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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왜 노무현이었고, 왜 문재인인가?-1



노무현 대통령이 선호도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의 경우 가장 민주적이고 서민적인 대통령이었기 때문에 좋아합니다. 한국의 대통령에게 주어지는 권력이 제왕의 수준인데 노통은 그런 공적인 권력(검찰, 국정원, 감사원, 국세청 등)을 이용해 사적 이익을 얻기 위한 반칙을 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서민을 찍어 누르는 특권을 행사하지 않기 위해 제왕적 권력의 유혹에 저항했습니다.





이런 민주적이고 서민적인 성향 때문에 노통은 기득권 세력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땅의 정치세계란 기득권의 이익 나눠먹기의 장이었는데(이명박근혜 7년 동안 더 심해졌다) 그런 기울어진 운동장과 일그러진 세계를 거부했던 노통을 그들이 그냥 나둘 리가 없는 것이지요. 노통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탄핵까지 당했던 것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반칙과 특권이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노통의 4대개혁입법과 수많은 정책들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도 기득권(거대노조도 기득권이었다)의 반발이나 언론의 왜곡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이 땅의 서민들이 모두 다 진보 성향일 수 없고, 미래세대도 그럴 수 없는 일이어서 좌우를 아우르는 정책을 펼쳤지만, 이 때문에 좌우로부터 인신공격을 넘어 정신병자 수준의 비판을 들어야 했습니다. 





당연히 그 선두에 조중동과 뉴라이트, 대형교회와 새누리당이 있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고요. 그런 기득권 세력의 담합된 공격 앞에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그리 큰 방패막이 되지 못했습니다. 집권 1년차에 이미 팔과 다리가 묶여 공약으로 내걸었던 것들마저 이행할 수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노무현 때문이라는 말이 유행됐고, 황우석이 주도한 희대의 사기극도 노무현에게 책임을 돌리는 것에서 극명하게 드러났습니다. 



노통은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지만, 최소한 조중동과 뉴라이트에 대해서는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그의 비극적인 죽음까지 이어지는 단초가 됐지만, 수많은 국민들에게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기득권의 이익을 대변하는 집단과 세력이 누구인지 분명하게 인식시켜주는 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서민의 언어를 고집했던 노통의 마지막이 큰 울림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한 연민의 정만은 아닙니다.     





기득권의 노통 때리기는 서민으로 돌아온 그를 죽음으로 내몰 때까지 계속됐고, 600만 명에 이르는 국민들이 그의 죽음에 애도를 표했지만 노통 때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참여정부 시기에 일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잘리고 죽었고 비정규직이 됐고, 부동산 폭등으로 중하층의 재산가치가 하락하고 중상층은 더 부자가 돼 양극화가 심화됐다”고 말한 정동영의 발언(거짓말이다)도 같은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노통의 정치인생은 늘 기득권의 특권과 반칙에 정면으로 부딪치는 뚝심이자 몸부림이었고, 거의 대부분 자신만이 피투성이가 되는 혈전이었습니다. 노통은 진보 성향의 정치인이 대통령이 됐을 때 높은 최저임금 인상과 종부세 도입, 국토균형발전, 부동산거품 제거 등을 통해 부의 재분배를 완화시키는 일들이 가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는 부와 기회를 독점하고 있던 기득권에게 불리한 것이었지만, 그 때문에 국가경제의 근간인 기업마저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없기 때문에 성장에도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 사이에 모순이 발생했고, 정책적 혼선도 발생했습니다. 지금에도 거짓말이지만, 그때는 더더욱 거짓말이었던 삼성공화국이란 말이 유행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입니다. 



노통은 또한 보수정부들이 방치했던 국방과 외교의 자주권을 회수하려 했지만, 그를 위해서는 이라크파병과 한미FTA 체결, 미군기지의 평택 이전 등도 추진해야 했습니다. 탄핵 정국을 국민의 힘으로 되돌릴 수 있었지만, 그때 입은 내상이 임기 내내 노통의 발목을 잡았고, 열린우리당의 분당 사태는 치명적이었습니다. 





노통이 퇴임 후에 가장 후회했던 것이 불완전한 비정규직법 제정과 함께 우루과이 라운드의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 세계적 추세라고 생각해서 쌀개방과 관련해 농민의 이익을 지키지 못했던 것(필자도 이것 때문에 노통에게 온라인 상에서 비판했었다)이었음은, 두 명의 농민이 쌀개방 반대시위 중 경찰의 무력진압에 목숨을 잃은 것에 대한 대국민사과문에서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그러나 공권력은 특수한 권력입니다. 정도를 넘어서 행사되거나 남용될 경우에는 국민들에게 미치는 피해가 매우 치명적이고 심각하기 때문에 공권력의 행사는 어떤 경우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행사되도록 통제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러므로 공권력의 책임은 일반 국민들의 책임과는 달리 특별히 무겁게 다루어야 합니다. 이 점을 국민 여러분과 함께 모두에게 다시 한 번 명백히 하고자 합니다. 



인권변호사의 경험을 바탕으로 인권위원회의 위상을 최고로 높여 인권후진국에서 선진국에 들어설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지금은 투표권도 상실한 후진국으로 떨어졌습니다). 자신이 조중동의 희생양(퇴임 이후에는 모든 언론의 먹잇감이 됐다)이었으면서도 언론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유지함으로써 국정 운영이 힘들었지만 언론의 자유도를 사상 최고로 끌어올려 민주주의를 강화시켰습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저력이 될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노동계가 극렬하게 반발했던 비정규직법(김영란법처럼 국회에서 누더기가 원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을 강행한 것도 수면 밑에 있는 것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야만 정치의 핵심의제가 될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 비정규직법 발효 후에 정규직이 된 비율은 그 이전보다 높아졌고, 비정규직의 실상이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전달될 수 있는 계기로 작용했습니다.



비정규직법의 재개정과 노동자의 권리 강화는 다음 정부의 몫이었지만, 다음 정부는 아예 친기업적인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들고 나와 권력을 잡았습니다. 비정규직법의 악용이 너무나 용이했고, 한발 더 떠 노조의 무력화를 위해 집요한 탄압과 악랄한 와해공작을 벌였습니다. 이런 추세가 극에 이르러 ‘정규직 과보호론’까지 대두됐습니다.





문화계가 반대했던 스크린쿼터제 축소도 문제의 소지가 충분했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이 제작부터 공급까지 독점하는 것이었습니다. 노통으로서는 문화대통령이었던 김대중의 정책을 보충하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습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에서 최상의 조건을 끌어내기 위해 영화계의 희생을 받아들은 것은 통치행위이기 때문에 비난만 할 일도 아닙니다.



노통이 했던 일을, 참여정부가 진행했던 일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이후의 변화를 객관적인 수치와 분석을 통해 살펴보면 노통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잘못돼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조중동과 새누리당, 뉴라이트와 대형교회가 확대재생산한 노통 죽이기 및 흔적지우기가 성공한 것입니다. 문재인은 이런 결과가 가능했던 것이 노통과 참여정부의 한계였기도 했지만, 새누리당이 선점하고 있는, 하지만 사실과 다른 통념에 있다고 본 것 같습니다(2부로 이어집니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