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탁월한 선전선동가의 기술을 가졌다 해도 한 가지 근본적인 원리가 머릿속에 즉각 떠오르지 않으면 아무런 성공도 거둘 수 없다. 즉, 몇 가지 요점으로 한정해 지속적으로 반복해야 한다.
ㅡ 아돌프 히틀러의 《나의 투쟁》에서 인용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히데키의 군국주의를 다룬 책과 논문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언급하기도 힘들지만ㅡ내가 읽은 책들 중에서 두 권만 추천하라면 추호의 주저함도 없이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과 지그문트 바우만의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추천한다ㅡ히틀러의 성공에 가장 많이 공헌(정반대로 해석하라!)한 사람은 나치의 선전부장이었던 파울 괴벨스라 할 수 있다(히틀러에 대해 좀 더 알고싶다면 《나의 투쟁》과 《히틀러의 비밀 서재》를 보라).
필자처럼 소아마비였던 괴벨스는 프로이트와 융의 정신분석학(두 사람은 사제지간이었다가 학문적으로 가장 격렬한 대립을 보인 경쟁자로 발전했다)과 니체의 초인사상 등에 심취한 덕분에 히틀러의 신격화와 독일 국민의 세뇌를 성공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거리의 선동가였다가 정치인으로 변신한 히틀러가 향후 권력을 잡을 것을 예언했던 칼 크라우스(엘리아스 카네티의 《말의 양심》은 풍자와 비평, 연설과 선동의 대가였던 크라우스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가 살아있었다면 괴벨스의 성공에 기절초풍했을 것이다.
괴벨스는 자신의 일기장에 '이 자는 누구인가? 반신반인이다! 진실로 그리스도인가? 아니면 세례 요한인가? 이 자는 왕에게 필요한 모든 덕목을 빠짐없이 갖추었다. 타고난 호민관이며 떠오르는 독재관이다'이라고 적을 정도로 히틀러에 심취했었다. 그는 나폴레옹에 비견되는 히틀러가 국가의 기능을 완전히 상실한 바이마르 공화국을 구원할 그리스도라고 확신했었다. 히틀러를 독일 민족의 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북유럽의 신화들(마불의 토르, 나그라로크 등)을 차용한 그는, 유대인을 박멸해야 할 악덕이자 숙적으로 만드는 선악의 이분법을 동원하는 대대적인 선전활동을 통해 히틀러의 '공격적 현실주의'에 힘을 실어주었다.
정신분석학과 심리학, 골상학과 생물학 등 거의 모든 학문에서 끌어온 홍보와 광고 기법으로 중무장한 괴벨스의 선전과 선동은 히틀러를 독일 민족의 메시아로 승격시켰고, 유대인은 독일 민족(게르만족)의 천년 왕국을 가로막는 사탄이나 온갖 병을 일으키는 바이러스 같은 존재로 격하시켰다. 한나 아렌트는 《전체주의의 기원》에서 히틀러의 유대인 학살은 단순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는 주장을 펼쳤는데, 그녀의 주장이 맞다면 단순한 아이디어를 홀로코스토로 현실화한 괴벨스의 선동정치에 더욱 힘이 실린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이 역사적 진실에 가깝던 독일 민족에 대한 히틀러의 절대성을 세우고, 600만 명에 이르는 유대인을 가장 효율적으로 실행하기 위한 정당성 확보는 괴벨스의 선전과 선동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지그문트 바우만은 《현대성과 홀로코스트》를 통해 나치의 유대인 학살이 히틀러의 나치에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유럽의 패권국으로 성장한 독일 전체의 책임이라고 주장했지만, 그의 주장에 따르더라도 괴벨스의 선동정치가 결정적으로 작용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영향력과 규모, 실력 등에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필자가 이재명과 김어준 조합에서 본 것이 히틀러와 괴벨스 조합의 디지털 버전이었다. '선전은 예술이고 선전가는 심리 예술가'라고 믿었던 괴벨스가 당시의 뉴미디어로 떠올랐던 라디오와 영화, TV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면, 김어준은 미미한 수준에 불과했던, 그래서 법적·제도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팟캐스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했기에 둘간의 공통점을 뉴미디어의 활용에 있음을 알 수 있다.
'국법이 끝나는 곳에서 독재가 시작된다'는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따라 초법적인 선동과 조작을 강행할 수 있었던 괴벨스와 디지털 뉴미디어에게만 허용된 표현의 자유를 활용해 온갖 음모론과 예언, 가짜뉴스를 남발할 수 있었던 김어준은 쌍둥이라고 할 만큼 닮았다. 세월호참사와 촛불혁명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민주당 대선후보와 경기도지사에 오른 이재명은, 괴벨스에 비해 능력과 실력 면에서 많이 부족한 김어준처럼, 바이마르 공화국의 온갖 실정과 수조 퍼센트에 이르는 초인플레이션으로 완전히 붕괴된 독일경제와 그에 대한 독일 국민의 분노를 이용해 총통의 자리에 오른 히틀러와 비교할 수 있다.
유대인에 대한 괴벨스의 각종 음모론들은 이명박근혜에 대한 김어준의 각종 음모론들과 비교할 수 있다. 히틀러의 유럽 정복과 유대인 학살을 위한 괴벨스의 도그마 설정과 구축작업은 이재명을 세월호참사와 촛불혁명의 대변자이자 위대한 민주주의자 노무현을 참칭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김어준의 도그마 설정과 구축작업과 비교할 수 있었다. '전투형 노무현'이라는 지나가는 개가 웃을 이미지 메이킹과 막무가내식 범죄 경력 세탁에 천하의 유시민도 넘어갔으니, 통탄할 노릇이었다.
대법원 판결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이재명이 무죄라는 유시민의 이해할 수 없는 주장도 이런 편향된 인식의 발로에서 나온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여전히 유시민의 광팬이자 지지자이지만, 이재명에 대한 그의 인식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이재명을 지지하는 김어준이 성인지감수성의 부족 때문에 수많은 욕을 먹은 것처럼, '조국 대전'의 일방적인 마녀사냥을 바로잡는데 성공한 유시민도 보도관행 운운하며 변명하기에 바빴던 KBS 기자들로부터 '(유시민의 알릴레오에서 나온 성희롱 발언은) 한 명의 여성기자에 대한 모욕이 아니라 여성 기자 전체에 대한 모욕이자 순수하게 자신의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모든 여성들에 대한 모욕이기 때문에, 사과 그 이상의 책임을 지십시오'라는 통렬한 되치기까지 당했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이재명이 무죄라는 유시민의 주장을 애써 무시한다고 해도, 김어준의 성공이 이재명을 끌어올리고 이재명의 성공이 김어준를 끌어올리는 악취나는 상호강화의 고리는 히틀러와,괴벨스의 상호강화 고리를 연상시킴에는 변함이 없다. 김어준과 그 아류들의 끈질기고 확증편향적인 지원은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드러난 이재명의 추악한 실체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지사의 당선이라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을 정도로 막강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덮쳤을 때, 나는 침묵했다'로 시작해 '그들이 나에게 닥쳤을 때는 나를 위해 말해줄 이들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로 끝나는 뉘밀러의 고백처럼, 둘의 조합에서 히틀러와 괴벨스의 조합을 봤을 때는 너무 늦어 있었던 것은 아닐까. 간암이 재발한지도 모른 채 이재명의 고발인단으로 참여해 맹렬하게 싸우다, 이정렬 변호사에게까지 전장을 넓히는 바람에 최빠로 둔갑한 것(당시에는 전혀 몰랐던 최재성 지지자와 친했다는 이유와 문파를 욕보이면서도 친문이라고 주장하는 개총수 같은 자들을 비판한 글이 원인이었던 모양이다)을 9개월만에 알게 된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때문에 나는 힘겨운 싸움을 하고 있다(서초동집회를 통해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분들이 늘어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최대의 행운이었지만). 그들이 골리앗만큼 커졌다면 나는 다윗도 되지 못한다. 그들의 실체를 몰랐을 때는 그들을 응원했었기에 아무리 빠른 후회라도 이미 늦어 있었다. 영원한 노빠이자 문빠로서의 고달프고 힘겨운 싸움을 이어가는 중에 문파라는 든든한 응원군을 얻은 것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행운이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이 한창 인기 있었을 때는 하루에 최대 36만 명에 이르는 블로그 방문자가 수백에서 수천 명으로 줄어들었지만, 윤석렬의 검찰과 기레기와 자한당, 반예수적 기독교 무리들로부터 맹공을 받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에 어떤 방식으로든 도움이 되고 싶어 이재명-김어준 조합과의 싸움을 멈출 수 없다. 이재명을 더 이상 다루지 말라는 외압을 받아들일 수 없어 '백반토론'에서 물러난 박찬혁 작가처럼, 권력화된 이재명-김어준 조합과 길고도 험난한 싸움을 이어가야 하지만, 그것이 문프의 성공에 된다는 믿음이 확고하기에 써움을 멈출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도덕적인 세계의 활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휜다"고 믿었고, 나 또한 그렇다. 법정에서는 '늦춰진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라고 하지만 정의 실현을 위한 현실정치의 세계에서는 늦춰진 정의도 정의라고 말한다. 1심 무죄선고를 뒤집은 고등법원의 유죄 선고를 이끌어낸 전반부는 절반의 성공이라 할 수 있지만, 나머지 반을 이루기 위한 고난의 여정은 이재명과 김어준 조합의 해체에 이를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P.S. 미어셰이머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비극》에서 유럽의 약소국에 불과했던 프러시아를 프랑스와 영국, 러시아, 오스트리아를 위협할 수 있는 통일독일으로 만든 비스마르크에서 시작된 '공격적 현실주의(전쟁을 통해 패권국을 지향하는 국제정치이론)가 빌헬름 황제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거쳐 히틀러의 나치에까지 이어졌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괴벨스의 성공과 김어준의 성공은 또 다른 공통점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다룰 생각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
' 내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정렬 변호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해 (4) | 2018.12.15 |
---|---|
이정렬 변호사의 불기소이유서 트윗에 대해 (2) | 2018.12.14 |
청변에게, 이재명과 김혜경을 빼면 모두가 부수적이다 (2) | 2018.11.25 |
저 잘 지내고 있습니다. (12) | 2018.10.19 |
국가의 이름으로 자행된 살인, 백남기씨 사망 (14) | 2016.09.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