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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안희정의 대연정, 정치·선거전략적 분석과 유시민


안희정이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시대정신에 명백히 배치되는 대연정을 고집하는 데는 몇 가지 정치·선거전략적 계산이 깔렸다고 봅니다. 노무현의 죽음과 대연정에 관한 안희정의 과거발언, 충청도지사로의 경험까지 고려하면 대연정이 자신의 소신이라는 안희정의 강변은 나름대로의 일관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한국현대사의 적폐를 청산하고,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것과 함께, 성장의 본질인 불평등과 차별을 줄이려면 대연정이 필요하다는 소신은 명분이 없는 것도 아닙니다. 





불확실성(또는 우연)을 두려워하는 대부분의 인간은, 정치이념을 진보, 보수, 중도라는 세 가지로 단순화할 때 불확실성을 키우는ㅡ이를 테면 보수는 진보의 득세를, 진보는 보수의 득세를, 중도는 보수와 진보의 충돌을 피하고자 하는 바람에 중간의 어디쯤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많은 유권자들이 박근혜의 탄핵과 헌정 중단, 국정 공백이라는 혼란에서 하루라도 빨리 벗어나고자 싶은 마음에 대연정이 매력적으로 다가올 가능성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안희정의 대연정은 보편적 공감을 끌어낼 수 있는 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안희정이 고려한 첫 번째 정치적 계산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노무현에게 퍼부어진 광란의 공격에 그를 지키지 못한 회한과 분노, 복수와 두려움의 혼돈 속에서 벗어나기 위한 노력이 대연정으로 이어졌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이것이 안희정의 두 번째 정치적 계산으로 다듬어지고 확고해졌을 수 있습니다. 



보수 성향이 강한 충청도의 지사로 지내면서 새누리당(자유한국당+바른정당)과의 연정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토로한 것으로 볼 때, 행정가로서의 성공 경험이 앞의 두 가지와 합쳐지면서 세 번째 정치적 계산으로 자리잡은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나는 이런 철학을 가지고 있으니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라는 방식으로 자신을 정치상품으로 내놓은 안희정의 대연정은 여기까지는 나름대로의 정당성과 개인적 역사, 현실경험이 반영된 매력적 소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지율의 폭발적인 상승이 이를 입증했으니까요.



이제부터는 안희정의 대연정을 설명하며 정치적 계산이라는 부정적인 뉘앙스의 단어를 사용한 것에 대해 다루어보겠습니다. 첫 번째는 안희정의 개인적 경험과 성찰에서 나온 대연정이 촛불집회에서 드러난 시대정신(박근혜 탄핵과 새누리당 해체, 부역집단과 이명박 처벌 등)과 배치된다는 것입니다. 민주주의란 정의를 실현하는 행동규범이자 사회형태와 체제이념이며, 민주적 정치란 책임을 전제로 한 권한의 대의라는 점에서도 안희정의 대연정은 차기정부의 모토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안희정은 개혁과제에 동의하는 조건으로 자유한국당과의 대연정도 가능하다 했지만, 그것은 이명박근혜 정부의 대한민국 말아먹기를 뒷받쳐준 새누리당과 고위관료, 쓰레기 언론(무엇보다도 KBS와 MBC, 헌재의 파면결정에 숨어있는 1인치가 이것인데 별도의 글로 다루겠다), 재벌, 뉴라이트 등에게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개혁과제에 찬성하는 것으로 이전의 범죄를 면죄해준다는 것은 박근혜가 그렇게도 좋아했던 '초법적 정치'와 그리 다르지 않습니다. 



안희정의 대연정은 또한 시민들의 참여를 광장과 거리까지로 한정한 채, 그 다음은 제도권이 풀어가야 한다는 '이원론적 민주주의'에 따라 주권재민의 최신판인 시민주권 행동주의(시민이 모든 정치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시민개입주의)에 역행한다는 점에서 구시대적이며 엘리트주의적입니다. 프랑스대혁명의 시대정신을 로베스피에르의 공포정치(초법적 정치)가 망쳤다면, '구더기 무서워 장 못담그겠다'는 안희정의 대연정은 촛불혁명의 시대정신을 망칠 수 있습니다. 



안희정의 대연정이 현 집권세력의 무능이나 잘못에 대한 심판의 의미로 정권교체가 가능하다는 대의민주주의와 정당정치를 위태롭게 만든다는 것까지 더하면, 지속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의 소신과 의지로 다양한 선호와 정치관, 자기결정권을 가진 5천만 명의 대한민국을 무리없이 통치할 수 있다는 것은 지나친 자신감이거나 이루기 힘든 희망사항입니다. 가운데에 위치해 양쪽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신념은 정당정치를 죽이는 것이지 살리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폭등하던 지지율이 하향세로 접어든 뒤 대연정에서 한 발 물러섰던 안희정이 다시 대연정을 전면에 내세운 것은 더민주의 경선방식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정권교체에 대한 유권자의 열망이 너무 강하다 보니 더민주의 경선이 곧 본선과 다를 것이 없는데, 최대 22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완전국민경선 선거인단수는 당내 경선에서도 반문재인 연대가 가능할 수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선거인단수가 많아지면 질수록 문재인 지지층의 비율은 줄어들 터, 1차투표에서 2등을 차지할 수 있다면 결선투표에서 역전도 가능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문재인 지지자들과 이재명 지지자들 간의 간극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계산이 불가능한 것도 아닙니다. 문재인을 떨어뜨리기 위한 보수 진영의 역선택도 가능하다는 것까지 더하면, 꼬리를 내리는 듯했던 안희정이 대연정에 다시 드라이브를 건 것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만일 2차 선거인단 모집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면, 안희정의 대연정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럴 경우 촛불혁명의 꿈은 거의 대부분 물거품이 될 것입니다. 권력욕에 사로잡힌 구태정치인들의 정치공학적 개헌의 방향도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습니다. 정제되지 않은 언어의 남발로 문재인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일부 문캠 인사들의 설화까지 더하면 안희정의 대연정은 문재인 대세론까지 뛰어넘지 말라는 법도 없습니다. 



해서, 유시민이 필요합니다. 일당백, 아니 일당천을 할 수 있는 유시민이 필요합니다. 문캠에 합류하는 인사들이 갈수록 올드해지고 흠결이 있다는 점에서도 유시민이 필요합니다. 인수위가 없다는 특별성 때문에 최대한도로 인재들을 영입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검증이 이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것은 문재인 후보(또는 캠프)의 인재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당선되자마자 국정 운영에 들어가는 것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인사잡음과 설화는 문재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시민이 문재인 캠프에 합류해 전체적인 조율에 관여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차기정부가 적폐청산과 국가개혁에 성공한 다음에는 안희정의 대연정을 고려할 수 있을 텐데… 정치도 세상일 만큼 정말 어렵네요. 문캠의 헛발질(당내 경선이 먼저다!)이 늘어날수록 페미니즘 이론가인 조안 트론트가 '무엇이 가장 좋은 원칙인지를 찾는 것보다 어떻게 개인들이 정의롭게 행동하도록 가장 잘 무장시킬 수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던 것이 떠오릅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