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관

 

 

 

이 병풍만 치우면 당신이 누워 있음을

살아 있을 때처럼 두손 두발 가지런히 모아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더니

수백 송이 국화를 남겨두고서

떠나는구려 멍하니 서 있는 나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옆으로 팔 하나 뻗치기도 힘든

그 좁은 상자 속으로 당신이

한 생을 훌훌 털고 가는구려

피처럼 눈물이 흐른다오

평생을 나를 따라 이리저리 떠돌기만 하더니

한 평도 안 되는 곳으로 또 묵묵히

들어가고 있구려 이 병풍만 걷으면 거기에

모든 고통 사라진 당신이

두 손 두 발 가지런히 모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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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익숙함으로

 

 

 

누군가 풀어놓은 지난밤의 기원들이

아침 햇살에 움을 틔운다

그렇게 투명하게 사랑하리라

꽃을 피우고도 향기를 아껴

그대 오기까지 영혼마저 지켜가리라

 

멀리서 나를 부르는 그대의 소리

이 익숙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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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습(2)

 

 

 

몇 날을 주저하는 내게

시간을 묻는 당신 물음이 너무 담담해

얼마나 오랜 동안 당신이 홀로

이별을 준비했는지 그 말없던 시간들의

두려움 속에서 서른 하나란 또 얼마나 억울한 것인지

그랬구려 내가 나의 무능만을 탓할 때

당신의 침묵이란 빈 들녘에 버려진 고혼의

시간이었구려 이승에선 더 이상 머무를 수 없어서

저승 가장 외진 곳의 움막이라도 찾아 헤매던

죽음보다 아득한 외로움의 순례였구려

이겨낼 수 있다고 나를 달래던 당신이

시간을 물어 오고 무엇도 준비할 수 없는

내게 이제는 쉬고 싶다며 매양

당신이 떠나려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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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습(1)

 

 

 

하루에 한 치씩만 마음을 닫아야 한다

 

어둠은 항상 당신 눈으로 내리고

그 뒤를 맹렬히 쫓아오는 죽음

뭉턱뭉턱 빠지는 당신의 머리카락엔

지난 번 항암치료가 극성을 부리고 있소

바람 한 점이면 낙엽처럼 뒹굴어 갈

희망이 힘겹게 당신 의식에 매달려 있소

이제는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당신이 어떻겐들 웃으려 힘을 다할 때

그 고통이 내 것일 수 없어서 나는 울었소

혈관을 찾지 못한 간호사가

이곳 저곳 바늘을 찔러될 때 화내지 못하는

내 무력함을 용서할 수 없어서 나는 울었소

가만히 있어도 새어나는 신음소리

새벽 3시가 되어서야 뒤척임을 멈춘

당신 숨소리가 잠시 고르게 잦아들었을 때

그래도 그래도 매달리고 싶어서

살이란 다 빠져나간 당신의 다리를 주무르면서

나는 또 한참을 돌아서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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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친구 아버님의 죽음-

 

1

하늘에서 버린 것이 내게는 있다

예수도 외면하여 떠돌아 가는

그래서 인간의 이름으로 묶어놓은 것

 

 

2

또 떠나고 있다

이 땅에 흐린 느낌만 남기고

노을보다 더 남루한 빛깔로

뚜벅뚜벅 삼일 밤낮의 혼돈과 피로

산 자들의 과잉포장 속으로

그저, 겨울 어느 날의 눈처럼 내려오다가

문득 깨달은 듯 홀연히 떠나고 있다

 

 

3

어머님이 자꾸 떠나려 한다

당신에겐 늘 업보인 내가

아직 세상 어디에도 바로 서지 못했는데

내 걸음보다 더 절뚝이며 휘청거리며

어머님이 하나씩 짐을 챙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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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원

 

 

 

모든 떠나가는 것들에 이유가 있어도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다

반드시 다시 만나리라는 약속이 단 하루라 해도

나는 당신을 보낼 수 없다

매일 밤 당신의 곁에서

수없이 무릎 꿇는 모든 기원마다

피를 토하고

나는 생을 다하고

그래서 기적은 당연히 당신의 몫이어야 했다

떠남이 그대의 마지막 안식이라 해도

그대가 이제는 자신을 놓아달라고 해도

나는 한 순간도 너를 보낼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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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2)

 

 

취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거리의 죽음까지 마시고 싶다.

취해서 그날로 달아날 수 있다면

내 고집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최루탄 그날의 흔적들을 지워야만 한다.

이것이었을까 기꺼이 떠나갔던 사람들의

죽음, 순결과 살아서 초라한 내 젊음이

질주하는 탐욕과 나를 붙드는

국적불명의 아이들 속에서

꿈틀대는 성욕이나 억눌러야 하는가.

시대란 백만 년은 됨직한 열망

변종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 홀로 씻김굿을 한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지금 신촌은 빙하기라고

 

                                      1999.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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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서(2)

 

 

잠이 덜 깬 눈으로 하늘을 본다

여전한 높이, 높아서

파란 현기증이 목 끝에서 울렁거리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라던 당신 에덴의 말씀

봄의 뜨락에 자리한 겨울이

햇볕마다 숨을 거두는 곳

질척이는 땅이나

더 하늘같은 마음으로만 사랑해야 하는데

눈을 맞출 수 없다

끝을 흐리는 네 웃음에는 색깔이 없고

내 말들엔 너무 공간이 많다

꽃들은 봄 맞으러 길을 나섰고

그 자리에 내가 서있다

보내는 가슴에 쌓이는 것이

허허

내 안의 신이라 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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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로

 

 

여기라 생각했습니다.

떠날 때부터 한 길만 걸어왔기에

분명 이곳이라 믿었습니다.

그대가 수천 개의 향기로 퍼져 있어도

유전자 깊숙이 그대가 스며있어선

어느 길 위에 그대가 서 있는지

떠날 때부터 만나리라는 믿음만 가득했습니다.

지금 내 앞엔 수천 갈래의 길

모든 향기가 다 그대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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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에서

 

 

바람이 바람으로 비워놓은 자리에

천년을 내리던 별빛이

빛살마다 다시 하늘의 이름으로 되살아올 때

그 황금빛 기억 속을 휘돌던 그리움으로

이곳에 왔다.

바다는 어둠을 가로질러 온 내 가쁜 숨결마다

바람을 보내고 태양은 파도 위로

그날 같은 인사를 한다.

전생엔 은하수였던 물고기들이 은빛으로 부서지고

백사장엔 하염없이 밀려드는 반가움

참으로 오랜 동안을 생각조차 잊었는데

바다는 어미의 품처럼 한결 같다.

그래 저기 어디쯤 나의 전생이 흐르고 있을지도

발을 적시는 파도가 백사장 위로

내 발자욱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이미

자신의 몸속에 영혼 속에 내가 있다며

다시 천년을 그 자리에서

출렁이고 밀려오며 사랑하겠다고

 

                                            199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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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끝에서 

 

 

 

그리움의 끝에서 다시 열리는

동녘 하늘을 따라

그대가 온다 꿈에서도 빛났던 당신이

어둠을 가르며 새벽 이슬을 밟고

내게는 기다림이 깊어 스스로 붉어지는

세상 첫 날의 느낌처럼 그대가 온다

평범한 모든 것들이 비로소 의미가 되는

당신 눈빛이 머무는 곳, 그 뒤안에서

나는 그리움 숨기고 안으로만 익어가는데

한 때는 그대 볼 수가 없어

그렇게 꺼리던 눈부신 햇살 속으로

그대가 온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다시 또 제 한 몸 가리고

 

 

 

                              199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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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에(2)

 

 

이제부터는 마음의 공간을 비워놓으리다.

나는 내 사랑에만 집착하여서

가슴에는 슬픔만을 키워갔었소.

아침이면 추억을 불러내어서

저녁까지 눈물만 흐르게 했다오.

그곳에서 피는 한 송이 꽃은 내 그리움임을

당신이 바람이라도 되어 와서는

이 모진 그리움의 향기에 취하기만 소망했었소.

그렇게 변하지 않음으로 나는

내 영혼의 안식만을 찾아 헤맸다오.

짙은 눈보라 속에서 매일 밤 당신이

내 안으로 들어오려 온몸으로 울고 있음을

창문에 당신 영혼이 차갑게 숨을 거둘 때까지

푸르게 갈라진 마음의 상처는 보듬지도 못하고

나는 내 슬픔에만 집착했었소.

 

 

                                                  1999.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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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다 떠나간 사무실엔

듬성듬성 3년의 세월이 흩어져 흔들거린다

직원이 비워두고 간 패잔의 흔적들

가슴을 가르고 간 바람이 그 위에서

먼지로 비스듬히 일렁거린다

무심코 발에 걸리는 결제보고서 사장 란에는

휘어진 웃음이 비릿하다

문틈을 비집는 엘리베이터 소리

서둘러 문을 닫아야 하는데

슬그머니 훑고 가는 시선이 역린처럼 남아 있다

지금 뼈 속에서 들려오는 울음

눈물도 되지 못한 통곡이 소리조차 삼켜버렸다

내 자리에선 아득히 전화벨이 울리고

 

                                     

                                               2004. 5.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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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동길

 

 

 

잊으라 한다면

창동길 십칠 년 그저 덤덤히

늘상 외로운 쪽은 이승 같았다

떠난 사람은 남은 자의 무엇엔들 머물러

못 다한 생을 그렇게 사는 지도

어딘가 바람꽃이 시들면 하늘 아래

우리 쉴 곳은, 푸른 소리들

당신 닮은 나무들이 바람을 타고

몇 마디 넋두리에 평생을 털던

당신의 오십 이 년이 떠나가고 있다

한사코 세월을 거슬러 오르기만 하더니

마침내 퇴색되면서 잊으라 한다면

창동길 십칠 년 그저 덤덤히

다 잊겠노라고 당신 무덤가 군데군데

피어나는 이름 모를 잡풀처럼

그날의 세상처럼

 

 

                                    1999.6.17.(1991.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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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

 

 

 

연초에 제사를 지내는데

구석이 편하기가 이렇게도

서둘러 집을 나서는데

조카들 부름마저 발밑의 사랑

절을 올리면서 비어 있던 당신의 자리가

지금 옆좌석엔 냉기로만 가득하구려

말하지 않음도 살기에는 방편인데

당신 떠나던 달

할부가 끝나버린 당신 명의의 차

앞유리엔 금이 가 있소

본레뜨 위에는 세월이 덕지하고

계절은 룸미러 안에서만 돌아가고 있소

문득 뒤에서 칭얼대는 클락션 소리

눈이 올 듯도 하고

앞차는 저만치를 달려가고 있는데

신호 놓치기가 이력날 듯도 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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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5)

 

 

어항 속 금붕어들이 자꾸 입을 맞춥니다.

갇혀 있지만 그 몸짓들이 자유로워 보입니다.

옆에선 열대어들이 유영을 해도

부딪히지 않는 넉넉함이 아름다워 보입니다.

내 안의 당신은 답답하지 않는지요.

홀로 다가가선 나 혼자 속삭이고

당신의 대답마저 내가 정하고픈

이 속 좁은 나의 사랑이

당신은 구속 같진 않는지요.

혼자 키워가는 사랑에도

나는 당신을 갖고만 싶어  

이렇게 오랜 날을 당신 주위만 맴돌아 갑니다.

 

 

                                                    1999.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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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내게 다가왔을 때(3)

 

 

 

어찌할까요

꿈마저 잠드는 새벽 3시의 적막에도

당신이 있음을

하나씩 망울지는 이슬이 안개가 되어

통트는 세상에 낮게 드리워져도

당신은 자유롭게 날아와서는

내 하루의 첫 기지개로 스며옵니다

어찌할까요

당신 곁에 이르러서도

말하지 못하는 내 마음 속의 파도

푸르게 출렁이는 이 오랜 기다림을

어찌할까요

오늘도 스쳐가며

당신 깨어나는 아침 뜨락에

꽃 한 송이 던져놓고

꽃 한 송이 던져놓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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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의 끝에서 

 

 

 

그리움의 끝에서 다시 열리는

동녘 하늘을 따라

그대가 온다 꿈에서도 빛났던 당신이

어둠을 가르며 새벽 이슬을 밟고

내게는 기다림이 깊어 스스로 붉어지는

세상 첫 날의 느낌처럼 그대가 온다

평범한 모든 것들이 비로소 의미가 되는

당신 눈빛이 머무는 곳, 그 뒤안에서

나는 그리움 숨기고 안으로만 익어가는데

한 때는 그대 볼 수가 없어

그렇게 꺼리던 눈부신 햇살 속으로

그대가 온다 나는 어쩔 수 없어

다시 또 제 한 몸 가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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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의 몸짓에는

 

 

창문으로 꽃씨들이 수없이 달려들다

뒤로 밀려나고 흩어져 간다

그 몸짓에는 슬픔이 있다

서로 깍지 낀 손가락 사이로

당신 영혼이 빠져나갈 때

붙들지 못했던 한없는 무력감에

미친 듯이 불러대던 당신의 이름처럼 

저들의 몸짓에는 눈물이 있다

혹시 그 중에 당신이 있어

내게로 다가오지 못하고 헤매인다면

간밤의 바람처럼 창 밖을 떠돌기만 한다면

그래서 내게는 꿈도 찾아오지 않고

당신은 이승과 저승 사이

어디서도 잠들지 못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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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2)

 

 

 

꾸겨지고 버려진 간밤의 원고지엔

손님처럼 하늘이 내려와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투명함이란

때로는 내 것이 될 수 없는 느낌이

목련으로 민들레로

길모퉁이 허둥대는 봄볕으로 뛰어놀고 있었습니다.

끝내 말하지 못할 것 같던 속된 이야기들이

새벽 창가에 여명으로 남아

사르르 눈 녹는 소리로 오고

그 길었던 내 안의 겨울

빈 들판을 홀로 가는 바람과 함께

서툰 내 영혼의 빈 칸에도

한 자씩 간밤엔 하늘이 내렸습니다.   


 

 

                    1999.4.20.(91.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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雅歌(아가)

  

 

 

 

한 개쯤 단추를 풀어헤친 저물녘

바람과 노을을 한 아름 가슴에 담아

네에게 간다

아가야, 바람 속엔 한낮의 열정이 있고

노을엔 새벽 햇살로 이어질

빛나는 약속이 있단다

네 두 눈이 머무는 곳에선

늘 새순이 돋고

사랑이 비가 되어선 달빛에도

꽃이 핀단다

아가야, 두 팔 벌려서 달려오는

너의 몸짓에

내 하루는 피로를 벗고

아직 주지 못한 것들로 마음만 바빠진단다

너는 벌써 품에서 웃고 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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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봉 2014.08.20 16:42

    조카 혜준이에 대한 사랑 잘 감상합니다

                                               

 

 

 

신촌에서(2)

 

 

 

 

취할 수 있다면

나는 이 거리의 욕망과 죽음까지 마시고 싶다.

취해서 그날로 달아날 수 있다면

내 고집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최루탄, 그날의 흔적들을 지워야만 한다.

이것이었을까 기꺼이 떠나갔던 사람들의

죽음과 순결, 살아서 초라한 내 젊음이

질주하는 탐욕과 나를 붙드는

국적불명의 아이들 속에서

꿈틀대는 성욕이나 억눌러야 하는 이 초라함이. 

너와 내가 꿈꿨던 그 낡아빠진 시대란 

백만 년은 됨직한 열망으로 떠돌고

변종된 사람들 사이에서 나 홀로 씻김굿을 한다.

아직도 떠나지 못하는 영혼들에게

지금 신촌은 들끓는 욕망의 빙하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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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 대하여

 

 

 

 

이렇게 숨이 차면서

흐르는 땀을 훔쳐가면서

비로소 나이를 책임질 수 있음을

나보다

어딘가의 내 반쪽보다도

어미가 먼저 코를 다신다.

전생에 원수였다는

그 가당치 않음이 병이 되어서

업보란 삶보다 무거운 형벌이라는

어미가

더 절뚝여 살아온 어미가

지금 문을 나서려 한다.

다음 세상엔

제가 먼저 원수가 되겠나이다.

극락왕생하시면 저는 문지기나

청동의 고리라도 되리오리니

길은 크고 단순하온데

저만이 요철이 되어서

지금도 채이며 쓰러지는 당신 너머로

앞 선 사람마저 붙들고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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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에 햇살이 첫 밤의 조명처럼

아직도 꿈인들 흘려서 밖을 보니

눈이 내렸다.

새 해 연휴를 술로 지새고

아침을 다 보냈거니

텔레비전 지직대는 소리에 일어 섰는데

창문 너머엔 겨울이

아이들 소리로 가득히 오고

하늘은 행인들 속에서 발을 구르며

연신 비벼대는 손끝에 살짝 얼어 있다.

때로는 취기에 저당 잡힌 새벽이

꺼진 방바닥에 단내로 돋아오고

꽁초 수북한 재떨이에 너를 잡아두기가

뒹구는 빈 병처럼 흩어져 가도

오늘은 바람이 불어오는 쪽으로

설 수도 있을 것 같다.

 

 

네가 떠나간 그 길 위로

지금 영하 10도의 기억들이

숨을 고른다 온종일을

언젠가는 터져나올 그리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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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지도에서

 

 

  

                   ㅡ 6.10 항쟁의 날에 부쳐

 

 

 

 

 

그날의 태양은 너무도 순결하여

지상의 생명들은 모두가 추했다.

비가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날부터 나의 젊음은 지고 가끔은

쓰레기 위의 햇살 같은 오후만 길어져 갔다.

내일이나 희망이라 하는 것들

그 미약한 약속의 축언 속에

또 얼마나 쓰러지고 피 흘렸던가.

그날엔 만 리 밖에 꽃이 피고

그 길에서 떠나가더니 오늘은 이곳

쓰레기 천국에도 비가 내린다.

그날의 외침처럼

그날의 벗들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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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에서(1)

 

 

 

 

 

 

질긴 내 젊음의 세월만큼

나는 이 거리에 얽매여 있다.

투명한 그릇의 바람이 되고 싶었던

다 떠나간 뒤의 노을처럼

이 거리를 증거하고 싶었다. 그렇게

시대의 슬픔이 되어서는 가장 외로운 사람의

독백이라도 들어주고 싶었다.

그때는 열망이 장대히 흘러갔고

사람들은 정말로 꽃잎 같았다고

그 뒤에서 나는 숨죽인 눈동자로

그날의 영혼들을 지켜주고 싶었다.

참으로 많은 몸짓들이

아무 의미도 없이 뒤엉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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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나들이

 

 

 

 

더듬어 읽는 한 줄의 글에

어머님의 눈물이 맺혀 있었다.

바람에 걸어논 슬픔

하나의 목련과

하나의 진달래, 나의 봄은 늘

손끝으로 오고

느낌이 햇살 같아서

마음을 풀어 놓았다

언젠간 하늘도 만져 보리라

지금 같은지

이렇게 더듬는 봄나들이

어머님의 눈물은 무슨 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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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서는 아침에(2)

 

 

 

 

 

 

비가 눈발처럼 떠나가던 12월, 몇 가닥 햇살에도 서둘러질 때 지난 3년이 젖은 화장지처럼 풀어져 갔다. 세상은 44년을 내내 문밖에 있어 혈행 장애의 나는 얼굴도 볼 수 없었다. 비에라도 섞여 다가가려 하면 언제나 그만큼 흘러갔음으로 그년는 내게서 떨어진 만큼의 여신(女神)이었다.

 

 

 

다 거두어 간 들녘에 볏짚 단 쓰러지듯 피 흐르고, 내게도 외출이 허락됐을 때 그녀를 가슴에 품었던 그 한없는 뒤뚱거림. 날카롭게 인대를 잘라오는 희망 곁에서 하얗게 튕겨나던 내 어깨 위의 햇살도 한 올의 모공 속으론들 스며들려 하지 않았다.

 

 

 

하늘은 혈액을 빼 놓고도 완강히 떠 있었고 문밖에서는 늘 등을 보이는 자(者)가 바람 같았다. 주어진다면 남은 반 생(生)을 담보로 한들 내 이름 석 자로 서고 싶었다. 그 곁에 무표정의 어미와 죽음을 짊어지고라도 걷고 싶었다. 포도가 알알이 여물던 늦가을의 미열로 내 품을 떠난 그녀의 자리를 메워야 할 때도, 나는 몇 개의 낱알인들 걷고 싶었다.

 

 

 

 

가슴속으로 흐른다, 흘러서 바람이 되는 슬픔이. 한없는 가벼움으로 떠간다 신용불량의 구름이, 몇 그램의 온기가. 그래 한두 개의 꽃잎이라 한들 손끝에 봄볕을 느끼는 사십사 세가 훌훌 세월을 벗어버린 두 번째 스물이 되지 못할 것은 무엇인가. 그녀는 거기에 그대로 서있고 애초부터 등 돌려 있었다면. 삶의 뜨락 밖에선들, 그 여분의 거리에선들 시간이 그만큼 무거워져 있다면 나 또한 그만큼은 가벼워진 까닭에. 더더욱 문밖의 비라도 돼야 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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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태봉 2014.07.26 17:02

    늙은도령님의 자서전을 보는 것 같군요
    시를 보니 옛날에 많이 힘드셨던 것 같아요
    그나마 지나온 세월의 무게만큼 이젠 그 아픔앞에 초연해지려는 모습으로 느껴지네요...
    질병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혈행 장애이신가요? 심하신가요?
    이 시들을 보고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좀 더 완꽤되시어 밖에 뛰노는 아이와 같은 자유를 느끼시고,좋은 글들 써주시기 바래요....

 

 

 

 

다시 일어서는 아침에(1) 

 

 

햇살이다. 다시 나를 깨우는 것은 천국문을 갓 나온 한결같음이다. 긴 장마 끝에 하루쯤은 걸러도 좋을 다 쓸려나간 뒤의 첫 구호품, 멈출 수 없는 우리네 하루살이다. 神은 함께 흘러갔음으로 인간의 이름으로만 다시 서야 한다는 노아의 방주 그 다음의 축복이다. 

 

 

스물여섯 언저리 그쯤에선 물을 빼지 않았다. 가슴에 담아둔 분노가 비가 되어선 다시 사일 밤낮을 퍼부으며 가로수건 담장이건 지붕 위에서 나는 범람하며 함께 울었다. 神은 그만큼 멀리 있음으로 뼈저리며 일어서는 어떤 모습에도 나는 범람했었다. 사랑했음으로 눈을 들어 하늘을 보지 않고 다시 사일 밤낮을 神의 주변에서 피기 어린 거역으로만. 

 

 

등으로 코끝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 그 안에 햇살이 있다. 그래 그런 것이리라. 스물여섯 언저리엔 하늘보다 대지에 더 힘겨워 했던 것이. 다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들의 모습이 신보다 가까이에 있어, 문득 깨어나 보니 

 

 

한낮이다. 입천장이 달라붙고 이마와 등으로 흘러내리는 더위. 한 발쯤 물러서는 것이 바람이 될 줄이야. 그래 일어서는 거다, 이보다 더 가벼울 수 없는 무게로. 내 무력함에 그들의 하루 품에 한 걸음 물러선들 가을은 더듬거리면서도 올 것이므로. 우리가 사흘 밤낮을 마중 나가 길을 열어놓은들 젖은 땅을 건너오는 것이, 사십 중턱에서 무겁게 열리는 아침 자락, 서너 보쯤 떨어져 있는 것이 햇살 아니면 또 무엇일 수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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詩(1)

 

 

 

 

 

 

 

 

내 고통의 몫만큼

내 피 속엔 꿈들이 있다

자라서 업보가 될지언정

꽃으로 피지 못하는 세상 밖의

갈망들 스물 이전에 망울을 맺어선

서른일곱에 폐기처분된

다음 일년은 덤으로 주어졌고

다 보내니

이제야 내 병들이 내가 되었다

조금은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단절된 시간들의 춤사위

알맞은 미열과 단내가 익숙한

이 새벽의 뒤척임도 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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