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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하승창과의 설전에서 CEO의 전형을 보여준 이재웅



경찰이 민주노총 지도부의 카카오톡 대화내용을 사찰했다는 기사를 가지고, 시민운동가 하승창과 다음의 창업주였던 이재웅의 트위터 설전은 한국의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슬픈 해프닝이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불법성이 강한 수사기관의 민간인 사찰과 그에 협력한 기업 때문에, 애꿎은 사람이 피해자가 되는 블랙코미디의 정수라 할 수 있다.





두 사람이 트위터의 단문으로 대화하기에 부적절한 주제를 가지고 설전을 벌였다는 점에서 어리석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카카오톡 경영진의 불성실과 무책임을 비판한 하승창의 글에, 도둑이 제 발 저린 듯이 발끈한 이재웅이 반박 글은 한국 기업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었지만, 그의 독선적인 인식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사실 한국적 상황에서 기업들이 정부권력에 저항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는 천하의 삼성전자그룹이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이건희 회장과 정몽구 회장이 여러 번 기소되고 수조 원을 토해낸 것이 불법의 결과라고만 생각한다면 천만의 말씀이다. 노무현 대통령 같은 지도자가 최소 10회 연속으로 나오기 전까지는 정부권력에 정면으로 맞설 수 있는 기업이란 존재할 수 없다.



한국적 현실이 그렇다 해도 이재웅의 반반 글은 인식의 뒤틀림이 분명하게 드러나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재웅은 하승창의 글에 발끈해서, “국가권력의 남용을 탓해야지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기업을 탓하다니. 그러려면 그냥 이민 가야지. 저도 카카오의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이건 선후가 바뀌었다”고 말했다.





국가권력에 저항하지 못하는 한국기업의 현실을 토로한 이재웅의 반박이 기업의 입장에서는 100% 옳다고 해도, ‘그러려면 그냥 이민 가야’ 한다는 발언은 일체의 이견을 받아들이지 않는 독재자나 할 수 있는 말이다. 이런 이재웅의 인식은 성공한 기업의 CEO들이 공통적으로 지니는 특성으로, 자신의 의견에 대한 절대적 확신에서 나온다.



실패확률이 98~99%에 이르는 척박한 환경에서 작은 벤처를 대기업까지 끌어올린 CEO는 성공의 기억들로 가득하기 마련이다. 이런 성공의 경험들이 자신의 의견에 대한 무한 확신으로 자라나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설명하지 않아도 성공한 CEO에게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다. 그들에게 조국을 떠나 이민을 가는 약자와 패자의 심정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개구리가 올챙이 시절의 기억을 못하는 것은 개구리가 됐기 때문이다. 최근에 유행어처럼 떠돌았던 ‘개처럼 벌면 개가 된다’는 것도 동일하다. ‘카카오의 대응이 마음에 들지 않다’는 것은 자기 확신을 강화하기 위한 사족에 불과하다. 자신이 다음카카오의 CEO로 남아 있었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란 교만함을 드러낼 뿐이다.



그는 이어 “국가권력의 남용을 탓하지 않고 시민 혹은 기업을 탓하는 이런 자세는 정말 구태다. 예전에는 의식이 없다고 동료 학우들을 탓하던 바로 그런 어쭙잖은 엘리트 의식과 뭐가 다른가”라고 반문한 뒤,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라. 그게 시민운동의 리더가 할 일이다”라고 반박을 이어갔다. 



이것도 성공한 CEO들이 갖는 전형적인 인식의 형태다. 제자리에 머무르면 도태되기 일쑤인 기업환경에 익숙한 그는 ‘시민 혹은 기업을 탓하는’ 것이 ‘구태’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앞으로 전진하기 위해 ‘Why not'만 중요한 이재웅의 경험들은 자신을 신처럼 결정을 내리는 자로 자리매김 시킨다, 그것도 너무나 능숙하게.



시민운동의 리더가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면, 이 세상에 시민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며, 시민운동의 리더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시민운동가는 정부의 권력남용을 해결할 수 있는 묘책을 제시하는 사람이 아니다. 그것은 정치학자나 법학자를 포함해 국민 전체가 달라붙어야 가능한 일이지, 시민운동 리더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백번 천 번 양보해서 기업에 대한 정부의 권력남용에 대해 시민운동의 리더(하승창이 언제 시민운동의 리더가 됐나?)가 해결책을 제시해야 한다면, 이용자의 돈으로 먹고 사는 기업은 정부의 권력남용에 맞서 이용자를 보호할 수 있는 조치부터 제시했어야 한다. 이용자의 돈을 삼켰으면서도, 아무 잘못이 없는 이용자의 피해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는 이런 무책임한 발상은 도둑놈 심보가 아니면 무엇이랴.  

  


                                                   대단히 창조적인 프로세스



뭐든지 해결책을 내놓으라는 이재웅의 CEO적 인식의 뒤틀림은 하이라이트를 향해 달려간다. “예전에는 의식이 없다고 동료 학우들을 탓하던 바로 그런 어쭙잖은 엘리트 의식과 뭐가 다른가”라는 자전적 질문에서는 안철수가 오버랩되며 민주화에 가담하지 않았던 시절의 피해의식이 진득하게 깔려있다. 이는 민주화운동을 희화화하는 일베충적 인식과 다를 것이 없다.                                                   



독재가 만연했던 시절에 민주화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자랑이 될 수도 없고, 민주화가 이루어진 다음이라고 대놓고 떠들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기업을 성공시켰으면 나름대로 국가 발전에 일조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란 기업의 성공 뒤에 숨겨져 있는 온갖 불법과 탈법의 행태들에 대해 스스로 면죄부를 발행하는 것과 같아서 천박하기까지 하다. 불법과 탈법은 걸리지 않았을 뿐이고, 좋게 말해도 운이 좋았을 뿐이다.



마지막으로 “국가권력의 남용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라. 그게 시민운동의 리더가 할 일이다”라는 발언에서는 ‘시민운동의 리더’가 해야 할 일까지 자신이 결정하는 오만함이 도를 넘었다. 카카오톡 사태의 피해자는 이용자인데 이재웅의 눈에는 기업의 피해만 들어올 뿐이어서, 그의 인식이 얼마나 뒤틀려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심지어 그는 국가권력의 남용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의심을 받고 있는 기업을 일방적으로 옹호하며, 자신의 직원에게 명령하듯 국가권력의 남용을 강하게 비판하고 해결책까지 제시하라고 윽박지른다. 이쯤 되면 본말이 전도돼도 한참은 전도됐다. 필자가 ‘안철수 현상’에 대해 그렇게 많이 비판한 것이 이재웅에게서 똑같이 재현됐다.



이재웅처럼 정보통신사업을 했던 필자는 수사기관의 민간인 사이버 사찰에 관한 글을 계속해서 써오면서 다음카카오를 비판한 적이 없다. 권위적인 보수정부가 집권한 현실에서 자유로운 기업 활동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다음카카오를 비판하지 않았고, 국가권력의 남용에 저항하기 위해 다음카카오를 계속해서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인식의 뒤틀림이 너무나 심한 이재웅의 반박 글을 보며 이용자에게 뒤늦게 사과한 다음카카오의 경영진과 법무팀을 비판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제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이 부분에서 이재웅을 비판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그 밖의 부분에서 이재웅의 글에 담겨있는 인식의 뒤틀림은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ㅡ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