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 생명 탄생의 기적
기적은 그것이 어쨌든 일어난 사건이라면 단지 엄청난 우연과의 조우일 뿐이다. 사건들은 칼로 두부 자르듯 자연스러운 사건과 초자연적인 기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무한한 시간 또는 무한한 경우의 수가 주어진다면 어떤 일인들 불가능하랴?
창조주는 아마 매일매일 일어나는 진화 과정을 통제하지 않을 것이다. 창조주가 호랑이나 염소를 설계하거나 나무를 만들지는 않지만, 태초의 복제 기구와 복제자, DNA와 단백질을 만들어 놓았고, 그 결과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일어나 모든 진화 과정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것은 자가당착에 빠지는, 근거가 박약한 주장이다.
DNA와 단백질은 모두 부분이 동시에 존재할 때에만 지탱할 수 있는 안정되고 우아한 아치의 두 기둥이다. 따라서 최게 어떤 받침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이것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생각해야 하지, 그러지 않고 그것들이 단계적인 과정을 거쳐 생겨났다고 보는 것은 무리이다. 그 받침대는 초보적인 형태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진 것이어야 하며, 그것의 성질은 추측할 수밖에 없다. 어쨌거나 그 받침대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어떤 복제자를 기초로 한 것이어야 한다.
케언스스미스는 최초의 복제자가 진흙이나 점토에서 발견되는 무기물의 결정들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결정들은 거의 대부분 흠이 있다. 그리고 일단 흠이 생기면 그 위에 새로 생기는 층에도 그 형태가 그대로 복사된다...결정 속 원자 수준에서 생긴 흠은 레이저 디스크 표면에 만들어진 흠보다 훨씬 작다. 따라서 결정은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잠재력이 있다.
점토와 다른 광물 결정들이 하는 역할은 지구상에 최초로 출현한 ‘저급한 수준’의 복제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어느 순간에 ‘고급 수준’의 DNA로 만들어진다. DNA가 복제될 때 복제 효소와 같은 정교한 ‘기구’가 필요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동시에 그 결정에는 흠이 생긴다. 그것들 중 어떤 것은 결정이 자라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층에서 복제된다. 결정이 자란 후에 몇 개의 조각으로 부러지면 그것들은 새로운 씨를 뿌리는 셈이다. 그리고 각각의 조각들은 ‘부모’ 결정이 갖고 있는 흠의 형태를 그대로 ‘물려받는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원시 지구에서 복제, 증식, 유전, 돌연변이를 보여 주는 광물 결정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복제자가 자신의 복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성질인 ‘위력’이라는 요소가 부족하다. (248~258p 참조)
지구에서 스스로를 복제하는 미생물을 탄생시킨 몇 가지 혹은 대다수의 비생물적인 화학 반응과 과정이 지구 역사의 초기에 점토 광물의 표면이나 다른 무기 분자의 표면에 아주 근접한 곳에서 일어났다.(D.M.앤더슨)...케언스스미스는 점토 결정 복제자가 초기에 사용한 것이 단백질이나 당류,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RNA 같은 핵산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한다...RNA 같은 분자들은 음의 전하를 띠고 있기 때문에 점토 입자를 끌어 모아 곁을 둘러싸게 만드는 성질이 있다. RNA나 그와 비슷한 분자들이 스스로를 복제하는 분자가 되기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는 사실이다.
광물 결정, 즉 ‘유전자’가 RNA(또는 비슷한 물질)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어 내기 위해, RNA가 스스로 복제되도록 만들었다. 즉 RNA의 자기 복제 능력은 RNA를 더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다.
마침내 RNA는 자기 복제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일단 새로운 자기 복제 분자가 탄생하자 새로운 종류의 누적적인 자연선택이 시작되었다. 새로운 복제자는 본래 찬조 출연자였지만 원래의 결정보다 더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나자 그 역할을 넘겨 받게 되었다. 그들은 진화를 계속했다. 그래서 결국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DNA 암호를 완성하였다. 원래의 광물 복제자는 닳아빠진 주형처럼 버려졌다. 그리고 오늘날의 생물은 단일한 유전 체계와 단일한 생화학을 바탕으로 비교적 최근의 조상에서 진화해 나왔다.
『이기적 유전자』에서 나는 현대의 상황이 또다시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로 넘어가는 문턱에 있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DNA 복제자는 자신을 위해 ‘생존 기계(자기를 담고 있는 생물의 신체)를 만들었다. 그 장비의 일부로 신체는 컴퓨터, 즉 뇌를 진화시켰다. 뇌는 언어와 문화적 전통이라는 수단으로 다른 뇌와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진화시켰다. 그러나 문화적 전통이라는 그 새로운 환경은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생겨날 가능성을 열어 놓는다. 새로운 복제자는 DNA가 아니고 점토 결정도 아니다. 그것은 뇌와 뇌를 통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물건, 예컨대 책이나 컴퓨터 같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는 정보의 패턴들이다.
하지만 뇌, 책, 컴퓨터가 존재하면 이 새로운 복제자들은 뇌에서 뇌로, 뇌에서 책으로, 책에서 뇌로, 뇌에서 컴퓨터로, 컴퓨터에서 컴퓨터로서 번식할 수 있다. 나는 이것을 유전자와 구별하기 ‘밈(meme)’이라 불렀다. 그것들은 번식하면서 변화할 수 있다. 즉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고 ‘돌연변이’ 밈은 아마 내가 여기서 ‘복제자의 위력’이라고 부르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번식에 영향을 미친다. 새로운 복제자의 영향력 아래 이루어지는 진화(밈의 진화)는 현재 유아기에 머물러 있다. 문화의 진화라고 부르는 현상은 전부터 알려져 있었다.
문화의 진화는 여러 면에서 DNA에 기초를 둔 진화보다 빠르다. 이것 때문에 또 다른 ‘넘겨 받음’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만약 새로운 종류의 복제자가 주도권을 넘겨 받기 시작했다면 그것들은 장차 그들의 부모인 DNA를(그리고 케언스스미스가 옳다면, 조부모인 점토를) 저 뒤편으로 밀쳐 버릴 것이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앞으로는 컴퓨터가 선두에 설 것이라고 확신할 수 있다.
마치 우리의 눈이 전자기파의 어떤 영역만을 볼 수 있게 진화한 것처럼 우리의 뇌는 자연선택을 통해 어떤 범위에 해당하는 위험과 확률만을 계산할 수 있게 진화하였다. 즉 인간의 생활에 유용한 범위에 들어가는 확률만을 마음 속에서 계산할 수 있도록 진화한 것이다.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은 훨씬 더 큰 폭으로 빗나갈지 모른다. 우리의 뇌는 짧은 시간 안에 이루어지는 사건들에 관해 사고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경험하는 사건, 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몇몇 사람들이 경험하는 사건들에 관해서만 사고하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이것은 우리의 뇌가 대중매체가 발달한 환경에서 진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생명의 기원에 관한 어떤 이론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여서, 가능성에 관한 우리의 주관적인 판단을 만족시킬 수 있을 정도라면, 그것은 우리가 관찰하고 있는 우주에 지구 말고는 생명이 없다는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따라서 이 주장에 따르면 우리가 바라는 이론은 우리의 제한된, 지구에 한정된, 몇 십 년에 한정된 상상력으로 불가능한 것으로 보이는 종류의 이론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케언스스미스의 이론이나 원시 수프 이론은 모두 너무 가능성이 커서 틀리는 쪽에 속하는 것 같다! 말하는 김에 고백한다면, 계산을 할 때 너무나 많은 곳에서 불확실한 숫자를 사용했기 때문에, 만약 어떤 화학자가 생명의 자연 발생 실험에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나는 당황하지 않을 것이다.
제7장 – 건설적인 진화
자연선택은 무언가를 제거하기만 할지도 모르지만 돌연변이는 무언가를 부가할 수 있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을 결합하는 방법 중에는 오랜 지질학적 시간 동안 삭제보다 부가를 많이 함으로써 복잡성의 구축을 이끌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다. 주로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서로 적응한 유전자형’이고 다른 하나는 ‘군비 확장 경쟁’이다. 이 두 가지 방법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공진화(계통적으로 관계없는 여러 생물이 서로 연관되며 진화하는 것)’와 ‘서로에게 환경이 되는 유전자’라는 측면에서 하나로 결합된다.
우선 ‘서로 적응한 유전자형’...유전자가 특정한 효과를 가지는 것은 거기에 이미 유전자가 작동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 있을 ‘뿐’이다...유전자가 가지는 특정한 효과는 그 유전자의 본질적인 성질은 아니다. 그것은 배아 발생 중 특정한 장소 및 시간에 일어나는 발생 과정의 성질이며 그 발생 과정 자체의 상세한 내용은 유전자에 따라 변경될 수 있다.
각각의 유전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환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각 유전자가 만나는 다른 모든 유전자’이다...대부분의 유전자는 그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는 개체의 세포들 속에서 만난다. 각각의 유전자는 몸 속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의 집단과 얼마나 성공적으로 협동할 수 있는가에 따라 선택된다...개별 원자들의 집합이라는 관점에서 한 유전자의 특정한 복제품은 개체를 구성하는 특정한 시점에 1개의 세포 속에 위치해야만 한다. 그러나 어떤 유전자의 복제품에 불과한 그 원자들의 집합이 영원한 것은 아니다. 겨우 수개월의 단위로 측정될 수 있는 평균 수명을 가질 뿐이다.
(그래서) 유전자는 분산되어 존재한다. 공간적으로 여러 개체에 퍼져 있고, 시간적으로 여러 세대에 걸쳐 있다...성공한 유전자는 다른 몸 속에서 만나게 되는 다른 유전자가 제공한 환경에 능숙하게 대처할 수 있는 유전자일 것이다...특정 동물에서 중요한 사실은 양쪽 경로(동일한 결과를 내는 서로 다른 두 가지 화학 반응)를 동시에 이용하지 않도록 피하는 것이다. 중복이 이루어질 경우 화학 반응에 혼란이 야기되어 효율이 나빠지기 때문이다.
어떤 유전자에게 유리한 ‘상황’이란 그 집단 가운데 이미 다수를 점하는 유전자, 즉 몸을 공유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다...유전자 집단이 일체가 되어 어떤 문제를 협동해서 해결하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유전자 자신이 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는 오직 유전자 풀 속에서 생존하는 데 성공하거나 실패할 뿐이다. 진화하는 것은 유전자의 ‘팀’이다. 소수파보다 다수파가 유리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수파 팀이 절대 치환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만약 절대 바뀌지 않는다면 진화는 브레이크가 걸려 정지하고 말 것이다. 따라서 그 속에 일종의 내재된 관성이 있다는 뜻이다.
진화적 시간을 거쳐 그 유전자들(그들 자신도 선조의 복제이다)은 서로 자연선택을 하는 환경의 일부가 된다. 하지만 특정한 계통이 일단 풀보다 고기를 잘 처리하는 유전자 팀을 구축하기 ‘시작’하면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자기) 강화의 길을 걷게 될 것이다. 생물의 초기 진화에서 반드시 나타나는 사건의 하나는 그러한 협동사업에 참여하는 유전자의 수가 증가한다는 것이다.
종의 DNA 운영 체계가 몹시 오래된 것이고 장기적으로 보면 디스크 파일을 갖춘 컴퓨터와 흡사하다는 분명한 증거가 있다. 그 증거는 ‘인트론(유전자 중 엑손 사이에 위치하여 그 유전자의 최종 산물로 발현되지 않는 염기 서열)’과 ‘엑손(진핵 생물의 mRNA 정보 배열을 가리킴)’이라는 흥미로운 유전자 형태에서 찾을 수 있다. 연속적으로 얽히는 DNA 문자열의 한 소절인 ‘1개’의 유전자는 한 곳에 모두 저장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염색체를 따라 발견되는 암호 문자를 읽는다면(즉 ‘운영 체제’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을 한다면) 엑손이라 불리는 ‘의미 있는’ 단편이 인트론이라 불리는 ‘무의미한’ 부분으로 나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기능적인 의미에서의 ‘유전자’는 실제로 의미 없는 인트론을 통해 나뉘어 있는 일련의 단편(엑손)들로 분할되어 있다. 단백질로 번역하는 ‘공식’ 운영 체계를 통해 판독되기 시작할 때에만 실제로 액손들이 하나로 연결되어 1개의 완전한 유전자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또 다른 증거는 염색체에는 더 이상 사용되지 않지만 상당한 의미를 가진 낡은 유전자 문자열이 흩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다...어떤 동물의 경우 실제로는 전체 유전자의 상당 부분이 한번도 읽힌 적이 없다. 이러한 유전자들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것이거나 낡은 ‘화석 유전자’이다.
때로 문자열의 화석은 다시 모습을 나타낸다. 최소한 ‘화석’의 일부, 또는 오래된 ‘인트론’의 일부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떤 종의 유전적 용량은 유전자 중복을 통해 증가할 수 있다. 현존하는 유전자 속에 들어 있는 낡은 ‘화석’ 복제의 재이용은 유전적 용량을 증가시키는 하나의 방법이다. 즉 파일이 같은 디스크의 다른 위치나 혹은 다른 디스크로 복제되는 것과 같이 유전자가 염색체상의 넓게 분산된 위치에 복제되는 것이다.(286~287p의 글로빈 유전자에 대한 설명)
종 내에서 유전자 중복이 진화에서 협동하는 유전자의 숫자가 증가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그보다 훨씬 희귀하고 중요한 사건은 다른 종, 특히 극단적으로 유연관계가 먼 다른 종류들의 유전자들이 우연히 혼합되는 경우이다.
사람들을 구성하고 있는 10조 개의 세포는 수십 세대에 걸친 분열을 통해 형성되었다. 이 세포들은 약 210가지의 서로 다른 종류로 분류된다.(분류하는 방법이야 취향에 따라 다를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같은 유전자 집합으로 만들어지지만 세포의 종류에 따라 유전자 집합의 다른 부분에서 스위치가 켜진다. 간세포와 뇌 세포가 다르고, 뼈 세포와 근육 세포가 다른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군비 확장 경재은 개체가 살아 있는 동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진화적 시간 척도에서 진행된다. 내가 군비 화장 경쟁에 가장 큰 중요성을 부여하는 이유는 진화에 ‘진보성’을 끼워 넣어 온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군비 확장 경쟁이기 때문이다...작은 (그래서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진화 단계를 통해서는 설계를 개선할 수 없다는 뜻이다...누적적인 자연선택은 동물들을 기후 조건에 훌륭하게 적응하게 만들 뿐 아니라 먹이가 되는 초식 동물들을 포식자보다 빠른 속도로 적응하게 만든다. 따라서 진화가 장기적인 기후 변동을 ‘뒤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먹이가 되는 생물의 진화적 변화는 포식자의 습성이나 무기의 장기적 변화를 ‘뒤따르게’ 된다. 물론 그 역도 성립한다...한쪽이 조금 개선되면 다른 한편도 조금 개선된다. 그리고 다른 한 편이 조금 더 개선되면 한편도 조금 더 개선된다. 이 과정은 수십만 년이라는 시간 척도에서 악의에 찬 나선을 그려 간다.
의미 있는 개선이 확인될 수 있는 시간 척도는 어떤 경우든 한 세대와 그 이전 세대를 비교해 식별할 수 있는 시간보다 훨씬 길다. 더욱이 그 ‘개선’은 전혀 연속적이지 않다. 그것은 군비 확장 경쟁이라는 개념에서 나타나는 개선의 방향처럼 항상 분명한 ‘진보’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며, 정체하거나 심지어는 ‘역행’하기까지 하기 때문이다...군비 확장 경쟁의 이미지로 묘사될 수 있는 진보적 ‘개선’은 비록 간헐적이기는 하지만 계속 이루어진다. 다른 영향이 가감된 알짜 진보 속도가 너무 느려서 어떤 사람의 일생이나 유사 이래의 모든 시간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개선은 계속된다.
두 번째 내가 ‘천적’이라 부르는 관계가 치타와 가젤의 이야기에서 설정한 둘로 이뤄진 단순한 관계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점이다. (천적 관계에서도 군비 확장 경쟁은 이루어진다.) 군비 확장 경쟁 개념의 핵심은, 군비 확장 경쟁에 관계하는 양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개선을 하고 동시에 상대편이 군비 확장 경쟁에서 벌이는 활동을 방해하는 것이다...나무들은 정확히 같은 햇빛을 받을 수 있는 수관부의 높이에서 서로 경쟁을 벌이겠지만, 이전에 비해 훨씬 낮은 성장 비용만을 ‘지불하고도’ 수관부에 도달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삼림 전체의 경제도 이익을 높을 수 있고, 나무들 하나하나도 모두 이익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자연선택은 전체의 경제에 대해 고려하지 않는다. 자연선택에는 카르텔이나 협상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숲의 수목이 세대가 바뀌면서 점차 커지는 것은 군비 확장 경쟁이 있기 때문이다. 군비 확장 경쟁의 어느 단계에서도 키가 커지는 현상 자체에는 아무런 내적 이익도 없다. 어느 단계에서나 나무의 키가 커지는 유일한 목적은 인접하는 나무보다 상대적으로 커지는 것이다.
IQ100이 인간 전체의 IQ의 평균값을 의미하듯이, EQ1은 예를 들면 그 크기의 포유류의 EQ값의 평균값을 뜻한다...측정된 EQ는 필경, 어느 동물이 크건 작건 간에, 그 몸을 일상적으로 움직이는데 꼭 필요하며 그 이상으로는 줄일 수 없는 최소한의 능력 이상으로, 머릿속에 어느 정도의 ‘계산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에 대한 그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원숭이는 평균보다 훨씬 높고, 유인원(특히 우리 인간)은 현저하게 높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 차이가 생활 방식과 약간의 관련이 있다는 점이다...실제 상황은 이보다 더 복잡하며, 대사 속도와 같은 다른 변수가 훨씬 더 중요한 요소로 생각되고 있다.
유전자의 진화는 두 가지 귀결로 이루어진다. 하나는 어느 유전자가 유리해지면 그것은 그 유전자가 협동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만날 가능성이 높은 다른 유전자와 ‘협동’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특히, 전적인 것은 아니지만, 동종 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그 이유는 동일한 종 내의 유전자는 세포를 공유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항상 협동이 선호되는 것은 아니다. 지질학적 규모의 시간을 거치는 동안 대립을 선호하는 상황에서 유전자들이 조우할 때도 있다. 이것은 특히, 물론 거기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른 종 사이의 유전자의 경우에 해당한다. 다른 종의 개체들 사이에서는 교배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다른 종과는 유전자가 섞일 수 없다는 것이 요점이다...이 군비 확장 경쟁은 영구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아니며, 가령 그 이상 개선된다면 해당 동물 개체에 있어서 경제적 비용이 지나치게 높아질 경우에 안정화된다.
'명저와 책이 있는 풍경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요약 - 5 (0) | 2021.07.05 |
---|---|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요약-4 (0) | 2021.07.05 |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요약-2 (0) | 2021.07.05 |
리처드 도킨스의 <눈먼 시계공> 요약-1 (0) | 2021.07.05 |
<죽도록 즐기기>로 본 텔레비전 세대의 인식론 (1) | 2020.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