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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부 제2장 ㅡ 천하혈난지세1



이상하다. 아무리 생각하고 이해하려 노력해도 믿을 수 없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둘은 닮아도 너무 닮았고, 그러면서도 서로 상극(相極)이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아예 없어야 한다. 이건 음모다. 음모가 아닌 이상 이 둘이 이렇게 닮고 상극일 수 없다.



헌데, 내가 해야 할 것은 이 둘의 차이와 우열을 가려 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을 모두 취하는 것. 이것이 아저씨의 뜻이라면 그 둘을 모두 취해 그 음모의 발단부터 밝혀 가리라.



아저씨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알았기에 우선 내게 삼혼지문을 익히게 한 것이다. 이 두 무공을 내가 다 취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래, 아저씨를 믿자. 그 믿음의 결과가 항상 옳았음을 믿자. 일단 둘을 다 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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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쯤이면 무영도 내가 안배한 것이 무엇인지 알았으리라. 무영은 둘을 다 취할 것이고, 무림 역사 상 최강의 무인으로 거듭나 비로소 제 삼 세력에 맞서는 힘을 가질 것이다.



그 동안 나는 내 안배의 출발선이 된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을 밝혀야 한다. 이곳, 비궁에서. 내내 나를 감시해온 자의 배후는 누구인지. 검강천과의 비무에서 깨달은 오의를 내 것으로 만든 후 비로소 눈치 챌 수 있었던, 내내 나를 감시했던 자의 배후, 그 천년 음모의 조정자를 밝혀야 한다.






구주 무림의 중앙부에 위치한 호북성(湖北省)! 성도인 무한시(武漢市)에 가면 하나의 거대 문파가 있다. 오백 년 전 처음 강호에 뿌리내린 후 이제는 구주 모두에 분성(分城)을 갖고 있을 정도로 성장한 현 무림 사파제일세(邪派第一勢) 천마성(天魔城)이 그곳에 있다. 양자강(揚子江) 중류 유역, 동정호(洞庭湖)를 끼고 호남성(湖南省)을 마주하는 곳에 거대한 전각과 마천루들로 하늘마저 삼킬 듯 거대한 위용을 드러내는 현 무림 최대 사파 천마성이 있다.



크게 네 개의 영역으로 이루어진 천마성 내 천마승천관(天魔昇天官), 그 중심에 위치한 집전실(執典室)! 현 성주인 천마 위진천이 성의 중요 일들을 처리하는 이곳에 두 세력이 대치하고 있다. 한쪽은 이곳 천마성 성도들이 분명한데 나머지 한 무리들은 가슴에 수놓아진 붉은 숫자로 해서 다른 문파에 소속된 자들임을 알 수 있다.



“넌 누구냐? 감히 천마성에 침입해, 그것도 천마인 내 앞에서 재주를 피우다니, 컬컬컬! 지나가던 개도 웃을 일이야. 정체를 밝혀라. 너희를 천참만륙하기 전에 명호라도 알아야 천마성의 살생부에 이름이나 올리지. 클클클! 너희는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천마 위진천이 광오하게 웃으며 상대의 정체를 물었다. 허나, 그가 무림에 출도한 이래 이렇게 길게 말한 적이 있었던가.



천마가 누구인가? 마검 중의 마검인 아수라단천검(阿修羅斷天劍) 한 자루를 들고 강호를 종횡해 호북성의 맹주였던 천마성을 구주 전체의 사파 세력의 맹주로 키운 자가 아닌가. 지난 백년 이래 사파의 최고 무인이 바로 천마 아닌가.



그가 아수라단천검으로 펼친 천마도검결(天魔刀劍訣)에 생을 마감한 고수들이 정, 사를 막론하고 얼마나 많았던가. 구대문파의 전대 장문과 장로 일곱 명이 그의 검 아래 생을 마쳤으며, 그 위세에 구주의 중심을 향해 서진(西進)하던 동북삼성(東北三省)의 패자인 복마전(伏魔殿)마저 서진을 포기하고 물러나게 함으로써 천마성을 사파제일세의 위치로 끌어올린 현 무림의 절대마인 아닌가.



현 무림에서 사파 제일 고수에 오른 천마란 그런 신화적인 존재다. 그런 그가 지금 상대의 정체를 묻고 있는데 그의 음성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숨길 수 없는 미세한 떨림이 묻어 있었다. 강호에 발을 하나라도 담근 무인이라면 천마의 음성에 두려움이란 생소한 감정이 내포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경악해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으리라.



하지만 그의 음성에 묻어 있는 떨림은 극미하더라도 불안의 징후를 드러내고 있었다.



‘제길, 상상하기도 힘든 고수야. 분명 마공을 쓰는데 마인 같지도 않아. 헌데, 단 삼 초 만에 내 분신인 일곱 명의 마혼령을 제압했어. 그것도 전력을 다하지 않은 것이 분명해. 대체 이런 자가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천마의 분신 같은 7명의 마혼령은 구대문파의 장로나, 검성의 창룡문과 도천의 성도문 호법보다 무공이 강한 자들로 알려져 있다. 그런 절정고수 7명을 단 3초 만에 제압한 자가 천마 앞에 서있었다. 천마에게 경악한 표정으로 온몸이 마비돼 있는 7명의 마혼령을 본다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천마는 정체불명의 괴인이 마혼령들을 제압하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믿을 수 없었기에 음성에 배어 있는 미세한 떨림을 감출 수 없었다. 천 년 전설의 천상천주 말고는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는 무인이 존재할 수 있단 말인가.



상대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흘러나오는 극강의 마기와 함께 정파의 최절정 고수에서나 나올 수 있는 청명함까지 갖고 있어 전설의 천상천주일 가능성은 없다고 봐야 했다.



‘그렇다고 저 자가 역천마곡주일 수도 없잖아? 그라면 나도 뒤질게 없으니까. 도대체 저 자는 누구란 말인가?’



천마는 자신이 마공으로써 이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에 올라섰다고 믿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가 역천마곡주라면 차라리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전설이 사실이라면 역천마곡주의 무공은 그가 이룬 경지와 다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위진천은 지난 백년의 강호 고수들이 하나씩 떠올려 봤지만 일치하는 자를 찾을 수 없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7명의 마혼령을 3초 만에 제압할 수 있는 자는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



“천마성의 살생부.”



단 두 단어였지만, 천마는 자신이 했던 말을 똑같이 되뇌는 상대의 음성을 들었다. 헌데 그 음성이 주는 느낌이란!



‘헐! 대체 음성만으로 이런 느낌을 줄 수 있다니? 마기가 담겨있어 오히려 청아함이 느껴지는 경지란.. 제기랄, 이런 음성이 존재할 수 있다니! 제기랄, 대체 이 자는? 하지만, 이곳은 천마성이야! 아무리 저자가 강하다 해도..’



“천마성의 살생부가 어쨌다고? 나, 천마가 작성한 살생부가 뭐 어쨌다고? 네 놈도 거기에 이름을 올리고 싶은 게냐?”



위진천이 목에 걸려 입 밖으로 나오지 않으려는 소리를 있는 힘껏 쥐어짜서 꺼내놓았다. 그는 그렇게 해서라도 현재의 상황을 반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야 했다.



“갈! 놈! 모르겠느냐, 아직도?”



정체불명의 인물은 마기와 정기가 자연스럽게 혼합돼 있는 음성으로 말했다. 그는 말을 마친 입술의 끝을 살짝 올리며 천마를 향해 경멸의 감정을 드러냈다. 그의 입술선이 천마에게 상황파악이 그렇게 안 되냐고 묻고 있었다.



'씨벌!! 나를 경멸해? 이 새끼가 죽으려고 환장을 했어!! 죽여 버릴 테다, 가장 고통스럽게!!'



천마는 상대의 경멸어린 냉소에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당장이라도 상대의 목을 쳐내고 싶었지만, 상대의 음성에는 거역하기 힘든 기묘한 힘이 담겨 있었다. 상대는 자신의 안방에 쳐들어와 주인 행세를 하며 자신에게 상황파악부터 제대로 하라는 뜻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정체불명의 인물은 천마를 하대했고, 천마 위진천은 그것에 토를 달지 않았다. 이런 상황은 어떤 무림인이 봐도 자신의 눈을 몇 번이 씻어낼 신기하면서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네 놈이 서있는 이곳은..”

“천마성 맞아. 헌데 그게 중요한가?”

“이.. 이.. 놈이!! 기고만장함이 하늘을 찌르는구나. 마혼령을 제압했다고 눈에 뵈는 것이.”

“없어. 내 눈에 뵈는 것이란 없어. 아직도 모르겠나, 천마?”



천마를 향한 정체불명의 인물의 음성에는 경멸을 넘어 짜증까지 묻어나오는 듯했다. 천마는 그것에 더욱 분노가 치밀어 올랐지만, 상대를 향해 감정을 폭발시킬 수는 없었다. 상대는 자신보다 고수, 천마는 부하들이 이곳으로 모여들 때까지 시간을 끄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라 생각했다.



‘빠드득! 감히 내 앞에서 성질까지 내다니. 조금만 기다려라, 네 놈에게 지옥 같은 고통을 안겨줄 테니’



천마는 가슴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달래며, 청력을 높여 부하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아니나 다를까, 부단히 움직이는 소리들이 곳곳에서 들렸다. 그 중에는 자신이 지난 오십 년간 혈교의 차능대법과 마교의 섭혼대법으로 단련시켜 절대 살인병기로 키운 열두 명의 천마십이마병기도 포함돼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사파의 전설인 역천마곡보다 우위에 서기 위해 천마성의 모든 것을 투자한 그의 야심작이다.



‘그들이 온다. 그래, 여기는 천마성이야. 내 본거지란 말이다!’



천마의 표정에 비로소 안도감이 떠올랐다. 그것은 짓눌렸던 분노가 비릿한 냉소로 변하는 것을 동반했다. 지리적 이점이 가져다주는 반전의 묘미란 이런 것일 터, 천마는 이곳으로 달려오고 있을 천마십이마병기의 경공 소리에서 반전의 희망을 봤다.



“컬컬컬컬! 그게 무슨 귀신 씨 나락 까먹는 소리란 말이냐?! 내가 뭘 모른다는 말이냐? 네가 직접 설명해보지, 난 모르겠거든?”



처음으로 천마의 음성에 힘이 실렸다.



“어린애 몇 명 온다고 호들갑은. 결국, 알아듣지 못하는군. 오늘 부로 무림에서 천마성을 지운다. 실시하라.”



놀랍게도, 진저리 치도록 놀랍게도, 상대가 자신이 성주로 있는 천마성의 멸문을 얘기하는데 그 음성은 청아하게 들렸다. 청아해 그 안의 마기가 오히려 강력하게 자신의 귀를 강타했다. 상대의 음성은 청아했지만 절정 마인인 자신마저 무력화시키는 어마어마한 마기가 넘쳤다. 헌데 말이다..



“천마성을 지우라고? 실시? 실시하라고?”



덜컥!



천마는 심장이 한 자는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맥없이 다리의 힘이 풀렸다. 천마 위진천이 풀린 다리를 주체하지 못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저 자의 말은? 저 자의 말은..’



이곳에 자신이 감지해내지 못한, 아니 감지해낼 수 없는 또 다른 고수들이 있다는 뜻이었다. 천마는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채 이해되기도 전에 추호도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흘러나온 열두 가지의 서로 다른 음성들을 들어야 했다.



“흐흐흐… 존명!”

“얼마 만인가? 피를 본다는 것이. 그 향기로운 냄새를, 크크크크. …존명!”

“씨를 말려드리리다, 곡주. 존명!”

"살(殺), 존명!"



천마는 각기 다른 음성들에 담겨 있는 마기에 극도의 공포감을 느꼈다. 그는 생애 처음으로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려야 했다. 마공의 최고 경지에 이르렀다고 자부하던 천마는 이런 어마어마한 마기를 음성에 담아낼 수 있는 자들이 이렇게 많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어떻게 이런 자들이..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그것은 지옥에서 나온 음성이었다. 그것도 시공간을 가로질러 직접 나온 것이었다. 그것이 아니면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한 마기였다. 천마는 그렇게밖에 생각할 수 없었다.



‘이 정도의 마기는 어떤 마공으로도 이룰 수 있는 그런 게 아니야.’



천마는 공포가 극에 달하자 단 하나의 단어만 떠올랐다. 사(死), 죽음이었다. 그리고 마성이 지나간 자리에 전혀 다른 소리들이 들어섰다. 그것은 빛살처럼 지나간 예상이었지만, 어김없이 맞았다.



“크아악!”

“카아아악!”



그들의 비명이었다. 천마성의 미래이자 천마의 분신들인 천마십이마병기가 자신의 뒤로 내리기도 전에 허공에서 터뜨리는 비명이었다.



늘 좋지 않은 예감은 현실이 된다. 제기랄!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광경이었다. 열두 개의 각기 다른 소리가 천마십이마병기와 천마성의 마인들을 추풍낙엽처럼 쓰러뜨리는 것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사람의 신형이 아닌 마기 그 자체가 허공을 자유자재로 옮겨 다니며, 그것들이 스쳐가는 곳마다 천마성 마인들의 머리가 잘려나갔고, 배가 갈라지며 내장이 쏟아져 나왔고, 팔과 다리가 몸에서 분리돼 이리저리 나뒹굴었다.



천년 무림에 이 정도 마공의 소유자들은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과 그의 조력자인 십이마혼 밖에 없다. 헌데, 그들은 천 년 전에 죽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 자와 저들은 누구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