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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5천만 국민 모두가 테러 혐의자가 된다



많은 분들이 정의화가 직권상정했고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의원들이 필사적인 필리버스터로 제지하고 있는 테러방지법이 얼마나 위험한 악법인지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유신독재의 첨병이었던 중앙정보부의 도감청은 아날로그적 방법(한 명의 간수가 전체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벤담의 파놉티콘에 유선전화 도감청과 잔혹한 고문과 공갈·협박이 더해진 것)이었기에 국민의 극히 일부만 감시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물리적이고 기술적인 감시가 미치지 못하는 공간에 있으면 천하의 중앙정보부라 해도 모든 국민을 동시에 감시할 수 없었습니다(푸코의 《광기의 역사》와 《감시와 처벌》을 참조).





이런 물리적 한계 때문에 간첩 등의 혐의를 씌우려면 증거를 조작하고 가짜 증인을 섭외하고, 잔혹한 고문을 자행해야 했습니다. 야간통행금지를 실시한 것도, 대학과 시민단체 등에 프락치를 심어놓은 것도, 3명 이상의 남녀가 모여있으면 불법집회로 간주해 강제연행하거나 해산시킨 것도, 머리가 길다고, 치마가 짧다고, 가수의 손동작이 고정간첩에게 지령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가수의 가사가 퇴폐적이고 비관적이라고 검열하고 금지하고 퇴출시킨 것도 국민 모두를 감시할 수 없어서 정치적 희생양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을 사용하고, 인터넷 검색과 웹서핑을 하고, 스마트TV를 시청하고, SNS를 사용하고, 어디에나 있는 CCTV와 자동차에 장착된 블랙박스에 찍히고, 구굴어스와 스트리트뷰처럼 인공위성에 촬영되는 모든 것들이 전자적 기록(디지털 흔적)으로 저장되고 분류되고 범주화되는 2016년의 테러방지법은 모든 국민을 적은 인원으로 동시에 감시할 수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장착된 서버만 준비하면 5천만 국민 모두의 빅데이터를 구축할 수 있고, 그에 따라 가장 저렴하고 효율적인 감시가 가능합니다.



통신사와 포털 등에 도감청장비만 설치하면,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텔레스크린으로는 도저히 구현할 수 없는 감시가 가능해집니다. 2016년의 '디지털 파놉티곤'은 디지털 기록이 저장돼 있는 서버만 확보되면 모든 국민을 24시간 감시할 수 있습니다. 유신독재 시절의 중앙정보부가 꿈도 꾸지 못했던 총체적이고 상시적인 감시가 가능합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의 압박에 정의화가 직권상정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구글 회장이 말한 대로 '사적 공간'이란 존재할 수 없습니다(바우만의 《친애하는 빅브라더》와 《감시사회로의 유혹》, 니콜라스 카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과 《빅 스위치》, 한병철의 《투명사회》 등을 참조).



만일 미국에서 애국법이 폐기되지 않았다면 테러용의자가 사용한 스마트폰의 잠금장치를 풀라는 법원의 명령을 애플이 거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개인의 자유(특히 슈퍼리치와 보수 성향의 시민)를 중시하는 미국 같은 나라도 애국법이 위력을 발휘할 때는 유신독재 시절보다 더욱 심각한 민주주의와 자유, 인권이 유린됐습니다. 영장없는 도감청은 물론 압수수색, 임의동행, 강제연행, 강제구금 등이 자행됐고, 누구도 이에 저항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잘 모를 뿐 애국법에 맞섰던 모든 기업들이 정부의 압박을 견디지 못해 문을 닫거나 회사를 팔아야 했습니다. 강제출국 당한 인사들도 수두룩했으며 '테러 혐의가 있다'는 것만으로 기업을 압수수색했고 영장없는 체포가 가능했습니다. 미국도 이러했는데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고 민주주의의 성숙도와 개인적 경험이 미국보다 떨어지는 대한민국에서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어떨 것 같습니까? 



자신의 방에서 친구와 통화하다 말 한마디 잘못하면, 인터넷을 사용하고 검색과 웹셔핑을 하다 무심코 클릭 한 번 잘못하면, CCTV와 블랙박스, 인공위성에 이상한 행동이 찍히면, 케이블이나 스마트TV의 리모콘을 돌리다 우연히 본 것이 문제(법적 기준에 따른 것이 아니라 국정원의 의지가 기준이다)가 있다면, 제어할 수 없는 잠꼬대에 문제의 단어가 들어있다면, 그래서 국정원의 혐의를 적용하면 빠져나갈 방법이 없습니다.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지역과 출신과 지위를 가리지 않고, 깡패와 건달과 조폭을 가리지 않고, 오직 엿장수 맘대로를 외치는 국정원에 의해 모든 국민이 테러리스트, 테러용의자, 테러협력자 등등으로 규정되고, 그 순간부터 모든 권리와 기본권이 정지됩니다. 디지털감시가 무한대로 펼쳐질 수 있는 2016년의 상황을 고려할 때, 필리버스터로 힘겹게 막아내고 있는 테러방지접이 통과되면 북한과 남한의 차이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신 차리십시오. 디지털 파놉티콘을 구현할 수 있는 테러방지법은 아이돌 가수와 연습생도 정치적 희생양이 될 수 있는 잠재적 테러리스트에 불과합니다. 권력자의 마음에 안들면, 5천만 국민 모두가 잠재적 테러리스트에 불과합니다. 공안검사의 눈에는 모든 국민이 잠재적 간첩이라면, 테러방지법을 장착한 국정원의 눈에는 모든 국민이 잠재적 테러리스트입니다. 너무 섹시해서, 너무 아름다워서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분류될 수 있습니다. 



박정희 유신독재의 중앙정보부와 박근혜 공포정치의 국정원은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차이는 과학기술, 특히 전자통신과 감시기술의 발전이 불러온 차이입니다. 테러방지법이 통과되면 모든 국민이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감시의 대상이 됩니다. 남녀노소는 물론 일베회원과 어버이연합, 엄마부대, 서북청년단 등도 감시의 대상에서 제외되지 않습니다. 디지털 파놉티곤이 작동하면 모든 국민이 다수의 감시받는 자와 소수의 감시하는 자로 나뉩니다. 



테러방지법의 국회를 통과하면 모두 국민이 잠재적인 테러리스트 목록에 등록될 수 있습니다. 그것도 나보다 나를 더 잘안다는 빅데이터의 형태로!!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