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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유시민의 이재명 옹호, 왜 하필 지금이었을까?

 

욕먹을 각오를 하고 이번 글을 쓴다. 조국 장관의 자진 사퇴와 서울대 복직을 교차시키며 이제는 조국을 놓아주고 검찰개혁에만 매진하자는 천지개벽하는 변화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어 이번 글을 쓰게 됐다. 조국 사퇴의 범인을 찾지 말라는 것으로도 모자라 후원금의 투명한 공개마저 거부한 채 여의도집회로 위기를 돌파하려는 국개본의 이재명스러운 행태에 동의하지 못하는 이유도 있다. 서초동에서 이어질 촛불집회는 무시한 채 여의도집회에 관해서만 보도해주는 기레기들의 일치단결된 보도에 저항하기 위함도 한몫했다.   

 

노통을 지키는데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한 나는, 3축동맹의 '조국 죽이기' 목적이 검찰개혁 좌초를 넘어 문재인 대통령 흔들기라고 봤기 때문에 유시민과 검어준의 밀월도 필요하다고 봤다. 압도적인 3축동맹의 화력에 맞서려면 유시민의 <알릴레오>의 화력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김어준의 <뉴스공장>과 <다스뵈이다>에 손을 내밀 수밖에 없다고 봤다. 서초동집회 주최측이 이해찬-이재명계라고 해도 3축동맹의 융단폭격과 광화문집회의 광기에 맞서려면 한 명의 시민이라도 더 참여하도록 독려하는 것이 필요했던 것과 동일선상에서 둘의 밀월을 해석했었다.

 

 

김대중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서라면 악마와도 손잡겠다'는 국제정치이론의 '공격적 현실주의(모든 국가는 이익과 권력 강화를 위해서라면 전쟁을 포함해 무슨 짓이라도 한다는 이론)'를 표방까지 했는데, 이런 미어셰이머식 논리에 상당 부분 동의하지 않는 필자라고 해도, 조국을 지켜서 검찰개혁을 되돌릴 수 없는 지점까지 몰고가려면 악마의 손이라도 잡을 판이었다. 격무에 시달리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이 법무부차관을 청와대로 불러 검찰개혁에 대해 직접 보고하라고 할 정도이니 이재명 지지자도 포함한 정치적 단합이 중요한 시기라는 것도 모르지는 않는다.

 

이런 이유들로 해서 장기적 가능성보다는 단기적 현실이 너무 급박한 상황에서 김어준과 손잡은 유시민의 선택에 일언반구의 이의도 달지 않았다. 조국을 지켜내지 못하면 문재인 대통령도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반칸트적 명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문통과 이재명을 하나로 묶는 것이 이번주 말 여의도와 서초동에 모일 촛불시민들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끈이 된다는 것도 모르지 않는다.

 

헌데 SNS 상에 떠도는 유시민의 '이재명 옹호' 영상을 접한 뒤에는 이런 정치적 판단에 따른 대가를 치르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유시민은 어떤 이슈라도 그것의 본질과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고 설득력 있게 풀어내는데 천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지만, 가뭄에 콩 나듯이 도를 넘는 발언 때문에 그간의 업적이 말짱도루묵으로 변질되는 경우를 보여주곤 했다. SNS에 올라온 동영상이 공영방송 KBS와 싸워 기념비적인 승리를 거둔 이후의 강연인지 알 수 없지만 고등법원의 판결문을 사실 관계까지 왜곡하며 이재명에게 유리하도록 해석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

 

유시민의 주장은 고등법원에서 유죄 판결의 근거가 된 부분만 무력화시키려는 것이기에, 그의 주장대로만 되면 대법원은 무죄취지로 관련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파기환송할 것이다. 최종심에서 무죄를 받아낸 이재명은 도지사직을 유지할뿐만 아니라 대선후보로 다시 나설 수 있으니 유시민은 그 부분만 공격하면 충분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판결문에도 나와있듯이 이재명에게 유리한 정황증거들과 법리 해석을 확대적용하면 유시민의 바람ㅡ이재명 지지자의 바람과 완전히 똑같은ㅡ은 판을 뒤집을 만큼의 실효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도지사 상실에 해당하는 고등법원의 유죄 판결문을 보면 유시민의 주장과는 달리 이재명이 그의 친형을 강제입원시키려고 했다는 증거들이 다수 나온다. 내가 이재명을 고발한 다수의 1인이어서 일종 수준 이상의 편향성을 가진 것 아니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결문에 명시된 다수의 증거들을 무시한 채 이재명에게 유리하도록 사실관계를 왜곡한 유시민의 주장에는 동의할 방법이 없다. 유시민이 정말로 고등법원의 판결문 전문을 봤거나, 이재명의 머리 속에 들어가 그의 선의를 확인하지 않는 한 절대 이런 해석을 주장할 수 없다.

 

이재명의 선의에 대한 그의 확증편향적 해석은 김경록 팀장과의 인터뷰에 대한 해석과 결정적인 면에서 화해불가능한 충돌까지 난다. 김경록 팀장은 유시민과의 인터뷰(KBS인터뷰에서 똑같이 말한)에서 '동양대에서 컴퓨터를 들고나오고, 조국 집에 있는 컴퓨터의 하드 두 개를 떼어낸 행위에 대해 증거인멸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유시민은 의심을 살만한 멍청한 행동이었지만 증거인멸 시도에 해당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해당 컴퓨터와 하드에 어떤 증거도 없기 때문에 증거인멸 시도의 구성요건조차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증거로 말하는 죄형법정주의가 형사법의 대원칙인데, 유무죄를 가리는 판결을 정경심과 김경록의 마음을 읽는, 그것도 과거의 마음을 읽는 독심술에 의거해 판결을 내릴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유시민의 판단이 옳았고, 나 또한 똑같은 취지의 글들을 쓰기도 했다. 여기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정작 김경록 탐장은 윤석렬의 검찰이 자신과 정경심 교수의 행위를 증거인멸 시도로 몰아갈 경우 인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발언을 인터뷰에서 했다. 화해불가능한 충돌은 여기서 나온다. 

 

 

김경록 팀장의 말을 법리에 대한 잘못된 해석이라고 묵살해버린 유시민은, 불특정 다수의 경기도민을 상대로 한 생방송 토론에서, 그 이전의 토론과 언론 인터뷰, 수많은 반론과 각종 강연에서의 발언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친형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려 하지 않았다는 이재명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유시민이 김경록과 이재명의 마음을 독심술로 꿰뚫어보지 않은 이상 서로 상충되는 두 가지 해석(또는 주장)은 시중의 우수개 말로 하면 '그때그때 달라요'에 해당할 수 있다. 

 

물론 유시민이 김경록은 잘 모르고, 이재명은 잘 알기 때문에 이런 주장을 펼칠 수 있다. 1심과 2심의 다른 판결 결과만 가지고 볼 때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구좌파적인 이재명의 성향과 자신의 성향이 비슷한 것에서 나오는 자유주의적 선택(개인의 성향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는)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김경록의 말과 이재명의 말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두 사람 다 압도적인 조리돌림을 당한 상항에서 나온 것이라, 유무죄의 증거로 채택하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하지만 1심은 물론 2심의 판결문에서 나온 명확한 증거들까지 무시한 채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것만 가지고 이재명의 무죄를 주장하는 것에서는 아주 드물게 나오는 유시민 특유의 삽질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사과라는 것은 죽어도 하지 않는 김어준과의 연합이 이재명 옹호와 같은 비슷한 개인적 성향에서 나온 결과물이라면 노무현재단 이사장 타이틀을 내려놓고서 하는 것이 옳을 듯싶다. 이재명 보호의 최고수가 김어준이라는 사실은 초딩도 알만큼 상식의 영역에 자리잡은 것까지 고려하면 유시민마저 이재명 옹호에 뛰어든 모양새가 그에 대한 탄원서 같아 불편함을 금할 수 없다.

 

논리의 일관성이라도 있으면 그럴 수 있다고 문제삼지 않을 수도 있으련만. 유시민의 광팬이자 지지자이며, 노무현재단의 오랜 소액 후원자인 필자마저도 그의 이재명 옹호 강연만큼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유시민의 주장에 반대하는 글은 이번이 처음이라서 대단히 불편한 마음을 떨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법원으로부터 이재명의 무죄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한 어떤 시도에도 동의할 수 없다. 이재명 지지자들의 타원서 작성 등의 온갖 노력은 헌법이 보장하는 정치사회적 권리여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지만 판결문에 적시된 증거까지 무시하는 유시민의 주장은 우려스럽기만 하다. 

 

이번주 토요일에 이재명 지지자와 문재인 지지자의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 촉구 집회가 따로따로 열리는 것을 고려하면 유시민의 동영상은 황당하기까지 하다. 이재명도 친문이라는 유시민의 주장은 아무리 그를 신뢰하고 좋아한다고 해도 자신의 지지자들을 선동해 대법원 판결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 보일 정도다. 문파와 이재명 지지자들을 화해시키고 싶은 그의 바람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나, 북유계가 주최하는 서초동집회에 찬물을 끼얹고 국개본이 주최하는 여의도집회에 힘을 실어주는 분열 조장으로 악용될 수 있어 우려스럽기만 하다.

 

조국을 불쏘시개로 충분히 이용했으니, 그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검찰개혁과 공수처 설치를 위한 여의도집회에 집중하자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필자라서 그런지 SNS에 문제의 동영상을 업로드한 사람이 이재명 지지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법리 적용과 해석의 적절성만 따지는 대법원 판결이 코앞으로 다가왔으니 초조하고 환장할 노릇일 테니까. 서초동 촛불집회의 대성공과 상상하지도 못한 후원금 쇄도로 한껏 고무된 상황에서 진성 문파들이 '내가 조국'이라며 서초동 촛불집회를 이어가겠다고 하니 초조함은 더욱 커졌을 것이고. 

 

 

손가혁의 변신이 분명해 보이는 개국본의 입장에서 보면 이재명을 기소하고 공소유지를 훌륭하게 해내고 있는 검찰이 원수나 다름없을 터, 검찰개혁이라는 커다른 조류를 이용해 이재명 구하기에 나선 것은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조국 일가에 가해진 검찰의 먼지털기식 수사에 분노한 시민들에게 장소를 제공한 대가로 이재명 탄원 서명을 받은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김어준과 주진우 등이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도 이해할 수 있지만, 정치적 영향력 면에서는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까지 이재명의 무죄를 주장하고 나선 것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물론 정반대로 생각할 수 있다. 북유계와 SNS 헤비유저 중심의 문파와 유시민을 이간질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의심할 여지도 충분히 있다. 나는 무엇이 진실에 가까운지는 모른다. 그렇다 해도 문재인 정부의 발목을 잡고늘어지기 일쑤인 민주노총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 이재명도 친문이라는 그의 주장에는 동의하기 힘들다.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즐겨하는 유시민이 이제는 독심술을 펼칠 정도의 경지에까지 이른 것인지 궁금하기까지 하다. 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른다 했는데, 이재명이 친문이라는 것까지 알아냈으니 유시민의 관심법이 범인의 수준을 넘어선 모양이다. 

 

이 사안만 빼면 여전히 그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좋아하지만, 아무튼 이재명이 무죄고 친문이라는 그의 주장이 어떤 법적·정치적 근거에 의한 것인지, 아니면 김어준의 영향을 받거나 전임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이해찬과의 사전교감이 있었던 것인지, 그것만이라도 알고 싶다. 지금은 단합할 때지 분열할 때는 아니라는 많은 분들의 주장을 반박하기는 힘들지만, 그 연결고리가 이재명이어야 하는지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