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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셀프공천과 진영 영입, 더민주 망치는 김종인과 박영선



먼저 김종인의 경제민주화를 담아낸 '777플랜'은 엉터리라는 것부터 밝힙니다. 이에 대해서는 나중에라도 자세히 다룰 시간을 내보겠지만, 경제학을 제대로 이해한 전문가와 주류경제학이 절대 풀어내지 못하는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전문가들이 이 작업을 하고 있어서 저까지 아까운 시간을 내야 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김종인보다 배움의 깊이가 더욱 뛰어나고, 그보다 수십 배는 현장에 대해 잘 아는 전문가들 모두가 엉터리라고 하는 것만 밝혀둡니다. 





현재 더민주에서 벌어지는 미친 짓거리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려면, 철학적 깊이와 권력욕에서는 트럼프와 별반 다르지 않은 김종인과 인격적 수양과 권력욕에서는 박근혜와 별반 다르지 않은 박영선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논리적이고 학문적인 근거조차 불분명한 구시대의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히틀러적 권력욕을 차리투스트라의 일반의지로 포장하는데 성공했을 뿐인 김종인은 박근혜와 이란성 쌍둥이에 해당하는 권력욕의 화신입니다. 



평생을 경제민주화를 위해 헌신해왔다는 것(그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18~19세기의 고전파경제학에서도 수없이 발견되는 흔하디 흔한 것에 불과하다. 고전파경제학이 상정한 시장이란 경제적 정의가 실현되는 교환의 장소였다. 이런 시장의 역할 때문에 각각의 개인 자신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해도 사회 전체로서의 이익이 커진다고 부분적 진실로 전체를 재단하는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었다)으로 지독한 권력욕을 변호할 수 있었던 김종인에게 지칠대로 지친 (그래서 정계은퇴를 고민했던) 문재인은 최상의 먹이감이었습니다. 



정동영, 박근혜, 안철수의 경제멘토이자 킹메이커였지만 그들의 권력욕이 자신과 다르지 않음을 알았기에, 그래서 자신에게 전권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뛰처나왔으면서도 경제민주화를 내세워 비판을 면할 수 있었습니다. 마치 진보적 가치를 실현할 (평등)민주주의로 포장되기 일쑤인 사이비 경제민주화 덕분에, 김종인은 주류경제학(오류가 너무 많아 책을 몇 권이라도 쓸 수 있다)이라면 꼬리를 내리는 진보·민주 진영에서도 러브콜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어우러져 상대의 장점부터 보는 경향이 있는 문재인ㅡ대선 패배를 받아들인 이후부터 시작해 당대표에 오른 후에도 끊임없이 이어진 비주류·탈당파의 흔들기와 '노무현 죽이기'로 대한민국(남조선이라 해도 틀릴 것이 없는)의 절대강자에 오른 조중동의 '문재인 죽이기'에 지칠대로 지친 문재인에게 전권을 받아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모두가 경제민주화의 최고봉이라 하니 지리멸렬한 당을 추스리는데 성공(수평적 토론의 결과를 수직적 체제로 실현해낸)한 문재인으로서는 그의 리더십이 더없이 필요했을 터이고요. 





경제학을 전공한 유시민이 김종인의 영입을 '찬밥'이라고 했던 것도 이 때문인데, 더 큰 불행은 그를 영입하는 과정에서 상당한 지분을 확보한 박영선을 잔류시킨 것이었습니다. 문재인의 입장에서 보면, 종편의 주구가 아닌 공영방송이었던 시절의 MBC에서 여성앵커로서 성공한 이력을 바탕으로, 국회에 입성해서는 특유의 전투력으로 대여투쟁의 이미지를 더하는데 성공한 박영선의 탈당을 막으려면 김종인에게 전권을 주어서라도 영입을 서둘러야 했습니다. 



여러 가지 요인들이 겹쳐 대악수임을 깨닫지 못했던 문재인은 박영선이라는 존재의 권력욕을 오판했습니다. 그는 당헌·당규의 개정과 시스템 공천처럼 투명성을 강화한 혁신의 결과물, 이것들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 인재들까지 영입했고, 상상도 하지 못한 10만 명의 온라인입당까지 이루어졌기 때문에, 김종인 비대위체제의 더민주에서 박영선이 칼자루를 쥔다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 판단(문재인은 이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다)했을 것입니다



필자가 보기에, 유시민도 그러했겠지만, 자신과 정반대의 리더십을 구축한 노무현을 보좌했던 문재인의 국정경험이 권력욕의 화신들인 김종인과 박영선(+홍창선+이철희+김헌태 등)이 한쌍을 이루더라도 박근혜와 이한구 조합처럼 막갈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도록 만들었을 것입니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만 보인다(문재인이 본 김종인)'는 것과 '돼지 눈에는 돼지만 보인다(박영선이 본 김종인)'는 것의 차이를, 하루라도 빨리 대표직을 내려놓고 싶었던 당시의 문재인은 깜빡했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백의종군한 문재인은 이상돈 영입과 세월호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대여투쟁(새누리당 비판은 초딩도 한다)의 전투력만 탁월할 뿐 '인간에 대한 예의'라는 인격적 수양과 '공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정치철학에서 형편없다는 것이 만천 하에 드러난 박영선이 김종인의 권력욕을 자극해 철저한 보복을 가하는 것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박에 없었습니다. 불행은 겹친다고,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고약하게 맞물린 특수한 상황이 준비돼 있었습니다. 





그것은 실패한 지도부의 만병통치약인 '친노패권주의 청산'을 박영선이 독점해도 이에 제동을 걸 수 있는 비주류 수장들이 모두 다 탈당한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박지원·김한길·안철수가 없고, 문재인도 백의종군한 상황에서 박영선은 (홍창선과 이철희, 김헌태의 도움을 받아) 더민주의 내부사정에 둔감한 김종인의 추인만 받아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그러나 책임은 지지 않는 일인지상 만인지하의 자리에 오른 것입니다 



필리버스터 조기중단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박영선이 조중동과 종편의 끊임없는 부추김에 킹메이커가 아닌 킹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 김종인을 구슬려 '정무적 판단(=유체이탈화법)'이란 탈출구를 찾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였습니다. 그녀는 김종인에게 시스템 공천의 결과물인 1차 컷오프에 반발해 당헌·당규와 시스템 공천마저 무력화시킬 수 있는 절대권력을 움켜쥐면 대권도전도 가능하지 않겠냐고 떠받을 것이며, 김종인이 이를 덥석 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겠지요. 



정청래와 강동원, 이해찬, 김빈 등의 컷오프와 청년비례 공천 등의 파행을 거쳐, 공천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만으로 단 하루만에 적에서 동지로 급변신한 진영의 영입(심지어 공동선대위원장 설이 유력했다)과, 박근혜에 전혀 뒤지지 않는 독선과 몰상식의 극치인 비례대표 선정과 순번(셀프 공천)이 그 결과입니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이미 불가능해진) 총선 승리만 외치는 새누리당스러운 자들(이중 상당수가 중도를 표방한 자들이다)의 김종인 떠받들기는 더민주를 회생불능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필자가 연속되는 글들을 통해 정의당이 원내교섭단체에 이를 수 있을 만큼 밀어줘야 더민주의 지지층 변화와 김대중·노무현 지우기, 내부로부터의 붕괴(유시민의 분석이기도 하다)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것도 김종인과 박영선 조합의 실체를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렇게 해야 새누리당의 개헌선 확보를 저지할 수 있고, 이한구를 내세운 박근혜의 비박학살을 활용해 0.01%의 기적에 해당하는 총선 승리도 꿈꿀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그 최종 목적지에는 노무현에 필적하는 리더십을 구축한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도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대한민국이 헬조선에서 벗어나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이자 선진복지국가로 진입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가 어떤 분석을 내놓고 어떤 주장을 하던 최종 선택은 각자의 몫입니다. 다만 부분들의 합은 언제나 총합보다 크다는 것이 진실이라면, 각자의 선택에 따른 책임을 지는 것 말고도, 애꿎은 타인들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은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까뮈의 말처럼, 최소한 가해자 편에 서지 않는 것이 진정한 정의로 가는 첫 번째 걸음임도 기억해주십시오.  





해서, 천호선이 박영선을 꺾고 구로을에서 당선돼야 하는 이유에 다른 무엇이 필요하겠습니까? 전통의 지지자들도 무시하는 김종인-박영선 비대위체제에 맞서 지금까지의 공천결과를 되돌릴 수 없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도 확실하게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으로 행동하는 양심의 유권자들이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최상의 길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