 08:45 신고

    대학 장학금 제도가 좀 바뀌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악순환이 되풀이되게끔 되어 있습니다

    • 늙은도령 2016.01.13 17:10 신고

      등록금을 내리면 됩니다.
      그래야 지나칠 정도로 높은 대학진학률이 줄어들고 고졸들의 임금이 높아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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