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무림을 정과 사로 나눌 때 사파의 경우 그 세력의 크기에 따라 순서를 정했다. 물론 세력의 전체적인 힘이 순서대로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지난 백년 간 일어난 일들과 각종 대결과 비무의 결과, 문도수와 그 중 절정에 오른 고수들의 상대적 숫자와 절대적 숫자간의 조화 등 모든 것들을 종합해 분석한 뒤 이를 십년 간 더 지켜본 후 결정됐기 때문에 대체로 그 순위가 맞았다.



허나, 위로부터 세 개 세력은 그 힘과 저력, 역사의 우위를 쉽게 논하기 힘들어 통칭 사파정립세(邪派鼎立勢)라 칭하여 세 세력 간의 균형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지 않았음을 대변했다. 무림인들은 이런 정립상태의 세력 균형을 일성일전일곡(一城一殿一谷)의 정립이라고 말했다. 이중에서 일성은 천마성을, 일전은 복마전을, 일곡은 귀곡(鬼谷)을 말한다.



이 세 개의 거대 사파가 나름의 균형을 이룬 것은 백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림을 혈겁 속으로 몰아넣은 6대마인과 사파의 악행이 구대문파를 비롯한 정파의 근거까지 흔들 정도에 이르자, 무림삼성을 앞세운 정파가 무림맹을 결성해서 6대마인과 사파연합의 혈겁을 종식시킨 ‘소림대첩’의 결과였다.



정파와 사파가 건곤일척의 대격돌을 한 소림대첩에서 무림삼성이 6대마인을 제압하고, 구대문파를 중심으로 한 무림맹이 사파연합을 분쇄함에 따라, 살아남은 사파의 지도자들이 무림맹과의 협상을 통해 각각의 근거지로 물러나, 주위 500리 밖까지 세를 넓히지 않는 조건으로 멸문지화는 피할 수 있었다. 사실상 사파의 종말과 다름없는 굴욕적인 결과였지만, 6대마인을 배출한 세 개의 거대 사파로서는 재기의 시간을 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해야 했다.



헌데 소림대첩의 주역이었던 무림삼성이 갑작스럽게 폐관에 들거나 칩거하면서 사파는 조직을 재건하고 고수의 수를 늘리면서 정파와 어느 정도의 대립각을 유지할 수 있었다. 소림대첩에서 승리한 무림맹도 무림삼성의 폐관과 칩거에 뒤를 이어 최소한의 인원만 남겨놓은 채 사실상 해체됨에 따라 일성일전일곡(一城一殿一谷)이 부상할 수 있었고, 몇 년 전부터는 정파를 압도할 만큼 성장해 정파와의 협상을 무시한 채 무림 전역으로 세를 넓힐 수 있었다.



헌데 그 일성일전일곡(一城一殿一谷) 중에서 이미 두 곳이 천상천과 역천마곡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했으니 현 무림의 사파제일세는 자객들의 집단 귀곡의 차지가 됐다. 귀곡은 천마성과 복마전의 멸문으로 앓던 이가 빠진 기분이었으나, 천년의 전실인 천상천이 일인전승의 율법을 파기한 것으로 알려짐에 따라 일체의 활동을 중단한 채 극단적인 방어에 돌입했다.



한편 복마전과 귀곡과 함께 사파를 대표했던 천마성이 역천마곡의 후예들에 의해 멸문지화를 당한 것이 알려지자, 정파는 물론 무림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무림삼성이 폐관과 칩거에 든 이후 무림맹인 제마단도 유명무실해진 상태에서 천년 전설의 한 축인 역천마곡의 후예들과 맞선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정파의 수뇌부들은 천년 전설의 주인공인 천상천주의 예언처럼 복마전을 멸문시킨 천상천의 등장으로 한시름을 놓을 수 있게 됐다. 천상천이 복마전을 멸문시킨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천상천이 역천마곡의 등장과 함께 일인계승의 율법까지 파기한 것에 안도할 수 있었다. 때맞춰 소림대첩 이후 칩거에 들어갔던 검신과 도천도 돌아왔다.



이에 제마단 단주와 대주들이 검신과 도천 및 구파일방 수뇌부와 의논하여 천상천을 중심으로 뭉쳐 역천마곡의 부활에 대비하기로 했다. 이들은 소림대첩 이후 두 번째로 무림맹을 결성하면서, 천상천주 검강인을 태상맹주로 추대했다. 현존하는 최고의 무인들인 검신과 도천도 검강인을 태상맹주로 추대하는데 반대하지 않았다.



역천을 통해 일인계승을 파기한 검강인은 무림통일이 목표였기 때문에 무림맹 태상맹주의 자리를 거부할 이유가 없었다. 태상맹주라는 자리는 검강인이 원했던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기에 2차 무림맹의 결성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검강인은 태상맹주에 오르기 전에 즉위식을 위한 사전축하행사 의미로 귀곡을 멸문시켜 자신의 이름을 무림 전체에 각인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검강인은 귀곡을 멸문시키기 위해 외궁주 검무청과 열두 명의 살천령, 두 명의 제마령과 제마추살대의 대주 일도단마 사공일과 그 수하의 삼십 명의 정예고수를 보냈다. 천상천의 정예 중 2할에 해당하는 고수들이 검강인의 태상맹주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귀곡의 멸문에 투입된 것이다.



그리고 검강인의 명령에 따라 귀곡에 도착한 이들은 압도적인 무공을 바탕으로 일방적인 살육을 자행했다. 멸문의 과정은 천마 위진천의 무공이 워낙 강해 검강인이 직접 나선 것을 제외하면, 복마전의 멸문과정과 별로 다르지 않았다. 특히 외궁주 검무청과 함께, 천상천의 미래로 키워진 두 명의 제마령의 활약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그들은 삼(三) 제마령 천도령(天道靈)과 사(四) 제마령 천불령(天佛靈)으로 도문의 선공과 불문의 불공을 집대성한 고수로 현 소림방장과 무당장문을 능가할 고수였다.



그들이 펼치는 천상천과 선공 및 불공의 초식에 강호 제일의 자객들은 추풍낙엽처럼 쓰러져갔다. 그들의 살해방식은 종남파와 아미파에서처럼 한 번의 공격에 한 명씩 죽이는 일격일살은 비슷했으나, 상대가 동귀어진도 마다하지 않는 귀곡의 자객들이어서 가끔은 한 번에 두, 세 명을 처치하기도 했다.



그렇게 그들이 귀곡이 자랑하는 1차와 2차 저지선인 미혼계과 망혼계를 간단하게 넘어서자, 귀곡 곡주인 살신(殺神) 무명인(無名人)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그의 뒤로 귀곡의 자랑인 십팔탈혼객(十八奪魂客)이 병풍을 치듯 좌우로 포진하며 검무청과 두 명의 제마령을 둘러쌌다.







“천상천이 전설에서 나와 직접 무림의 일에 관여한다는 것은 들었지만 그 방법이 졸렬하기 그지없구나. 늦은 밤에 암습을 하지 않나, 살인에 굶주린 자들처럼 살수를 펼치지 않나, 천년 전설의 실체가 이것이었다만 말이냐?”



살신 무명인이 천상천 고수들에 의해 속절없이 죽어가는 곡인들을 지켜보면서 극도의 분노를 곱씹으며 말했다. 그는 일방적 도륙을 즐기는 그들의 행위와 그 방법의 잔혹함에 두려움이 일었으나, 더 이상 자신이 직접 키운 곡인들의 죽음을 모른 척할 수 없었다.



“돈만 주면 어린아이나 노인마저 살해하는 놈들은 인간이 아니므로, 이런 정도도 과분하지. 무명인, 안 그래? 크하하하! 크하하하하!”



검강인의 사촌이자 외궁의 궁주인 검무청이 무명인의 말을 일언지하에 짓밟으며 광소를 터뜨렸다.



“으드득! 전설의 탈을 쓴 개차반 같은 놈. 천상천이라고 해서 절대는 아닐 터, 너희가 전설에 숨어있을 때 귀곡은 살아서 움직였고, 그만큼 일취월장한 귀곡도 이제 전설이라고 해서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제부터 귀곡의 무서움을 톡톡히 보여주마.”



무명인은 극도의 분노를 억누르며 말했다. 자객 집단의 두목답게 그의 음성과 표정에는 어떤 감정의 표시와 굴곡도 드러나지 않았다.



“그럴까? 우리라고 천년 동안 가만히 있었을 것 같으냐? 한 번 전설은 영원한 전설.. 엇. 호오!”



검무청이 말을 하다 급히 멈췄다. 그를 둘러싼 십팔탈혼객 중 그의 뒤에 포진해 있던 두 명이 움직이는 것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싶겠지. 허나, 이곳에선 우리가 전설이야.”



유령이 말한 것이 아닌 가하는 착각이 들 정도로 음산하기 이를 데 없는 음성이 등 뒤에 서있던 십육, 십팔 탈혼객에서 흘러나왔다. 동시에 무명인 왼편에 있던 일과 삼 탈혼객도 검무청을 향해 몸을 날렸다. 검무청의 좌측에 있던 십삼 탈혼객과 우측에 있던 육 탈혼객도 몸을 날렸다.



“천년 전설을 오늘로 끝내주마.”



천불령 뒤에 서있던 십오, 십칠 탈혼객과 그의 좌우에 있던 구 탈혼객과 십 탈혼객이 유령 같은 음성과 함께 날아올랐고, 동시에 무명인의 바로 왼편에 서있던 이와 사 탈혼객도 몸을 움직였다. 마지막으로 오와 칠 탈혼객이 천도령의 정면에서 몸을 날려 팔과 다리를 노렸고, 그의 양편에서 서있던 십일과 팔 탈혼객이 천도령의 양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뒤를 이어 십이와 십사 탈혼객이 천도령의 머리와 배를 향해 파고들었다.



달빛과 별빛에 몸을 숨긴 십팔탈혼객 모두가 빛살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검무청과 천도령, 천도룡의 사방위(四方位)를 파고들었다. 그들의 합공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은밀하고 빠르기까지 해서 합공의 결과에 따라 무명인이 최후 절초를 펼치면 전설의 천상천주라 해도 피할 수 없을 것 같았다.



“호, 제법이지만 그래도 달라질 건 없어.”



검무청이 맨 처음에 그의 뒤와 좌측에서 파고든 두 명의 탈혼객을 향해 급히 머리를 숙이며 그 위로 오른팔을 휘돌려 뒤편으로 검을 두 번 튕겼다. 그의 검에서 두 가닥 검기가 격발됐다. 동시에 그는 몸을 오른 쪽으로 누이며 팔을 좌측으로 돌려 검을 앞으로 뻗으며 살짝 비틀었다. 그 간단한 동작에 의해 두 가닥 검기가 또다시 격발됐다.



“그냥 저승으로 가면 돼.”



검무청은 연이은 말과 함께, 왼손을 오른손 밑으로 교차하면서 우측에서 파고든 세 번째 탈혼객을 향해 천상제마장을 발사했다. 마지막으로 오른발로 몸의 중심을 잡아야 했기 때문에 자연히 위로 올릴 수밖에 없는 왼 다리에 진기를 실어 연속적으로 두 번 찼다.



그의 의도대로라면 처음에 뒤로부터 비명이 들려 천상비류검의 쾌류(快流)가 상대의 목을 연거푸 잘라야 했으나 두 번째가 그의 생각보다 눈앞을 스친 달빛만큼 느렸다.



‘어? 잘랐는데… 이 묵직함은?’



슥! 이것이 첫 번째 목에서 난 소리였고, 스윽! 이것이 두 번째 목에서 난 조금 늘어진 소리였다. 그것으로 해서 좌측으로 뻗은 검은 육 탈혼객의 심장을 관통해야 했으나, 바로 옆의 명문을 파고들었다. 그것으로 상대를 절명시킬 수 있었으나 그 순간부터 그가 의도한 흐름이 확실히 틀어졌다.



퍽!

“크악!”



검무청이 듣기에 그것은 분명 절명의 소리였다. 그것을 확인함과 동시에 육 탈혼객의 명문에서 검을 뽑는데 시간이 이번에는 눈앞으로 새가 지나갈 만큼 조금 더 걸렸고 무게 중심을 잡은 오른발도 약간 더 굽혀져 우측으로 날린 천상제마장이 십삼 탈혼객의 태양혈이 아닌 어깨부위를 뭉게버렸다.



펑!

“크아악!”



이번의 비명은 치명상을 입었지만, 죽음에 이르지 않을 때 많이 나오는 비명 같았다. 그는 처음으로 한 수에 한 놈을 죽이지 못했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연각을 펼쳤던 왼발의 각경 중 하나는 일과 삼 탈혼객 중 왼편에서 날아든 삼 탈혼객의 옆구리에 박혔으나, 나머지 각경은 끝내 일 탈혼객을 차내지 못했다.



퍽!

“크윽!”



이번의 타격음은 생각보다 작았고, 따라서 비명도 작았다. 그 결과 그의 머리 위로 한 명의 탈혼객, 가슴에 붉은 색으로 일(一)자가 수놓아진 자의 검이 시리도록 눈에 부셨다. 검무청은 이 모든 것이 한 순간에 이루어진 것은 알 수 있었지만, 자신의 의도와는 아주 미세한 차이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츄슉!



‘누군가 첫 초식에 작은 충격을 줬어. 그것 때문이야.’



검무청은 애당초 상대도 되지 않는 상대들을 한 번에 쓸어버리기 위해 최상의 무공을 펼쳤는데, 모든 것이 아주 미세한 차이로 어긋나자 제3의 인물이 개입했음을 깨달았다. 본능적으로 위험함을 느낀 그는 인간의 신체가 만들어낼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인 손목을 튕기는 방식으로 왼 손등을 위로 처 올려 일 탈혼객의 검을 튕기려 했다.



허나, 퍽!



그의 바람은 그랬으나 현실에선 상대의 검이 그의 손등을 뚫었다. 불강지괴에 이른 자신의 손등이 너무나 허무하게 뚫렸지만, 다행히 그는 일 탈혼객의 검을 자신의 눈앞에서 양피지 한 장 차이로 멈추게 할 수 있었다.



“헉!”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그는 왼 손등에 힘을 준 상태에서 오른손으로 검을 잡은 후 빗나갔던 하나의 각경을 다시 일으켜 그를 쳐냈다.



펑!



둔탁한 소리와 함께 일 탈혼객의 몸이 허리부분이 뒤로 튀어나오며 위로 떠올랐다 검무청 머리 위로 날아갔다. 하지만 검무청은 일 탈혼객의 검이 검지와 중지 사이를 갈라 자신의 손을 손가락을 세 개로 만드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동시에 그는 오른편 오십 장 위를 향해 소리쳤다. 물론 비명을 닮은 신음이 먼저였다.



“크윽!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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