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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쌀시장 개방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거짓말


쌀 시장 전면 개방은 미국과 유럽의 거대기업농을 위해 녹색혁명(실제로는 녹색 착취)이란 명목하에 진행된 농축업 약소국에 대한 제2의 식민지화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고율의 관세화와 의무수입량의 급증을 들어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겠다고 한 것도 이런 식민지화가 마지막에 이른 것입니다. 



우루과이 라운드로 대표된 농축산업의 신자유주의화는 17~18세기에 유럽을 지배했더 귀족과 고전파 정치경제학자들이 주장한 중농주의에 그 뿌리가 있습니다. 농작물 거래의 자유방임을 원칙으로 내세운 중농주의 정치경제학은 농작물의 자유무역을 통해 거대한 농지와 농노를 소유한 귀족과 대지주의 부를 불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미셀 푸코의 《안전, 영토, 인구》에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별도의 글로 올리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중농주의에서 시작된 농축산물의 자유무역은 지금의 신자유주의의 원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약소국일수록 피해가 크다는 것입니다. 현재 세계적인 거대기업농과 거대 금융자본에 장악된 농축산물의 자유무역은 상대적 약소국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밥상안전에도 빨간불을 켜고 있습니다.



                                                                      경향신문에서 인용


거대기업농과 농축산물 무역상들을 위해 출범한 중농주의적 자유무역은 선진국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GATT에서 WTO를 거쳐 우루과이 라운드까지 이어졌습니다. 전 세계적의 곡창지대를 거의 다 점령해 버린 거대기업농의 입장이 반영된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상대적 약소국가의 농축산물시장을 식민지화하기 위한 농작물의 자유무역에 관한 협정이 체결됐습니다. 



이 협정의 핵심은 농축산물의 자유무역을 활성화하기 위해 각국의 보호관세 장벽을 철폐하고 국제가격과 국내가격의 차이만큼 관세를 부여하는 '예외없는 관세화'만 허용하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 결정에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는데, 외국의 거대기업농이 기습적으로 가격을 낮춰 국내시장을 강타하면 사후 관세로 이득을 회수하는 것도 어렵고, 오랜 법정 다툼을 통해 이득을 사후에 회수했다고 해도 국내의 농축산물 시장은 도산한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국내의 농축산업이 무력화되면 국제가격이 올라도 국내가격이 형성되지 않기 때문에 국내시장은 완전히 붕괴됩니다. 또한 우리의 몸에 맞지 않는 외국의 농축산물을 먹어야 할 뿐만 아니라, 농축산업 종사자들이 빈곤층으로 전락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복지비용을 대기 위한 국가의 재정이 심각한 위기에 처합니다. 이밖에도 여러 가지 형태의 사회적 문제들이 속출해서 한국 사회의 골칫거리로 자리잡을 것입니다.   



이처럼 완전한 자유 경쟁을 강제하며, 우루과이 라운드에서 결정한 관세 이외에는 일체의 농업보조금을 금지하는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정은 농업경쟁력이 떨어지는 나라를 위해 일정 기간의 유예를 두었지만, 이는 농작물의 자유무역을 지향하는 농업 분야의 신자유주의를 표방하기 때문에 농업 분야에도 무한경쟁과 승자독식이 적용됩니다. 거대기업농의 농축산물의 안전은 우리가 담보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국민의 안전을 책임져야 할 정부의 역할은 무력화됩니다.


                                                                       연합뉴스에서 인용


문제는 이것만이 아닙니다. 우루라이 라운드에서 체결된 협정은 국제가격의 변동 때문에 자국의 농업종사자들에게 발생하는 피해를 보조금으로 해결하는 유럽과 미국의 반칙을 제어하지도 못했습니다. 그 결과 상대적 약소국들의 농업시장만 거대기업농들에게 무방비로 열어주는 결과만 초래했습니다. 각국의 주식(우리의 경우 쌀)에 관해서는 식량주권 차원에서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정을 거부할 수 있지만, 대신 의무수입이란 족쇄를 수용하도록 만들었습니다. 



바로 이 조항 때문에 우리나라는 쌀시장의 개방을 허용하지 않는 대신ㅡ정확히는 개방을 유예하는ㅡ10년마다 두 배로 뛰는 의무수입양을 감당해야 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이해당사자들과의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쌀시장 개방은 이런 배경 하에 이루어진 것이지만, 일본이나 대만처럼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 쌀시장을 지킬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 남아 있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정부의 의지에 달린 것입니다. 그것이 국제적인 협정이라 해도 각국의 정부가 자국민의 일방적 피해를 이유로 협정 이행을 거부하면 이를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국제무역에 관한 재판소 같은 것들이 있지만 이 또한 배타적 주권을 지닌 각국의 정부가 재판을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습니다. 



                                                           왜 이러 미친짓을 해야 한다 말인가?



미국이나 유럽이 자주 사용했고, 지금도 이용하고 있는 무역보복이란 것들도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의 반대시위로 무산된 것처럼 여론의 힘을 빌어 정부가 강하게 나가면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것이 쌀시장 개방입니다. 이명박 정부에 이어 박근혜 정부까지 수출기업들을 위해 식량주권을 우습게 여기는 바람에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지금이라도 정부가 일본과 대만처럼 외국산 쌀들이 경쟁력을 지니지 못할 만큼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면 그만입니다. 



제 아무리 우루과이 라운드라 해도 쌀시장을 지키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하면 300만 명으로 줄어든 농업종사자들의 미래를 짓밟지 않아도 됩니다. 이미 국제적인 선례도 있기 때문에 정부가 강력한 의지만 표명하면 우리 모두의 조상이었던 농업종사자들을 외국의 거대기업농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습니다. 



소수에게만 부가 독점된 박정희 시대의 압축성장을 위해 농촌을 식민지화하고 뼈속까지 수탈했으면 이제는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습니까? 식량주권을 잃어버린 나라의 미래란 외국의 거대기업농에게 우리 모두의 생명을 맡기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경상수지 흑자를 주장하며 쌀시장 전면 개방을 밀어붙이는 통상관료들의 감언이설에 정부가 놀아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이런 거짓말도 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일본의 내각처럼 자국의 농축산물 시장을 지키겠다는 의지가 강하다면 쌀시장 전면 개방의 충격을 최소할 뿐만 아니라, 역전시킬 수도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1000%에 이르는 초고율관세와 농축산업에 대한 정부의 장기적인 지원으로 자국의 농축산업을 보호하는 것을 넘어 풍요롭게 하는 데도 성공했습니다.



자신이 주장하는 ‘줄푸세’가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도 제대로 모르는 것 같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런 사실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우루과이 라운드 전문가들만 있다면 우리나라의 쌀시장은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정부는 언제든지 거짓말을 한다는 현실정치학의 절대 명제입니다. 쌀시장 개방은 경제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식량주권의 마지노선마저 풀어놓으면 안 됩니다. 필자의 형님이 국내 최고의 권위자인 식품포장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장거리 이동에는 일정량 이상의 방사능 처리가 가해집니다. 기준치 이하의 방사능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울리히 벡이 《위험사회》에서 지적했던 것처럼 장기적으로 축적되고, 다른 것들을 통해 축적되는 위험물질의 종합적인 양으로 따지면 인간의 생명까지 커다란 위험에 노출됩니다. 



미국산 소고기에 이어 쌀시장의 전면 개방이 자유무역을 통해 소비자에게 저렴한 가격의 농축산물을 공급하는 것 이상의 문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식량주권이란 소규모 농작을 하며 시장경제의 밖에서 살 수 있는 소농들을 보호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내부에 축적되는 온갖 위험물질들은 자식에게 전해지고, 우리의 미래세대를 더 큰 위험에 내모는 것으로 이어집니다.



박근혜 정부가 얼마만큼의 관세율을 부과할지 국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하는 의무에 해당합니다.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외국 정부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에 서기 위해 관세율을 천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국민을 속이는 행위의 전형입니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형편없는 수준의 관세율을 상대국들과 맺는다면 이는 탄핵의 조건으로 충분하고도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