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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늙은도령이 본 근현대사 비판ㅡ현대성의 탄생1



1. 현대성의 탄생




사람을 죽이기 위한 이 복합체(제국보안본부)는 사회 디자인 및 사회공학이라고 하는ㅡ전형적으로 현대적인 권력, 자원 및 관리기술들의 집중과 화합된ㅡ전형적으로 현대적인 야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홀로코스트의 가능성은 현대 문명의 일정한 보편적 특징들 속에 뿌리박고 있었다...(현대) 문명은 자신이 탄생시킨 가공할 힘들의 도덕적 사용을 보장할 수 없음을 입증했다.


                                                               ㅡ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인용

 


                                                                  



고령임에도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는 영국의 위대한 석학, 지그문트 바우만은 국제적인 명성을 안겨다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에서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유대인 600만 명을 아우슈비츠에 모아 최소 비용으로 학살하는 과정이 현대성의 압도적인 힘이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나치가 저질렀던 홀로코스트가 근대이성의 결과물인 거대관료제와 과학과 기술-경제적 기획, 의학과 화학, 인문학과 경영학, 심리학과 각종 사회공학들이 총망라된 사건이었음을 밝혔다. 



우선 유럽 전역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모으는 작업 자체가 압도적인 힘을 지닌 국가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엄청난 자금을 동원할 수 있는 거대 행정력과 야만공권력, 국가 차원의 경제적인 뒷받침이 없었다면 결코 진행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바우만은 여러 가지 자료와 새롭게 발굴된 기록들, 그에 앞서 여러 학자들에 의해 진행된 연구들을 근거로, 히틀러가 단순히 아이디어 차원에서 품고 있었던 ‘독일민족의 천년왕국’을 그의 광기만으로 설명할 수 있는 그런 규모의 일도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었다. 



물론 히틀러의 유대인 절멸이 하나의 아이디어 이상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의 반유대주의는 전 유럽을 강타했고, 바이마르 공화국의 초인플레이션 때문에 유대인만 부를 챙기고 있다는 인식이 강했다. 따라서 유대인을 독일 제국의 건설을 위해서 희생양으로 몰아가는 데는 정치적으로 가장 적절했다. 당시 유럽의 금융재산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하고 있는 유대인의 재산도 히틀러로서는 필요했다. 



또한 당시의 지배 엘리트들인 귀족과 지주들의 당면 과제는 지배층을 위협해온 사회주의의 대약진을 막아야 하는 것도 포함돼 있었기에 신흥 금융업자로 떠오른 유대인부터 제거하는 것이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2차세계대전 전까지 유럽의 민주주의는 정착되지 못하고, 파시스트ㅡ카톨릭ㅡ귀족으로 구성된 지배 엘리트층에 밀려 상당히 위축된 상태였다. 우파와 종교, 귀족과 지주의 연합이 신흥세력으로 자유주의를 표방하는 부르주아의 힘을 압도한 상태여서 유대인을 제3제국 건설의 희생양으로 밀어붙이는 것만큼 바이마르 말기의 혼란을 일소하는 최상의 방법도 없었다.   



그것이 하나의 아이디어이거나 그 이상이었거나,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 말살이라는 ‘최종해결책’에 이르기 위해서는 유럽 전역에 퍼져 있는 유대인을 일일이 찾아 분류해야 했고, 그 과정에서 유럽 각국의 협조를 구해야 했으며, 그런 국가들에서 폴란드의 오지인 아우슈비츠로 이르는 대규모 철도와 유대인을 가두어둘 건물과 가스실, 관리감독청, 창고 등을 건설해야 했다. 유대인을 바이러스처럼 멸절시켜야 하는 당위성을 창출하기 위해 유전학과 생물학, 의학, 우생학을 동원해서 각종 차별조치들을 정당화해야 했다. 



                                                    


유대인을 아우슈비츠로 모으는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와 민족적이고 윤리적인 저항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교력과 군사력을 활용한 단계적 진행이 필요했고, 심리학과 정신분석학처럼 대중을 선동하는데 사용할 수 있는 대중선동기술(특히 라디오라는 대중매체와 국가가 자금을 댄 전쟁영화와 상업영화, 온갖 팜플렛과 플랜카드 등)이 총동원됐다. 학살되거나 연습용으로 사살된 유대인 시신들을 불태우기 위한 소각장과 끝없이 배출되는 유골을 매장할 수 있는 부지 조성이 필요했다. 



유럽 각지에서 수송된 유대인들을 집결시킬 대규모 수용시설이 필요했고,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을 무마시키기 위한 각종 반유대주의 캠페인과 일종의 백색테러(귀족과 보수적인 기득권들이 사회주의자나 노동자들을 상대로 펼쳐진 반동적 테러)들을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야 했다. 유대인에 대한 집단적인 폭력의 서막을 연, 저 유명한 '수정의 밤'이 이때 일어났다. 최초의 선례는 그 다음의 폭력을 얼마든지 이끌어낼 수 있으며, 어렵지 않게 상시적인 폭력으로 발전할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언제나 첫 번째 선례가 가장 어렵고 힘들 뿐이지, 그 다음은 관례로 가는 길이라 갈수록 쉬워진다.   



유대인을 대량학살해야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언론을 동원해 비유대인과 유대인을 끊임없이 세뇌시켜야 했고, 홀로코스트를 행정적 처리로 만들어 학살을 자행하는 독일 군인들이 죄의식을 느끼지 않도록 만들어야 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조치들 추가됐으며 이는 나치 독일이라는 거대한 관료집단과 비밀경찰, 유대인사회의 리더들과 기회주의적 협력자들과 독일인과 결혼한 유대인의 협조 하에 진행됐다. 최후에 가면 이들도 모두 아이슈비츠로 끌려갔으니, 죽음의 선후만이 차이가 났을 뿐이다.



결국 유대인 600만 명을 제초제의 일종인 화학 가스(미국이 베트남에 퍼붇은 네이팜탄과 DDT와 거의 동일한 것으로, 일정 지역을 생명이 살 수 없는 지옥으로 만들 때 사용되곤 했다. 베트남 참전 군인들에게서 나타나는 고엽제 피해도 여기서 발생한다)로 몰살한 아우슈비츠의 홀로코스트는 ‘현대(성)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총동원된 정치·경제·과학·사회·외교 및 공학기술들이 총동원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홀로코스트의 대가인 페인골드는 다음과 같이 아우슈비츠에서 일어난 일을 압축했다.



[아우슈비츠는] 현대 공장 체제의 평범한 확장이기도 했다. 상품을 생산하는 대신 원료는 사람이고 최종 제품은 죽음이었으며, 엄청난 양의 일일 실적이 관리자의 생산 실적표에 주의 깊게 기록되었다. 굴뚝ㅡ현대 공장 체제의 상징ㅡ은 인간의 살점을 태우며 나오는 역한 연기를 뿜어냈다. 훌륭하게 짜인 현대 유럽의 철도망은 새로운 종류의 원료를 공장으로 실어 날랐다. 그것은 다른 화물이 수송되는 방식과 다르지 않았다. 가스실에서 희생자들은 독일의 선진적인 화학 산업에 의해 생산된 시안화수소산정제에서 발생한 유독 가스를 들이마셨다. 엔지니어들은 화장장을 설계했고, 관리자들은 후진국들이 부러워할 만한 열정과 효율을 지닌 관료 체제를 고안했다. 심지어 전체적인 계획 자체도 빗나간 현대 과학 정신의 반영이었다. 우리가 목격한 것은 다름 아닌 거대한 사회공학의 구상이었다.




                                                  아이슈비츠의 가스실



국가 차원의 사회공학적 문명의 진보(실제로는 퇴행)를 입증한 홀로코스트는 그것을 담당한 부처가 ‘행정 및 경제부’였다는 사실에서 보듯,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인원을 학살(지극히 공리주의적인 학살)한 나치의 홀로코스트가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이후에도 다양한 형태의 크고 작은 홀로코스트들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터기, 베트남, 캄보디아, 중국, 스페인, 유고슬라비아, 르완다, 다르푸르, 시리아, 이집트, 나이지리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등지에서 반인륜적인 인종청소가 진행됐고 진행되고 있다(하랄드 벨처의 《기후전쟁》을 참조하라). 



이는 “아우슈비츠를 가능하게 했던 사회조건들 중 어느 것도 진정으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 그리고 그런 가능성과 원리들에 의해 아아슈비츠 같은 재앙이 초래되는 것을 예방할 아무런 효과적 조치들도 취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고 려”하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심지어는 UN도 국가가 주권의 이름으로 자행하는 이런 종류의 학살을 인정하고 방관한다는 점에서 홀로코스트의 공범이라 할 수 있다(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을 참조하라).



이런 집단학살은 되물림되는 것(선임들에 의한 윤 일병 폭행살인에서 보듯이)이어서 이제는 팔레스타인 가자주민들을 상대로 일방적인 살육행위를 자행하고 있는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과거의 역사가 어떠하던, 현재 이스라엘 땅은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3,000년을 살아온 곳이기에, 폭력으로 땅을 빼앗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집단학살은 히틀러의 나치가 유대인을 대량학살한 것과 전혀 다를 것이 없다. 



근대이성에서 현대성으로 넘어가는 단계에서 동서양의 파시스트들이 인류를 상대로 벌인 2차세계대전은 현대성이 창출한 최초이자, 그래서 선례를 남겨 계속될 수 있도록 만든 최악의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런 집단학살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이기도 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끝없이 되풀이되고 있으며, 최근에는 민간에 의해 경제적 이익을 위해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에서 근대이성이 탄생시킨 현대성은 그 출발부터 섬뜩한 폭력성을 내장하고 있었다. 



특히 좌우의 전체주의가 현대적 형태로 발현되는 권위주의 독재의 부활은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이들은 법의 지배나 법치주의를 명목으로 압도적인 국가공권력을 특정 집단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민주주의를 내세운 모든 국가에서 이런 현상은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으며, 그것이 발생시킨 사회적 부작용은 사회를 극도의 갈등으로 내몰고 있다. 현대성의 폭력성은 그렇게 범위를 넓혀가며, 정치와 자본과 언론의 결탁에 의해 우파와 기득권이 추동하는 권위주의적 파시즘의 부활과 재현이 절대 불가능하지만은 않음을 경고하고 있다. 극도로 우경화된 2014년의 대한민국 집권세력의 야만적 폭력성이 끊임없이 폭발하는 것처럼.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