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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노무현의 예언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의 또 다른 말이 된 ‘나는 샤를리다’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적이 있었습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에 짓밟힌 두 가지 가치는 민주주의와 보편적 인권의 핵심이며, 인류가 수많은 투쟁을 거쳐 이룩한 최고의 유산이기에 '나는 샤를리다'의 물결이 계속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프랑스 식민지 출신의 2, 3등국민이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라며 반발하는 것도 만만치 않게 퍼져갔던 것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샤를리다'를 외치는 사람 중에서도 샤를리의 만평은 찬성하지 않지만,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나섰다는 사람도 많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테러 이후의 첫 판에 또다시 마호메드를 내세운 샤를리의 만평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넘어 무슬림에 대한 조롱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만끽하고 평균 발행 부수의 백 배에 이르는 수익을 올렸지만, 유럽을 이슬람 극단주의자의 테러 공포 속에 몰아넣었다는 면에서 이에 대한 반발도 만만치 않게 커지고 있습니다.



특히 무슬림 여성들의 히잡과 복장 등이 여성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비판하지만, 그것은 그들의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무시하고 침해하는 행위입니다. 반면에 유태인의 복장과 행태는 비판하지 못하는 것은 반유대주의가 히틀러의 나치로 이어졌다는 것만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모든 이견이 가능하다’는 표현의 자유는 볼테르가 “나는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지만 당신이 그런 말을 할 권리를 위해 목숨 걸고 싸우겠다(I disapprove of what you say, but I will defend to the death your right to say it).”는 것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습니다. 노후의 볼테르가 이 말을 거두어들였음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미국의 독립선언문과 헌법을 작성한 토마스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보다는 차라리 정부 없는 신문을 택하겠다"는 말로 민주공화국에서 언론의 자유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큰지 천명했습니다. 그 또한 3대 대통령이 된 이후에는 거짓과 왜곡을 일삼는 언론의 자유에 대해 심각히 고민하게 됐습니다.



언론의 자유에 대한 제퍼슨의 사상은 수정헌법 1조 “의회는 말의 자유 또는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는...어떠한 법률도 만들어서는 안 된다”로 발전해 지금까지 이어졌습니다. 이것이 거의 모든 국가의 헌법에 적용돼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는 민주주의의 핵심 가치가 됐습니다. 





하지만 보편적 인권의 원천인 표현의 자유와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의 자유라는 두 가지 가치가 무엇에도 우선하는 절대적 가치는 아닙니다. 타 종교를 폄하하는 표현의 자유는 자제해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도 그런 점에서 일맥상통합니다. 어떤 자유도 내가 휘두른 주먹의 사정권 안에 타인의 신체가 있을 때는 제한받기 마련입니다. 



특히 언론의 자유에는 히틀러의 광기를 뒷받침한 괴벨스의 대중 선동 언론 같은 ‘관용의 역설’까지 포함되는 것은 아닙니다. 위키백과에도 나오듯이 “표현의 자유를 부인하는 사상도 표현의 자유는 누려야 하지만,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려는 정권에 대한 관용까지 관용의 이념에 포함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올리버 웬델 홈스 판사가 제시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clear and present danger)”이 기준이 될 수 있고, 실제로 그 기준에 해당하는 표현의 자유는 제한받고 있습니다. 표현의 내용도, 표현의 방식도 잘못된 MB정부의 방송장악이 그러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지만 국회와 정부는 뒷짐만 지고 있습니다.






바로 이런 면에서 볼 때, “사실에 충실하고 공정하고 책임 있는 언론”을 기대하면서 “한국의 민주주의는 언론의 수준만큼 발전할 것”이라는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은 보수정부와 수구세력에 기생해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족벌언론에 보내는 한국판 “나는 샬르리다”라 할 수 있습니다. 



자유가 무제한이 아니고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자유는 사방이 막힌 벽입니다.' 표현의 자유와 언론의 자유를 빙자해 나치의 선동정치를 되살려낸 족벌언론의 압도적인 폭력은 개인과 집단을 상대로 무차별적으로 펼쳐진다는 점에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에 다름 아닙니다. 언론의 존재 이유가 권력에 대한 끊임없는 감시라는 점에서도 족벌언론의 폭력은 민주주의의 적입니다.





게다가 노무현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언론과 세월호 참사 때 오보를 남발한 언론, 위안부협상에 침묵하고 노동시장 개혁에 대해 정부의 입장만 보도하는 언론이 다를 것이 없다면 노 대통령의 발언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 할 것입니다. 족벌신문의 행동대장 역할을 하며 국민을 선동하는 TV조선과 채널A을 보면, 표현과 언론의 자유를 악용하는 사회적 흉기로서의 종편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상파 지위를 이용해 종편과 케이블을 따라하는 최악의 방송 MBC, 자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정권에 불리한 것은 가급적 외면하는 KBS와 SBS의 보도행태를 보면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민주주의의 퇴행을 주도한 것이 언론임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지상파의 낮은 포복은 공영방송의 종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문창극 사태와 황교안 동영상에서 보듯, 최근에 들어 기독교 근본주의자와 공안 출신 고위관료, 친일 본색을 숨기지 않는 족벌언론의 파시즘적 폭력이 전방위적으로 펼쳐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명백하고 현존하는 위험”인 족벌언론의 선동정치와 공안정국 조성에 동원되는 압도적인 폭력과 종북몰이식 테러에 맞서 “나는 샤를리다”를 외칠 곳은 프랑스가 아닌 대한민국인 것 같습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