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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박근혜의 대국민담화, 피케티의 시각으로 보면



후보 시절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파기해버린 박근혜 대통령의 ‘줄푸세’는 최경환노믹스로 구체화됐다. 의료민영화와 영리화를 포함해, 국회에 공을 넘긴 채 전방위 압박을 가하고 있는 각종 투자활성화법안과 노동개악으로 대변되는 박근혜의 줄푸세의 핵심은 온갖 논리를 동원해도 서민증세와 부자감세가 핵심이며, 대국민담화에서 또다시 국회통과를 압박한 노동자 탄압의 정수인 노동개악으로 압축된다.  



IMF 외한위기 주범 중 한 명인 강만수처럼, 성장근본주의자인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내수경제 회복과 상위 1%에만 이익이 집중되는 명목상의 경제성장률을 높이기 위해 경제활성화라는 명목을 내세워 이런 악법들을 밀어붙였다. 이것으로 만족할 수 없는 박근혜는 북한의 핵위협을 극대화하는 것까지 동원해 사측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노동개악을 밀어붙이기 위해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 나선 것이다.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는 정부의 세수가 최대화되는 지점인 담뱃값의 2,000원 인상에서 보듯이, 확장적 재정정책에 따른 세수부족을 서민증세로 대체했다. 동시에 정치적 저항이 가장 약한 서민과 유리지갑으로 대표되는 근로자의 증세(공제혜택 축소, 건강보험료 인상 등)로 풀어간다. 내년도 예산에서 복지와 사회안전망에 들어갈 예산을 전용해 이명박 정부가 그랬던 것처럼, 토건족을 위한 SOC예산을 무려 3조4,000억원이나 늘린 것도 민생과의 연관성이 거의 제로에 가깝다.



부동산거래활성화를 높이겠다며 단행한 '부동산 취득세 영구 인하'로 기회재정부 자체 추정으로도 지방 세수가 2조4,000억원이나 사라졌으니, 지자체장들이 들고 일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지자체의 재정을 도와주었던 종부세마저 무력화된 것까지 고려야 한다). 이 조치로 거래활성화 효과는 특정 지역 위주로 혜택을 몰아주었고, 서민의 숨통을 죄는 전월세가만 올려놓았다. 



하지만 전월세가 상승 때문에 죽어나가는 중하위층을 위한 대책은 내놓지 않고 있다. 내년도 정부의 예산편성을 보면 대책은커녕 정반대의 방향으로 달려가겠다는 의지로 가득하다. 박근혜 정부는 아예 대놓고 부의 불평등을 확대시키겠다는 뜻이다. 담뱃값 인상으로 톡톡히 재미를 봤으니 이번에는 주류세 인상을 들고 나왔고, 국제유가가 바닥을 침에도 유류세의 조정에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복지 축소도 정치적 계산에 따라 노인처럼 전통의 지지층에 들어가는 예산은 거의 건드리지 않거나 늘렸으면서도, 상위법에 저촉되는 시행령을 만들어 누리교육에 들어갈 비용을 진보교육감에게 전가해 버렸다. 이 바람에 진보교육감들은 단체로 반발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피해가 누리교육 수혜자들에게 돌아갈 판이다. 당장 경기도 의회에서는 난장판이 벌어졌고, 이런 여야의 진흙탕 싸움에 안철수 신당은 반사이익을 누리고 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보편적 복지를 민주주의가 보장하는 국민의 권리로 보지 않고, 정부가 제공하는 시혜로 보기 때문에 이런 일방통행(국회의 동의가 필요없는 시행령 독재)이 가능하다. 국민의 삶의 질이 떨어지면 민주주의는 축소되고, 오랜 투쟁을 통해 쟁취한 시민의 권리가 후퇴한다. 피케티 교수가 누진적 부유세 도입과 무상교육을 불평등 해소의 해법으로 제시하면서, 박근혜 경제팀의 막가파식 경제정책을 비판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피케티 교수는 성장지상주의자의 이론적 기반인 ‘쿠즈네츠 가설(경제성장이 일정 수준에 이르면 초기의 불평등이 완화된다는 가설)’이 틀렸으며, 파이를 키워야 이루어진다는 낙수효과가 부자에 대한 누진증세와 무상교육 같은 부와 기회의 재분배가 있을 때만 작동한다는 주장한 것도 박근혜의 노동개악이 불평등만 심화할 뿐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기 위해서였다. 



피케티 교수의 비판이 힘을 얻는 이유는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처럼 시장경제와 신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보수경제학자라는 사실에 있다. 부의 불평등이 가장 심한 미국에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21세기 자본론》의 저자인 피케티 교수가 부와 기회의 불평등을 악화시킬 뿐인 박근혜 경제팀의 정책적 오류와 이중성을 비판한 것에 더 큰 울림을 일으켰던 것이고, 보수적인 언론들은 피케티의 발언을 최대한 외면했던 것이다.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보편적 복지가 가능하려면 조세 정의가 민주주의의 원리에 맞게 시행돼야 한다. 그럴 때만이 보육과 사교육비 지출이 세계 최고의 수준에 등극한 대한민국에서 하위 90%에 속하는 가구들이 최악의 압박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존엄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질을 누릴 수 있다.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행복권도 이럴 때만이 실현될 수 있다. 



보수경제지와 보수경제학자, 연구소들을 총동원한 한국의 재벌과 슈퍼리치들이 피케티 교수의 주장에 광적일 만큼 신경질적인 비판을 가했지만, 피케티 교수의 이런 처방은 무려 300년에 걸친 방대한 통계자료를 분석해서 나왔다는 점에서 그들의 비판은 힘을 잃는다. 방대한 자료를 기반으로 이루어진 이런 분석은 피케티 교수가 처음이 아니어서 성장근본주의자들의 궤변을 얼마든지 반박할 수 있고 노동개악이 그 중에서 최악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위의 도표에서 보듯, 피케티 《21세기 자본론》에서 경제대공황기인 1930년과 오일쇼크가 정점에 이른 1975년을 제외하면, 돈이 돈을 버는 자본소득(기업소득)이 노동이 버는 근로소득(1인당소득으로 대표되는 경제성장률을 말한다)을 언제나 능가했기 때문에 불평등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피케티의 결론을 뒷받침해주는 연구결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 노동개악이 국회를 통과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설명할 필요도 느낄 수 없다. 



다시 말해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와 줄푸세의 여왕인 박근혜처럼 성장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은 경제성장률이 높아질수록 빈부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는 현실을 설명할 방법이 없으면서도 사측의 입장만 반영된 노동개악을 강행하려 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미친듯이 폭주하던 19세기에도 똑같이 일어났던 것들이며, 당대의 진보경제학자들은 피케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가 강력하게 비판했다. 



당시의 노동착취가 어린이에서 여성, 노인에 이르기까지 지옥이 재현됐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현실인식 하에서 유럽에서는 마르크스, 블랑키, 프리에, 오언 등이 자본주의 비판에 나섰고, 미국에서는 헨리 조지, 유진 뎁스, 헬렌 켈러 등이 자본주의 비판에 나섰다. 그들의 비판을 현실에 적용한 소련과 동유럽에서 이론에서 한참 벗어난 현실사회주의를 강행하는 바람에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됐다.      





특히 신자유주의 정권이 영국과 미국에서 들어선 후, 부자감세의 효과가 본격적으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1984년 이후로는 부의 불평등을 넘어 교육의 불평등도 빠른 속도로 악화됐다. 김영상 정부의 최경환이었던 강만수 경제부총리가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이후에는 신자유주의의 천국으로 변질된 대한민국을 바로잡을 가능성도 줄어들었고 이명박근혜 8년 동안 헬조선을 만드는데 성공했다. 피케티가 명명한 세습자본주의가 고착화된 것이다. 



경제를 활성화하고 노동개악이 이루어지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 주장하는 박근혜의 대국민담화는 현실을 왜곡하는 전형적인 궤변에 불과하지만, 이를 바로잡을 수 있는 정치적 동력이 안철수 신당(국민의당)의 등장과 세확장으로 사라져버린 것은 통탄할 노릇이다. 본격적으로 우파의 행보를 보이고 있는 안철수와 국민의당의 외부인사 영입을 보면 박근혜 임기 동안 하위 99%에 속하는 국민이 헬조선에서 탈출할 방법이 더욱 멀어지는 불안감을 줄일 수 없다. 





현실이 이러함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노동개악과 부자감세 법안들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을 압박하는 대국민담화와 기자회견에 나섰다. 박근혜의 압박에 더불어민주당이 굴복하거나, 국민의당이 원내교섭단체를 넘어 제1야당을 다투는 의원수를 확보해 새누리당과 합작하는 날에는 대한민국이 1대 99사회로 접어드는 속도가 더욱 빨라질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피케티의 처방이 스티글리츠와 폴 크루그먼 등의 진보경제학자에 비하면 너무나 미약하지만, 박근혜 경제팀의 이중행태와 거짓을 까발리기에는 넘칠 만큼 충분하다. 그 동안 수없이 많은 경제활성화정책과 대규모 예산집행이 남발됐지만, 부의 불평등이 심화되는 최악의 결과가 양산되는 것은 이것들의 뒤에 숨어있는 부자감세와 서민증세의 위력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모든 근로자들을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노동개악까지 더해진다고 상상해 보라!  



노동개악을 강조한 박근혜의 대국민담화는 의식불명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백남기씨에게 또다시 폭력을 가한 것이며, 영어의 몸으로 힘겨운 투쟁을 벌이고 있는 한상균 민주노총 의원장을 능멸하는 것이며, 이 땅의 모든 근로자들에게 통치자로 협박을 한 것과 다름없다. 국민의 0.01%도 안 되는 사측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해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로서 어찌 노동개악이 구국의 방법인양 포장할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가 이명박을 비판하며 ‘국민도 속았고, 나도 속았다’라고 말한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박근혜에게 '개발할수록 불평등해지는 거대한 역설'에 수십 년 동안 속았고, 지난 3년 동안에는 더더욱 속았기에 상위 1%에게 부와 기회가 독점되는 부자감세와 서민증세, 민생의 탈을 쓴 불공평한 경제정책들을 바로잡으라고 아우성치고 요구해야 한다. 박근혜와 그의 경제팀을 향해 ‘당장 이 불황을 끝내고, 불평등의 대가’를 지불하라고 국민의 이름으로 명령해야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오므로. 



이재명과 박원순 시장의 복지확대 실험이 성공해야 할 이유는 이것으로 더욱 중차대해졌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대표는 이들의 실험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며, 정치적 투쟁도 마다하지 말아야 한다. 유시민은 정의당이 선전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줘야 하며, 정의당과 노동당, 녹색당 등의 진보야당들의 약진을 간절하게 기대한다. 개표조작 등의 이유로 대선무효소송을 제기한 분들에게 힘을 실어주어야 하며, 효녀연합과 청춘들의 위안부협상 원천무효를 위한 처절하고 아름다운 투쟁에 격려와 후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결국은 사람사는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우리들의 힘이 강해지는 것밖에는 뼛속까지 친미이고 친일인 수구세력들의 헬조선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세습자본주의와 박근혜의 폭정에 맞서기 위해 현실정치에서 겨우 명맥을 유지할 뿐인 진보좌파적 가치를 되살려내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