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2)
꾸겨지고 버려진 간밤의 원고지엔
손님처럼 하늘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투명함이란
때로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느낌이
목련으로 민들레로
길모퉁이 허둥대는 봄볕으로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끝내 말하지 못할 것 같던 속된 이야기들이
새벽 창가에 여명으로 남아
사르르 눈 녹는 소리로 오고
그 길었던 내 안의 겨울
빈 들판을 홀로 가는 바람과 함께
서툰 내 영혼의 빈 칸에도
한 자씩 간밤엔 하늘이 내렸습니다.
1999.4.20.(91.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