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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문재인 책임론, 닭이 먼저일까 달걀이 먼저일까?



<가설(H)이 먼저냐, 관찰(O)이 먼저냐> 하는 문제는 해결될 수 있다. 그것은 <닭(H)이 먼저냐, 달걀(O)이 먼저냐> 하는 문제와도 같다. 후자에 대한 대답은 <이전의 달걀>이요, 전자에 대한 대답은 <이전의 가설>이다.


                                                                                        ㅡ 칼 포퍼의 《추측과 반박 1》에서 인용




지난 보궐선거에서 야당이 완패한 이후 문재인 대표를 비난하는 글이 폭주하고 있다. 허공을 떠도는 아무 글이나 잡아도 문재인을 비난하는 글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노무현을 죽음으로 내몬 시절의 일방적 비난과 폭력이 곳곳에서 데자뷰처럼 겹쳐진다.





성난 들소 같은 이들의 비난을 찬찬히 읽다 보면 문재인이 무능했기 때문에 보궐선거에서 완패했다는 것인지, 보궐선거에서 완패했기 때문에 문재인이 무능하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또한 성완종의 불법로비가 참여정부의 사면 때문에 발생한 것인지, 성완종이 불법로비를 했기 때문에 참여정부에 책임이 있다는 것인지 헷갈린다.



헌데 바로 이 지점에서 칼 포퍼의 방법을 적용해보자. 후자의 경우는 ‘이전의 사면’이 해답이고, 전자의 경우는 ‘이전의 무능’이 해답이다. 박지원과 천정배에게 사후독점권이 있는 것 같은 김대중 정부가 이명박을 사면해주지 않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고, 정동영이 이명박에게 지지 않았어도 마찬가지다.



칼 포퍼가 말하고자 했던 것처럼, ‘이전의 달걀’은 ‘이전의 닭’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고, ‘이전의 가설’은 ‘이전의 관찰'이 있어야 존재할 수 있다. 즉 이런 식의 해답이면 최초의 순간으로 무한소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보궐선거 완패의 책임을 찾는 일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은 신이 아니다. 완벽하지도 않다. 노무현과 김대중도 마찬가지다. 참여정부와 국민의 정부도, 열린우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도 마찬가지다. 새정연이 다음 총선에서 현 집권세력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다면 문재인은 오늘이라도 대표직에서 물러날 수 있다.



문재인은 ‘이기는 정당’을 캐치프레이즈로 당대표에 올랐다. 그의 목표는 새정연의 집권이다. 그가 대통령이 되지 못해 안달난 정치인이라면 보궐선거 완패를 책임지고 물러나지 않아도, 그 자리에서 쫓겨나게 돼있다. 몇 사람을 속일 순 있어도 모든 사람을 속일 순 없기 때문이다.



사람사는 세상, 사람이 먼저인 세상이 이루어진다면 문재인의 정계은퇴만이 아니라 노무현의 부관참시도 얼마든지 되풀이할 수 있다. 리더보다는 리더십이 중요하듯이, 대다수의 국민이 승자독식을 위한 무한경쟁의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누군들 버리지 못할 것도 없다.





필자는 새정연의 완패를 ‘야당의 프레임 설정 능력’ ‘부패한 정치가 만들어내는 역효과’ ‘기울어진 운동장의 각도’ ‘외연확장의 시기와 전제’ ‘나눠먹을 것이 없는 진보의 현실’ ‘인터넷과 SNS의 한계’ ‘야성과 집토끼에 대한 재정의’라는 7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생각이었다.



헌데 봇물처럼 터진 문재인 비난의 일방성과 폭력성 때문에 분석할 필요가 사라졌다. 분노와 증오와 비이성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어떤 분석도 유효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재인이 당대표에서 물러나도, 물러나지 않아도 욕먹는 것을 피할 수 없는데 무슨 얘기를 한들 들으려 하겠는가?



어차피 욕을 먹어야 한다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한다면 만신창이가 될 때까지 두들겨 맞는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 묻고 답하는 것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지지층의 반발이 계속된다면 물너날 수밖에 없다. 지지층을 설득할 수 없는 리더는 더 이상 리더가 아니다.   



무엇이 정답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민주주의는 완성형이 없기 때문에 정답의 근사치를 확률적으로 높일 수밖에 없다. 다수가 언제나 옳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불완전한 정보와 경험 및 성찰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선택해야 하고, 그것이 정답에 가깝도록 노력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경험적 직관과 비판적 이성이 문재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현실적인 대안을 찾을 수 없는 필자로서는 그의 진정성과 리더십을 믿을 뿐이다. 불신과 정치공작의 시절, 봄은 왔지만 바라던 봄이 아니라고 물릴 방법이 내게는 없다. 정말로 커피 한 잔의 여유가 필요한 오늘이다.  


                                                                                                            사진 출처 : 구글이미지