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형님>에 나온 싱어게인 빅4, 즐거운 하루를 보낸 이후, 이승윤은 '예능인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했습니다. <아는형님>에서 게임으로 넘어간 이후의 이승윤의 표정을 집중해서 봤는데, 그는 게임에 집중하지 못한 채 강호동과 이수근, 김희철, 서장훈 등처럼 아형 멤버들을 유심히 지켜보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히곤 했습니다. 다양한 재주를 가진 이승윤이지만 시청자를 위한 말도 안 되는 게임에 전념하는 아형 멤버들을 보면서 느낀 점이 많았을 것입니다.

 

 

이승윤은 녹화를 마친 소감을 '예능인들이 존경스럽다'라는 말로 압축했습니다. 대단히 중요한 성찰이었고 이승윤다운 감상평이었습니다.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이승윤 자작곡 가사를 살펴보면 자신이 가진 재능 대비 어떤 결실도 맺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고뇌가 진득히 베어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 기준과 동떨어져 실패를 거듭하는 천재들이 흔히 가질 수밖에 없는 분노와 비슷한 감정입니다. 

 

 

 

성공을 위해 죽을 만큼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세상의 성공 기준에 마추면서까지 성공을 추구해야 하는지, 숱한 갈등의 산물이 이승윤 자작곡에 담겨있는 주요 특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눈물이란 단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입니다. 모든 분에 퍼져있지만, 특히 예술 분야에 많은 아웃사이더들은 자신의 신념과 세상의 성공 기준의 차이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하는 존재입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들인 벤야민과 고흐, 니체, 카프카, 카잔스키, 로렌스 등이 그랬습니다.

 

 

이승윤이라고 해서 그들과 다룰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 그가 마지막 도전으로 싱어게인에 도전했고, 자신의 천재성을 마음껏 발휘해 우승까지 했습니다. 아웃사이더에서 최고의 인사이더가 된 것인데, 하룻밤 자고나니 유명인 된 자신의 변화와 위상에 어안이 벙벙했을 것입니다. 코로나19 펜데믹 때문에 달라진 자신의 위상에 대해 피부에 와닿는 것이 적었겠지만 기획사는 물론 수많은 펜카페가 생기고, 잠시도 쉴 수 없는 일정에 정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패자에서 모두가 떠받드는 승자로 바뀐 자신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자신을 향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의 폭증에 실감이 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영웅수집가'를 쓰던 시절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비교하면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가상인지 어리둥절했을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사랑과 관심을 즐기기도 힘들 지경이기에 다른 생각을 하기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는 형님>에 출연했고, 모든 것이 약속된 입학식은 아형 멤버들의 예상할 수 없었던 에드립에 놀라움과 즐거움의 연속이었을 것이고요. 그런 감정 상태에서,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게임에 들어섰는데, 특정한 대본도 없는 상황에서 아형 멤버들이 보여주는 다양한 노력과 순발력, 재치들이 결코 가볍지 않음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한 편의 예능을 찍기 위해 그들이 쏟아내는 노력과 재능의 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승윤이 본 것은 싱어게인 제작을 위해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피와 땀을 흘린 제작진과 스탭에게서 보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것들이었을 테고요. 게임이 진행되는 동안 이승윤의 표정을 보면 다른 출연진과는 달리 게임에 완전히 녹아들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특한 그가 예상할 수도 없는 수많은 의외의 상황들이 벌어지고, 그것을 어떻게든 대처해내거나 다시 찍고 또 찍는 그들을 보면서 많은 것들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승윤이 녹화를 끝낸 다음에 '예능인들이 존경스럽다'고 말한 것에서 그의 깨달음이 가볍지 않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세상이, 조직이, 공장이, 방송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합니다. 수많은 현장에서 매일같이 벌어지는 일들에는 어떤 이들의 땀과 피들이 담겨있는지, 무엇이 숨겨져있고 무엇이 드러나는지 알지 못합니다. 일부는 알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일베처럼 키보드 앞에서 욕설과 저주를 퍼부기에만 급급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분들은 그런 욕설과 저주를 퍼부을 수 없습니다. 디지털시대가 되면서 이런 키보드워리어들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고, 만날 수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코로나19 백신을 제일 먼저 맞으라고 하는 악랄하기 그지없는 정치인들과 똑같은 자들이 여기저기서 악령처럼 출몰합니다. 통치자인 대통령도 피통치자인 국민과 같은 존재라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인데, 선거 승리와 자신의 재선을 위해 백신 불신을 조장하는 자들이 큰소리를 칩니다. 

 

 

누구라도 먼저 백신을 맞고 싶을진데, 대통령에게 먼저 맞으라는 백신음모론이나 부추기는 자들은 천벌에 천벌을, 거기에 또다시 천벌을 더해도 모자라지 않습니다. 능지처참형이 가능한 세상이라면 광화문 4거리에서 능지처참형에 처해도 모자람이 없을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받은 정은경 본부장처럼 백신 민주주의를 실현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정치적 이득만 얻으려는 악마와 다름없는 자들이 키보드워리어와 함께 백신 불신만 키웁니다. 

 

 

 

이런 짐승만도 못한 자들에 비하면, 아형 멤버에게 존경을 표한 이승윤의 영혼은 왜 우리가 그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지 말해줍니다. 그런 따뜻한 시선, 내 노력과 재능만이 아니라 타인의 노력과 재능도 똑같은 눈높이에서 바라보며 인정할 수 있는 것,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가 장려하는 행동규범이며, 깨어있는 시민의 본질이고, 상생과 공존의 세상을 가능케 하는 아름다운 마음가짐입니다. 

 

 

'싱어게인 탑4'가 출연한 <아는 형님>은 이승윤의 마지막 멘트로 최고의 오락프로그램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재미있었고, 또다시 보게 됩니다. 승윤씨, 당신 때문에 밀린 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어!!! 책임지세요, 더 멋진 노래와 재담, 퍼포먼스로!!!   

 

  1. 空空(공공) 2021.03.01 15:26 신고

    싱어게인 TOP4가 아는 형님에 나왔었군요.
    재방송으로 한번 봐야겠습니다^^

 

 

무얼 훔치지

 

생각을 정돈하려다/ 마음을 어지럽혔나 봐/ 대충 이불로 덮어 놓고/ 방 문을 닫았어 ㅡ 여기서 생각은 다양한 것이 가능하겠으나 가사 전체를 보면 음악을 관둘까 하는 것으로 한정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방구석 음악인에서 벗어나기 위해 11집에 이르는 음반으로 내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시도를 했음에도 여전히 무명에 머문 이유과 현실의 압박 등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결정을 내리기는 쉽지 않았으리라. 마음만 어지러웠을 뿐, 미래에 대한 걱정과 음악에 대한 열정 사이에서 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 생각을 멈추고 잠을 자기 위해 대충 이불 속으로 들어가며 방 문을 닫았다. 여기서 방문은 생각을 멈추는 것일 수도 있고 세상과의 단절이나 여러 가지 시도를 멈추는 것을 의미하는 뜻일 수도 있다. 어쨌든 완전한 단절을 뜻한다.

 

선반에 숨겨 놓았던/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읽으려다 그냥 말았어/ 거의 외웠으니까 ㅡ 상징으로서의 선반에 숨겨 놓았던, 대부분 선반에 무엇인가 넣어두기 때문에 기거서 후회를 하나 둘 꺼내서, 꿈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희망이 필요한 사람, 그 작은 희망 때문에 행동에 옮긴 사람, 헌데 결과란 늘 똑같이 별 거 없는 사람, 그들에게는 수많은 후회들로 넘친다. 내 꿈이 지나친 것일까, 세상에서 받아주기 힘든 꿈일까, 내 능력을 넘어선 꿈일까, 그러면 포기해야 할까? 꿈은 꿈일 뿐이니까. 아니야, 어쩌면 노력이 부적해서 일 수도 있어. 보다 일찍, 더 많이 노력해야 했어, 더 노력했으면 이렇게 비참하지는 않았을 거야. 아니야, 난 정말 죽을 만큼 노력했어, 운이 없었을 뿐이야. 세상이 나를 몰라주는 게 문제지 난 문제업어. 난 배아픈 가수지만 그건 실력이 넘치는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야. 난 하나의 작품을 만들 때 정말 전력을 다해, 만족하지 않으려 늘 배아픈 거야. 더 좋은 가사, 더 좋은 리듬, 더 좋은 노래를 위해 그랬던 거야. 헌데 이게 뭐지. 난 여전히 방구석 음악인이야... 이런 수없이 되풀이 했던 그래서 거의 외워버린 후회들, 그것들을 아무리 많이 꺼내서 읽어봤자 똑같은 것들이 계속될 뿐이야. 얼마나 후회를 많이 했으면 외울 정도일까? 승윤이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말해주는 것, 그래서 2020년 12월 31일까지만 시도해보겠다고 결심했던 것. 죽는 것보다 싫은 음악을 포기하고 보통의 삶으로 끌려들어가는 것.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ㅡ 그래서 자신의 하늘은 늘 낡았어. 이런 후회로, 분노로, 절망으로 하늘을 보니 낡은 미소만 보였겠지, 너무 한 거 아니야? 나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니 밝은 미소로 하늘을 볼 수 없을 터, 좀더 밝은 미소를 건넸으면 달라졌을까?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하늘은 녹슬어 있는지, 내 마음이 그래서 그럴까? 방구석에서 보는 하늘은 미세먼지와 각종 오염물질에 물들어 녹슬어 있는 황혼녘의 어스름일까?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그럼 난 무얼 훔치지 ㅡ 노을마저도 점점 어둠에 밀려가네. 급한 마음이 언덕으로 달려가보지만 노을은 그만큼 멀찍이 멀어지고, 그래서 내게 희망을 주어야 할 태양은 언제나 손이 닿지 않는 먼 곳으로 떨어져 있지. 그럼 날 무엇을 훔치지. 태양의 신으로부터 무언가 행운이 상징이라도 훔쳐야 할 텐데, 무언가 살아갈 수 있는 것을 무엇이라도 희망의 이름으로 훔치기라도 해야 할 텐데, 모두 다 멀어져 가기만 하니 난 무얼 훔치지, 빛이 희망이라면 태양만이 나에게 또다른 기회라도 줄 텐데, 왜 멀어져만 가는 거야. 


텅 빈 하루를 채우다/ 잠은 가루가 됐나 봐/ 쓸어 안아 누워 있다가/ 그냥 불어 버렸어 ㅡ 아무것도 하지 못한, 고민스러운 생각만으로 가득한, 그래서 일상의 삶이란 하나도 하지 못한 텅빈 하루를 고민으로, 절망으로 채우다, 그렇게 뒤척걷리다 보니 잠은 가루처럼 아주 잘게 조각난 가루 수준까지 됐나 봐, 다 타버린 재처럼 가루가 됐나 봐, 그것을 목숨처럼 쓸어안아 누워 있다가, 바람에 놓아줄 수 없어서, 이것마저 놓아주면 모든 게 끝날 것 같아서, 그래서 쓸어안고 있었지만 그냥 불어 버렸어. 너를 내 꿈과 희망에서 날려 버렸어. 보내 버렸어.

 

옷장에 숨겨 놓았던/ 꿈들을 몇 벌 꺼내서/ 입으려다 그냥 말았어/ 어울리지 않잖아 ㅡ 이번에는 선반이 아닌 옷장에 숨겨 놓았던 무대 의상들을, 그래서 꿈일 수밖에 없는 옷들을 몇 벌 꺼내서 입어보려다, 가루를 날려 버린 후 미련이 남아서 입어보려고 했지만 그냥 입지 않았어, 그건 무대의상인데, 아무것도 아닌 방구석 음악인에게는 어울리지 않잖아. 그건 꿈일뿐, 현실이 아니잖아.  

 

낡은 하늘에/ 밝은 미소를 건넬 걸/ 왜 내가 바라 볼 때면/ 녹슬어 있는지 ㅡ 똑같다.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난 무얼 훔치지 ㅡ 앞과는 달리 이 절에서는 '여기까지 왔는데'라는 것이 들어있다. 무엇인가 했다. 김이나 이전의 별밤에 자신의 노래를 신청한 것을 말할까?

 

조바심에 저 바람에/ 주파수를 훔쳐 봐도/ 모래 가루만 날리고/ 밤을 어지르지 ㅡ 2020년 12월 31일이 다가와서, 팬들이 늘지 않아서, 언제나 제자리걸음이어서, 신청곡 사연마저도 채택되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조바심에, 밖으로는 바람만 무성한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별밤의 주파수를 훔치려고 했던 것이 혹시나 성공하지 않을까, 그래서 별밤 시청자들이 내 노래를 듣고 진행자가 좋은 감상평을 해주면 뭔가 돌파구가 생기지 않을까? 그런데 채택되지 않았어. (채택됐나요? 네, 제가 확인하라고요? 어떻게? 팬카페에 가면 있을 거 아니야? 덕질한다며? 네, 알아볼게요. 채택됐는데도 반응이 좋지 않았다면 더 절망했을 텐데...) 결국 모래 가루만 날렸어, 그 때문에 밤만 어지러울 뿐, 모래만 휘날리는 죽음 같은 어둠 속이야.   

 

노을을 훔치는 저기/ 언덕을 가도 멀찍이/ 태양은 언제나 멀지/ 이제 그만 할래 ㅡ 마지막에 아,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할래. 음악 포기할래. 내 나이도 있고, 이젠 뭔가 해서라도 먹고 살아야지. 내 음악인생은 실패야. 처참한 실패야. 이제 그만 할래. 힘들어. 넘 지쳤어. 

 

날짜들보다 오래 된/ 발자국처럼 노래가/ 신발 아래서 들려 와 ㅡ 수많은 시도를 했던 지난 10여년의 날짜들보다 더욱 오래된 이제는 화석처럼 굳어져 버린 발자국처럼, 그렇게 가루로 부셔 날려버려도 나의 노래는 저 죽음 같은 지옥에서라도 기어올라와 내 귀속으로 들여 와, 내 무너지는 마음 속에서 울려, 포기하지 마, 포기하지 마, 우리 한 번만 더 해 봐, 한 번 더 도전해 봐, 포기하지마, 포기하면 모든 게 다 끝나. 포기하지 마

   
포기하려 했는데/ 낡은 마음에다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ㅡ 너무 힘들어, 너무 지셔서, 마음에는 상처 뿐인데, 그래서 포기하려 했는데, 이 낡은대로 낡아진, 무너지고 무너질대로 무너진 마음에 노래는, 밝은 미소를 건네 와. 나에게 꿈을 줘, 희망이 절망이 되지 않게 해줘. 힘을 줘, 에너지를 줘, 돈을 줘... 아, 이건 아니구나. 아, 분위기 잡고 잘 갔는데.... 아무트 노래는 밝은 미소를 내게 건네 와, 고맙게도, 질기게도, 그 빌어먹을 쥐꼬리만한 희망의 이름으로.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난 눈물을 훔치지 ㅡ 너라는 놈은, 너라는 나의 꿈은, 너라는 나의 얘기는, 너라는 나의 모든 삶은, 너라는 노래는 왜 녹슬지 않는지, 이렇게 힘들고 좌절하고 외면받고 상처받고 쓰러져봤음에도 언제나 밝은 미소처럼 나를 일으켜세우는 것이지, 절망의 상황 속에서도 나를 살게 하는 것이지?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ㅡ
왜 내가 바라 보아도/ 녹슬지 않는지 ㅡ

 

 

 

제가 싱어게인 우승자인 이승윤에 대한 폭발적 인기ㅡ기존의 아이돌에게 쏟아지는 조공에 비하면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ㅡ에 대해 '이승윤 현상'이라고 이름지은 이유에 대한 철학적 설명이 필요한 시점이 언젠가는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승윤의 공연이 아닌 가사와 인터뷰 같은 것만 해설하는 이유도 그때에는 명증하게 이해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가 '선한 영향력'이라는 것에 집중하는 것도 그때에는 설명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과는 상관없이 이승윤에 대한 여러가지 접근과 해석을 통해 나름의 욕망을 투사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말씀드리고자 하는 대중가수로서의 이슝윤과 신실한 기독교 신자로써의 이승윤을 구별할 필요성에 대한 것입니다.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가수로서의 이승윤과 윤리·도덕적 실천가로서의 이승윤을 하나로 등치시키는 것에 내포된 위험에 대해 말하는 것이지요.  

 

 

이승윤이 시대의 부조리와 청춘의 절망, 좌절, 분노, 희망, 행복 등을 노래한다고 해서 그가 성직자나 혁명가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의 음악활동으로부터 모범적인 삶을 이끌어내거나 그렇게 포장하는 것은 각자의 자유이고, 욕망의 투사이며, 침해불가능한 권리이지만, 발터 벤야민이 <괴테의 친화력>에서 보여준 것처럼, 윤리와 도덕, 종교로 이승윤의 노래와 무대를 채색하면 그의 천재적 예술성이 질식할 수 있음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패자부활전의 성격이 강한 싱어게인에서, 치릿치릿뱅뱅을 열창할 때의 이승윤에게 빠져든 것은, 그가 어떤 계획 하에 무대를 구성하고 보여줌으로써 최고의 반응을 끌어내려 했는지 그것과는 상관없이, 30호로 불려야 하는 한 청년이 온갖 설움과 좌절에 굴복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심사위원을 향해, 시청자를 향해 마음껏 놀아내는 모습을 봤기 때문입니다. 무대를 넘어 화면까지 찢어버리는 그의 폭발력은 구속되지 않는 영혼의 자유로움이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던, 부르디외가 <구별짓기>를 통해 통렬하게 비틀어버린 상류층의 고급문화이던 하층민의 대중문화이던 중요한 것은 한바탕 놀아보는 자유로움이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것이었지요. 감정의 배설이라고 해도 뭐, 문제될 것 있습니까? 검열이라도 하시게요? 치릿치릿뱅뱅을 부를 때의 이승윤이 무엇을 생각하고 목표했던 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좋았고, 빠져들었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저의 덕질이 다른 이들과 같을 수는 없겠지요. 일정 기간 이상 지속되는 행복이란 나와 상관없는 세상의 것이며, 결국은 처참하게 무너질 것이라는 숙명적인 비관론을 또다른 나의 자아로 여기며 살았던 저에게, 그 순간의 이승윤이란 영원히 실현되지 않을 구원의 약속과도 같은 짧은 망각이었습니다. 저와는 달리 싱어게인을 통해 대중과의 소캐팅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승윤을 보는 것이 좋았고,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아래의 시는 저를 장애인으로 만들었다는 죄의식에 힘들어했던 어머니에게 바치는 시였습니다. 사업에 실패한 이후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저를 보며 자책하시던, 가족들에게는 너무 고마운 착한 치매로 돌아가시기 전에야 저를 의지할 수 있었던 어머님에게 바치는 시이기도 합니다. 수천 권의 책으로 중무장한 저의 성찰은 누구도 넘볼 수 없을 만큼 단단해졌지만, 그 표면에는 온갖 상처들로 가득합니다. 

 

 

'방구석 음악인'에서 벗어나는데 성공한 이승윤의 영혼에도 영롱한 보석처럼 단단해진 성찰이 자리하고 있을 터, 그 표면에도 많은 상처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제 눈에 들어왔고, 이제야 상처에 화석처럼 붙어있던 딱지들을 하나둘씩 떼고 있는 저처럼, 그 역시 상처들이 화석처럼 굳어지기 전에 떼어내기를 바랐습니다. 무한의 가능성을 향해 날아오르되, 자유롭기를 바랍니다. 어떤 것에도 속박받지 않고 자유로운 비상을 최대한 오래하기를 바랍니다. 

 

 

 

봄나들이

 

 

 

더듬어 읽는 한 줄의 글에

어머님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바람에 걸어논 슬픔

하나의 목련과

하나의 진달래, 나의 봄은 늘

손끝으로 오고

느낌이 햇살 같아서

마음을 풀어 놓았다

언젠간 하늘도 만져 보리라

지금 같은지

이렇게 더듬는 봄나들이

어머님의 눈물은 무슨 색인지

  1. 2021.02.24 06:11

    비밀댓글입니다

  2. 空空(공공) 2021.02.24 06:11 신고

    이승윤 ..자유로운 영혼이죠^^

  3. 참교육 2021.02.24 09:33 신고

    선생님도 싱어게인 보시는군요. 인터넷에 난리더군요. 저본의 장난이 너무 심합니다.

    • 늙은도령 2021.02.24 20:08 신고

      저는 즐길 수 있는 것들이 필요하다고 봐요.
      이승윤은 시대의 문제와 인간의 실존, 같이 살아가는 것에 대한 깊은 성찰, 사랑에 대한 사랑..
      그런 것들을 가진 정말 괜찮은 사람입니다.
      세월호 아이들 때문에 몇 년 간 힘들어하고 기억하기 위해 '기도보다 아프게'를 작곡하는 등 그의 인간적인 면, 사회적 약자들을 어루만지는 시적 표현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만 세상을 바꿀 수 있지요.

  4. 여강여호 2021.02.24 10:17 신고

    덕분에 이승윤이라는 가수를 검색해봤습니다...tv를 거의 아본 탓에...ㅎㅎ ..암튼 관련글 앞으로 유심히 읽어보겠습니다.

    • 늙은도령 2021.02.24 20:11 신고

      인간과 시대,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가진 멋진 청년입니다.

 

 

이승윤 자작곡 가사에 대한 주해를 중심으로 한 저의 접근들은 몇 가지 전제하에 이루어집니다. 첫 번째는 다양한 접근이 가능하지만 방구석 음악인의 결과물 중 하나인 가사를 중심으로 접근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승윤이 보여준 무대를 세세하게 구분하지 않고 퍼포먼스 전체에 대해서만 가사 해설과 연동해서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다양한 출처가 있는 그의 말과 글을 100%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각자의 시각에서 이승윤을 바라보며 자신의 기대와 욕망, 믿음, 성공, 사랑 등을 투영하고 있는데, 그중에서 부모와 형제, 지인들의 사랑과 응원, 격려, 믿음 속에서 착실하게 성장했다며 완성된 성인처럼 보는 기독교적 접근이 저를 당혹스럽게 합니다. 승윤씨의 성장기를 알 수 없는 저로써는 TV와 인터넷 공간에서 얻는 한정된 정보들로써 가사 해설과 그것과 연결시킬 수 있는 다양한 지식들을 전해주는 접근을 시도하고 있을 뿐입니다. 

 

 

벤야민이 보여주었던 방식의 고차원적 비평은 얼마되지 않지만 너무나 고마운 저의 독자분들이 고차원적 비평을 소화할 수 있을 만큼 기초지식이 탄탄해졌다고 판단됐을 때 진행할 것입니다. 그때는 제가 여기저기서 수집하고 승윤씨의 말과 행동, 글, 공연 등을 통해 심층적이고 다면적으로, 때로는 정신분석학과 심리학적 수단들을 동원해서 다층적이고 종합적으로 하고 있는 분석들을 풀어놓을 생각입니다. 

 

 

예를 들면, 서태지가 '서태지와 아이들'로 등장했을 때의 전율과 임팩트에 비견될 만한 무대를 보여준 승윤씨의 치릿치릿뱅뱅이 철저하게 준비된 연출의 결과물이며, 다음 라운드에서 살짝살짝 보여준 살인적인 미소도 자신의 공연을 극대화하기 위해 준비해온 장치들의 하나였다는 것, 여러 번이나 흘린 눈물도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다는 것, 그가 하는 말이 모두 다 진실일 수 없으며 계산된 멘트들이라는 것까지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합니다. 

 

 

비평은 대상을 씹어먹을 정도로 파고들어야 의미를 갖는 것이어서 승윤씨에 대한 칭찬과 찬양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서태지와 이승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맛보기로 해보고 두 천재의 합동공연을 기대하며 이번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디스토로에서 운영 중인 저의 2번째 블로그의 누적 뷰가 천만을 코앞에 두고 있습니다. 온갖 병과 개인적 사정 때문에 수없이 중단했다, 겨우겨우 이어지곤 했던 블로그 활동이었는데 여기까지 왔네요.

 

 

그동안 제 블로그를 방문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님들 덕분에 두 번의 암도 극복할 수 있었고, 계속해서 공부하고 성찰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죽을 때까지 극복하지 못할 어머님에 대한 형의상학적 죄의식과 시도때도없이 밀려드는 그리움을 상당 부분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든 전해야 하겠는데, 가장 현실적인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올해에 반드시 이루어야 할 것들이 두 가지 있는데, 그것을 이루면 현실적인 방안을 내놓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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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연주자로 그룹활동. 락에 전념했으나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함. 그러나 유재하처럼 그룹활동을 통해 시대를 뒤집어버릴 실력을 키울 수 있었음. 자신의 음색을 고려하고, 대중가요의 시대적 상황과 가능성으로써의 미래상을 예측해 '서태지와 아이들'을 결성, 데뷔하기에 이르렀음. 호불호가 뚜렷했고 평가조차 별로였던 데뷔평을 완벽하게 전복시켜버린 폭발적인 대중의 환호는 서태지 자신도 예상할 수 없었을 정도.

 

 

처음에는 그것을 즐겼으나 1년도 되지 않아 어마어마한 부담으로 자신을 짓눌러 옴. 당시에는 기획사 체제가 자리잡기 전이라 방송국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기에 차기 앨범 작업을 위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없었음. 그런 관행에 맞서 방송 활동과 음반 작업 기간을 나눠, 방송국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데 성공. 이것이 그가 내놓은 4개의 앨범과 함께 서태지가 거둔 업적 중 최고. 

 

 

 

최소한 10대에서 20대 초반까지는 당시의 대통령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질 만큼 감당하기 힘든 팬들과 대중의 요구가 그의 어깨를 짓눌렀음. 개방적이거나 적극적이지 못한 성격과 극단적인 프라이버시 추구까지 겹쳐, 자신의 신비화가 하늘을 관통할 지경에 이르자 결국 은퇴를 함으로써 '서태지와 아이들'의 현재진행형에 종지부를 찍음. 그후 오랫동안 침묵한 뒤 자신이 추구하는 노래세계로 되돌아옴. 명성의 상당 부분은 잃었으나 대중의 요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음.

 

 

이에 비해 이승윤은 짧지 않은 당양한 시도들을 했고, 그것에 한참 미치지 못하지만 나름대로의 경험들을 축적한 상태에서 대중과의 소개팅에 나왔음. 각종 오디션에 나간 이전의 승윤과 다른 점은 최후의 도전이었다는 점. 실패했을 경우 '방구석 음악인'으로서의 삶도 종지부를 찍으려 했다는 점. 그것이 실제로 가능했을지 알 수 없는 일이고, 알아야 할 필요도 없지만. 성공했기에 실패했을 때의 선택을 얘기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 

 

 

이것에서 파생된 것이지만 승윤씨가 서태지와 다른 점은 11장의 엘범과 거기에 실린 수많은 자작곡들이 있다는 것. 그중에서 상당 부분은, 아니 거의 대부분을 새롭게 가다듬어 내놓을 수 있다는 점에서 서태지가 받았을 중압감에 힘들어할 가능성이 매우 낮음. 인기에 연연하지 않는다면 더욱더 그럴 것임. 승윤씨가 가장 많은 폭발력을 보여준 치릿치릿뱅뱅보다 소우주에 더욱 많은 점수를 준 것도 그런 폭발력은 생애를 통틀어도 몇 번 나올 수 없는 것이어서 그것이 판단의 기준이 되면 더 이상의 뮤지션 활동은 불가능.

 

 

승윤씨가 서태지와 비교되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봐야하지 않을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자신의 음악을 하고 싶고, 서태지 수준의 인기를 얻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의 결과가 이승윤으로 남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나왔음. 서태지는 어렸고, 그를 도와줄 멘토도 없었지만, 승윤은 지금까지의 실패와 좌절, 고뇌 등으로 단련됐으며, 지금의 인기는 낯설지만 충분히 즐길 만큼의 경험치는 가지고 있음.

 

 

알라리 깡숑 멤버들도 있고, 얼마나 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정홍일과 이무진과의 우정도 있으며, 김이나나 유희열처럼 그의 재능을 아끼고 함께해줄 이들이 많다는 것도 서태지와 다름. 음악부터 외모까지, 여러가지 면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지만 서태지는 디지털 시대의 여명기에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가는 계량화가 불가능할 만큼의 무게를 감당해야 했지만, 이승윤은 디지털 시대의 정점에서 그것을 최대한 활용하기만 하면 되는 유리한 지점에 있다. 

 

 

틀을 깨는 가수라는 틀을 경계하고, 자신이 그 자체로 장르가 되는 것도 경계함으로써 지금까지의 자작곡들이 말해주는 것처럼 다양한 형태의 음악을, 자신만의 음악을 할 수 있는 완충지대를 확보하고 있음. 나이 또한 결코 작지 않기에 즐기되 중독될 만큼까지 나가지는 않을 것임. 그렇다해도 팬으로써 기대할 수 있는 최대치는 두 사람의 합동공연이리라!! 

  1. 空空(공공) 2021.02.25 06:55 신고

    싱어게인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대중에 알려졌지만 그것이 "반짝이"가
    안 되었으면 합니다.
    온라인 투표가 많앗던게 가능하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직은 서태지니 BTS에 비견할수는 없지만 가능성은 열려 있으니
    좀 지켜 봐야겠네요

 

 

흩어진 꿈을 모아

 

이 노래는 승윤씨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어 해설하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승윤씨가 아무리 조숙하도 해도 고등학생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당시의 상황, 개인적 경험, 진학문제, 가정환경 등등을 유추해서 가사를 해설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결국 할 수 있는 최선이란 고등학생 특유의 세계관이나 감수성을 고려하되 가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의식에 초점을 맞출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세상엔 오직 어둠뿐이라 한탄하는 이들 들리나요 이 작은 외침이 ㅡ 만일 승윤씨 이 노래를 고3때 작곡한 것이라면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당시의 세상이란 대공황을 피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어서 들려오는 얘기란 어둠뿐이었을 것입니다. IMF외환위기 때보다 더욱 암울한 전망만 번성했을 때니 사방천지를 채운 것은 한탄뿐이었을 것입니다. 대학 진학을 앞둔 승윤씨라고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겠지만 국가적 차원에서 볼 때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까지 들어줄 여유가 없지 않았을까요? 

 

귀기울여  들어줘요, 절망 속에 흘린 눈물이 아름답게 반짝일 때 ㅡ 그러니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귀기울여 둘어주세요. 모두가 한탄을 쏟아내며 생존을 위한 만인에 대한 만인의 경쟁과 각자도생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지만 말고, 그런 최악의 절망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눈물까지 포함해 강을 이룰 듯한 눈물들이 아름답게 반짝일 때, 다시 말해 절망의 눈물에서 아주 작은 희망의 단서로서 아름답게 빛날 때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아랑곳 않고 다시 일어설 때 ㅡ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중에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어쩌면 자신과 같은 청소년일 수도 있는데, 그들은 절망과 한탄의 홍수에도 불구하고 청소년 특유의 탄력성과 회복력으로 다시 일어설 때, 이를 테면 절망과 한탄의 노예가 될 수 없는 우리들이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전세계 어른들의 탐욕과 어리석음에 주눅들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ㅡ 어른의 잘못으로 아무 책임도 없는 자신과 같은 또래들의 꿈들이 조각조각 찢어지며 이리저리로 흩어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 조작들을 하나하나 모아 희망이라고 불러요. 희망이라고 부르고 싶어요. 절망하고 한탄하며 포기기에는 우리의 나이가 너무 어리기 때문에. 희망마저 포기하기에는 살아갈 날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있기에. 나를 포함한 우리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재능과 노력으로 세상을 절망과 한탄에서 벗어나도록 만들 테니까.

 

이 세상엔 오직 절망뿐이라 한탄하는 이들 들렸나요 내 작은 외침이 ㅡ 절망과 한탄의 크기와 규모에 비하면 사소하기 그지없는 고등학생의 작은 외침이지만 들리지 않았나요. 나와 또래의 아이들이 포기하지 말라고, 희망의 끈을 놓지 말라고, 미래세대인 우리가 이렇게 외치고 있는 희망의 노래들을 듣기라도 했나요? 들리기라도 했나요?

 

다시 들어봐쥐요 녹슬어 버린 기타줄이 아름다운 노랠 할 때 ㅡ 예전처럼, 1~2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들어봐줘요. 어렸을 때부터 썼기 때문에 녹슬어 버린 기타줄이 희망의 이름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눈물의 이름으로 노래를 할 때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아랑곳 않고 다시 일어설 때 ㅡ 거대한 소용돌이에 휩쓸려 실수로 밟은 작은 꽃이, 자신과 같은 청소년이, 어쩌면 더 어린아이들까지 희망을 버리지 않고 다시 일어설 때, 우리까지 절망과 한탄에 휩쓸리거나 굴복하기에는 우리는 너무 어리고, 남은 시간들이 너무 많고, 미래에 대한 희망과 가능성을 위해 다시 일어설 때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조각조각 찢어진 꿈들을 하나하나 모아서 희망이라 불러요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흩어진 꿈을 모아서 외쳐요 (희망이라고)

희망이라고

 

 

 

 

 

번역가들

 

네모난 상자 안에 갇힌 동그란 마음 ㅡ 기존의 관념, 관점, 체제, 세계관 등에 갇혀있는 개별 개인들의 마음을 표현, 난 동그란 것을 말하려 하는데 왜 네모난 모양으로 말해야 하는 거지? 그건 내 마음이 아니야, 난 갇히기 싫어.   

 

언제나 알아주기란 힘들지 ㅡ 그래서 모든 글을, 또는 나처럼 각각의 글을 네모난 관점에서 보는 사람들이 동그란, 기존의 관점에서 자유롭고 때로는 완전히 다른 네 동그란 마음을 알아주기란 힘들지. 이해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아주겠어.  

 

뚜렷한 글씨 안에 갇힌 투명한 말 ㅡ 나의 마음을 분명하게 담아낸 글이지만 오래전부터 정해져 있어 뚜렷하게 보여지는 글씨(글자의 여러 종류 표현)에 갇혀버린 표현들. 투명인간처럼 취급되는 내 마음, 그래서 투명해진 나의 말, 또는 가사, 노래에 담아낸 내가 전하고 싶은 말들, 마음들. 

 

언제나 보여 주기란 어렵지 ㅡ 어려운 것 같아. 기성의 틀 안에서, 정해진 규범 속에서 나만의 얘기와 마음, 노래를 보여주고 들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야. 그래서 늘 어려워. 나의 마음을 가장 나답게 담아낸 말로 타인과 소통하기란 참 힘들어. 난 그래서 유명하지 않아. 방구석 음악인이야. 

 

우린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들 ㅡ 나는 내 마음을 글로 표현했고, 노래로 내놓았는데 그것이 기존의 해석틀로는 번역이 안돼, 난 내 마음을 전하는 작가이고 싶지만 번역조차 되지 않은, 그래서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에 불과해. 내 마음을 표현하는 데도 난 인정의 기준인 검증을 받지도 못했기에 창작자나 작가아 아닌 내 마음을 전달하려면 기존의 틀로 번역해야 하지만, 검증받지 못했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어.    

 

여긴 어설픈 해석으로 가득 찬 소설이지 ㅡ 이중적 의미, 내가 내 마음을 제대로 표현해내지 못한 것을 뜻할 수도 있고, 기존의 틀이 아니면 타인에 의해 해석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그래서 나만의 언어로 타인을 이해시키지 못한다면, 나의 창작물은 어설픈 해석으로 가득 찬 소설로 격하될 수밖에 없어. 괴테의 삶을 신화화한 뒤, 그것을 독점(선취)함으로써 괴테의 작품 해석까지 독차지하려 했던 군돌프의 <괴테>를 통렬하게 비판한 발터 벤야민의 <괴테의 친화력>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이해하고 싶어 이해 받고 싶어 ㅡ 너의 이야기를, 타인의 이야기를, 나와 다른 말과 해석도구를 사용하는 기성세대의 작품과 말, 마음과 노래들을 나의 시각과 관점, 마음으로 이해하고 싶어. 그렇게 나의 마음을 담아낸 내 말과 노래도 많은 사람들로부터 제대로 이해 받고 싶어. 내가 하고 싶었던 얘기는, 내 마음은 이거였었어. 이해해주면 안될까? 이해받고 싶어.  

 

조그만 불빛 아래 숨긴 커다란 밤 ㅡ 작은 월세방, 작은 탁상 앞에 앉아, 그 작은 공간을 빛추는 불빛 아래, 수많은 상상과 하고 싶은 말, 전하고 싶은 마음으로 가득한 커다란 공간으로써의 나의 밤. 쓸쓸하고 외로운, 인정 받지 못하는 한 명의 청춘인 나, 방구석 음악인. 문밖으로 나가 세상의 문을 두드리고 두드리고 있지만... 

 

언제나 모른 척하기란 힘들지 ㅡ 나의 욕망을, 내 희망을, 내 바람을, 너와 타인의 욕망을, 희망을, 바람을 모른 척하기란 쉽지 않아. 내가 나에게, 네가 너에게, 내가 타인에게, 타인이 나에게, 네가 나에게, 내가 너에게, 그렇게 모른 척하기란 힘들지 

 

과감한 걸음 아래 숨긴 가난한 발 ㅡ 그래서 문을 나섰어. 난 2020년 12월 31일까지 방구석 음악인이 아닌 30호 무명가수가 아닌 음악보다 이름이 조금은 앞서기를 바라는 이승윤이 여기있다고 말하기 위해. 나를 조금이라도 더 알리기 위해. 헌데 걸음은 과감해 보이지만 나의 현실이란, 나의 초라한 월세방이란, 나의 월수입이란 삶을 지탱할 수 없을 만큼 초라해. 난 가난해. 경제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언제나 보이지 않기란 어렵지 ㅡ  나의 이런 가난함을 숨기기란 힘들지. 나의 마음을 담은 말과 노래, 얘기들을 숨기고만 살 수 없듯이, 그것이 지금까지 성공하지 못한 채로 남아있음도 드러내 보이지 않기란 어려운 일이지. 인디나 마이너들이 일반적으로 갖는 이중의 갈등. 모순적 이율배반. 아웃사이더 특유의 사유.  

 

우린 진실 할 수 없는 반역가들 ㅡ 나를 나로써 완벽하게 드러내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려면 네모난 글씨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러면 내가 전하고 싶은 마음이 아닌데, 내가 말하고 노래하고 싶은 얘기가 아닌데, 그럼에도 나는 나의 방식으로 쓰고 말하고 노래해, 그러면서도 노래보다 이름이 조금 앞에 있는 성공을 갈망해. 그래서 나는, 나와 같은 너는, 자신의 방식을 고집하는 인디와 마이너들은 일종의 반역가야. 기성체제의 성공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으니까. 검증 받지 않은 번역가이지만, 쓰고 말하고 노래하니 반역가이기도 하지.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거역하며 서성이지 ㅡ 우리끼리, 메이저가 아닌 마이너 무대에서, 서로를 위해, 그렇게라도 작은 생태계라도 유지하기 위해, 그러면서도 그 작은 시장규모 때문에 스스로를 거역하며, 많은 무대를 양보하며, 알려지고 싶은 욕망과 희망을 거역하며, 난 그렇게 서성이지. 넌 그렇게 서성이고.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위해 스스로를 거역하며 빛과 어둠을 가르는 경계선에서 서성이고 있지   

 

이해하고 싶어 이해 받고 싶어 ㅡ 경계선 상의 우리를 넘어 그밖의 사람들과 소통하며 이해하고 이해받고 싶어.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그것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시절의 이승윤이 진득히 묻어있고, 비슷한 길을 가고 있는 동료와 친구들의 마음이, 갈등이, 현실이 시적인 표현으로 가득하다. 

 

이승윤은 음악인생의 마지막 도전에서 다시 비상할 수 있는, 아니 처음으로 비상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운명이란 이렇듯 알 수 없는 것이어서 포기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승윤이 싱어게인이라는 최후의 도전무대가 없었다면, 아니 몇 개월이라도 늦게 시작했다면 그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이런 삶의 우연성, 뜻하지 않는 곳에서 다가오는 행운, 간절하게 원했을 때는 오지 않았는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주어진 상황에 모든 것을 풀어놓을 때 기적이 찾아올 수 있음을 이승윤의 최종우승과 현재의 신드룸이 말해줍니다. 이땅의 모든 청춘이 이런 행운을 잡을 수 없지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난다는 생각으로 세상의 문을 두드리다 보면 어디선가 손을 내미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내용은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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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도움으로 창작자로 사는 것, 이기적인 짓이 아닐까?

오디션에 맞지 않는 가수라고 생각, 그러나 음악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음악을 취미로 하면 못견딜 것,

'무영가수 모여'라는 컨셉의 싱어게인이 마지막 도전, 매 라운드마다 나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음.

잘하면 2라운드, 정말 운이 좋으면 3라운드까지.

무엇보다도 가사가 중요했음.

나를 말해줄 수 있는 노래 선택. 우승까지의 경연 중 가장 신경썼던 것은 '소우주',

치릿치릿뱅뱅에서 보여준 것처럼 파격은 장르가 아니어서 자신의 색깔을 담아 예쁘게 보여줄 수 있었던 곡이 '소우주', 자신의 이미지가 파격이 될 수 없으니까.

'너 그렇게 살거야'라고 야단맞은 후 대학가요제 출전,

1집 음원이 사라진 것은 변명처럼 음악을 할 때라 완성도가 떨어지고, 너무나 아끼던 노래들이며, 싱어게인에서 웃긴 캐릭터로 5분이라도 나오게 하려고 '허니' 부르기 전에 음원을 내려달라고 부탁,

 

 

가장 신경쓰는 것은 가사, 생각날 때마다 메모, 그것들이 쌓여 가사로 승화,  

자신은 정석이 아님, 모든 것이 비정석, 서태지와 비교되는 것 부담, 이승윤으로 사는 것도 힘들어, 이무진 여전히 부러워, 이적과 힙합이란 장르에서 가장 많은 영향받았음.

무명의 남성 싱어송라이터는 이적을 대신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쪼잔뱅이라서 부르지 않았으나, 최종전에서 물을 부른 것은 존경의 마음이자 자신의 선택,

2017년부터 모든 시간이 힘들었음, 귀차니즘과 유명세 희망은 모순을 탈피하려면 어느 정도의 유명세가 필요한데 이것저것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

싱어게인을 마지막으로 모순의 동행을 끝내자고 결론내림, 싱어게인에 고마운 것은 가사만 잘쓴다고 생각했지 편곡은 대충했는데, 편곡에 집중하도록, 그래서 편곡능력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것,

대중적 가사보다 다르게 생각하는 것 선호, 호불호의 차이를 부르지만 어쩔 수 없음.

락 좋아하지만 어떤 게 얼터너티브, 펑크, 하드 등 장르 구별 못함,

트로트와 정통 발라드 피지컬적으로 불가능,

슬픔에 민감, 제 감정이나 실패를 멀리서 바라보기 때문에 일희일비 안했음.

싱어게인 덕분에 나의 일희일비에 눈물, 감정 표현 자유롭게 할 수 있었음, 남의 슬픔에 우는 사람이었는데 처음으로 나의 일로 울어봄,

다작쟁이에 자신의 한계를 규정했으나 이제부터는 어떻게 노래할지 고민해야,

이름보다 훨씬 멀리 떨어져 있는 명곡을 쓰는 것이 목표,

'새벽이 들려준 마음' 많이 아낌.

상금, 연금처럼 오래오래 쓸 것,       

 

  

 

 

오늘도

커튼이 가려 놓은 창 밖의 하루를 거뜬히 감당 해 내기를 기도해요 ㅡ 방구석 음악인으로써 나와 세상은 창문 커튼에 의해 분리됐다. 커튼은 상징, 정말의 나와 잘나가는 세상과의 단절을 의미. 축제에 함께하지 못하는 실패한 자의 답답하고 힘든 작은 공간. 월세를 제때 내기에도 힘겨운 나의 하루하루. 난, 기도해야 방구석이 아닌 커튼 밖의 세상에 하루를 거뜬히 감당해낼 수 있는 날을.

 

어떤 이는 오늘도 창백한 얼굴로 터뜨리지 못한 분노를 삼키네요 ㅡ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거라고 했다. 하지만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도, 아니 능력이 모자라도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평등은커녕 도전의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데,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는 꿈도 꾸지 못해요. 1%도 안되는 희망의 이름으로 압도적인 절망을 버텨내며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세상을 향한 분노를 삼키는 것밖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부와 권력은 물론 기회마저 독점한 자들은 더 갖지 못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일삼지만 하루하루 넘기기도 힘든 사람들은 세상에 대한 분노조차 표출하지 못하죠.

 

삼켜야만 할 일 투성이인 오늘 하룰테죠 ㅡ 비정규직의 불안정성, 낮은 시급, 멸시하는 시선들, 차별의 일상화, 연예도 결혼도 내집 마련도 모두 다 포기한 세대로써 아무리 노오오오력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어요. 일은 넘칠 만큼 많은데, 쥐꼬리만한 일당,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오늘의 법벌이를 위해 하루에도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고 삭혀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아요.   

 

다쳐야만 끝이 나는 하루 일수도 있겠죠 ㅡ 먹고살기 위해, 그것밖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파견나간 현장의 구석진 곳에서 컵라면으로 대충 식사를 때우지만, 상시적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한 열악한 작업환경,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고를 당해야, 때로는 목숨까지 잃어야 저임금 작업이 끝나는 그런 청춘들도 있겠지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오늘 하루 힘내요 ㅡ 울지 말아요, 그런다고 달라지는 건 없으니까. 아니 울어도 되요, 울지 않으면 어떻게 이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겠어요. 다쳤으면 아프다고 큰 소리로 울어요. 세상에 말해요, 나 여기 있다고. 여기서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있으니 잡아달라고. 누구라도, 어느 누구라도. 

 

달이 등장 했지만 아직도 하루는 다리가 저리도록 어깰 짓눌러요 ㅡ 쥐꼬리만한 시급이라도 타기 위해,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달이 뜰 때까지 투잡, 쓰리잡도 뛰는데, 남들은 편히 쉬어야 할 이 시간에도 나는 쉴 수 없어요. 다리가 저리도록 어깨를 짓누르는 저임금 노동이 너무너무 힘들어요. 아프니까 청춘이 아니라 아픈 것밖에 없어서, 그럼에도 치료도 받지 못하는 청춘이에요.    

 

말이 그저 하고픈지 할 말이 있는지 잠이 와도 쉽사리 잠들지 못해요 ㅡ 하루하루가 이러한데 누구라도 잡고 나의 절망과 현실에 대해 말이라도 하고 싶은데, 그저 들어만줘도 마음이 조금은 풀릴 텐데, 주위에는 아무도 없어요. 죽을 만큼 피로한데, 피로가 쌓여 이제는 일상화됐는데, 오히려 잠이 오지 않아요. 잠들지 못해요.  

 

삼키다 너무 힘이 들면 토해 낼 때가 있겠죠 ㅡ 안으로 안으로만 삼키고 삭히는 분노와 절망의 양이 임계점을 돌파하면 토해낼 때도 있겠죠. 내가 나를 갉아먹는 이런 마음앓이가 더 이상 담아둘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비명처럼 토해낼 때도 있겠지요. 토해내고 싶어요, 우리 이렇게 여기서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제발 우리 얘기 좀 들어달라고.  

 

그러나 토 해낸 자리는 내가 치워야 할테죠 울지는 말아요 ㅡ 토해낸들 이 냉정하고 잔혹한 세상이 답해주지는 않겠지요. 결국 힘겹게 토해낸 감정의 배설은, 그 청춘의 절규는 누구에게도 가 닿지 못하기에 토해낸 것은 내가 치워야 하는 것이 현실의 반복이겠지요. 그래도, 그래도, 그 빌어먹을 1%이 희망을 믿고 울지는 말아요. 우는 것까지 하면 너무 초라하고 슬프고 참담하잖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오늘 하루 힘내요 ㅡ 아니, 아니, 울어요. 울어도 되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 하니까. 산다는 것이 그런 것이니까. 청춘은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연속이니까. 

 

삼키고 또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언젠가 소화가 되어 버릴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죠 ㅡ 참으로 처절한 부분. 순간순간 매일매일 삼키고 또 삼키고 또 삼키다 보면 언젠가 소회가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지요. 절망과 체념, 굴종이 내면화돼 완벽한 절망속에서 지옥같은 하루하루를 어떻게든 버틸 수 있는 그런 날이 다가올지도 모르죠. 왜, 희망은 모든 악한 것들이 담겨있던 판도라상자에 있었을까? 희망은 원래 악한 것이었던가요? 그래서 판도라상자의 맨 밑바닥에 있었던가요? 탈출도 못할 만큼 그렇게 악한 것이었던가요?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ㅡ 그런 희망을 믿어도 될까요?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운 사람사는 세상을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으니까. 아니 울어도 되요, 조금씩 좋아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믿어도 될까요 믿어도 될까요 울지는 말아요 아니 울어도 되요 믿어 보기로 해요 ㅡ 우리 무너지지 말고 좌절해서 방구석에만 머물러 있지 말아요. 커튼 뒤에 숨어서 세상과 단절하지 말아요. 좋아진 것은 별로 없지만 좋아지는 것들도 있으니까, 포기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나니까. 믿어 보기로 해요. 믿는 것 말고 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있나요. 살아야, 살아서 패자부활전의 기회라도 잡아야요. 그런 기회가 기적처럼 올지도 모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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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튼소리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ㅡ 직설적으로 사랑을 고백하지는 못하는 사람들은 사랑하는 이 앞에서 허튼소리를 하기 일쑤다. 사랑 고백은 성공보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허튼소리로 사랑하는 이의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ㅡ 허튼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사랑에 능숙한 것도 수줍어하는 청춘 승윤에게는 힘들기만 했나 보다.

신은 언제나 내게서 말을 앗아가시곤 ㅡ 그녀 앞에 서면 난 얼어버려. 머리가 하해지면 말을 잃어버리기 일쑤야. 

심장 소리로 모든 걸 대신하게 하더라 ㅡ 말을 잃어버리는 만큼 심장은 벌렁벌렁, 쿵쾅쿵쾅. 허튼소리가 아닌 내 심장박동을 들어줘!!!! 

 

옅은 채색은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ㅡ 승윤에게 사랑이란 감정은, 그 고백이란 화려한 말로 이루어진 채색이 아니라설레임과 부끄러움을 간직한 옅은 채색이었을지도. 나의 사랑은 화려하지 않지만 투명에 가까울 만큼 한결같으니까.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ㅡ 너의 앞에서 허튼소리만 했듯이, 내 사랑을 화려한 말로 채색해서 너를 내 사람으로 만들지도 못해.   

실은 내 물감통에는 단색뿐이었는데 ㅡ 시적 표현이나 멋진 은유와는 달리 사랑에 대한 내 말들은 화려할 수 없는 단색일 뿐이야. 화려한 말은, 그런 채색은 시도도 하지 못하고 용기도 내지 못하겠어.  

신기하게 총 천연색 섬이 그려지더라 ㅡ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대한 내 사랑을 그려보기라도 하면 언제나 총연색의 꽃들과 나무들로 넘쳐나는 아름다운 섬이 되기만 해. 

 

잠결에 들은 것 같아 네가 나를 불렀니 ㅡ 잠에 들었는데 누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 뭐야? 혹시 네가 나를 부른 거니? 허튼소리와 옅은 단색으로만 표현할 수 있는 내 사랑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것이니. 아니면 꿈을 꾸기라도 한 것일까?

나는 실눈을 뜨고 잠꼬대를 할거야 ㅡ 혹시 몰라 나는, 꿈이 아니기를 바라는 나는 실눈을 뜨고, 마치 꿈꾸는 것이라고 둘러대려고 잠꼬대를, 아니 잠꼬대인양 말할 거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ㅡ 사랑을 고백하지 못하는, 어쩌면 열병 같은 사랑앓이가 밤이라고 하면, 그런 어둠속에서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ㅡ 넌 떠오르는 태양처럼 동그랗게 빛나는 아침이었어. 어둠이 아닌 빛나는 사랑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ㅡ 마찬가지로 너만 바라 보는 내가 망원경 같기만 했을 때도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ㅡ 넌 밤하늘에 영롱하게 빛나는 별자리만 같았어. 칠흑 같은 창공에서 가장 빛나는 그런 별자리. 이후 반복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신은 언제나 내게서 말을 앗아가시곤

심장 소리로 모든 걸 대신하게 하더라

잠결에 들은 것 같아 네가 나를 불렀니

나는 실눈을 뜨고 잠꼬대를 할거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허튼소리는 사랑의 다른 말일지 몰라

여하튼 둘 중에 하나도 나는 다룰 줄 몰라

아마 내가 밤이었을 때에도

넌 언제나 동그란 아침이었어

아마 내가 망원경이었을 때

넌 언제나 영롱한 별자리야

 

 

ㅡㅡㅡㅡㅡ

 

승윤씨의 가사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형편없지만, 제가 승윤씨보다 조금 더 나이를 먹었을 때 썼던 시 한 편을 읽어드릴게요. 시는 커뮤너티에 올릴게요. 

 

 

 

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4)                                                

 

 

편지를 씁니다                                  

봄비 그친 후 첫 햇살로

당신 이름을 쓰고

당신 닮은 목련의 향기들로 인사를 하고

4월 바람 속 온기들만 모아서

첫 줄을 씁니다

 

다음 한 줄은 5월의 나무들에 기대어

물오른 초록들을 빌리렵니다

봄볕에 하나 씩 익어가는 딸기의 당분으로

내 떨림을 적으렵니다

 

지금 방안엔 숱한 꽃들과 바람

잎새들로 넘쳐 있는데 

4번째 줄에서 멈춰 있는 말들이

당신 모습만큼 아름답지 못해서



 

날아가자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ㅡ 떠나자, 그냥 즐기면 되니까 준비할 것도 없어. 난 노래를 넌 흥겨운 리듬에 맞춰 춤만 추면 되니까. 그곳이 도시의 한 가운데라고 해도.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 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ㅡ 휴식처럼 다가온 도시의 물안개 위로 살포시 걸을 거야. 그러나 높지 않게, 그렇다고 너무 낮지 않게. 나에게 주어진 당연한 만큼의 그런 높이로 걸어갈 거야.  

컨크리트 건물들을 보다 보면/ 나도 시멘트가 되어 버린 것 같아 ㅡ 도시라는 곳, 컨트리트로 지워진 건물들, 마천루로 가득한 곳, 이곳에 사로잡혀 있다면 나도 건물의 재료인 시멘트가 되어 버리는 것 같아. 나 또한 이놈의 꽉믹힌 세상에 매몰될 것 같아. 모든 자유를 박탈당한 채. 

 

가면 뒤의 얼굴을 마주 하면/ 석고상이 무표정하게 날 노려 봐 ㅡ 수많은 충돌하는 이익으로 가득한 도시에서 사람들의 얼굴이란 남을 속이기 위한 가면과도 같아. 그들과 얽히다 보면 무표정한 석고상이, 곧 생명도 없는 석고상이 특유의 무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는 것 같아. 도시의 사람들이 저놈들 뭐하는 거야, 제 정신이야, 하며 노려보는 것 같아. 

소맷자락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가져와 다 가져와 ㅡ 도시의 현실에서 소맷자락 속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다 가져와, 난 노래할게 넌 마음껏 춤춰추면 돼. 즐기자고, 마음껏!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 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ㅡ 조용한 호수에 돌맹이 하나를 던지면 그곳으로부터 물결이 퍼져나가듯, 그렇게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회색빛 도시의 한가운데 청춘과 같은 색인 파란 호수를 만들어보자. 난 노래하고 넌 흥겹게 춤만 추면 돼.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커피를 마시지 않았는데도/ 나는 카페인이 되어 버린 것 같아 ㅡ 커피에 들어있는 카페인은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물질인데, 도시의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어 맘껏 노래하고 춤을 추니까 잠도 오지 않아. 밤새도록 노래하고 춤출 수 있어. 커피를 마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카페인이 된 것처럼. 

낮이 섞인 밤들을 마주 하면/ 잠은 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아 ㅡ 다의적 해석이 가능한 부분, 낮이 섞인 밤들이란 낮부터 시작해 밤까지 계속된 고민과 좌절의 연속일 수도 있고, 낮에 꾸었던 꿈인, 도시의 한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어 물결처럼 노래하고 춤출 꿈일 수도 있다. 낮에 꾸는 반드시 실행에 옮겨야 하는데, 그것이 천장에 아른거리니, 그래서 천장에 붙어 떨어지지 않으니 잠들 수 없는 것. 이렇게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하다.    

소맷자락에 감추어 놓았던 눈물들을/ 가져와 다 가져와 

노랫가락에 맞춰 물결이 춤추도록/ 도시 한 가운데 파란 호수를 만들자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 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떠나자 떠나자 떠나자/기름을 채울 필요는 없을 거야/ 나는 노래들을/ 너는 춤 외엔 챙길 거 없어

날아가 날아가/ 물안개 위를 살포시 걸을거야/ 너무 높지 않게/ 너무 낮지 않게

 

 

 

 

들려주고 싶으었던 

 

꿈을 꾸는 나의 미소 위에다/ 그댈 위한 장미 하나 심어 둔다면/ 향기로운 노래로 피어날까/ 이렇게 이렇게 ㅡ 굳이 설명이 필요하지 않는 가사, 그저 상상하면 돼. 생각만해도 달콤한 미소가 나오는데, 거기에 그댈 위한 장미 하나 심어 둔다면, 그런 기분 좋은 설레임들이 향기로운 노래는 피어날 수 있을까, 마치 아름다운 장미처럼, 그댈 향한 내 마음처럼, 이렇게 이렇게 

나의 노래 속에 놓인 길 따윈/ 못 다 핀 꽃이 뒤덮힌 어지러운 꿈/ 너에게로 뻗어가기만 하면 돼/ 그렇게 그렇게 ㅡ 사랑하는 너를 향해 가고 있지만, 노래 속에 놓여있는 그 길이란 아직 다 피지 못한 꼿이 어지럽게 흔들리는 어지러운 꿈 같아. 나는 너에게로 가고 있지만 걸음보다, 노래보다 빠르게 너로 향해 가는 걸음이란 너무 어지러워 방향을 잡기도 힘들지만, 너에게로 향하는 길이면 돼. 내가 노래 속에 만들어놓은 길이 너라는 목표를 향해 이르기만 하며 돼, 그렇게 그렇게

 

엉켜있는 가시 넝쿨들이 많긴 해/ 뒤 얽혀 있는 가사들을 꺼내야 해 ㅡ 꽃들이 장미라면 가시 넝클들이 많겠지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는 길의 가시 넝쿨에 뒤죽박죽이 된, 또는 너에게 내 마음을 노래로 보내려면 가시 덩쿨에 뒤얽혀 있는 가사들을 어지러운 내 머리속에서 꺼내야 해. 노래는 그런 다음에야 완성될 테니.

 

그리고 불러야 해 네가 들을 수 있도록 ㅡ 전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아니므로, 열병처럼 나를 잡아먹는 짝사랑처럼

그댈 위한 장미야/ 검은 흙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그댈 위한 향기야/ 떠는 기타 줄에 휘감아 ㅡ 내 노래란 그댈 위한 장미야. 내 불타는 마음이야. 검은 흙속의 장미처럼, 그 향기처럼 홀로 속삭였어. 노랠 불러봤어. 

그댈 위한 밤이야/ 붉은 꿈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ㅡ 내가 그댈 위해 부르는 이 노래로 가득한 밤이야, 내 사랑이 모든 밤을 채웠어. 장미처럼 붉은 꿈속에서, 너에게로 가는 꿈속에서 홀로 속삭였어. 너만 들을 수 있게 홀로 속삭였어, 달콤하게. 

그댈 위한 마음이야/ 네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야 ㅡ 이 노래는 홀로 속삭인, 장미의 향기처럼 달콤한 이 노래는 그댈 위한 나의 마음이야, 내가 너에게 들려주고 싶었던 말이야, 사랑고백이야, 

 

 

 

삼권분립이 헌법에 명시돼 있고, 법관은 정의와 양심에 따라 판단한다고 주장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세월호 구조 실패'에 대한 1심재판부의 무죄 선고 논리의 허약함과 제멋대로의 비약,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죄를 묻는 지랄발광에 대해서는 언급조차 하기 싫습니다. 그저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여러 번 반복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이 나라의 사법부에 개차반 같은 판사들이 넘쳐난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기에 그들의 모자람을 입에 올리는 것이 창피하고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1심재판부의 무죄 판결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에게 책임을 돌리는 유가족의 마음은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그것을 기사화하는 진보매체들의 저열함에는 분노를 참기 힘듭니다. 

 

 

이승윤의 '교재를 펼쳐 봐'를 다룬 영상에서 말씀드렸듯이, 인간이 자행한 비극에 대한 청년 이승윤의 치열한 고뇌와 번민, 절망은 '기도보다 아프게'에서 가장 슬프고도 먹먹하게 휘청거립니다.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 앞에서 '해상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라고 치부하는 자들이 널려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습니까? 

 

 

마틴 루터 킹 목사는 '19세기 메시추세스 주에서 노예제 폐지운동을 벌였던 시어도어 파커 목사의 설교를 인용'해 '도덕세계의 궤적은 길다. 그러나 반드시 정의를 향해 휘어진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지만, 이 나라의 일부 판사들은 눈을 가린 '정의의 여신'을 아예 장님으로 만들어야 만족할 모양입니다.   

 

 

저는 밤을 세워 이승윤의 '기도보다 아프게'를 듣고 들으렵니다. 흔히 지미 핸드릭스와 제프 백과 3대 기타리스트로 회자되는 에릭 크립튼이 자신의 아들을 하늘로 먼저 보낸 후 작곡했다는 'knocking on heavens door'도 들어보렵니다. 이승윤도 기타를 연습하고 작곡과 작사를 하며 수없이 들었으리라 추측하면서.   

   

  1. 여강여호 2021.02.16 07:03 신고

    제멋대로 사법부...디케의 저울과 검, 가린 눈이 기득권의 상징이 돼버렸습니다.

<교재를 펼쳐 봐>

 

 

탕, 탕, 탕.. 수차례 총성이 울렸고/ 난 잠에서 깨었어/ 강의실에 앉아있었고 수업중이었어/ ㅡ 버지니아 공대를 다니던 한국계 미국인의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졌을 때 이승윤은 강의실에서 꿈뻑꿈뻑 졸다 잠에서 깨어난 모양이다. 아니면 지난 새벽에 타진된 충격적인 사건에 꼬박 밤을 지샜는지도 모른다. 탕,탕,탕.. 노래의 도입부가 충격의 정도와 인간이란 존재의 사악함에 대한 불신을 극적으로 드러낸다.   

 

어제의 총기난사 사건은 오늘의 소재가 되었고/ 교수는 말했지 좋은 교재가 될 거야/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 거야/ ㅡ 악몽에 시달리며 강의실에서 어떤 교수의 강의를 듣는데 해당 사건을 얘기한다. 당연하다. 지성의 전당에서 이런 사건을 그냥 지나칠 수 없으니. 헌데 교수라는 작자가 이런 비극을 막기 위해선 범죄를 예방할 수 있는 메뉴얼로써의 교재가 필요하단다. 아니면 총기난사 사건에 관한 전문적인 교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던 모양이다. 이전의 사건들과 이번의 사건만으로는 교재를 만들기에는 사례가 부족하다고 말한 것 같다. 다시 말해 자신이 먹고살기 위해, 교수라고 지칭되는 자들의 머거리를 위해 더 많은 죽음이, 더 많은 희생이,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하다고 대학생 시절의 승윤씨는 분노했던 것 같다.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위한 최대 이익단체이자 압력단체인 전미총기협회회장, 찰톤 헤스톤의 말과 그의 이력에 대해 설명할 것, '총기에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총기 사용자의 손가락에 책임이 있다'는 궤변과 함께. 그의 논리가 진실이 되려면 핵폭탄이 사용되도 책임은 발사버튼을 누른 손가락에 있을 뿐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자들과 공화당이 절대 양보하지 않는 마지노선, <역마차>의 존 웨인과 <람보>의 실베스타 스텔론, <어벤져스와 아이언맨 시리즈>의 주인공들로 이어지는 미국의 제국적 팽창과 근육질 외교의 할리우드식 변명들. 국제연합 등 국제법은 아랑곳하지 않는 미국의 선전포고 없는 전쟁, 예방적 차원의 선제 공격 등등등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탄식은 생에 스미기도 전 활자가 돼 있어/   ㅡ 어이없는 희생, 되돌릴 수 없는 죽음, 총기보다 못한 목숨, 계속해서 벌어지는 비극, 그때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흘린 눈물들로 만들어진 교재를 펼쳐봐, 아픔과 피로 적어넣은 이름들이 적혀있는 교재를 펼쳐봐, 총기소유 자유가 초래한 정치경제적 결정이 초래한 비극들이 활자화돼 일체의 슬픔과 분노, 연민이 박제화된 그런 교재가 출판되고 대학의 강의로 쓰이는 그날, 그 순간을 위해. 교수들이란 작자들이 반인륜적 행태를 위해. 아리스토텔레스, 도덕이 없는 인간은 모든 짐승 중에서도 최악이다. 스탈린, 한 사람이 죽으면 비극이지만, 백만 명이 죽으면 통계가 된다'는 말과 하나도 다를 것이 없음.   

 

 

 

 

뼛속에 말을 심은 누군가 낭독해/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우리를 강하게 할지/ 눈물을 닦고 귀를 닫고/ 마음대로 치유하고 감사해/ ㅡ 인간의 죽음까지 상업화하고 자신의 먹거리로 만들 수 있는 자란 뼛속에 타인의 비극을 새겨놓을 만큼 자인한 자, 그 누군가 활자화된 죽음들을 낭독한다. 또는 강의를 듣는 학생에게 읽으라고 했을 수도. 만일 교수나 학생이 신학교 소속이라면 하나님을 향해 이렇게 말했을 수도 있다, 얼마나 더 많은 시련들이 있어야 우리가 주에 대한 믿음이 흔들리지 않고, 총격사건의 범인처럼 사악한 자들을 몰아낼 수 있으며, 이런 사건들이 즐비하게 일어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을 만큼 강해질 수 있을지, 그런 믿음과 신앙에 들 수 있을지! 승윤은 처절하게 절규한다, 눈을 닦고 귀를 닫고, 그래서 진실에서 멀어짐으로 해서, 성전과 학문의 전당에 기어들어와, 희생자들의 삶과 죽음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 마음대로 치유하고, 그런 나라에서, 그런 범죄에 당하지 않은 신의 축복과 은총에 감사해야지!   

 

비극을 막기 위해서는 교재가 있어야 해/ 교재를 만들기 위해선 더 많은 비극이 필요해/ 너의 비극을 모두가 축복할거야/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이젠 됐어 그만 가봐/ 사실은 나도 똑같아 노랫말을 짓는다는 것은/ 너의 비극을 식탁에 꺼내놔줄래/ 내가 멋지게 위로해줘볼게/ ㅡ 대학생 시절의, 또는 방구석 음악인 시절의 승윤은 '기도보다 아프게'를 작곡할 때와 똑같은 자괴감에 젖는다. 나도 똑같은 놈이 아닌가? 이런 참혹한 비극을 노랫말로 짓고 있으니. 우리는 말한다, '용서하지만 기억할게'라고. 이런 무책임과 회피가 어디에 있는가? 차라리, '기억하기 위해 용서하지 않을게'라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은가? 

 

교재를 펼쳐봐/ 눈물을 쏟아내 교재를 펼쳐봐/ 아픔을 전부 쑤셔넣어/ 교재를 펼쳐봐/ 피로 이름을 적어넣어 교재를 펼쳐봐/ 

 

가지 마 그냥 덮어두자/ 탕, 탕, 탕.. ㅡ 승윤은 마지막으로 울부짖는다, 가지 마! 라고, 그것조차 하지 않으면 희생자들의 죽음을 가지고 노랫말을 쓰는 자기나, 교재가 필요하다며 더 많은 비극을 요구하는 교수와 다를 것이 없다는 죄의식 때문에.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소리들, 탕! 탕! 탕! 

 

 

www.youtube.com/watch?v=vK692D_udmU

 

  1. 하하호호 2021.02.16 12:55

    잘 보고 갑니다~~~

 

앞의 글과 영상의 후반부입니다. '공정으로써의 정의'가 아닌 '공정한 정의'로 포장된 능력주의 담론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파고든 마이클 센델의 관점을 그대로 유지했습니다. 다만, 문화비평으로써 제가 제일 좋아하고 흠모하고 안타까워하는 발터 벤야민의 '문예평론'의 접근방식도 차용했습니다.

 

 

'패자에게 책임을 넘어 굴욕까지 받아들이라는 교만한 능력주의 엘리트의 위선과 무능함'에 대한 이승윤과 이무진의 통쾌한 반격, 싱어게인의 기획에 대해서도 다루었습니다. 마이클 센델이 대가의 면목을 보인 <공정하다는 착각>은 다양한 분야의 연구들을 바탕으로 '도덕을 상실한 시대의 맨얼굴'을 종합적으로 접근함으로써 대가다운 면목을 보여주었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kF0UlUhpPe8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대박을 터뜨린, 그래서 한국이란 나라에 대해 비상한 관심을 가지게 된 마이클 센델 하버드대 교수ㅡ미쓰이와 함께 일본 전범기업의 쌍두마차인 미쓰비시의 조건부 장학금으로 교수 생활을 이어가는 램지어와 완벽히 대비되는ㅡ의 최근작, <공정하다는 착각 ㅡ 능력주의는 모두에게 같은 기회를 제공하는가>의 관점을 통해 이승윤과 이무진의 성공과 실패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주장 설명

첫 번째, 코로나19 펜데믹의 도덕적 이율배반에 대해

두 번째, 세계화의 승자와 패자라는 두 가지 관점에 대해

세 번째, 능력주의의 전제인 공정하게 제공된 교육이라는 환상에 대해

네 번째, 태어날 때부터 여러가지 이유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해

다섯 번째, 이 모든 것들을 무시한 채 능력주의의 담론에 따라 패배의 책임을 개인에게 떠넘기는 것에 대해

여섯 번째, <싱어게인>이라는 기회 또는 패자부활전의 필요성에 대해

 

 

훗날 코로나19세대로 회자될 이땅의 청춘들에게 능력주의로 중무장한 세계화 시대의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와 사회가 아무리 절망적이고 버거워도 절대 포기하지 말고 이승윤과 이무진처럼 나 여기있다고 외치면 누군가는 반드시 화답한다는 것을 믿어주길 희망해본다. 기성세대 모두가 사악하지 않음을, 최악의 세상을 물려준 것에 미안하고 있음을, 꼰대라는 소리를 들어도 반박하지 못하는 죄의식과 어리석음을, 우리가 너희를 응원하듯이, 너희도 우리를 믿어주기를.    

  

 

 

https://youtu.be/Rk5Fom4yN1I

 

 

JTBC 싱어게인이 배출한 세 명의 스타가 뉴스룸에 출연했습니다. 최종성적이 1~3위였던 이들을 뉴스룸 '문화초대석'에서 볼 수 있어서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이승윤 = 당일 잠 못잠. 다음을 잠만 잠. 무대에 설 수 없는 상황이라 실감하지 못했지만, 비대면상이라도 SNS는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기 실감, 배가 아프다는 것은 창작자로써 좋은 자세라고 생각, 계속 아플 것, 자신이 만든 창작물을 본인이 좋아하는 것과 다름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은 다른 것이기에. 자신의 노래가 어디까지 퍼질 수 있나 궁금해 싱어게인에 참가했는데 그에 대한 데이타가 쌓여야 이제는 자신의 음악이 얼마나 대중성을 띨 수 있는지 확인했음. 데이타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 싱어게인 초창기에 이무진 같은 참가자를 보고 큰일났다시퍼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다른 무엇보다도 김이나 심사위원과 많은 팬의 성원 덕분에 자신감을 갖게 됐음. 이승윤씨가 기보보다 아프게를 불러줘서 너무 고마웠고 감동적. 살이 더 빠지고 안색도 좋지 않아 안타까웠지만. 미사여구없이 감사합니다, 그다운 마지막 멘트!

 

 

이무진 = 경연 동안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이 모인 팬카페에 글 하나 올렸다. 방콕이 늘어나고 있음에도 어머님의 잔소리가 줄고 식사 메뉴의 퀄러티가 올라진 것에서 인기 오른 것 실감. 공교롭게도 자신이 태어나기 전의 오래된 노래들 선택한 것은 자신의 색채를 실을 수 있고 섞을 수 있는 노래라고 판단해서 선택했음. 오늘 노래, 이문세의 휘파람도 대단히 좋았는데 그의 음색과 색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어린 사람, 이승윤과 정홍일과 함께 한다는 것이 기적

 

 

정홍일 = 예상조차도 하지 못했던 인기몰이와 그에 따른 팬들의 홍수가 너무나도 고마워 그들과 소통하는데 집중.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인기를 말해주는 것. 마리아를 선곡한 것도 하드락을 해온 그에게 적절했음. 그가 노래 부를 때 활짝 웃는 이승윤과 이무진의 표정과 리액션도 좋았다. 시사문제를 다루는 뉴스룸에 하드락 가수의 라이브가 이루어진 것 자체가 기적이고 혁명이었음. 자신을 통해 마니아 음악인에게 희망을 주었던 것이 행복했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생겼다.  그들에게도 공연을 할 수 있는 좋은 조건들이 만들어지기를 희망한다.  

 

 

https://youtu.be/cLVr99Xk0EY

 

  1. 참교육 2021.02.15 11:37 신고

    공중파들이 뽕짝공화국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승윤의 영웅수집가를 작곡하게 된 이유를 밝힌 인스타그램 글을 분석해봤습니다. 빅미 시대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파고든 그의 성찰이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을 보여줘, 넌 소중하고 중요하고 행복할 자격이 넘치도록 있으니까! 셀럽과 분야별 스타,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아바타와 익명성을 이용해 너의 욕망을 펼치고 상대를 공격하거나 물어뜯어봐!

 

 

거대 플랫폼사업자의 시대이기도 한, 빅미 시대의 디지털 현상을 날카롭게 파고든 이승윤의 냉소적이면서도 폐부를 찌르며, 그러면서도 탁월한 비틀기가 돋보이는, 방구석 음악인 특유의 유머들이 포진된 이 짧은 글이 그의 천재성을 말해줍니다. 시대의 현상과 본질에 대한 날카롭고 공격적이면서도 동시에 방어적인 이승윤의 영웅수집가가 새롭게 해석될 것입니다, 이 인스타그램의 글로써. 

 

 

보다 자세한 내용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ttps://youtu.be/vZhXvtXHzjY

 

  

 

제가 이승윤의 덕후가 된 후에야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그의 팬클럽 카페 이승사자(이름을 변경한다고 합니다)에도 오늘 가입했기 때문에 이승윤의 인생사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나무위키에서 그에 관한 내용을 살펴봤지만 그가 이 노래를 작곡했을 때 어떤 상황이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사전 지식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 이 가사의 행간에 담겨있는 이승윤의 생각을 읽어낸다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의 곡들이 언제나 그렇듯이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길 사람 속은 모르는 것이라 그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분명한 것은 JTBC 싱어게인에 출연하기 전이라면, 노래도 이름도 알려지지 않았던, 꿈을 쫓아 살아왔지만 죽을 만큼 노력하지도 못한 것 때문에 후회만 남기는 것이 아닐까 걱정하던 시절의 자신을 그린 것이 아닐까 추측해봤습니다. 

 

 

특히 사형선고라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뜻하는 것이고, 절대의 절망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에게 특히 충격적인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가사를 보고 추측컨데, 가까운 몇몇 사람에게서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닐까? 지독할 정도로 자유주의적 성향이 강한 이승윤에게 이런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는 것은 그의 삶에 상당한 무게를 갖는 사건이 아니었을까? 그런 추측도 해봤습니다. 방구석에 갇혀있던 시기라 자신의 모습에 절망했을 수도 있고요. 

 

 

난 사형선고를 당했어/ 몇몇 사람들 마음속에서 ㅡ 그와 가까운, 그와 비슷한 어떤 사람들로부터 현타가 올만큼 충격을 받은 일이 있었나 봅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사형선고를 당했다고 말할 정도니. 아마 다시는 보지 않겠다는 절교의 선언을 들었거나, 그의 음악세계나 그의 삶의 방식에 대해 혹독한 소리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밖에도 수많은 가능성이 있지만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만은 분명합니다.

 

예수가 아닌지라 삼일이 지났지만/ 난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 ㅡ 자신들만 야훼에게 선택받은 민족, 도는 선민이라며 주장하며 독점권을 주장했던 유대인의 종교에서 벗어나 인류 모두의 종교로 발돋음할 수 있었던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구약의 야훼와는 달리 모든 이들의 원죄를 대속해주기 위해, 그래서 인류 모두가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인간의 역사가 끝나는 날에 모두 다 구원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야훼, 하느님, 하나님 등으로 불리는 최고의 신, 성부에게는 모든 인류가 다 선민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교는 세계적인 종교로 우뚝설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는 소수의 엘리트만 독점해온 라틴어에서 벗어나 모든 이들이 사용하는 영어로 성경을 번역한 것이 주효했습니다. 세 번째는 서유럽을 지배해온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된 것입니다. 네 번째는 선교사로 대표되는 공격적인 선교가 서유럽 강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선봉에 서서, 식민지 지배를 종교적으로 정당화시켜준 것입니다. 이밖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종교적 차원에서 보면 예수의 부활이 절대적입니다. 그가 야훼의 아들이자 성자로써, 무엇보다도 모두의 원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으로 인해, 그리하여 인간으로 죽었지만 신으로써 부활하면서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선사한 것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또한 충분히 긴 시간이 흘러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 예수의 재림으로 깨어있는 모든 이들이 최후의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한 것도 또다른 이유입니다. 최대한 그리스도를 닮기 위한 노력이 천국으로 가는 보증수표임을 밝힘으로써 신자 모두에게 영원한 구원과 지복한 삶을 약속한 것까지 더해지면서. 

 

이승윤씨는 이것을 말한 것입니다. 죽은 후 3일만에 부활한 최초의 인간이자 신으로써의 예수와 한낱 인간인 자신이 같을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사형선고를 당한 자신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것이고요.     

 

재심을 청구하진 않았어/ 내심 기대한 건 맞지만 피곤해/ 피고인석엔 다신 앉기 싫어 ㅡ 나 또한 부활하고 싶다고, 다시 말해 사형선고가 잘못된 판결이라며 재심을 청구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어. 몇몇 사람들의 마음을 돌리고 싶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았던 것이지요. 현타가 대단히 심했나 봅니다. 사람인지라 내심 기대한 건 맞지만, 피곤한 노릇이지요. 그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예수의 부활에 버금갈 정도로 힘들지 않겠지만 그래도 마음을 돌리는 일이란 여간해서는 성공하기 힘들지요. 그들의 마음을 되돌리는 노력이 재심법정의 피고석에 다시 앉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재심판사를 설득하려면 자신에게 내려진 사형선고가 잘못됐음을 입증해야 하는데, 그것이 얼마니 피곤한 일이겠습니까. 가재는 게 편이라고 재심판사는 1심판사의 편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기 때문에.

 

어차피 내 진술을 피가 고인 술잔으로 만들어/ 넌 축배를 들 테니 ㅡ 사형선고가 잘못됐다는 판결임을 밝히기 위한 자신의 진술은 어차피 판사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 자신이 소크라테스의 자기 변호처럼 배심원단이나 판사를 설득한다고 한들 이미 예단을 가진 그들은 또는 그는 사형선고가 정당했다는 반대 논리로 활용해 자신의 피가 고인 술잔으로 만들어 승리의 축배를 들 테니까, 소크라테스에게 강권된 독배처럼.    

 

건배 내 죽음의 형장의 이슬/ 한 모금을 줘 심장을 도려내/ 현장에 묻고 함박웃음을 지어 ㅡ 똑같이 사형선고를 내릴 재심판사와 자신에게 사형선고를 내린 1심판사, 즉 자신을 법정에 고발한 몇몇 마음의 당사자들이 내 죽음의 형장에서 이슬(자신이 흘릴 피인지도 모른다. 직접적으로 말하면 이승윤 자신의 마음 고생이겠지만)을 가져와 축배를 들고, 그렇게 취한 상태에서 심장까지 도려내기까지 할 것이므로. 그렇게 잔인한 짓을 벌인 이들은 심장이 도려내진 자신을 현장에 묻어버리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최종적인 승리를 건배와 함께 내릴 테니까.     

 

엄마는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ㅡ 그렇게 버려진 자신을 위해 엄마가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몇몇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마당에, 그것도 재심을 포기한 상황에서 악착같이 살아남아 행복해져야 하리라. 그것이 그들의 사형선고가 잘못된 것임을 증명할 것이기에. 소크라테스가 영혼의 불멸성을 말하며, 도망가라는 제자와 친구들의 간청도 물리친 채 배심원들이 내린 독배를 마셨던 것처럼. 

 

이제 그럴게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ㅡ 이승윤도 결심했다. 그렇게 하겠다. 죽을 만큼 살아서 행복해지겠다고. 이때의 처절한 경험이, 그 쓰라린 기억이 이승윤으로 하여금 JTBC 싱어게인에 도전하는 계기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이승윤의 공식인터뷰와 비교해보면 이것은 마치 평행우주처럼 맞닿아 있는 듯하다. 그때의 사형선고가 그로 하여금 조금 더 유명해져 행복해지겠다는 결심의 원천이 될 수 있었을 테니.  

 

난 사형선고를 당했어/ 몇몇 사람들 마음속에서 

 

예수가 아닌지라/ 삼일이 지나도 다시 살아나지 못했지만/ 미련하게도 나는 살아갈 거야 ㅡ 미련하다고 할지라도 나는 살아갈 거야. 엄마의 부탁대로 죽을 만큼 행복해질 거야!! 

 

건배 내 죽음의 형장의 이슬 한 모금을 줘/ 심장을 도려내 현장에 묻고 함박웃음을 지어

 

엄마는 부탁했어/ 죽을 만큼 행복해지라고

 

이제 그럴게요/ 이젠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https://youtu.be/Aba81z683UI

 

 

 

스포츠 채널로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정지한 TV화면에는 한 청년이 노래를 부르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름이 아닌 번호 30번으로 불리던 그는 소리를 지르며 목을 풀었다. 공연을 하기 직전의 가수들이 이런 방식으로 목을 푸는 경우는 많지만 TV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이런 참가자는 처음 보는 듯했다. 왠지 모를 생경함과 연약해 보이는 그 청년이 부르겠다는 노래라는 것이 이런,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이란다.

 

 

뭐지, 이건? 갑작스러운 호기심이 몸을 관통해갔다. 리모콘을 누르던 손가락이 멈춰졌다. 그리고 그 청년의 성대에서 튀어나온 노래라는 것이... 그랬다, 충격 그 자체였다. 호기심은 무한대로 솟구쳐 제멋대로 온몸을 휘졌더니 어마어마한 전율로 자라나 나를 압도했다. 아니, 집어삼켰다.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나는 온전히 그 청년의 압도적인 열창에 빠져들었다. 

 

 

청년이 보여준 몰입도와 무대를 폭발시킬 듯한 그 퍼포먼스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완벽할 정도로 소화해낸 노래가 청년이었고, 자유로운 영혼이 이끄는 춤사위가 청년이었다. 이효리의 치릿치릿뱅뱅은 그렇게 청년의 것이 되었다. 어떤 단어들을 동원해야 청년의 무대에 걸맞은 표현이 될 수 있을까? 그랬다, 그 몇 분의 시간이란 초대형 가수를 넘어 하나의 전설이 시작되는 출발점이었다. 

 

 

이승윤이란 가수의 무대를 처음 본 순간을 거칠게 표현하면 이러했습니다. 우연히, 정말로 우연히 이승윤의 열창을 보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땠을까? 만일, 정말로 만일 리모콘을 돌리다 잠시 동안의 시간 지연이 없었다면, 그래서 이승윤의 치릿치릿뱅뱅을 듣지 못했다면 지금의 저는 시사와 시대에 관한 치열한 영상들을 올리고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수천 권에 이르는 독서량으로도 누구 하나 설득하지 못하는 형편없는 유튜버에 불과했는데, 아고라의 논객으로 활동할 때와는 완벽히 다르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면서 한없이 지쳐가고 있었는데, 30호로 불리던 무명의 이승윤을 천둥벼락처럼 만났습니다. 파당정치와 진영논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고민과 주저함을 한방에 날려주었습니다. 사막을 헤맬 때난 느낄 수 있는 갈증이 한꺼번에 날아가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그 다음의 한 달이란 한여름밤의 꿈 같은, 달콤하고 즐겁고 행복한 기간이었습니다. 어머님을 하늘로 떠나보낸 후 단 하루도 형이상학적 죄의식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데 정말 기적처럼 한 달이란 시간이 푸른 창공을 떠도는 구름처럼, 그들의 옆구리를 간지럽히는 바람같이 흘러갔습니다. 녹화를 마친 영상에서의 제가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목소리도 차분해졌고, 기적 같은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통신사업에서 망한 후, 지난 20년 동안 책 없이는 단 하루도 보낼 수 없었는데, 어머님을 보내드린 후 단 한 시간도 편할 수 없었는데 제가 즐기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승윤이란 청년에 흠뻑 빠져 덕후의 세계에 들어서게 됐습니다. 평생 처음으로 팬카페에도 가입했습니다. 그것은 선물이었습니다, 하늘에 계신 어머님이 마음을 다잡지 못하는 제게 보내준 한아름의 선물이었습니다. 티끌 하나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아고라 논객으로 활동하던 시절부터 12년 이상 저를 지켜본 독자분들은 늙은도령이 미쳤구나, 마침내 맛이 갔구나. 죽을 듯 죽을 듯하다 겨우겨우 살아나더니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갔구나,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미쳤습니다. 네, 미쳤습니다. 그것도 확실하게, 이승윤이라는 청년에게 미쳤습니다. 우승을 결정지은 마지막 무대에서 다시 한 번 전율에 빠져들었던 노래에 미친듯이 빠져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엄마, 고마워. 정말 고마워. 조금만 쉬어갈게. 노래 가사처럼 '쉬지 않고 난 계속 달렸으니까. 잠시만 쉬어갈게, 물 한 모금 마시며. 엄마의 대한 그리움도 물로 적시며. 도무지 줄어들지 않는 형이상학적 죄의식도 물로 달래가며.        

  1. 제니 2021.02.17 16:03

    제 마음을 멋지게 글로 표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승윤 가수님 꽃길만 걸으시길 기도합니다

 

아직도 어젯밤에서 새벽으로 이어졌던 떨림과 흥분과 감동이 온몸의 세포에 여진의 진동처럼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인류 역사상 최악의 재앙이자 절체절명의 위기를 불러온 코로나19 펜데믹의 장기화로 모든 사람들이 지칠대로 지치고 감당하기 힘든 우울과 해소할 수 없는 분노로 힘들어 했지요. 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떠났고, 남아있는 모두가 힘겨웠으며, 팬데믹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엔데믹이 될 가능성이 언급되는 등 지난 1년 여는 일상의 소중함.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힘들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지쳐가고, 많은 분들이 한계상황에 내몰렸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우익 자유주의자들은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개인정보 제공을 프라이버시를 침해해 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인권과 자유의 억압이라는 허황된 주장을 가능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인류 공통의 방역대책을 무력하게 만들었고, 과학적으로 0.00001%의 진실도 들어있지 않은 백신음모론으로 지구 차원의 집단면역 형성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스위스 정신의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인간이 죽음을 대면하는 인간심리 5단계 이론'에 따르면 '상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부정'의 단계부터, '뭔라도 해야 한다'는 '협상'의 단계를 거쳐 '사태의 책임을 특정 집단이나 국가에 쏟아붙는 '분노'의 단계와 아무것도 하지 말자는 '우을'의 단계를 지나면,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른다고 했습니다. '수용'의 단계는 지금까지 인류는 모든 도전을 극복했기에, 그랬듯이 이번의 위기도 이겨내리라는 가느다란 희망을 붙들고 하나씩, 그렇게 점진적으로 세상을 바꿔나가자는 사회, 국가, 지구 단위의 전략을 수립하는 것을 말합니다. 

 

 

헌데 전염력이 2배 이상으로 올라갔고 치료기간도 훨씬 길어졌으며 그에 따라 자연히 치사율도 높아진 변이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펜데믹 종식이 아닌 코로나19와의 동행이라는 엔데믹을 걱정할 지경까지 이르렀습니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이 미증유의 위기에 지칠대로 지친 사람들에게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만능의 백신 같은 뜻밖의 선물을 들고나온 '방구석 음악인'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웃사이더 무명 특유의 언더 가수였고, 대중성과 독창성 사이의 경계에 갇혀 성공한 가수들에 대한 시기와 질투로 배아픈 무명의 천재 아티스트였습니다. 그의 재능은 하나의 장르에 가둬놓기에는 너무나 다양했고, 특정 장르로 묶기에는 너무나 뛰어나고 자유로웠습니다.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장르였고, 그 이상의 생태계였으며,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재야의 고수였고, 그럼에도 완성된 천재의 전형이었습니다. 

 

 

마이클 샌델이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맹폭한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능력주의 예찬은 대대로 세습되는 특정 집안이나 이익집단을 위한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개인의 능력이라는 것은, 스스로 만들어갈 수 있는 재능과 노력의 산물이 아니라 온갖 경우의 불평등한 탄생 때문에 능력을 키우고 발휘할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 배제와 차별의 장벽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과 칸트가 불평등과 양극화가 공고해진 작금의 세상에서 태어났다면 이승윤의 무명시절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삶을 살고 있을 것입니다. 

 

 

결과의 평등은 고사하고, 기회의 평등마저 주어지지 않는데 무슨 수로 자신의 재능과 노력으로 배제와 차별의 높은 벽을 돌파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 진입의 첫 걸음부터 갈 수 있는 길이 모두 다 막혀있는 청춘들에게는 더욱더 잔인한 배제와 차별의 거대한 벽입니다. 능력주의라는 거대담론에 최소한의 진실이라도 있다면 도전의 기회라도 주어져야 하는데, 성공으로 가는 모든 길에는 갖가지 바리케이트가 설치돼 있었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그래서 평균수명이 늘어난 장년과 노년의 부모와 조부모 세대를 부양해야 하는 이 시대의 청춘에게는 능력을 발휘할 기회는커녕 앞선 세대들이 남기 온갖 이름모를 빚들까지 떠앉아야 했을 뿐입니다. 희망이 절망스러운 상태에 빠진, 그래서 희망조차 가지지 않으려는 수많은 청춘에게 이승윤이라는 방구석 음악인은 뜻밖의 위로이자 선물이었으며, 세대간 갈등까지 뛰어넘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준 치유와 해방의 아이콘이자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청춘은, 그리고 저 같은 꼰대들까지 이승윤의 노래에 귀를 기울였고, 빠져들었으며, 따라불렀고, 전율했으며, 주체할 수 없이 사랑하게 됐습니다. 그가 웃으면 같이 웃었고, 그가 울먹이면 같이 울먹였습니다. 그의 노래는 배제와 차별의 해소였으며, 우리가 잃어버린 공정한 기회의 중요성을 되새기게 만들었습니다. 패자부활전 의미가 강한 싱어게인을 통해 그가 만들어가는 스토리텔링은 갈수록 커지는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의 불평등과 한낱 감기 바이러스에 무너져내리던 우리에게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와 희망을 선사해주었습니다.

 

 

그의 상위 라운드 진출과 탈락, 재진입을 거쳐 최종 우승으로 막을 내린 파이널 무대가 우리에게 제공된 무대이자 우승 같았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승윤처럼 성공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도전과 성공 스토리는 우리 모두에게 '내가 했듯이 너도 할 수 있어, 포기하지 마. 우리 함께 가자, 명왕성으로! 그곳이 사막인들 우리가 함께 하면 그곳에서도 삶은 계속되고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갈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이승윤의 노래와 우승이 이 시대의 모든 문제점들을 바로잡을 수 없으며, 끊어지고 고립된 관계의 복원이자 일상으로의 돌아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승윤과 싱어게인에 참가한 모든 이들의 도전과 아름다운 경쟁, 멋진 연극 같은 피날레는 우리로 하여금 '이 고난과 위기에 맞서 이길 수 있다'는 용기와 치유의 메시지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대중문화적인 것을 넘어 일종의 사회적 현상으로써의 이승윤 현상이 탄생하게 이르렀습니다.

 

 

현상으로써의 이승윤과 싱어게인 참가자 모두로 해서 우리는 치유받았고 즐거웠고 행복했으며 희망을 다시 가질 수 있었습니다. 좌절하는 순간, 모든 것이 끝이기에 현상으로써의 이승윤은 우리에게 손을 내민 것이고, 우리는 그의 손을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잡은 것이지요. 그렇게 이승윤과 우리의 동행이 시작됐습니다. 우리 모두를 리프레쉬 시켜준 이승윤은 말할 것도 없이 싱어게인 참가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이승윤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서 말했듯이 싱어게인 스태프 모두에게도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수많은 청춘에게, 아니 모든 무명인과 패자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준 기획력에도 칭찬을 아낄 수 없습니다. 긴 장마 뒤의 첫 햇살 같았던 지난 몇 개월은 이승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싱어게인이 만들어내는 갖가지 이야기들로 해서 한여름밤의 꿈처럼 달콤했습니다. 첫 시즌이 끝났다는 아쉬움은 두 번째 시즌의 기다림으로 변할 것이며, 공연현장에서 이승윤을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https://youtu.be/g7wMFk_RTfw     

 

 

 

이승윤이 JTBC '싱어게인' 제작진과의 공식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그가 싱어게인에 참가하게 된 이유와 인생의 대반전이 이루어진 순간, 그래서 노래보다 이름이 앞에 있게 된 가수로 역전된 상황까지 담담히 풀어냈습니다. 제가 이승윤 못지않게 파보고 싶었던 63호 이무진에 대한 언급과 새로운 우승후보를 떠오른 29호 정홍일, 향후의 자신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말하기도 했고요.

 

 

이승윤은 인터뷰에서 나 이렇게 노래하는 뮤지션이야, 대중적이지 못하다 하더라도 나만의 스타일이 있는 뮤지션이야, 좀더 많은 분들에게 자신의 음악을, 자신의 존재를, 그래서 자신의 이름이 노래보다 앞설 수 있기를 바라서, JTBC 싱어게인에 참가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자신의 음반을 낸 뮤지션만 참가할 수 있다는 파격적인 제안은, 패자부활전 같은 열린 기회로써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자신만의 스타일을 보여줄 수 있었던 터닝포인트로써의 치릿치릿뱅뱅, 매 무대에서 최고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 번호로 불리던 무명과 노래보다 이름이 앞에 있게 된 역전, 그래서 값질 수밖에 없는 싱어게인, 악보도 볼줄 모르고 근본도 없지만 이제 시작된 자신의 음악인생 제2막, 멋지게 이어가겠다는 다짐,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다짐, 향후 더 나은 결과물과 창작물로 대중에게 다가가겠다고 말함으로써. 

 

 

제작진들의 진정성이 느껴졌고ㅡ열길 물속은 알 수 있어도 한 길 인간의 마음은 알 수 없듯이 그들의 속마음까지 알 수 없고, 방송국 차원의 돈벌이라는 한계가 있다고 해도ㅡ무명의 뮤지션들을, 그래서 이름보다는 번호로 불려야 했던, 이름없는 가수처럼 노래 뒤에 이름이 겨우 붙을까 말까할 정도의 자신과 같은 처지의 뮤지션들을 사려 깊게 대해주는 것도 고맙다고 했습니다.  

 

 

자신과는 달리 대중적으로 성공한 선배 음악인들ㅡ자신은 그렇게 성공하지 못해 배아프고 시기를 했었는데ㅡ그들의 성공을 인정하는 것에서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진 이승윤을 볼 수 있습니다. 대중적으로 성공했다는 것은 그들의 재능이 얼마나 탁월했는지 말해주는 것으로 그 성공들에 시기와 질투를 느끼는 것이 아닌 객관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습니다. 세상의 어두운 면에 꽂힌 아웃사이더에서 세상의 밝은 면도 볼 수 있는 인사이더로써의 변화를 말해줍니다.

 

  

새로운 우승후보로 떠오른29호 정홍일과 자신의 영혼의 단짝 같았던 63호, 이무진에 대해서도 솔직한 마음을 드러냈습니다. 싱어게인 측에서는 대중의 관심을 더욱 많이 끌어야 하기 때문에 슈퍼스타로 떠오른 이승윤의 입을 통해 그들의 천재성을 홍보하도록 한 것이지요. 실제 저도 이무진에 대해서는 별도의 영상으로 다룰 생각입니다. 2000년대 생으로 높은 수준의 실력과 폭발력, 무대를 즐길줄 아는 대범함, 그만의 음색과 노래 소화 능력까지 모두 다 살펴보고 싶습니다. 

 

 

이승윤의 무명성 지구인과 이번 인터뷰를 함께 놓고 보면 필연보다 더 필연적으로 보이는 평행우주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듯 이번 영상에서는 이승윤이 공식 인터뷰를 통해 말했던 것을ㅡ그것이 그의 진심이라고 믿는, 아니 진심에 가장 가깝다는 전제 하에서ㅡ하나하나 분석해봤습니다. 그가 했던 말의 행간에 숨어있는 것, 슈퍼스타의 반열에 오른 이후의 음악인으로써 자신이 걸어야 할 마음자세 등에 대해 찐팬의 일인으로써 조심스럽게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해 완성해봤습니다. 그가 블로그에 올린 글 중에 하나도 다룰 생각입니다.

 

  

https://youtu.be/9zBkgnH1CrE

 

  1. 참교육 2021.02.08 06:15 신고

    코로나로 공중파들이 나라를 뽕짝세상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전국민의 뽕짝화...괜찮을까요?

    • 늙은도령 2021.02.09 18:00 신고

      저는 별로 달갑지 않습니다. 다만 홀대받던 가수들이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괜찮다고 봅니다.

      대중문화란 유행을 타는 것이고 돈이 되면 누구나 달려붙으니 그런 과정이 하나라고 봅니다.
      비대면 세상에서 극도의 우울과 분노로 힘든 사람들이 당장의 어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음을 이용한 마케팅이 전략이 맞아떨어진 것이지요.

      코로나19가 지속되는 한 이런 현상은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지금 사람들은 위로와 치유가 필요하기 때문에 시사적인 문제에 관심조차 주지 못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은 때가 되면 행동할 것입니다.
      기레기들의 조작과 왜곡, 선동에 놀아니지 않는 시민들도 많습니다.

 

 

무명성 지구인

 

이름이 있는데 없다고 해/ 명성이 없으면 이름도 없는 걸까/ ㅡ 마치 싱어게인에서 번호로 불리는 것을 알기라도 했는지, 다른 이와 구별되는 자신이라는 존재를 상징하는 이름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무명의 서로움. 그래서 명성이 없으면 이름조자 가질 수 없는 걸까, 아니 번호가 아닌 이름으로 불리울 수 없는 것일까? 비상할 수 있는, 패자불활전과도 같은 천재일우의 경쟁의 장이라도 해도 너무나 잔인한 63호와의 경쟁, 다른 후보들과의 경쟁, 그래서 빅10에 들어야만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걸까? 자신의 이름으로 불릴 수도 없고, 설 수도 없는 무명의 설움 

 

이름이 있는 것만으로 왕이 부릴 수 없는/ 그런 곳은 없을까 명왕성에나 갈까/ 아참 너도 쫓겨 났구나/ 가엾기도 하지/ 근데 누가 누굴 걱정 해 안녕/ ㅡ 여기의 왕은 권력의 상징, 신일 수도, 아버지일 수도, 작은 돈으로 자신을 부리는 행사 주최자일 수도, 존엄한 한 명의 인간으로 자신의 자유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 권력으로 상징되는 모든 이들, 그런 모두가 인정받고 평등한 그런 유토피아 같은 곳은 없을까? 태양계의 마지막에 자리한 명왕성에라도 도망갈까? 아, 그렇지! 명왕성도 태양과, 그 사이의 행성들과 중력으로 연결됐다고 알려졌던 명왕성이 보다 발전된 측정 기술로 그의 궤도를 살펴보니, 태양이 아닌 그에게서 가장 가까이에는 다른 항성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것이 밝혀져 태양계에서 퇴출됐으니 갈 수도 없겠지. 그 또한 이름을 상실한 것과 같으니까. 

 

여기서 잠깐 뉴턴의 중력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설명,   

 

난 무명성 지구인이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ㅡ 그래도 아인슈타인의 사고실험처럼, 초속 30만Km의 빛에 올라타 명왕성까지 가보자. 상상은 자유니까. 안녕, 명왕성. 난 너와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너에게는 이름없는 행성일 뿐 지구에서 온, 무명의 가수인 이승윤이야, 헌데 기억할 정도는 아니니 잊어도 돼, 내 이름을 기억할 필요는 없어. 태양계에서 떨어져나간 너도 지구인들의 기억 속에서 점차 사라져갈 테니..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언간데 아무 것도 아니래/ ㅡ 현재의 청춘들을 대표하는 부분, 정규교육이던, 가정교육의 이름이던, 세상을 살아가는 가운데 나도 모르게 진 빚들로 가득한 젊음이란, 원금은커녕 이자도 갚기 힘든 태산처럼 어깨를 짓누르는 빚더미 위에 앉아, 실은 실이되 이름도 없는 무영실로 빚 때문에 자꾸만 구멍나고 사라져가는 청춘의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거라도 해야 이자라도 갚을 것 같은데, 천재소리 듣는 형과는 달리, 대단히 유명한 아버지와는 달리, 자신은 초라하기 그지없는 놈이니까. 나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무엇이라도 만든 것인데, 아무 것도 아니라네. 그 절망감과 비참함이란. 

 

필요치 않으면 곱씹어 볼수록/ 아무 것도 없는 사막이란 말은 너무나 잔인해/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달 그림자도 있는데/ 샘이 숨겨져 있지 않은 사막이라도 아름다울 순 없을까/ ㅡ 이땅에서, 이 시대에서, 청춘의 삶이란, 삶은 달걀이 아니라고 해도, 아무리 곱씹어 보아도, 아무것도 없는 사막과도 같은 곳이라는 말은 너무나 잔인한 것 아니야? 숨이 턱턱 막히고 아무도 함께하는 이가 없는, 꽃 하나 나무 하나없는 삭막하기 그지없는 사막이라 해도, 모래도 언덕도 바람도, 심지어는 달 그림자도 있는데, 게다가 사막을 횡단하는, 그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생명의 원천인 오아시스 같은 샘이 숨겨져 있지 않아도 사막은 모래와 언덕과 바람과 달 그림자로라도 아름다울 순 없는 것일까? 실패한 청춘들만 추방되는 지옥 같은 곳인가? 설사 오아시스가 백일몽 같은 실제가 아니더라도. 

 

안녕 난 무의미한 발자취야 반가워/ 내 이름은 아무개 기억 할 필욘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사막아, 아녕. 난 이름도 없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도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을 듣는 무의미한 발자취 정도에 불과하니 기억하지 않아도 돼. 이름 모를 빛들, 그래서 손에 잡히지 않고 무명길로 기우고 기워도 미래의 성공을 담보로, 다시 말해 희망이란 이름으로 나도 모르게 지게 된 빚더미 위에 앉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고 무명실로 무엇인가 기워 가는데도, 희망이란 이름의 빚더미의 미래란, 무명실로 기워서라도 잡고 싶은 희망이란 빛은, 무엇으로도 잡아둘 수 없으니, 그게 무엇인지 나도 잘 모르겠어.   

 

이름 없는 생물의 종만 천만 개체라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삶도 자연스러울 수 있단 거잖아/ 삶이란 때빼고 광내거나 아니면 내빼고 성내거나일까/ ㅡ 무명성 지구에는 이름없는 생물의 종만도 천만 개체에 이른다고 하는데, 그래서 아무런 의미도 가질 수 없을지도 모르는데, 이름 하나 새기지 않고 사는, 내 이름으로 무엇을 만들지도 못한 채 살아가는 이 무의미하고 숨막히는 삶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것이라고 다구치니까, 자연스러울 수 있다는 것인가봐? 성공해야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무명실로 정체도 모를 무엇인가 기워도 되지 않는, 막막한 공간에 갇혀있는 청춘의 삶이란, 아니 모두의 삶이란 광내거나 아니면, 성공을 포기한 채 도망가서 분노나 포출하는 그런 것일까?   

 

신에게 이름을 물었더니/ 신이 말하길 난 이름이 없어/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진 나도 잘 모르겠어 ㅡ 해서 신에게,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소명을 준다는 신에게 나의 이름을, 내 존재 이유를, 삶의 가치를 물었더니, 이런 신이 말하길 난 이름도 없다네. 난 신의 계획 속에 없었던 그런 버려진 존재일까? 나는 카인의 후예일까?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이름 모를 빛들로 가득한 희망이란 빚더미 위에 앉아 무명실로 뭔갈 기워 가는데 그게 무언지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이 마지막 부분에 대한 다른 해석도 가능합니다. 신에게 당신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자신도 이름이 없다고 할 경우입니다. 신은 절대자이고 모든 것들을 주재하며, 그래서 하나의 이름으로 자신을 가둘 수 없는 무한한 존재라는 뜻으로써 자신은 이름이 없다는 것이 되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이승윤에게는 신도 이름이 없으니 모든 이름없는 청춘들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갖자, 라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명왕성도, 사막도 살만한 곳이 됩니다. 청춘들에게 지금의 삶이 삭막하더라도 희망을 잃지 말자는 것이 되지요. 척박한 곳에서도 마음먹기에 따라 자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릅니다. 물론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 말자, 이런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https://youtu.be/o5_YYIfR7GE

 

 

서양철학만이 아니라 동양철학, 특히 초기불교(근본불교)의 권위자인 프랑스 철학자들인 로제 폴 드루아와 모니크 아틀랑이 공저한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는 코로나19와 전세계적 대유행 때문에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책입니다. 책의 시작은 '희망은 절망스러운 상태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철학은 언제나, 과학이나 종교도 물론 정확한 질문이 있을 때만 제대로 된 답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저자들은 현재의 상황을 일람한 뒤 많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기대없이 사는 것을 택할 정도로 희망을 잏어버렸다고 합니다. 인류를 멸종으로 이끄는 인공지능과 로봇, 사이보그 등으로 대표되는 과학기술의 고삐풀린 폭주, 극단의 불평등과 양극화를 만드는 경제구조, 무분별한 개발로 인한 지구온난화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국민의 안전과 이익, 행복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치의 타락, 민주주의 지킴이이자 권력의 감시견이 아니라 민주주의의 적이자 권력의 나팔수로 전락한 언론, 각자도생에 빠져든 초개인주의, 공동체의 최소 단위인 가족의 붕괴,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청춘의 절망 등까지 너무나도 많은 것들이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희망을 가지고 있다 상처만 받을 것이 뻔한 현실에서 아예 희망을 갖지도 않게 된 것이지요. 

 

 

여기에 코로나19 팬더믹이라는 경험하지도 막을 수 없었던 최악의 위기까지 더해졌습니다. 이 책이 출간될 때는 없었던 이 코로나19 펜데믹으로 인해 절망을 불러오는 것들이 더욱 강력해졌습니다. 좋은 영향의 시너지 효과가 아니라 나쁜 영향의 시너지 효과가 커진 것이지요. 그것이 진화론이던, 창조론이던, 인류가 지구에 자리잡은 이래 지난 1년 여는 1, 2차 세계대전보다 더욱 참혹한 고통 속에 몸부림쳐야 했습니다.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은 청춘부터 코로나19의 희생자들까지, 모두가 힘들고 지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갖기란 불가능합니다. 서양에서 희망의 원래 뜻이 무엇이었으며, 현재 모두가 이해하는 희망의 뜻으로 변한 결정적인 사건으로 판도라 상자를 언급한 후, 우리가 다시 희망하는 방법을 찾아야 하고, 절망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무한경쟁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자고 합니다. 

 

 

이런 엄혹하고 위태로운 상황에서, 한마디로 희망의 반댓말인 젊망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과 무차별적인 분노에 휩싸이지 말고, 무엇보다도 삶을 포기하지 말자며, BTS(방탄소년단)이 모든 인류를 향해 따뜻한 위로의 노래를 전해주었습니다. 긴 가뭄을 끝내는 달콤한 비처럼, 오랜 장마 끝에 첫 번째 햇살처럼, 살을 에는 듯한 추위를 녹이는 따뜻하고 상쾌한 봄바람처럼 방탄의 노래, 'Life goes on'이 희망을 잃은 우리에게 이겨내자며 손을 내밀었습니다. 

 

 

<희망에 미래는 있는가>에 나온 내용들은 영상의 마지막으로 미루고 먼저 방탄의 노래를 살펴보겠습니다. 자, 함께 가보실까요?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는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고 말했는데, 삶은 계속돼야 한다고 노래한 방탄의 'Life goes on'에 대한 설명은 영상에 담았습니다.  

 

 

https://youtu.be/DoNp3wg5484

 

 

 

구겨진 하루를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 여기저기서 채이고 밟혀 구겨진 하루, 너무 많이 구겨져 그대로 잠들 수 없으니, 매일 밤 다려서 다시 펴지 않으면 내일 또 일어날 수 없을 테니..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어요/ ㅡ 초라한 하루를 적었던, 제대로 살고 싶지만, 최소한이라도 비상하고 싶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 초라한 하루, 그래서 거짓말이라도 변명해야 했던, 희망했으므로 더욱 더 커진 절망 속에서 구구절절한 일기란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이 일단이라도 드러나리라.. 

 

거짓말이 시들은 어스름에/ 쉬이 머물던 약속은 먼저 자릴 뜨네요/ ㅡ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할 수 있는 일기였기에 어둠이 깊어가는 그 어스름에는 시들어버리기까지, 자신이 자신에게 했거나, 타인이 자신에게 했던 약속은 잠들기 전에 먼저 자리를 뜰 수밖에.. 

 

성에가 낀 창문에 불어 넣은 입김은/ 생각보다도 금방 식어 버렸죠/ ㅡ 밖으로는 살을 에는 듯한 추위가, 그래서 창문에는 날카롭게 갈라진 성에가 끼었는데, 별빛이나 달빛이라도 보려고 자신의 입김으로 성에를 녹이려는데, 초라한 하루를 선사한 꽉막힌 현실에, 그 냉정한 한기에 자신의 입김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으리라, 더욱 두꺼워졌을 성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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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내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심죠/ 내가 이어 붙인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그렇게 야위어 가는 내 마음은 이 넓은 하늘 아래, 어디에도 심을 수 없을 만큼 초라하게 다가오지 않았을까요? 어디에도 마음 둘 곳이 없는 절망, 매일같이 구겨지는 하루하루, 성공은커녕 한 움쿰의 마음조차 간직할 수 없어 자신도 모르게 흘러나오는 눈물을 기우고 이어 붙여 보았지만, 화창해서 나를 더 초라하게 만드는 이 광할한 하늘 아래서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ㅡ 너와 나, 우리는, 청춘이라는 특권이 너무나도 무겁고 버겁기만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향해 달려온 것일까요? 너와 나, 우리가 키워온 것이 희망이었을까, 절망이었을까? 대체 우리는 무엇을 기른 것일까?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ㅡ 창에 성에가 낄만큼 추운 것을 고려할 때, 온도가 시작되는 곳이란 희망의 원천이거나 생명의 기원 같은 것일 수도, 너무나 적은 1%의 희망 때문에 99%에 이르는 압도적인 절망을 참아내며 매일밤 다려서 펴지 않으면 잠들 수 없었던 초리한 하루로 온도가 시작되는 곳을, 끝내 포기할 수 없었던 바라보고 갈구했던 곳인데, 그곳을 향한 시선마저 길을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나는 꿈조차 가질 수 없는 것인가,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절망의 크기가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나를 압도하는 것 같아. 그렇게 보여.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까지 잡았던 손을/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렸어요/ ㅡ 손바닥에 새겨진 아픔이란, 살을 가르는 상처가 전해주는 줄 정도의 아픔까지 참아가며, 끝끝내 희망을 놓지 않았던 그 손마저, 그 인내의 고통마저 생각보다 금방 놓아 버릴 정도로 약해진 것은 아닐까? 1%의 희망이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너와의 손을 놓지 않았는데, 나는 벌써 포기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악착같이 잡고 있던 것은 무대가 아닐까?

 

손장갑을 끼지 않아도 움켜쥘 수 있다고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ㅡ 현실이 아무리 척박해도, 누구도 내 꿈을 알아주지 않아도, 1%의 희망마저, 그 꿈꾸는 마음마저, 너무 일찍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성에와 대비되는 손장갑, 손에 난 상처는 살을 에는 한기로 더욱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손장갑을 끼지 않고 무대를 향한 꿈을 놓지 않을 것이라 자신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네 야위어 가는 마음은 어디에 묻죠/ 네가 이어 받은 눈물은 화창한 하늘 아래서/ ㅡ 지칠대로 지쳤고, 그래서 구겨질 대로 구겨져 갈수록 야위어 가는 너의, 어쩌면 이승윤의 동료일 수도 있고, 무대를 향한 그만의 꿈일 수도 있는 너는, 그 간절한 마음은 어디에 묻어야 할까요? 너무 쉽게 손을 놓았으므로, 그것이 내가 흘린 눈물을 이어 받아 함께 울었던 너의 눈물은 어디에 묻어야 하는 것일까? 그것도 이 화창한 하늘 아래에 어디에? 내 눈물을 묻는 곳, 바로 그 옆에라도..

 

우리는 한참을 무엇을 기른 걸까요/ 온도가 시작되는 곳에서 눈도 길을 잃은 걸까요/

구겨진 하루를 가지고 집에 와요/ 매일 밤 다려야만 잠에 들 수 있어요/

종일 적어내렸던 구구절절한 일기는/ 손으로 가려야만 진실 할 수 있어요

 

 

 

 

 

글을 좋아하시는 분은 영상을 보지 않아도 됩니다. 영상에 좀더 많은 것들이 담겨있지만 글로도 충분히 풀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뒤척이는 허울

 

 

잉크가 마른 경전 위에는 완장을 두른 경구들/ 어머 난 난시가 있어/

 

(모든 일신교의 특징이 최고존재자이자 전지전능하며 절대자이며 창조자이고 모든 우주를 창조한 단 하나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칸트가 <순수이성 비판>을 통해 이런 근본주의적이고 원리주의적인 주장을 증명될 수 없는 것이라며 비판했지요. 최초의 원인으로 소급해 올라가다 보면 스스로 충먼하고 완벽해야 하는 존재로 비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시간과 공간에 선행하며, 영원불멸이며, 어디에나 편재해 있으며, 모든 일어나는 일들에 자신의 뜻이 배경으로 자리하는 전지전능한 신이 무조건적인 믿음과 복종을 요구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잉크가 마른 경전은 모든 신자와 비신자들을 향해 무차별적인 복종을 요구하는 믿음을 강요하지요, 마치 완장을 찬 것처럼.   

 

모든 종교의 경전들 만큼 수많은 경구로 넘쳐나는 책들이 니체의 <짜리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와 마셜 맥루한의 <미디어의 이해>입니다)

 

헌데 자신은 난시라니, 무조건적인 필연적인 믿음과 복종에서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지요. 칼 세이건의 <과학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보면 왜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은 모든 인류가 살아가고 있는 전체 세상이 아닌 성경과 성전에서만 절대적이고 구원자이자 사랑받고 구원을 주는 존재인지 물어봅니다. 그리스도교가 인류에게 더욱 많은 기여를 하려면 성서와 성전밖에서 사랑과 구원을 주는 실천가가 되야 하는 것이 아니나며 묻는 것이 나옵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명분으로 들고나온 성서제일주의, 성서와 예수무오류설 등도 완장을 두른 경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잉크가 말랐다는 것은 각각의 종교가 오래됐다는 것을 말합니다, 도무지 변화할 줄 모르는 그런 고집불통으로서.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뒤척이는 허울은 완장을 두른 경전을 말하는 것 같은데, 자신이 난시이니 경전이 아마도 뒤척이는 허울처럼 다가왔을지도 모르고요 완장을 두른 경전은 너무너무 싫으니까. 지척에는 조울은 그것에서 벗어나기 힘든 자신의 마음 상태가 아닐까요? 뒤쳐지는 너울은 믿는 자들처럼 하늘을 향해 가지 않고 지상에 머물러 있는 자신의 마음 상태를 말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최근의 일부 기독교도들처럼, 또는 경전의 말씀은 아랑곳하지 안은 채 자신의 이익과 탐욕에 물든 광신도들로 인해 서울이 미쳐갈 수 있고, 믿음 자체와 동떨어져 사는 사람들의 각자도생과 욕망들의 충돌을 말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빛을 잃은 거울은 자신의 모습이 얼마나 추한지 돌아보게 하는 반성과 성찰 기능으로써의 거울의 역할은 쓸모없어진 것이지요. 이것만 넘어서면, 그래서 위층에 오르면 거기는 햇살 가득한 곳일 수 있지요. 아니면 해, 즉 태양으로 상징되는 신은 아랫층, 즉 현실을 방관하고만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일에 신이 함께한다는 데 신의 뜻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사악하고 추한 것들이 널려 있으니...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이런 이유들로 해서 미쳐가는 서울에서, 그 탐욕과 욕망의 소용돌이에 휘말려들어, 또는 종교적 광신에 휘청이는 각각의 개인들을 살펴봐 달라는 것 같습니다. 눈 감았다는 것은 비신도들을 말할 수도 있고요. 

 

토성의 고리 손가락엔 안 맞아/ 천체를 접붙인 왕관을 가져와도/ 어머 난 얼굴도 작아/ 어쩌면 신이, 맹신을 요구하는 신이 이승윤군에게 영광의 반지, 즉 토성의 고리를 준다고 해도 맞지 않으며, 천체, 우주를 접붙인 왕관을 씌워준다고 해도 자신은 얼굴이 작아 맞지도 않는다는 것, 즉 완장 두른 경전을 따를 순 없다는 것, 이런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아마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시대의 품 속에 얼어붙은/ 우린 아마 여기서 얼어죽을 개인/ 얼어죽을 내일/ 많은 이들이 시대의 품 속에서 얼어붙은 채, 다시 말해 신앙적으로도, 세속적으로도 구원을 받지 못해 천국이 아닌 여기서, 이 지상에서, 미쳐버린 서울에서 얼어죽는 것이지요. 지옥도 아닌 대한민국 수도인 이 서울에서. 청춘을 헐값에 가져다 쓴 후에 냉정하게 버려버리는 거대도시의 냉혹한 본질에 개인은 참혹하게 얼어죽는 것이지요. 희망이라는 것의 의미로 쓰인 내일에 얼어죽을 것이니 절망의 상태에서 죽음을 맡는 것이지요.

 

아마 뒤척이는 허울/ 아마 지척에는 조울/ 아마 뒤쳐지는 너울/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아마 빛을 잃은 거울/ 아마 윗층에는 해야/ 아마 미쳐가는 서울에/ 눈 감아 휘청이는 건 좀 봐주세요

 

 

 

관광지 사람들

 

 

죽지도 않고 살아 있지도 않는 이 도시에서/ 난 살아 아니 사실은 죽어있는 것 같기도 한데/그래도 나는 살아/ 3대 종교의 성지인 예루살렘이나 이탈리아에 있는 고대로마의 도시들이나, 그리스 아테네 등을 보면 그 역사적 명성 때문에 살아는 있으나 좋았던 시절이 모두 다 사라진 퇴락한 도시로 변해버렸습니다. 죽지도 않고 그렇다고 살아있지도 않은 도시가 된 것이지요. 이승윤군이 말한 관광지는 정확히 확정할 수 없지만. 그래도 난 이곳에서 살고 있어, 반쯤은 죽은 채로, 반쯤은 겨우 숨만 쉴 수 있는 생의 명맥만 유지한 채로, 과거의 영광에 족쇄 채워진 상태이지만 그렇게 지옥에나 있는 듯이 살아 있기는 해 

 

좋은 자린 전부 역사가 차지하고/ 우린 무덤 위에서만 숨을 쉴 수 있고/ 어제를 파낸 자리에 오늘을 묻어야만 해/ 그래야 내일이란 걸 살아/ 그래야만 내일이란 걸 살아/ 좋은 자리란 역사의 유물들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고, 역사의 무덤, 폐허처럼 쇄락한 이곳에서 겨우겨우 살아가고 있으며, 과거의 영광을 유지하기 위해 후대의 사람들은 최악의 삶과 행복을 바쳐야 한다는 뜻, 역사의 유물들이 던져주는, 즉 관광객들이 흘리고 가는 부스러기라도 받아먹어야 겨우 삶을 유지할 수 있어... 이런 뜻이지요. 많은 관광지들이 유물 때문에 발전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코로나19 펜데믹 상황까지 더하면 역사의 도시에서 사는 분들이 힘겨운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역사의 도시에서 살기 때문에, 그것을 보기 위해 왔다가 가버리는 사람들이 쓰는 돈 덕분에 먹고살 수 있으니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지요. 하지만 각종 유물들도 우리가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빚을 지기란 과거도 마찬가지. 게다가 후대의 사람들을 과거의 영광을 얘기라도 하는데, 그래야 도시의 유물도 관광객들을 맞을 수 있는데, 죽은 유물들은 후대의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아. 기억해주기는커녕 우리는 잊혀진 존재야, 관광객의 떡고물이나 받아먹는.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역전된 관계, 주민이 주인이 아닌 곳, 잠시 동안 들렀다 가는 관광객이 그래서 주인이지.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라는 표현은 정말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입니다. 관광객 또는 관람객에게 팔 그림이나 안내글, 역사책 등에 이곳의 주민들이 담기는 정도가 허용된 삶의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박물관 앞에서 그림을 그려 파는 친구녀석이 묻더라/ 세기가 다섯 번을 더 지나도/ 나 같은 놈은 여전하겠지/ 벽의 여백엔 작품이 걸려 있고/ 밖의 공백엔 기념품이 널려 있지/ 저 안에 자리는 안 그래도 얼마 없으니까/ 하는 수 없이 헐값에 팔아/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팔아/ 관광으로만 먹고 살아야 하는 희망 없는 도시,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과거의 명성 속에서 벗어날 수 없는 도시, 그곳의 주민으로써 화려한 비상과 절박한 탈출이란 불가능하겠지. 우리의 자리란 없어. 벽의 여백엔 관광객을 위한 작품이 걸려있고, 유적지에서 나오면 기념품들이 즐비하지. 그런 공간이 후대의 사람들이 삶을 가꾸어가야 할 공간인데 그것도 주민의 몫은 아니지. 헐값에 팔밖에야, 어제를 그려 오늘을 내일에 헐값에 파는 영겁회귀의 윤회에 갇혀버린 것이지.   

 

과거에 빚을 지고 있다고 말하지만 과거도 우리한테 빚을 지고 있다고/ 우린 끊임 없이 그들을 되내이는데/ 그들은 딱히 우릴 기억해주지 않아/ 우릴 딱히 기억해주지 않아/

 

여긴 그냥 관광지/ 우리는 관광지의 주민이지/ 여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사람들과 관광객이 주인이지/ 여긴 그저 관광지/ 우린 관광지의 주민이지/ 거기에 사는 것은 우린데/ 실은 죽은 시간들과 관람객이 주인이지/ 우린 그냥 그 주위를 그리다가 글이 되겠지

 

가장 남쪽에 위치한 예루살렘은 비록 더럽고 누추한 도시였지만 셈족의 모든 종교가 이곳을 거룩한 성지로 만들어놓았다. 기독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은 과거의 유물을 직접 관찰하고 또한 역사의 전통을 실질적으로 체험하기 위해서 해마다 이곳으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 일부 유대인들은 자기 민족의 정치적인 미래를 위하여 예루살렘을 보고 싶어 했다. 이렇듯 과거와 미래의 단합된 힘이 너무나 강력했기 때문에 이 도시에는 거의 현재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 극히 일부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예루살렘 사람들은 마치 호텔에서 일하는 심부름꾼처럼 아무런 개성도 없었다. 그들은 그저 오가는 여행자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살아갈 뿐이었다.

 

 

www.youtube.com/watch?v=AOL2QknvnIQ

 

 

 

 

 

영웅수집가

 

그토록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아마도 나의 영웅이야/ 어쩌면 저렇게도 올곧고 위대한 건지/ 끝까지 나는 따를 거야/ 다만 내가 원할 말만 영원히 하면 돼/ 걸음걸이도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 마/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자신의 우상이자 롤모델이 될만한 사람을 찾아 헤매다 그에 가까워보이는 사람을 만났다. 칸트가 실천이성 비판에서 말했던 정언명령처럼 사는 사람, 즉 깊은 이성적 성찰과 그에 따른 정언명령처럼 위대하고 선한 자유의지에 따라 올곧고 위대한 인간한 모습에 반한 것이다. 그래서 끝까지 따를 거라고 다짐한다.

 

 

다만.. 바로 여기서 이승윤이 이번 가사를 쓰게 된 이유가 나온다. 아마도 자신이 찾아 헤매던 영웅으로 보이는 그가 내가 원하는 말만 해주면 돼, 그것도 영원히 해주어야 해. 그래야 영웅에 대한 추종이 흔들리지 않고 계속될 수 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영웅의 걸음걸이, 즉 하나하나의 말과 행동이 이승윤이 찾아헤매던 우상으로써 한치도 어긋나지만 않으면 돼.

 

 

헌데 이런 영웅이란 존재할 수 없다. 누고도 완벽할 수 없으며 이승윤만을 위한 그런 영웅은 존재할 수 없다. 얼마 동안 그를 숭배했지만,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실망했어. 그래서 부숴도 좋아, 내가 그렇게도 찾아 헤매된 영웅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부숴도 좋아. 

 

 

이제야 찾아 헤맨 사람을 만난 것 같아/ 마지막 나의 영웅이야/ 원하지 않는데도 어쩔 수가 없는 거야/ 시대가 원하고 있잖아/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을 걸/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일 거야/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그렇게 영웅들을 찾아다니다 드디어 마침내, 이제야 찾아 헤매된 사람을 만난 것 같아. 그것도 마지막 나의 영웅으로. 그런데 내가 정말로 찾던 그런 영웅은 아니지만, 시대가 원하고 있으니 어쩔 수 없는 것이지. 나도 따를 밖에야. 그렇게 시대가 원하는 영웅이니 표정과 말투 하나까지 이유가 있지 않겠어. 그러니 수많은 사람들이 추종하는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영웅이 될 수 있었지. 그의 모든 것은 시대를 상징하고 대표해. 심지어는 잠꼬대와 죽음까지 모두 상징이라고 받아들여야 할만큼. 그는 프로이트가 <정신분석학>에서 주장한 것처럼 에고와 이드 위에서 완벽한 통일을 이룬 그런 초자아에 의해 시대를 이끌고 있으니까. 또는 헤겔이 <정신현상학>에서 말한 세계정신에 이른 위대한 영웅이니까. 시대가 원하는 그런 영웅이니 내 진열장을 차지할 수 있어. 누구도 손대지마. 마지막으로 찾은 영웅이니까. 어, 그런데 자세히 오랫동안 지켜보니까 완벽해 보였던 이 영웅에게도 조금 바랜 흔적이 있네. 내가 그토록 찾아 헤맸던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정신을 대표하고 상징했던 영웅마저 완벽하지 못하고 바랜 흔적이 있네. 결국 이따위 영웅이라면 부숴도 좋아. 기대가 컸기 때문에 실망도 큰 법이니까. 

   

 

우릴 위해서 부서진 영웅을 위해 묵념 한번 하고선/ 관짝을 뜯어서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다 완성이야/

 

 

빛 바랜 영웅이자 흠 있는 미완성이지만 우릴 위해서 시대정신을 대표했던 영웅이니 묵념은 한 번 해줄 수 있어야지. 그는 시대의 상징과도 같았기 때문에 그의 관짝을 뜯어 영웅의 영역에서 영원히 추방하지만, 그를 숭배했던 사람들이 슬퍼할지도 모르니 그의 상징과도 같았던 깃발을 만들어 힘껏 흔들며, 프랑스혁명을 이끈 여신의 모습처럼, 영웅의 초라한 주검에 승리의 축배를 무덤 위에다 조금 쏟아부으면 영웅의 전설은 그것으로 모두 다 완성되는 것이지. 

 

 

근시안적인 군중들이 여러 해 동안 헌신해 온 희망에 다 함께 올라타다 보면, 결코 원하지 않는 우상에게조차 신성(神性)을 씌우게 된다. 그리고 누군가 침묵 속에서 기도할 때마다, 그것의 존재는 점점 더 강력해지는 것이다(T.E.로렌스의 <지혜의 일곱 기둥>에서 인용).

 

 

(전설이 탄생했단 걸/ 우리에게 감사해야 할 걸/ 너는 그냥 왕관을 쓰고나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될 거야)

아무런 의미 없는 널 완성 시켜 놓아 준 건 나니까/ 전리품은 전부 내 진열장에다/ 네 자리는 없어/ 너는 거기까지야/ 그러게 흠집 없이 완벽하지 그랬어/ 나의 진열장에 놓을 영웅이야/ 손대지마/ 이런 조금 바랜 흔적이 있잖아/ 부숴도 좋아

 

 

영웅의 전설은 스스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우주인 우리의 의해 만들어지고 전해지고 숭배받는 것이니 감사해야 하는 것이지, 과거의 유물로부터 영웅을 건져올려 시대정신을 상징하도록 만든 것도 우리이므로, 그리하여 너는, 짧은 동안의 영광을 취했을 뿐 20대의 나이로 사망한 알렉산더 대왕처럼, 프랑스혁명의 시대정신을 세계(백인이 지배하고 경험하는 한계로써의 서유럽을 말함)에 퍼뜨리려고 했으나 끝내는 황제라는 독재자가 되버린 나폴레옹의 성공과 좌절처럼, 너는 황제의 왕관을 쓴 채로 무덤 아래서 잠이나 자면 되는 것이야, 얼마나 허망하고 무력한가! 영광은 없었을지언정 죽음으로 해서, 즉 성공과 완벽에 이르지 못하고 죽었기 때문에 무덤 아래서 잠자는 것으로 만족해야지. 넌, 영웅은 내 창조물이야, 너의 미완성을 완성으로 만들어준 것은 나의 의지이니까, 해서 전리품은 이제 모두 다 내 진열장에 놓아둘 거야. 실패한 너에게는 실존할 자리조차 주저지지 않아, 성공을 지속하지도 상속하지도 못했고 전설 속에서만 살아서 홀로 외치고 있기 때문에 너는 그것까지만 허락된 거야, 그러게 어떤 것으로도 무너뜨릴 수 없는 완벽한 성을 쌓을 수 없었으니, 그래서 전지전능하고 모든 존재하는 사물과 운동의 원인의 최초의 원인이면서도 자신은 어떤 원인도 없이 스스로 존재하고 실존하며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불사의 영역에 오른 절대의 유일신처럼, 어떤 흠집이라도 없었다면 이런 푸대접을 받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래서 넌 나의 진열장에 놓을 여러 영웅 중 한 명일 뿐이야, 게다가 넌 너무 오래돼서 바랜 흔적까지 있어, 누군가에 의해 부서져도 별로 아쉴 것도 없지.    

 

 

이승윤이 영웅수집가에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류 역사를 통틀어서도 실제로 존재했던 모든 영웅이란 한낱 허상이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 것 같다. 그가 말한 영웅 중에 예수도 들어있다면 유명 목사였던 아버지에 대한 청춘 특유의 반발이었을 수도 있다. 제가 20대 시절에 죄의식을 강요해야 비로소 돌아가는 가는 천주교의 교화방식이 너무 힘들어 허무주의와 실존주의에 푹 빠져 지냈던 것을 이승윤도 비슷한 시기에 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https://youtu.be/3KKb6RmDSGo

 

 

  1. 2021.02.06 23:29

    비밀댓글입니다

    • 늙은도령 2021.02.07 04:36 신고

      하하, 젊은 시절에 그럴 수도 있지 않았나 가사만 보고 추측한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가사를 보면 이승윤씨도 일시적이나마 방황했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요.
      제가 다른 영상을 올릴 때 님의 댓글의 내용을 언급할게요.
      감사합니다.

 

이승윤의 자작곡 중 3편을 선정해 자세히 살펴봤습니다. 이승윤이라는 가수가 얼마나 잘 준비된 아티스트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은 너무나도 많지만 그의 작사는 작곡 능력과 소화력을 능가할 정도로 압도적입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미적으로도 이승윤의 가사는 감탄을 자아낼 만큼 깊이와 넓이를 가지고 있습니다. 삶에 대한 성찰만이 아니라 인간을 따뜻하게 끌어앉을 수 있는 탁월한 아티스트입니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질 수밖에 없는 수많은 아픔과 슬픔, 고난과 고뇌를 자신의 방식대로 풀어내면서도 아웃사이더에 머무르지 않고 좀더 성장하는 인간의 노력을 보여주니 대단할 뿐입니다. 보다 자세한 가사 분석은 영상을 통해 확인해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글보다 말이 좋은 분들은 영상으로 곧자 넘어가도 되고요.   

 

 

 

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삶은 원일까/아니면 구일까/구하고 원하다 보면 구원 속에 속한다 그래/근데 나는 마름모야/심지어 삐뚜루 서 있지/

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우주 like 섬띵 투 드링크

​근데 나는 마름모야/여전히 삐뚜루 서 있지/변과 변과 변과 변을 똑같이 나열하는/그저 변명꾼이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비는 직선이 아니라 동그라미로/내리는 걸 진작에 알아 챘더라면/뭔가 달랐을까 다음 장마가 오면/난 입을 크게 벌려서/

우주라는 구와 원을 다 들이켜 버릴거야

 

 

기도보다 아프게ㅡ세월호참사 아이들을 위한 노래

 

 

단 한줄도/쓸 수 없던/말들이 있었어

​기억한다는 말과/함께한다는 말은/펜보다 무거웠어

​눈물이 고여 있던 웅덩이에 들었던 하늘도/닦아내 버리면 자취를 감췄으니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마치 비밀인 듯이/모르고 팠던 건/매일 태어난 아픔들이야

​울먹이며 지는 석양아 이제 나도 서 있을게/네게 모든 어둠을 맡겨 놓지 않을게

​슬픔을 이불로 덮고 잠이 들은/작은 꿈들아 이젠 따뜻하길

미안해 그때 난 기도밖에 할 줄 몰랐어/노래할게 기도보다 아프게

성났던 파도가 이젠 너희의/고요한 숨을 품은 자장가처럼 울 때까지

​노래할게/기도보다 아프게/기억할게

 

 

 

 

게인주의

 

 

헤이 미스터 갤럭시/뭐 그리 혼자 빛나고 있어​

착각은 말랬지/널 우리가 지탱하고 있어

별과 별 사이엔/어둠이 더 많아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헤이 미스 무지개/뭐 그리 혼자서 숨어 있어

폭우가 그치게/기다릴 필요 이젠 더 없어

얼굴을 내밀어봐/넌 이미 전 우주야

헤이 여기 와서 눌러 부스터/게인은 너와 나 빅뱅의 부싯돌

게인을 더 높여봐 폭발할 거야

지글댈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

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아~ 우린 은하만한 게인이야/아~ 이건 날개 모양의 노래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

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대는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 날개 모양일 거야

게인을 더 높여봐/지글댄 주파수가/은하수를 다 채울 거야/아마도 날개 모양일 거야

 

 

 

어느 결혼식 축가와 나머지 곡들의 가사 분석은 차후에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https://youtu.be/_0j9Im6PNgw

 

  1. 참교육 2021.02.03 07:47 신고

    저도 싱어게임 가끔 보는데..
    이친구 눈여겨 봐야겠습니다...ㅎ

 

대단히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이고, 위로와 행복의 가사이자, 소우주에 비견될 만큼 소중한 개개인의 존재론적 가치와 함께 어우러지기 위한 선한 정신을 전해주기 위한 BTS의 소우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풀어낸 이승윤의 소우주는 초대형 팬덤으로써의 아미와의 첫 만남이라는 점에서도 다양한 평가들이 나올 것 같습니다. 이승윤의 승리가 올어게인이 아닌 것도 평가와 감상의 차이가 상당한 클 것임을 말해줍니다.

 

마이너 가수들을 메이저 무대로 재호출하는 싱어게인이 탄생시킨 최대어로써 이승윤의 소우주 선택은 상당한 모험이었습니다. 스타 탄생의 신화를 쓰고 있는 이승윤이 더 큰 무대에서 활약하는 슈퍼스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시대 최고 스타의 곡을 선택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소화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만큼의 위험도 따릅니다. 결과와 상관없이 이승윤의 도전이 대범했음은 이런 위험을 감수했기 대문입니다.    

 

류희열의 심사평이 대단히 조심스러웠던 것도 이 때문이지만, 심사의원이 아닌 한 명의 팬으로써 이승윤의 도전을 바라보면 그의 천재성과 상당히 완성된 그만의 스타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BTS의 소우주가 이런 식으로도 해석될 수 있음을 보여준 이승윤의 도전을 전세계 아미들이 너그럽게 봐주기를 바랍니다. 보다 깊은 평가는 영상에 담았습니다. 이승윤 덕분에 BTS의 소우주를 철학적으로 분석하게 된 것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했던 신세계였고요. 

 

 

BTS 소우주의 가사 : 반짝이는 별빛들, 깜빡이는 불 켜진 건물, 우린 빛나고 있네, 각자의 방 각자의 별에서, 어떤 빛은 야망, 어떤 빛은 방황, 사람들의 불빛들, 모두 소중한 하나, 어두운 밤 (외로워 마), 별처럼 다 (우린 빛나), 사라지지 마, 큰 존재니까, Let us shi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별들도 불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한 사람에 하나의 역사, 한 사람에 하나의 별, 70억 개의 빛으로 빛나는, 70억 가지의 world, 70억 가지의 삶 도시의 야경은, 어쩌면 또 다른 도시의 밤, 각자만의 꿈 Let us shine,

 

넌 누구보다 밝게 빛나, One, 어쩜 이 밤의 표정이 이토록 또 아름다운 건, 저 어둠도 달빛도 아닌 우리 때문일 거야,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꿈을 꿔,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 서로가 본 서로의 빛, 같은 말을 하고 있었던 거야 우린, 가장 깊은 밤에 더 빛나는 별빛, 밤이 깊을수록 더 빛나는 별빛, 도시의 불, 이 도시의 별, 어릴 적 올려본 밤하늘을 난 떠올려, 사람이란 불, 사람이란 별로, 가득한 바로 이곳에서, We shinin’, You got me, 난 너를 보며 숨을 쉬어, I got you, 칠흑 같던 밤들 속에,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린 우리대로 빛나, Shine, dream, smile, Oh let us light up the night, 우리 그 자체로 빛나, Tonight

 

 

https://youtu.be/cWWBQ_oyVYU

 

  1. *저녁노을* 2021.02.02 06:19 신고

    정말..특이하게 부르더라구요.
    늘 응원하는 분입니다.ㅎㅎ

    잘 보고가요

    • 늙은도령 2021.02.02 06:35 신고

      아이고 오랜만입니다.
      제가 몇 달 동안 죽을듯이 아파서...
      댓글 남겨주시면 반드시 방문드릴게요.

  2. 참교육 2021.02.02 07:12 신고

    이 친구들 이런 아이디어 그리고 열정은 어디서 나올까요?
    참 대단한 친구들입니다. 대한민국의 자랑입니다.




민주주의 역사상 최고의 대통령 중 한 명인 노무현 대통령이 지배엘리트로부터 집요하고 비열한 공격을 당한 이유를 다루었습니다.

퇴임 이후에도 공격받아 죽음에 이르도록 만들 정도로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지배엘리트의 열등감은 끝을 모를 정도로 깊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은 그런 와중에도 대한민국을 선진국에 진입시킬 수 있도록 모든 분야의 기틀을 튼튼히 한 것입니다.

IMF 외환위기를 중심으로 이에 대해 다루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의 위대함에 대해

  1. 택시 2019.03.09 16:19

    선생님 덕분에 막연하게 들어오던 전설의 소문처럼 느껴졌는데 듣고 있는 순간 못지켜 줘서 미안함에 눈물이 나오려 합니다 ...부디 건강 되찾아서 이젠 지킬수 있는 깨우침의 설파를 하시길 기원합니다

  2. 문재앙 2019.03.29 02:54

    지금 정치돌아가는 꼬라지를 보고도 노무현 찬양하는 인간이 있다는 게 놀랍군요. 노무현이 걷어 찬 사다리에 깔려죽은 사람 많습니다. 분노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이 기득권이라서 그럴까요? 기득권이면 사다리를 탈 일도 없겠죠.

    • 일베충OUT 2019.04.02 01:15

      이런 일베충

    • Out 2019.04.18 12:06

      아이디좀 보게.. 와서 멀쩡한 척은 다하네

  3. 이상호 2019.04.03 11:40

    블랙리스트가 돌아도, 거기에 자신이 포함되도, 조리돌림이 무서워 고굽척...트윗에서는 한마디도 못하는 비겁자.......

  4. 대한인 2019.09.07 20:25

    2019년 추석명절 천지개벽으로 인간재창조
    1. 남ㆍ북한의 한민족을 중심한 666섭리의 결실은 2019년 추석명절에 천지개벽으로 성사
    2. 작금의 시대에 세계를 좌지우지하는 국가원수들의 전생(前生)과 직관된 사명해설
    출처:모정주의사상원(母情主義思想院, www.mojung.net)
    ※ 본 게시물이 방명록의 성격과 맞지 않는다면 삭제하셔도 무방하며 사전 양해 없이 글 올린 점 사과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 땅의 기레기들은 최근 며칠 동안 미세먼지가 심각한 이유를 제대로 따진 후 보도해야 하는데 모든 책임을 문재인 대통령과 정부에 씌우고 있습니다.

그들의 공포 마케팅과 기레기 짓거리를 비판했습니다.

미세먼지 문제의 근원을 살펴봤고, 거시적이고 미시적인 해결책을 다루었습니다. 



미세먼지로 문재인 대통령 공격하는 기레기들의 비열한 광기 



  1. 별까기 2019.03.07 12:00

    건강도 잘 챙기시면서 하시길 바랍니다.

  2. 스마일 2019.03.07 14:45

    시민들이 변하지 않는한 기득권자들은 변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더욱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죠.
    노짱과 같이 문프의 정의는 그들에게 최대의 혼란을 초래할 것이기에 그들은 사력을 다해 끌어내릴려고 할 것입니다.
    일베와 태극기부대와 같은 비뚤어진 시각을 가진 이들은 이미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살고 있기에 그 어떤 논리로도 설득할 수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의식전환이 필요하나 이것 또한 하루아침에 각성할 수 없는 복잡한 상황의 반복인듯 합니다.
    신세대들이라도 자녀교육에 올인하는 것이 자녀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는 스스로의 올가미를 벗어버려야만 미래세대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이 땅의 깨어있는 지성인들이 목소리를 내어주어야 할 때입니다.
    늙은도령님의 말씀이 많은 이들에게 빛이 되어줄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건강하셔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 늙은도령 2019.03.08 04:07 신고

      지치지 말고 노력해야죠.
      민주주의는 시민의 수준에 따라 전진하기도 하고 후퇴하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기득권자의 뜻대로만 되지 않습니다.
      그런 날을 기대합니다.

  3. 택시 2019.03.09 18:37

    직업의 귀천이 없다고 말을 합니다만...과거엔 거의 모두가 가난 했기에 품팔이를 하더라도 집에있는 세끼들까지 오라고 해서 끼니를 해결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가진자가 인권비를 덜 주기 위해 외노자까지 끌어 드리는 세상이 되었죠...힘들고 어려운 일을 할수록 세게 줘야 사교육비도 경쟁도 사라질텐데...모두가 이해관계에만 혈안이 되어 스스로 무덤을 파는 짓을 하고있으니까요..미세먼지 또한 내가 만들어낸 무덤으로 자처를 한 결과물일텐데요
    선생님 견해처럼 각자 스스로 미세먼지를 더이상 발생하지 않도록 생각을 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필요한 싯점인것 같습니다

  4. 티트리 2019.03.13 20:18

    방송 너무 잘 들었어요. 정말 유익하고 좋은 방송인데 아직은 홍보가 많이 안됐나 봅니다. 그래도 좋은 방송이니 앞으로 번창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화이팅!!


건강이 악화돼 어떤 글도, 방송도 올리지 못했습니다. 건강이 완전히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회복세로 접어든 것은 분명합니다. 오늘은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이유를 미국의 정치상황을 통해 접근해봤습니다. 미국 최초의 비주류, 포퓰리스트 대통령인 트럼프를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 미국 주류 지배엘리트의 당면 과제입니다. 그들은 트럼프가 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막으려 합니다. 북한의 비핵화 과정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다룬 방송입니다.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유

  1. 택시 2019.03.09 17:17

    그렇군요..악의축은..실질적으로 우리의 우방인 미쿡이군요...일본이 대한민국을 잡아 먹고 있을때 미쿡과 소련이 개입하여 북한 남한으로 갈라졌듯이 ...힘없으면 당하듯 ...자주국방 중요하네요



기레기로 회자되는 언론의 타락을 기술적으로 다루어봤습니다. 민주주의에서 언론의 역할이 매우 중요함에도 기술의 특성 때문에 언론이 전하는 정보와 뉴스, 콘텐츠 등이 오락화하고 갈수록 선정적이고 표피적인 되는지 다루었습니다. 민주주의의 수준을 높여줘야 할 언론이 민주주의를 망치는 이유를 자세히 다루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이 왜 탁월한 지도자인지 다루었고, 이재명의 반민주적 성향도 다루었습니다.



페미니즘을 망치고 있는 워마드나 메갈의 문제점도 기술적으로 접근하면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왜 확증편향과 집단극단화에 빠져 위대한 인권운동이자 양성평등과 정치철학의 수준을 높여온 페미니즘을 망치고 있는지도 다루었습니다. 기술을 중심으로 접근하면서도 사회심리학이나 진화심리학적 분석도 함께 다루었습니다. 뇌과학적 접근도 다루었고요. 유튜브방송의 등장까지 갈수록 사회적 합의가 어려워지는 문제를 기술의 차원에서 다루었습니다. 



방송 길이 너무 길지만 끝까지 들으시면 많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성원 부탁드립니다. 



언론이 타락하는 이유에 대한 기술적 접근


  1. 티트리 2019.02.18 15:48

    방송 잘 들었습니다. 어렵지만 재미있습니다. 두번세번 반복해서 들어야 겠습니다. 이런 교양있고 지적인 방송을 기다렸어요. 방송 감사합니다

  2. 앨리스 2019.02.21 21:37

    와~~~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해서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는데 확실한 도덕적 가치 판단을 내리게 해주셨어요 진리는 어렵지 않고 간결하군요!
    빨리 회복하셔서 잠깐 언급하신 '시베리아~~'이야기도 해주세요!!^^!!
    근데 자꾸 방송이 끊어져서 듣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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