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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2부 3장 ㅡ 천하혈난지세2, 무영 천상지무 완성하다

 

 

 

 

“더 이상은 안 되겠어. 이대로 두면 오늘부로 천마성은 무림에서 사라져. 우리도 자리를 피하세. 그들에게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 이만 가자.”

 

 

 

 

천마승천관에서 동쪽으로 삼십장 정도 떨어진 곳에 족히 몇 백 년은 돼 보이는 커다란 오동나무가 서있었고, 소리는 그 나무의 맨 꼭대기 바로 밑에서 흘러나왔다.

 

 

 

 

“사형, 알겠습니다. 헌데 저들의 능력이 상상보다 세네요.”

 

 

 

 

앞서 말한 자의 사제로 보이는 자가 천마성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방적인 살육을 보면서 무겁게 가라앉은 소리로 말했다.

 

 

 

 

“그래, 우리의 상상을 훨씬 넘어섰어. 당장 저들과 맞서 싸운다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을 정도야. 하지만 천년 전설의 진정한 주인이 강호에 출도하면 누구도 우리를 막을 수 없어. 일단 소림으로 돌아가 천년의 준비를 다시 한 번 점검해보자.”

“알겠습니다. 도련님이 폐관을 끝내고 나오시는 날, 천년 전설이 살아 있음을 모든 강호인이 분명하게 확인하겠지요.”

 

 

 

 

사제지간으로 보이는 두 사람의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리고 대화가 들린 곳에서 두 개의 신형이 나와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천상천 십호법 무정검(無情劍) 선유도와 십일호법 파산검영(破山劍影) 마성지였다. 둘은 천상천의 업무인 사파의 최대 문파를 감시하고 있었다. 역천이 일어나기 전에는 천상천의 외궁에서 무림을 감시했지만, 지금은 본천에서 직접 움직인다는 점이 달랐다. 이는 천년을 이어온 천상천의 율법이 역천 이후에는 바뀌었단 뜻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그들의 대화에서 나온 초마인 진무결과 십이마혼의 현신이라는 십이마황의 등장이었다. 십이마혼은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을 보좌했던 열두 개의 지옥의 힘들은 말한다. 그들은 천상천주의 유일한 적수였던 화극연에 별로 뒤지지 않는 절대마인이었는데, 천마성을 쓸어버리고 있는 십이마황이 이들의 후예라면 이는 역촌마곡의 완벽한 부활을 의미했다.

 

 

 

 

결국 십이마황이 곡주라고 칭한 초마인 진무결은 당연히 역천마곡주 화극연의 후예라는 뜻이다. 그가 천년 전설의 또 다른 주인공인 역천마곡주의 후인이었기 때문에 현 사파 제1인자인 천마를 아기 다루듯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도 제1문파인 천마성이 현 무림의 지도에서 사라지는 것도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 마공의 위력이 너무나 막강해 그 자체로 지옥의 힘이라고 불린 자들과 그들의 주인이었던 화극연의 후인이라면 무엇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결국 감숙성의 동굴에서 튀어나온 붉은 광채가 초마인 진무결이었고, 그가 바로 역천마곡의 후인이었으며, 화극연이 이루지 못한 최후의 단계까지 이렀음을 의미했다.

 

 

 

 

 

 

헌데 이것은 또 무엇인가? 천상천의 두 호법이 사라지자마자, 그들이 신형을 숨겼던 곳에서 십장 정도 떨어진 오동나무에서 두 개의 신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은 그냥 어둠의 한 부분인 듯 십 장 높이의 허공에 그대로 떠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바람이 불 때마다 그들의 신형도 물결치듯 흔들거린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둠에 동화된 존재처럼 바람에 따라 자연의 일부처럼 흔들거렸다. 무림 역사에 이런 은형술이 등장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진무결과 열두 개 지옥의 힘의 완벽한 부활이라? 이제야 좀 재미있겠어. 클클클.”

 

 

 

 

두 신형 중 나무를 기준으로 오른편에 있는 자가 말했다. 그의 음성은 은형술이 그런 것처럼 어둠이 직접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러게 말이야. 이제야 전설 나부랭이다워졌어. 클클! 천마성 뿐만 아니라 현 무림이 전체가 작살나겠어. 헌데 우리는 더 기다려야 하니, 너무 지겨워.”

 

 

 

 

이번에는 나무를 기준으로 왼편에 떠있는 신형이 어둠 속에서 말했다.

 

 

 

 

“판을 키워 멋지게 등장하려면 참아야지. 일단 제천에게 알려주자고. 아직 우리 세외문(世外門)이 할 일은 없으니까, 지겹지만 더 기다릴 수밖에. 더 이상 볼 것도 없으니 우리도 가자.”

 

 

 

 

오른편 신형이 말했다. 헌데, 그들은 제천의 이름 다음에 님자를 붙이지 않았다. 그를 위해서 감시업무를 하는 것 같음에도 그들은 제천을 동급 정도의 인물로 불렀다. 그들이 대화 중에 세외문 소속임을 말했으니, 제천이 다스리는 문파의 소속이 아님은 분명했다. 류심환이 밝히고자 하는 것 중에 이들의 소속문파가 들어있는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러자고. 결과가 뻔하고, 천상천 놈들도 소림으로 갔으니. 헌데, 복마전은 어떻게 됐을까?”

 

 

 

 

왼편 신형이 천상천과 복마전을 동시에 언급했다. 세외문이라는 정체불명의 문파에 소속된 이들은 천상천을 포함해 무림 전체를 감시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제천의 수하들과 겹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의 감시 대상에 천년의 전설이 모두 포함돼 있는 것은 확실했다. 이들은 역촌마곡과 천상천을 모두 다 감시하고 있었음이 이 둘의 대화에서 입증됐다.

 

 

 

 

“검강인이 직접 움직였으니 여기와 별로 다를 것이 있겠어? 그쪽도 작살나고 있다고 봐야지. 안 그래, 사력(四力)?”

 

 

 

 

이들이 누구이던 간에 그들의 짧은 대화 속에 천년 무림의 주인들이 모두 다 언급되고 있었다. 천상지무의 전설이 탄생한 천년 만에 무림에 뭔가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클클! 당연하지. 복마전이 검강인의 상대는 아니잖아. 어떻든 오늘 부로 사파를 대표하는 두 문파가 종을 치는군. 클클! 그렇다고 해봐야, 어린애들 놀이지만. 가자고 삼력 (三力), 더 이상 볼 것도 없으니.”

 

 

 

 

사력이 오른편 신형에게 삼력이라 부르며 말하길, 사파 양대 문파 중 하나인 복마전을 쓸어버리는 것이 어린애 장난이라고 말했다. 제천에 이어 세외문이라는 새로운 문파가 모습을 드러냈는데 그들은 천년의 전설마저 그리 높게 치지 않았다. 삼력과 사력이라는 이 둘의 대화로 미루어 볼 때 천년 전설 뒤에는 하나의 거짓과 하나의 비밀 이외에도 또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었다. 

 

 

삼력과 사력이라는 자의 대화가 사실이라면 천년 무림의 역사가 모두 다 거짓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류심환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인지, 죽은 검강천이 이런 사실을 알고 있었고, 이를 류심환에게 언질해 주었는지 알 수 없지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절대변수들이 천년의 세월을 격해 두 개나 모습을 드러냈다.

 

 

 

 

음모가 있는 밤. 어떤 무사는 천하의 패권을 꿈꾸며 술 한 잔 기울이고 있을 것이고, 다른 어떤 무사는 검을 휘두르며 낮에 끝내지 못한 초식을 연마하고 있을 것이며, 또 어떤 무사는 여자 배 위에서 금세 끝날 힘자랑에 빠져 있을 것이다. 그 평범한 일상 속의 밤, 현 무림의 양대 사파, 천마성과 복마전이 그 현판을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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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투명한 빛이 천공의 어둠을 향해 날아올랐다. 그 빛은 섬전보다 빨랐고 햇살보다 더 빛났다. 그 빛이 지나가는 곳에서 억겁의 어둠은 몸을 낮춰 피하기에 급급했다. 그 빛은 끝없이 뻗어 천공마저 뚫을 듯 솟아올랐다. 그 빛은, 하늘을 구멍낼 듯한 그 빛은 하나의 검에서 발출된 강기였다.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天上歸元劍)의 위대함은 인간의 몸이 이를 수 있는 최고점을 끌어낸다는 데 있다.”

 

 

 

 

청아한 음성이 하늘을 수놓은 순간, 직선으로 뻗어가던 검강이 용이 승천하듯 천공의 어둠을 휘돌며 하늘 높이 치솟아 올랐다.

 

 

 

 

우으응!

 

 

 

 

검강에서 엄청난 공명(共鳴)이 일더니

 

 

 

 

번쩍!!!

 

 

 

 

그대로 폭발했다. 그것은 우주가 폭발하며 일으켰던 세상 첫날의 폭발 같았다. 태초의 순간처럼, 무한대의 빛살이 미증유의 힘으로 퍼져갔다. 빛의 해일이 천공의 어둠을 휩쓸며 천지간을 대낮처럼 밝혔다. 빛이 이르지 않는 곳이 없었고, 빛을 거역하는 견고한 어둠도 없었다.

 

 

 

 

“잠재된 모든 능력의 한 올까지, 그 순정의 힘(力)을 경으로 상승시켜 인간의 몸이 이를 수 있는 극한을 검으로 실현한다.”

 

 

 

 

거대한 빛의 축제가 시작된 곳에서 하나의 검이 떠올랐다. 그 시리도록 투명함이란 완벽한 진공상태에서의 최초의 힘처럼 자리했다. 개벽의 순간을 재현하며 셀 수 없이 많은 빛의 폭발을 일으킨 검이라 하기에는 너무 투명해 현실에서는 존재할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 투명한 진공 속에 하늘이 들어 있어 있었다. 그것은 빛의 근원이었고 생명의 기원이었다.

 

 

 

 

“그리하여 힘에서 출발한 경이 그 극한에 이르면 개벽(開闢)이 일어나 하나를 지향하니 이를 무극(無極)이라 한다. 이로써 경은 다함도 없고 시작도 없다.”

 

 

 

 

말이 여기에 이르자 빛이 해일처럼 퍼졌던 공간 어느 곳에나 하나의 검이 있었다. 하나의 투명한 검이 천공 어디를 봐도 있었고,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 검이 들어있었다. 검은 하나였지만 어디에도 있었고, 어디에나 있었기 때문에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다. 하나가 모든 것이었고, 모든 것이 하나였다.

 

 

 

 

이런 광경은 천치창조의 순간에나 가능할 뿐, 창조가 끝난 이후에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이것은 인간의 능력이 만들 수 있는 그 끝이라 해도 그러려니 할뿐 이해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었다. 하나의 투명한 검은 우주 그 자체였고, 우주란 하나의 검에 너끈히 담겨있다. 그런 느낌이었다.

 

 

 

 

“이로써 검은 그 극한에 이르니 모든 것은 출발의 근원으로 돌아온다. 이로써 천상귀원검을 완성했다.”

 

 

 

 

한 사람이 하나의 검을 들고 서있었다. 검 같은 한 사람이 있었다. 인간이면서도 검인 한 사람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무영이었다. 아비의 성은 검이며, 그래서 그의 성도 검이었다. 폐관에 든 지 네 번째 해, 검무영은 인간이 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 천상귀원검을 완성했다.

 

 

 

 

‘이로써 천상천은 더 이상 없어. 내가 바로 천상천이니까. 검강인, 기다려라. 내가 바로 천상천이고 너는 그저 껍데기임을 증명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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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들어선 이곳, 비궁은 단촐하다. 천목산 서편 계곡의 중반쯤에 있는 비궁은 산 안에 마련돼 있기 때문에, 그 공간도 크지 않고 꾸며놓은 것도 없어 단촐하기가 마치 아무것도 필요없는 신선이 머무는 곳만 같았다. 그 중심에 작은 정자가 하나 있고 주위에는 천도복숭아가 빙 둘러 서있다. 만년석정이 녹아 수만 년을 녹아 방울방울 떨어진 것이 호수를 이뤄 작은 정자 하나를 띄울 수 있을 만큼 쌓였다.

 

 

 

 

그 정자 안에 류심환이 가부좌를 튼 채 앉아 있다. 순간, 그의 몸에서 빛이 솟았다. 빛은 물웅덩이에서 막 나온 호랑이처럼 주위를 한 번 휘둘러보더니 몸에 묻은 물을 털어내듯 격렬하게 떨렸다.

 

 

 

 

우으응!

 

 

 

 

빛에서 호랑이 포효 같은 공명이 일었다. 그 공명에 비궁 안의 대기가 사방에서 요동치며 벽면에 부딪쳐 회오리를 만들더니 비궁 안을 제멋대로 폭주했다.

 

 

 

 

휘이잉!

 

 

 

 

그 회오리를 만든 공명의 진동이 극한에 이른 순간

 

 

 

 

번쩍! 콰앙!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터져버렸다. 빛살이 폭발에 따른 파편처럼 존재하는 모든 방위로 폭사됐다. 그것은 차라리 광강이라 해야 했다.

 

 

 

 

펑! 펑!

 

 

 

 

광강은 비궁의 사방 벽면을 그대로 뚫고 천공의 어둠을 갈랐다. 천지간에 내밀하게 분포된 어둠을 쓸어가는 광강, 그 빛의 해일이 천지간을 대낮처럼 밝혔다. 류심환의 몸에서 솟은 하나의 빛이 개벽을 일으켰다. 그 빛은 애초에 검의 형태를 띠었으나 투명하기가 마치 은쟁반에 담아놓은 물만 같아 흘러넘치기 십상이었다.

 

 

 

 

결국, 그의 몸에서 나온 광강은 강기임에는 분명했으나, 그 출발이 검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 검강은 투명했고, 그 안에 세상이 있고 세상 어디에도 검이 있었다. 똑같았다. 무영이 천상귀원검을 완성하던 순간과 완벽하게 똑같았다. 다만, 다른 것이 있다면 그 출발점이 비궁에 앉아 있는 류심환의 몸이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가 더 흐르자 류심환은 눈을 떴다. 그리고 말했다.

 

 

 

 

“이제 천상지무를 파천태극무검과 합치는 것만 남았어. 제 삼의 세력 천외천, 조금만 기다려라. 너의 음모, 천년의 거짓과 비밀을 모두 밝혀 그 대가를 치르게 할 테니. 기다려라, 이제 3년 남았으니.”

 

 

 

 

류심환이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비궁을 감도는 그의 음성에는 확고한 신념이 들어있었다.

 

 

 

 

‘이제 한 번만 더하면 돼. 천년 음모의 주재자가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한 사람의 수중에서 무림이 좌지우지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무림은 모든 강호인의 것이지 한 사람의 절대자의 것이 아니야.’

 

 

 

 

류심환이 다시 눈을 감았다. 비궁의 하루는 그렇게 류심환이 눈을 떠서 하루를 확인하고 눈을 감음으로써 하루가 갔음을 말했다. 다시 눈을 뜨면 또 하루가 시작될 것이다. 그는 그렇게 삼년을 보냈다.

 

 

 

 

다만, 오늘만은 비궁으로 달빛도 별빛도 바람도 들어왔다. 천년을 닫혀 있던 이곳에 수없이 많은 손님이 밀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