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렬 화백의 홈페이지에서 인용




“...체념은 항상 인간에게 힘과 새로운 희망의 샘이었다. 인간은 죽음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였고, 오히려 그것을 기초로 삼아 자신의 이승에서의 삶의 의미를 쌓아 올리는 법을 배웠다. 인간은 자신의 영혼은 언젠가 잃어버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 하지만 죽음보다 더 끔직한 상태가 존재한다는 진리 앞에서 스스로를 체념했고, 그러한 진리를 자신의 자유의 기초로 삼은 것이다. (중략) 이렇게 가장 밑바닥의 체념을 받아들이게 되면 다시 새로운 생명이 솟구치게 된다. (중략) 이제 인간의 자신의 모든 동료들이 누릴 수 있도록 풍족한 자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를 안게 되었다. 인간이 그러한 스스로의 과제에 충실하기만 한다면, 권력이나 계획과 같은 것들을 도구로 삼아 자유를 건설하려 한다고 해도 그것들이 인간의 원수로 변하여 자유를 파괴할 것이라고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이것이 복합 사회에서의 자유의 의미이다. 이것만 이해한다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확신을 얻을 수 있다. 여기까지야 형. 정말 저자의 통찰력이 대단하지 않아? 형은 어떻게 생각해?”



동생은 1시간에 걸쳐 우리시대의 정치경제학적 기원에 대한 칼 폴라니의 기념비적 대작인 『거대한 전환』의 마지막 장을 읽어주었다. 극소수의 강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자기조정 시장(자유시장이라고 하지만 재벌과 초국적기업 및 지역 정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정경유착의 반칙이 난무하는 네트워크에 불과하다. 시장논리를 주장하는 모든 자들에게 그 새빨간 거짓에 대해 신의 천벌이 있기를!)’의 본질적 허구성과 야만적 선동을 그 뿌리부터 파헤친 우리 시대의 대서사시에 대한 3일간의 낭독이 비로소 끝난 것이었다. 동생의 말처럼 『거대한 전환』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견줄만한 역사상 최고의 명저 중 하나였다. 아니, 그 둘의 오류와 엉터리 추상 및 인간에 대한 몰이해를 가장 설득력 있게 풀어낸 책이다.



자본주의에 문제는 자기조정 시장이라는 허구의 아이디어에 근거하기 때문에 스미스나 마르크스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자신의 이론을 펼친 휴머니스트였다. 둘의 위대함ㅡ스미스를 마르크스의 위대함에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ㅡ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있고, 둘의 오류는 인간이란 변수를 제거한 지나친 추상화에 있다. 스미스의 주장처럼 시장은 그런 인간과 축적된 자본과 초국적기업의 네트워크에 의해 조작되는 것이지 소비자와 생산자 모두에게 이로운 적정 가격을 정하는 정의의 법정은 아니다. 자본주의에 관한 한 마르크스가 옳았고, 자유시장에 관한 한 폴라니가 옳았다. 계몽의 시대에 살았던 스미스는 철학자로서의 삶에만 충실했어야 했다. 그가 원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자들ㅡ주류 경제학자들ㅡ에 의해 세상이 이 지경으로 망가져 버렸으니까.  



물론 자본주의가 최고점에 이르면 프롤레타리아 혁명이 일어나 '자유의 왕국'이 도래한다는 마르크스의 추상화는 다윈의 진화론과 뉴튼의 고전물리학에 지나치게 경도됐다는 푸코와 데리다의 비판에 답할 수 없고, 1929년의 대공황을 지켜보면서 자본주의는 끝났다고 예견한 칼 폴라니도 너무 성급하기는 마찬가지다. 칸트에 의해 모조리 다루어진 이성과 사유의 한계는 정보와 경험의 부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애당초 인간이란 존재가 그런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 이성의 한계를 설정해 인간을 최상의 위치로 끌어올리고자 했던 칸트의 노력이 계몽의 이름으로 처참히 난자됐지만, 계몽된 인간이 계몽을 완벽하게 만들어야 무한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변증법의 한계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처럼. 



“형, 어떻게 생각해?”



동생은 내 생각을 재차 물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책을 한 권 다 읽으면 일정 정도의 토론을 했다. 그런 방법으로 나는 동생에게 보다 높은 차원의 관점에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정립시켜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동생의 머리는 명석하지 않았지만, 하얀 백지 같아서 무엇을 그리던 선명한 형상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그 백지의 넓이가 한이 없다는 것이었다. 육체적으로 상상 이상의 능력을 타고난 동생의 발전은 초음속 비행기를 떠올릴 정도로 하루가 다르게 시공간을 넘나들었다. 하지만 평상시 같으면 책의 내용에 대해 동생과 열띤 토론에 돌입했을 텐데, 왠지 나는 마음이 비스듬했다.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최근에 들어 기분 조절이 쉽지 않았기에 감정이 자꾸 제어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수고했어.”



뇌에서 출발한 우울증적 반응이 신경회로를 타고 몇 초 후에야 소리라는 운동 에너지로 전환돼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동생은 감정의 삐딱함이 느껴지는 내 반응에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내가 이런 식의 반응을 보이면 토론을 뒤로 미루던 동생이 잠시 망설이는 것 같더니, 늘 그렇듯 몇 초를 더 기다린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동생은 나의 뇌에서 보내진 말이 그것뿐이라는 것을 확인했던 것이다.



“수고는 뭐. 나도 이 책을 읽으며 많은 것을 배웠어. 형은 어땠어? 나는 이전에는 미처 생각지도 못한 것들이 많았는데? 저자의 지적이 지금에야 빛을 발하는 것 같지 않아? 푸코와 벡의 성찰과 조합하면 대단한 것이 나오지 않을까?



무뚝뚝하고 지극히 의례적인 내 말에 동생은 조금도 싫은 표정을 드러내지 않은 채 나를 격려하려는 듯 활기찬 톤으로 물었다. 동생은 최근에 들어 무력해질 대로 무력해진 나의 마음을 되살려내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동생은 언제나 그랬다. 힘든 일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그냥 골아 떨어져도 모자랄 판인데, 동생은 단 한 번도 내 앞에서 힘든 내색은커녕 나의 삶에 관해서는 그 어떤 것이든 포기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도 기꺼이 내놓을 동생이었다. 부모님이 살아 있다고 해도 결코 해낼 수 있는 그런 수준의 것들이 아니었다.



“형의 생각은 어때? 형이면 이미 답은 나왔을 것 아니야?”



오늘따라 동생은 오버하는 게 느껴질 정도로 나에게 물었다. 그런 동생의 행동에 비스듬한 마음의 경사가 더욱 우울한 쪽으로 기울어졌다. 무엇보다도 너무나 피곤하고 무기력했다.



“글쎄?”

“글쎄라니? 그런 대답이 어딨어? 이 책은 한 편의 대서사시를 보는 듯한데? 특히 ‘오트피낭스’ 체제에 대해서는 형도 관심이..”

“재영아, 그만하자.”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낄지 정확히 알고 있는 동생에게 나는 차갑고 건조하게 말했다. 우울한 감정은 늘 상 폭발하기 쉬운 휘발성을 띄는 게 보통이고 그 방향은 거의 다 짜증 쪽으로 향한다.



“그만하자고? 왜 그래, 형? 어디 아픈 거야? 내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어?”



폭발 직전의 나를 보면서 습관적으로 몇 초를 더 기다린 동생이 바싹 다가와 나와 엉덩이 부분의 이불을 살핀다. 이어서 집에 들어오자마자 자신이 놓은 영양 보충제가 제대로 들어가고 있는지, 빨아 마실 수 있게 해놓은 과일즙과 야채즙이 떨어졌는지 꼼꼼히 살핀다. 그런 동생의, 오늘 따라 특별히 오버하는 것 같은 살핌에 갑자기 우울한 감정이 곧바로 임계점을 넘었다. 에너지가 임계점에 다다른 전자가 광자를 내뿜어 방향을 틀듯 나도 그렇게 이런 감옥 같은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그것이 이 지랄 맞은 현실에서 내가 동생으로부터, 아니면 동생이 나로부터, 동생과 내가 삶과 죽음으로부터 탈출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나는 가슴 속에서 주체 없이 솟아오르는 짜증과 울분을 그냥 뇌에만 담아둘 수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에너지가 소모돼 틀림없이 후회하고 말겠지만.



“없었어. 아무 일도 없었어. 그러니까 그만해.”



보통 사람이 기분장애의 양극단에 이르면 감정의 진폭이 최고조에 이르고, 우울증의 경우 부정적인 면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지금의 내가 그랬다.



“..형? 왜 그래? 낮에 무슨 일 있었어?”



신경질적인 내 반응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몇 초를 더 기다린 동생이 차분한 눈빛으로 나를 살핀다. 내 마음 속의 응어리를 보듬듯 동생의 눈빛이 나의 좌절과 고뇌를 풀어 내린다. 여느 때 같으면, 아니 어떤 경우에도 나는 그것에 저항할 수 없다. 동생의 마음과 희생을 아는 내가 그에게 화를 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한껏 뛰쳐나간 삶에 대한 짜증과 울분을 쉽게 거둬들일 마음이 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래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동생의 헌신이 거대한 태산이라면 불균형한 삶에 대한 나의 자제도 그에 못 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동생의 눈빛이 항우울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그만해. 그만하면 됐어. 그만, 제발 그만!”



다시 격한 감정을 배설한 말이 채 현실이 되기도 전에 이미 후회하고 있는 내가 몇 초 후에나 현실이 되는 나의 말에 대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동생은 또 다시 몇 초를 더 기다렸다. 자신의 반응은 어떤 내용의 말이라도 일단 그 말에 형의 의지가 온전히 말에 포함됐다고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분명히 하면서, 그 역시 처음 겪는 상황에 무척 당황했다는 것을 행동(나에게서 떨어져 일정 거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분명히 밝힌 다음에야 입을 열었다. 동생은 그렇게 해서라도 매 순간 나를 온전한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하려 전력을 다했고, 자신의 섣부른 감정적 대응이 나로 하여금 쓸모없는 에너지 소비를 부추긴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냉혹할 정도로 자신의 감정을 절제했다. 동생은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져도 나와 함께 있는 한 절대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에너지 불균형의 최대 피해자는 내가 아니라 동생일지도 모른다.



“형, 그냥 저자의 생각일 뿐이잖아? 수천 권의 책 중에 하나일 뿐이잖아? 우리시대의 문제를 알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잖아? 마지막 구절은 그냥 저자가 자신의 생각을..”

“그냥 뭐? 체념하지 말라고?”



동생의 말이 ‘그냥’에서 몇 마디 더 지난 뒤에야 뇌에서 떠올린 말이 시간차 현실이 되었다. 나와 동생이 대화를 나눌 때, 내가 중간에 동생의 말을 자르면 항상 이런 시간차 현상이 벌어진다. 하지만 동생은 모든 것을 주인의 삶에 맞추는 노예처럼 이런 혼선에 익숙하다. 그래서 이번에도 몇 초 더 기다린 후에야 답했다, 지랄 맞게도.



“응. 체념하지 마.”

“체념하지 말라고? 왜? 왜, 내가 체념하지 말아야 하는데?”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 생각과 현실 사이에 늘 시간차가 발생해 그 어떤 감정도 금세 시들어버리지만, 이번만은 좀처럼 격해진 감정이 다스려지지 않았다. 동생에게 이렇게까지 격한 감정을 드러낸 경우도 지금까지는 없었다. 정말 엿 같은 현실, 그보다 더 엿 같은 나, 더더욱 형이라는 감옥에 철저하게 갇혀 있는 동생! 과도한 에너지 소모에 따른 극도의 무력감에 빠지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끝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오늘 따라 안좋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늘어졌다. 그것은 극단의 슬픔이 가져다주는 미래의 쾌락에 빠져 들어가는 것처럼, 나는 내 자신의 고통과 그것이 불러온 부정적 환경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형은, 어떤 난해한 문제도 풀어내는 형은.”



동생은 여기서 잠시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느리게 눈을 한 번 깜박이더니 마지막 베팅을 하는 도박꾼처럼 분명하게 말했다.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가 된 형은, 그것이 천형의 멍에이던 운명의 장난이던 간에 그 증거를 세상에 남겨야 하니까.”

“내가 왜? 이 지랄 같은 불균형이 신의 축복이라도 된단 말이야? 니가 어떻게 그런 말을?”



나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동생의 말에 생전 처음으로 동생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이건 어느 배우의 말처럼, ‘배신! 배반!’이었다. 한 번 틀어진 감정은 좀처럼 제 자리로 돌아오지 않았고, 회색빛 우울증의 색조를 격한 감정에 실기에만 바빴다.



“그래, 형. 나니까 하는 거야. 형의 온 삶을 옆에서 함께 한 나니까 하는 말이야.”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이 순간만은 동생이 나보다 더 이성에서 멀어진 것 같았다. 절대 허물어질 것 같지 않았던 동생의 냉정함이 한낱 바람처럼 느껴졌다.



“너라서 하는 말이라고?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가장 잘 아는 너라서..”

“응, 나라서 하는 말이야. 형의 삶을, 그 지옥 같은 불균형의 삶을 옆에서 지켜본 나니까 하는 말이야. 나 아니면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말이니까. 형을 누구보다도 사랑하고 아끼고 아파하는 나니까 말이야!”



동생은 나와의 대화에서 지켜야 할 시간차 룰도 지키지 않았다. 내 말을 중간에 끊고 들어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마치 준비했던 것처럼 쏟아냈다. 동생이 아주 천천히 눈을 깜박였던 것이 오랫동안 준비했던 일을 저지르겠다는 자기 다짐의 신호였던 것이다. 그런 동생의 말과 행동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동생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그 행간의 의미를 알았기 때문이다. 짧았지만 억겁만큼 길게 느껴지는 시간이 흐른 후, 동생이 입을 열었다. 그의 눈에는 물기가 가득 차올랐고 음성에도 습기가 가득해 터질 듯한 아픔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나를 위해서라도 형이 이 땅에 살았다는 증거를 남겨야 해.”

“너를 위해서라도?”

“응, 나를 위해서라도.”



동생의 두 눈에 맺힌 눈물과 음성에 담긴 슬픔이 아니더라도 그의 마음이 절절하게 다가왔다. 문득 나는 동생이 단 한 번이라도 나한테 무언가를 부탁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이런 부탁을 하려고, 그는 그렇게도 오랫동안 저 홀로 가슴앓이를 한 것이었다. 나는 어리석게도 동생에게 내 고통과 아픔을 공감해달라고 하면서도 그것 때문에 동생이 겪어야 할 고통과 아픔에 대해서는 공감하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너 또한 타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게 뭔데?”



나는 갑자기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맹렬하게 솟아오르는 호기심과 기쁨을 억제하지 못했다. 그것은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소비해버리는 도파민과 엔도르핀의 대 방출을 의미했고, 종국에는 극심한 피로와 허탈감만 되돌려주는 빌어먹을 희망의 사촌이었지만 나는 추호도 망설이지 않고 물었다. 쿵쾅! 쿵쾅! 귓가로 이런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에 따른 심장박동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동생의 입에서 나올 말이 내 남은 생을 좌우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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