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다당! 쿵! 쿵!



무영 일행과 검강인을 중심으로 한 천상천 무리들이 서로 대치하는 상태로 접어들 무렵, 갑자기 집성전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일단의 무리들이 들어왔다. 다섯 명의 무인을 포박한 채 회랑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창룡문과 성도문의 장로들과 소림사와 무당파 장문인이었다.



사실 그들은 검강인이 각 문파에 침투시킨 제마령들이었다. 무당의 태극도인으로 변신한 장지영과 나머지 네 명의 제마령들이 발각돼 여기까지 끌려온 것이었다.



“선물일세. 외궁주에게 돌려드리는 제마령들이지. 천상천의 미래로 키워졌으나 외궁주의 야욕 때문에 자신이 아닌 다름 사람으로 살면서 제압당한 영혼 때문에 매일 괴로워했던 자네의 꼭두각시 인형들이라 돌려주는 것이네. 우리가 좀 늦었던 이유도 이것이었고.”



무영이 턱으로 다섯 명을 가리키듯 고개를 돌렸다. 검강인 뿐만 아니라 아직도 헷갈려 하는 각 문파의 대표들에게 누구의 말이 정말인지 판단해 보라는 행동이었다. 그때였다.



“후후! 돌아가려 했더니.. 어차피 손에 피를 묻혀야 하는 것이라면, 마다할 이유 또한 없다. 천상천도들, 이제부터 다시 전설로 돌아간다. 허나 그 전설 안에 강호를 다 가지고 간다. 천상천에 거역하는 자는 모두 처단해도 좋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아도 된다. 시작하라!”



이미 상황이 돌이키기에는 너무 틀어졌다고 판단한 검강인의 입에서 결전을 알리는 말이 떨어졌다.



“좋지. 죄가 있는 자 그 대가를 치르면 될 것이고 내 부모를 죽인 자 그 대가의 처절함을 받으면 될 일. 나 또한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겠다. 검강인! 이제부터 공포라는 것이 무엇임을, 네 죄의 간악함이 어떻게 이런 공포를 너에게 돌려주는지 하나씩 하나씩 알려주겠다.”





두 사람이 마주하고 있다. 그 사이에는 시간도 공간도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고 숨 막힐 듯한 긴장감이 흐르는 것도 아니다. 그들은 있는 자체 그것만으로도 그곳은 하나의 산이고 드넓은 바다였으며 끝없이 펼쳐진 평원이었다.



마침내 천년의 주재자 무천(無天)과 그 천년을 송두리 채 흔들고 있는 류심환이 마주 섰다. 한 명은 운명이니 따르라 하고 나머지 한 명은 운명을 바꿔버리겠다고 한다. 전자는 이미 천년을 진행된 것이니 돌릴 수 없다 하고 후자는 다시 천년을 제대로 가면 된다고 한다. 그들이 만났다. 천년을 격하여 그들이 만나 지난 천년의 성패를 논하려 한다.



- 몇 가지 궁금한 것부터 묻겠네.


- 좋을 대로.


- 네가 준비해서 주물렀고 이제는 거둬들이려 하는 천년 무림의 전설, 그 하나의 비밀은 어디서 출발했나?


- 하나의 비밀이라? 그래 천년의 전설은 하나의 비밀에서 출발했지. 결국, 그 비밀은 단 하나의 지향점에 이르기 위한 것이지. 그래서 전설이 필요했던 게고.


- 천년의 전설..


- 그래, 천년의 전설이 필요했지. 헌데 무릇 정(正)은 무엇이며 사(邪)란 무엇인가? 정이 이르고자 하는 경지는 자신과 모든 이들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자신을 극대화하거나 또는 버림으로써 이루어지지.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해탈의 경지와 우화등선(羽化登仙)의 깨달음도 다 이와 다르지 않다네. 자신의 영달을 위해 정을 택한 자들은 영혼은 두고 몸만 취함과 같네. 한 마디로 사이비지. 여기서 사(邪)는 출발하는 것이지. 해서 자신의 영달에 이르고자 단기간에 몸을 최대한 강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면 사술을 쓰는 것도 주저하지 않지. 방법이 다르더라도 둘 다 최고의 경지를 추구한다는 데에서 무(武)의 양 축이라 할 수 있지.


- 양축이라?


- 양축이지. 하지만 사의 방법은 편법이야. 따라서 몸이 이를 수 있는 최후의 경지, 즉 초식의 극대화는 정이 추구한 끊임없는 노력과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이지. 언제나 균형을 이루는 삼라만상의 조화(三才), 오르고 내리며(乘降) 나아가고 물러나고(進退) 커지고 작아지는 과정을 통해 우주의 흐름을 보여주는 움직임(象)의 원리(四象), 우주의 상생을 이루는 순환의 기와 그 흐름을 역행하는 기의 총합(五行), 그리고 머물러 있으나 흐르는 대지의 류(地支, 음을 뜻함)와 떠 있으며 흐르되 빈자리를 다시 채우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하늘의 류(天干, 양을 뜻함), 순에 이르러 흘러감으로써 다시 근본으로 돌아오는 태극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것을 초식으로 담아내면 몸이 이룰 수 있는 최고 경지에 이르지.


- 최고의 경지라?


- 자네도 알겠지만, 이 모든 것들의 깨달음으로 만들어진 초식은 몸에 자리한 잠재능력까지 극한으로 끌어올릴 순 있어. 이는 우주가 보여주고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최대의 경지인 수(手)의 완성이라 할 수 있네. 이런 몸을 취해 이른 수의 완성이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일세. 천상지무와 파천태극무검의 원류가 같음은 여기에 있네.


- 역시, 그랬어.


- 하긴 지금의 자네라면 알고 있겠지. 뭐, 지켜보는 건 지겨웠지만. 아무튼 이것과 달리 수의 완성에 이르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태극에서 오행까지 각종 이치를 터득하기 위한 미망(未忘)의 경지를 단기간에 역의 방식을 택해 수의 완성에 이른 것이 멸천마공이지. 이 마공이 앞의 두 무공과 동일한 수준에 올라섰음도 여기에 그 원인이 있었던 거고. 비록 차면 넘치는 몸의 한계를 극복하지는 못했지만 이 세 개의 무공들이 인간의 몸으로 이룰 수 있는 극한의 무공이지. 해서 천상천과 천외천, 역천마곡을 만들었고 세 개의 무공을 각각 하나씩 나눠줬어.


- 후후! 나눠줬다고? 좋아, 다음은.


- 그래. 내가 나눠줬지. 대강은 파악했겠지만 그 과정은 이러했어. 내가 태생적으로 무공을 익힐 수 없는 몸이라 일단 천상지무를 통해 천상천을 만들었지. 하지만 천상지무는 극강의 무공이라 그것을 앞세워 무림 전체를 지배하지 못하게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으로 천상천을 제어했고 오로지 몸이 이르는 극대화에 정진하게 만들었지. 혈난으로부터의 천하 구원을 천상천의 존재이유로 만들어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에 정당성을 부여했고. 이는 천상지무가 세 개의 무공 중 몸의 극대화에 가장 근접해 있기 때문이야. 해서 천상천이 천년 전설의 주역이어야 했던 거야.


- 검강천까지는 그러했겠지.


- 클클. 검강천.. 생각보다 뛰어났기는 했어. 하지만 내 손안에서 벗어날 순 없었어. 중요한 건 고인 물은 썩고 권력도 강해지면 반드시 부패한다는 거야. 해서 절대 권력을 갖게 된 주역이 끝없는 정진을 하게 만들려면 그에 걸맞은 상대가 필요해. 멸천마곡의 등장이 이것들을 다 해결시켜 줄 방법으로 적격이었지. 나는 몸의 극대화에 이르는 사의 방법을 멸천마공에 담아 사파의 천년 전설, 멸천마곡이 만들어지도록 유도했어. 즉, 누구처럼 선천지체를 타고났지만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죽음 직전에 있었던 화극연에게 멸천마공을 준 것이지. 물론, 우연을 가장했음은 당연했고. 하여튼, 멸천마공을 얻은 그는 내가 안배한 방식대로 움직였고 마침내 절대 마인이 됨으로써 연극의 한 축을 완성하게 됐지. 덤으로 공연한 음양합일역천지마 화극연의 피와 살육의 축제는 가히 일품이었어.


- 뭐, 일품이라고?


- 암, 일품이었어. 그렇다 해도 화극연의 경지는 천상지무를 넘을 수 없네. 천상지무의 마지막 초식은 절대마인의 경지를 막을 수 있게 상극의 원리를 담아 두었기 때문이야. 천상천과 천외천의 관계가 마치 그런 것처럼 유도했던 것과 같게. 이 부분이 자네의 역할이고, 천년 연극의 성공을 위한 가장 중요했던 요소야. 어쨌든, 두 세력을 앞세운 두 무공의 충돌은 천상천과 천상지무의 위대함을 낳게 했고 그럼으로써 전설은 일단 완성이 됐네. 당연히 천상지무의 일방적 승리로 은둔과 일인재림의 율법에 대한 불만은 잦아들었고 연극은 천년을 유지할 수 있었어.


- 천년의 연극..


- 그래, 내가 쓴 연극! 나만이 수정할 수 있고, 끝낼 수도 있는 연극! 클클, 난 연극이 재미있도록 만들기 위해 역천마곡이 언제든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암시를 남기게 했어. 그래서 천상천의 정진은 멈추지 않았고 전설은 스스로 내리지 않는 한 영원하게 된 거야. 역대 천상천주들은 이에 만족했지. 단 한 명 검강천을 빼고. 그는 많이 갈등했어. 역대 최고의 경지에 오른 그라 나 또한 신경이 쓰이기는 했지만 특별한 이상증후가 발견되지 않아 큰 신경은 쓰지 않았어. 약간의 착오가 있을 뻔했지만, 그 정도 예외란 늘 있는 법이니까. 게다가 그는 도중에 죽었어. 물론 뒤에서 얘기하겠지만 이것이 문제이긴 했어. 어쨌든 내 예상대로 천상천의 힘은 끝없이 커져갔지. 연극 성공을 위한 토석이 튼튼하게 자리 잡게 된 거야. 해서, 파천태극무검은 천상지무와 상극을 이뤄야 했네. 인기, 즉 힘의 차이로 등장인물 간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흥행은 불가능하지. 그것도 천년을 이어가려면 더욱더 안 되는 것이고.


- 흥행..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 태산 정도로 되겠어? 정이건 사이건 간에 몸의 극대화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내 욕심 때문이라는 건 인정할게. 내가 원하는 것은 몸의 극대화가 아닌 영혼과의 동시 극대화였어. 최초로 몸과 영혼이 동시에 진정한 해탈과 우화등선의 경지에 들어서는 것을 꿈꾸었던 게지. 나는 그렇게 생각해. 무(武)란, 겉으로 명백하게 드러나 눈에 보이는 물리적인 힘(力)이 마음에 따라 움직이는 기(氣)가 더해져 신체의 근육과 뼈가 갖고 있는 힘보다 더 강력한 힘(勁)을 만들어내는 것처럼, 몸의 극한이 영혼의 극한을 만나 정기신일체(精氣神一體)의 완벽한 극대화를 이루는 것이라 믿어. 의도기도(意到氣到), 기도경도(氣到勁到)라 했듯이 마음 가는 곳으로 몸이 가고, 몸이 움직이는 곳에 영혼이 함께 흘러야 하는 것이지.


- 후후.


- 단언컨대 몸을 떠나 이루어지는 무(武)는 허상이야. 순간적인 깨달음을 통한 해탈과 우화등선 또한 몸의 극대화를 이루지 못한 영혼만의 순수한 깨달음이지. 이는 무가 추구하는 바와 그 근본이 다르네. 인간이 아닌 것이지. 힘이 아닌 다른 것에서 출발하는 모든 것들은 인간의 것이 아닌 이상 무라 할 수 없네. 그것은 허상이네. 그 이하도 그 이상도 아니야. 무는 몸이 만드는 힘에서 출발해 기에 의해 자라 영혼에 의해 그 경지를 넓혀가는 것으로만 최고 경지에 이를 수 있네. 이는 영혼으로만 살았던 내가 간절히 원했던 것이고 무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이며 천년 전설의 완성이라 할 수 있지. 해서, 파천태극무검이 원류가 된 천외천은 천상지무를 견제하고 천상지무는 초마인의 경지를 견제하는 완벽한 정립(鼎立)을 이루어야 했네. 그런 견제와 균형 속에서 완성된 세 가지 무공의 합일을 통해 영혼의 극대화까지 이르는 것이지.


- 견제와 균형..


- 그래, 정립을 위해선 견제와 균형이 중요해. 그것을 위해 세 무공은 하나로 합치는 안배가 필요했어. 그 안배를 푸는 방법은 두 가지 정도가 가능했고 그 중 하나가 삼혼지문을 이용하는 것이고. 몸의 극대화를 가진 상태의 영혼의 극대화, 이는 인간이 신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지. 네가 거기에 이르면 되는 것이었고, 그것이 일인계승의 태천문(太天門)이 존재하는 이유였으며 제천문을 통한 이 모든 것의 감시가 필요했던 거네. 그것들이 하나가 되어 내 삶의 회한을 풀어주는 마지막 살풀이가 돼야 했던 거야. 이것이 내가 연출한 천년 전설의 완성이며 내가 연출해 주연한 연극의 종(終)이기도 하고.


- 태천문과 제천문..


- 다 내 작품이야. 그렇게 나는 천년 전설을 만들었고, 그 성과를 내가 취했지. 하나의 비밀에서 출발한 천년 전설은 이렇게 종극(終劇)에 이르게 돼. 이것으로 무를 주제로 한 다른 어떤 연극도 더는 존재할 수 없게 된 것이지. 천년을 공연했으니 그 작품의 탄탄한 구성(세 개 세력의 정립)과 내용들(세 가지 무공) 그에 따른 등장인물들의 완벽한 공연(수 없는 혈난과 응징), 그를 천년이나 지켜본 무림인들의 열렬하며 지속적인 열광(천년 전설)은 이보다 더한 것이 다시 나올 수 없음을 말해줬네. 그 안에 무엇이 진행됐던 그 위대한 공연에 함께 했음을 모두가 만족했던 것이고 이제 내가 그 무대 위에 서면 천년 전설은 완성돼 영원하게 되는 것이네. 천상천도 천외천도 그리고 악역이지만 결정적 역할을 해낸 역천마곡도 함께 했다는 것에 만족해 퇴장하면 연극은 끝나는 것이지.


- 삼혼지문의 필요성도 거기서 나왔고 하나의 거짓이 역시 이것이었군.


- 그렇지. 




P.S. 이 부분부터가 제가 천검지로를 쓰게 된 이유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들 건강하시고요. 

  1. 박창식 2015.01.01 12:31 신고

    새해 복 많이 받으시길!!!
    님의 가는 길이 외롭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작은 배경이 되어 드릴 것입니다.


    무엇보다 강건을 빕니다.

    • 늙은도령 2015.01.01 12:36 신고

      님도 새해에는 좋은 일이 많기를 바랄게요.
      건강하십시오.
      님의 관심이 저를 살게 합니다.

  2. 국밥소년 2015.01.02 10:31 신고

    흥미진진 한자한자 읽고 있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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