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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15장 - 최후의 안배, 그 하나



이곳은 소림의 입설정(立雪亭)으로부터 조사동(祖師洞)이 있는 방향으로 오백여 장 떨어진 송림! 그 속으로 들어가다 보면 소림 내에서도 장로급 이상만 그 위치를 알고 있는 전설의 각불동(覺佛洞)이 있다. 이곳은 백 년 전 성불이 폐관에 들며 특별히 만들어진 임시 동굴이고, 소림사 내에서는 금단의 영역이었다. 지난 백 년 동안 현 소림방장인 홍기옥불 소유진만이 이곳을 한 번 다녀갔을 뿐이다. 그곳에서 백 년 동안이나 쌓여왔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음성은 두 개였다.



“강아, 네가 이곳에 보내진 지 벌써 사년이다. 그 동안 네가 두 가지 무공의 기초를 다 익혔으니 이제 무명곡으로 떠날 시기가 됐다. 이제 준비를 하거라.”



성불이 인자로운 표정으로 한 청년의 등 뒤에서 가부좌를 튼 상태로 말했다. 그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스무 살 안팎의 청년이다. 헌데… 성불은 두 가지 무공이라고 말했고, 무명곡을 언급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저는…”



강이란 불리는 청년이 말을 했으나, 침중한 그의 말은 이어지지 못하고 성불에 의해 제지됐다.



“내가 네 사부가 아니라고 하지 않았더냐. 네가 익힌 무공은 내 무공이 아니다. 나는 그 무공 주인의 수하가 제시한대로 너를 도와줬을 뿐이다. 나 또한 그 무공의 원리를 이제야 조금 알 듯 한데 어찌 내가 너의 스승이 될 수 있겠느냐. 더 이상 이를 거론치 말고 운기에 정신을 집중해라.”



성불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한 사실관계를 명확히 했다. 그가 강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그의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제자이며, 그 다른 사람은 성불조차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절대 무공의 소유자였다. 사부와 제자의 관계가 엄격한 소림 출신의 성불이 아니어도 금강을 자신의 제자로 묶어두기에는 그의 그릇과 앞으로 해야 할 일의 크기가 너무 크고 넓어, 내정할 정도로 사실 관계를 명확히 했다.



“알겠습니다.”

‘사부님…’



그의 말에 소천불 금강이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몸을 한 자 가량 공중으로 띄웠다. 그가 그렇게 허공 중에 자리를 잡자 성불의 몸도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그만큼 떠올랐다. 그리고 그는 양손을 금강의 후단전에 댔다. 그것은 공력을 넘겨주는 쪽의 일방적인 희생이 따르는 내공전수였다. 성불은 해탈에 들기 전에 자신의 백이십 년 공력을 유일한 제자인 금강에게 주입시켰다. 그 역시 무림의 안전을 위해 자신을 희생함으로써 무림 삼성이라는 위치를 넘어 정파 무인으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려는 것이었다.



검신과 도천이 자신들의 공력 일부를 현성에 주입시킨 것처럼 그 역시 소천불 금강에게 자신의 내력을 주입시켰다. 다만 그는 내력 전체를 금강에게 주입시켰다. 성불은 자신의 모든 것을 제자에게 넘겨줌으로써 앞으로 일어날 일에서 최대한의 안전을 도모하려는 목적이었고, 그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제자 사랑이었다. 금강은 후단전에서 엄정하면서도 따뜻한 부처의 법어 같은 불력(佛力)이 밀려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은 불타의 깨달음이 바다와 같음을 깨닫게 해주는 그런 따뜻하고 헤아릴 수없는 거대한 량의 불력이었다. 금강은 비로소 자신의 스승이 이룬 경지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성불은 그렇게 해탈을 했다. 그는 금강에게 자신의 불력의 마지막 한 올까지 다 전해주는 것으로 이승에서의 삶을 마감하고 기쁜 마음과 두려움을 지닌 채 입적에 들었다. 이렇게 무림 삼성의 일원인 소림 역사상의 최고 기재로 꼽히는 성불이 억겁의 윤회에서 벗어났다.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려 해탈의 경지에 들었는지 가부좌를 튼 그의 얼굴에는 해탈한 고승의 인자한 미소가 머물고 있었다,



백년 이래 최고 무인이며, 무림 삼성의 일원인 성불이 생을 마감하고, 그를 능가할 가능성이 높아진 새로운 신성이 태어났다. 이 모든 것은 속혼을 통해 류심환이 진행시킨 무영과 그의 동반자들을 위한 또 하나의 안배였다. 그 시작은 류심환이었고, 그 끝은 무영에 의해 완성될 무림의 새로운 신화의 시작이었다.

금강이 눈을 떴다. 그의 앞에 삶의 영원한 동반자였던 성불을 떠나보낸 검신과 도천이 서있었다.







‘무영의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아. 류심환에 뒤지지 않을 정도야. 절대 불가능한 일인데 일어났어. 허면 나는..’

“원인을 찾아야 해. 어디서부터 잘못이 있었는지 찾아야 해. 아니면.. 아예 씨를 말리면 돼. 하지만 씨를 말리는 것은 재미없어. 일환!”



하나의 떠 있는 눈 제천이 일환을 호출했다.



“부르셨습니까. 제천님!”



소리와 함께 익숙한 그 오체 복지, 변하지 않는 모습이 재현됐다.



“하늘의 힘 십이력 중 칠력과 팔력이 일소빙혈사 설지연을 맡고, 구력이 빙혈천마의 후인을 맡아 그들이 일으키고 있는 혈사를 지켜본 뒤 어느 정도 진행됐다 싶으면 그들을 제거하라고 전하라. 출신 문파는 밝히지 않는 것, 다시 한 번 주지시키고.”

“존명! 소신 일환 제천님의 명을 받아 이를 시행함에 추호의 빈틈도 없게 하겠습니다. 제천님!”

“나머지 하늘의 힘에겐 가정 둘을 시행한다. 전하라. 종!”

“존명! 제천님!”



제천의 명령이 끝났으니, 일환은 당연히 그 말의 끝남과 동시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순식간에 사라진 자리에 아직 그가 일으킨 티끌만한 바람이 돌고 있는데 그 위로 제천의 마지막 말이 스쳤다.



“내일 류심환을 만나야겠어.”

‘크크. 내가 아닌 무천으로.’



물론 그의 생각은 스치지 않았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이제 됐어. 마지막까지 다 끝냈어. 후우! 일이 잘 돼 이것까지 쓰지 않기를 바랄 뿐이야. 일단, 무영을 믿자. 결정은 그때 해도 늦지 않으니까. 자! 다들 힘내라고. 내가 모든 순간마다 함께 하고 간절히 기원할 테니, 다들 힘내서 꼭 살아서 다시 보자고. 그럼, 나는 내 일을 볼까.’

“이봐. 눈만 떠 있는 놈. 약속한 일주일이다. 저번에 하지 못한 얘기, 오늘을 끝내자고.”



류심환이 비궁이 무너진 뒤에 들어난 제천문을 향해 소리쳤다. 그는 삼장 높이의 담과 전각 몇 개가 다인 제천문 앞에서 일주일을 내내 그런 상태로 있었다. 어쩌면 그는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떠있는 것이 누워있는 것보다 편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류심환은 존재하는 자체가 자연과 하나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야! 눈만 떠 있는 놈. 빨리 와. 일주일 다 됐어!”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무영은 한 가지 생각에 골똘히 빠져 있다. 귀곡의 일을 정리하고 나온 이후부터 그는 계속 이런 상태였다. 그는 무엇인가 숙고에 숙고를 거듭하고 있었다. 생각을 하는 중에 가끔 머리를 짧게 흔들거나 한 숨을 쉬는 것을 보면 그것이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었고, 그럴 때마다 삼혼과 삼영은 불안하기만 했다.



이제 무영은 거칠 것 없는 경지에 이르렀고 자신들도 예전의 자신이 아니거늘 무엇이든 다 쓸어버릴 수 있는 상황에서 무영이 장고에 들어간 것이다. 삼혼 중 특히 도혼은 불안도 했지만 무영의 장고가 계속되자 마침내 그의 궁금증이 참을 수 없을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물론 그가 참아낸 시간이 하루도 아닌 고작해야 반나절에 불과했지만.



‘끙! 더 이상 못 참아. 이러다 내가 죽지. 에라 모르겠다.’

“무영아. 대체 뭔 생각이냐? 내용이 뭐길래 이리도 기냐? 말 좀 해줘라.”

“…”

“쩝. 무영아. 정말 답답해 죽겠다. 대체 뭔데? 또 호랑이냐?”

“…?”



무영의 눈이 처음으로 떠졌다, 의문으로.



“…!”



그러다 갑자기 그의 눈에서 한줄기 빛이 순식간에 스쳐갔다.



‘그래! 호랑이다. 호랑이야. 맞아. 호랑이 눈이야.’

“맞아요. 도혼 할아버지. 호랑이 눈이에요. 항상 눈 다음에는 호랑이가 있죠. 그래서 호랑이의 눈이 무서운 거죠. 맞아요. 도혼 할아버지. 사람이나 동물이나 다 호랑이 눈은 뒤에 호랑이가 있는 것을 알기에 무서운 거예요.”



그때, 도혼이 아무 생각 없이 한 말에 무영이 처음 해보는 장고를 끝낼 단서를 찾은 바로 그 순간에 불혼은.



‘야. 도혼! 너 또. 이번에는 정말 죽어봐라.’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며 이번에는 기필코 도혼을 개 패듯 손보기 위해 주먹을 치켜들었고, 게다가 힘까지 잔뜩 넣었다.



‘헛! 이건 또 뭐야? 호랑이 눈이라니? 도혼의 말이 맞다니… 이거 원, 손을 어디다 두지?’



힘을 잔뜩 주기까지 했던 주먹을 펴며 마치 먼 산 가리키듯 시선과 함께 돌리며 슬그머니 앞을 가리키며 말했다.



“하긴 이곳에는 호랑이가 많을 거야. 암!”



허나 도둑이 제 발 저린 불혼이 뭔 짓을 하던 도혼의 생각은 달랐다.



“뭔 소리여, 그게? 호랑이 눈이라니!”



그는 무영의 말이 뭐가 뭔지 도통 모를 일이었다. 뭔가 자신이 한 말이 적절했던 것 같은데, 그것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으니 궁금해서 미칠 지경이었다.



“그 호랑이가 눈에 문제 있어? 왜 그러는 건데? 호랑이 눈이 도대체 뭔데?”

“…! 아…! 답답하셨구나. 미안해요. 제가 생각할 것이 있어서.”

“미안하다니, 무슨 소릴. 중요한 것 같던데 얼마든지 더 해도 괜찮아, 우리는.”



불혼이 적절한 순간에 끼어들 수 있었고, 도혼의 헛소리를 더 듣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도혼이 그의 생각대로 할 리가 없었지만.



“야. 불혼! 이번에는 네가 빠져. 대체 호랑이 눈이 뭐야? 얘기해 봐. 어서.”

“야! 도혼. 너 정말. 흠.”



그의 말에 속이 뜨끔한 불혼이 말을 다 끌지 못했고 그나마 끝을 흐리기까지 했다. 한결같은 그들의 말다툼이 계속되는 동안 무영이 입을 열었다. 



“하하. 두 분 싸우시지 마세요. 제가 말씀 드릴게요. 하하. 호랑이 눈은 다름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