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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이승윤의 영웅수집가에 대한 철학·종교·과학적 분석

 

 

영웅수집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아마도 나의 영웅이야/ 어쩌면 저렇게도 올곧고 위대한 건지/ 끝까지 나는 따를 거야/ 다만 내가 원할 말만 영원히 하면 돼/ 걸음걸이도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 마/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 헤매다 그에 가까워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칸트가 실천이성 비판에서 말했던 정언명령처럼 사는 사람, 즉 깊은 이성적 성찰과 그에 따른 정언명령처럼 위대하고 선한 자유의지에 따라 올곧고 위대한 인간한 모습에 반한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따를 거라고 다짐한다.

 

 

다만.. 바로 여기서 이승윤이 이번 가사를 쓰게 된 이유가 나온다. 아마도 자신이 찾아 헤매던 영웅으로 보이는 그가 내가 원하는 말만 해주면 돼, 그것도 영원히 해주어야 해. 그래야 영웅에 대한 추종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될 수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웅의 걸음걸이, 즉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이 이승윤이 찾아헤매던 우상으로써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헌데 이런 영웅이란 존재할 수 없다. 누고도 완벽할 수 없으며 이승윤만을 위한 그런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얼마 동안 그를 숭배했지만,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실망했어. 그래서 부숴도 좋아,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된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숴도 좋아. 

 

 

이제야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나의 영웅이야/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시대가 원하고 있잖아/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을 걸/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일 거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그렇게 영웅들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찾아 헤매된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것도 마지막 나의 영웅으로. 그런데 내가 정말로 찾던 그런 영웅은 아니지만, 시대가 원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나도 따를 밖에야. 그렇게 시대가 원하는 영웅이니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지. 그의 모든 것은 시대를 상징하고 대표해. 심지어는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만큼. 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주장한 것처럼 에고와 이드 위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룬 그런 초자아에 의해 시대를 이끌고 있으니까. 또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세계정신에 이른 위대한 영웅이니까. 시대가 원하는 그런 영웅이니 내 진열장을 차지할 수 있어. 누구도 손대지마. 마지막으로 찾은 영웅이니까. 어, 그런데 자세히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완벽해 보였던 이 영웅에게도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상징했던 영웅마저 완벽하지 못하고 바랜 흔적이 있네. 결국 이따위 영웅이라면 부숴도 좋아.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큰 법이니까. 

   

 

우릴 위해서 부서진 영웅을 위해 묵념 한번 하고선/ 관짝을 뜯어서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다 완성이야/

 

 

빛 바랜 영웅이자 흠 있는 미완성이지만 우릴 위해서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영웅이니 묵념은 한 번 해줄 수 있어야지. 그는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의 관짝을 뜯어 영웅의 영역에서 영원히 추방하지만, 그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슬퍼할지도 모르니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프랑스혁명을 이끈 여신의 모습처럼, 영웅의 초라한 주검에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영웅의 전설은 그것으로 모두 다 완성되는 것이지.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인용).

 

 

(전설이 탄생했단 걸/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걸/ 너는 그냥 왕관을 쓰고나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될 거야)

아무런 의미 없는 널 완성 시켜 놓아 준 건 나니까/ 전리품은 전부 내 진열장에다/ 네 자리는 없어/ 너는 거기까지야/ 그러게 흠집 없이 완벽하지 그랬어/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영웅의 전설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우주인 우리의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고 숭배받는 것이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 과거의 유물로부터 영웅을 건져올려 시대정신을 상징하도록 만든 것도 우리이므로, 그리하여 너는, 짧은 동안의 영광을 취했을 뿐 20대의 나이로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프랑스혁명의 시대정신을 세계(백인이 지배하고 경험하는 한계로써의 서유럽을 말함)에 퍼뜨리려고 했으나 끝내는 황제라는 독재자가 되버린 나폴레옹의 성공과 좌절처럼, 너는 황제의 왕관을 쓴 채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되는 것이야, 얼마나 허망하고 무력한가! 영광은 없었을지언정 죽음으로 해서, 즉 성공과 완벽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무덤 아래서 잠자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넌, 영웅은 내 창조물이야, 너의 미완성을 완성으로 만들어준 것은 나의 의지이니까, 해서 전리품은 이제 모두 다 내 진열장에 놓아둘 거야. 실패한 너에게는 실존할 자리조차 주저지지 않아, 성공을 지속하지도 상속하지도 못했고 전설 속에서만 살아서 홀로 외치고 있기 때문에 너는 그것까지만 허락된 거야, 그러게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완벽한 성을 쌓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모든 존재하는 사물과 운동의 원인의 최초의 원인이면서도 자신은 어떤 원인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실존하며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불사의 영역에 오른 절대의 유일신처럼, 어떤 흠집이라도 없었다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넌 나의 진열장에 놓을 여러 영웅 중 한 명일 뿐이야, 게다가 넌 너무 오래돼서 바랜 흔적까지 있어, 누군가에 의해 부서져도 별로 아쉴 것도 없지.    

 

 

이승윤이 영웅수집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실제로 존재했던 모든 영웅이란 한낱 허상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가 말한 영웅 중에 예수도 들어있다면 유명 목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청춘 특유의 반발이었을 수도 있다. 제가 20대 시절에 죄의식을 강요해야 비로소 돌아가는 가는 천주교의 교화방식이 너무 힘들어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을 이승윤도 비슷한 시기에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https://youtu.be/3KKb6RmDSG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