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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김연경 이용해 쌍둥이자매 죽이기 그리고 연경과 승윤의 착한 마음

 

이재영, 이다영 쌍둥이자매의 학폭 관련 논란이 일파만파로 커지고 있습니다. 딸들의 성공이 자신에게 달렸다는 듯했던 어머니의 문제까지 거론되더군요. 배구계는 물론 스포츠계 전반에 공고하게 자리잡은 '침묵의 카르텔'까지 비판하는 것도 스포츠계에 만연한 학폭을 근절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여기까지는 당연한 사실확인이고 그에 따른 비판이기에 어떤 문제점도 발견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진정한 본질은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성공만 하면 장땡이라는 극단적 능력주의 담론이 일상화된 세상이 어떻게 구축됐는지에 대해서는 일체의 성찰이 없습니다. 언제부터 모든 성공과 실패가 개인의 능력과 무능력으로 돌려질 수 있게 됐는지, 그래서 성공한 자는 천문학적 연봉을 받아도 당연한 것이고, 실패한 자는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도록 강요받는지, 정치, 경제, 사회 전반을 장악한 자유주의 50년의 능력주의 담론은 말하려 하지 않습니다. 

 

 

마이클 센델의 <공정하다는 착각>만이 아니라, 로버트 퍼트남의 <우리아이들>을 비롯해 수많은 연구와 저작에서 이 문제를 다루었음에도 정치인과 언론, 교수와 지식인은 이에 침묵합니다. 영국에서는 대처, 미국에서는 레이건이 처음 꺼내든 능력주의 담론은 블레어와 클린턴 부부, 슈뢰더 독일총리 등의 중도좌파 또는 진보적 자유주의자를 거쳐 오마바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성공에는 합당한 보상을 받아야 할 이유가 충분하기에 실패에는 가혹한 책임을 떠넘길 수 있지요.

 

 

환경과 지위, 행운, 불평등, 양극화도 실력이라는 능력주의 담론은, 개인의 성공과 실패가 거의 대부분 개인의 능력밖에서 결정되기 일쑤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40~70년대까지의 복지국가를 무너뜨리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습니다. 이제는 누구도 이런 능력주의 담론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습니다. 인간의 본성처럼 내재화된 것이지요. 무엇보다도 언론과 방송사의 기자들이 이런 능력주의 담론의 신봉자들이고 수혜자들입니다. 

 

 

 

그들의 싸구려 우월의식도 이것에 기인하며, 스포츠와 엔터테인먼트 분야의 슈퍼스타 연봉도 이런 식으로 정당화됩니다. 심지어는 이런 능력주의 담론이 페미니즘에도 스며들어 남성경멸 및 여성우월주의로 포장되는 경향도 점차 강해지고 있습니다. 쌍둥이자매를 공격하기 위해 김연경 선수를 끌어들이는 작태들도 능력주의 담론이 밑바탕에 깔려있습니다. 김연경을 앞세우는 배후에는 '능력으로만 따지면 너희들은 깜도 안돼'라는 왜곡된 의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신이 가장 소중하고 나의 이익과 행복을 헤치는 것은 모두가 악이라는 'Big me' 시대는 어린 시절의 피해가 영원히 극복될 수 없는, 반드시 복수해야 하는 어떤 것으로 변질되기 일쑤입니다. 용서와 극복, 망각이라는 위대한 인격 성장과 진화의 축복도 복수를 하지 않는 한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용서가 없는 사회의 가혹한 처벌 담론은 모든 것이 극단화되는 디지털시대의 성공주의 담론이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기도보다 아프게'의 이승윤처럼, 김연경은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공개적으로 유족을 찾고, 터기에서의 시합 중에는 노란 팔찌를 차고 나간 시합도 있었습니다. 이승윤을 비롯한 싱어게인 스타들의 살인적인 스케줄도 그들에게 기회를 제공한 JTBC의 덕이니 감내하고 따라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JTBC는 그런 자격이 있다는 능력주의 담론의 노골적인 변형이지요. JTBC는 시청률에 따른 광고 수주만으로 충분히 보상받았는데, 그 이상의 독식도 문제될 것 없다는 것이지요. 

 

 

로버터 프랭크와 필립 쿡의 <승자독식 사회>와 지그문트 바우만의 <왜 우리는 계속 가난한가>, 조지프 스티글리츠의 <불평등의 대가> 등등을 보면 대기업 오너와 최고경영자는 물론, 스포츠와 연예계의 슈퍼스타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싹쓸이할 수 있는 이유들이 자세히 나옵니다. 이들의 분석이 지목하는 공통지점에 지난 50년 동안 좌우와 보수진보 모두의 능력주의 찬양 담론과 성공 및 번영의 복음, 신의 섭리로 포장된 것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김연경과 이승윤의 차이는 노력과 운이 동시에 작용한 결과로써의 천재성이 성공의 정점과 성공의 출발점에 있다는 것이지요. 김연경은 모든 검증을 거친 자타공인 세계 최고선수이고, 이승윤은 숱한 검증을 통과해야 하지만, 둘의 선한 정신과 착한 마음씨,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용기와 절제, 타자들을 위한 자기희생 등은 성공이 오직 능력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고 있는 성숙된 이들만이 보여줄 수 있는 공생과 상생의 실천입니다.   

 

 

김연경이 후배들을 위해 연봉(이것도 기부한 것으로 알고 있다)을 대폭 삭감했고, 여자배구대표팀이 남자배구대표팀에 비해 차별받는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총대를 매는 등 슈퍼스타 이상의 그 무엇이었습니다. 싱어게인에서 1등한 이승윤도 살인적인 스케줄 중에서도 인디밴드들을 소개하고 무명의 가수들을 알리는데 노력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김연경과 이승윤은 명성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말해주는 우리 시대의 진정한 영웅입니다.   

 

 

이재영·이다영 자매, 그들을 그렇게 키운 어머니를 비판하는 것은 당연하고, 당장의 성적을 위해 슈퍼스타 위주의 행정만 고집해온 '침묵의 카르텔'을 비판하는 것도 당연하지만, 김연경을 끌어들이는 것은 김연경을 죽이는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김연경이 한국으로 돌아은 것은 한국여자배구의 발전과 더 좋은 환경을 구축하기 위함이며, 외국에서 뛰는 자신을 변함없이 응원해준 팬들과 국민에게 고마움을 표하기 위함이지 쌍둥이 자매를 공격하기 위함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