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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천검지로 2부, 제1장 ㅡ 하나의 눈, 그 천년의 비밀

 

 

 

다음 날 새벽, 류심환이 다시 삼혼을 불렀다.

 

 

“비궁에 들 것입니다. 속혼이 데려온 철용의 병을 고친 후 들어갈 것입니다. 참, 아이들의 명호는 삼영(三影)이 좋겠는데 어떠신지요?”

 

 

류심환이 삼혼에게 담담하게 말했지만 밤새 고민한 것이 분명했다. 그가 말하는 품이 너무 자연스러워 그들이 듣기에 주군이 마치 봄나들이 가듯 비궁에 잠깐 다녀올 것 같았지만, 그것은 강호의 역사를 뒤바꿀 만한 엄청난 얘기였다.

 

 

“비궁이라고… 말씀하셨는지요?”

 

 

도혼이 먼저 튀어나왔다, 어김없이 그의 말이 세 중에서 제일 먼저 나왔다. 불혼은 그 중간쯤에 있어 도혼이 물은 말이 목젖에 걸렸고, 속혼은 이미 알고 있는 눈치였다.

 

 

“네, 비궁에 들 것입니다. 해서 몇 가지 당부드릴 것도 있고 해서. 헌데 표정을 보니 삼영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입니다?”

 

 

잔잔히 웃으면서 류심환이 삼혼을 향해 분명하게 비궁이라 말했다.

 

 

“아, 비궁이요? 아이들 명호로는 너무나 적절한 것… 아, 아니, 죄송합니다 주군. 비궁.. 아니.. 삼영, 마음에 쏙 듭니다. 들고말고요. 삼영! 최고네요, 최고!!”

 

 

류심환의 농담에 도혼이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만큼 비궁이란 단어가 갖는 중요성은 삼혼에게 절대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로 들어가실 모양이야. 주군이 운명에 정면으로 맞설 모양이야. 마침내.. 마침내..'

 

 

마구 흔들리는 불혼의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의 눈에 습기가 차올랐다. 도혼은 이미 눈물을 떨어뜨릴 판이었다. 속혼은 이미 마음속으로 울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군이 비궁이라 말했고, 비궁이란 단어를 말하면서도 주군이 담담하게 웃었다는 사실이다. 생각해 보니 주군이 자신들에게 연이틀 농을 걸어온 것은 처음인 것 같았다.

 

 

“그럼, 아이들 명호는 삼영으로 정하고요. 무명은 불혼의 이름을 따서 준영이라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드리려 했던 말은 다름이 아니라…”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소신 일환(一幻), 제천(制天)님께 보고 드립니다. 류심환이 비궁에 들었기 때문에 감시를 마칩니다. 제천님!”

 

 

 

 

한 사람이 부복해 했다. 그 사람은 허공중에 떠 있는 눈앞에 죽은 듯 사지(四肢)를 바닥에 붙인 상태에서 보고를 했다. 그가 보여주는 자세에서 하나의 눈에 대한 그의 두려움이 얼마나 큰지 드러났다. 하나의 눈이 말했다.

 

 

 

 

“종(終)! 본래의 임무로 돌아간다.”

“복명!”

 

 

 

 

부복한 사람이 명을 받는 뒤 사지를 바닥에 댄 상태에서 그대로 떠올라 사라졌다. 그 모습이란 차라리 유령 같았다. 그는 하나의 눈앞에서 절절 거리며 몸을 낮추었지만 그렇게 사라지는 모습에서 그의 경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는 누구인가?

 

 

 

 

“다음!”

 

 

 

 

허공에 떠 있는 하나의 눈이 누군가를 불렀다. 불렀음인데 떠있는 눈앞에 앞의 사람과 같은 무복에 같은 자세로 한 사람이 엎드려 있었다. 그 속도의 빠름과 도착함의 절묘함이란 앞의 사람과 다르지 않았고, 경공에 관한 한 삼혼을 능가하는 것처럼 보였다.

 

 

 

 

“소신 이환(二幻), 제천님께 보고 드립니다. 진무결의 초마인 경지 또한 류심환에 못하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감시는 소신에게 불가할 것 같습니다. 통촉하시옵소서. 제천님!”

 

 

 

 

자신을 이환이라 밝힌 자가 이번에는 초마인 진무결을 말했다. 부복한 자들이 하는 말들이 갈수록 점입가경이었다. 천상천이라고 해도 이 정도의 정보력을 지닐 수 없다.

 

 

 

 

“종(終)! 원대 복귀할 것.”

 

 

 

 

다시 하나의 떠있는 눈이 말했다. 순간, 이환의 움직임은 당연히 앞의 자와 다르지 않았다.

 

 

 

 

이들은 대체 누구인가?

 

 

 

 

“다음.”

 

 

 

 

하나의 눈이 이번에는 조금 낮춘 소리로 말했다. 허나, 그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또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역시 앞의 둘과 다르지 않았다. 하나같이 들고 나옴이 수면을 치고 오르는 제비의 그것과 다를 게 없었다. 아니, 그 이상처럼 보일 정도였다.

 

 

 

 

“말하라.”

 

 

 

 

하나의 떠있는 눈이 다시 말했다.

 

 

 

 

“소신 삼환(三幻), 제천님께 보고 드립니다. 소신이 감시한 검강인도 역천마곡의 흡혈차능대법을 통해 태극의 경지에 오른 천의 빙혈류를 흡수해 더 이상 감시가 쉽지 않을 전망입니다. 통촉하시옵소서. 제천님!”

 

 

 

 

그의 임무 또한 앞의 둘과 똑같이 또 한 명의 절대무인, 검강인의 감시였다. 놀랍게도 그들은 현 무림이 전혀 모른 채 진행되고 있는 세 개 절대 세력을 모두 감시하고 속속들이 꿰차고 있었다.

 

 

 

 

정녕 이들은 누구란 말인가?

대체 어떤 세력이란 말인가?

 

 

 

 

“종! 원대 복귀! 다음.”

 

 

 

 

하나의 떠있는 눈이 또 말했고 똑 같은 일이 반복됐다.

 

 

 

 

“소신 사환(四幻), 제천님께 제천님께 보고 드립니다. 무림 삼성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금제를 풀 생각인 것 같습니다. 계속 감시를 해…”

 

 

 

 

그는 앞의 세 명과는 달리 현 무림의 감시자였다. 그들은 무림의 전설만이 아니라 작금의 상황까지 다 자신들의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감시하고 있었다. 무림 역사 전체가 손오공 손바닥 안이었음이 이와 다를 게 없었다.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꿰차고 있는 저 하나의 떠있는 눈은 누구인가? 천년의 전설과 현 무림의 모든 것이 그 눈앞에 있었다. 천년 전설의 작은 움직임 하나에서 현 무림의 가장 은밀한 움직임까지 모두 그 눈앞에 있었다.

 

 

 

 

도대체 이들은 누구이며, 어느 문파의 사람들이며, 허공중에 떠 있는 저 하나의 눈은 또 누구란 말이냐.

 

 

하나의 눈이 허공중에 떠 있다. 그렇게 천년의 진짜 음모가 떠 있다.

 

 

 

 

 

 

 

 

 

현 무림의 최강자는 누구인가? 강호의 어떤 자에게 물어도 답은 하나다. 지난 백년 이래 이 세 사람을 빼고 현 무림을 얘기하지 못한다.

 

 

 

 

무림 삼성(武林 三聖)!

 

 

 

 

백 년 전 강호에 육대마인(六大魔人)이 출현해 무림역사에 기록된 세 번째 혈난을 만들어 가던 시절, 세 명의 젊은 영웅이 나와 이 혈난을 종식시켰으니 그들이 현재의 무림 삼성이다. 비록 그들은 천년 전설의 주인 천상천주를 넘지 못했지만, 그들의 무공 또한 전설이라 칭해도 지난 백년 이래 시비를 걸 무림인은 없었다.

 

 

 

 

무림 천년 사에 천상천에 접근한 유일한 무인들, 무림 삼성. 칠백 년 전의 일소빙혈사(一笑氷血死) 설지연과 오백 년 전의 빙혈천마(氷血天魔) 사마천과 함께 정, 사파를 통틀어 천상천 다음의 최고 위치에 오른 전설 초입까지 이르렀던 단 세 명의 절대강자.

 

 

 

 

그들이 백 년 전 무림을 피의 살육으로 휩쓸어 가던 육대마인을 소림사에서 처단한 그날의 협거(俠擧)를 ‘소림대첩(小林大捷)’이라 칭했고, 현 무림이 정파의 절정기를 누리는 시발점도 그 협거에서 기인했다. 그날 이후 삼성의 일원이었던 성불(聖佛)이 특별한 이유도 없이 곧바로 폐관에 들고 검신(劍神)과 도천(刀天) 또한 자신의 문파인 창룡문(蒼龍門)과 성도문(成刀門)에서 칩거에 들어갔지만 그들은 점차 하나의 전설로 자리 잡아갔다.

 

 

 

 

사실 상 폐관에 들어간 그들까지, 세 사람이 모두 무림을 떠나자 그들에 대한 온갖 추측과 스스로 자라나 눈덩이처럼 커진 소문들이 끝없이 이어졌지만, 홀연히 정상에서 물러난 그들을 모든 무림인들은 일인천하 무림지상(一人天下 武林之上 : 천상천보다 밑이나 무림 위에 군림한다)이라 칭송했다.

 

 

 

 

전설의 영역에 들어선 그 세 사람이 한자리에 모였다. 그것만으로도 무림이 들썩일 이 회합은 극비리에 열렸고,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현 무림에서 단 한 사람, 소림방장 홍기옥불(紅氣玉彿) 소유진 뿐이었다. 성불의 제자인 소유진이 스승의 지시로 이 자리를 만들었다. 성불이 소유진에게 지시한 지 달포 만에 비밀회합이 이루어졌다.

 

 

 

 

전설의 초입에서 나와 한 자리에 모인 그들 사이에서는 사람을 짓누를 듯 무거운 기운이 흘렀다. 백년 만에 이루어진 회합이 아니더라도 이런 분위기는 급작스런 회합의 심각성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누구라도 말을 꺼내면 이 무거운 분위기는 그 휘발성 때문에 그 자라에서 폭발할 것 같았다. 그렇게 몇 각이 흘렀을까, 모임을 요청한 성불이 마침내 질식할 것 같은 침묵을 깼다.

 

 

 

 

“두 사람도 이미 짐작하고 있으리라 생각하지만, 몇 년 전부터 무림 곳곳에서 특별할 정도의 이상징후들이 일어나고 있네. 놀랍게도 그 징후는 하나같이 전설의 천상천과 역천마곡, 정과 사의 두 절대 문파와 관련이 된 것 같네. 이는 내가 반년 전 직접 현장을 방문해 확인한 것이기도 하네.”

 

 

 

 

여기까지 말한 성불이 잠시 말을 끊고 길게 한 숨을 내쉬었다. 나이가 120에 이른 성불의 표정에서 근심이 가득히 묻어 나왔다. 그의 말이 사실이라면 그럴 만도 했다. 전설의 두 문파가 그들의 생을 정리해야 하는 시점에 동시에 거론됐으니, 무려 120세에 이른 그들이라 해도 마음이 한없이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역시…”

“흠!”

 

 

 

 

검신과 도천의 입에서도 예상했던 것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올 법한 신음이 새나왔다. 무림인들은 모르지만 성불이 먼저 폐관에 들고 검신과 도천이 칩거라는 사실 상의 폐관에 든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았다. 그 백 년간의 고민이 끝내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헌데, 그 사실을 내 스스로 알아냈다는 것이 아니네. 지금으로부터 팔 개월 전이었네. 그날 내가 폐관을 하고 있는 곳에 한 사람이 나타났네. 그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길 운풍이라 했고, 자신이 천상천의 삼 장로라 했네. 그의 신분은 그가 보여준 무공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네. 그가 나에게 전한 말은 이러했네.”

 

 

 

 

불혼이 그날의 얘기를 자세히 늘어놓았다. 그의 얘기를 듣는 동안 검신과 도천의 표정은 갈수록 어두워졌다.

 

 

 

 

“아, 그런 일이 있었다니… 그런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니,. 허허, 난세로 접어든 거야, 무림이… 헐헐.”

 

 

 

 

검신 여불위가 성불의 얘기가 끝나자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음성도 그가 내뱉은 한숨처럼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알겠네. 자네가 무슨 얘기를 하려 하는지. 그것을 열고자 함이 아닌가?”

 

 

 

 

이번에는 도천이 너무 무거워 오히려 담담해진 어투로 말했다. 고민한다고 답이 없는데, 그것에 짓눌려 있는 것은 지극히 어리석은 일이기 때문이다.

 

 

 

 

“…”

 

 

 

 

성불이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을 열밖에야. 알았네, 알았어. 내 금제를 풀겠네. 그 놈의 금제를 풀겠네. 허허, 이리 될 일이었어.. 이리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성불과 도천을 보며 검신이 음성에 한탄과 후회가 가득한 음성으로 말했다.

 

 

 

 

“우리의 업보겠지. 폐관과 칩거를 핑계로 그 놈을 우리의 공동제자로 받아들인 그날이 이 업보의 시작이었겠지. 허허, 그것이 아니면 또 무엇이겠나.”

 

 

 

 

자리에서 일어난 도천이 검신과 같은 심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말이 맞음이야. 우리의 업보가 아니면 무엇이겠나. 사람 하나 제대로 보지 못했던 우리의 어리석음이야.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창룡문 제마전 지하 삼십 장 깊이에 있는 비밀감옥. 이곳은 단 하나의 햇살도 들지 않아, 사방이 곰팡이와 검푸른 이끼, 각종 벌레로 우글거렸다. 이 모든 것들이 살이 썩는 냄새와 어우러져 역하고, 음험한 기운을 만들어냈다. 그 느낌이란 아수라 지옥을 이곳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했다.

 

 

 

 

그 중의 가장 안쪽, 성인이 서서 들어가기도 힘든 곳에 하나의 독방이 있다. 만년강철로 만들어진 독방 입구는 그물처럼 촘촘하게 얽혀 있어 어떤 누구도 그것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거나 밖으로 탈출할 수 없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이는 안에 갇힌 자가 얼마나 대단한 자인지 간접적으로 말해주고 있었고, 전체를 막지 않은 채 철장 사이로 죄수를 수시로 감시할 수 있게 만든 데서, 그를 이렇게라도 잡아두지 않으면 큰 혼란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려주는 듯했다. 철문에서 어떻게든 이 수인을 잡아 두려는 검신과 창룡문의 의지가 그 철문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한 명의 수인은 팔목과 발목에 구멍이 뚫려 쇠줄이 통과된 상태로 벽에 고정된 채, 공중에 매달려 있었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매달려 있었는지 걸치고 있는 옷은 대부분 부패한 상태였다. 그의 손목과 발목에 난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고름이 옷의 조각들과 엉켜져 있었고, 그것은 수인이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 갇혀 있었는지 짐작하게 만들었다.

 

 

 

 

수인은 몇 조각 옷의 흔적들을 지닌 것이 거의 전부였고, 하얗다 못해 회색으로 탈색된 장발은 앞으로 흘러내려 얼굴뿐만 아니라 몸의 반 이상을 가렸다. 같은 색의 수염도 허리에 이를 정도로 길어, 그가 이곳에 갇혀있던 세월의 길이를 말해주었다. 그 수염과 머리털을 따라 벌레가 우글거렸고, 부패한 얼굴과 얼마 남지 않은 살로 벌레들이 기어와서는 연신 피고름을 빨아먹고 있었다. 갇힌 세월이 길었던 만큼 그 죄수는 말이 사람이지 거의 시체보다 못했다. 그런 수인 앞에 검신과 도천이 서있다.

 

 

 

 

‘현성아, 너의 나이도 이제 팔십에 이르렀구나. 너를 이곳에 가둔지 칠십 년이 흘렀는데.. 현성아, 그 동안 많은 생각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는데, 무엇이 달라졌는지 말해줄 수 있겠느냐? 현성아, 그 오랜 세월 동안 이곳에 갇혀 무엇을 생각했고 또 가슴 속엔 무엇을 담았더냐?’

 

 

 

 

검신은 아무 말도 못하고 그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 옆의 도천도 아무 말 못하고 지난 시절의 악연만 떠올리며 혀를 차고 있을 뿐이었다.

 

 

 

 

“클클클… 사부들, 사람을 만나러 왔으면 말을 하셔야죠. 클클, 이게 얼마만인데 한마디 말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내 스승이신 검신, 도천이여. 클클클, 성불 스승은 같이 안 왔나요? 죽은 것이가요? 제자를 이렇게 70년이나 방치했으면 죽기 전에 한 번쯤은 찾아왔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크하하하하, 크하하하하! 클클클, 크하하하하! 무엇이든지, 무슨 말이던 하란 말이야, 이 개 같은 사부 새끼들아!!!”

 

 

 

 

현성은 칠십 년 만에 자신을 찾아온 두 스승을 보자 그 동안 쌓였던 분노와 좌절, 고통과 고독, 회한과 복수의 일념이 한꺼번에 터져 나와 미친 듯이 웃고, 고래고래 소리쳤다.

 

 

 

 

‘업보야, 업보. 저 놈은 아직도 변한 게 하나도 없어, 하나도..’

‘어찌해야 하지? 저 놈의 금제를 풀면 어쩌면 전설에 못지않은 거대한 위험이 될 가능성이 높은데… 정녕 그들을 믿고 가야 하는가? 너무 무모한 건 아닐까?’

 

 

 

 

검신과 도천의 마음이 한없이 무거워졌다. 허나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그들이 상대해야 할 자들은 전설 속의 두 개의 절대문파였다.

 

 

 

 

“왜!! 말이 없는 거야. 이 죽일 놈의 사부놈들아!! 말을 하란 말이야, 말을!! 찾아왔으면, 이렇게 칠십 년 만에 나를 찾아왔으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 아니야? 클클클클… 나를, 자신의 제자를 칠십 년 동안 갇아 둔 사부들이 찾아왔으면 뭔가 있을 거 아니야?! 뭔가 중대한 일이 있어 나를 찾아왔을 것 아니냐고, 이 죽일 놈의 사부놈들아!!!”

 

 

 

 

수인의 칠십 년이 활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가슴에 담아 둔 칠십 년 회한들이 들끓는 용암처럼 지표를 뚫고나와 하늘을 향해 폭발했다.

 

 

 

 

“내가 아니면 안 되는 일, 어서 말하란 말이야!!! 크하하하하!! 클클클클! 어서!! 어서 말하란 말이다!!”

 

 

 

 

그의 외침이 끝나는 순간, 누더기 같은 장발 속에 가려진 수인의 두 눈에서 두 줄기 섬광이 뻗어 나왔다. 그것은 공력에 의한 것이 아니라 칠십 년 한이, 그 복수의 감정이 만들어낸 심안광(心眼光)이라 해야 정확할 듯싶었다. 그는 삼성에 의해 금제돼 있어 공력을 운용할 수 없는 폐인이었기 때문이다.

 

 

 

 

“푼다, 금제를 푼다. 운풍 장로가 한 말을 믿을 밖에. 우리에게 선택의 여지가 없으니 풀을 밖에..”

 

 

마침내 검신이 마음을 굳혔다.

 

 

“…그럼, 나도 준비하겠네. 실시하세. 운풍이 말해준 사람, 그가 믿는 사람, 그의 안배를 우리도 믿어보자고.”

 

 

 

 

상당할 정도로 체념의 감정이 묻어있는 도천이 말을 마친 후 허공중으로 떠올라 가부좌를 틀었다. 그 상태에서 내력 운용에 들어갈 모양이었다.

 

 

 

 

‘이미 하기로 한 것, 갈 데까지 가보자. 성불의 판단을 믿어야지. 믿을 밖에야.’

 

 

 

 

도천의 몸에서 투명했지만 무게가 느껴지는 강인하면서도 부드럽게 공기를 타는 기운이 순식간에 피어올라 지하 감옥 곳곳으로 잔잔한 파장을 보냈다.

 

 

 

 

‘그래, 성불을 믿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어. 이것만이 현 무림이 살아남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면.. 믿을 밖에야. 우리의 선택이 처음에는 틀렸지만 끝에서는 옳았기를 기원해야지. 그렇게 믿어야해, 그것밖에 아무런 대안이 없으니까.’

 

 

 

 

검신도 도천과 마찬가지로 허공중에 뜬 상태에서 운기행공에 들어갔다. 그의 몸에선 짓 푸르다 못해 날카로운 느낌을 풍기는 강인한 기운이 피어올랐다. 투명함에도 무겁게 느껴지는 도천의 기운과 푸르러 날카롭게 느껴지는 검신의 기운이 합쳐지자, 허공중에서 하나의 구처럼 뭉쳐지더니, 이내 성현의 백회혈(百會穴)을 파고들었다.

 

 

 

 

동시에 성현의 눈에서 또다시 심안광이 일었고, 그의 온몸이 벼락에 감전된 듯 격렬하게 떨렸다. 백회혈을 파고드는 검신과 도천의 기운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다.

 

 

 

 

“아니?! 이 영감탱이들이 뭘 하려는 거야? 야, 이 사부놈들아, 도대체 뭐 하는 거야? 뭐 하는 것이냐고?! 70년 만에 나타나 나에게 또 무슨 짓을 하는 거냐고?! 크아악! 크아아아아악!!!”

 

 

 

 

선형은 백회혈을 파고든 두 개의 기운이 자신의 혈도를 따라 서로 다른 방향으로 역주천을 하며 온몸의 혈도와 기경팔맥(奇經八脈)을 따라 십이경맥(十二經脈)으로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그 과정에서 감각신경을 날카로운 침으로 찌르는 듯한 가공할 통증이 계속해서 밀려왔기 때문에, 그는 쉴 새 없이 비명을 토했다. 지옥의 화염에 빠져든 영혼들이 질러대는 듯한 비명이 지하 감옥을 통째로 무너뜨릴 듯 요동치며 미친 듯이 튀어 다녔다.

 

 

 

 

그때 검신과 도천 곁으로 세 사람이 다가왔다. 같은 무복의 세 사람 중에서 두 명은 같은 연배의 노인이었고, 한 사람은 류심환이 화월곡에서 만난 구정회였다. 천상천의 제1호법 구정회가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 늦었습니다.”

 

 

 

 

두 명의 노인 중 한 명, 운풍이 말했다. 그는 살아남은 천상천의 세 명의 장로 중 맏형 격이었다. 천상천 장로들의 서열은 오직 나이로만 가려질 뿐, 무공의 깊이와 성취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무튼 그들이 이곳에 나타난 것은 류심환의 또 다른 안배 때문이었고, 그것은 무영의 수고를 덜어줄 목적이었다.

 

 

 

 

 

 

 

 

삼성과 천상천의 세 장로가 이곳에 동시에 나타난 것은 류심환이 말한 신화에 관한 하나의 진실과 하나의 거짓과 관계된 그 무엇일 가능성이 높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