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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연말정산, 언론의 때늦은 호들갑이 불편한 이유



연말정산 대란은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동안 기업과 부자의 금고는 채워주고, 서민들의 지갑은 탈탈 털어간 것 때문에 일어났습니다. 정부는 경제‧부동산활성화 때문에 구멍이 뚫린 재정을 채우기 위해, 세원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는 유리지갑을 세액공제라는 꼼수를 동원해 손쉽게 털어갔습니다.





증세를 증세라 말할 수 없는 정부는 유리지갑이 연말정산으로 손해 본 액수가 12개월로 나뉘면 별로 큰돈이 아니기에 저항이 적을 것이라 삼세판을 넘어 오판까지 갔던 것 같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유리지갑의 반발이 폭발 직전까지 차올랐는데도 경제수장인 최경환 부총리는 이미 거둔 것은 어쩔 수 없으니 내년에는 바로잡겠다는 안이한 발언이나 할 수 있었습니다.



사실 유리지갑은 이번의 연말정산 말고도 매달 조금씩 세금이 늘어났었습니다. 그때는 소액이라 불만은 있었지만, 연말정산 때 돌려받으면 되지 하면서 불만을 다음 달, 다음 달로 넘겨왔습니다. 그렇게 12개월이 흐르고 13월의 월급(=보너스)을 받게 된 연말정산의 시즌이 돌아왔습니다, 짜잔!!





헌데 이게 뭐야!! 13월의 월급은 고사하고, 매달 조금씩 더 빠져나가던 세금의 합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세금(=세액공제)이 한꺼번에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것도 양육비와 교육비와 의료비 등에 들어간 필수경비에서도 세액공제가 이루어졌으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었습니다. 싱글세도 현실화됐고, 여성의 사회진출을 돕는 부녀자공제도 사라졌으며, 다자녀공제까지 나빠졌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유리지갑들의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악마의 세액공제로 빠져나간 돈이 미래가 불안한 자신의 자식들이나 빈곤한 부모세대에 쓰인다는 보장도 없는 상태에서, 부자감세와 각종 면세 혜택 때문에 부족해진 재정을 유리지갑의 13번째 월급으로 메운다니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미생의 오 차장이나 장그래처럼 일해야 잘리지 않고 월급이나 받을 수 있는데, 그것 때문에 간과 쓸개는 떼놓은 채 피로에 찌든 몸으로 집을 나서는데, 계속해서 돈을 벌 때는 위부터 가지고 가고, 어쩌다 돈을 못 벌 때는 아래부터 털어가는 이놈의 나라를 뒤엎고 싶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여기까지는 필자도 100% 동의합니다. 한편으로는 정부가 실질적인 부자증세(진정한 부자인 불로소득자를 제외한 뼈 빠지게 일해야 하는 유리지갑에 한할 때)를 했다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임원이 된 이래 고액소득자에 포함된 제 동생과 형은 수백만 원이 세액공제됐으니 부자증세를 했다는 정부의 주장도 일리는 있습니다.



또한 비정규‧파견‧일용직의 중하단에 속한, 그래서 면세점 이하의 노동자들에게는 연말정산이 딴 나라 이야기여서 정부의 주장에 동의(제가 만난 사람이 극소수라 보편적 신뢰성은 대단히 낮다는 것^^;;)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대통령과 그를 둘러싸고 있는 고위공직자에게 불만이 많지만, 연말정산에 관한한 반대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아니, 별 관심도 없습니다(그러면서 알바생이 '다 샀으면 언능 가!!'라는 눈빛을 레이저처럼 쏘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호 참사 때보다 민심이 더욱 크게 악화된 듯이 느껴지는 것은 611만 명의 납세자들이 투표 적극층에 속하며 소위 엘리트나 오피니언 리더,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왈, 감히 우리까지 털어가!! 권력에 순종하거나 침묵했던 결과가 배반의 칼날로 돌아오니 이들이 들고 일어난 것입니다(방송에서 그랬습니다).





특히 언론(비겁한 지상파 3사와 조중동 및 TV조선과 채널A, YTN과 연합뉴스까지, 이른바 배반의 계절!)은 대놓고 정부와 여당을 향해 무차별적인 공격을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행동하지도 않고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기득권만 지키기에 혈안이 됐던 엘리트와 지식인, 교수들도 유리지갑의 분노에 편승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그들 중 몇몇은 성추행과 성희롱 사건 때문에 정신이 없었지만).  



세월호 특별법이 만들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에 비해, 정부와 여당이 13월의 월급을 폭탄으로 만든 세액공제의 꼼수들을 뜯어고치겠다고 나서기까지는 3일밖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둘 사이에는 어마어마한 차이ㅡ전자는 나무늘보라면 후자는 총알 탄 사나이ㅡ가 있습니다. 필자가 ‘언론의 연말정산 호들갑이 불편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연말정산 대란은 이 땅의 언론인들과 엘리트, 오피니언 리더와 지식인, 교수들은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지 않는 한, 현재의 권력에 맞서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는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했음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이익에만 지독히 밝은 이들이 자식이나 청춘들에게 뭘 가르치거나 모범이 될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용납할 수 없지만, 연말정산의 문제를 사전에 알리지 않은 채, 자신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까 그제야 호들갑 떠는 그들의 행태가 불편하기만 합니다. 이명박근혜 정부 7년 만에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답니까? 



필자의 형과 동생이 세금폭탄을 맞았다 해도, 연말정산의 세액공제를 뜯어고치는 방향에서 고액연봉자는 제외돼야 합니다. 동시에 이번 대란을 기회로 증세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구하는 공론화과정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저성장시대의 공존과 공생을 위해 머리를 (다치지 않게) 맞대야 합니다.





보편적 복지의 목표는 모든 국민이 면세점 이상의 소득을 올려 세금을 내게 만드는 것입니다. 복지가 모든 국민의 권리가 되고, 권리이기 때문에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하는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이 보편적 복지의 목표입니다. 세원이 넓어지는 만큼 소비도 늘어나는 경제의 선순환이 이렇게 해서 가능합니다.  



필자의 바람은 연말정산 세액공제 대란을 기점으로 부의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공존의 세상으로 가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번 기회에 모든 소득에 누진세율이 적용되는 증세논의가 본격화돼야 합니다. 조세정의란 그것이 인류의 삶에 합당하기 때문이며, 자본주의의 폭주에 대한 민주주의의 견제가 그 안에 온전히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분노에 찬 언론의 비판이 증세를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공론화과정으로 넘어가지 않은 채, 정부에게 뺏긴 13월의 월급을 되찾는 것으로 끝난다면 언론의 성난 비판은 이기적인 호들갑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보편적 복지를 위한 증세논의에 들어갈 수 있도록 언론은 정부를 비판하고, 국민은 언론을 감시해 대한민국의 시대정신과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