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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제2부 14장 ㅡ 귀곡의 멸문2



천도령과 천불령도 같은 방식으로 자신들에게 달려든 각각 여섯 명의 탈혼객들을 상대했다. 천도령은 먼저 왼손을 앞으로 뻗어 천상도력마절장을 격발했고 이어서 손목만 우측으로 틀어 다시 장풍을 발사했다. 동시에 오른손도 왼손 밑으로 교차하며 좌측을 향해 장풍을 폭사했고 다시 손목을 안으로 꺾어 뒤쪽을 향해 장풍을 뿌렸다. 이어 몸을 뒤로 젖히며 오른발로 두 번의 각경을 만들었다.



헌데, 그 역시 처음에 격발된 장풍이 정면으로 날아든 오와 칠 탈혼객 중 칠의 머리를 박살냈으나 그때 느껴진 반탄력에 의해 오 탈혼객의 머리는 반쪽만 박살낼 수 있었다. 오 탈혼객 머리의 반을 박살냈지만 장풍에 대한 반탄력은 더욱 커졌고 손목만 비튼 상태로 발사한 두 번의 장풍은 결국 십이와 십사 탈혼객의 머리가 아닌 턱에서 작렬했다.



물론 그것으로도 둘 다 반쯤은 죽었지만 그가 세 번째로 우측을 향해 폭사한 장풍은 십일 탈혼객의 왼쪽 어깨부위만 뭉개버렸고 뒤로 튕긴 마지막 장풍은 십이 탈혼객의 우측 어깨만 가격하는 것에서 그쳤다. 자연히 아무 타격도 받지 않은 십사 탈혼객이 왜 자신에게 이런 행운이 왔는지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입술 선이 귀를 향해 양 옆으로 최대한 벌어졌다.



어쨌든 자신은 살았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검이 이 무지막지한 놈의 어깨를 관통하는 것이 아닌가. 십사 탈혼객은 동료들의 죽음보다 적을 처단했음이 기뻤을 뿐이다.



‘땡 잡았어.’



그의 기쁨이 너무 커서 동문수학한 형제들이 죽어가는 도중에 그만 웃음까지 터뜨리고 말았다.



“크크크! 죽어라, 이 괴물 같은 놈.”



그는 상상하기도 힘든 괴물을 잡았다는 생각에 다시 검을 휘두르려 했다. 헌데.



‘응? 분위기 왜 이래.’



그랬다, 그의 입이 찢어졌지만 모든 초식은 아주 미세한 차이가 눈덩이처럼 커져 종국에는 뜻했던 위력의 반에 반에도 미치지 못했던 것처럼, 천도령의 절초가 마지막에 드러낸 결과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 대가는 자명했다.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하나의 검이 자신의 몸을 관통했고, 극렬한 통증과 함께 피가 튀었으며, 살점과 옷 일부분도 찢어졌다. 그나마 천도령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도로 머리를 옆으로 틀었기 때문에 머리가 관통되지 않고 그 선에서 끝낼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공격에 죽거나 치명상을 입은 탈혼객들이 터뜨린 비명 속에서 검이 관통하며 전해진 충격에 일장을 뒤로 밀려났고, 그 사이에 한 번 더 장풍을 뻗어 십사 탈혼객을 쳐내 검이 더 이상의 진행을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그는 그 정도에서 간신히 절명의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어떤 놈이냐. 첫 장풍에 반탄력을 높인 놈이.”



천불령 또한 천도령과 다르지 않았다. 아니 너무나 똑같았다. 그 역시 네 번의 불장과 두 번의 각경을 펼쳤으나 첫 불장부터 전해오는 반탄력에 사 탈혼객을 절명시킨 순간부터 자신의 불장이 조금씩 그 흐름이 밀려 구 탈혼객은 치명상, 십탈혼객은 중상을 입히는 선에서 그쳤다.



나머지 십오와 십칠 탈혼객에 이르러서는 그보다 더 결과가 나빴다. 둘 중 십칠 탈혼객은 경한 중상, 십오 탈혼객에겐 상처도 주지 못했다. 당연히 그의 목과 어깨가 연결되는 부위에 십오 탈혼객의 검이 관통됐다.



“컥!”



짧은 비명과 함께 그도 불장을 한 번 더 발사해 십오 탈혼객을 쳐낸 후 그 역시 비슷한 높이의 한 곳을 향해 소리쳤다.



“정체를 밝혀라.”



천불령의 음성도 천도령처럼 죽은 자의 음성과 다를 것이 없었다. 허나, 그 음성의 허무함과는 달리 그들은 이 모든 것을 단 한 번에 펼친 절대 강자가 나타나리라 예상되는 지점에 시선을 고정했다.







십팔탈혼객의 합공 결과에 따라 다음 단계의 초식을 정해야 했던 살신 무명인과 살아남은 열두 명의 탈혼객은 그들이 느낀 공포와 두려움, 분노와 좌절의 감정은 차라리 공황상태에 가까웠다. 천상천 무리들의 무공이야 천년을 전설로 이어온 것만큼 그 막강함을 비로소 분명히 알 수 있었으나 그렇다 해도 그들의 공격을 동시에 틀 수 있는 자가 천하에 존재하리라는 것은 아예 그들의 상상이 이를 수 있는 영역마저 넘었다.



‘허!’

‘어!’



그들이 만들 수 있는 반응은 이 정도였고, 웃음까지 터뜨린 십사 탈혼객은 시간이 흐를수록 똥줄이 탔다.



“어느 은공이신지요. 귀곡의 멸문을 막아주신 대협이?”



십사 탈혼객과 함께 무명인도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자가 누구인지 미치도록 궁금했다. 전설의 천상천주라면 모를까, 이 정도의 능력을 지닌 고수가 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검무영이라 한다.”



너무나 맑아 천상에서 내려온 음성의 주인공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무인 중 유일무이한 경지에 오른 무영이었다. 고금제일의 수준이 어떤 것인지 종남파에서 맛 베기로 보여줬던 무영이 귀곡에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그의 이름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머지않아 무림사의 첫 장을 기록할 무영이 이미 오래 전부터 그곳에 있었던 사람처럼 표홀히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가족과 수하의 검에 처참하게 생을 마친 천상천주 검강천의 비겁했던 아들이며.”



번쩍!



그의 오른손에서 하나의 빛이 일었고, 그것은 지독하게 투명했다. 천불령은 그 투명함이 빛의 근원이었는지 아니면 빛의 결과였는지 헷갈렸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그의 생각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퍽! 하는 소리와 슥!하는 소리가 거의 동시에 들렸고, 그것은 투명함이 지나간 곳에서 나왔으며 천불령이 이를 알았을 때는 그의 오른 팔이 몸에서 분리되는 격렬한 통증과 함께 알 수 있었다. 



'너무 빨라.'

“크악!”



천불령의 비명은 툭! 하는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진 것이 확실히 자신의 팔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때 터져 나왔다. 신경이 전해주는 속도와 눈이 보는 속도의 차이는 별로 크지 않았다. 통증을 인식하는 것과 외팔이가 되었다는 생각도 별로 차이가 나지 않았다. 빛의 속도를 인간의 검이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은 무인으로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끝을 알고 싶은 욕망은 죽음보다 강한 치명적인 호기심이었다. 



다만 천불령은 더 이상 생각을 이어갈 수 없었다. 검무영이라는 자가 또 다시 말을 했기 때문이다. 헌데 그 이름이..



'검무영이라고??'



“짐승보다 못한 검강인에 의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하게 돌아가신 내 어머니 유선화의 무력했던 아들이며.”



번쩍!



이번에도 상대의 검에서 하나의 빛이 일었고, 그것은 투명함에 속에 앞의 것보다 약간 붉은 기운이 들어 있었다. 천도령도 눈으로 본 것은 빛과 붉은 투명함 중 어느 것이 근원이고 어느 것이 결과인지 몰랐지만, 천불령의 경험을 기준으로 하면, 퍽! 하는 소리는 투명함이 자신의 어깨와 목이 만나는 지점에 도착한 소리였고, 스윽! 하며 일어난 소리는 그 결과라는 것을 경험으로는 알았다.



그것은 두 마찰음과 함께 천도령의 어깨부위와 목이 만나는 지점에 빛이라고 여겼던 무영의 검이 관통됐고 이어 그의 검이 사선으로 내려가며 천도령의 어깨부위를 통째로 잘라낸 것을 의미했다. 그 잘린 단면에선 피가 엄청난 압력을 이기지 못해 사방으로 잘게 튀어 분홍빛 물감처럼 퍼졌고,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비명이 터졌다.



“크아악!”



자신의 몸에서 떨어지려는 어깨부위를 잡으려 천도령은 급히 왼손을 오른쪽 어깨로 보냈으나 이미 늦어 그는 속절없이 비명만 더 질렀다.



“아아악! 내 팔!”

“소천주..?”



검무청이 그제야 절대 무인이 전 천주 검강천의 외아들 무영임을 알았다.



“나에게 제 이(二)의 삶을 주신 류심환의 부족하고 무심했던 제자이며 아들이다.”



번쩍!



그의 양 손에서 두 개의 빛이 일었고 그 빛은 적홍색 투명함을 보였다. 마침내 무영에 의해 그 모습을 드러낸 천상지무의 제 일초 천상태극뇌전류(天上太極雷電流)가 급히 몸을 날려 도망가는 검무청의 오른쪽 무릎과 회음혈을 파고들었다.



잘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검무청의 다리에서 무릎 아래가 잘려 밑으로 떨어졌고 회음혈을 강타한 검기에 그는 순간적으로 몸이 마비되며 먼저 떨어진 다리 위로 추락했다.



쿵!

“크악!”



그가 참을 수 없는 통증과 치욕, 두려움을 섞은 비명을 질렀고 그나마 천상천 외궁주답게 무영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무영 이놈! 감히 네놈이, 나를… 헛!”



그는 다시 헛바람을 켜며 두 눈을 부릅떠야 했다. 그 눈동자는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어찌 이것이 인간이 펼친 무공인가? 전 천주 검강천도 이 정도의 수준에 이르지 못했어. 검에서 동시에 나온 검기가 무릎과 회음혈에서 서로 다르게 느껴졌어. 동시에 만든 초식이 서로 다를 수 있다니? 헌데.. 이 초식은? 이름이 검무영이라고??’



“이제 내가 천상천을 벌하려 하니, 그 처음이 바로 너다. 내 부모가 당한 고통의 한 조각만큼만 너를 통해 보상받겠다. 네 목숨은 그 정도 가치밖에 되지 않아서.”



무영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가 검강천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은 검무청의 시선에.



번쩍!



다시 빛이 일어 완벽하게 투명한 검기가 발사됐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자신의 목젖 부위에서 아주 미세한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을 하나의 감각이 통증이라는 것을 인식했을 때 검무청은 그 빛이 자신이 그렇게 익히고 싶었던 천상지무의 제 이초 천상제마탈혼검(天上制魔奪魂劍)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검강천의 아들인 검무영이 이를 펼쳤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헷갈렸다,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도.



싹뚝!



그가 이승에서 남긴 마지막 소리. 그는 자신이 그토록 갖기를 원했던 초식에 의해 생을 마쳤다. 그의 잘린 목에서 처음에는 피가 맹렬한 속도로 분수처럼 솟아오르더니 곧이어 물컹물컹 새나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흘러나온 피는 엉거주춤 앉은 자세로 있던 그 주변의 흙을 흥건히 적셨다.



‘이 초식은.. 천상지무 일초와 이초! 간단하게 죽였네, 나를. 결국.. 나 벌.. 받은 것이네. 헐헐..’



그의 부릅뜬 눈이 말하려 했던 것은 이것이었으나, 그것은 그만의 생각으로 그쳤다. 그리고 목이 잘려나간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 이어졌다.



퍽!



검무청의 몸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의 몸통과 부딪친 피가 주변으로 조금 튀었다. 그의 눈동자에서 시작된 생각이 피에 튕기며 허공으로 떠올랐다.



“그렇다고 이것이 귀곡을 구해주기 위함도 아니다. 다만, 은원이 없을 뿐이니 경거망동하지 마라.”



무영이 모든 것을 마친 후 자신을 이상한 눈빛으로 보고 있는 무명인을 향해 말했다. 무영의 말에 무명인의 생각은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 생각은 이랬다.



‘재수 없게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는데 코가 부러진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천하제일미녀가 다 벗고 누워 있는 것이 아닌가.’



그의 주책없기가 이것만으로도 충분해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못할 만했다. 무명인, 그나마 이름 없기가 얼마나 다행인가? 특히 검무영이라는 새파란 젊은이와 원수를 진 적이 없다는 것은 더더욱 다행이 아닌가?


ㅡㅡㅡㅡㅡ


천도령과 천불령은 자신들의 온몸을 관통하는 전율을 느꼈다. 비록 그들은 천상대력무상대법과 흡혈차능대법에 의해 금제돼 검강인의 꼭두각시가 됐지만 무영에게서 검강천의 이름이 나오고 그가 펼친 무공이 천상지무임을 본능적으로 느끼면서 머리에 터질 듯한 압력을 느꼈다. 그 고통이란 오른 팔이 잘려나가고 어깨부위가 통째로 잘려진 것보다 더 심했다.



“으아아악! 머리가, 머리가! 크아아악!”



천도령이 머리를 산산조각낼 만큼 날뛰는 이상한 기운에 자신의 머리를 붙잡고 비명을 질러댔다.



“검강천! 크아악! 검무영! 으아악! 나는. 나는.. 제마령이야. 아니야, 아니야. 내가 죽이지 않았어. 크아아악!!! 내 머리가, 내 머리 속이!”



천불령은 두 사람의 이름을 정신없이 외치다 자신의 머리를 부서 버리기라도 할 듯 주먹으로 퍽퍽 치는 것이 아예 미친 사람과 다르지 않았다.



“이미 심혼까지 제압당했어. 되돌릴 방법이 없겠어. 어쩔 수 없지. 검강인, 그 놈을 탓할 일이지 너희를 타할 일은 아니겠지.”



무영은 그들이 심혼까지 금제 당한 상태가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서 되돌릴 방법이 없음을 확인한 후 마음을 굳혔다. 



“죽어 저승에 가거든, 내 아버지 검강천 천주에게 용서를 구하라.”



침중한 음성으로 말을 마친 무영이 오른손을 두 번 흔들었다. 꼭 필요한 만큼의 강도를 지닌 지풍이 발사돼 천도령과 천불령의 미간을 관통했다. 그들은 그것으로 절명했다. 그들의 입에선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뒤로 젖혀진 머리가 앞으로 되돌아온 후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해 앞으로 쓰러지는 그들의 표정에 언뜻 미소가 어리는 것 같았다.



‘다시 태어나면 너희들이 원하는 삶을 살아라.’



무영은 스칠 듯 지나간 그의 흐린 미소를 허전한 마음으로 보며, 천천히 돌아섰다.



“삼영. 나머지 천상천 잔당들을 처리해줘. 부탁할게.”



상황 종료를 알리는 무영의 말이 흘러나왔다. 무영은 어차피 죽여야 할 자들이라면 손속에 차이를 두지 않았다. 무영은 무인의 목숨을 거두는 일이라면 최선의 절초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최고의 절초로 그들의 목숨을 취한 것이었다.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복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